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6
47) 북한에서 내려오는 죽음 - 3
성우 일행은 대산맥의 왕의 안내를 따라서 산기슭을 내려갔다. 북한 서버의 리치에 관한 정보를 알고 있는 이에게 가는 길이었다.
“음, 이 근처인데······.”
왕은 방립 삿갓을 쓰고 굵직한 가지 하나를 지팡이 삼아서 앞장서서 걸었다.
확실한 건 아니었다만, 성우가 보기에 약간 길을 헤매는 것 같기도 했다.
“저기 아저씨, 길 아시는 거 맞죠?”
오죽했으며 한호가 이런 질문을 할 정도였다.
“곧 도착할 걸세. 너무 근심 어린 표정을 짓지 말게나. 내가 바로 이 산의 왕이 아니던가?”
그는 그렇게 너스레를 떨더니 다시 길을 나섰다.
“북한 리치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있다는 사람이라면 북한 서버의 플레이어인가?”
성우의 물음에 왕은 삿갓을 슬쩍 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7일 전이었나? 산속을 헤매는 녀석을 오우거 형제가 잡아먹으려는 걸 내가 구해줬다네. 그런데 그 뒤로 그 오우거 형제 놈들이 나랑 마주쳐도 인사도 안 하더라고? 참나, 덩치만 크지 속이 좁은 녀석들이라니까?”
대산맥의 왕은 너무 말이 많은 탓에 항상 핵심을 벗어나는 편이었다.
“그래서 뭐하던 사람인데?”
“아, 리치를 섬기는 조직에 잠깐 속해 있었던 모양이야. 자세한 건 그 친구에게 직접 듣도록 하지. 다 왔네. 바로 저길세.”
그가 가리킨 곳에는 왕의 산채와 별반 다를 거 없는 오두막이 하나 보였다.
“산속에서 지내는 노인네와 손주들이 있는데, 일단 그 집에 머물게 했지. 주인장! 주인장! 나요!”
그는 오두막 근처로 다가가며 소리쳤다. 그 순간, 문풍지를 발라놓은 문이 벌컥 열리더니 석궁 하나가 이쪽을 겨누었다.
철컥!
백발의 노인이 짙은 눈썹을 치켜세운채, 왕의 목덜미에 석궁을 겨누었는데, 당장이라도 시위를 당길 기세였다. 그러자 왕이 삿갓을 벗으며 손사래를 쳤다.
“아니, 나라니까? 노인네 이제 귀도 먹었소? 어린 손주들을 생각해서 부디 꺼져가는 정신을 붙잡으시오!”
“뭐야 요괴 놈······ 또 무슨 일이야?”
노인은 석궁을 내리며 금이 간 무테 안경을 썼다.
“에이, 요괴 놈이라니? 주인장도 내 백성인 걸 아직도 인정 안 하겠다는거요? 싫으면 오우거 형제랑 트롤 마을 놈들에게 내린 접근 금지령을 해제하지 뭐.”
“······비열한 요괴 놈.”
왕은 자연스레 마루에 걸터앉았다. 그러자 방안에서 아이들 소리가 들려왔다.
“어! 요괴 아저씨다!”
“아저씨! 호랑이 삼촌들은요?”
대여섯 살쯤 되어 보이는 방에서 뛰어나오더니 왕의 어깨에 매달렸다. 성우는 그 장면을 바라보며 상당한 이질감을 느꼈다.
‘어린아이와 어울리는 괴물? 이웃집 토토로도 아니고 무슨······.‘
대산맥의 왕은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 듬으며 싱긋 웃었다. 아무리 봐도 꼬마들을 이뻐하는 삼촌의 모습이었다.
“허허, 이놈들! 요괴? 제 할아버지 닮아서 말버릇하고는? 그리고 호랑이 삼촌들은 밭 갈아야 해. 우리 집에는 소가 없거든.”
천진난만한 꼬마들의 시선은 뒤에 서 있던 일행에게 향했다.
“어? 지수 언니도 왔다!”
“지수 누나!”
“얘들아 잘지냈어?”
지수도 산맥을 전전하는 동안 이 집안과 인연을 쌓았던 모양이었다.
한편, 노인은 무어라고 구시렁거리면서도 손님들을 위해서 상을 차려왔다.
“······틈만 나면 남 집구석에 기어들어 와서 귀찮게 굴고 있어? 정신 사나우니까 주스나 한 잔 마시고 빨리 가버려.”
