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네크로맨서-114화 (114/244)

# 114

40) 세계수의 진영 – 3

좁은 토굴 안으로 잘 정비된 파티가 행군 중이었다. 총 25명, 세계수 진영 소속의 플레이어들이었는데, 언뜻 보더라도 지친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하아······.”

“모두 조금만 버텨 곧 반환점이야.”

최정예 그룹이 되기 위한 하드 트레이닝, 그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성우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도 적극적인 사냥을 통하여 수준을 올려 온 건 사실이지만, 최고 난이도의 던전을 공략한 경험은 거의 없는 상태였다.

“뭐, 뭔가 온다.”

우어어!

“트, 트롤이다! 그것도 4마리나 온다!”

“당황하지마! 우리 정도 레벨이면 잡을 수 있어!”

쿵― 쿵― 쿵―

물론 완전한 오합지졸은 아니었다. 대형 몬스터가 정면으로 달려들어도 빠르게 침착함을 되찾고 맡은 역할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탱커 전진!”

“방패에 보호 마법을 걸어줘!”

탱커들이 좁은 길목을 틀어막고 단단하게 버틸 준비를 끝마쳤다. 그러자 후미에 있던 마법사들이 지팡이를 휘둘러 마법을 준비했다.

“근육 마비!”

“무거운 다리!”

“실드 브레이커!”

달려드는 트롤 무리에 상태 이상 마법을 걸어 약화한 뒤, 원거리 딜러들이 엄청난 화력을 퍼부었다.

쉬익! 쉬익!

수십 발의 화살이 트롤의 다리를 집중적으로 공격하자, 버티지 못하고 하나둘 엎어지기 시작했다.

우어어······.

“됐다! 돌격!”

“마무리해! 죽여!”

마무리는 총공세였다. 트롤 종족의 회복력은 매우 빠른 편이기에 조금의 여유도 내줄 수 없었다. 곧장 달려들어 급소를 찔러야만 했다. 플레이어들은 일말의 고민 없이 돌격하기 시작했다.

푹! 푹!

살벌한 소리가 토굴을 연신 울렸다.

- ‘지하 트롤’을 사냥하여 3,100골드를 얻었습니다.

- ‘지하 트롤’을 사냥하여 4,550골드를 얻었습니다.

- ‘지하 트롤’을 사냥하여 3,650골드를 얻었습니다.

- ‘지하 트롤 감시자’를 사냥하여 13,500골드를 얻었습니다.

한 마리를 혼자 잡는다면 무려 6만 골드를 줄 만큼 강력한 몬스터였지만, 잘 훈련된 25명 규모의 파티라면 어렵지 않게 사냥할 수 있었다.

물론 방심한다면 눈 깜짝할 사이에 방패 벽이 무너지고 방어력이 약한 마법사와 궁수들이 학살당할 수도 있었다. 다행히도 아직은 그런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다.

“후, 됐다. 끝났다. 저기 2층 입구, 반환점이야.”

“모두 수고했어. 전보다 훨씬 빠른 것 같은데?”

이처럼, 인근 지역인 ‘서호 공원’에 생긴 대규모 던전, ‘트롤의 토굴’의 지하 1층까지만 공략하고 퇴장하는 방식으로 전투 경험을 축적하는 중이었다.

총 3층으로 이루어진 던전이었는데, 1층은 비교적 안전한 지역이었기에 희생자가 단 1명도 발생하지 않은 상태였다.

하지만 벌써 11시간째, 정해진 차례에 따라 쉼 없이 공략을 이어오고 있으니 체력이 남아나지 않았다.

“이번엔 좀 제대로 쉬고 싶다.”

“2시간도 못 쉬고 계속 들어오니까 진짜 토하겠다.”

갈수록 공략 속도가 빨라지고 있었으나, 아이러니하게도 그만큼 쉴 시간 역시 줄어드는 중이었다. 다음 차례가 금방 돌아오고 있으니 말이다.

‘진짜 지옥이다.’

‘너무 힘들다. 괜히 열심히 하겠다고 했나?’

그렇기에 시간이 지날수록 지치는 걸 넘어 한계에 봉착했음을 느끼고 있었다. 몇몇은 심심찮게 코피를 쏟기도 했다.

끝없는 고행에 플레이어 모두가 당장이라고 포기하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못하겠다고는 절대 말 못 하겠다.’

