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네크로맨서-124화 (124/244)

# 124

44) 대전, 바퀴벌레 소굴 - 1

조금 전, 성우는 지수에게 검은 목걸이 하나를 받았다.

[아이템 정보]

- 이름 : 그림자 왕의 목걸이

- 등급 : 전설

- 분류 : 목걸이

- 효과 : 체력 수치 상승(+6), 시야에 있는 1개의 그림자를 통제하여 ‘시각 정보’와 ‘청각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재사용 대기 : 5분)

그건, 그림자 왕의 마지막 유산이었다.

“끝이다.”

그렇게 총 4개의 유품을 모두 모음으로써 ‘그림자 왕의 계승자’라는 히든 퀘스트를 완수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의 손에 ‘그림자 왕의 왕관’이 들어왔다.

- 당신은 ‘그림자 왕의 계승자’로서 새로운 스킬을 습득했습니다. (그림자 왕의 권능)

[스킬 정보]

- 이름 : 그림자 왕의 권능

- 등급 : 특수

- 분류 : 액티브

- 조건 : 그림자 왕의 계승자 + 그림자 왕의 왕관

‘그림자 왕의 유품’과 관련된 모든 스킬의 재사용 대기시간이 대폭 감소합니다. (-50%)

+ 그림자 왕의 군대 : 당신의 통제 아래 있는 모든 그림자를 ‘그림자 병사’로 실체화시킬 수 있습니다. 이는 1시간 동안 유지됩니다.

그림자 병사는 본체의 50%의 공격력과 150%의 방어력을 가지며 본체가 죽기 전까지는 소멸하지 않습니다. (재사용 대기 : 12시간)

“······대박이군.”

네크로맨서라는 존재와 최적의 시너지를 일으킬 수 있는 세트 아이템이 완성되었다.

그런데 바로 다음 순간, 성우의 눈앞에 실험 대상이 나타났다. 그것도 바퀴벌레 같은 철천지원수, 진화 학회 놈들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림자 군단을 목격한 DOCTOR는 방독면을 쓰고 있음에도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너만 새로운 걸 개발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

키메라는 분명 강력한 생명체였다. 거대한 수송기를 멈춰 세울 정도의 힘을 지닌 ‘텐구’를 일방적으로 잡아먹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분명 그 정도 괴력을 가진 존재라면, 자신들에게 매번 패배를 안겨준 네크로맨서를 제거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사이에 네크로맨서 역시 강해졌다는 걸, 그것도 한순간에 배로 강해질 수 있다는 걸······ 그 누가 예상할 수 있었을까?

“정말 당신은······ 언제 봐도 경이롭네요.”

DOCTOR는 진솔하게 심경을 내비쳤다. 하지만 포기한 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이 만들어낸 피조물을 믿었다. 진화 학회의 길고 긴 노력의 결실이 아니던가?

기이할 정도로 강력한 네크로맨서에게 맞서더라도 절대 꿇리지 않을 정도의 악랄한 괴물······. 키메라는 분명 그런 존재였다.

“이 정도라면 진정한 클라이맥스가 되겠어요.”

“그럴듯한 소리를 내뱉으려고 안간힘을 쓰는군?”

성우는 놈과 대화를 이어가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이런 헛소리를 하는 동안에도 군단을 유지할 수 있는 시간은 감소하고 있었다. 성우의 유일한 적은 바로 그 시간이었다.

“그딴 걸 만드는 데 얼마나 걸렸는지 모르겠지만, 없애는 건 금방이야.”

“그러십니까?”

성우가 흑색의 낫을 들어 올렸다. 동시에 빌딩에 드리운 거대한 그림자가 손을 뻗었다.

“그래. 앉아서 숫자나 세고 있어.”

공격 신호였다. 죽음의 군단에 돌격 명령이 내렸다.

구구구구―

이내 엄청난 진동이 부산 도심을 울렸다. 언데드 무리와 그림자 병사들이 4차선의 도로를 가득 메운 채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들이 구분 없이 뒤엉킨 채 달려나가자, 마치 하나의 덩어리가 되어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그만큼 거대하고 밀도 있는 돌격이었다.