뻥튀기가 담긴 사발과 오렌지 주스였다. 노인은 투박한 손으로 스테인리스컵을 하나씩 나누어 주었다.
“허허, 주인장. 그렇게 아끼는 과일 주스까지 대접해주시고? 오늘 새 손님 오셨다고 상을 너무 거나하게 내온 거 아니오? 감개무량하네!”
“요괴 놈, 헛소리는?”
“하하! 근데 리 씨는 어디 간 거요? 왜 안 보이지? 주인장 혹시······.“
왕은 인상을 팍 구기고 노인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그렇게 빨갱이, 빨갱이 거리더니 어디 산속에 매달아 놓은 건 아니지?”
그때 뒷마당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그리고 턱수염 난 사내 한 명이 걸어왔다.
“아, 오셨습니까? 죄송합니다. 뒷마당에서 작업 중이라서 몰랐습니다.”
- 과도한 사투리는 ‘자동 필터링’ 됩니다.
“아, 마침 오는군. 저 친구가 그 북쪽에서 내려온 우리 정보원, 리성호일세. 한때 리치를 섬기던 저열한 자였으나 이렇게 정신을 차렸으니 스켈레톤으로 만들지는 말아주게.”
“요괴 놈, 하여튼 말이 너무 많아.”
노인이 고무신을 신고 마당으로 나가며 혀를 찼다. 그러자 왕이 노인의 뒤통수에 대고 손가락질을 해댔다.
“어허 ! 이제 천하를 논해야 하니 거, 곧 천하를 떠날 연세인 주인장은 빠져 계시오.”
“······썩을 놈.”
성우는 성호와 마주 앉아 북한 서버의 상황에 대해서 듣게 되었다.
북한 서버의 첫 시작은 한국 서버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갑작스레 찾아온 재앙 앞에 플레이어들이 각성하여 살아남기 위해 발악했다.
다만, 북한 사회 자체가 게임은 물론이거니와 전자 시스템에 원체 익숙하지 않은 편이기에, 눈앞에 나타나는 기현상에 유독 강력한 거부감을 드러냈다고 한다.
“플레이어보다 수인이 더 많았던 것 같습니다.”
성호는 북한 서버를 그렇게 회상했다. 카드를 뽑은 자보다 뽑지 않은 자가 많았다.
“······눈앞에 떠오른 카드에 귀신이 곡할 노릇이라고 절대 손도 대지 말라는 어른들 말씀 때문에 많은 이들이 선택을 주저했습니다. 심지어 당에서도 건드리지 말라는 통제 명령이 내려 왔고요. 뭐, 미제가 퍼뜨린 간악한 술수다 뭐다······.“
그런데도 살아남고자 하는 의지를 지닌 이들이 카드를 뽑아서 자치 세력을 조성하는 데 성공했다고 한다.
그들은 집단행동을 하며 몬스터에 대응하고 퀘스트를 공략해나갔지만······.
“역시나 카드를 뽑고 세력을 복구한 군부가 문제였습니다. 자치 세력의 플레이어들에게 당 아래 복종하여 움직일 것을 명령했죠.”
하지만 힘을 얻은 민중은 그 명령에 곧이곧대로 따를 리가 없었다.
어떻게든 자치권을 유지하려고 했지만, 자치 세력 내에서도 적지 않은 이들이 여전히 사상적으로 흔들렸다는게 문제였다.
“우습게도 반역자라고 몰아가니, 자치 세력에 대한 지지가 확연하게 줄어 들더라고요······.“
한평생을 독재 체제 아래에서 살았으니 ‘당의 명령’이라는 윽박지름 앞에 절로 움츠러들었다. 그렇기에 한마음한뜻으로 대응하는 게 불가능했다.
“전부 멍청한 짓이었죠.”
그렇게 도시에서는 두 세력 간의 싸움이 과열되는 가운데, 오지에서는 몬스터들이 힘을 얻어갔다고 한다.
방치된 ‘레이드 보스 몬스터’는 ‘군벌 몬스터’가 되었고 그 상태에서 더 방치되자 ‘몬스터의 왕’이 탄생했다.
“쉽게 말해서 나와 비슷한 존재가 북쪽에는 떼로 몰려 있다고 보면 되는거지?”
대산맥의 왕이 제 가슴을 가리켰고 성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그거 최악이군.”
성우의 말에 왕이 고개를 갸웃했다.
“응? 방금 그 말, 내가 혹시 잘못 이해한······.“
“아니야. 이야기 계속하시죠.”
