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네크로맨서-110화 (110/244)

# 110

39) 의정부, 악마 정벌 - 3

머리 위로 ‘본 와이번’ 무리가 나타나자 악마 진영의 플레이어들은 우왕좌왕하며 흩어졌다. 그것들의 그림자 아래 있는 것만으로도 오금이 저릿했다.

“아직 남아 있는 숲으로 숨어! 평지에 있으면 저 괴물들한테 휩쓸리고 만다!”

악마 진영은 얼마 남지 않은 숲으로 몸을 숨겼고, 본 와이번은 그 위로 무언가를 떨어뜨리기 시작했다.

크아아!

그런데 평소와 같은 시체 포격이 아니었다. 그건, 던전에서 목격한 적 있는 ‘가막 잔나비 스켈레톤’이었다.

그것들은 본 와이번의 등에서 낙하하여 얼마 남지 않은 나무에 안착했다. 악마 진영의 머리 위였다.

부스럭― 부스럭―

가막 잔나비 스켈레톤은 하체보다 상체가 비약적으로 발달한 종족이기에, 평지의 전투에서는 제 능력을 발휘할 수 없었다. 성우가 미리 꺼내놓지 않은 이유였다.

그러나 이런 숲 지형이라면 달랐다.

우둑!

“으아아!”

가막 잔나비 스켈레톤들은 본 와이번을 피해 나무 사이에 몸을 숨기고 있던 악마 진영의 플레이어들을, 양식장에서 물고기 건져 올리듯, 나무 위로 잡아끌었다. 그리고 목을 꺾어 던져버렸다.

이렇듯, 평지에서는 제 효율을 발휘하지 못할지라도 숲에서만큼은 특공대나 다름없었다.

“으아아!”

“너무 빠릅니다! 대응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숲을 벗어나자니, 다른 대형 스켈레톤과 본 와이번의 공격에 노출되고 말 것이었다.

네크로맨서는 마치, 모든 걸 한눈에 보고 있는 것처럼, 언데드를 정확한 위치에 배치하여 악마 진영을 압박했다.

완전한 진퇴양난에 빠져버렸다.

“지원군! 지원군은 왜 오지 않는 거냐!”

범열이 소리쳤다. 재건 동맹의 의장인 영환에 따르면, 근처에서 대규모의 지원 병력이 대기 중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런 위급한 상황임에도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분명 전투 직전까지 연락이 닿았었는데······ 이, 이유를 알 수가 없습니다!”

“시발! 설마, 재건 동맹 새끼들이 우릴 버린 건가? 그 능구렁이 같은 노인네가! 젠장······ 다 틀렸다.”

범열은 마침내, 모든 계획이 실패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지고 지되 끝내 승리한다’라는 투쟁 길드의 정신적인 구호가 네크로맨서에게는 통하지 않을 수 있다는 걸 직감했다.

‘놈에게 지면······ 그걸로 끝이다. 다음은 없다.’

그렇기에 범열은 최후의 발악이라도 해볼 생각이었다.

“······의진아. 나무 상자를 꺼내라.”

“그, 그건······.”

“다른 방법이 없다. 어서!”

의진은 어쩔 수 없이 배낭 열어, 가장 깊은 곳에서 부적이 발린 나무 상자를 꺼냈다.

“······차라리 지금이라도 후퇴를 고려하시는 건 어떻습니까?”

“그건 안 된다. 여기서 살아남는다고 해도 우리한테는 남는 건 아무것도 없어. 아무것도······ 이제는 태백산맥으로 돌아갈 수도 없다.”

“도, 돌아가서 그 괴물한테 다시 도전해보는 게······.”

“아니야! 그놈은 절대 못 막아!”

범열은 부적을 뜯어내고 상자를 열었다. 안에는 붉은 기운이 감도는 삼이 하나 담겨 있었다.

그는 두꺼운 손을 뻗어 삼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몇 번이고 주저하다가 결국, 입에 집어넣었다.

으적!

- ‘산의 정기’가 당신의 육신에 퍼져나갑니다.

