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2
46) 수원, 신화 퀘스트 - 2
세계수에 관한 소식을 들은 이후, 성우는 수원으로 곧장 돌아가기로 마음 먹었다.
“인호 씨, 이 현장을 부탁합니다. 신경 쓸 게 많겠지만 분명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예. 걱정하지 말고 다녀오세요. 샅샅이 뒤져서 깔끔하게 정리해두겠습니다.”
진화 학회 본진 현장은 인호에게 맡겼다. 그리고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하여 지수를 남겨두기로 했다.
지금도 당최 예상할 수 없는 물건들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진화 학회 특유의 위험한 실험체가 튀어나올 가능성도 있었다. 그럴 때를 대비하여 강력한 무력이 하나 정도는 대기하고 있어야만 했다.
“저는 오자마자 바로 가네요? 나 왜 왔지?”
다만, 한호는 데리고 가기로 했다. 세계수의 성장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모르기 때문에 한호와 지수 중 한 명은 같이 있을 필요가 있었다.
마을 사람들이 제아무리 믿음직스럽다고 해도 두 사람에 비교할 바는 아니었다.
“왜? 네가 좋아하는 승차감 좋은 헬리콥터잖아? 내가 불편한 본 와이번 대신 특별히 선물 해준 거니까 자주 타야지.”
“와, 진짜 언제까지······ 알고 보면 소인배라니까······.“
성우는 한호와 함께 헬리콥터에 올랐다.
그렇게 수원으로 돌아가는 길, 성우는 ‘제2차 한일전’이 종료되었다는 메시지를 받았다.
- ‘제2차 한일전(韓日戰) : 복수혈전’에서 한국 서버가 최종 승리했습니다!
* 한국 서버 기여도에 따라 차등 분배됩니다.
성우가 진화 학회를 먼저 무너뜨리기 위해 대전에 간 사이에 별안간 한강석이 나타나, 대마도의 ‘규슈 통합군’ 본진을 깡그리 쓸어 버린 결과였다.
‘이걸 이득으로 봐야 되나······.‘
결과적으로 손 안 대고 코 푼 격이었지만, 어딘가 찝찝하지 않을 수 없었다
- ‘제2차 한일전(韓日戰) : 복수혈전’ 보상이 지급됩니다.
* 기여도 : 2위
* 보상금 : 45,000,000골드
* 추가 보상 : ‘전쟁 영웅’ 칭호 지급
- ‘전쟁 영웅’ 칭호가 ‘전쟁 영웅(2단계)’ 칭호로 대체 됩니다.
* 모든 능력치 상승 (+3)
진화 학회도 ‘적대 세력’으로 판정되어 적지 않은 기여도를 얻을 수 있었지만, 2위에 그쳤다. 어떻게 보면 최고의 활약과 보상을 가로채이고 만 것이었다.
하지만 단순히 손해를 봤다고 아쉬워 할 건 아니었다. 어느 정도 긍정적인 면도 있었으니 말이다.
‘일본 원정을 할 시간에 다른 곳에 신경 쓸 수 있게 됐다. 외세의 침략은 일본이 마지막이 아닐 거다.’
성우는 강석 덕분에 얻은 시간을 세계수 진영의 발전에 쏟을 생각이었다.
“선배, 채팅창이 아주 난리입니다. 좀 보실래요?”
한편, 공식 채널의 채팅창은 여전히 소란스러웠다. 연달아 벌어진 ‘한일전’의 결말이 너무나 충격적이었기 때문이다.
[실시간 채팅]
- Dinossauro22(POR) : 우리가 잊고 있는 게 있다. 단 하루 만에 일본 플레이어 수천 명 전사했다. 그런데 그 건 단 두 사람에 의해서 벌어진 일이었다!
- gold5551 (GHA) : 나도 쭉 봤는데 결정적으로 활약한 건 단 2명이었어. 아직도 믿기지 않아.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 OMGplz (USA-1) : 7,000 vs 2 오 너무 멋있어!
- Ngir&ng mQ (VIE) : 한국 서버는 드래곤볼 세계관이었던 거야? 행성을 파괴할 정도의 강자가 왜 자꾸 나오는 거야?
- 여기가네크로맨서의나라입니 (KOR) : ㅋㅋㅋ왜 일본 서버 채팅 안 올라오냐?ㅋㅋㅋㅋ 다 어디감?ㅋㅋㅋ
- BIGchicken (AUS) : 일본은 앞으로 한국 땅을 노리지 않을 것 같네. 너무 크게 당했어.