“성급하시긴!”

DOCTOR가 몸을 피하며 휘파람을 불었다. 그러자 멈춰 있던 키메라가 민감하게 반응했다.

꾸에에에!

놈은 일말의 머뭇거림도 없이 군단을 발을 구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맞부딪치는 순간, 갈고리처럼 생긴 앞다리를 마구잡이로 휘둘렀다.

콰가가가가!

선두의 병력이 갈고리에 휩쓸렸다. 대형 스켈레톤을 조각낼 만큼 엄청난 파괴력이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수백에 이르는 행렬의 극히 일부를 긁어냈을 뿐, 결코 저지할 수 없는 폭풍이 키메라를 집어삼켰다.

꾸에에에!

죽음의 군단이 성난 파도처럼 몰아쳤다. 놈의 육중한 몸이 파도에 휩쓸리는 거대한 선박처럼, 사정없이 출렁이며 도로 위로 미끄러져 나갔다.

스켈레톤, 좀비, 구울, 그림자 병사, 온갖 죽음으로 점칠 된 군단이 단 하나의 목표를 향해 미친개처럼 들러붙었다.

어떤 것은 놈의 발아래로 파고들었다. 어떤 것은 놈의 머리 위로 기어 올라갔다. 어떤 것은 돌아나가 옆구리와 등에 매달렸다.

퍽! 퍽! 푹! 퍽! 퍽! 퍽!

그리고 놈의 몸에 온갖 공격을 처박았다. 강력하진 않지만, 적지 않은 수의 데미지가 연이어 들어갔다.

꾸엑! 꾸에에!

놈은 그 집중 공격 속에서도 어떻게든 몸을 움직였다. 환형동물 특유의 엄청난 탄력으로 몸을 털어대며 들러붙은 것들을 날려버리기 시작했다.

퍼버버버버!

이어서 긴 몸뚱이를 회전시켜 철퇴 같은 꼬리를 휘두르자, 단 한 번에 수십 마리가 튕겨 나갔다.

하지만 언데드들은 무대 밖으로 퇴장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다시금 몸을 일으켜 곧장 전장으로 복귀했다. 그 모습이 쉬지 않고 달려드는 핏불 떼를 연상시켰다.

집요하고 끈질겼다.

덜그럭! 덜그럭!

절대로 죽지 않았다. 죽지 않으니 멈추지 않았다. 멈추지 않으니 막을 수 없었다.

쿵! 쿠―궁!

키메라의 몸이 한없이 밀려나며 8층짜리 건물에 부딪혔다. 그렇게 막다른 길에 몰린 채 집중 공격을 당했다만, 놈의 몸뚱이보다 건물이 먼저 무너지기 시작했다.

콰과과과―

수백에 이르는 괴물들이 한 대 뒤엉킨 채 몸부림을 쳐댔으니 버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외벽과 콘크리트 덩어리가 비처럼 쏟아져 내리자, 이 모든 장면을 찍고 있던 ‘공식 채널’의 드론이 잔해를 피하여 고도를 높였다.

우우웅!

그리고 이 치열한 현장감이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겼다. 그렇게 전 세계는 네크로맨서를 목격 중이었다.

“미, 미친!”

“이 동네 뭐야. 무, 무서워······.”

살아남은 일본 서버의 병사들은 멀찍이 떨어진 채 그 장면을 바라보며 아연실색했다.

그들은 무려 ‘본대’라는 이름을 달고 타국의 땅을 밟았지만, 단 한 번의 전투도 치르지 못한 채 만신창이가 되었다. 그나마 비상용 방독면을 소량 챙겨왔기에 목숨을 부지할 수 있는 거였다.

“어! 우리한테 온다!”

“피해!”

하지만 그 목숨마저도 바람 앞의 등불이었다. 키메라와 네크로맨서의 군단이 건물을 관통하여 튀어나왔는데, 하필이면 일본의 패잔병들이 몸을 숨기고 있던 골목 근처였다.

“어? 어어!”

