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네크로맨서-117화 (117/244)

# 117

41) 한국 서버를 노리는 외세 – 2

닌자들은 언제나 누군가의 등 뒤에서 움직인다. 그리고 그들의 목숨을 손에 쥐고 살아왔다.

그런데, 지금처럼 자신의 목숨이 누군가의 손아귀에 사로잡혀 있는 경험은······ 그들로서는 처음 느끼는 공포였다.

‘설마 하야부사와 꼬리 둘도 모두 당한 건가? 시너지가 종료된 걸 보면 맞다.’

두령은 바닥에 널브러진 부하 셋의 시체를 바라보았다. 그렇다면 적의 정체를 목격하기도 전에 6명의 닌자가 당했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 10명의 닌자가 필요한 ‘닌자 작전’ 시너지 효과가 꺼지고 말았다.

붉은 옷의 여 무사는 세계수 진영의 플레이어들을 등지고 닌자들을 천천히 살폈다. 그것만으로도 모든 닌자의 위치와 움직임이 포착된 듯했다.

두령이 앞으로 나가 그녀 앞에 마주 섰다.

“네크로맨서 옆에 붙어 다니는 뛰어난 무사가 있다는 건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내 이름은 가토 토마다.”

그는 나름 정중하게 통성명을 했다. 하지만 상대의 표정은 차갑기만 했다.

“······어쩌라고.”

“뭐?”

토마는 오른쪽 발을 뒤로 빼며 경계태세를 갖췄다.

“예의범절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종족 같으니라고! 같은 무사로서 명예에는 관심도 없는 것이더냐?”

“너희 닌자 놀이에 너무 과몰입한 것 같은데?”

“뭐, 뭐!”

“······역겨워.”

자신들을 기습하여 큰 피해를 준 것도 모자라, 면전에 대고 비난을 일삼으니 분노가 치솟았다. 토마는 이를 갈며 그녀를 향해 칼날을 치켜세웠다.

“우리의 뒤를 밟아서 기습에 성공한 건 칭찬할 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 앞에 당당하게 나설 정도의 실력일까? 글쎄, 후회하게 해주지.”

토마는 뒤로 빼놓은 발뒤꿈치를 두 번 문질렀다. 그건 등 뒤에 서 있는 부하들에게 보내는 공격 신호였다.

쉭!

토마의 등 뒤에서 바람이 찢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공격이 시작되었다. 토마는 왼쪽 손목에 숨겨둔 수리검을 내던지는 동시에 오른쪽으로 달려나갔다.

‘사방에서 포위하면 반드시 틈이 나온다!’

포위, 그건 승리 공식이자 법칙이었다. 그리고 이 모든 건 여자를 포위하기 위한 움직임이었다.

부하들 역시 각기 다른 방향으로 달려가며, 등과 옆구리를 찌르기 위한 최적의 위치와 자세를 가다듬었다.

쉭! 쉭!

그러는 동안에도 수리검을 계속 내던졌다. 십여 발의 수리검이 하나의 목표, 여자를 향해 쏟아졌다.

챙! 채―앵! 챙!

그런데 여자는 가볍게 손목을 몇 번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모든 수리검을 쳐내버리는 게 아닌가?

‘됐다!’

하지만 수리검은 일종의 연막작전이었다. 수리검에 정신이 팔린 사이, 토마와 부하들은 이미 그녀를 에워싸는 데 성공한 것이었다.

“죽어라!”

“걸어 나온 걸 후회하게 해주지!”

그들은 닌자의 스킬인 ‘순간 은신’을 사용하며 쇄도했다. 제아무리 반응 속도가 뛰어나다고 한들, 9명의 닌자가 순간적으로 사라졌다가 나타나며 칼을 휘두르는 걸 막아낼 리가······.

“······어라?”

여자가, 눈앞에서 사라졌다.

“컥!”

그리고 등 뒤를 노리던 닌자의 눈앞에 튀어나왔다. 닌자는 당황하여 칼을 휘둘렀지만, 이미 그녀의 칼날이 목덜미를 스쳐 지나간 뒤였다.

“······발자국 추적이다!”

닌자들은 그 스킬이 뭔지 알아챘다.

