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네크로맨서-123화 (123/244)

# 123

43) 부산 대첩 - 3

부산의 도심을 가득 메운 검은 연기, 심연의 호흡이 성우 근처까지 밀려오자 성우는 그것의 농도를 느낄 수 있었다.

온몸에 강력한 활력이 감돌며 모든 스킬의 재사용 대기 시간이 초기화될 정도였다.

‘매우 강력하다. 예전과 차원이 다르다.’

진화 학회 놈들이 연구를 거듭하여 훨씬 강력한 수준의 ‘심연의 호흡’을 개발한 듯했다.

성우는 고개를 돌려 지수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아이템인 ‘귀면갑’은 어느 정도의 방독 기능이 있는 듯했지만, 그것만으로 한계가 있을뿐더러, 다른 이들은 제대로 된 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지수 씨! 사람들을 데리고 당장 이곳을 빠져나가요!”

“······성우 씨는요?”

“저는 괜찮으니까 주변을 경계하면서 뒤따라갈게요!”

“알겠습니다!”

그때 사방에서 방독면을 쓴 수인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들은 등에 가스통을 짊어지고 있었는데 어떤 파이프를 통하여 ‘심연의 호흡’을 분사하고 있었다.

폭격으로도 모자라 가스 살포까지 더하여 이 공간을 짙은 검은색으로 메워가고 있는 것이었다.

‘도심을 심연의 호흡으로 가득 채우려는 건가? 왤까? 놈들의 목표는 내가 아닌 건가?’

- ‘심연의 호흡’이 체내에 축적되고 있습니다.

- ‘모든 스킬’의 재사용 대기시간이 감소합니다.

심연의 호흡이 네크로맨서에게 크나큰 버프를 준다는 사실을 모를 리가 없었다.

“으아아아!”

“커, 커어······.”

“사, 살려줘!”

그리고 무엇보다 이대로라면, 지금까지 동맹을 맺고 있던 일본군까지 깡그리 전멸할 상황이 아니던가?

그 숫자가 무려 5천 명이었다. 조금의 피해도 받지 않은 그 대군이 심연의 호흡에 잠식된 채 빠르게 죽어 나가고 있었다.

‘설마 이것조차 놈들의 계획?’

이제는 그 미친놈들의 짓거리에 합리적인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어쩌면 일본군을 끌어들인 것조차 그저 엄청난 수의 ‘실험체’가 필요해서가 아닐까?

쿵! 쿠구구―구!

그 순간, 머리 위에서 굉음이 터졌다. 직후, 수송기 한 대가 검은 하늘에 나타났다.

수송기는 꼬리 날개에 연기를 매단 채, 부산 도심을 향해 추락하고 있었다. 이내 두 개의 빌딩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파고들어오더니······.

우우우우―

일본군이 군집해 있는 도로 위에 사정없이 내리꽂혔다.

“어, 어어!”

“젠장!

콰과과과―과!

그 덩치 큰 쇳덩이는 마치 강철로 만들어진 해일처럼,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일본군을 짓이겨버렸다. 이어서 아스팔트 도로를 밀가루 반죽처럼 밀어버리면서, 텐구와 성우가 서 있는 곳을 향해 미끄러졌다.

“그으으······.”

심연의 호흡을 들이마시며 고통스러워하던 ‘텐구’는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수송기를 발견하고 몸을 돌렸다. 그리고는 양손을 쭉 내뻗었다.

동시에 두꺼운 검은 날개가 활짝 펴지며 온몸에서 스파크가 튀기 시작했다.

파지지지―지!

그러자 마치 오우거 스켈레톤이 사용하는 ‘뇌신의 가호’라는 아이템처럼, 양손에서 엄청난 전격이 쏘아져 나가, 미끄러져 오던 수송기를 저지하기 시작했다.

기기기기기!

전류를 뒤집어쓴 수송기의 속도가 점점 느려지기 시작했고 이내 아스팔트 도로에 반쯤 파묻힌 채 멈춰 섰다.

치직! 치지지지!

