# 138
48) 파주, 죽음의 군단 - 2
파주 요새를 공격하던 몬스터 군단은 등 뒤에서 몰려오는 좀비 떼를 같은 편이라고 착각했다.
그어어?
그렇기 에 후방에 있던 오크들은 목덜미를 물리는 순간, 멍청한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는 게 전부였다.
끄억!
그럴 만도 했다. 애초에 ‘몬스터의 황제’를 모시며 한국 서버 정벌의 선봉장에 나란히 서지 않았던가? 그런데 갑자기 뒤를 친다고?
플레이어 라면 모를까, 이해관계가 단순한 몬스터 간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북쪽에서 내려온 몬스터 군단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북쪽에서 내려온 좀비 떼 때문입니다!”
안 기자는 그 장면 앞에 서서 격양된 목소리로 상황을 전달하고 있었다.
“저, 전혀 예상을 못 한 것처럼 완전히 허를 내줬습니다! 그런데 저 좀비떼, 네크로맨서의 권속들이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분명 오래전부터 북한 서버에 모여 있던 것들인데······.
안 기자도 정확한 상황을 알 수 없었다. 확실한 건 단 하나였다.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건, 다른 누구도 아닌, 네크로맨서 밖에 없다는 것뿐이었다.
전장은 빠르게 정리되어갔다.
우어어!
오크보다 약한 하급 좀비 일지라도 사방에서 밀고 들어오니 그 공세가 만만치 않았다. 한 마리의 머리를 부숴버리더라도 뒤이어 두 마리가 달려들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밀고 들어오는 터에, 한 번의 공격 이후 자세를 바로잡을 틈이 없었다. 마치 멈추지 않는 산사태를 마주한 것만 같았다.
그어! 그어어!
그렇게 몬스터 군단은, 외각에서부터 서서히 갉아 먹혀가며 전의를 상실해 갔다.
“지금이다! 바로 지금이야!”
무엇보다 퇴로를 차단했다는 점이 적들에게 치명상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놈들의 공세가 약해졌다! 우리가 화력을 선보일 때다!”
“범위 마법을 쏟아부어!”
공세에서 벗어난 파주의 플레이어들이 공격에 집중하면서 광범위한 화력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퇴로가 차단된 상황이니 피할 구석이 전혀 없었다. 그렇기에 범위 공격 한방, 한 방이 적들의 중심부에서 작렬하며 치명적인 피해로 번져나갔다.
“놈들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끝장내자! 모두 돌격 준비하라!”
기세를 완전히 잡은 플레이어들은 전투의 종지부를 찍기 위해서 돌격을 감행했다.
구구구-
요새의 철문이 열렸다. 그 순간, 20톤 트럭 2대가 밀고 나가며 출구를 확보했다. 그 뒤로 탱커들이 줄지어 뛰어 나오며 방패를 들어 올렸다.
“방패 밀치기 준비!”
“쓸어버리자!”
좀비 떼가 더해지며 숫자에서도 밀리지 않게 되자 더는 두려울 게 없었다. 플레이어들은 특유의 단단한 포지션을 바탕으로 몬스터 군단을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좋아, 뚫린다!”
“놈들이 좀비 때문에 우리에게 집중할 수 없다! 바로 지금 놈들은 분쇄해 버린다! 돌격!”
그렇게 오크와 고블린을 베어 넘기며 나아가던 플레이어들은 어느 순간, 좀비들과 마주치게 되었다.
눈앞을 가득 채운 수천 마리의 좀비, 그건, 둘 사이를 가로막고 있던 몬스터 군단을 전멸시켰다는 의미였다만······ 그 기괴한 생김새를 가까이에서 보게 되자 형 언할 수 없는 딜레마가 다가왔다.
“이, 이것들은······ 우리 편 맞지?”
당장 무기를 들어 올려 머리를 내리쳐야 할 것만 같은 강박감이 들었다.
“그렇지? 네크로맨서가 조종하는 걸 거야.”
“그런데······ 네크로맨서는 우리 편 맞아?”
또한, 잠깐이지만 네크로맨서를 욕했을 때가 떠올랐다. 파주의 플레이어 연합 ‘한마음회’는 메인스트림의 책임을 네크로맨서에게 돌리고 세계수를 베어 버리라고 커뮤니티에 글을 올리지 않았던가?
