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네크로맨서-126화 (126/244)

# 126

44) 대전, 바퀴벌레 소굴 - 3

듀라한이 담겨 있는 거대한 수조 3개, 그리고 그 수조를 감싸고 있는 백색의 사슬, 그것들은 모두 신성한 마법으로 이루어진 장치였다.

- 신성한 힘이 당신의 접근을 거부합니다.

* 해당 물체에 직접 접촉할 경우 데미지가 부여됩니다.

애초에 언데드를 구속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장치이기에 네크로맨서가 깰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안 되네요. 잘리지 않아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지수가 시도해봤지만, 그녀 역시 불가능했다.

그리고 퀘스트 내용에 따르면, 듀라한의 충성을 얻기 위해서는 성우가 직접 봉인을 해제해야만 했다. 다른 방법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이 사슬, 건너편 방으로 이어지네요.”

그리고 그 실마리를 발견했다. 지수의 말대로 수조를 휘감고 있는 백색 사슬이 벽을 따라서 문밖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밖에 무슨 장치가 있을 것 같아요.”

“나가보죠.”

성우와 지수는 이 건물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평범하게 문을 열었다.

철컥―

“나왔다!”

“사격!”

픽! 픽! 픽!

문을 열고 나가자마자 빛을 머금은 화살이 날아들었다. 언데드 계열에 치명적인 힘이 담긴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지수가 있는 이상, 그런 평범한 화살로 피해를 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녀가 앞으로 나서며 칼을 뽑아 들자, 화살들이 사방으로 튕겨 나갔다. 이제 그 정도는 눈감고 막아낼 수 있을 정도였다.

“말도 안 돼!”

놈들은 경악하는 와중에 방패를 앞으로 내세웠다. 방패만 총 10개, 모두 신성한 힘으로 보호받고 있었다.

듀라한을 억류하고 있는 방인 만큼, 이 시설의 관계자 대부분이 ‘팔라딘’과 ‘프리스트’ 등, 신성한 힘을 사용하는 계통으로 구성된 듯했다. 그리고 그 숫자가 무려 32명이었다.

“침입자는 역시 네크로맨서다! 정화 주문을 준비해!”

“생명의 보호막 전개!”

“빛의 화살 장전 완료!”

그들은 오로지 네크로맨서에 대항할 생각으로 온갖 신성 마법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듀라한과 동류인 만큼, 그들이 대비해온 작전이 먹혀들 거라고 믿는 듯했다.

하지만 그렇다는 건······ 성우 옆에 서 있는 지수를 간과했다는 뜻이기도 했다.

저벅― 저벅―

칼을 뽑아 든 지수가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 순간, 그녀의 어깨에 있던 파란 불꽃이 칼날에 흡수되었다.

화아아아!

칼날의 푸른 빛으로 물들며 어떤 강력한 파동이 번져 나오기 시작했다.

직후, 그녀가 칼을 휘두르자 수십 개의 푸른 검기가 전방으로 뿜어져 나갔다. 놈들은 그 강렬한 모습을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콰가가가가!

단 한 번의 휘두름 만으로도 방 전체가 짓이겨졌다. 날카롭고 재빠른 검기가 천장, 바닥, 벽면을 갈기갈기 찢어발기며 흩어졌다. 모든 곳에 상흔이 일어났다.

그리고 그걸 정통으로 맞은 이들은 두말할 것도 없이 끔찍한 피해를 보았다.

“······으아아아! 내, 내 팔이!”

“사, 살려줘!”

“젠장! 일단 대, 대열을 유지해!”

3분의 1가량이 즉사했다. 마치, 공간 자체를 도륙해버린 것만 같았다.

이는 강력한 에너지를 칼에 머금은 뒤 흩뿌리는 ‘칼날 폭풍’이라는 스킬이었는데, 마치 산탄총처럼 좁은 공간에서 사용할수록 그 파괴력이 배가 되기 마련이었다.

“온다! 마, 막아!”

“대열! 대열을 정비해!”

지수는 허물어진 방패 벽 사이로 뛰어들었다.

쩡! 쩌―엉!

그녀가 칼을 휘두를 때마다 방패가 짓이겨지고 금속 갑옷이 두부처럼 잘려나갔다.

그녀가 적진 한가운데로 파고 들어가 정신없이 흔들어 놓는 가운데, 성우가 리피팅 크로스보우를 들어 올렸다. 놈들은 지수에게 정신이 팔린 탓에 옆구리를 무방비로 노출했다.

퉁! 퉁! 퉁! 퉁!

성우의 화살이 그곳을 파고 들어갔다. 이처럼 강력한 지원 사격까지 곁들여지자 놈들이 버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필드 보스 몬스터인 ‘듀라한’을 제압하기 위해서 구성된 32명의 특수 부대는 단 몇 분 만에 전멸당했다.

