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네크로맨서-125화 (125/244)

# 125

44) 대전, 바퀴벌레 소굴 - 2

그동안 진화 학회의 본진은 베일에 싸여 있었다. 성우는 물론이거니와 광복 길드의 ‘광역감시팀’이 백방으로 나섰지만 이렇다 할 정보를 얻지 못했다.

그런데 웬걸, 시스템이 지도에 붉은 점을 찍어줌으로써 놈들의 위치를 제대로 까발려버렸다.

‘중요한 건 진화 학회 놈들은 내가 알고 있다는 걸 모른다는 거다.’

즉, 완벽한 기습이 가능한 상황이었다. 다만, 정보력이 워낙 좋은 놈들이기에 신중히 처리할 필요가 있었다. 조금만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다면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갈 가능성이 농후했다.

그렇기에 성우는 모든 인력을 풀어서 구태여 진화 학회를 찾는 시늉을 하게 했다. 일종의 기만전술이었다.

‘제대로 허를 찌르기 위해서는 빠른 이동을 쓰면 되지만, 그건 미래를 위해서 아끼는 게 맞다.’

진화 학회를 처리한 이후 ‘제2차 한일전’을 위하여 대마도를 공격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단 1회 사용이 가능한 ‘위치 이동’은 그때를 위해서 아껴두기로 했다. 바다를 건널 방법이 마땅치 않을 테니 말이다.

그리고 대전은 수원으로 돌아가는 길목으로, 마음만 먹는다면 당장이라도 들이닥칠 수 있는 거리였다.

“자, 모두 집으로 가자고. 인원 파악해야 하니까 모두 헬리콥터에 탑승해!”

“가서 우리가 얼마나 잘 싸웠는지 얘기해줘야지. 입이 다 근질거리네.”

세계수 진영은 복귀 준비를 하는 중이었다.

부산으로 올 때는 ‘공간 이동석’이란 아이템을 썼지만, 아쉽게도 여분은 없었다. 그렇기에 ‘화랑 길드’로부터 헬리콥터 4대를 빌렸다.

세계수 진영의 플레이어들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갈 채비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지수 씨.”

성우는 그 소란 속에서 지수를 따로 불러냈다. 그녀는 성우의 의도를 눈치채고 조심스레 따라나섰다.

‘어딘가 감시하는 눈이 있을지도 모른다.’

단순히 지켜보는 걸 떠나서 첩보에 특화된 스킬로 정보를 수집할 수도 있었다. 그렇기에 둘은 헬리콥터 사이에 몸을 숨긴 채, 은밀하게 대화를 나누었다.

“우리는 수원으로 가는 길 중간에 빠져서 진화 학회의 본진으로 잠입할 겁니다.”

길게 말하지 않았음에도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범계역 때가 생각나네요. 그놈들이랑 더는 볼 일 없었으면 좋겠어요.”

“오늘 밤 안에 놈들을 끝장내죠.”

세밀한 작전 계획은 없었다. 둘이 대전으로 가서 놈들을 뿌리 뽑아버린다. 그 정도면 충분했다.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는 오후, 성우는 세계수 진영의 플레이어들과 함께 수원으로 복귀하기 시작했다.

두두두두!

본 와이번이 호위하는 가운데, 4대의 헬리콥터가 이륙했다.

그리고 보은군에서 청주시로 넘어갈 무렵, 성우와 지수는 ‘좀비 괴조’를 이용하여 은근슬쩍 그룹을 이탈, 대전으로 방향을 틀었다.

진화 학회 잠입 작전이 시작되었다.

***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지도에 표시된 붉은 점, 진화 학회의 본진은 대전 어느 산중을 가리키고 있었다.

성우와 지수는 숲속을 헤치고 나아가는 중이었다. 정문으로 걸어 들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니 길이 없는 산속을 통과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쪽이에요.”

지도가 있다고 하더라도 산속에서 별다른 장비 없이 방향을 잡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는데, 태백산맥에서 며칠을 보낸 적 있는 지수의 경험이 큰 도움이 됐다.

“이 정도 산속이라면 관리가 안 돼서 아마 있던 길도 막혔을 거예요.”

“그동안 놈들의 본진이 드러나지 않은 이유를 알겠군요.”

어느새 지도상에 표시된 붉은 점에 가까워졌고 성우와 지수는 조금 더 은밀하게 움직였다.

그런데 예상 지점에 도착했을 때, 성우는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그 자리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

그저 끝없는 숲이 이어질 뿐이었다. 성우는 다시 한번 지도를 확인했지만, 이곳이 확실했다.