“저건 검성께서 쓰는 스킬 중 하나······.”

그들의 보스인 검성, 오카타 아키라가 쓰는 스킬 중 하나인 만큼, 여자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확실하게 체감이 되는 순간이었다.

촤―악!

그리고 눈 깜짝할 사이, 닌자 한 명의 목이 또 달아나버렸다. 이제 7명 남았다.

“제, 젠장!”

“막아!”

공격 중심에서 방어 중심으로 전환되는 건 한순간이었다. 닌자들은 뒤로 도약하며 여자와 거리를 벌렸다. 계획된 움직임이 아니라 본능적인 도주였다.

하지만 여자는 한 마리 들짐승처럼 달려들며 닌자들의 목덜미를 차례차례 물어뜯었다.

“으악!”

“제, 젠장! 저리 가!”

챙! 채―앵! 촤악!

그녀와 칼이 맞닿는 순간, 몇 합 겨루지도 못한 채, 몸 어딘가가 잘려나가기 일쑤였다.

이제 5명 남았다.

“두, 두령,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

부하가 물었다. 그러나 눈앞에 깜깜한 건 토마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고개를 내저었다.

“······젠장! 이, 이 정도면 우리 선에는 방법이 없다. 검성께서 직접 나서야 할 거다.”

“검성께서? 그 정도입니까?”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일 수도······.”

토마 역시 여자의 실력을 절절하게 체감했다. 하지만 그건 자신은 죽었다 깨어나도 이길 수 없다는 것뿐이지, 정확한 깊이까지는 알 도리가 없었다.

“그, 그럼 이제 뭘 어떡합니까?”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도주뿐이다.

하지만 그 말은 감히 입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과연 도망칠 수 있을까? 이미 저 괴물의 손아귀에 붙들린 상태가 아니던가?

그리고 그의 생각을 읽은 것처럼, 여자가 나직한 목소리로 천천히 읊조렸다.

“······도망칠 생각은 하지 마.”

그건 사망 선고였다.

그 순간, 그녀의 어깨 위를 떠돌던 푸른 불꽃이 그녀의 칼날에 스며들었다. 검은 칼날에서 시퍼런 파동이 번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칼날이 휘둘러지자

화아아아!

수십 개의 푸른 검기가 고속 회전하며 전방으로 흩뿌려졌다.

콰과과과―과!

마치 수십 마리의 맹수가 일제히 달려들어, 발톱으로 모든 걸 짓이겨버리듯, 그녀의 시선이 닿는 모든 곳에 푸른 검기가 닿았다. 그리고 찢어발겼다.

“으어!”

“······컥!”

단 한 번의 휘두름만으로 두 건물 사이의 모든 걸 휩쓸어버린 것이다.

닌자들은 어떻게든 몸을 숨기려고 했지만, 어디로 움직이든 검기가 날아들어 그들의 유약한 신체를 토막 냈다.

그건 폭풍이었으며, 그게 끝이었다.

후우우―

한바탕 난리 속에서 일어난 바람만이 골목으로 스며들며 웅얼거릴 뿐이었다.

“······누, 누님? 지수 누님?”

그 장면을 멍하니 바라보던 한호가 정신을 차리고 다가왔다. 지수는 칼에 묻은 피를 닦아내고 등 뒤의 칼집으로 복귀시켰다.

“아, 아니 그동안 어디 갔다 오신 거예요? 되게 걱정했는데! 그리고 어떻게 딱 이렇게 완벽한 타이밍에······.”

“몇 시간 전에 와있었어요.”

“아, 그럼?”

지수는 이미 몇 시간 전에 수원 지역에 도착한 상태였다.

그러나 주변을 떠돌고 있는 불길한 인기척을 감지한 뒤, 곧바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기로 했다. 암살자들의 뒤를 쫓으며 그들을 역으로 습격할 타이밍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 방법은 성공적이었다. 암살자들이 눈치채고 도주하는 걸 방지한 건 물론이거니와 한 명도 살려두지 않고 처리해버렸다.

“성우 씨는요?”

“아, 선배도 곧 올 거예요.”

그리고 약 1시간 뒤, 성우가 도착했다.