“······그것 때문에 우리를 죽이려고 하지 않겠지?”
“설마! 나, 나는 애초에 네크로맨서를 응원하고 있었다고! 나는 욕 안 했어!”
“맞아! 그거 망할 노인네들이 멋대로 그런 글을 싸지른 거잖아? 정작 우리 의견은 물어보지도 않았어.”
이처럼, 막상 네크로맨서의 위상을 피부로 느끼게 되자 오랫동안 속해 있던 ‘한마음회’라는 정체성을 부정하기에 이르렀다.
그때, 좀비들이 하나둘 옆으로 물러서기 시작했다. 수천의 마치 홍해처럼 갈라지며, 그 사이로 드러난 긴 길을 따라서 누군가 걸어왔다.
“네크로맨서······ 님?”
그건 역시나 암녹색 로브를 입은 사내, 네크로맨서였다. 그는 요새 밖으로 나온 플레이어들은 한 차례 둘러보더니 입을 열었다.
“아직 끝난 게 아닙니다. 요새를 정비하세요.”
“아, 예! 알겠습니다!”
한마음회의 플레이어들은 고분고분한 걸 넘어서, 마치 상관을 만난 것처럼 네크로맨서의 한 마디에 움직였다.
“쉴 시간이 없다! 즉시 요새로 돌아가서 정비한다!”
“전원 요새로 복귀!”
그런데 네크로맨서는 그 한 마디만을 남기고 곧장 돌아서는 게 아닌가?
“어라? 그런데 저분 지금 다시 가시는 건가요?”
“뭐? 설마······.“
한마음회의 지휘관은 불안한 마음으로 그를 쫓아갔다.
“저, 저기! 네크로맨서님?”
네크로맨서가 도착하는 순간 전황이 뒤바뀌었다. 그리고 그가 함께한다는 것만으로도 사기가 상승한다는 걸 느꼈다. 그가 계속 이곳에 있어 주었으면 하는 게 그들의 심정이었다.
“여기에······ 그러니까 저희와 같이 이, 이곳을 지키시려는 게 아닙니까?”
네크로맨서는 고개를 저었다.
“저는 북쪽으로 갑니다.”
“예? 아, 그 북한에서 몬스터들이 몰려오는 걸 막아야 하는 상황이지 않습니까? 혹시 어느 지역에서 방어하시려 는지 여쭤봐도······.“
답변은 예상 밖이었다.
“이건 전쟁입니다. 수비만 해서는 이길 수 없죠.”
“······예?”
메인스트림은 분명 북한에서 내려오는 대규모 몬스터에 대항하여 이 땅을 지키라는 취지의 내용이었다.
“메인스트림을 끝내러 갑니다.”
그런데 그는 시스템의 의도를 거슬러, 공격을 택했다.
* * *
성우는 빅터를 통하여 북한 서버에 대한 정보를 얻었다. 북한 서버의 ‘왕’ 등급 몬스터 중 한 명이었던 만큼, 그 무엇보다 신뢰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해주었다.
북한 서버의 몬스터 분포는 물론이거니와 그 모든 걸 다스리는 ‘황제’ 등급의 몬스터에 대해서까지 말이다.
“황제 등급의 몬스터는 평양에 있습니다. 사실 저도 그 자식 얼굴은 본 적 없습니다.”
“본적이 없어? 그런데 왜 섬겼지?”
“아, 뭐 소문이 워낙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원래 필드 보스 몬스터였는데, 이후 탄생한 레이드 보스 몬스터들을 잡아먹으면서 격을 높여갔다고 합니다. 복종하지 않으면 찾아와서 잡아먹어 버리니······.“
필드 보스 몬스터라면, 아마도 한국 서버의 ‘본 와이번 알파메일’ 같은 존재였다. 즉, 한 서버의 지배자급의 몬스터 였다는 소리였다.
‘그런 걸 가만히 내버려 두었다면 확실히 한도 끝도 없이 성장했겠지······.‘
몬스터 성장이라는 게 실시간으로 일어나는 이벤트는 아니었다. 태백산맥에서 탄생한 대산맥의 왕처럼, 일정 기간 토벌이 안 될 시에나 발생하는 현상이었다.
“그래서 그 황제라는 놈은 종족이 뭐야?”
제일 중요한 정보였다.
“과거에는 ‘엘더 드레이크’였습니다. 냄새나는 파충류였죠.”
