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8
42) 한일전, 부산 방어전 - 1
네크로맨서의 등장에 압도된 닌자들은 섣불리 움직일 수 없었다.
심지어 네크로맨서와 헌터 컴퍼니의 사장,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중에도 마치 엑스트라가 된 것처럼 입을 다물고 있었다.
“······.”
빠르게 달려들어 정확한 한 방 먹인다면, 어쩌면 제아무리 잘난 적이라도 즉사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몸이 움츠러들었다. 몸뿐만 아니라 마음마저 나약해진 기분이었다.
‘도저히 움직일 용기가 나지 않는다. 문제가 뭐지?’
그들은 몰랐지만, 그건 ‘신격’ 때문이었다. 데미 갓 상태의 신격에 억눌려 근육이 굳고 기가 질려버린 것이다. 검은 늑대 형상의 네크로맨서, 그의 녹색 안광이 와닿으면 몸이 절로 움찔거릴 정도였다.
“······이, 일본 서버의 정보 아, 알겠습니다.”
다음 사냥터를 ‘일본’으로 정했다는 네크로맨서의 말에, 사장이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닌자들은 그 모욕의 순간까지도 행동을 개시하지 못했지만······.
“그리고 그 전에 얘들 머리를 열어봐야겠어.”
“······머, 머리?”
의미는 알 수 없었지만, 그 살벌한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가만히 있더라도 살아남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제, 젠장! 쳐라!”
“어서 움직여!”
그렇기에 어떻게든 몸을 움직였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무너진 건물 천장과 외벽에서 기괴한 생김새의 스켈레톤들이 우르르 뛰어 들어온 것이다.
꽈득!
그리고 순식간에 달려들어 긴 팔로 닌자들을 낚아채, 머리를 꺾어버렸다.
“이, 이건 뭐야!”
그건 ‘가막 잔나비 스켈레톤’이었다. 숲 지형에서 엄청난 활약을 보여주는 녀석들이었는데, 이런 빌딩에서도 만만치 않은 움직임을 펼칠 수 있었다.
“으아아!”
“커, 커어!”
닌자들은 신격에 의해 감각이 둔해진 상태였기에 사방에서 뻗어오는 길고 두꺼운 손아귀에 손쉽게 붙잡히고 말았다.
그렇게 정리는 금방 끝났다.
하지만 그들에게서는 ‘기억 파편’이 나오지 않았다. 아무래도 수원에서 잡은 1번대보다 계급이 낮은 이들이라 그런지, 중요한 정보를 품고 있지 않은 듯했다.
다만 다른 정보통이 하나 있었다. ‘스펙터’로 엿들은 결과, 헌터 컴퍼니에게도 일본 쪽 정보망이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성우가 천장이 날아간 펜트하우스의 한 가운데, 소파에 걸터앉았다. 헌터 컴퍼니의 사장과 간부들이 그를 멀뚱멀뚱 쳐다보았다.
“······자, 이제 내가 말한 의뢰, 상담 좀 해주지?”
“무, 물론입니다.”
일본 서버가 사냥터가 될 예정이라는 건 농담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곳으로 안내해줄 길잡이가 필요했다.
***
헌터 컴퍼니는 성우에게 볼모를 잡히고 협박을 당한 이후, 충실하게 진화 학회의 뒷조사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진화 학회의 본진은 워낙 베일에 싸여 있었기에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오히려 그들의 뒤를 밟는 게 들통난 뒤, 한 팀이 전멸을 겪기까지 했다.
그렇게 진화 학회의 눈 밖에 난 결과, 다른 용병인 야마토 길드의 닌자들이 이들을 목덜미까지 칼을 디밀고 들어온 것이었다.
“비록 진화 학회의 본진을 알아내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무슨 짓을 하려는지는 캐고 있었습니다. 네크로맨서님께 분명 큰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헌터 컴퍼니의 사장 백준호는 은근히 자랑스러움을 내비치면서 성우의 눈치를 살폈다.