***

지수는 성우에게 그간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투쟁 길드가 사용한 ‘신령의 진경산수화’ 아이템에 의해 태백산맥 한가운데 떨어진 이후, 지수는 산중에서 혈투를 벌이며 살아남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들 중에서도 유독 강한 한 마리의 몬스터를 쓰러뜨리는 순간 ‘히든 퀘스트’가 발행되었다.

[히든 퀘스트]

- 제목 : ‘대산맥의 왕’과 조우하라

- 유형 : 목표 발견

- 목표 : ‘왕의 산채’에 도달

- 보상 : 히든 퀘스트 ‘추가 진행 자격’ 획득

태백산맥을 지배하는 ‘대산맥의 왕’은 자신의 ‘가신’ 중 하나를 쓰러뜨린 강자와 대면하고 싶어 합니다. 그는 난폭한 몬스터가 아니며, 이성을 지닌 존재로서, 자격이 있는 플레이어들과의 교류를 원하고 있습니다.

대산맥의 왕과 마주하게 되면 ‘예상하지 못한 퀘스트’를 얻게 될 겁니다. 그리고 그건 당신의 운명이 큰 변화를 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 48시간 이내에 완수하지 못할 시 ‘히든 퀘스트’가 취소됩니다.

* 대산맥의 왕이 당신을 시험할 예정입니다. 왕의 산채에 가까워질수록 훨씬 더 포악한 몬스터가 도사리고 있을 겁니다.

“그리고 오랫동안 산을 헤맨 끝에 대산맥의 왕이라는 보스 몬스터와 만날 수 있었어요. 뭐랄까, 이무기와 비슷한 존재였달까······.”

즉, 대화가 통하는 상대였다고 했다. 그런데 이어지는 설명으로는 훨씬 기가 막힌 존재였다.

“······대산맥의 왕, 그가 저한테 퀘스트를 줬어요.”

대화가 통하는 걸 넘어서 몬스터에게 받는 퀘스트라니? 그렇다면 단순한 보스 몬스터가 아니라 NPC 역할까지 겸하고 있다는 소리였다.

“어떤 퀘스트죠?”

“투쟁 길드가 빼돌린 ‘신선의 삼’이라는 아이템을 찾아오라고 하더라고요. 그 보상으로 성우 씨가 모으고 있는 그림자 왕의 마지막 아이템, 그리고 제 각성이라는 보상을 내걸었고요.”

‘각성’이라는 건 현재까지 4성 이상의 직업을 뽑은 플레이어들에게만 주어지는 ‘전용 퀘스트’를 클리어한 끝에 얻을 수 있는 특전이었다.

지수의 경우는 3성 직업인 ‘착호갑사’를 뽑았기에 아쉽게도 전용 퀘스트를 받을 수 없는 상태였다.

하지만 절대적인 제한은 없는 듯, 히든 퀘스트를 통해서 그 자격을 얻을 수 있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그림자 왕의 유산이라······.”

그 이름이 여기서 나올 줄은 몰랐다.

“아, 대산맥의 왕이 한 가지 아이템을 추가 보상으로 고르라고 했는데, 그게 딱 눈에 띄었어요. 성우 씨에게 필요한 아이템이니까요.”

성우가 찾고 있던 ‘그림자 왕의 유산’ 마지막 아이템이 태백산맥에 있었다. 지수가 그걸 포착하여 퀘스트 보상으로 꼽은 것이었다.

“그런데 여기까지는 어떻게 온 거예요? 꽤 먼 거리일 텐데?”

“아, 그것도 대산맥의 왕이 도와줬어요.”

대산맥의 왕은 원하는 장소로 포탈을 열 수 있는 아이템까지 내줬다.

그리고 지수는, 투쟁 길드를 쳐부순 성우가 ‘신선의 삼’을 가지고 있으리라 예상하고, 곧장 수원으로 향하는 포탈을 연 것이었다.

“이렇게 도와줄 정도면, 신선의 삼이라는 게 되게 간절한 모양이군요.”

“그런 것 같아요. 어떤 목적인지는 알 수 없지만, 당장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이니까요.”

성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품속에서 ‘태백산맥의 내단’을 꺼냈다. ‘신선의 삼’을 섭취한 범열을 죽였을 때, 그의 몸 안에서 나온 아이템이었다.