드레이크라면 여의도 레이드 때 상대해본 적 있었다. 다만, 그때는 ‘어린 드레이크’였던 걸로 기억했다.
“지금은?”
“지금은 열이 나는 파충류입니다.”
“······지금 나랑 말장난해? 퀴즈라도 내려는 거야?”
성우가 인상을 찌푸리자 빅터의 안광이 살짝 희미해졌다. 겁에 질린 것이었다.
“따, 따-닥! 아, 아닙니다! 딱! 놈은 샐러맨더입니다!”
샐러맨더라? 그 이름은 성우에게도 익숙했다. ‘헬 파이어 갑주’를 착용하는 순간, 화염 면역력이 150%가 넘어가면서 발동한 특전이 바로 ‘샐러맨더의 아우라’였다.
그리고 판타지에서 ‘샐러맨더’는 ‘불의 정령’으로서, 화염에 뒤덮인 도마뱀의 형상으로 묘사되곤 했다.
“······화염 속성이라?”
“예! 바위를 녹여버릴 정도로 뜨거운 불을 내뿜는다고 합니다. 성질도 그만큼 더러워서 다른 왕 등급 몬스터들도 가까이 가길 꺼린다고 합니다.”
“그래?”
“끔찍한 놈이죠. 조심할 필요가 있으······.”
“나랑 말이 잘 통할 것 같은데.”
“······예?”
성우는 그렇게 수천 마리의 좀비를 이끌고 곧장 북쪽으로 전진하기 시작했다.
* * *
“음, 그래도 이건 너무 예상 밖의 전개이지 않은가? 임진강에서 버티겠다던 양반이 갑자기 북진이라?”
대산맥의 왕은 한 마리의 학을 통하여 모든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성우의 언데드 군단이 방향을 틀어 북쪽을 향해 진군하는 장면까지 말이다.
“이러면 우리가 결정적인 순간에 등장하겠다는, 그 멋들어지는 핵심 줄거리가 엉키게 되는 게 아니던가?”
“원래 저 인간이 멋있는 건 혼자 다해요.”
왕의 푸념에 한호가 동참했다.
“원래 저렇게 종횡무진 좌충우돌 편인가?”
“몰라요. 하여튼 속을 알 수가 없다니까요?”
대산맥의 왕을 비롯하여 지수와 한호는, 다른 일을 처리한 뒤 조금 뒤에 합류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성우가 저렇게 급하게 치고 올라가니 계획이 다소 틀어질 가능성이 생긴 것이었다.
“어허, 이러면 그 양반 홀로, 고군분투하겠는데······.”
“빨리 가야 하는 거 아니에요?”
그렇기에 지수는 다소 언짢은 상태였다. 성우가 적진으로 돌격하는데, 아무 것도 못 하는 상황이 아니던가?
“아, 이게 저 양반이 생각보다 빨리 움직여서······ 여봐라! 감자는 아직인가? 깊은 곳까지 들어가기 전에 간식거리가 필요하다고 하지 않았느냐?”
왕의 호통에 부엌에서 호걸 한 마리가 쭈뼛쭈뼛 걸어 나왔다.
“아, 그게 형님 문제가 생겼습니다.”
“응? 무슨 일이더냐?”
호걸이 지수를 돌아봤다.
“저, 저기 지수 낭자? 젓가락이 푹 들어갈 정도까지 삶으면 된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맞아요.”
호걸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무언가 내밀었다. 그건 감자였다.
“삶지 않았는데도 젓가락이 이렇게 푹, 푹, 푹 들어갑니다. 그럼 지금 먹어도 되는 겁니까? 사실 이미 한 입 먹어 봤는데 하나도 맛이 없습니다. 혹시 이 감자가 상하거나 그런 겁니까?”
그가 내민 생감자에는 젓가락이 5개나 박혀 있었다.
”······.”
익지 않아도 이 거구들은 힘이 워낙 좋기에 말 그대로 푹, 들어가 버리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눈높이에 맞는 설명이 필요할 듯싶었다.
“비켜봐요. 제가 삶아드릴게요.”
그러나 그보다 직접 하는 게 빠를 것 같았고 결국, 지수가 팔을 걷고 나섰다. 그러자 왕이 박차고 일어나며 성질을 버럭 냈다.