준호의 네크로맨서에 대한 감상은 언젠가부터 동경에 가까운 상태에 접어들었는데, 방금, 네크로맨서에게 목숨까지 빚지게 되자 동경을 넘어서 팬심이 되어버린 건지도 몰랐다.
“저희는 오래전부터 중국 서버와 일본 서버에 정보원을 두고 있었습니다. 그걸 바탕으로 실시간으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상황입니다.”
나름 체계를 중요시하며 대규모 사업을 꿈꿔온 만큼, 구색은 갖추어둔 상태로, 어느 정도 도움이 되어줄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그러니까 뭐든 말만 해주신다면, 아는 한, 능력이 닿는 한, 최대한 자세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일본 서버에서 나, 혹은 우리 서버를 공격할 움직임을 보이는 것 같던데?”
이에 준호는 곧장 브리핑을 시작했다.
“그렇습니다. 월드 퀘스트가 발행된 직후, 일본 서버에서는 한 가지 움직임이 돋보였습니다.”
“그게 뭐지?”
“일명 한벌론(韓伐論)입니다.”
야마토 길드를 중심으로 한 일명 ‘규슈 통합군’이 한국을 정복한다는 ‘한벌론’을 모토로 삼고 한반도 공세를 준비하고 있다는 정보였다.
해당 그룹들을 정보가 새어 나가지 않게 쉬쉬하고 있었으나, 서버 커뮤니티 내에서 찌라시가 도는 건 막을 도리가 없었다.
즉, 공식적이지는 않으나 한국 서버 침공 계획은 어느 정도 기정사실화된 상태라는 소리였다.
“자세한 내용이 있나?”
“떠도는 소문을 긁어모으고 일부 말단 관계자들에게 캐낸 것이기에 백 퍼센트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만, 꽤 대규모 병력이 부산으로 상륙 준비 중인 거로 보입니다.”
부산이라? 꽤 구체적인 부분까지 계획된 모양이었다.
“대규모 병력? 얼마나?”
“음, 그게······. 야마토 길드가 규슈의 머리라고 볼 수 있는데, 걔들이 실권을 잡을 때, 다수의 닌자를 부대를 동원하여 주변 조직의 우두머리를 암살하는 방식을 썼습니다. 그래서 규슈 쪽 조직들은 큰 병력 피해가 없는 상태입니다.”
준호는 머리를 긁적이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어, 음. 그래서 통합군으로 동원 가능한 병력이 4천 명은 넘을 거로 보입니다. 예비병력까지 따지면 최대 6천까지 추정하고 있습니다.”
최대 6천, 규슈 지역의 인구가 일본의 다른 섬보다 훨씬 적은 걸 생각한다면 엄청난 숫자가 분명했다. 확실히 전쟁으로 인한 피해가 적은 모양이었다.
“그래서 저희가 볼 때, 얘들이 대인 전투 경험은 좀 없지 않나? 그렇게 봅니다. 임진왜란 때, 왜군이 무서웠던 이유는 그들이 전국시대를 거치며 숱한 전투를 치른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지 않습니까?”
준호가 사족까지 덧붙였다. 다소 낙관이었다.
‘사실 4천? 아니 6천도 그리 많은 숫자는 아니다.’
성우는 이미 해적단, 붉은 혁명군을 상대하며 수천 명 규모의 플레이어 군대와 싸운 경험이 있었다.
‘문제는 질이지.’
준호의 생각처럼, 대인 전투 경험이 없다고 해서 수준이 낮을 것이라고 분석하는 건, 치명적인 실수가 될 수도 있었다.
‘게임으로 변한 이상 대규모 전투에서 실력보다 중요한 건 숫자, 숫자보다 중요한 건 레벨, 레벨보다 중요한 건 아이템이다.’
오히려 사람과 싸울 시간에 큰 던전을 공략하며 더 높은 레벨과 더 좋은 아이템을 확보했을 가능성도 있었다.