[아이템 정보]

- 이름 : 태백산맥의 내단

- 등급 : 전설

- 분류 : 소비

- 효과 : ‘산의 정기’를 받아들여 엄청난 능력치 상승을 얻을 수 있습니다. 또한, 자연과 정령에 대한 ‘친화력·지배력’이 대폭 상승하며 때에 따라 ‘산신의 힘(신격)’을 얻을 수 있습니다.

* 주의! 온전히 흡수하기 위해서는 최소 80 이상의 ‘체력 수치’ 필요합니다. (권장 수치 : 100)

* 주의! 다른 ‘신격’을 보유하고 있으면 서로 상충하여 악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 설명 : 자격이 없는 이가 ‘신선의 삼’을 억지로 섭취하여 오히려 힘을 빨아 먹힌 뒤 형성된 ‘내단’으로, 오만한 이의 능력치를 흡수하여 한층 더 진해진 상태입니다.

“이게 아마 그 신선의 삼이라는 아이템일 겁니다.”

무려 신격을 얻을 수 있는 아이템이었지만, 성우는 쓸 수 없을뿐더러, 사용 조건을 만족할 수 있는 동료도 없었다. 무엇보다 지수를 믿었기에 흔쾌히 내주었다.

‘그리고 나한테는 이것보다 그림자 왕의 유산이 훨씬 가치 있으니까.’

그림자 왕의 유산, 그 마지막 아이템을 얻을 수만 있다면, 강력한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었다. 투자 비용이 얼마가 됐든 마다할 수 없었다.

“아, 맞는 것 같네요. 고마워요. 그림자 왕의 마지막 유산, 제가 꼭 가져올게요.”

지수가 ‘태백산맥의 내단’을 받아들었다. 그리고 스크롤 한 장을 꺼냈다. 태백산맥으로 복귀할 수 있는 아이템으로 보였다.

“이제 다시 가봐야 할 것 같아요.”

그녀를 다시 보내야 한다는 게 썩 내키지 않았지만, 그녀를 믿고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조심하세요. 무조건 믿지 마시고요. 말을 번지르르하게 잘해도 결국은 몬스터입니다.”

“명심할게요.”

지수는 이내 스크롤을 사용하여 포탈을 열었다. 그리고 그 너머로 걸어 들어갔다. 직후, 포탈이 닫히며 그녀의 모습이 다시금 사라졌다.

“앵? 아니 지수 누님 또 어디로 간 거예요? 독립하시는 거 아니죠?”

“출장 갔다고 생각해.”

“······앵? 호, 혹시나 해서 말씀드리는데 저, 저는 출장 보내지 말아 주세요.”

직후, 성우는 닌자들의 시체를 스켈레톤으로 일으켰다.

- 망자의 ‘기억 파편’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래, 누가 너희를 보낸 건지 보여줘.”

해외 서버의 공격을 대비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이른 시간에 암살조가 파견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당황스러운 한편, 호기가 들었다.

‘뿌리를 알아내서 역으로 갚아준다. 그 누구도 쉽게 머리를 디밀지 못하게 말이야.’

도전자들에게 철저한 대가를 치르게 할 생각이었다.

이내 기억 파편을 통해서 영상이 흘러나왔다. 닌자의 기억이었다.

장소는 한국, 한 쇼핑물의 로비였다. 그의 시야 안에 수십 명의 닌자가 들어왔다. 지수가 처리한 닌자보다 2배는 많은 숫자였다.

‘어딘가 닌자들이 더 있다는 뜻이군.’

시점의 주인이 한반도 지도를 펼쳐 들었다. 그의 손가락이 현 위치로 보이는 곳을 짚더니 그다음으로 수원으로 이어졌다.

“우리 1번대는 계속 동쪽으로 움직여서 수원으로 올라간다. 너희 2번대는 이 대로를 따라 천안까지 가서 임무를 완수한다.”

습격 며칠 전의 기억인 듯했다.

“······천안역에 있는 ‘헌터 컴퍼니’의 빌딩, 그곳을 청소하고 수원으로 합류, 이게 플랜A 맞습니까?”