- ezezez (USA-1) : 잊고 있었다. 이 사람들 게임의 귀재 코리안이다! 세상이 무너지고 있다지만 결국 게임이잖아! 맙소사. 그들이 세상을 정복할 거야. 난 믿어.
- amigo41 (BRA) : 도대체 한국은 게임과 무슨 상관관계가 있는 거지? 그저 게임 시스템이 있다고 뛰어나질 수 있는 거야? 무도의 나라가 저렇게 쉽게 지다니?
- GUNGUNBANG (USA-2):나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지만 복종할 수는 있을 것 같아. 그가 히틀러 같은 사람이 아니길 바랄 뿐이야.
이처럼, 전투가 끝난 지 몇 시간이 지났지만, 공식 채널의 채팅창은 여전히 감탄사로 도배되고 있었다.
한국 서버가 보여준 퍼포먼스가 워낙 압도적이었기에, 쉽게 여운이 가시지 않는 게 당연했다.
- 잠시 후 공식 채널의 ‘이벤트 방송’이 종료될 예정입니다. (00:04:59)
한일전 이벤트가 종료되었으니 방송이 유지될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전 세계의 첫 번째 교류가 끊어졌다.
그러나 시청자들이 각 서버의 커뮤니티로 흩어져 나가 그 열기를 사방으로 퍼뜨리면서, 한일전의 이슈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었다.
한편, ‘월드 퀘스트’를 공략을 꿈꾸던 각 서버의 거대 세력은 한반도 원정 계획을 재고할 수밖에 없었다.
쉽게 말해, 일찌감치 꼬리를 내렸다. 무려 6천에 달하는 일본군이 전멸하는 걸 본 이상, 평범한 전력으로는 시도조차 하지 말아야 한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그런데 달리 말하면······ 언젠가 대규모 원정대가 조직될 수 있음을 의미하기도 했다.
’더 큰 전쟁이 온다. 반드시.’
성우는 그때를 대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수원의 ‘마을’을 그 거대한 전쟁의 핵심 요충지 역할을 할 수 있게 만들어야만 했다.
“곧 마을에 도착합니다!”
조종사의 목소리가 헤드셋을 통해 들렸다. 그가 이어서 브리핑했다.
“세계수가 너무 자란 탓에 광장에 있던 헬기 이착륙장을 옮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근처에 마련한 간이 이착륙장에 착륙하겠습니다!”
성우는 창밖을 내다보았다. 어느새 화성 행궁의 모습이 가까워졌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 우뚝 서 있는 거대한 나무가 보였다. 미리 전해 들은대로, 족히 아파트 한 채, 약 20층짜리 빌딩과 비슷한 크기였다.
‘그러나 아파트 따위와는 체감이 다르다. 훨씬 커 보인다.’
아무래도 아파트와 비교하는 건 적합하지 않았다. 높이는 아파트와 비슷할지라도, 하늘 가득 뻗어 나간 가지의 폭은 압도적으로 장황했다.
그 거대한 녹음이, 마치 우산처럼 일대의 모든 건물을 가리고 있었다.
“와 미친! 아까까지만 해도 저 정도는 아니었는데, 위에서 보면 산이라고 해도 믿겠어요!”
한호의 감탄사 그대로였다. 자세히 살피지 않는다면 나무와 수풀이 우거 진 산의 한 자락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 * *
성우는 간이 착륙장에서 내린 이후, 마중 나온 경수와 함께 세계수로 다가갔다.
어느새 광장은 물론이거니와 일대 상가가 세계수의 그림자 아래에 들어가 있었다.
하늘을 가득 메운 가지 사이로 햇빛이 간간이 스며들어오며 신비로운 분위기를 형성했다.
’하루아침에 이렇게 달라지다니?’
뭐랄까, 마치 거대한 돔구장 안에 들어온 기분이었다. 가지 사이로 스며드는 채광은 경기장 천장에 매달린 조명을 연상케 했다.
가지의 중심부에서 한 무리의 산새가 날아올랐는데, 한참을 날아 겨우 가지 끝자락에 도착했다. 녀석들에게는 세계수가 하나의 세계인 셈이었다.
“앞으로 얼마나 커질지 알 수 없지만, 계산 하에 도시 계획을 세워야 할 것 같습니다.”
“무슨 문제가 생겼습니까?”
“이미 저 괴물 나무의 뿌리가 광장을 가득 채웠고 언제 주변 건물들에 영향을 줄지 모릅니다. 뿌리가 워낙 억세서 콘크리트고 철근이고 죄다 밀어버릴 겁니다.”
