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네크로맨서-109화 (109/244)

# 109

39) 의정부, 악마 정벌 – 2

나무가 통째로 꺾이며 거대한 존재가 등장했다. 마치 둑이 터지고 강물이 터져 쏟아지는 것만 같았다.

그만큼, ‘뼈 이무기’는 지금까지 선보였던 대형 언데드 중에서도 격이 다른 크기였다.

“저게 뭐야!”

“크, 크다!”

두개골의 크기는 본 드레이크와 다를 바가 없지만, 몸통 길이가 압도적으로 길었다.

머리를 제외한 길이가 약 30미터, 해적단의 컨테이너선을 공략할 때 사용했던 바다뱀 ‘시 서펜터’보다 더 굵고 길었다.

콰드드―득!

그리고 그런 존재는 단 한 번 꿈틀거리는 것만으로도 일대를 초토화할 수 있었다.

“피해!”

“아악!”

네크로맨서를 포위한 채, 언데드 부대의 등장을 대비하고 있던 악마 진영은, 숲속에서 그런 거대한 괴물이 튀어나오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자칭 ‘산맥의 전사’들로 이루어진 단단한 포위진은 뼈 이무기의 역동적인 움직임에 이리저리 휩쓸리며 처절하게 무너졌다.

“으아아!”

“도, 도망가!”

“늦었어!”

제아무리 잘 정돈된 대열이라고 할지라도, 달려오는 기차를 받아낼 수는 없었다. 그리고 뼈 이무기의 돌격은 그 이상의 파괴력을 지니고 있었다.

우득! 우득!

수많은 이들이 이무기의 몸뚱이에 치여 날아갔다. 심지어 그 아래 깔린 채, 온몸의 뼈가 으스러져 압사하는 수도 적지 않았다.

- 플레이어를 살해하여 9,000골드를 얻었습니다.

- 플레이어를 살해하여 12,000골드를 얻었습니다.

- 플레이어를 살해하여 14,000골드를 얻었습니다.

뼈 이무기는 악마 진영을 관통하고 지나가 반대편 숲으로 사라졌다. 몸뚱이가 큰 만큼, 방향을 트는 것마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녀석이 지나간 길을 따라 긴 도랑이 파였다. 그리고 그 아래에 수많은 시체가 파묻혀 있는 끔찍한 광경이 드러났다.

덜그럭! 덜그럭!

그 사이, 다른 언데드들이 등장했다. 어느새 본 드레이크와 오우거 스켈레톤을 비롯한 지상의 언데드들이 네크로맨서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었다.

“젠장! 놈이 숨었다!”

“대열 정비! 언데드의 접근을 견제하면서 네크로맨서를 노릴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라!”

“겁먹지 마! 네크로맨서만 죽이면 된다!”

이렇듯, 네크로맨서를 상대하려고 마음먹은 이들은 정확한 파훼법을 가지고 덤벼들었다.

그간의 숱한 전투를 지켜보며 언데드 부대를 제압하는 게 무의미하다는 걸 깨닫고는, 그 언데드를 조종하는 존재를 암살하려고 하는 것이었다.

성우는 트롤 스켈레톤 사이에 몸을 숨긴 채 악마 진영을 둘러보았다.

‘아까 그 화살, 평택에서 진화 학회가 썼던 아이템과 비슷하다.’

신성한 힘이 담겨 있는 화살, 그걸 맞은 언데드는 부활할 수 없었다. 그렇다는 건, 성우에게도 치명적인 데미지를 줄 수 있다는 뜻이었다.

‘지수 씨였으니까 감지해낼 수 있었다. 시위를 당기는 놈이 어디에 있는지 확인하지 않는 이상 피하긴 어렵다.’

‘아누비스’ 상태가 되면서 인간을 상회하는 감각을 얻었지만, 여전히 날아오는 화살을 감지해는 건 어려웠다.

하물며 놈들이 쏘아대는 수백 발의 화살 중에서, 특정한 몇 발을 구분해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방심했다가는 단 한 방에 끝날 수도 있다. 그게 바로 네크로맨서의 약점이었다.

‘그런 화살이 몇 발이나 있는지 모르겠지만, 많지는 않을 거다.’

최초의 저격 때도 단 2발밖에 쏘지 않았으며, 그 이후에도 추가 사격이 없었다.