붉은 혁명군의 경우는 정복전을 통한 대인 전투 경험은 어느 정도 있었지만, 적극적인 사냥이 불가능했고, 그 결과 레벨이 낮은 축에 속했기에 언데드의 공세에 속수무책으로 휩쓸렸다.
반면, ‘투쟁 길드’는 대인 전투 경험이 거의 없었지만, 태백산맥에서 쌓아 올린 준수한 레벨을 토대로, 붉은 혁명군과 비교하여 훨씬 적은 숫자로 성우와 맞섰다.
물론 둘 다 처절하게 깨졌다는 공통점은 있었다.
어쨌든, 아직 일본 서버의 수준을 속단하기에는 일렀다. 판단을 세우기 위해서는 더 많은 정보가 필요했다.
“그럼, 계속 정보를 모아줘.”
“알겠습니다.”
성우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자 준호와 간부들 역시 따라서 우르르 일어섰다.
“아, 그리고 추가로 하나 더.”
성우가 검지를 들어 올렸다.
“······예! 말씀하시죠.”
“아이템이든 뭐든 좋으니 부산으로 빠르게 이동할 방법을 찾아봐.”
규슈 통합군은 한국 서버 점령의 첫 번째 거점으로 부산을 꼽았다. 하지만 이 좁은 땅덩어리 안에서도 부산은 너무나 멀었다.
“부, 부산이요?”
“그래. 문제가 생겼을 때, 곧바로 대응할 수 있게.”
순간 준호의 말문이 막혔다. 아무리 생각해도 전혀 쉽지 않은 의뢰였으니 말이다.
“의뢰 비용은 방금 살려준 목숨값이면 충분하겠지?”
“아, 예!”
하지만 못하겠다고는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네크로맨서는 그 말을 끝으로 본 와이번을 타고 사라졌다. 준호는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머, 멋있어······.”
그건 진심이었다.
***
성우는 수원 마을에 도착한 직후, 일본 서버의 부산 침공 계획을 어떻게 알려야 할지 고민했다. 커뮤니티에 함부로 글을 올렸다가는 오히려 적에게 정보를 내어주는 꼴이었으니 말이다.
이 문제를 한호는 간단하게 해결했다.
“아, 그런 거야 쉽죠. 제가 화랑 길드가 쓴 옛날 게시물에 비밀 댓글을 달게요.”
오래된 게시물이라면 누군가 확인할 염려가 거의 없었다. 그리고 그곳에 비밀 댓글을 달아서 확인하게 만든 뒤, 경고 메시지를 전달하면 그만이었다.
“역시 이쪽 분야에서는 머리가 빨리 돌아가네?”
“이 정도는 기본 아닙니까?”
한호는 본인의 아이디어대로 화랑 길드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성공했다.
─ 최강 돚거 이한호(비밀) : 안녕하세요. 제 아이디 아시죠? 저 네크로맨서 동료입니다. 화랑 길드에게 도움이 될만한 정보가 있어서 이렇게 비밀 댓글 남깁니다.
최근 일본 서버에서 수상한 움직임이 있는데 화랑 길드에서도 주의할 필요가 있어서······ (후략)
이에 불과 몇 분 뒤, 화랑 길드 측에서 확인하고 답글을 남겼다.
└ 화랑 보도국(비밀) : 경고 감사합니다. 하지만 우리 역시 바다를 두고 마주하고 있는 일본 서버의 움직임을 지속해서 감시 중이며 해안 포대도 다수 보유 중입니다.
걱정하시는 문제는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우리 화랑 길드는 평화를 사랑할 뿐, 결코 누군가에게 굽히지 않는 힘과 정신을 지니고 있습니다.
“뭔가 쌀쌀맞은 느낌인데요? 특히 마지막 문장에 뼈가 있다고 느껴지네요. 뭐, 문자로 태도를 짐작하는 건 미련한 짓이지만······.”