“으아아!”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는 게 딱 이런 꼴이었다. 일본의 패잔병들은 그 뒤엉킨 싸움에 휩쓸려 산산조각이 나 버렸다. 너무나 허망한 최후였다.

쿵! 쿵! 쿵!

키메라와 언데드 군단은 그런 것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 뒤에도 건물 몇 채를 더 뚫고 나서야 또 다른 대로로 빠져나왔다.

물고 물어뜯기는 혈투는 그곳에서도 계속되었다. 마치 한 마리의 불곰을 수백 마리의 사냥개가 달려들어 물어뜯는 꼴이었다.

쾅! 쾅! 콰―앙!

도로에 방치된 차량이 홍수에 휩쓸리는 것처럼 이리저리 밀려나고 굴러갔다. 아스팔트 바닥이 운동장의 흙바닥처럼 분해되고 가로수들이 갈대처럼 꺾였다.

꾸에에!

그리고 어느새 키메라의 몸뚱이가 너덜너덜해진 상태였다. 특히나 ‘텐구’를 잡아먹고 자라난 검은 날개는 완전히 짓이겨버렸다.

‘마무리할 때가 왔군.’

성우는 때가 되었음을 느끼고 후방으로 수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어느 건물 옥상에서 거대한 물체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기다란 포구가 방향을 틀었다.

쩌―엉! 쩌―엉!

그와 동시에 푸른 섬광 두 발이 날아들어 성우의 권속과 함께, 키메라를 정통으로 강타했다.

그건, 뇌신의 철퇴였다. 키메라의 몸을 뒤덮고 있던 병력이 순식간에 박살 나 버렸지만, 그 가공할만한 위력에 키메라의 왼쪽 갈고리가 잘려나갔다.

꾸에! 꾸에에!

- 당신의 무기에 ‘악령 폭격’이 깃듭니다.

끝이 아니었다. 성우는 미리 장전해 놓은 20발의 ‘악령 폭격’을 날렸다.

구―구―구―구―궁

검은 구슬이 놈의 머리 위에서 폭발했다. 그 충격이 어찌나 강력한지 놈이 밟고 있던 아스팔트 바닥이 움푹 내려앉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놈은 지금까지 상대해왔던 것들과 달랐다.

꾸에에! 꾸에에에!

그런 무지막지한 공격을 허용하고도 저렇게 악에 찬 괴성을 내지를 수 있다니? 그렇다는 건 아직 여력이 남아 있다는 말이 아니던가?

‘더 큰 게 필요하다.’

성우는 끝장을 볼 생각에 남은 영혼을 전부 사용했다.

- ‘황혼 습격’이 시작됩니다.

이번에는 황혼 습격이었다. 성우의 몸이 악령과 어우러지더니 놈을 향해 날아들었다.

구우우우!

잇단 충격에 그로기 상태에 빠진 틈을 타, 놈의 몸을 ‘망령의 손’으로 구속했다.

‘지금이다.’

직후, 하늘을 검은 그림자가 가득 뒤덮었다. 그건 ‘본 와이번 알파메일’의 그림자였다. 녀석이 키메라의 몸뚱이를 움켜쥐더니 별안간 공중으로 치솟기 시작했다.

“어디 얼마나 단단한지 실험해보자고.”

공중 낙하, 그게 마지막 작전이었다. 본 와이번 알파메일은 거대한 날개를 홰치며 단숨에 수백 미터 상공까지 날아올랐다.

꾸에에에!

그러나 ‘망령의 손’에 의한 구속 시간이 만료되자, 키메라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놈은 본 와이번 알파메일의 발톱 안에서 발버둥 치더니 이내 극단적인 탈출 방법을 시도했다.

콰―직!

놈이 오른쪽 갈고리를 휘둘러 단숨에 본 와이번 알파메일의 날개를 갈라 버린 것이다. 그렇게 자유의 몸이 됨과 동시에 자유 낙하가 시작되었다.

‘아직이다.’

하지만 아직 그리 높은 곳이 아니었다. 성우는 이를 대비하여 다른 와이번을 미리 배치해둔 상태였다.