경수는 세계수의 급속 성장이 걱정되는 모양이었다. 그의 말처럼, 성장세는 무서울 정도였다. 언젠가 근처에 있는 모든 시설물을 밀어낼 수도 있었다.
그리고 현재, 세계수 진영의 주요 시설물은 모두 광장 근처에 밀집된 상태였다.
“이번 성장으로 결계의 범위도 늘어 나지 않았습니까?”
성우의 물음에 경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측량해봤는데, 세계수 기준으로 딱 3킬로미터 범위까지 확장됐습니다. 눈으로 봤을 때, 확실하지는 않지만, 더 두꺼워진 것 같기도 하고요.”
“이제 광장 근처뿐만 아니라, 결계 안쪽 지역을 최대한 개발하는 방향을 고민해야 할 것 같네요.”
“맞습니다.”
이번에는 부산이 공격받았지만, 언젠가 세계수 진영의 본진인 수원에 직접적인 타격이 시작될 수도 있었다. 그전에 요새화 작업에 박차를 가해야만 했다.
“아, 그리고 한강석이 대마도를 휩쓸어버린 뒤, 일본군의 아이템을 그대로 놓고 갔습니다. 화랑 길드 측에 연락해서 그 아이템을 수거해달라고 요청한 상태입니다.”
강석이 방송으로 말하길, 성우에게 주는 선물로 남기고 간다고 했다. 성우는 마다할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퀘스트가 종료되면서 ‘빠른 이동’을 사용할수 없게 되었기에 직접 갈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성우에게 신세를 진 ‘화랑 길드’를 이용하기로 했다.
“화랑 길드와 그 전리품을 나눠 가지기로 했으니 일부 인력이 부산으로 가서 수송해와야 할 것 같습니다.”
부산에서 얻은 전리품, 진화 학회에서 얻은 전리품, 그리고 대마도에서 얻은 전리품까지 더해진다면 수원 마을은 엄청난 성장 동력을 지니게 될 것 이었다.
그런데 경수의 표정은 어딘가 어두웠다.
“음, 지금 인력이 너무 부족한데······ 더군다나 대전으로 절반이 가 있으니······.“
역시나 문제는 인력난이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그러나 성우 역시 그 문제를 인지하고 있었기에 앞서서 조치해둔 상태였다.
“믿을만한 지원군에게 미리 연락을 취해놓았습니다. 1시간 뒤쯤, 모든 헬리콥터를 시화호 근처로 보낼 준비를 해주세요.”
“네? 시화호라면?”
“강화도의 플레이어들이 이곳으로 합류할 겁니다. 시화호까지는 배를 타고 오고 그 이후에는 우리가 마중 나가기로 했습니다.”
강화도에는 무연이 이끄는 256명의 플레이어 그룹이 있었다.
그들은 성우에게 은혜를 입은 이후, 시종일관 네크로맨서를 지지해왔다. 그들이 드디어 수원 마을에 합류하기로 한 것이었다.
“후, 정말 잘 됐군요. 그 정도 인원이 도착한다면 분명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성우가 전해준 소식을 듣자 경수의 얼굴에 혈색이 돌기 시작했다. 그동안 부족한 인력으로 고생했었는데, 이제 한 시름 놓게 된 것이었다.
그가 이어서 말했다.
“그리고 강화도 사람들이라면, 우리 마을 사람들도 거리낌 없이 반길 수 있을 겁니다. 커뮤니티를 통해서 종종 서로의 안부를 묻기도 했으니까요.”
두 지역의 플레이어들은 비록 직접 마주한 적은 없지만, 이미 전우애 같은 유대감이 형성된 상태였다.
사실상 제3 진영 시절부터, 네크로맨서라는 하나의 구심점 아래에 속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추가 인원을 받아들일 때 우려했던 문제를 모두 불식시킬 수 있을 만큼, 강화도의 플레이어들은 믿을 만한 그룹이 었다.
“좋습니다. 강화도의 플레이어들이 생활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주세요.“
“이미 언젠가 대비해서 주변에서 숙소를 설치해둔 상태입니다. 현재 족히 천 명은 더 받을 수 있습니다.”
경수는 역시나 한발 앞서서 고민하며 수원 마을을 발전시켜 나가고 있었다.
“역시 경수 씨만 믿고 있겠습니다.”
“물론입니다. 아, 그리고 세계수가 열매를 맺었습니다. 지금 바로 확인하실 건가요?”