“분명 여기······.”

“쉿. 숙여요.”

그 순간, 지수가 성우를 수풀로 잡아끌었다.

“······.”

그녀의 눈동자가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하지만 성우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뭐가 보여요?”

“아니, 저도 안 보여요. 하지만······ 분명 있어요.”

눈으로 보이는 게 아니라 다른 감각으로 파악한 것이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고 성우는 그녀의 뒤를 쫓았다.

그리고······.

- ‘허상의 막’ 안으로 진입하셨습니다.

* 외부에서는 보이지 않던 실체가 드러납니다.

어느 지점에서 한 발자국을 내딛는 순간, 눈앞의 풍경이 순식간에 변했다.

“······이건.”

빽빽한 나무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 건물과 철책이 나타났다. 지수가 뒤와 앞을 번갈아 보며 입을 열었다.

“은폐 장치 같은 게 있었네요.”

어떤 아이템을 활용하여 이 거대한 시설 전체를 시야에서 감추고 있던 것이었다.

지도가 없었더라면 그 누구도 이런 외딴 산속까지 들어올 생각을 하지 않을 테니, 그동안은 들킬 일이 없었다고 봐도 무방했다.

“······되게 크네요.”

“부대였던 것 같아요.”

진화 학회의 본진은 군부대를 개조하여 만든 시설이었다. 그렇기에 상당히 방대한 면적을 보유하고 있었다.

철조망 안으로 다수의 트럭이 움직이고 있는 걸 보아하니 다수의 병력이 상주하고 있는 듯했다.

경계가 굉장히 첨예했는데, 사방에 감시탑이 세워져 있었으며 경계 병력은 수인과 플레이어가 뒤섞여 있었다.

“철책을 따라서 조금 더 돌아보죠.”

성우는 성급하지 않았다. 확실한 한 방을 위해서라면 놈들의 전력을 최대한 파악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다가 철책 안에서 작업을 하는 일부 수인 중, 목에 금속 목줄이 채워진 이들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들은 감시하는 수인도 보였다.

‘내부에서 세력 다툼이 있었나?’

언뜻 보더라도 모든 수인이 같은 계급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저들 사이에도 지배자와 피지배자가 존재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중심부로 갈수록 진화 학회 특유의 잔혹한 연구 시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저거, 저번에 평택에서 본 거네요.”

지수가 가리킨 곳에는 익숙한 실험체가 잔뜩 쌓여 있었다. 사람의 머리, 헝겊으로 만들어진 몸뚱이, 짐승의 팔다리가 달린 전투 병기였다.

얼핏 봐도 그 숫자가 수백에 달했다. 제 기능을 하는 것인지 아니면 폐기되는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놈들의 실험이 엄청난 수의 희생을 일으켰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저기에 부품, 시체만 해도 몇 명일지······.’

지수가 손가락을 들어올렸다.

“저것 좀 보세요.”

한쪽 구덩이에는 온갖 시체들이 쌓여 있었다. 조금 전부터 풍겨온 악취의 근원지였다.

그리고 그 주변으로 폐기되는 물탱크 및 수조들······. 그 안에는 사람과 수인의 머리가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미친······.”

생명을 중시하기에는 너무나 험난한 세상이라고 하지만, 놈들의 실험을 중단시켜야 한다는 건 확실했다. 더 내려두었다간 한반도 전체를 실험 삼으려고 들 것이었다.

“슬슬 시작합시다.”

그리고 이제, 진화 학회를 뿌리 뽑을 시간이었다.

“제 생각에는 밖에서 안으로 치고 들어가는 것보다 안에서 터뜨리는 게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지수 씨 생각은 어때요?”

성우의 화력은 압도적이지만 유지 시간이 1시간이라는 치명적인 약점이 존재했다.

만약 외부에서 공격을 시작하여 핵심 시설로 진격해 갈 경우, 놈들은 시설 안에 숨어서 농성할 가능성이 컸다. 단단한 벽 뒤에서 언데드 군단을 막아내며 1시간을 버틴 뒤 반격을 꾀할 것이었다.

‘그렇기에 가장 깊숙한 곳에서 시작하는 게 훨씬 확실하게 끝내버릴 수 있다.’

지수도 성우의 의견에 동조했고 그들은 이내 핵심 시설로 보이는 장소를 발견했다.

“딱 봐도 저기네요.”