인근에서 날고 있던 한 놈이 즉시 달려들어 키메라의 머리통을 움켜쥐고 수직으로 상승하기 시작했다. 바통 터치였다.

퍼―억!

그 녀석도 얼마 올라가지 못하고 부서졌지만, 뒤이어 다른 놈이 떨어지는 키메라를 낚아챘다.

그렇게 몇 번이고 놈을 매단 채 고도를 놓인 결과, 수백, 수천 미터 상공까지 치솟는 데 성공했다. 이제는 놈이 아주 작은 점으로 보일 지경이었다.

충분한 지점이었다.

“떨어뜨려.”

본 와이번의 발톱이 벌어졌다. 놈이 몸이 허공에 놓였고 빙글빙글 돌며 하염없이 추락하기 시작했다.

놈은 검은 날개를 펼치며 어떻게든 균형을 잡기 위해서 노력했지만, 난전 속에서 잘려나간 상태였기에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없었다.

끼에에에!

그리고 공중에서 지상으로 떨어지는 것, ‘자유 낙하’의 힘은 생각보다 강력하다.

최고의 합금으로 만들어진 항공기나 우주선이 땅에 처박히는 순간, 다이나믹하게 산산 조각나는 건, 견고함이 덜하기 때문이 아니다. 자연법칙의 힘이 생각 이상으로 파괴적이기 때문이었다.

잘 만들어진 생체병기도 마찬가지다. 키메라의 몸이 수직으로 내리꽂혔다.

쿵―

나지막한 진동이 도심의 바닥 위로 번져나갔다. 소음은 그뿐이었다. 놈의 몸뚱이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으스러져 버린 상태였다.

그걸로 끝이었다.

- ‘실험 번호-455’를 사냥하여 1,000,000골드를 얻었습니다.

- ‘실험체 폐기 담당자’ 칭호를 획득하셨습니다.

* 모든 능력치 상승 (+1)

역대 최악의 괴물을 잡았는데 고작 백만 골드라니? 짠 걸 넘어서 수지에 맞지 않는 보상이었다.

그래도 칭호를 하나 얻긴 했다만, 시스템이 만든 몬스터가 아니라서 그런지 전반적으로 만족스럽지 못했다.

하지만 중요한 게 하나 남았다.

- 전용 퀘스트 ‘잘못된 죽음의 존재’를 성공적으로 공략하셨습니다.

* 보상이 주어집니다. (전용 스킬)

성우는 전용 퀘스트를 공략하고 새로 얻은 스킬을 확인했다.

[스킬 정보]

- 이름 : 죽음의 마법사 임명

- 등급 : 기초

- 분류 : 액티브

- 소모 : 마나 50

스켈레톤을 일으킬 때 ‘마법적 재능’을 부여하여 ‘스켈레톤 메이지’로 만듭니다.

스켈레톤 메이지는 다수의 공격 마법 및 저주 계열 마법을 사용할 수 있으며 스킬 등급 향상 시 더욱 강력한 마법을 구사하게 됩니다.

* 스켈레톤 메이지는 ‘특정 조건’을 만족할 시 ‘죽음의 사제’가 될 수 있습니다.

* 스켈레톤 메이지는 ‘특정 조건’을 만족할 시 ‘리치’가 될 수 있습니다.

“드디어 제대로 된 마법사가 들어왔군.”

적들의 도전은 이번에도 적지 않은 선물만을 남겼다.

***

한편, DOCTOR는 키메라로도 이길 수 없다는 걸 눈치채고 일찌감치 도주를 택했다.

하지만 그리 멀리 가지는 못했다. 다른 플레이어를 대피시키고 있던 지수가 놈의 움직임을 감지하고 추적에 나선 것이었다.

잠시 후, DOCTOR는 팔다리가 잘린 비참한 모습으로 성우의 앞으로 끌려왔다.

“근처에 헬리콥터를 대기 시켜놨더라고요. 이륙 직전에 잡았어요.”

놈은 피투성이가 된 얼굴로 성우를 올려다보았다.

“······나를 죽여도 소용없어.”

그 뜻은, 자신 역시 클론 중 하나이기에 죽더라도 진화 학회의 명맥이 유지될 거라는 소리였다.