즉, 놈들에게 주어진 기회는 몇 번 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완벽한 타이밍을 잡으려고 하는 것이었다.

“선배, 이대로 계속 숨어만 있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아 씨, 지수 씨는 어떻게 된 거고······.”

놈들이 정체불명의 아이템을 사용하면서 지수가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새삼 그녀의 존재가 매우 큰 전력이었다는 걸 느꼈다.

“그리고 아까 그 화살, 뭔가 이상했는데, 그거 맞으면 골로 갈 것 같다는 느낌이 막 드네요.”

하지만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었다.

“그럼 그걸 쏘는 놈의 위치를 알아내면 돼.”

“어떻게요?”

조급한 건 성우가 아니라 놈들이었다. 그리고 조급한 포수는 잘못된 순간에 방아쇠를 당기는 법이었다.

잘못된 순간을 던져줄 생각이었다.

***

“나무 뒤에서 방어 대열을 유지한다!”

“정찰병들은 이무기 접근 확인하고 보고해!”

비록 ‘대강령’이나 ‘죽음의 응답’ 등, 주요 스킬의 대기 시간이 지나지 않은 상태였지만, 네크로맨서의 언데드는 한 마리, 한 마리가 가공할만한 전력이었다.

그리고 건너편 숲속으로 사라진 이무기가 언제 다시 돌아와, 그 무식한 몸뚱이로 악마 진영의 대열을 뒤집어버릴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악마 진영은 한시가 급했다.

“내밀어라, 조금만······.”

투쟁 길드 소속의 저격수, 케이트 킴은 나무 위에 웅크린 채 전장을 훑어보고 있었다.

고등학교 양궁부 출신에다가 캐나다로 이주하여 양궁 실업팀에서 선수 생활을 했던 그녀는, 자신의 화살 끝에 모든 게 달렸다는 걸 알고 있었다.

“바로 숨통을 끊어 줄게. 조금만, 조금만······.”

첫 번째 두 발은 분명 완벽했지만, 말도 안 되는 감각을 가진 여자가 모든 걸 망쳤다.

그러나 이제, 그 여자는 없다.

‘기회가 다시 오면 무조건 명중시킨다.’

한평생의 훈련으로 다져진 감각뿐만이 아니라, 궁술에 버프 효과를 주는 스킬과 아이템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하물며 첫 번째 직업인 ‘스나이퍼’와 두 번째 직업인 ‘살수’의 조합은 원거리 사격에 최적화된 능력을 제공했다. 오히려 빗나가는 게 말이 안 될 정도였다.

그뿐일까?

‘이보다 더한 환경에서도 저격에 성공했다.’

태백산맥의 거친 환경 속에서도 홀몸으로 깊은 산속을 전전하며, 트롤 1개 부대, 33마리를 처리했던 그녀였다. 경험마저도 충분했다.

일말의 기회가 온다면, 결단코 놓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왔다.”

그리고 그 기회가 왔다. 암녹색 로브에 거대한 낫을 쥔 웨어 울프가 그녀의 시야에 들어온 것이다.

애타게 찾고 있던 목표물이 분명했다.

“후······.”

그녀는 본능적으로 시위를 당겼다. 그리고 호흡을 멈추었다. 손가락 끝의 떨림이 멎었다.

기기기기―

목표물은 2마리의 트롤 스켈레톤 사이, 아주 작은 틈 사이로부터 약 세 걸음 뒤에 서 있었다.

자신에게 죽음이 겨누어진 걸 모르고 있다. 사냥감들은 언제나 그렇듯, 안전하다는 착각 속에서 선혈을 쏟아내기 마련이었다.

퉁!

“······그건 너도 마찬가지구나?”

그녀는 시위를 떠나가는 화살을 바라보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리고 저도 모르게 옅은 미소를 띄웠다.

화살이 시위를 벗어나는 순간, 손끝에 강렬한 느낌이 온다. 이 화살이 붉은 꽃을 피워낼지, 아닐지······.

그리고 이건······.

“꽃이다.”

은색 화살이 포물선을 그리며, 그녀가 점찍은 소실점을 향해 그림처럼 빨려 들어갔다. 좁은 틈 사이를 지나가, 다음 순간, 놈의 몸이 부서져 내렸다. 명중이었다.

그런데, 어딘가 이상했다.

“······어?”

꽃이 피지 않았다.