“······어쨌든, 자치 세력도 군부도 그 몬스터 군단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서로를 무너뜨리는 데 혈안이 되어 있었기에 몬스터를 상대할만한 힘이 있을 리가 없었다.
결국, 두 세력이 와해 되는 순간, 서버 전체에 ‘배드 엔딩’ 메시지가 떠올랐다고 한다.
그 이후에는 메인스트림이나 퀘스트가 발행되지 않는 건 물론이거니와 ‘플레이어 가이드북’ 앱이 작동되지도 않았다. 커뮤니티나 방송국 등, 모든 기능이 셧다운 된 것이다.
“그렇게 우리 땅은 몬스터들이 지배하는 지옥으로 전락했습니다. 그리고 그 지배자 중 하나가 바로······ 그 리치입니다. 현재 북조선 땅의 남부, 개성 지역의 지배자죠.”
“한 마리 입니까?”
“리치는 한 마리입니다. 그렇지만 그 아래 딸린 죽지 않는 자들이 수천 마리죠.”
“수천 마리라······.“
신격을 얻은 성우도 수천 마리를 부릴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성우보다 격이 높은 건 아닐 테고, 아마도 몬스터의 왕이라는 칭호로 인해 어떤 특전을 받는 게 아닐까 싶었다.
“그런데 리치를 숭배하는 플레이어들이 있다고요?”
“맞습니다. 갈 곳 잃은 이들이 몬스터를 섬기기 시작했습니다. 특히나 리치는 마법사 계열의 플레이어들을 적극적으로 수용해서 ‘죽음의 사제’로 양성했습니다.”
지수가 왕의 도움을 받아 1차 각성을 한 것처럼, 멸망한 서버의 플레이어들 역시 몬스터의 왕을 섬기며 어떤 ‘전직’이 가능한 모양이었다.
어쩌면 수천의 리치를 부릴 수 있는 것도 플레이어를 권속으로 둘 수 있는 것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싶었다.
“거기가 어딥니까?”
성우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그러자 성호의 표정이 떨떠름하게 굳었다. 목숨을 걸고 어렵사리 탈출한 곳이기에 좋은 기억이 있을 리가 없었다.
“거긴 사원이라고 불리는 곳인데, 정말······ 극악무도한 이들입니다. 수십의 죽음의 사제가 몰려 있고요. 정말 끔찍한 곳입니다. 그들과 맞서되, 부디 그곳에는 가지 않으시길 권합니다.”
성우가 희미하게 웃었다.
“듣기로는 꽤 괜찮은 곳 같군요.”
성호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 * *
일명 ‘사원’이라고 불리는 곳, 그곳은 개성시 남부에 있는 산 중이었다.
난개발로 인해 초목이 벗겨진 황망한 산등성이 위, 회색 돌로 지어진 피라미드 두 채가 마주 보고 서 있었다. 마치 고대 문명의 건축물처럼 보이는 그 흉물의 주변으로 수백 마리의 까마귀가 날아다녔다.
피라미드 지하의 중심부, 그곳에는 거대한 재단이 하나 놓여 있었다.
12개의 횃불이 일렁이며 어둠을 밝히는 가운데, 20명의 ‘죽음의 사제’가 재단을 중심으로 둘러앉아 있었다.
그들은 가부좌를 튼 채 눈을 감고 있었는데, 하나 같이 원거리의 좀비 무리를 조종하는 중이었다. 주변의 생존자나 몬스터 무리를 공격하여 좀비의 숫자를 불러나가는 게 그들의 임무였다.
그때, 문제가 발생했다.
“제사장님, 동남쪽의 좀비 무리와의 연결이 끊어졌습니다. 뭔가에 공격받은 것 같습니다.”
그 보고에 제사장은 시답지 않은 일이라는 듯, 손을 휘휘 저었다.
“까마귀를 보내서 확인해.”
유약한 좀비 무리가 필드의 몬스터에게 전멸하는 경우는 종종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보고가 연이어졌다.
“다시 한 무리가 연결이 끊겼습니다! 그쪽 지방에서 무슨 일이 발생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뭔데 귀찮게······ 까마귀 관측병! 보이는 게 있나?”
“아직 없습니다. 조금 더 멀리 보내겠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그 소란의 실체가 드러났다.
“누군가 약 20리밖에 나타났습니다. 사원으로 오고 있는 듯합니다. 아마도 좀비 무리를 없앤 범인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몇 명이야?”
“한 명입니다.”
고작 한 명이라고? 제사장은 실소를 머금었다.