“네 이놈들! 감히 손님이 팔을 걷게 만들다니! 이런 몰상식하고 무능한 놈들아! 언제 쓸모를 발휘할 것이더냐!”
그 호통에 호걸들이 바짝 굳었다. 그런데 지수는 되려 왕을 쏘아보았다.
“조용히 해요. 빨리하고 가야 할 거 아니에요?”
“······어라? 나, 나말이오?”
당장 떠나야 할 일이 있는데, 감자 삶기에 목숨 걸고 있는 꼴이 답답하던 참이었다.
“하여튼! 왕 놀이하지 말고 왕 노릇을 하세요.”
“······아, 알겠소. 잘 부탁하오. 지수 낭자.”
왕은 순간 기가 죽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와, 왕 노릇이라니······.”
지수가 부엌으로 들어가자 호걸 두마리가 잽싸게 따라 들어왔다. 녀석들은 부엌 밖을 슬쩍 바라보더니 호들갑을 떨어대기 시작했다.
“낭자! 방금 그 말, 제가 들은 말 중에서 최고로 멋진 말이었습니다!”
“왕 놀이 말고 왕 노릇이라니 ! 백부 당 천부당······.”
그런데 지수는 여전히 도끼 눈이었다.
“저기요? 햇빛 가리니까 그냥 나가 있어요.”
“······넵.”
“부분대로 하겠습니다.”
* * *
수천 마리의 좀비 군단이 북한 땅을 전진했다. 그 위로 수백 마리의 까마귀가 먹구름처럼 따라다니고 있었는데, 시시때때로 사방으로 퍼지며 일대의 모든 걸 정찰했다.
“주인님! 언덕을 넘어가면 트롤 부대가 나옵니 다! 거의 100마리 정도로 보입니다!”
빅터가 까마귀의 눈으로 얻은 정보를 보고해왔다. 이처럼, 지능을 가진 걸 넘어서 언데드를 부릴 줄 아는 권속이 함께 있자, 마치 부관이 생긴 것처럼 편리했다.
“좀비 무리는 우회해서 지나가게 해.“
“알겠습니다!”
빅터와 죽음의 사제들이 부리는 좀비는 최대 3천 마리에 이르렀지만, 부활할 수 없을뿐더러 ‘하급 좀비’에 불가했다. 즉, 트롤 100마리와 마주한다면 엄청난 피해를 보고 말 것이었다.
그렇기에 평양을 향해 진군하면서도 상대를 가려가면서 방향을 틀었다. 최대한 병력을 보존할 생각이었다.
성우는 몇 마리의 대형 언데드를 보내 트롤 무리와 격돌시켰다. 성우에게는 손쉬운 상대였다.
“와! 맙소사! 여, 역시 죽음의 신 다운 권능이십니다! 딱딱!”
성우의 권속들이 트롤 100마리를 순식간에 녹여버리는 걸 지켜보며, 빅터가 과장된 감탄을 내뱉었다. 다분히 과장된 아부였다.
“시끄러워.”
“아, 예! 딱!”
성우와 빅터의 언데드 군단은 그렇게 북한 서버 깊숙이까지 밀고 들어가며 전투와 우회 기동을 반복했다. 싸울만한 상대라면 괴멸시키고 시간이 소요 된다 싶으면 회피하는 것이었다.
“주인님, 그런데 이러면 후방이 불안해지지 않습니까? 딱딱?”
빅터의 말이 맞았다. 원정군이 수도부터 바로 치지 않고 변경의 성부터 차례대로 깨고 들어가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무작정 밀고 들어가면 필연적으로 양동작전에 노출되고 만다. 성우가 그걸 모르는 건 아니었다.
“알아. 다 계획이 있어.”
“아! 물론 믿고 있습니다! 딱!”
그렇게 더욱 깊숙이, 평양을 향해 전진하던 중에 메시지 한 줄이 떠올랐다.
- ‘리치(빅터)’의 능력이 소폭 상승 합니다.
* ‘소형 스켈레톤’을 부릴 수 있습니다.
지능이 뛰어난 언데드인 만큼, 성우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능력 상승이 일어났다.
“오! 주인님 방금 제가······.”
“알아.”
“딱······.”