“그래. 특정 목표는 없다. 그냥 깨끗이 청소해. 재건할 수 없을 정도로 말이야. 그게 의뢰인의 요구다.”

성우는 그 지점에서 구린내를 느꼈다.

‘의뢰인? 그것도 나와 헌터 컴퍼니를 동시에 노릴만한 의뢰인이라?’

딱 하나의 이름이 떠올랐다.

***

천안역, 한 호텔 건물 옥상에 검은 옷을 입은 닌자들이 속속히 안착했다. 건물의 외벽을 타고 올라와 옥상으로 침투한 것이다.

푹!

“······컥.”

그들은 옥상의 경비병들을 손쉽게 암살하고 건물로 들어가는 계단 입구에 모였다.

“올 클리어입니다.”

5명의 경비병을 죽이는 동안에도 아무런 소란도 없었다. 즉, 빌딩에 있는 이들은 누군가 침입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상태였다.

“좋아. 지상에서 붙잡은 놈을 고문해서 얻은 정보에 따르면, 놈들의 수뇌부는 펜트하우스에 있다고 한다. 거기를 먼저 쓸어버리면 쉽게 무너질 거야.”

2번대의 두령은 브리핑을 끝낸 뒤, 복면을 올려 썼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바닥을 가리켰다.

“자, 환기구로 진입해서 상층부 복도 경비부터 청소한다. 작전 개시.”

닌자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예정된 작전을 그대로 이행했다. <닌자 작전(1단계)> 시너지는 그런 그들의 움직임에 치명적인 힘을 더해줬다.

마치 무통의 치명적인 독이 혈관을 타고 퍼져나가듯, 닌자들은 건물을 천천히 잠식해나갔다.

그리고 잠시 후, 펜트하우스 문이 열리며 7명의 닌자가 무법적으로 들어왔다.

“응?”

“뭐야!”

그 순간까지 아무것도 모른 채, 펜트하우스의 사무실에서 회의 중이던 헌터 컴퍼니의 사장과 그 휘하 간부들은 놀란 토끼 눈이 되는 게 당연했다.

“안녕하신가?”

“······누구냐.”

예상하지 못한 방문에 놀라는 동시에 절로 위압감을 느꼈다.

이곳은 다른 곳도 아닌, 호텔의 최상층 펜트하우스가 아니던가? 최고의 경비들이 이중삼중으로 지키고 있는 곳이란 말이다.

그런데 소리소문없이 이곳의 방문을 열고 들이닥칠 정도라는 건······ 보통내기가 아니라는 걸 떠나서, 자신들이 상대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뜻이었다.

“모두 멈춰.”

그렇기에 사장은 무기를 꺼내려는 간부들을 제지한 뒤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는 주머니에 손을 꽂으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알겠군. 진화 학회와 수차례 밀회를 가지던 야마토 길드 소속의 닌자들, 맞지?”

“우리 의뢰인의 뒤를 캐고 있다고 하더니, 영 무능력자들은 아닌 모양이군?”

닌자는 그렇게 말하며 마스크를 내렸다. 그리고는 소파에 걸터앉았다. 여유가 느껴지는 움직임이었다. 사장은 그의 건너편에 앉아 닌자를 마주 봤다.

“당연하지 그 의뢰인이 한때 우리 의뢰인이었거든. 그리고 일본 서버 정보를 우리를 통해서 수집했으니까.”

“으흐흐! 그래? 그런데 지금 잘난 척할 때가 아닌 것 같은데? 입만 산, 무능력한 서버 같으니라고······.”

촤악!

그 순간, 닌자들이 움직이며 4명의 간부 중 2명의 목을 그어버렸다. 그리고 사장의 목덜미에 칼날이 드리워졌다. 사장이 눈을 부릅뜨며 침을 꿀꺽 삼켰다.

“이봐, 괜한 허세 부리지 마. 우리는 협상가가 아니야. 우리는 오로지 사람을 죽이기 위해서 움직인다.”

“······.”

“멍청한 한국 서버, 그리고 이제 곧 너희 서버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네크로맨서도 죽을 것이다.”

그 대목에서 헌터 컴퍼니 사장은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하하!”

“······웃어?”

자신도 한때 의뢰를 받고 노렸던 대상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범접할 수 없는 상대라는 사실을 느껴온 터였다.