“네. 위치를 알려주세요.”
성우는 경수를 따라 세계수로 접근했다.
그리고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고개를 치켜들 수밖에 없었다. 예전에는 그저 놀라울 정도의 크기였다면 이제는 압도당할 정도의 광경이었다.
“이제 저 괴물 나무에 다가가는 것도 여간 힘든 일이 아닙니다.”
평평하게 마감되어 있던 광장은 어느새 바닥에서 솟아오른 뿌리로 울퉁불퉁해진 상태였기에 직선으로 접근할 수조차 없었다.
어떤 뿌리는 지상으로 튀어나와, 거의 울타리처럼 길목을 가로막고 있었다.
두 사람은 한참을 돌아가 세계수의 줄기에 도달했다.
“후, 도착했습니다. 저기 위를 보시면 세 개의 열매가 있습니다.”
경수의 말과 동시에 성우의 눈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 ‘세계수의 주인’은 아래 종족 특성 중 1가지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주인의 성향에 따라 각 종족의 ‘세부적인 특징’에 변화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1) 요정 (특화 : 감각, 손재주, 지혜 등)
2) 나무 정령 (특화 : 생명력, 재생력, 친화력 등)
3) 거인 (특화 : 체력, 방어력, 저항 력 등)
4) 발견되지 않음 (특화 : 알 수 없음)
* 열매를 확인하여 선택할 수 있습니다.
’열매?’
세계수에 접근하니 새로운 안내 메시지가 달렸는데, 아무래도 새로 열린 열매가 종족 선택과 연관성이 있는 듯했다.
‘그렇다면 4번째 선택지의 발견되지 않았다는 뜻은 열매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거다.’
의외로 손쉬운 퍼즐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수 씨, 열매는 저 3개가 전부입니까?”
“아마 그럴 겁니다. 열매가 열린 걸 확인하고 가지를 다 확인했는데, 다른 열매는 없었습니다.”
“혹시 모르니 다시 한번 확인 부탁드리겠습니다. 많이는 말고, 몇 사람만 동원해주세요.”
“알겠습니다.”
성우는 그사이에 ‘좀비 괴조’를 타고 열매 근처로 날아갔다. 3개의 열매는 모두 줄기 근처, 굵은 가지에 옹기종기 달려 있었기에 한눈에 확인할 수 있었다.
성우는 그중에서 백금색의 열매로 손을 뻗었다. 아직 딸 생각은 없었기에 그 표면에 손가락을 가볍게 얹었다.
[아이템 정보]
- 이름 : 세계수의 두 번째 열매(요정의 열매)
- 등급 : 신화
- 분류 : 소비
- 효과 : 알 수 없음
- 설명 : 세계수의 신비로운 힘이 담긴 열매다. 섭취 시 특별한 변화가 시작된다. (단, 다른 열매를 섭취할 수 없게 된다.)
구체적인 정보는 기재되어 있지 않았다만, 이름만 보더라도 열매가 곧 종족 선택의 열쇠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머지 녹색과 갈색의 열매 역시 각각 나무 정령과 거인의 열매였다.
‘문제는 아직도 발견되지 않은 4번째 열매다.’
4번째 열매를 찾기 위해서 10명의 플레이어가 동원되었다. 그들은 안전 장비를 착용하고 무려 60미터 높이의 세계수 위로 기어 올라갔다.
“모두 조심해! 떨어지면 즉사야!”
“내가 죽으면 세계수 아래에 수목장을 해줘.”
나뭇잎이 무성했기에 육안으로 열매를 찾는 건 불가능했다. 이렇게 직접 가지 사이로 들어가는 게 최적의 탐색 방법이었다.
그러나 그 어디에도 4번째 열매는 없었다.
“없습니다. 정말 가지 처음부터 끝까지 기어 다니면서 다 확인했는데, 어디에서 열매 같은 건 없습니다. 이봐! 거기는 뭐 좀 나왔나?”
“없습니다! 혹시 새들이 따 먹은 건 아닐까요?”
“응? 세계수의 열매를? 그렇게 허술하다고?”
“음, 역시 그건 아니겠죠?”
결국, 열매 탐색에 나섰던 10명의 플레이어는 성과 없이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 * *
성우는 세계수가 올려다보이는 어느 뿌리에 홀로 걸터앉아서 생각에 잠겼다.
‘어떻게든 찾아야 한다.’