“그렇다고 해서 안 죽이는 건 말이 안 되잖아?”

“······.”

성우는 길게 이야기해봤자 얻을 게 없다는 걸 알기에 미련 없이 놈의 목숨을 끊었다.

그러자 플레이어 랭킹에서 ‘DOCTOR-001’이라는 닉네임이 사라졌다. 무려 랭킹 7위, 본체를 제외하고 가장 레벨이 높은 클론이었다.

하지만 찝찝함은 사라지지 않았다.

‘이렇게 해서는 절대로 끝나지 않는다.’

닉네임 ‘DOCTOR-000’ 클론을 만들어내는 본체가 남아 있는 한, 놈들은 또 다른 괴이한 방법을 동원하여 성우를 공격해올 것이었다.

“지수 씨, 주변에 진화 학회 소속의 수인들이 아직 있을 수도 있습니다.”

“잡아야겠네요.”

“네. 놈들을 추격할만한 실마리가 필요합니다.”

성우는 여전히 진화 학회의 본거지가 어디인지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놈들을 제대로 뿌리 뽑지 않는 이상, 이런 성가신 일은 계속될 것이었다.

‘그런데 아직 한일전도 끝나지 않았으니······.’

진화 학회의 잔당을 추격하기에는 아직 할 일이 남아 있었다.

전 세계가 지켜보고 있는 이벤트 한일전, 전세는 이미 넘어온 상태로 한국 서버의 승리가 눈앞에 있었다.

‘일단 이것부터 뿌리 뽑는다.’

***

성우는 언데드 군단을 몰고 부산항으로 이동했다. 항구에 남아 있던 일본 측 병력은 후퇴를 준비 중이었는데, 이미 절반 이상의 함선이 연안을 벗어나고 있었다.

“그냥 보내줄 수는 없지.”

성우는 본 와이번 무리를 출격시켰다.

본 와이번의 등에는 고정 포탑이 설치되어 있었기에 해상의 함선을 향해 무차별적인 공중 포격이 이루어졌다.

그렇게 불과 몇십 분, 성우는 일본 서버의 패잔병 무리를 모조리 쓸어버리는 데 성공했다.

수장되는 함대, 그게 한일전의 마지막 장면이었다.

- ‘제1차 한일전(韓日戰)’에서 한국 서버가 최종 승리했습니다!

* 한국 서버 기여도에 따라 차등 분배됩니다.

- ‘제1차 한일전(韓日戰)’ 보상이 지급됩니다.

* 기여도 : 1위

* 보상금 : 30,000,000골드

* 추가 보상 : ‘전쟁 영웅’ 칭호 지급

- ‘전쟁 영웅’ 칭호를 획득하셨습니다.

* 모든 능력치 상승 (+2)

“저, 네크로맨서님? 이제 다 끝난 겁니까?”

화랑 길드의 리더가 물었다. 성우는 고개를 저었다.

“이 땅 어딘가에 놈들이 무슨 짓을 해놨을지 모릅니다. 병력을 동원해서 샅샅이 살피시고 특히 ‘진화 학회’라는 놈들의 흔적을 찾아보세요.”

진화 학회, 놈들을 또다시 놓칠 수 없었다. 성우는 ‘화랑 길드’를 동원한 건 물론이거니와 ‘헌터 컴퍼니’와 광복 길드의 ‘광역감시팀’에도 진화 학회 추적을 요청했다. 이에 정훈 역시 적극적으로 가담해주었다.

“지금이 아니라면 놈들은 한동안 몸을 숨길 겁니다. 머리를 내밀었을 때, 반드시 끄집어내야만 합니다.”

놈들을 방치하는 건 테러리스트를 키우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걸, 이미 한 차례 당해본 광복 길드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놈들은 우리의 공공의 적이니까요.”

그렇게 역대 최대의 탐색 작전이 시작되었다. 부산을 기점으로 진화 학회의 이동 경로를 역 추적하여 숨겨진 본진을 알아낸다는 게 이들의 계획이었다.

그런데,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진화 학회의 꼬리가 밟혔다.