“한 명? 길 잃은 놈 같은데 좀비 한 부대를 보내서 좀비로 만들어버려.”
좀비 한 부대는 무려 300마리였다. 사방에서 조여 들어간다면, 제아무리 레벨이 높은 플레이어일지라도 홀로 감당할 수 있는 숫자가 절대 아니었다.
제사장은 그렇게 명령하고 신경을 꺼버렸다. 그는 북쪽 산지의 까마귀에 빙의하여, 부하들이 시체 골렘을 만드는 과장을 감독했다.
그런데 그의 심기를 거스르는 일이 계속되었다.
“제, 제사장님? 이것 좀 보셔야겠습니다.”
“······뭔데?”
제사장이 신경질적으로 물었다. 사제는 쭈뼛거리며 그의 앞에 검은색 수정 구슬 하나를 내려놓았다.
“저, 그게 침입자를 공격하러 간 좀비들이 좀 이상합니다. 마, 말을 듣질 않습니다.”
제사장은 수정 구슬 위에 손을 얹었다. 그러자 까마귀 한 마리의 눈으로 연결되었다.
이내 300마리의 좀비가 어딘가에 모여 있는 게 보였다. 그런데······.
“저놈 뭐야!”
그 좀비 부대 사이로 플레이어 한 명이 유유히 걷고 있었다. 그리고 놈의 발걸음에 따라, 좀비들이 자연스레 비켜서는 게 아닌가?
마치 홍해의 기적처럼 그 끔찍한 시체들이 줄줄이 좌우로 갈라져 버렸다.
“도대체 왜 공격을 안 하는 거야?”
“그게 분명 명령을 내리고 있는데······ 도, 도저히 움직이지 않습니다!”
“제사장님! 침입자가 20리 차단선을 돌파해서 10리 안으로 접어듭니다!”
상황이 심상치 않게 흘러갔다.
“뭐 하는 놈이지?”
“잘 모르겠습니다! 근접하면 까마귀 빙의가 풀립니다. 조금 더 가까워져야 인상착의가 확인될 것 같습니다!”
“됐어. 이상한 아이템 하나 가지고 있는 모양인데, 10리 안으로 들어오면 시체 폭발을 일으켜서 통째로 날려버려. 감히 어디를 기어들어 오려고?”
사원의 경비 체제는 단단했다. 주변을 좀비들이 가득 메우고 있었으며 설사 그걸 돌파하더라도 시체를 땅에 묻어둔 ‘폭발 지대’가 존재했다.
“멋도 모르고 이 땅에 머리를 디밀었다가는 지옥 불 맛을 보고 속절없이 객사하는 거지. 제아무리 단단한 탱커라고 해도 그 땅 위를 걸어서 들어올 수는 없다.”
쿵— 쿠—웅- 쿠구구-
이내 10리 밖에서 폭음이 울리며 천장에서 돌조각이 떨어졌다. 제사장의 명령대로 시체 폭발이 일어난 것이었다.
“······끝났나?”
“아, 아닙니다! 노, 놈이 밟기 전에 먼저 터졌습니다.”
이건 또 무슨 소리란 말인가?
“뭐? 누가 먼저 주문 시동했어!”
“······.“
시체는 일반적인 화약이 아니기에 누군가 ‘시체 폭발’ 주문을 걸지 않는 한 시체들이 터질 일이 없었다. 제사장은 부하들의 실수라고 단정지었다.
“이런 병신들! 기다리다가 했어야지 ! 누구야! 어떤 새끼냐고!”
“······.“
그 누구도 실수를 시인하지 않았다. 당장이라도 찾아내 일벌백계하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지금은 목전으로 다가온 침입자를 처단해야만 했다.
제사장은 자리에서 일어서서 뒷짐을 지었다. 그리고 초조하게 수정 구슬을 바라보았다.
“······놈은 사원으로 들어올 거다. 길을 잃은 게 아니야. 애초에 이곳으로 오고 있다. 만약 사원으로 들어오면 독가스를 살포해서 죽여버려.”
사원의 경비는 이중삼중으로 마련되어 있었다. 단순 실수로 한 단계가 벗겨졌지만, 아직 끝이 아니었다.
놈이 입구에 들어오는 순간, 문이 저절로 닫히며 강력한 독가스가 뿜어질 것이었다.
“좋아. 들어 와라.”
제사장은 수정 구슬을 통하여 놈이 사원으로 들어오는 걸 목격했다. 그리고 그 순간, 부하에게 준비된 레버를 당기게 했다.