그 고철 덩어리의 표면 위로 전기가 흐르는 게 눈으로 보였다. 녹아버린 회색 도료가 바닥으로 흘러 내렸으며 조종석의 기판에서 스파크가 튀었다. 두 명의 조종사는 통구이가 된 채 죽어있었다.

쿵! 쿵!

하지만 수송기 안에는 여전히 무언가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쾅! 쾅! 콰―앙!

밖으로 나오려고 하고 있었다.

콰―득!

이내 걸레짝이 되어 덜렁거리는 ‘램프 도어’를 뜯고 무언가 튀어나왔다.

꾸― 꾸우―

그건 불분명한 형체를 가진 괴물이었다. 마치 갯지렁이처럼 매끈하다 못해 흘러내릴 것 같은 끈적한 몸뚱이를 가지고 있었다.

놈은 가장 가까이에 서 있던 텐구를 포착하자 거대한 몸뚱이를 공중으로 들어 올리더니······.

쩌저저―

머리 부분을 네 갈래로 벌리며, 몸속에 숨겨진 수백 개의 이빨이 드러냈다. 경계하는 걸까? 텅 빈 목구멍 안쪽은 깊은 하수관을 연상시켰다.

“이건······ 뭐냐······.”

텐구가 놈을 마주 보며 성가시다는 듯 주먹을 들어 올렸다. 그러나 그때, 믿기지 않는 장면이 벌어졌다.

쩍―

“······컥!”

갯지렁이 머리가 마치 총알처럼 달려들어 텐구의 머리통을 단숨에 집어삼킨 것이다.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기에 텐구는 미처 반응하지 못했다.

“으어! 으어어!”

텐구는 안간힘을 다해 발버둥 쳤다. 어떻게든 밀어내려고 했지만, 오히려 조금씩 더 깊숙이 빨려 들어갈 뿐이었다. 수백 개의 이빨이 야금야금 움직이며 텐구의 머리를 잘개 분쇄하기 시작했다.

우둑! 우둑! 꽈득! 꽈득!

텐구의 저항은 잠깐이었다.

어느새 목, 가슴, 배까지······ 그 거대한 덩치가 갯지렁이의 뱃속으로 빠르게 삼켜졌다.

몸뚱이는 괴물의 입안으로 사라졌으며 아직 남아 있는 팔과 다리는 힘을 잃고 축 늘어졌다.

이어서 텐구의 발바닥이 사라지는 순간, 바닥에는 검은 깃털만이 휘날리고 있었다.

“······.”

성우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저 괴물은 강력한 몬스터 따위에게 느낄 수 있는 게 아니라, 순전한 의미에서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그로테스크함을 선사하고 있었다.

‘······저건 대체 뭐지?’

조금도 종잡을 수 없었다.

꾸우― 꾸우―

괴물은 텐구를 통째로 잡아먹은 뒤 기분이 좋은 듯 짧은 울음소리를 내었다. 그러더니 하늘을 향해 네 갈래의 입을 쩍 벌렸다. 마치 광합성을 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후우우―

그러자 공기 중의 ‘심연의 호흡’이 놈의 몸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건 심연의 호흡뿐만이 아니었다. 수송기가 짓이기고 지나온 길, 시체가 된 일본군의 몸속에서 영혼이 빠져나와 심연의 호흡과 뒤섞인 채, 그 괴물의 몸속으로 흘러 들어가는 중이었다.

‘영혼을 삼켜?’

성우와 저 괴물과 자신이 여러모로 비슷한 점을 눈치챘다. 심연의 호흡에서 힘을 얻으며 ‘아누비스’ 상태가 되면 망자의 영혼을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이 그러했다.

다음 순간, 놈의 등 쪽 피부를 뚫고 무언가 튀어나왔다.

촤아아―

그건 검은 날개였다. 방금 통째로 삼켜버린 텐구가 가지고 있던 것과 비슷한, 깃털이 달린 검은 날개······.

‘먹잇감의 능력을 흡수한다.’

그때, 누군가 그 괴물 앞으로 걸어 나왔다.

“오랜만입니다.”

검은 양복 차림의 남자였는데, 전면형 방독면을 쓰고 있었다. 반투명한 강화 플라스틱 보호구 안으로 얼굴이 어렴풋이 비쳤다.