그건 제2차 한일전 퀘스트였다.

[서버 퀘스트]

- 제목 : 제2차 한일전(韓日戰) : 복수혈전

- 유형 : 전쟁

- 목적 : 전쟁 승리

- 보상 : 추후 공지

일본 서버의 공격으로 제1차 한일전이 발발했다. 그리고 승리의 깃발을 들어 올린 건, 놀랍게도 방어 측인 한국 서버였다.

그리고 이번에는 한국 서버에게 반격의 기회가 주어졌다. 두 서버 간의 오래된 악연을 피로 끊을지, 아니면 담담하게 잊어버릴지는 한국 서버의 선택에 달렸다.

* 서버 대표(kor-157)의 선택에 따라서 반격을 포기할 경우 퀘스트가 종료됩니다.

[제1차 한일전(韓日戰) 안내 사항]

흥미진진한 대결을 위하여 특별한 룰을 부여할 예정입니다. 그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1) 반격 측(한국 서버)에 ‘대반격 특전’이 부여됩니다. 반격 측 대표는 적대세력의 ‘위치 확인’과 해당 위치로의 ‘빠른 이동’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2) 개인 의사에 따라 ‘상대 서버’를 지지할 수 있으며 ‘상대 서버’로 이적할 기회가 부여됩니다.

3) 해당 퀘스트의 모든 과정이 ‘공식 채널’을 통하여 월드에 생중계될 예정입니다.

시스템은 막연하게 반격을 요구하는 게 아니었다. 복수를 종용하기 위해서 상당한 메리트를 부여해줬다.

“위치 확인이라?”

일명 ‘위치 확인’과 ‘빠른 이동’이었는데, 둘 다 급습에 특화된 혜택이었다.

- 지도상에 ‘적대세력’의 위치가 표시됩니다.

* 표시된 위치 중 1곳을 선택하여 ‘하이퍼 게이트(빠른 이동)’를 열 수 있습니다. (남은 횟수 : 1회)

이내 성우의 눈앞에 지도가 떠올랐다. 그건 한반도와 일본 열도의 지도였다.

그리고 그 지도상, 단 두 군데에 붉은 점이 표시됐다. 일단 첫 번째는 일본의 ‘대마도’였다.

‘대마도라면 일본군이 위치한 곳일 거다. 그런데 규슈가 본진이라고 하지 않았나?’

정확한 사정은 알 수 없지만, 한국 서버를 공격해온 ‘규슈 통합군’의 전초기지가 대마도에 있는 모양이었다.

‘여기로 바로 이동할 수 있다는 거지?’

지금 당장 급습해서 몽땅 쓸어버리는 것도 나쁘지 않은 방법이었다. 회심을 담은 본대가 단숨에 궤멸당했으니 여러모로 무방비 상태일 것이었다. ‘대반격’을 시도하기에는 최적의 타이밍이 분명했다.

문제는 두 번째 붉은 점이었다.

‘······대전?’

그 붉은 점은 한반도, 그것도 대전에 찍혀 있었다. 처음에는 의문이었다. 한국 서버의 ‘적대세력’이 왜 대전에 있단 말인가?

하지만 그 의문은 곧 해소되었다. 한일전에서 한국 서버에 반기를 든 국내의 플레이어라······.

‘진화 학회다.’

놈들이 ‘적대세력’으로 판정되어 지도상에 표시된 것이었다. 그곳이 바로 놈들의 본진이었다. 너무나 큰 꾀를 부리더니 결국 감출 수 없는 흔적을 남긴 셈이었다.

“선배, 이제 어떡하죠? 우리가 일본으로 쳐들어가야 하나? 대만 떼처럼요?”

한호의 물음에 성우는 고개를 저었다. 일본 서버 정도야 언제든지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진화 학회, 그 바퀴벌레 같은 놈들은 지금이 아니라면······ 또 어딘가에 알을 까고 번식한 뒤 기어 나올지 모르는 일이었다. 아니, 반드시 그럴 것이었다.

“집부터 치우고 가야지.”

마침내, 질긴 악연의 끝을 볼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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