물론 소형 스켈레톤도 그리 강력한 언데드는 아니었다. 기껏해야 고블린이나 코볼트 정도를 일으킬 수 있는 수준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사용할 수 있는 재료의 폭이 넓어진다는 점에서 병종이 다양화될 것이며 스켈레톤 특유의 가벼움과 날렵함을 이용할 수도 있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중형 스켈레톤으로 업그레이드되면 훨씬 강력한 부대가 될 거다. 3천에 이르는 오크 스켈레톤이라?’
이렇듯, 몬스터 리치는 플레이어 리치와 또 다른 강력함을 내재하고 있었다. 질보다 양에서 힘을 발휘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또 몇 시간을 북상했을 때였다.
“주, 주인님! 약 30리 밖에서 대군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지루하던 행군에 변화가 생겼다. 성우는 산등성이에 병력을 멈춰 세웠다.
“대군? 얼마나 되지?”
“무려 1만, 아, 아니 그 이상에 달하는 병력입니다! 딱! 아무래도 황제가 저지 명령을 내린 모양입니다!”
1만 이상의 병력이라면 변방을 지키던 수비 병력과 차원이 다른 규모였다.
’이건 평양에서 온 병력이다.’
마침내 기다리던 때가 왔다.
“좋아.”
성우는 본 와이번 한 마리를 소환했다. 그리고 그 등 뒤에 올라탔는데, 빅터가 따라오려고 하자 손짓으로 막았다.
“어라? 뭘 하시려고······.”
“이제 우리는 두 길로 나눠서 이동한다.”
“······예?”
빅터는 어리둥절한 눈빛이 었다.
“너는 지금부터 저 1만의 군대와 맞선다.”
“제, 제가······ 딱! 저 혼자서 말입니까?”
빅터의 턱이 최대 각도까지 벌어졌다.
“정확히는 시간을 끌어.”
“······딱? 그럼 주인님께서는?”
“평양으로 갈 거야.”
빅터가 조종하는 수천 마리의 좀비들을 몰고 북한 서버 깊숙이까지 진격해 온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너는 그 황제라는 놈이 아직도 내가 여기에 있을 거라고 착각하게 만들어.“
“······.“
성우는 그 말을 남기고 날아올랐다. 빅터는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딱딱─
그의 불안한 이빨 부딪치는 소리만이, 황망한 북한 땅 위로 울려 퍼졌다.
* * *
평양은 지금까지 지나온 지역과 사뭇 달랐다. 황망하기 그지없던 북한 서버에서 그나마 높은 건물이 늘어서 있는 풍경이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높은 건물인 ‘류경 호텔’은 독재 권력이 지은 현대판 피라미드로써, 평양의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기기기기一
그런데 지금, 그 건물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건물의 지하 중심부에서 치솟는 정체불명의 열기 때문에 철근이 휘어지는 소리였다.
그런데도 건물이 무너지지 않는 건, 어떤 마법적인 힘 때문이었다.
류경 호텔에서 수백 미터 떨어진 곳, 플레이어 3명이 다가와 있었다. 그들은 한겨울임에도 땀을 뻘뻘 흘리는 중이었다.
“젠장, 이렇게 한참 멀리 서 있어도 덥네요. 망할 불 도마뱀 같으니 라고······.“
“입 조심해. 성질 더럽기로 유명하다잖아. 우리는 황제의 칙사임을 잊지 마.“
그들은 언짢은 기색을 얼굴 가득 품고는 류경 호텔을 노려보았다.
“몬스터 주제에 황제라니? 우리의 진짜 황제께서는 저런 오랑캐와 무슨 거래를 하시겠다는 겁니까?”
“이이제이다.”
“이이제이라······.“
대화에서 알 수 있듯, 이들은 ‘중국-1 서버’의 사절이었다. 멸망한 북한 서버에서 지능을 가진 몬스터들이 대거 탄생했다는 걸 알고, 일찌감치 손을 뻗쳤다.
그리고 그들이 기대하는 건, 북한 서버의 몬스터들이 한국 서버의 잠재적인 적수 ‘네크로맨서’를 대신 처리해주는 것이었다.
“그 집사 놈이 옵니다.”
그때, 류경 호텔 쪽에서 리자드맨 한마리가 걸어왔다. 검은색 예복 차림이었는데, 어딘가 일반적인 몬스터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 풍겼다.
리자드맨은 공손함을 담아서 허리를 숙였다.
