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7
38) 이무기, 시스템 오류 – 2
“선배, 방금 저게 선배 이름을 부른 것 같은데요?”
시스템 오류에 이어서 좀처럼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 벌어졌다. 한호의 말처럼, 시스템의 요소가 분명한 ‘1령 이무기’라는 몬스터가 성우의 이름을 부른 것이다.
‘내 이름을 어떻게 알지?’
제아무리 대단한 보스 몬스터라고 하더라도 플레이어의 본명을 알아채는 건 너무나 이상한 현상이었다. 그렇기에 성우는 직감할 수 있었다.
‘시스템에 문제가 생겼다.’
아직 시스템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있었지만, 이 순간은 시스템이 의도하지 않은 상황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 이무기가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내뱉었다.
“시간이 없다. 이 지역만 창조주의 눈에서 벗어난 상태이니, 곧 그들이 눈치챌 거다.”
성우는 저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너무나 이질적이고 거창한 단어가 나온 것이다.
“창조주?”
“물론 너희의 창조주는 아니다. 나의, 그리고 이 장소의, 그리고 너희가 사용하는 힘을 만든 존재다.”
너희의 창조주는 아니지만, 나의 창조주라? 쉽게 말해, 이 지옥 같은 시스템을 성우가 사는 세상으로 욱여넣은 존재를 뜻하는 것이었다.
즉, 이 세계를 가지고 놀고 있는 ‘침략자’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누구지?”
“거기까진 나도 모른다. 나는 그들의 존재를 아는 걸 허락받지 못했다.”
성우는 고개를 갸웃했다.
“······이상한데? 이미 어느 정도 알고 있는 것 같은데?”
그저 던전 보스 몬스터에 불과한, 시스템에 종속된 부품일 뿐이라면 애초에 창조주의 존재조차 모르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방금, ‘알 수 없는 힘’이 나에게 들어왔다. 그 순간, 아주 작은 일부를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이제부터 내 말을 새겨들어라.”
놈이 고개를 움직여 성우에게 다가왔다. 그 거대한 대가리는 움직이는 것만으로 위협적이었다.
“······성우 씨?”
지수가 덤벼들 것 같은 자세를 취했지만, 성우가 손바닥을 뻗어서 그녀를 제지했다.
이무기가 성우의 바로 앞에서 거대한 아가리를 움직였다. 그리고 나지막이 속삭였다.
“유성우, 너에게 접촉하려는 존재가 있다. 그들은 나의 창조주와 같은 존재이기도 하다. 그들은 직접 나타날 수 없는 상태이며 내 정신을 이용하여 너에게 메시지를 전하려고 한다.”
“같은 존재······.”
창조주와 같은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성우에게 몰래 접촉하려고 한다는 건, 이 시스템을 만든 이들이 두 집단으로 나뉘어 대립하고 있다는 거로 해석할 수 있을까?
“그것들이 나한테 뭘 원하지?”
“시스템의 붕괴.”
그 뜻은······ 이 게임을 끝내겠다는 것이었다.
“왜지? 왜 하필 나지?”
그런데 왜 성우를 찾아왔을까? 큰 활약을 펼치고 있다고 하지만 결국 시스템 안에서 구르고 있을 뿐이지 않은가?
“그들은 모두를 지켜봤다. 그리고 선택했다. 시스템 정해둔 방향을 지속해서 벗어나는 자를······. 유성우, 살아남아서 시스템을 전복시켜라. 그들이 너에게 접촉할 기회를 찾아내어 다시금 네 이름을 부를 것이다.”
- 시스템이 긴급 복구 중입니다. (13%)
놈 역시 이 메시지를 봤는지 고개를 천천히 들어 올렸다.
그리고 지금, 놈의 눈은 의기가 완전히 사라져, 왠지 모를 상실감이 느껴질 정도였다. 어둠 속에서 처음 등장했을 때와는 완전히 다른 존재처럼 느껴졌다.
“······나는 방금 내 존재가 무의미하다는 걸 깨달았다.”
놈은 몸을 돌리더니 난데없이 뒤쪽 벽을 긁기 시작했다. 벽 표면이 조금 긁히며 돌 부스러기가 떨어졌다.
그곳은 성우가 노리려고 했던 삼각형 문양이 있는 곳, 바로 그 지점이었다.
‘역시 저기가 약점인가?’
아무래도 성우가 눈치채지 못한 거라고 여기고 게임을 공략할 수 있는 힌트를 준 것 같았다. 성우를 지켜보고 선택했다는 이들도 성우를 과소평가 한 것일까?
- 시스템이 긴급 복구 중입니다. (56%)
“그들이 돌아온다. 나의 비늘 중에서 거꾸로 난 게 하나 있다. 나를 죽인 뒤에 그걸 몰래 손에 넣어라.”
“······비늘?”
“너를 돕고자 하는 존재의 선물이다. 그 안에 담긴 힘이 너를 감시하는 시선이 있는지, 없는지 알려줄 것이다.”
놈은 그 말을 끝으로 몸을 일으키더니, 난데없이 주변 지형지물들을 떼려고 부수기 시작했다.
쾅! 콰―광!
그 모습에 지수와 한호가 잔뜩 긴장했다.
“뭐, 뭐야! 이제 다시 싸우는 거예요?”
“아니야. 가만히 있어.”
놈은 돌아오는 ‘창조주’의 눈을 속이고자 전투의 흔적을 조작하는 것이었다. 감시가 끊기 사이에 전투가 중단되었다는 걸 들키면 안 되니 말이다.
“선배, 이건 또 무슨 상황이에요? 언제부터 저런 파충류랑 친했어요? 서, 서로 이름도 알고 막? 응?”
같은 상황을 목격했지만, 지수와 한호는 쉽게 이해하지 못한 듯했다.