창문이 하나도 없는 원통형 건물이었는데, 멀리서 볼 때는 원자력 발전소의 원자로 격납 건물로 보일 정도로 범상치 않은 분위기가 풍겨 왔다.

“저 안에······ 어떻게 들어가죠?”

지수의 말처럼 침투가 쉽지 않아 보였다. 환기구를 제외한다면 비집고 들어갈 구멍이 하나도 없었으며 경계병의 숫자도 상당했다. 하물며 옥상에 다수의 저격수가 배치되어 주변을 항시 경계 중이었다.

함부로 접근했다가는 놈들이 대응할 시간을 내주고 말 것이며, 결국 단단한 농성을 뚫어내면서 힘겹게 들어가야만 할 것이었다.

“저한테는 방법이 있어요.”

성우가 말했다.

“······그런데 저만 가능한 방법이라, 제가 안에 들어가서 출입구를 만들어볼게요.”

“알겠어요.”

성우는 즉시 작전을 계시했다.

- ‘스펙터’를 소환합니다.

두 마리의 유령이 성우의 등 뒤에서 피어났다. 녀석들은 장애물을 자유자재로 통과하며 핵심 시설을 향해 천천히 접근했다.

나무나 바위 등, 물체 안에 몸을 숨길 수 있었기에 경계병들의 눈을 피할 수 있었다.

“으, 갑자기 왜 이리 몸이 으슬으슬하지?”

“그러게 나도 그러네?”

스펙터를 직접 목격하면 ‘공포’와 ‘이동 속도 감소’ 저주에 빠진다.

그런데 직접 목격하지 않더라도 주변에 존재하는 것만으로 소름이 돋는 증상이 발생했다. 흔히 귀신이 주변에 있으면 싸늘하고 소름이 돋는다는 것과 같은 현상이었다.

‘건물로 들어가.’

2마리의 스펙터는 핵심 시설까지 접근하는 데 성공한 뒤, 단단한 콘크리트 외벽으로 몸을 집어넣었다.

창문 하나 없이 완전히 밀폐된 건물이었지만, 스펙터는 말 그대로 유령이었다. 그런 물리적인 한계를 뛰어넘어 잠입에 성공했다.

성우는 스펙터와 시야를 공유했다.

“······이번에 ‘넘버1’도 실패했다고 하던데?”

“그래서 최고 경계태세를 발동한 거야? 근데 넘버1이면 키메라를 데리고 갔을 거 아니야? 그 괴물이 죽었다고?”

대화가 들려오는 가운데, 꽤 깔끔한 시설이 눈에 들어왔다. 이내 목소리의 주인들이 복도를 돌아 나왔다. 백색 가운 차림의 플레이어들이었다.

“뭐, 확실하진 않은데 그렇다고 하더라고. 이번 작전 투입된 특공대도 한 명도 못 돌아왔대.”

“미친, 네크로맨서는 도대체 뭐 하는 놈이야? 그놈의 키메라 만들려고 몇 명을 갈아 넣었는데······ 오죽했으면 수인 우두머리들이랑 척을 졌겠어?”

“아, 백색의 기수, 그 웨어 울프도 유 박사님 심기 거스르다가 결국 감옥에 처박혀 있다며? 유 박사님이 슬슬 짐승들을 쳐내려고 하시는 것 같은데”

“잘 됐다. 냄새나는 것들이랑 같이 사는 것도 슬슬 질리려던 참이었어.”

성우는 그림자를 찾기 위해서 시설 내부를 탐색했다. 워낙 밝고 잘 정돈된 편이었기에 그림자가 진 곳을 찾아내는 게 쉽지 않았다.

스펙터를 움직여 몇 개의 벽을 통과하자, 온갖 사체가 가득 쌓인 방에 도착했다.

‘이건 또 뭐야.’

놈들의 연구 재료들이 보관된 일종의 창고인 모양이었는데, 마치 정육점처럼, 오크나 오우거의 사체가 천장에 매달려 있었다. 그리고 그것들의 축 늘어진 몸뚱이가 그림자를 형성하고 있었다.

‘찾았다.’

성우는 스펙터와 시야 공유를 끊고 지수를 바라보았다.

“이제 될 것 같아요. 조금만 기다리세요.”

“네.”

성우는 다시금 스펙터와 시야를 공유한 뒤, ‘그림자 왕의 팔찌’의 기능을 사용하여 건물 안의 그림자로 순간 이동했다.