그들은 트롤의 시체를 갈무리하고 장비를 정리하며 맨 뒤에 서 있는 자, 네크로맨서의 눈치를 봤다.

“······.”

그는 싸움의 흔적을 쓱 둘러보더니 아무 말 없이 돌아섰다.

그러자 후방에서 대기 중이던 스켈레톤들이 우르르 다가와, 지하 트롤 시체를 짊어지고 던전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그건 공략 종료를 뜻했다.

“저거······ 우리 잘했다는 뜻이지?”

“아직 모자란다는 의미 아니야?”

“······후.”

플레이어들은 네크로맨서의 반응을 좀처럼 종잡을 수 없었다만, 그가 뒤에 서 있으므로 보다 적극적으로 전투에 임할 수 있었다. 위급 상황이 벌어진다면 그가 직접 나설 테니 말이다.

즉, 가장 빠르고 안전하게 성장할 수 있는 길이라는 걸, 모두가 잘 알고 있었다.

한편, ‘트롤의 토굴’ 던전 입구에는 다음 조가 대기 중이었다. 역시 얼마 쉬지 못하여 여전히 녹초 상태였지만, 그대로 공략을 준비할 수밖에 없었다.

“하아, 피곤해 죽겠다······.”

“나 진짜 2번만 더 뛰면 죽을지도 몰라. 이제는 졸면서 싸울 정도다. 제발 조금만 늦게 나와라.”

하지만 그들의 바람과 다르게 던전 입구가 빛을 발했다. 그건 앞선 던전 공략이 종료되었으며 다음 순번이 들어갈 차례라는 걸 의미했다.

“오? 뭐야 벌써 나와? 얼마 안 됐잖아?”

“······엄청 빠른데?”

이내 앞서서 들어갔던 3조가 퇴장하기 시작했다. 기진맥진한 상태의 플레이어들이

“3조, 너희 15분 34초다.”

“이야! 지난번보다 4분이나 단축했네? 대박이다.”

한계에 달한 상태에서 겨우 공략을 마친 3조였지만, 수치로 드러나는 성적 앞에서는 절로 의기양양해졌다.

“15분? 오? 뭐, 근데 계속하다 보니 점점 저절로 싸우게 되는 것 같은데요? 무의식적으로 알아서 막 스킬이 나가더라고요?”

“맞아. 이번에는 진짜 화살이나 마법이 한 방도 안 빗나가고 알차게 공략한 것 같다. 계속하니까 늘긴 느네?”

이들은 매 순간 성장해나감을 느끼고 있었다. 불과 2시간 전보다 더 강해졌다는 게 피부로 와닿을 정도였으니, 성취감이 없을 수가 없었다.

***

그리고 이렇게 얻은 ‘지하 트롤’의 시체에서 가죽과 피를 뽑아내고 있었다. 향후 전쟁을 위한 아이템 재료까지 잔뜩 축적되어가는 중이었다.

“어? 또 들어온다!”

수원 마을, 상공에 그림자가 드리웠다. 성우의 본 와이번이었다. 총 3마리가 공터에 내려앉자 생활·제작 분야의 플레이어들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뭐? 벌써? 왜 이렇게 빨라! 아직 직전 물량도 다 처리 못 했단 말이야!”

“공략 쪽 애들 점점 미쳐 날뛰는 거 아니야? 아니, 갈수록 지치는 게 정상이지 무슨 가속도가 붙고 있어?”

이들은 분업화를 통해 거의 공장 수준으로 움직이며, 해체 작업과 아이템 제작을 일사불란하게 진행했다.

쌓아놓고 느긋하게 진행할 수도 있었지만, 언젠가 다가올지 모르는 총력전(Total war)을 대비하여 훈련하고 있는 셈 쳤다.

“박스 꽉 찼어. 여분의 박스 가져와!”

“회복 물약만 이미 60박스가 넘었어.”

“미친, 이 정도면 우리 박카스 회사 아니냐?”

자체 재생력이 뛰어난 ‘트롤의 피’는 회복 물약의 재료였다. 생으로 복용해도 상처가 회복될 정도였으나 가공을 통하여 훨씬 효과적인 아이템으로 재탄생했다.

