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5
47) 북한에서 내려오는 죽음 - 2
대산맥의 왕과 두 신하 그리고 성우 일행은 원목 평상에 마주 앉았다.
정말 특별한 것 하나 없이 시골집에 가면 마당에 있을 법한, 그런 평상이었다. 단지 거대한 호랑이들이 앉을 수 있을 만큼 사이즈가 클 뿐이었다.
“콜록! 콜록!”
한호가 연거푸 기침을 토해냈다. 대산맥의 왕과 두 마리의 호랑이가 곰방대를 물고 연기를 뿜어대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아, 자네들은 담배 안 태우나? 남는 대가 몇 개 있긴 한데? 이참에 관심 좀 있나?”
“······.“
왕은 얼룩진 저고리 위에 두루마기를 대충 걸친 뒤에 평상 위에 대충 걸터 앉아 있었다. 그 어디에도 왕의 위엄이 느껴지지 않았다.
잠시 후, 손님 대접이랍시고 감자를 소쿠리째 쪄내 왔지만 아무도 먹지 않았다.
“막 캔 햇감자인데······ 왜 아무도 들지 않는가? 이 계절에는 자라지도 않는데, 짐이 마법으로 키운 거란 말이야 이게 다 선군의 은혜라는 걸세. 그렇지?”
감자가 선군의 은혜라니, 아무리 봐도 어딘가 어설픈 왕가였다만, 두 마리의 신하는 큼직한 머리를 조아렸다.
“맞습니다!”
“황공합니다!”
그런데 그 이후로 한동안 침묵이 이어졌다.
“······음.“
사실 두 그룹 사이에는 불편한 기류가 흐르고 있었다. 정확히는 대산맥의 왕과 성우 사이였다. 왕을 바라보는 성우의 시선이 온화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의 눈에는 노골적인 불신이 담겨 있었다.
“큼, 흠······”
왕이 눈치를 보며 담배 연기를 뻐끔거리는 가운데, 성우가 먼저 말을 걸었다.
“······너희들은 몬스터인가?“
성우가 이들을 경계하고 있는 이유는 그것이었다. 아무리 지수를 도와주었다고 하지만, 몬스터라는 사실은 변함없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만나온 몬스터는 전부 인간을 죽이기 위해서 존재했다. 예외가 있을 수도 있다는 건 아직 입증되지 않았다.
“몬스터라······.“
왕은 입술을 삐죽 내밀어 머리 위로 연기를 뿜어냈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분명 너희에게는 그렇게 받아들여지겠지.”
부정의 표현이었다.
“아니라는 건가? 내 눈앞에는 필드 보스 몬스터라고 정확히 떠오르던데?“
“아니라는 건 또 아니고 그저······ 거부하고 싶은 걸세. 우리는 몬스터로 태어나서 불투명한 자유 의지를 바탕으로 여기까지 왔다. 그리고 이제야 정신이 맑아진 상태지. 조금이나마······.“
몬스터라는 걸 거부하고 싶다?
‘확실히 다른 놈들과는 뭔가 다르군.’
이어서 대산맥의 왕이 말하길, 이들은 웨어 타이거가 아니라 ’호걸’이라는 종족이라고 했다.
태초에는 각기 다른 몬스터였지만, 진화를 거듭하여 현재의 형태를 얻을 수 있던 것이었다.
“그리고 숱한 혈투 끝에 우리 종족이 이곳, 태백산맥을 차지하게 되었다. 그 이후에 춘천 쪽에 있던 투쟁 길드? 그 녀석들이 무슨 퀘스트 때문인지 우리를 몇 차례나 공격했지만, 전부 막아냈지.”
왕은 호걸 중에서도 특출나게 강한 축에 속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성장세가 뚜렷해졌으며 결국 엄청난 능력을 얻게 되었다.
그렇게 ‘대산맥의 왕’이라는 호칭을 받은 것이었다. 인간의 모습으로 변장할 수 있는 것도 그 덕분이라고 했다.
“······그리고 당연한 소리겠지만, 우리 역시 너희처럼 너희가 말하는 시스템의 지배를 받는다.”
몬스터의 입에서 ‘시스템’이 언급된 건 오류가 난 이무기 이후로 처음이었다.
“너희도 시스템 창이 보이는 건가?”
그가 담뱃대를 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후······ 우리는 어떤 신의 목소리처럼 느껴지지 그 목소리가 너희가 말하는 퀘스트라고 해야 하나? 나에게 어떤 목적의식을 지속해서 강요하곤 해. 어디를 수색해라, 누구를 공격해라 뭐, 아무튼······.“
그가 곰방대를 입에서 땠다.
“······전부 좆같아. 다 꺼졌으면 좋겠어.”