스스스―

다음 순간, 그의 몸이 그림자 속에서 일어났다. 최고의 보안을 자랑하는 시설이었지만 ‘스펙터’와 ‘그림자 이동’ 기술을 통하여 손쉽게 잠입할 수 있었다.

‘이런 시체를 이용해서 심연의 호흡을 추출한다고 했지? 실로 엄청난 양이다.’

성우는 드넓은 창고를 가득 채우고 있는 수많은 사체를 바라보며 새삼 경악했다. 당장 눈에 띄는 것만 종류별로 300구는 될 법했다.

덜컥―

그때, 창고의 문이 열렸다. 성우는 자연스럽게 그림자 안으로 스며들었다.

끼익―

위생복을 입은 남자 한 명이 손수레를 들고 들어오더니 수레에 고블린 시체 한 구를 옮겨 담기 시작했다.

다음 순간, 그림자 속에서 튀어나온 손이 남자의 목덜미를 움켜쥐었다.

“컥!”

“······쉿. 묻는 말에만 대답해.”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엄청난 악력을 느끼고는 감히 벗어날 생각을 하지 못했다.

“여기가 너희 진화 학회의 핵심 연구 시설인가?”

남자는 고민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살고자 하는 본능이 몸으로 드러났다.

“이 시설에 유 박사, 진화 학회의 수장이 머물고 있나?”

잠시 머뭇거렸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제대로 찾아왔군. 놈은 지하에 있나?”

마지막 끄덕임, 성우는 남자의 목을 손쉽게 꺾어버렸다. 그리고 즉시 트롤 스켈레톤을 5마리를 소환했다.

“시체를 벽 쪽에 쌓아.”

트롤 스켈레톤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창고에 쌓여 있는 몬스터 사체를 옮겼다.

“이제 내가 왔다는 걸 알려주자고.”

성우에게 이곳, 사체 창고는 탄약고나 다름없었다. 약 20구가량의 사체가 쌓여 있는 벽을 바라보며, 성우가 나지막이 ‘폭발’이라고 읊조렸다.

콰―아―앙!

굉음, 진동, 열기와 함께 한쪽 벽이 통째로 날아갔다. 검은 연기가 빠져나가며 햇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애애애애앵!

붉은 전조등이 켜짐과 사이렌이 울렸다. 건물 밖에서 고함치는 소리가 들렸다. 경계병들이 빠르게 대응하기 시작한 것이다.

“폭발이다! 무슨 상황인지 확인해!”

“여기는 A타워! A타워! 지원 바란다!”

하지만 그들의 목소리가 비명으로 바뀌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침입이다!”

“쏴! 쏴버······ 컥!”

무너진 벽 근처에 있던 경계병들은 무언가에 의해 공격받기 시작했다.

“젠장! 너무 빠르다!”

“······억!”

짧은 비명이 연속되며 목소리가 하나둘씩 줄어들더니, 이내 긴 침묵이 이어졌다. 전멸당한 것이었다.

“왔어요.”

잠시 후, 무너진 벽으로 지수가 걸어 들어왔다.

“아래로 갑시다.”

성우는 이미 바닥에 사체를 쌓아둔 상태였다. 애초에 엘리베이터나 계단 따위를 이용할 마음은 없었다. 더 빠르고 화끈한 방법을 이용할 계획이었다.

“폭발.”

콰―앙!

시체가 화염으로 뒤바뀌며 바닥이 통째로 내려앉았다. 콘크리트가 튀어 오르고 배관이 우그러지며 다음 층으로 내려가는 통로가 열렸다.

그 누구도 막지 않는, 아니, 막을 수 없는, 너무나 손쉬운 침입 방법이었다.

“콜록! 콜록! 뭐, 뭐야!”

“천장이 무너졌어!”

바닥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실험실인 모양인지 흰색 가운을 입고 있는 플레이어들이 눈에 띄었다.

“위에 무슨 일입니까? 생존자 있습니까?”

성우는 대답 대신 구울을 내려보냈다.

꺼―윽! 꺼―윽!

“이, 이게 뭐야!”

“으아아! 사, 살려줘!”

직후, 트롤 스켈레톤들이 한 뭉텅이의 시체를 구덩이 아래로 내던졌다.

이대로 뚫을 수 있는 곳까지 뚫고 내려갈 생각이었다. 연구 시설의 규모가 큰 만큼, 중요한 것들은 훨씬 깊은 곳에 있을 가능성이 컸다.

한편, 건물 밖에서 소음이 들려왔다.