“······그게 황제께서 아직 기침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아직 몇 시간 정도 더 기다리셔야 할 것 같습니다.”
플레이어들은 이렇게 정확한 언어를 구사하는 몬스터를 대하는 게 여전히 익숙하지 않았다.
“우리는 중국 황제의 사절이요. 이미 이틀이나 기다리지 않았습니까? 이건 홀대라고 봐도 되는 겁니까?”
“더군다나 한국 서버에서 네크로맨서가 북진 중이라고 하던데, 이렇게 손놓고 있어도 되는 거요?”
몬스터에게 이렇게 따지는 게 의미가 있을지 고민이었지만, 리자드맨은 그 모든 걸 받아주며 역시나 공손한 태도로 일관했다.
“조금만 더 기다려주시지요. 어차피 남쪽의 네크로맨서, 그자도 더는 올라오지 못합니다. 제아무리 날고 기었다고 한들 무려 2만의 병력을 상대할 수는 없지요.”
“······서, 설마 2만을 모두 내보낸 거요?”
2만 명이라고 하면 확실히 격이 다른 수준이었다. 네크로맨서가 대규모 전투를 여러 차례 치루기는 했으나, 대부분 수천 대에서 그쳤다.
“그렇습니다. 황제 폐하가 침소에 계시는 시간이 길어져서, 소란을 예방하고자 휘하 장군들을 출전시켰습니다. 그 결과, 그 네크로맨서라는 작자는 이미 저희의 대군에게 쫓겨서 남쪽으로 내려가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예복의 리자드맨은 그렇게 말하고는 혀를 날름거렸다. 놈의 눈동자에서 자신감이 느껴졌다.
이들은 북한 서버의 플레이어들을 모두 처리하고 이렇게 막대한 힘을 얻게된 존재였다. 한국 서버에서 누가 올라 온다고 하든, 별다른 위협으로 느끼지 못했다.
“뭐, 그럼 다행이지만······ 적이 목전까지 왔는데도 너무 한가한 게 아닌가 싶어서 말입니다.”
“중국에서 오신 손님 여러분, 제가 간단히 말씀드리죠.”
리자드맨은 마치 가르치려는 듯한 말투였다.
“한국 서버에서 단 한 명의 ‘몬스터 왕’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그조차도 처리하지 못하여 전전긍긍하고 있다고 합니다. 저희는 무려 8명이 나왔는데, 그중에서 가장 압도적인 힘을 지닌 게 바로 황제 폐하이십니다.”
리자드맨은 천천히 고개를 숙이면서 말을 끝맺었다.
“걱정하실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서버의 최강자라고 해도 서버의 수준이 다릅니다.”
“······.”
중국 플레이어들의 얼굴에는 여전히 짜증이 가득했지만, 따지고 들 수는 없었다.
“그럼 조금 더 기다리겠습니다.”
“예. 폐하께 소식을 전해드리죠.”
결국, 조금 더 기다리기 위해서 돌아섰을때였다.
쿵!
작은 폭음이 어디선가 들렸다. 이야기를 나누던 이들은 모두 고개를 들어 올렸다. 폭음의 진원지는 류경 호텔의 마천루였다.
“······저거?”
마천루 위에 누군가 서 있었다.
“그, 그놈이다.”
중국 서버의 플레이어들은 그 모습을 알아봤다. 녹색 로브를 휘날리며 거대 한 흑색 낫을 들어 올리는 존재······.
“네크로맨서······.”
그 순간, 그가 들고 있던 흑색 낫에 검은 일렁임이 일어났다. 그것들은 불투명한 구체로 변하며 낫의 날에 맺히기 시작했다. 그 숫자가 약 50개······.
네크로맨서가 바닥을 박차고 오르는 동시에 낫을 휘둘렀다. 50개의 구체가 류경 호텔의 옥상에 내리꽂혔다.
구-구-구-구-구-구-궁-
“뭐 뭐?”
“저건 뭐야!”
검은 구체가 팽창하며 정체를 알 수 없는 일렁임이 건물을 짓눌렀다. 엄청난 에너지, 엄청난 압력이 류경 호텔을 수직으로 내리찍었다.
그렇지 않아도 뜨거운 열기로 인해 우그러져 있던 철골이 사정없이 구부러졌다.
쿠구구구구구-
몬스터의 황제가 잠들어 있던, 거대한 마천루가 통째로 무너져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