화랑 길드가 세계수 진영에 적대하지 않겠다고 밝혔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정치적인 자세일 뿐, 실제로는 네크로맨서에게 좋지 않은 감정을 품고 있다는 건 어쩔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들도 엄연히 악마 진영이 아니던가?
“······뭐, 이만하면 할 만큼 했지.”
알아서 잘하고 있다고 딱 잘라 말하는 이들에게 더해줄 수 있는 건 없으며 구태여 그럴 필요도 없었다.
“어휴, 화랑 길드가 부디 정신 바짝 차렸으면 좋겠네요. 해안 포대라니? 게임이잖아요. 어디로 어떻게 쳐들어올지 알고? 막, 땅굴로 들어올 수도 있고······.”
확실히 한호의 말처럼, 물리적인 공간을 통해서 정석적인 방법으로 침공해오리라 생각하는 건 안일한 태도였다.
게임은 언제나 상식 밖의 연출이 이어진다. 붉은 혁명군 역시 ‘미니 게임’이라는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대만 서버를 함락시키지 않았던가?
“우리는 다른 건 신경 쓰지 말고 우리 나름대로 준비하면 돼.”
어차피 언젠가는 전쟁이 찾아올 것이며 다른 진영은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었다. 독자적인 승리 방법을 마련해나가야만 했다.
***
전쟁은 어디에서부터 시작될까?
그 시각, 부산과 대마도가 사이의 대한 해협, 어둠을 틈타 한 척의 바지선에서 십여 개의 초대형 연이 날아올랐다.
“3번대, 부산 침투 개시. 행운을 빈다.”
그건, 닌자들의 고공 침투 수단인 ‘탑승형 강습 연’이라는 아이템이었는데, 말 그대로 초대형 연에 몸을 싣고 바람을 타고 날 수 있는 아이템이었다.
이렇듯, 야마토 길드는 생각보다 훨씬 은밀하고 빠르게 한국 서버 침공 작전을 진행하고 있었다.
이는 성우의 예상은 물론이거니와 헌터 컴퍼니의 정보력보다 몇 발자국이나 앞서고 있는 과감한 행동이었다.
후우웅―
닌자들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활공했다. 밤하늘과 밤바다가 구분되지도 않는 가운데 의지할 수 있는 건 오직 단 한 명, 특수한 아이템을 통하여 어둠 속을 헤쳐 볼 수 있는 선두의 ‘길잡이’뿐이었다.
나머지 닌자들은 희미한 빛을 매단 선두 연의 꼬리를 따라, 까마득한 어둠 속을 종잡으며 나아갔다.
“드디어 해안선이 보인다. 포대를 엄청나게 깔아뒀군.”
그들은 닌자 전용 스킬 중 ‘정신 단결’이라는 스킬을 통하여 먼 거리에서도 서로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워, 해안 포탑에 골드를 엄청나게 쓴 것 같은데, 다행히도 우리를 발견한 것 같지는 않다.”
화랑 길드의 ‘해안 포대’는 분명 위협적이었다. 부산을 따라 이어지는 해안의 요충지에 감시 초소를 설치하고 ‘기계식 고정 쇠뇌’라는 아이템을 다수 장비해둔 상태였다.
분명, 야마토 길드의 함대가 정면으로 접근했다면, 막강한 위력으로 상륙을 시도하기도 전에 몽땅 침몰당하고 말았을 것이었다.
하지만 이런 소규모의 은밀한 침투라면 걸러낼 도리가 없었다.
“······좋아, 좋아, 이대로만 스쳐 지나가서, 북쪽 산 중에 착륙한다. 지금부터 고도를 낮춘다.”
닌자들은 큰 소란 없이 어둠 속에서 부산, ‘구곡산’ 산중에 내려앉았다.