그는 시스템에 대해서 짧고 굵게 불만을 표현했다. 시스템에 대한 불신을 표현함으로써 일반적인 몬스터와는 다르다는 걸 주장하는 걸까?
그는 이내 자세를 고쳐 가부좌를 틀더니 곰방대를 무릎 위에 올렸다.
“자, 그런데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내가 자네를 보자고 했던 건, 이런 푸념을 늘어놓으려는 게 아니었네.”
본론으로 들어갈 모양이 었다.
“······북한?”
“그래, 위쪽 동네에서 아주 아주 육시럴 할 것들이 남의 담장을 넘어서 대가리를 내밀어 대고 있잖아? 같은 담장 안에서 사는 사람들끼리 같이 고민 좀 해 봐야 하지 않겠나?”
“그래서, 북한 서버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데?”
성우의 물음에 왕이 턱을 긁적이더니 대답했다.
“그 동네가 좀 오래전부터 앓고 있었어. 여기처럼 플레이어들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나 봐. 결국······ 서버가 멸망했어.”
파격적인 소식이었다.
“멸망?”
“끝나버렸지. 그 땅은 이제 플레이어가 주인이 아니야.”
끝났다는 건 말 그대로 ‘엔딩’을 뜻했다. 북한 서버가 ‘배드 엔딩’에 도달한 모양이었다.
성우는 예언석을 통하여 다양한 배드 엔딩을 목격했기에 그 대재앙이 생각 보다 쉽게 일어날 수 있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 멸망한 땅의 여파가 점점 주변으로 범람하고 있는데, 얼마 전부터 이 땅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어. 그리고 그 첫 번째가 바로 언데드 무리야. 그래서 자네가 필요해. 죽은 자들에 관해서는 누구보다 전문가잖아?”
“······누군가 언데드를 이끄는 중인 건가?”
언데드 무리보다 언데드를 조종하는 존재가 중요했다. 그 질문에 왕이 성우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짧게 대답했다.
“리치.”
“······역시.”
언데드를 군단처럼 부릴 수 있는 존재라면, 성우와 같은 계열의 능력을 지니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그 추측이 맞아떨어졌다.
“플레이어인가?”
“아니. 나와 같은 존재다.”
네크로맨서 같은 직업군이 아니며 특정한 조건으로 탄생한 몬스터인 모양이었다. 대산맥의 왕처럼 살아남고 살아남아 기어코 강성해진 존재······.
“그런데 너는 왜 그걸 막으려고 하지?“
성우는 대산맥의 왕의 의도가 궁금했다. 몬스터는 으레 플레이어의 의도와 반하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왕은 오히려 플레이어에게 손을 내밀고 있었다.
“응? 왜냐니?”
“북한 서버의 리치가 너와 비슷한 존재라면 오히려 플레이어보다 더 가까운 사이가 아닌가?”
왕은 어이없다는 듯 피식 웃었다.
“그거야 나도 이 땅에 살고 있잖아? 웬 미친놈들이 떼거리로 몰려와서 우리 동네를 약탈하려는데 당연히 막아야지.”
진짜 단지 그것 때문이란 말인가? 몬스터가 생활 기반의 안정을 위해서 플레이어인 네크로맨서에게 의뢰를 요청한다?
‘그래, 이해 못 할 건 없다. 몬스터라는 색안경만 벗는다면······ 다만 조금 더 집요하게 의심해야 한다.’
순진무구하게 믿다가는 어떤 꼴을 당하게 될지 몰랐다. 그런데 왕은 그런 성우를 지그시 바라보더니, 뭔가 알겠다는 듯 싱긋 웃었다.
“솔직히 자네 입장 전부 이해돼. 마주치면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죽여야만 했던 족속이랑 마주 앉아서 미래를 논하고 있으려니까 쉽게 인정할 수 없는 게 당연하지. 하지만······.“
그는 말을 멈추고 등 뒤의 호걸 둘을 바라보았다.
“······우리는 그냥 행복하게 살고 싶어. 그렇지?”
호걸들은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그들의 눈동자 안에는 왠지 모를 억울함이 배어있었다.
“물론입니다!”
“싸우기 싫습니다.”
“음, 근데 너희들 꼬락서니로 그렇게 말하니까 정말 안 어울린다? 괴물 같이 생겨서 말이야?”
왕의 말에 호걸 둘은 어이없다는 듯 콧방귀를 내뿜었다.
“네? 지금 누가 누구한테 외모 지적입니까?”
“형님도 원래 우리랑 똑같······.“
“어허! 무엄하다!”
“끙······.“
왕은 낄낄 웃으며 소쿠리에서 감자를 하나 집어 들었다. 여전히 김이 모락모락 올라왔다.