“후, 다시 가죠.”

그렇게 방해꾼을 모두 처리한 뒤, 본래 목적대로 수조에서 뻗어 나온 백색 사슬을 따라 움직였다.

“저거에요.”

그리고 역시나, 백색 사슬이 끄트머리가 어떤 장치에 연결되어 있었다.

우웅― 우웅―

직사각형의 전자 장비였다. 그곳에 3개의 사슬이 콘센트처럼 꽂혀 있었다. 그리고 전자 장비의 작은 홈 안에서 백색 크리스털이 회전하고 있었다.

장치로 다가가니 그 정보가 떠올랐다.

[아이템 정보]

- 이름 : 성스러운 동력 장치 (H2)

- 등급 : 불명

- 분류 : 플레이어 제조

- 효과 : 성직자 계열의 직업군이 마나를 주입하여 충전할 수 있다. (마법사 계열 불가능) 완충 시 90분 동안 ‘정화 에너지’를 생성한다.

- 설명 : 1시간 주기로 완충 필요합니다. 교대 근무로 24시간 빈틈없이 관리해주세요. 절대로! 반드시! 한눈팔면 안 됩니다! (제작자 기술)

“이걸 부수면 수조의 봉인을 해제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성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림리퍼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크리스털을 내리찍었다.

쨍그랑!

크리스털이 단숨에 산산 조각났다.

우우―

그러자 마치 전류가 끊기듯, 사슬을 따라 흘러 들어가던 백색 빛이 옅어지기 시작했다. 아이템 설명에서 말한 ‘정화 에너지’ 공급이 끊긴 것이었다.

“다시 가보죠.”

성우와 지수는 듀라한이 있는 방으로 돌아갔다.

“사슬이 풀렸어요.”

그녀의 말처럼 수조를 휘감고 있던 백색 사슬이 힘없이 늘어져 있었다.

성우는 수조를 향해 과감하게 다가갔다. 이전보다 가까이 다가갔음에도 ‘신성한 힘이 접근을 거부’한다는 경고 메시지가 뜨지 않았다.

‘된다.’

성우는 그림리퍼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첫 번째 수조, 듀라한의 몸통이 들어 있는 수조를 힘껏 내리쳤다.

쩡―

수조에 구멍이 나며 불투명한 액체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이내 균열이 전면으로 번져나가더니······.

쩌저정!

수조가 폭발하듯 깨져버렸다. 동시에 액체 속에 잠겨 있던 거구의 기사가 천천히 몸을 움직였다.

절그럭―

그가 수조 밖으로 첫 번째 발자국을 내딛자 갑옷 안에 고여 있던 액체가 울컥울컥 흘러내렸다.

기사는 성우를 향해 몸을 틀었다. 머리가 없음에도 성우보다 머리 두 개는 더 큰 거구였다.

절그럭― 절그럭―

전신을 덮는 회색 갑주를 입었기에 훨씬 두꺼워 보기이기까지 했다.

또한, 가만히 서 있음에도 어깨 위로 보랏빛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만큼 남다른 힘을 가진 존재라는 걸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그가 성우 앞에 우뚝 멈춰 섰다.

머리가 없기에 그가 성우를 바라보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성우 씨?”

지수가 그를 경계하며 칼자루 위에 손을 얹었다. 그녀의 감각이 경고하기에, 저 목 없는 기사에게서 어떤 살기가 풀풀 풍기고 있었다. 그건 공격 직전에나 느낄 수 있는, 어떤 불길한 전조였다.

그리고 정말로, 오른손을 들어 올려 둘러매고 있던 대검을 끌어내리는 게 아닌가?

기기기기!

거대한 강철 대검이 대리석 바닥에 끌리며 날카로운 마찰음을 냈다.

다음 순간, 그 묵직한 대검을 번쩍 들어 올렸다. 그리고 양손으로 움켜쥐고, 내리쳤다.

쩌―엉! 쩌―엉!

두 번째, 세 번째 수조가 연달아 무너졌다.

“······.”

머리와 검은 말이 수조 밖으로 튀어나왔다. 듀라한은 바닥에 떨어진 제 머리를, 왼손으로 집어 들더니 오른손의 대검을 바닥에 내리꽂았다.

쩍!

그리고 성우 앞에 무릎을 꿇었다.

- 필드 보스 몬스터 ‘듀라한’이 당신에게 충성을 맹세합니다.

* 해당 몬스터가 당신의 권속으로 귀속되었습니다.

- 전용 퀘스트 ‘죽은 자의 기사도’를 성공적으로 공략하셨습니다.

* 보상이 주어집니다. (특별한 권속)

지수가 느낀 건 분명한 공격 본능이었다. 단지 그 대상이 성우가 아니었을 뿐이었다.