“아, 물론, 또 다른 나와 만나셨을 테지만 말이죠.”

“······진화 학회 우두머리군.”

성우는 놈과 한 번 마주한 적이 있었다. 범계역 지하 시설에서 마주했던 진화 학회의 수장, ‘DOCTOR’였다.

“그래서 너는 몇 번이지?”

놈은 ‘클론’을 만들어낼 수 있었으며 그 클론도 랭킹에 등재되었다. 한때는 각기 다른 넘버링을 가진 5명의 클론이 한국 서버의 20위권을 독차지하고 있기도 했었다.

“번호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느새 도심의 심연의 호흡이 옅어지며 햇빛이 들어왔다. 그의 방독면이 빛을 반사하며 표정을 정확히 볼 수 없게 됐다.

“결국, 전부 하나이니까요. 당신도 이곳에 널브러진 시체도, 모두 하나여야만 합니다. 앞으로 그렇게 되어야 하죠. 그게 이 게임의 엔딩입니다.”

하늘에는 여전히 공식 채널의 드론이 움직이고 있었다. 월드는 한국 서버에서 벌어지는 기이한 현상을 모두 목격하는 중이었다.

그들은 도통 이해할 수 없을 것이었다. 한국 서버는 도대체 뭘 하는 곳일지, 대체 왜 이런 일이 연달아 벌어지는지 말이다.

분명 한국 서버와 일본 서버의 전쟁이었는데, 어느 순간 한국 서버의 플레이어 둘이 마주 보고 서 있었다.

“일본 서버는 처음부터 이러려고 끌어들였군······.”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리하십니다. 죽음을 연구하고 있다고, 또 다른 제가 말씀드린 거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량의 죽음이라는 재료를 위해서는 전쟁이 필요했죠. 조금은, 쉽게 죽어줄 목숨이요.”

DOCTOR는 손을 뻗어 등 뒤의 괴물을 가리켰다.

“자, 이게 그 결과물입니다.”

그 괴물은 심연의 호흡과 영혼을 마시고 어떤 ‘조건’을 충족한 것인지, 급격한 진화를 이어가고 있었다.

어느새 흉측한 앞다리까지 튀어나왔는데, 그 모양새가 마치 거대한 갈고리 같았다. 하물며 철퇴 형태의 꼬리까지 돋아나는 중이었다.

“정식으로 소개해 드리죠. ‘키메라’입니다.”

키메라(Chimera),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괴물로 온갖 종류의 짐승이 뒤섞인 모습으로 알려져 있었다.

진화 학회가 만든 정체불명의 괴물 역시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부위들이 마구잡이로 엉켜있는 생김새였다. 그리고 그 부위 하나하나가 치명적인 무기처럼 보였다.

“죽음을 연구하여 만든 궁극의 생명체입니다.”

그런데 그때였다.

[전용 퀘스트]

- 제목 : 잘못된 죽음의 존재

- 유형 : 사냥

- 목표 : 플레이어 제조 생명체 ‘키메라’ 제거

- 보상 : 전용 스킬

죽음을 기만하는 자들이 잘못된 믿음으로 괴이한 의식을 행하고 있다. 그리고 그 결과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을 속히 제거하지 않는다면 놈들은 죽음을 기만하는 걸 넘어서 죽음을 무의미하게 만들 것이다.

그리고 그건, 더는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존재가 이 세상에 남지 않음을 뜻한다.

* 목표물을 오래 방치할 경우 감당할 수 없는 존재가 될 것입니다.

* 당신의 선택이 당신의 ‘운명’에 영향을 미칩니다.

오랜만에 ‘전용 퀘스트’가 발행되었다. 메시지를 확인한 성우는 고개를 들어 올렸다.

“죽음은 연구해서 통제할 수 있는 게 아니야.”

성우의 말에 DOCTOR는 피식 웃더니 옆으로 한 걸음 물러섰다. 어느새 변태를 마친 거대한 괴물, 키메라가 앞으로 한 걸음 다가왔다.