“우리가 다른 몬스터와 크게 다른 건가? 글쎄, 이것마저 나를 만든 자가 의도한 것일지라도, 내 머리에 속삭여서 세뇌한 것일지라도······.“
그가 감자를 한입 베어 물었다.
“······난 그러고 싶어. 그저 감자나 좀 심고 더 튼튼한 가마솥이나 하나 장만해서 편안하게 살고 싶다고.”
그의 말에서 진심이 느껴졌다.
‘이 녀석 혹시 NPC 같은 건가?’
생각해보면 게임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NPC가 등장하지 않았다. 어쩌면 대산맥의 왕 같은 경우가 그런 NPC 역할을 겸하는 걸 수도 있었다.
성우는 경계를 풀고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리치에 대한 정보를 더 내주면 내가 알아보고 처리하지.”
분명, 북한에서 넘어오는 불씨를 내버려 두었다가는 훨씬 큰 문제가 될게 뻔했다. 그 전에 처리할 필요가 있었다.
그때 였다.
- (!)
갑작스레 뭔가 시작되었다. 눈앞에 떠 오른 붉은색 느낌표, 처음이 아니었다.
“이건?”
“다들 이거 보이죠? 이거 그거다!”
지수랑 한호가 반응했다.
[메인스트림 시작 안내]
- CHAPTER 4-1 : 멸망한 세계의 범람
월드의 수많은 서버 중에서도 여러분, 한국 서버만큼은 남다른 행보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최초로 ‘제3 진영’이 창설되었으며 초월적인 존재인 ‘세계수’가 자라나는 중입니다.
당초 계획된 ‘CHAPTER 4’는 천사와 악마라는 두 절대 진영의 다룰 예정이었으나, 한국 서버만큼은 두 세력의 위세가 미약한 상태이기에, 불가피하게 새로운 내용의 메인스트림이 부여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이처럼 연달아 ‘예외의 경우’가 부여되는 한국 서버의 성과가 결코 ‘특정인’의 활약이 아니라는 걸, 동시다발적으로 번져 나가는 지옥 속에서 증명하세요.
[주의사항(중요)]
1) 멸망한 ‘북한서버’의 몬스터 군단이 대거 남하하기 시작합니다. 그들의 목적은 한국 서버 어딘가에서 자라나고 있는 ‘세계수’의 정기를 빨아 먹는 것입니다.
2) 해당 이벤트는 북한 서버의 ‘몬스터 왕‘이 죽거나 한국 서버의 ‘세계수’ 가 파괴될 때까지 지속됩니다.
성우, 한호, 지수는 그 메시지를 바라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무슨 큰일이 났나 보지?”
대산맥의 왕이 감자를 우물거리며, 심각한 표정의 성우 일행은 번갈아 보았다. 그의 표정에는 흥미가 가득했다. 성우가 그를 마주 보았다.
“당신, 집을 지키고 싶다고 했지? 이 땅 전체를 말이야.”
“응? 그거야 당연한 거 아닌가?”
“그럼, 나는 아직 당신을 이웃으로 인정 못 하겠으니까 이번 기회에 집주인 노릇 좀 해봐. 시스템이 우리를 내버려 두지 않으려는 모양이야. 우리를 도와서 한국 서버를 지켜.”
그러자 대산맥의 왕이 눈웃음을 지으며 남은 감자를 한입에 삼켰다.
“음, 이거 먹지 마. 설익었어. 누가 삶은 거야?”
그는 그렇게 말하더니 소매를 걷어 올렸다. 그리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서 성우를 내려다보았다.
“그래, 나도 이 동네의 권력자에게 집주인으로 인정받고 싶네. 북한 리치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알고 있는 자가 있어. 그 사람에게 데려가 주지.”
“그래.”
성우는 몬스터와 손을 잡게 될 줄은 몰랐다만, 대산맥의 왕······ 이자는 왠지 모르게 믿음이 갔다.
‘다르다. 뭐랄까, 몬스터가 아닌 것 같아.’
일행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리치에 대한 정보를 얻고 새로운 메인스트림에 대응할 시간이었다.
“어서 가죠.”
“아오! 역시 숨 돌릴 틈이 없다니까? 갑시다!”
게임은 언제나 갑작스러운 시련을 던지는 법이었으며 일행은 이제 그 시련에 맞서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시스템이 아무리 몰아치더라도 북한 서버처럼 멸망하게 놔두지 않을 것이었다.
그때, 대산맥의 왕이 턱을 만지작거리며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런데 하나 묻고 싶은데.”
“뭐지?”
그가 감자 소쿠리를 가리켰다.
“감자 몇 분 삶아야 하는지 아는가?”
“······.”
믿음이란 건, 별안간 생겼다가도 한 순간에 사라지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