화살에 맞고 무너지는 건 하얀 몸뚱이였다. 왜 하얀색이란 말인가? 그녀는 이내 목표물의 두 걸음 옆, 한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당했다.’

남자는 무너지는 ‘웨어 울프 스켈레톤’의 몸뚱이에서 암녹색 로브를 잡아당겨 자신의 몸에 둘렀다.

“젠장!”

놈은 일부러 틈을 노출한 것이었다. 미끼였다. 저격수의 위치를 알아내기 위함이 분명했다. 그녀는 거칠어지는 호흡을 최대한 억눌렀다.

‘1발, 이제 단 1발이 남았다.’

그녀는 서둘러 시위를 걸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진짜 네크로맨서에게 시선을 떼지 않았다. 비록 3번째도 실패했지만, 위치를 제대로 확인한 이상 놈을 꿰뚫어버릴 수 있었다.

“······어? 어디 갔지?”

분명 눈을 떼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놈은 그곳에 없었다. 그녀의 눈동자가 떨리기 시작했다.

여태껏 한 번 잡아둔 목표물을 눈 밖으로 놓치는 법이 없었거늘, 네크로맨서는 증발하듯 제자리에서 사라져버린 것이었다.

다만, 네크로맨서가 있던 곳에서 2개의 일렁거림이 하늘로 뻗어 올라가는 게 보였다.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은 시력으로 보기에 마치 하얀색 식탁보를 뒤집어쓴 것 같은, 유령 같은 생김새였다.

“······저, 저건 뭐지?”

하지만 케이트는 한눈팔지 않았다. 그게 무엇이든 멀리 떨어져 있기에 위협적이지 않았으며, 시선 끌기일 가능성이 컸다. 그녀는 그런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았다.

“어, 어디냐.”

그녀는 재빨리 눈을 굴리며 언데드 사이를 이리저리 헤집었다. 분명 저기 어딘가에······.

그 순간, 그녀는 나무 아래로 몸을 내던졌다.

“······헉!”

퍽! 퍽!

케이트가 등지고 있던 나무에 화살이 연달아 박혔다.

“윽!”

그녀는 땅 위를 한바탕 구르며 일반 화살을 꺼내어 시위에 걸었다. 그리고 화살이 날아온 방향을 향해 무작정 시위를 당겼다.

피―잉! 쩍!

뼈 방패에 막혔다. 네크로맨서가 바로 그곳에 있었다.

“대, 대체 어떻게?”

케이트로부터 300미터쯤 떨어진 숲의 가장자리였다. 하지만 그곳은······ 트롤 스켈레톤으로부터 무려 150미터나 떨어진 곳이 아니던가?

다음 순간, 네크로맨서의 몸이 그림자 안으로 스며 들어갔다. 마법이라는 걸 깨달았지만, 케이트는 네크로맨서를 또 한 번 놓치고 말았다.

그녀의 머리가 복잡해졌다.

‘엄청난 거리를 단숨에 도약했다. 설마, 텔레포트 스킬 같은 거라도 있는 걸까? 하지만 그건 마법사 계열 스킬 중에서도 상당히 고급 스킬인데, 네크로맨서가 그걸 다룰 수 있다고? 말도 안 된다.’

이내 두려움이 밀려왔다.

네크로맨서는 종잡을 수 없는 존재라는 걸 깨닫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다. 비록 네크로맨서를 죽일 수는 없더라도······.

‘죽고 싶지 않아!’

포기할 수 없는 게 있었다. 그녀는 활시위를 팽팽하게 당긴 채 사방을 경계했다.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인기척으로 잡아낼 수 있다고 믿었다.

그때, 머리 위로 무언가 스쳐 지나갔다. 식탁보의 유령이었다. 그것들은 기분 나쁜 울음소리를 내며, 나무를 관통해서 지나갔다.

그리고 그걸 목격하는 순간, 케이트는 숨이 턱 막히는 걸 느꼈다.

- ‘스펙터’의 저주에 빠집니다.

* ‘공포 상태’에 빠집니다.

* ‘이동 속도’가 감소합니다. (-30%)

“······으, 대, 대체 뭐 하는 짓이야!”

그녀는 정신적으로 혼란한 와중에도 호흡을 골랐다. 식은땀이 흐르고 심장이 벌컥거렸지만, 어떻게서든 감각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이 끔찍한 상황 속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마음이 점점 더 조급해졌다.