* 모든 능력치가 대폭 상승합니다. (+15)

* 자동 치유 효과를 얻습니다. (초당 5%)

* 일시적으로 ‘산신의 힘’을 얻어 자연물에 대한 영향력이 대폭 상승합니다. (+80%)

* 모든 정령에 대한 친화력·지배력이 대폭 상승합니다. (+50%)

- 경고! 체력 수치가 복용 가능한 수치보다 낮습니다. ‘산의 정기’ 효과가 일시적으로 적용되지만, 효력이 다한 뒤에 끔찍한 고통과 페널티가 부여됩니다.

- 경고! 체내에 들어온 ‘산의 정기’가 오히려 당신의 능력치를 빨아들이고 있습니다. 해당 상태를 오래 방치할 경우 죽음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이 ‘신선의 삼’은 태백산맥에서 ‘히든 퀘스트’를 완수하고 받은 보상이었다.

아이템 설명에 의하면 온전히 흡수하기 위해서는 체력 수치가 80이나 되어야 했기에 아껴두고 있었지만, 지금은 아낄 때가 아니었다.

“으으······ 으아아! 아아아!”

범열의 피부가 붉게 물들며 비명을 지르더니 한 차례 각혈하기까지 했다. 감당할 수 없는 힘을 받아들인 것에 대한 부작용이었다.

하지만 이내 상체를 꼿꼿하게 세웠다.

“하아······ 넘친다. 넘치다 못해 바닥부터 끓어오른다.”

그는 일시적으로 엄청난 힘을 얻었다. 더불어 자신감마저 얻었다.

“이길 수 있다.”

범열의 1차 직업은 ‘장사(壯士)’였으며 연계 카드로 뽑은 직업은 ‘정령술사(흙)’이었다.

두 직업이 시너지를 일으켜, 엄청난 파괴력을 지닌 정령술을 사용할 수 있었는데, 산의 정기를 받음으로써 그 능력이 배로 불어난 것이었다.

“언데드를 무시하고, 놈만 처리하면 그만이다.”

그는 핏줄이 잔뜩 돋아난 팔로 도끼를 집어 들었다. 그러자 도끼날이 녹색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땅의 힘이여······.”

그가 도끼를 번쩍 들어 올려, 온 힘을 다해 땅에 내리꽂았다.

“대지 분쇄!”

그 순간, 그의 도끼가 닿은 부분에서부터 균열이 일어났다. 직후, 땅이 거미줄처럼 갈라지며 출렁거리더니, 마치 파도처럼 들고 일어났다.

콰과과과―광!

주변에 있던 모든 것들이 그 충격에 휘말렸다. 악마 진영의 플레이어, 네크로맨서의 언데드 할 것 없이 엄청난 진폭 때문에 제대로 서 있을 수 없었다. 이 거대한 전장이 통째로 일시 정지 되어버릴 정도였다.

“네크로맨서! 나와라!”

오로지 범열만이 그 가운데 서서 소리쳤다. 그는 저 멀리에서 찍고 있는 안 기자의 카메라를 바라보더니 다시금 입을 열었다.

“네크로맨서! 나와라! 나와서 나와 1대1로 붙자! 매번 해골바가지 뒤에 숨어 있는 너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나는 다 안다!”

마치 공개적으로 대결을 요구하는 듯 보였다.

“너처럼 그런 뒤에 숨어 있으면 누구든 그렇게 못 하겠는가? 하지만 해골을 뺀 진짜 너는 싸울 줄 모르는 겁쟁이일 뿐이지!”

그리고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노골적인 도발을 이어나갔다. 그는 카메라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이 장면을 바라보고 있는 한국 서버의 모든 플레이어여! 그렇지 않나? 너희들도 의심이 들지 않나? 네크로맨서의 실체가 어떨지 말이야?”

그 도발이 통한 걸까? 정말로, 네크로맨서가 나타났다. 그는 그림리퍼를 어깨에 비스듬히 올린 채, 나무 사이에서 걸어 나왔다.

“저번에도 그렇게 덤빈 놈이 있었거든······.”

네크로맨서의 말에 범열은 콧방귀를 뀌었다.

“나는 다르다. 나는 내 몸과 내 손으로 살아남았고 지금도 그럴 거다. 너는 언제까지 사람들을 속이며 살 거냐? 너는 네 입으로 네가 강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나?”

“그걸 굳이 입으로 말해야 하나?”