그리고 ‘탑승형 강습 연’ 아이템을 땅에 묻어 침투 흔적을 숨겼으며 최초 착륙지에서 먼 거리까지 이동하는 철저함까지 발휘한 끝에 한 장소에 모여 앉았다.
“자, 이곳에 ‘하이퍼 게이트’ 아이템을 설치한다. 얼마나 걸리겠는가?”
“대규모 마나 주입이 어려우니 적어도 12시간 정도는 필요합니다.”
한국 서버를 정복하기 위한 최초의 침투 수단으로 선정된 건 ‘하이퍼 게이트’라는 전설 등급 아이템이었다.
그건 10분간 유지되는 양방향 포탈을 열 수 있는 아이템으로, 동시 2명 정도가 통과할 수 있는 걸 고려한다면 상당수의 병력을 손쉽게 침투시킬 수 있을 것이었다.
“······곧 한국 서버의 진화 학회가 이번 작전을 지원한다. 그들이 부산에 독가스를 살포할 거다.”
그는 손가락을 들어 올려 산 아래, 화랑 길드의 진영 불빛을 가리켰다.
“그 혼란을 틈타 우리는 하이퍼 게이트를 시동하고 이 주변을 경계하여 작전의 은밀한 성공을 주도한다.”
“12시간 뒤에는 한국 서버 놈들은 꿈에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의 본대가 이 땅을 밟겠군요. 이거, 아주 재밌습니다.”
비록 한국 서버에 먼저 침투한 1번대와 2번대가 연락이 끊어지며, 그들의 생사조차 알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이들은 굴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숱한 희생을 치렀지만 끝내 임무를 완수해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순간, 오히려 자신감이 차 있었다.
“그래, 이곳을 시작으로 치고 올라가 세계수 진영을 뿌리 뽑아버리는 거다.”
전쟁은 언제나 그렇듯, 예상보다 이른 시점에서부터 시작된다.
***
한편, 세계수 진영은 다가올 전쟁을 어렴풋하게나마 눈치챘기에 다방면적인 대비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일본 서버의 부산 침공 계획에 대해서 알게 된 이후에는 수성전 위주 전략을 수정하여 장거리 원정을 위한 준비도 시작했다.
“······음, 만약 부산에서 전투가 벌어진다면 공성 병기를 먼 거리까지 옮길 방법도 고민해봐야겠어요. 인벤토리를 써도 10개가 한계일 텐데, 앞으로 공성 병기가 더 늘어날 테니 말입니다.”
수성전을 고려하여 공성 병기 배치를 짜고 있던 경수가 문제를 제기했다. 이에 대장장이들이 아이디어를 냈다.
“그 대형 언데드 있지 않습니까? 아, 본 와이번이죠? 그 녀석들 등에 발리스타를 다는 겁니다. 고정식 연노를 다는 것도 괜찮고요.”
본 와이번은 크기는 분명 그런 대형 무기 하나쯤 달아도 이상 없는 크기였다. 대장장이가 이어서 설명했다.
“본 와이번이 대만에서 해적들 쓸어버리는 장면을 봤는데, 공중 이점을 두고 근접 전투를 할 수밖에 없는 게 좀 아쉬웠습니다. 하늘에서 정지 비행을 하면서 화살을 비처럼 쏟아붓거나, 위력적인 한 방을 날릴 수 있는 장비를 만들어서 얹어 보는 건 어떨까요?”
그건 쉽게 말해 공중 포탑이 아니던가?
“크, 그거 좀 지리겠는데요?”
“괜찮은 생각이군요.”
성우도 그 아이디어에 동의했고 대장장이들이 곧장 작업에 착수했다.
우선 본 와이번의 등뼈에 공성 병기를 흔들리지 않게 단단히 고정할 수 있는 구조물을 제작했다. 또한, 고속 비행할 때를 대비하여 덮개까지 만들었는데, 바람의 저항을 최소화할 수 있는 장치였다.