“망할 트롤 새끼들, 가죽이 무슨······ 윽! 너무 질겨서 손목 아파 죽겠다. 후······. 무두장이 김 씨 아저씨가 평화 시장에서 일했었는데, 그때보다 지금이 더 빡세다는데?”

“그 말 할 시간에 가죽 한 벌이라도 더 손질해.”

몬스터의 가죽은 방어구 재료로 제격이었다. 무두장이와 대장장이가 합세하여 평균 이상의 방어력을 끌어낼 수 있었다.

이외에도 조리사 직군들은 버프 효과가 있는 음식들을 여럿 조리해서, 필요한 이들에게 배급하고 있었다.

무한 공략 시작 13시간 차, 잠깐의 휴식이 주어졌을 때, 경수가 찾아와 보고했다.

“평균 레벨이 11을 넘었습니다. 정확히는 11.6이니까 반올림하면 12는 되겠어요.”

226명의 플레이어의 평균 레벨은 무려 11.6이었다. 아직 싸울 수 없는 어린아이와 레벨을 올리는 게 까다로운 생활·제작 분야의 플레이어를 제외한다면, 평균 레벨은 훨씬 상승할 것이었다.

하물며 대부분의 생존자 그룹에서는 골칫거리 취급받기 마련인 노인들까지 제 역할을 해내고 있었다.

“할아버지가 13레벨이라고요? 헐? 얼마 전까지 7레벨 아니셨나요?”

“허허, 월남전 때 마음으로 뛰니까 몸도 그때로 돌아가는 것 같다.”

이렇듯, 레벨이 오르며 건강을 되찾은 건 물론이거니와 다른 플레이어들과 함께 전장에 나설 수 있을 정도였다.

경수는 이런 마을 구성원들의 상태를 세세하게 확인하여 아이템을 분배하고 적합한 곳에 배치했다.

“새로운 장비 아이템을 보급했습니다. 아마 전보다 훨씬 강해졌을 겁니다.”

수준이 실시간으로 오르고 있었지만, 점점 상승 속도가 느려지고 있었다. 그렇다는 건, 사냥터를 바꿀 때가 왔다는 뜻이었다.

“그럼 지금부터 2층 공략을 시작합니다. 조별로 총 2번씩 돈 다음에 전 병력이 보스 방으로 올라갈 겁니다.”

성우의 말에 플레이어들의 안색이 새파랗게 질리는 걸 넘어서, 시퍼렇게 굳어졌다.

“다시 시작하죠.”

지옥의 트레이닝은 계속됐다.

***

그 시각, 광복 길드 소속 광역감시팀의 ‘태백 조사단’은 설악산을 중심으로 태백산막 곳곳을 수색 중이었다. 네크로맨서와 약속한 대로 실종자, 지수를 찾기 위함이었다.

처음에는 마법 드론을 띄워서 산맥을 한눈에 훑을 예정이었다. 산이 제아무리 넓다고 하더라도 하늘길을 이용하면 금방 돌아볼 수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 ‘알 수 없는 힘’에 의하여 ‘하급 마법’이 차단됩니다.

정확한 원인은 알 수 없었으나,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깊은 산 속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게 분명했다.

“어쩔 수 없다. 인력 충원해서 직접 들어간다.”

결국, 발로 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산은 너무나 넓고 험했다. 심지어 ‘대산맥의 왕’ 휘하의 강력한 몬스터가 도사리고 있었다.

“윽, 젠장······ 투쟁 길드가 꼬리 내리고, 차라리 다른 진영이랑 싸우러 나온 이유를 알겠네. 걔들, 미친놈들이 아니었어. 사실 굉장히 이성적이었던 거야.”

“맞아. 여기는 모든 몬스터가 뭔가 이상해······ 마치, 한 마리, 한 마리가 보스 몬스터인 것 같아.”

투쟁 길드는 분명 강대한 세력이었지만, 대산맥의 왕에게는 당해내지 못했고, 결국 이 지역을 떠나왔다고 했다. 직접 와보니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오죽하면 은폐와 잠입에 특화된 광역감시팀 정보원들이, 전투를 무조건 피하며 수색에 임하고 있음에도 숱한 위기의 순간을 맞이할 정도였다. 하물며 ‘수색 2팀’은 5명 전원이 작전 도중 전멸하고 말았다.

그만큼, 이곳의 몬스터는 격이 달랐다.