4번째 열매를 찾지 않고 주어진 조건 안에서 선택할 생각은 없었다. 언제나 예외의 선택을 해왔기에 남들보다 빠른 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
제3의 진영, 세계수의 진영 역시 그러한 선택이 거듭되면서 탄생한 것이었다. 이번에도 주어진 선택지 밖으로 나갈 필요가 있었다.
‘발견되지 않았다는 메시지는 분명 지금 열려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가지 어디에도 없다······.‘
그렇게 얼마나 고민했을까? 성우는 문득 광장의 표면 위로 잔뜩 솟아나 있는 뿌리들을 바라보았다.
“잠깐만······.“
성우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뿌리를 훑어보았다. 그리고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열매가 가지에만 열리는 건 아니잖아?”
’세계수’라는 존재는 지구의 상식으로 이해할만한 존재가 아니었다.
그렇기에 나무라고 해서 그 열매가 가지에만 열릴 거라고 단정 짓는 건, 너무나 지구적인 생각일 수도 있었다. 판타지가 배경인 이상 함부로 넘겨짚을 수 없었다.
성우는 즉시 두 마리의 스펙터를 소환했다.
“뿌리 아래를 샅샅이 뒤져.”
스펙터 두 마리가 땅 아래로 스며 들어갔다. 성우는 녀석들과 시야를 공유했다.
지하는 세계수의 뿌리로 헤집어져 있는 상태 였다. 그 강인하고 두꺼운 생명력이 단단한 지층과 지하 시설물을 밀어내고 거대한 영역을 독차지하고 있었다.
어느 정도 깊이 들어가자 뿌리와 뿌리 사이에 사람이 드나 들만한 공간이 연이어졌다. 마치 의도적으로 조성된 통로처럼 느껴졌는데, 조금만 손본다면 지하 공간을 마련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그 공간의 중심부, 두꺼운 뿌리들이 하나로 뭉치는 지점에서 널찍한 방이 하나 나왔다.
‘찾았다.’
바로 그곳에 동그란 물체가 매달려 있었다. 역시나 4번째 열매는 땅속, 뿌리에서 자라나고 있었다.
성우는 스펙터를 통하여 그 열매의 정보를 확인했다.
[아이템 정보]
- 이름 : 세계수의 두 번째 열매(미지의 열매)
- 등급 : 신화
- 분류 : 소비
- 효과 : 알 수 없음
- 설명 : 아직 완전히 여물지 않은 상태다. 어딘가 텅 비어 있어 불안정하다. 이대로 자란다면 별 볼 일 없는 존재가 될 것이다.
그러나 텅 비어 있는 공간에 ‘특별한 힘’을 ‘각인’하여 열매의 미래를 결정할 수 있다. 힘의 크기에 따라서 열매의 효과 역시 달라질 것이다.
숨겨져 있던 열매인 만큼, 위의 3개와는 전혀 다른 아이템이 었다. 그 아래 설명을 볼 때, 당장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4번째 열매를 찾는 데 성공했지만, 그것만으로 끝이 아니었다. 추가적인 퍼즐을 풀어야만 하는 것이었다.
‘각인? 이 열매에는 주어진 종족이 없고 내가 직접 종족을 설정할 수 있다는 건가?’
설명으로만 봤을 땐 일종의 ‘백지 수표’인셈이었다.
“그렇다면 이 백지 위에 어떤 값을 입력하는지가 중요한데, 이러면 설마 또 퀘스트가······.“
성우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 특정 조건 달성(‘정체불명의 알’ 보유)으로 ‘신화 퀘스트’ 진행 조건을 만족했습니다.
‘신화 퀘스트?’
[신화 퀘스트]
- 이름 : 종족의 기원(용인족)
- 유형 : 알수 없음
- 목표 : ‘진화의 단서’를 찾아라
- 보상 : 새로운 종족으로 진화
당신은 두개의 ‘절대적인 씨앗’을 손에 넣었다. 하나는 자라나고 있는 강력한 종족 그 자체이며, 나머지 하나는 초월적인 힘을 품을 수 있는 생명의 그릇이다.
두 가지의 씨앗이 운명적인 조건 하에 융합된다면 새로운 신화를 탄생시킬 것이다.
* 정체불명의 알이 ‘부화’하고 세계수가 ‘완성’ 단계에 도달할 때 ’진화의 단서’가 공개됩니다. (두 가지 씨앗 중 어떤 것이라도 손상될 시 실패합니다.)
“······용인족?”
용인족(龍人族), 생각보다 엄청난 단어가 튀어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