그렇게, 얼마 되지 않아 프로트타입이 완성되었다. 대장장이들의 솜씨가 좋을뿐더러, 온갖 버프 효과가 중첩된 상태였기에 가능한 개발 속도였다.
그리고 실전 배치를 위해서는 테스트가 필요했다.
“시험 비행 시작합니다!”
성우는 본 와이번을 타고 날아오르는 동시에 웨어 울프 스켈레톤 한 마리에게 ‘고정 포탑’을 조종하게 했다.
팔달산 한 면에 과녁이 마련되어 있었다. 거리는 약 900m, 거리는 꽤 멀지만,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만큼, 시야각이 넓고 조준이 쉬웠다. 지상에 고정된 공성 병기와 비교할 때, 막대한 이점이었다.
“발사.”
성우의 의지가 부여된 웨어 울프가 포탑의 레버를 당겼다.
투―웅!
두꺼운 시위가 거칠게 튕기며 포탑이 한바탕 뒤흔들렸다. 거대한 철창을 엄청난 힘으로 쏘아 보냈음에도 본 와이번은 꿈쩍하지 않았다.
쉬이이!
그리고 철창은 하늘에서 지상으로, 중력의 힘을 부여받으며, 흙더미 위로 거칠게 내리꽂혔다.
파―악!
과녁의 흙더미가 마치 폭탄을 맞은 것처럼 치솟았다. 1m 20cm짜리 철창이 땅속으로 절반 정도 파고 들어갔다. 엄청난 위력이었다.
“대박!”
“1차 시도 성공입니다!”
저 자리에 과녁이 아니라 플레이어 혹은 대형 몬스터가 있었더라도 즉사시킬 수 있을 정도였다.
“나이스 샷이었습니다!”
본 와이번이 착륙하자 대장장이 팀장이 뿌듯함을 내비치며 다가왔다.
“몇 가지 자잘한 문제점은 곧 수정하도록 하고······ 이것 말고도 저희 팀에서 대형 언데드의 화력을 강화할 방법을 연구 중입니다. 뭔가 그럴싸한 게 나오면 바로 보고 드리죠.”
“좋습니다. 계속 수고 부탁드립니다.”
이렇듯, 세계수 진영은 갈수록 여러 방면에서 발전을 거듭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내, 천천히 준비해나갈 여유가 없다는 걸 깨닫고 말았다.
- ‘한국 서버’ 긴급 이벤트 발생!
“······어?”
“또 뭐야?”
눈치채지 못한 사이 부풀어 오르고 있던 전쟁이, 그들의 목전까지 들이닥친 것이다.
[서버 퀘스트]
- 제목 : 제1차 한일전(韓日戰)
- 유형 : 전쟁
- 목적 : 전쟁 승리
- 보상 : 추후 공지
한국과 일본, 두 서버는 ‘구식 세계’ 시절부터 첨예한 대립의 역사를 만들어왔다. 그리고 역시나 새로운 세계에서도 그 감정의 골은 이어진다. 두 서버의 플레이어들은 마침내 진정한 승부를 볼 수 있을 것인가?
[제1차 한일전(韓日戰) 안내 사항]
흥미진진한 대결을 위하여 특별한 룰을 부여할 예정입니다. 그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1) 공격 측(일본 서버)과 방어 측(한국 서버)의 ‘대표자’는 번갈아 가며 ‘전투 종목’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2) 개인 의사에 따라 ‘상대 서버’를 지지할 수 있으며 ‘상대 서버’로 이적할 기회가 부여됩니다.
3) 해당 퀘스트의 모든 과정이 ‘공식 채널’을 통하여 월드에 생중계될 예정입니다.
성우는 그 메시지를 보는 즉시 한호를 돌아봤다.
“한호야 당장 커뮤니티 확인해봐.”
한호가 커뮤니티를 확인한 결과, 역시나 부산 쪽에서 끔찍한 소식을 전하는 게시물들이 지속해서 올라오고 있었다.