쿵―

그 크기가 어느새 30m 정도로 불어나 있었다. 퀘스트 메시지에서 말한 것처럼, 생명체를 죽인 뒤, 그 영혼을 흡수하여 점점 더 강해져 가는 모양이었다.

“한 몸이 된다는 게 그건가? 저 괴물에게 전 인류가 먹히는 거?”

“멋진 미래죠. 하나로, 궁극으로 향하는 겁니다.”

DOCTOR의 목소리는 아주 정중했다. 그가 이어서 말했다.

“자, 늦게 와서 미안하지만, 제가 클라이맥스 좀 뺏어 가도 되겠습니까?”

클라이맥스를 뺏어 가겠다니? 그 물음에 성우는 ‘닥터’와 ‘키메라’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리고 피식 웃었다.

성우는 품속에서 어떤 물건을 꺼냈다. DOCTOR는 그걸 바라보더니 역으로 코웃음을 쳤다.

“······그건 뭐죠? 저 녀석에게 대응해서 꺼낼만한, 그런 가치가 있는 물건입니까?”

그건 검은색의 왕관이었다. 아무런 장식품도 붙어 있지 않은, 밋밋한 모양의······.

“착각하지 마.”

[아이템 정보]

- 이름 : 그림자 왕의 왕관

- 등급 : 신화

- 분류 : 모자

- 효과 : 비공개 (자격 필요)

- 설명 : 그림자 왕의 유품을 모두 수집할 경우에 한하여 ‘그림자 왕의 권능’을 사용할 수 있다. * 그림자 왕의 유품 보유 (4/4)

“······아직 클라이맥스가 온 게 아니니까.”

성우는 천천히, 왕관을 썼다.

- 자격이 증명되었습니다.

- ‘그림자 왕의 권능’이 부여됩니다.

우우우우―

그 순간, 성우의 발아래, 성우의 그림자가 엄청난 크기로 확대되기 시작했다. 빛의 영향이 없음에도 모든 법칙을 무시한 채 끝없이 커져 나갔다.

그리고 이내 등 뒤의 빌딩에 닿았다. 마치 영사기의 불빛을 가로막은 것처럼, 거인의 형상이 빌딩의 한쪽 면을 가득 채웠다.

성우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림자가 홀로 움직였다. 그것이 양손을 천천히, 넓게 펼쳐 들었다. 마치 자애로운 왕처럼, 모든 것들 내려다보며 모든 것을 조율하듯······.

- 주의! 해당 지역에 ‘대강령(大降靈)’이 시작됩니다.

- 주의! 해당 지역에 ‘죽음의 응답’이 시작됩니다.

성우의 주변에서 검은 연기가 치솟았다. 그 속에서 수십 마리의 언데드가 등장했다. 이어서 검은 늪이 펼쳐지더니 좀비 떼가 기어 나왔다.

하물며 그 뒤로, 전장의 시체들이 엉겨 붙으며 ‘플레쉬 골렘’ 두 마리가 몸을 일으켰다.

그것들이 성우의 주변에 우뚝 섰다. 그건 성우가 소환할 수 있는 총력이었다.

“이건······ 이미 다 본 거 아닙니까?”

DOCTOR는 여전히 여유만만했다. 그 정도는 키메라의 적수가 되지 않으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내, 처음 보는 장면이 펼쳐졌다.

- 주의! 해당 지역에 ‘그림자 군단’이 일어납니다.

언데드 부대의 그림자가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그림자의 주인은 움직이지 않음에도 제멋대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들의 손이, 분명 2차원 평면이었던 것들이, 바닥에서부터 허공으로 불쑥 튀어나왔다.

츠츠츠츠―

그림자가 실체를 가지고 현실 세계로 기어 올라오기 시작했다.

츠츠츠츠츠츠―

그것들은 바닥에서 기어 올라와 언데드 사이에 몸을 세웠다.

그리고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그저 검은색뿐인 얼굴을 천천히 돌려, DOCTOR와 키메라를 바라보았다.

“이, 이게 무슨······.”

네크로맨서의 군세가 배로 불어나는 순간이었다.

“이제 클라이맥스다.”

언제나 그렇듯, 클라이맥스는 그가 원할 때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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