부스럭―

‘뒤다!’

그녀는 재빨리 돌아서며 시위를 놓았다.

핑!

하지만 그녀의 화살은 허무하게 스쳐 지나가고 말았다. 목표물의 크기가 생각보다 작았기 때문이다. 그건, 다름 아닌 고블린 스켈레톤이었다.

딱딱―

그리고 녀석의 손에 들려있는 ‘핸드 캐논’의 총구가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찰나의 순간, 총구가 불을 뿜었다.

콰―앙!

팔을 들어 올려 막았지만, 산탄이 그녀의 온몸을 뒤덮었다.

그녀는 붕 떠올라 어느 나무에 부딪혔다. 방어력이 낮은 편이었기에, 강력한 핸드 캐논의 데미지를 감당할 수 없었다.

“커, 커허······.”

“조급하면 제대로 볼 수가 없지.”

이내 나무 뒤에서 네크로맨서가 나타났다. 그는 무표정으로 다가와 만신창이가 된 케이트의 허리춤에서 은색 화살을 끄집어냈다.

“이건가?”

케이트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은 채, 화살의 정보를 살피는 듯했다.

“······말 안 해도 출처를 알겠군.”

그가 몸을 돌렸다. 케이트는 그 순간 깨달았다. 이 싸움은 무조건 진다는 걸 말이다.

그리고 그 전조가 시작되었다. 악마 진영의 대열 쪽에서 겁에 질린 고함이 들려온 것이다.

“옵니다! 이, 이무기가 옵니다!”

척후병이 괴물의 출현을 알리기 시작했다.

“어디? 어디야!”

이어진 척후병의 대답은 진영의 사기를 통째로 꺾어버리기에 충분했다

“우리의 등 뒤에서 옵니다!”

“뭐? 뒤라고? 뒤는 빽빽한 숲이잖아!”

“진짜로 옵니다! 젠장!”

악마 진영을 한차례 박살 내고 지나간 ‘뼈 이무기’의 재출현이 지나치게 늦는 감이 있었다. 그리고 그건 의도된 것이었다.

산을 크게 돌아, 놈들이 예상하지 못하는 곳에서 치명적인 일격을 가하기 위함이었다.

쩍! 쩌―적! 쩌저―적!

뼈 이무기가 온몸을 뒤틀어대며 악마 진영 후방의 나무를 모조리 꺾어버리기 시작했다. 두꺼운 나무들이 수수깡처럼 부러져나갔다.

“저게 뭐, 뭐 하는 거지?”

“또 무슨 일을 벌이는 거야!”

그건, 퇴로 차단이자 엄폐물 제거였다. 숲 일부를 통째로 지우는 것이었다.

“빙결 주문 준비해! 이무기가 가까이 다가오면 관절 사이를 얼려 버리는 거다!”

“좋아, 가능하다!”

긴 몸에 비해 상대적으로 두께가 얇은 편이었기에, 일부 관절만 얼리더라도 움직임을 제한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이무기는 더는 가까이 다가오지 않았다.

“뭐, 뭐야? 또 무슨 수작이지······.”

이상 행동이 벌어지는 이제는 불안함부터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나무라는 엄폐물이 대거 사라지자, 하늘에 그림자가 드리웠다.

이번에는 본 와이번이었다.

네크로맨서는 전장을 뒤바꾸며 자신의 전략 안으로 적들을 끌어들이고 있었다.

“말도 안 돼······.”

“제, 젠장! 나무를 밀어버린 이유가 있었어!”

한 번 싸움을 건 이상, 그 굴레 밖으로 벗어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는 걸, 악마 진영은 뒤늦게 깨달았다.

성우는 ‘스펙터’를 통해서 하늘에서 전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모든 게 한눈에 들어왔다. 마치 실시간 전략 게임에서 유닛들을 조종하는 시점과 같았다.

‘훨씬 편해졌군.’

그건 전장의 상황을 쉽게 파악할 수 있는 걸 넘어서, 다수의 권속을 조종하는데 엄청난 이점이 되었다.

‘몇 배는 빠르게 대응할 수 있다. 그리고 몇 수는 앞서서 판단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몇 수 앞서서 계획한 대로, 악마 진영은 그가 점 찍어둔 위치로 움직이고 있었다. 성우는 그 장면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놈들 머리 위로 던져버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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