“······네크로맨서가 죽어? 그럴 리가.”

그리고 ‘월드 퀘스트’가 뜨는 순간, 경외감에 사로잡혔다. 네크로맨서, 그 사람이야말로 이 게임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인물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렇기에 그 사람은 죽을 리가 없다는, 모호한 믿음이 있었다.

이에 닌자는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입꼬리에 경멸이 어려있었다. 그러더니 온갖 말을 속사포처럼 쏟아내기 시작했다.

“어이, 어이! 지금 그럴 리가라고? 그래, 너희는 그게 문제야.”

닌자는 고개를 디밀며 칼 손잡이에 힘을 주었다. 사장의 목덜미에서 핏물이 흘렀다.

“너희는 아주 먼 과거부터 우물 안에서 헤엄치면서······ 아무것도 모르는 주제에 자존심만 지키려고 아등바등했지. 조금만 잘난 게 있어도 그걸 움켜쥐고 세상을 다 가진 양 말이야!”

쩍!

그가 테이블을 내리쳤다. 원목 테이블의 가운데가 망치로 내려친 것처럼 움푹 파였다.

“······.”

“하지만 결국, 이렇게 야생에 놓이는 순간 너희의 민낯이 드러나는 거다. 이 열등한 민족아!”

닌자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칼을 붕붕 돌리기 시작했다.

“그러니 이제 죽······.”

하지만 그 순간, 닌자는 고개를 번쩍 들어 올렸다.

“두령!”

“뭔가가 옵니다!”

모든 닌자가 무언가를 느낀 것처럼 소스라치게 놀라며 창밖을 경계했다.

그때, 벽에서 무언가 꿈틀거리는 게 모두의 눈에 띄었다. 그건 마치 유령과 같은 생김새였는데, 이내 벽을 통과하여 사라져버리는 게 아닌가?

그리고 다음 순간······.

쿵! 쿵! 꽈드드―득!

엄청난 진동과 함께, 호텔의 천장에서 팽팽한 파열음이 울렸다. 이내 거미줄 같은 균열이 번지며 돌가루가 쏟아지더니, 천장이 통째로 들어 올려졌다.

“대체!”

후우우―

천장의 파편과 함께 바람이 쏟아져 들어왔다. 햇빛이 직선이로 내리쬐자 닌자들이 눈을 찌푸렸다. 헌터 컴퍼니의 사장은 그 틈 사이로 무언가 발견했다.

“서, 설마······.”

십여 마리의 ‘본 와이번’이 우악스러운 발톱을 치켜들고 콘크리트 더미를 두부처럼 긁어내고 있는 장면이었다.

“······네크로맨서?”

“뭐? 그, 그럴 리가?”

닌자가 당황이 드러나는 목소리가 부정하자 사장이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하하, 그럴 리가라고?”

“이, 이이! 이 새끼가 감히!”

닌자가 칼을 휘두르려고 했지만, 그 순간, 펜트하우스 한가운데로 암녹색 로브를 입은 남자, 네크로맨서가 원목 테이블 위로 착지하며 가로막혔다.

닌자들은 기겁하면서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당장이라도 달려들 듯한 자세를 취했지만, 감히 달려들지 못했다.

- 알 수 없는 기운에 의해 신체 기능이 위축됩니다.

* 모든 능력치가 하락합니다. (-4)

그들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메시지까지 마주하자 당황을 넘어서 공포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이건 뭐야!”

“느, 능력치가 왜 떨어지는 거야?”

“거기에다가 오, 옥상을 뜯고 들어오다니!”

네크로맨서는 그들 사이, 한가운데에 선 채,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 시선은 이내 헌터 컴퍼니의 사장에게서 멈췄다.

“내 의뢰, 잘 처리하고 있나?”

“아, 그게······.”

그가 목에 난 상처를 어루만지며 얼버무리자 성우가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추가 의뢰를 요구하지.”

“추가 의뢰 말입니까?”

“일본 서버에 대한 정보를 가져와.”

“일본 서버라면······.”

네크로맨서의 시선이 이번에는 닌자, 두령의 얼굴에 닿았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다음 사냥터가 거기가 될 것 같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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