“벽의 구멍을 포위해!”

“진압 팀 대기!”

어느새 다수의 병력이 몰려와 포진해 있는 상황이었다. 성우는 그 소리를 들으며 트롤 스켈레톤 한 마리에게 손짓했다.

“기다리는 시간 심심하지 않게 선물 좀 줘.”

이에 트롤 스켈레톤이 움직여, 구멍 밖으로 오크 시체 몇 구를 집어던졌다.

“폭발.”

쾅! 쾅! 쾅!

그와 동시에 시체 폭발이 일어나며 다가오던 진압팀이 나동그라졌다.

“컥! 시, 심연의 호흡이다!”

“가스! 가스! 전원 마스크 착용!”

시체가 폭발하며 옅은 심연의 호흡이 방출되었지만, 진화 학회는 원래 그런 걸 다루는 집단인 만큼 대비책이 마련되어 있었다.

“신경 쓰지 말고 내려가죠.”

성우와 지수가 지하로 내려가는 구덩이 앞에 섰다.

“폭발.”

아래층에서 폭발이 울리며 바닥이 무너져내리기 시작했다. 성우와 지수는 그와 동시에 아래층으로 몸을 내던졌다. 그렇게 단숨에 2개의 구멍을 통과, 2개의 층을 돌파하여 지하 2층에 안착했다.

그곳은 위층의 연구실과 다르게 굉장히 어두침침한 공간이었다.

“여기는······.”

그리고 웬 메시지 한 줄이 눈앞에 떠올랐다.

- 필드 보스 몬스터 ‘듀라한’이 출현했습니다.

“응?”

“······보스 몬스터?”

난데없는 메시지에 주변을 둘러보았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이런 곳에 던전 같은 게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아니, 애초에 필드 보스 몬스터가 실내에 있다니?

“성우 씨, 저쪽이요.”

지수가 무언가를 포착했다. 거대한 방 한가운데 보라색 불빛이 감도는 수조가 눈에 띄었다. 총 3개였다.

첫 번째 수조에는 머리가 잘린 몸뚱이가 담겨 있었다. 철제 갑옷을 입은 엄청난 거구였다.

두 번째 수조에는 잘린 머리가 담겨 있었다. 철제 투구 안쪽으로 희미한 안광이 번져 나왔다. 아무래도 첫 번째 수조에 담긴 몸뚱이의 주인으로 보였다.

세 번째 수조에는 검은색 말이 담겨 있었다. 언뜻 봐도 평범한 존재는 아니었다. 일반적인 말보다 2배는 컸으며 발굽에서 보라색 불꽃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일명 듀라한(Dullahan), 흔히 유령 말을 타고 다니는 머리 없는 기사로 알려져 있었다.

“구속당한 상태인 것 같아요.”

“그렇네요.”

수조의 겉면에는 백색의 사슬이 휘감겨 있었다. 언데드 속성을 제어할 수 있는 ‘신성 마법’으로 보였다.

죽음을 연구하는 집단인 만큼, 언데드와 관련된 몬스터를 잡아다가 연구하고 있던 것이었다. 이전에 범계역의 비밀 시설에서 레이드 보스 몬스터인 ‘구울 킹’을 구속하여 연구 재료로 삼았던 것처럼 말이다.

텅!

그때, 듀라한의 몸뚱이가 왼손을 뻗어 수조를 건드렸다.

“응?”

치지지지!

동시에 백색 사슬이 반응하며 듀라한의 몸이 감전되듯 뻣뻣하게 굳어버렸다. 그리고 수조 중앙으로 밀려났다.

‘방금, 나한테 뭔가를 요청한 것 같았다.’

짧은 행동이지만, 성우는 그런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전용 퀘스트]

- 제목 : 죽은 자의 기사도

- 유형 : 구출

- 목표 : ‘듀라한’의 봉인을 해제하라

- 보상 : ‘듀라한’의 충성

외딴곳에 억류된 필드 보스 몬스터 ‘듀라한’은 당신이 품고 있는 강력한 죽음의 권능을 감지했습니다. 그리고 당신에게 구조를 요청합니다.

듀라한을 구해낼 경우, 그는 자발적으로 당신의 권속이 되어 영원한 충성을 맹세할 것입니다.

* 당신의 손에 의해 봉인이 해제되지 않으면 ‘듀라한’은 당신을 따르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 잘 생각했어.”

성우는 이 순간 다시 한번 느꼈다. 진화 학회는 네크로맨서에게 가장 진한 양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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