안 기자의 앵글에 두 플레이어가 마주 보는 장면이 담겼다. 입으로 말하지 않지만, 곧 결과로 드러날 것이었다.

***

땅이 뒤집히며 모든 게 뒤죽박죽 섞였다. 악마 진영의 플레리어들과 언데드들이 이리저리 뒤엉키며 재해의 현장처럼 느껴졌다.

“쿨럭! 쿨럭!”

“으으!”

한호 역시 그 틈바구니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런데 정신을 차리니 주변에는 아주 멀쩡하게 살아 있는 사람들뿐이었다.

“어, 어라?”

한호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이게 뭐가 문제냐면······.

“아, 안녕하세요?”

“너 뭐야?”

“이 새끼! 네크로맨서 팀이잖아!”

한호와 같은 편에는 살아 있는 사람이 몇 명 없었기 때문이었다. 5명의 플레이어가 한호를 둘러싸고는 무기를 들어 올렸다.

“쳐 죽여!”

“······자, 잠깐만요!”

한호는 뒷걸음질 치며 손사래를 쳤다.

“저, 저 죽기 전에 기도 한 번만 하겠습니다!”

“뭐?”

“응? 얘 뭐라니? 기도라고?”

이해할 수 없는 소리에 당황한 사이, 한호가 합장하더니 고개를 푹 숙였다. 정말로 기도를 하는 것처럼 보였고 악마 진영의 플레이어들을 코웃음을 쳤다.

“으하하! 뭐하냐?”

“이 병신이 네크로맨서 동료라고?”

그런데 그 순간, 한호의 등 뒤, 로브에 그려진 무늬가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 ‘아수라의 팔’이 발동됩니다.

- ‘아수라의 팔’ 유지 시간 : 00:09:59

한호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의 입꼬리가 씰룩거리며 올라갔다.

“바보들아! 내가 기도한 이유는!”

한호의 등 뒤에서 팔 4개가 펼쳐졌다.

“······너희들의 명복을 빌어주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4개의 팔이 허리춤에서 단검을 뽑아 들었다. 그렇게 총 6개의 팔이 관람차처럼 펼쳐졌다.

한편으로 마치, 번데기를 깨고 나온 풍뎅이가 긴 다리를 펼치는 것처럼 찬란하기 그지없는 장면이었다.

“후······ 그래, 이거지.”

한호는 몸을 풀었다. 팔이 무려 6개였다. 지금까지 2개의 팔로만 싸우면서 ‘신념의 처단자’의 성스러운 방어막을 유지했던 걸 생각해보면, 유지력이 폭발적으로 상승한 셈이었다.

“거기다가 간지가 흐르는 새로운 아이템, 유령의 비수를 사용해볼 때가 왔군.”

한호는 최대한 비릿한 미소를 흘렸다. 왠지 이 순간은 그런 표정을 지어야만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를 둘러싼 적들의 표정도 딱 알맞았다. 전부 경악을 금치 못하는 얼굴이었다.

딱, 주인공이 엄청난 변신했을 때 지을만한 표정이 아니던가? 한호는 모든 상황이 뿌듯했다.

“미, 미친 저게 뭐야!”

“징그러워! 팔이 몇 개야!”

“으, 더러워!”

하지만 예상과 다른 단어 이 튀어나오자 한호는 기분이 퍽 상했다.

“뭐? 멋있다는 걸 잘못 말한 거 아니야? 심미안이 없는 것들이군! 그렇다면 최강의 성스러운 아수라 도적께서 벌을 내려주마!”

“······뭔 소리래?”

“몰라 그냥 죽여버려!”

이내 전투가 벌어졌다.

한호는 새로 얻은 아이템 ‘유령의 비수’의 효과인 ‘귀신의 칼날’을 발사하여 한 놈을 거꾸러뜨렸다.

그와 동시에 ‘신념의 처단자’가 발동하며 그의 몸을 황금빛 보호막으로 물들였다.

텅! 텅!

그다음은 언제나 같은 모습이었다. 보호막을 한 번에 깨뜨릴 수 없으며 한호의 공격을 버틸 수 없는 적이 다수 포진해 있다면, 한호는 무적이나 다름없었다.

“컥!”

- 플레이어를 살해하여 9,000골드를 얻었습니다.