그때, 천장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이쪽인 것 같습니다!”

그 목소리는 성우와 지수가 내려온 구멍 쪽에서 울렸다.

“이 아래다!”

구멍으로부터 손전등 불빛 몇 개가 흘러나오더니 이리저리 흔들렸다. 다만, 방이 워낙 넓은 탓에 아직 성우와 지수를 발견하지 못한 듯했다.

“지하 2층에는 구멍이 없습니다!”

“좋아, 놈들은 지하 2층에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스트라이커 팀 준비! 내려가서 침입자를 추격한다.”

진화 학회의 경비 병력이 성우와 지수의 뒤를 쫓고 있는 모양이었다. 이내 석궁을 든 경비병들이 지하 2층을 향해 뛰어내렸다.

성우는 듀라한을 바라보았다.

“자, 어디······ 네 충성심을 보여줘 봐.”

듀라한이 거대한 몸을 일으켰다. 왼손에는 여전히 제 머리를 든 채 거대한 흑색의 말에 올라탔다. 그리고 바닥에 꽂혀 있던 대검을 뽑아 들었다.

그렇지 않아도 큰 거구가 일반 말보다 2배는 더 큰 괴물 위에 올라타니, 그 광경이 가히 압도적이었다.

- 팀 플레이로 인해 ‘시너지 효과’가 부여됩니다.

[시너지 목록]

1) 충격받지 않는 자(完)

- 구분 : 개인 시너지

- 조건 : 머리가 없이 움직이는 존재

- 효과 : 치명타 회피 확률 증가(+100%), 즉사 완전 면역, 충격 면역 상승(+50%), 기절 완전 면역, 정신 계열 저주 완전 면역

시너지 내용은 외팔의 무사가 떠오를 만큼 다소 극단적이었다. 머리 없기에 온갖 치명적인 상태 이상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걸까?

히이이이!

다음 순간, 괴물 말이 땅을 박찼다. 그 거대한 기사가 어둠 속으로 튕겨 들어갔다. 벼락같다는 원색적인 표현이 어울릴 만큼 맹렬한 돌격이었다.

흑색의 괴물이 발을 구를 때마다 발굽에서 보라색 불꽃이 터져 나왔다. 그 불빛이 적을 향해, 눈 깜짝할 사이에 당도했다.

“······어?”

“뭔가 온다!”

구멍에서 내려온 경비 병력이 무언가 다가오고 있다는 걸 눈치챘다. 그것도 매우 빠르게······ 그들은 자세를 낮추며 보라색 불꽃을 향해 랜턴을 비췄다.

“저, 저건!”

“듀······.”

하지만 이미 늦었다. 듀라한이 놈들을 스쳐 지나갔다. 그러자 마치 거대한 트럭이 인도를 휩쓸고 지나간 것처럼, 파괴적이고 잔혹한 장면이 연출되었다.

퍼버버버!

6명이 기마 돌격에 치이고 발굽에 으스러졌다. 4명이 대검에 머리를 잃었다. 단 한 번의 돌격에 경비 병력의 절반이 무너져내리는 순간이었다.

“젠장! 도대체 무슨······.”

“듀라한이 풀려났다! 다시 온다! 대비해!”

어둠 속으로 사라졌던 죽음의 기수가 고삐를 돌렸다. 보라색 불꽃이 어둠 속을 선회하여 다시금 경비 병력을 덮쳐오기 시작했다.

이미 한 번 당했거늘, 이번에도 대비할 틈이 없었다. 너무나 빨랐다.

하물며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 듀라한이 전용 스킬 ‘죽음의 질주’를 사용합니다.

녀석의 양측에 보라색 형상의 기마대가 나타났다. 총 8기, 반투명한 형태, 유령 기사단이었다.

“어? 어어!”

“모두 피해!”

유령 기사단은 듀라한을 중심으로 대열을 유지한 채, 랜스(Lance)를 내리었다. 마치 전차가 밀고 들어오는 것만큼 육중한 진동이 건물 전체를 뒤흔들었다.

다음 장면은 불 보듯 뻔했다. 말 그대로 휩쓸렸다. 단 한 명도 빠짐없이 그 돌격에 휘말렸다. 그렇게 조각나고, 튕겨 나가고, 짓밟혔다.

전멸이었다.

“······.”

듀라한은 적들의 시체를 뒤로하고 천천히 속도를 줄였다. 어느새 그의 좌우의 유령 기사단은 사라지고 없었다. 그리고 그가 지나온 길에는 비명조차 남지 않았다.

푸르르―

괴물 말은 여전히 흥분한 채 짙은 콧바람을 내뿜었다.

“······괜찮네.”

더 깊은 곳으로 내려가면 어떤 선물이 기다리고 있을지, 이제는 새삼 기대가 될 정도였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