물리적인 공격을 바탕으로, 오직 머릿수로 밀어붙이던 지난날의 몬스터와 차원이 달랐다. 웬만한 개체는 ‘고유의 스킬’을 가지고 있었으며 일부는 상당한 수준의 주술을 부리기까지 했다.

또한, 지능적으로 움직이며 사냥감을 노렸기에 한 번 추적 당하기 시작하면 거리를 벌린 뒤, 안전구역으로 워프하는 게 최선이었다.

그렇게 되면 그날 수색은 낭패로 끝났다.

“시발! 이런 곳에서 혼자서 살아남는다고? 가능해? 이거 완전 뻘짓 하는 거 아니냐?”

절로 회의감이 드는 건 당연했다.

“그 여자 싸우는 거 못 봤어? 인간이 아니야. 그 여자라면 모른다. 이 동네 장악하고 있을 수도 있다.”

“그래도 여기는 너무 위험한데? 잠깐 싸워서 이기는 게 문제가 아니라, 계속 여기에 있어야 하는 거잖아. 밤낮으로 들끓는 저런 괴물들 사이에서 말이야. 낮에만 수색하고 안전지대로 바로 워프하는 우리랑 다르다고.”

“······아, 그러게?”

그리고 그쯤 되자 또 다른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시체 찾아서 가져다주면 네크로맨서가 뭐라고 할까?”

“······.”

“······말만 들어도 무섭다.”

한참의 시간이 지났지만, 아무런 흔적을 발견할 수 없었다.

수색팀은 슬슬 철수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지막 수색이 시작되었을 때······.

“찾았다! 그 여자의 흔적이다!”

지수는 이 지옥에서 살아남았음을 증명했다.

***

태백산맥의 골짜기, 오색버스터미널에 설치된 수색 캠프, 수색 1팀장이 수색본부장에게 보고했다.

“서북 능선 980미터 고지에서 흔적을 발견했습니다.”

온종일 지도만 바라보며 한숨만 쉬고 있던 수색본부장은 눈을 번쩍 뜨며 자세를 가다듬었다. 그가 고개를 끄덕이자 1팀장이 보고를 이어갔다.

“······다수의 몬스터 시체인데, 엄청난 실력자와 충돌한 것 같습니다. 그 여자가 확실합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목격자도 찾았습니다.”

“목격자?”

몬스터의 시체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라고는 칼자국뿐이었지만, 목격자라면 달랐다. 지수와 대화를 했을 가능성이 충분했다.

“산속에 사는 노인과 손녀들입니다. 잠깐이지만 실종자와 같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럼 지금은 떨어졌다는 소리잖아?”

“맞습니다.”

“젠장! 그래서? 무슨 말이라도 들었대? 응?”

수색대장이 닦달하자 수색 1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노인의 말로는 그 여자가 무슨 퀘스트를 받은 모양이랍니다. 그리고 그 퀘스트는 ‘대산맥의 왕’과 관련된 것 같은데······ 아무래도 퀘스트의 동선을 따르지 않았을까 합니다.”

“설마, 혼자서 그 괴물에게 찾아갔을 리가······.”

수백 명 규모의 투쟁 길드조차 포기한 퀘스트가 아니던가? 아무리 솜씨가 뛰어난 칼잡이라고 할지라도 혼자서는 절대로 무리였다.

“아, 그리고 이해할 수 없는 부분도 있습니다.”

“뭔데?”

“노인의 손녀딸이 말하길, 그 여자가 혼잣말로 대산맥의 왕이 그림자 왕의 마지막 아이템을 가지고 있다고 어쩌고 했다는데, 이게 도통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수색대장은 인상을 찌푸렸다.

“그림자의 왕은 또 뭔 소리야? 여기 왕이 두 명인가?”

“그게, 잘 모르겠습니다. 저희 정보망 안에는 그런 단어는 없습니다. 처음 듣습니다.”

그림자의 왕, 그들은 처음 듣는 단어였다.

“여자가 만약, 대산맥의 왕에게 향하고 있다면······ 더 추적하는 건 무리입니다. 우리의 임무는 자살이 아니지 않습니까?”

수색대장이 생각하기에, 아무리 그래도 홀로 대산맥의 왕을 찾아갔을 리가 없었다.

그렇다면 그 여자는 도대체 어디로 갔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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