덜컹!
출입구가 저절로 닫히며 검은 연기가 복도를 가득 채웠다. 회복 마법을 잔뜩 보유한 프리스트라고 할지라도, 저런 환경에서는 살아남을 수 없었다.
“그래, 그대로 몸이 비틀어져 죽어라.”
“······어?”
그런데 수정 구슬에 말도 안 되는 장면이 비쳤다. 침입자가 독가스를 뚫고 유유히 걸어 나오는 게 아닌가?
“도, 도대체 무슨!”
오히려 독가스는 마치 무대의 안개 연출처럼, 놈의 발걸음에 웅장함을 더해줄 뿐이었다.
제사장은 다급해졌다.
“최, 최후의 수단이다! 좀비 개들을 풀어!”
덜컹!
또 다른 레버가 당겨졌다. 정말 마지막 레버였다. 사원의 복도 끝자락에 있는 철창이 열리며, 사원의 복도를 따라 수십 마리의 좀비 개들이 맹렬하게 달려나갔다.
그런데 그다음 장면은 더욱 기가 막혔다.
“아, 아니 도대체 무슨······.“
침입자에게 달려들던 좀비 개들이 귀를 뒤로 접고 꼬랑지를 살랑살랑 흔들어대는 게 아닌가? 저건 이들이 믿고 따르는 주인에게나 보이는 행동이었다.
“다 뚫렸습니다! 노, 놈이 지하로 내려옵니다!”
그제야 제사장은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했다.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놈이 아니다. 그분을······.“
그는 비장한 표정으로 재단의 한 가운데를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붉은색 비단이 덮인 관이 하나 있었다.
“······깨워라.”
곳곳에서 마른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정말입니까? 주, 죽음을 깨워야 합니까?”
“제사장님? 그분의 잠을 깨웠다간 정말, 우리에게도······ 죽음이 내려앉을 겁니다.”
하지만 제사장은 단호했다.
“깨워라. 방법이 없다.”
결국, 관의 주인을 깨우기 위한 의식이 시작되었다. 20명의 죽음의 사제가 모두 합장하고 동일한 소환 마법을 시전했다.
우우우우-
보랏빛 마법이 재단의 중심으로 모였다. 그러자 붉은 비단이 서서히 들어 올려졌다.
끼이이一
관이 열리는 소리가 소름 끼치게 울렸다. 어디선가 음침한 바람이 불어닥치며 주변의 횃불을 일제히 꺼뜨렸다.
“······.“
보랏빛 마법만이 어스름한 불빛을 발하는 가운데, 관 안에서 검은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감히······ 이 시간에 나를······ 딱! 깨워? 딱딱!”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특히나 마지막에 울리는 이빨 부딪치는 소리는 캐스터네츠처럼 요란했다. 제사장이 서둘러 달려가 관 앞에 넙죽 엎드렸다.
“주, 죽음의 선지자이시여! 송구합니다!”
“그래서 딱! 무슨 일이지? 딱! 별일 아니면 전부 플래시 골렘의 부품으로 만들어버릴 것이다.”
쿵! 쿠-웅!
그 순간, 요란한 굉음이 울리며 제사장의 대답을 대신했다.
“······.“
“사, 사원이 뚫렸사옵니다. 침입입니다.”
리치의 안광이 검은 연기 속에서 불꽃처럼 피어올랐다. 짙은 분노가 느껴졌다.
쿠구구구-
그와 동시에 단단히 잠겨 있던 석문이 으스러졌다. 죽음의 사제들이 경악스러운 표정을 짓는 가운데, 정체불명의 침입자가 유유히 걸어들어왔다.
암녹색 로브를 입은 사내였다.
“네 이놈! 여, 여기가 감히 어디라고!“
제사장이 호통쳤다. 죽음의 사제들은 몸을 일으키며 양쪽으로 물러섰다. 자신들은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걸 알기에 일찌감치 자리를 피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리치와 침입자가 마주 보는 형국이 되었다.
“오, 죽음의 선지자이시여! 저 무지한 이방인을 벌하여 끔찍한 죽음을 선사하소서!”
“선사하소서!”
“단단히 선사하소서!”
검은 연기가 걷히며 보랏빛 안광이 드러났다. 그리고 죽음의 선지자라는 위대한 이명을 가진, 기괴한 자태의 해골 하나가 이방인을 바라보며······.
딱! 딱! 딱! 따-닥! 따-닥!
턱을 부딪치며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