- ‘신념의 처단자’ 스킬에 의해 15초간 ‘성스러운 방어막’을 얻습니다. (400/400)

“고, 공격이 먹히지가······ 악!”

- 플레이어를 살해하여 8,000골드를 얻었습니다.

- ‘신념의 처단자’ 스킬에 의해 15초간 ‘성스러운 방어막’을 얻습니다. (400/400)

“제, 젠장! 이 새끼 뭐야!”

“뭐긴 뭐야! 최강 성스러운 아수라 도적님이지!”

네크로맨서 옆에 붙어다니는 어벙한 놈이라고 알려져 있었지만, 사실 한호는 레벨 16에 랭킹 23위에 달했다.

능력치만 보더라도 웬만한 플레이어에게는 꿀리지 않는 상태였으며, 온갖 괴상한 스킬과 아이템들이 이상한 시너지를 일으켰기에, 상처 하나 나지 않고 적들을 쓸어버릴 수 있었다.

푹! 푹!

‘굿! 완벽하다! 완벽해! 대박이야!’

그는 먹잇감을 거미줄로 휘감는 거미처럼 6개의 팔을 이리저리 휘두르며 악마 진영의 플레이어들을 하나둘 쓰러뜨렸다.

“으아아!”

“미, 미친 더러운 괴물아 저리 가······ 컥!”

- 플레이어를 살해하여 10,000골드를 얻었습니다.

- 플레이어를 살해하여 9,000골드를 얻었습니다.

‘나 진짜 너무 멋있잖아? 옛날에 고블린 잡을 때랑 강화도에서 해적들 상대할 때랑 차원이 다르다! 진화했다!’

그러면서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기까지 했다.

‘헐! 설마, 카메라가 나를 찍고 있는 거 아니야?’

지금 이 장면을 다수의 카메라가 찍어서 생방송으로 내보내고 있지 않던가? 그리고 한호 자신은 그 가운데에서 역대 최고의 활약을 펼치고 있었다.

‘안 찍을 수가 없다! 그럼 나도 펜클럽이 생기는 거 아니야? 아 씨, 사인 연습 좀 해둘걸!’

그는 카메라가 자신을 찍고 있다고 확신하며, 6개의 손을 사방으로 쭉 뻗었다. 마치 공작새가 꼬리 날개를 펼치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후······. 너희는 정말······.”

그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카메라들이 몰려 있는 방향으로 서서히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오랫동안 꿈꿔온 한 마디를 날렸다.

“······느려.”

하지만 카메라는 정반대 방향으로 향해 있었다. 그리고 그 앵글에 담긴 인물은 당연하게도 한국 서버 최고의 스타, 네크로맨서였다.

“슈퍼히어로가 되려면 독립하던가 해야겠어. 선배 옆에 있으면 사이드킥을 벗어날 수가 없네.”

한호는 허탈하게 웃었다.

“허허허, 배트맨 옆의 로빈이 이런 기분인가? 비운의 다크호스라······. 뭐, 이것도 나쁘지 않군. 영웅의 무게를 남몰래 함께 버텨준다는 것······.”

아무래도 자기애를 쉽사리 버리지 않을 듯했다.

한편, 카메라들이 집요하게 쫓고 있는 건, 모두의 시선이 집중될 만큼 중요한 장면이었다.

엄청난 전투의 끝자락, 클라이맥스에서 두 수장 간의 1대1 싸움이 벌어진 것이다.

손에 땀을 쥐고 지켜볼 수밖에 없는 이벤트가 틀림없었으며, 모든 카메라 한 곳에 집중되는 건 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아······.”

그런데 이 순간, 안 기자는 너무 몰입한 탓에 입을 쩍 벌린 채,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건 다른 카메라 오퍼레이터들도 마찬가지였다.

“······.”

그는 이내 너무 오랫동안 오디오를 비워뒀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정신을 붙잡았다. 그리고 누구나 공감할만한 최적의 멘트를 날렸다.

“······아, 바, 방금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죠?”

정지된 상태의 카메라 앵글 속, 네크로맨서는 누군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러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내가 말했지. 너랑 똑같이 말한 사람이 있다고 말이야. 이제 네가 두 번째야.”

붉은 피부의 거구가 그의 발아래에 무기력하게 쓰러져 있었다.

대결은 싱거울 만큼 짧았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