“어, 그······ 몇 시간 전에 화랑 길드 진영에 테, 테러? 테러가 일어났다는데요?”
“······테러?”
“영등포역 테러랑 비슷한 상황이라는데 설마? 아, 그리고 대규모 공격까지 있었대요! 이, 일본! 일본 서버랍니다! 미친! 아오! 화랑 길드 이럴 줄 알았다니까!”
예상보다 이르게 ‘진화 학회’와 ‘야마토 길드’가 합세한 공격이 시작된 것이었다.
테러에 이어 기습까지 당한 화랑 길드는 본진을 버리고 후퇴하여 후방의 요새에서 항전 중인 상황이었다.
심지어 진화 학회에 의해 퇴로까지 차단당한 상태였는데, 방송과 게시물을 통하여 동맹들의 지원을 호소하고 있었다.
“와, 근데 이걸 가지고 한일전 퀘스트? 솔직히 이건 진짜 사악하네요.”
시스템은 양측 서버의 오래된 감정을 이용하여 퀘스트를 발행하기까지 했다. 창조주라는 존재가 이 상황을 즐기고 더 큰 전쟁을 종용하려는 게 분명했다.
하물며 그 장면을 ‘공식 채널’이라는 생소한 개념으로 월드, 즉 전 세계에 생중계한다니?
이건 분명 얼마 전 발행된 ‘월드 퀘스트’와 연계성이 있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았다. 세계수 진영의 현 상황을 세계에 목격시킴으로써 더욱 적극적인 도전을 불러일으키려는 것이다.
[공식 채널 : LIVE] 한국 서버 대 일본 서버 ‘월드’ 생중계 (7,915,144 시청 중)
당연하게도, 공식 채널의 방송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엄청난 수의 시청자가 몰려들었다.
무려 월드다. 세계의 모든 서버, 모든 플레이어가 kor-157와 세계수 진영이 탄생한 한국 서버를 목격하기 위해서 몰려들 것이었다.
한호가 해당 방송에 접속했다. 그러자 방송 화면에는 어떤 메시지가 떠올라 있었다.
- 첫 번째 ‘게임 종목’을 선택해주세요!
* ‘공격 측-일본 서버’가 먼저 선택합니다.
1) 전면전
2) 점령전
3) 결투
단순한 전투가 아니었다. 시스템에 의해 주어진 놀이 방식 아래에서 승부가 결정되는 것이었다.
- 일본 서버가 ‘3번(결투)’ 종목을 선택했습니다!
* 양측 대표는 1명의 ‘대전사’를 세워야 합니다.
* 불응 시 해당 서버에 ‘페널티’가 부여됩니다.
* 승리 시 해당 서버에 ‘버프’가 부여됩니다.
우선 선택권을 가진 일본 측은 대결, 즉 1대1 대결을 선택했다. 그리고 일본 측 ‘대전사’가 먼저 선정되었다.
[결투]
- 일본 서버 대전사 : 야마토의 도
- 한국 서버 대전사 : (미정)
일본 서버 아이디 ‘야마토의 도’ 그는 일명 ‘검성(劍聖)’이라고 불리는 오카타 아키라였다.
그리고 수십 만명이 지켜보는 ‘공식 채널’의 화면에 그가 등장했다.
“나는 야마토 길드의 혼부쵸 오카타 아키라! 한국 서버는 귀를 열고 들어라!”
불타는 화랑 길드의 본진 앞, 무려 4자루의 칼을 둘러맨 장신의 사내, 아키라가 날카로운 눈을 번뜩이며 카메라를 노려보고 서서 소리쳤다.
“다른 조무래기들은 관심 없다. 세계수 진영의 수장! 한국 서버를 구하고 싶다면 이곳으로 나와라! 너희의 무능함을 내 칼로 증명하겠다.”
전 세계의 플레이어가 지켜보는 가운데, 네크로맨서에게 노골적인 도전장이 날아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