그럴 만도 했다. 이무기가 건네준 힌트는 너무나 추상적이었기에 성우 역시 구체적으로 어떤 상황인지 파악할 수 없었다.
‘다만 확실한 건, 곧 돌아올 그 창조주라는 놈의 눈을 피할 필요가 있다는 거다.’
이무기가 주변을 초토화하는 사이, 성우는 지수와 한호를 돌아보았다.
“둘 다 잘 들어요. 지금 설명할 시간 없어요. 눈앞에 보이는 복구가 완료되면 다시 자연스럽게 싸우는 척을 해야 해요.”
“네? 아니, 그게 무슨······.”
“내 말 들어. 그다음에 기회가 온다면······ 나도 확신은 못 하지만, 설명할 시간이 있을 겁니다.”
성우의 설명에 지수는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한호 역시 답답하다는 듯 머리를 벅벅 긁더니 이내 알겠다는 신호를 보냈다.
역시, 이 둘은 무슨 일이 있어도 성우를 믿고 따르는 동료들이었다.
“자, 이제 시작이다. 유성우, 나를 죽이고 끝까지 살아남아라. 그리고 이 시스템을 붕괴시켜서 너희 세계를 되찾아라.”
- 시스템이 긴급 복구 중입니다. (99%)
그 순간, 성우가 땅을 박찼다. 이무기 역시 도깨비불을 움직여 성우를 쫓았다. 조금의 망설임도, 조금의 주저함도 없는 진짜배기 공격이었다.
놈이 말한 ‘창조주’의 의심을 받지 않기 위해서 제대로 된 공격을 해오는 것이었다.
우웅―
‘맞으면 죽는다!’
성우는 절벽을 향해 달려나갔다. 그리고 몸을 던졌다.
후―웅―
성우의 몸이 추락하는 순간, 졀벽 아래에서부터 본 와이번 한 마리가 솟구쳤다. 성우는 본 와이번에 매달린 채 날아올랐고, 이무기가 머리를 내뻗어 성우를 노렸다.
크아아!
‘이놈, 의도적으로 몸을 뺐다.’
그건 약점, 등 뒤의 벽을 공략하라는 신호였다. 그리고 성우도 그럴 준비를 해둔 상태였다.
이무기가 몸을 앞으로 살짝 움직인 틈을 타, 좀비 괴조 두 마리가 어둠 속에서 활공하더니 놈의 등 뒤의 공간으로 잽싸게 들어가 버렸다.
팍! 파―박!
그리고 그곳, 이무기가 한차례 긁어놓은 벽면을 발톱으로 파내기 시작했다. 그러자 놈은 화들짝 놀라는 기색을 내비치며, 괴조 두 마리를 머리로 짓눌러 떨어뜨렸다.
“역시 거기냐?”
사실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이제야 확신했다는 듯 연기를 했다. 보는 눈이 있다는 걸 의식한 것이었다.
성우는 ‘악령 폭격’을 장전해둔 그림리퍼를 휘둘렀다. 검은 구체 4개가 놈의 머리를 향해 직선으로 쏘아졌다.
궁―구―구―궁!
놈의 머리 위에 오방색 문양의 마법진이 떠오르며 악령 폭격을 가볍게 막아냈다.
‘역시 본체 공격은 소용없다.’
하지만 그건 시야를 가리기 위함이었다. 성우는 그 틈에 본 와이번을 돌격시켜 놈과 정면충돌하게 했다.
꽈―앙!
그러나 부딪치기 직전, 도깨비불 2개가 날아들어 본 와이번의 머리통을 조각내버렸다. 본 와이번의 뼈가 무너져내리며 성우의 몸이 허공에 떠올랐다.
그런데 그것마저 눈속임이었다.
딱딱―
어느새 오른이가 벽에 칼을 박은 채 매달려 있었다. 녀석이 매달린 벽, 이무기가 지키려고 한 그곳에는 매우 수상한 삼각형이 그려져 있었다.
오른이는 순간적으로 손을 떼며, 칼자루를 입으로 물었고, 자유로워진 오른손으로 ‘핸드 캐논’을 뽑아 들었다. 그리고 방아쇠를 당겼다.
콰―앙!
이미 균열이 일어난 상태였기에, 핸드 캐논 한방만으로 외벽을 무너뜨릴 수 있었다.
“저거다!”
벽 안쪽, 작은 토굴이 드러났다. 그 안에는 새끼줄을 꼬아 만든 금줄이 드리워져 있었고 황토색 단지가 하나가 놓여 있었다.
그게 바로 약점이었다.
“그걸 부숴!”
쩡!
이무기가 급히 몸을 움직이는 척을 했다. 하지만 이미 오른이가 단지를 향해 박치기를 날린 뒤였다. 단지는 별다른 보호막이 없는지, 허무하게 으스러졌다.
- ‘1령 이무기’의 ‘신줏단지’가 파괴되었습니다.
* 이무기가 모든 주술적인 힘을 잃습니다.
크아아!
그 메시지와 함께 이무기의 몸에서 푸른 기운이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드넓은 공동을 헤집어 놓던 도깨비불도 허공에서 사그라져버렸다.
크아아아!
놈이 몸을 비틀어대며 분노에 찬 포효를 내질렀다. 그리고 그건 전세가 역전되었음을 의미하는 신호였다.
“주술을 못 쓰면 그냥 더럽게 큰 뱀일 뿐이잖아?”
마법을 쓸 수 없는 이무기는 드레이크 수준의 육체적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즉, 이제는 어려운 상대가 아니었다.
성우는 놈과 약속된 대로, 놈의 숨통을 끊기 위해서 총공세를 퍼부었다. 이제는 언데드 부대의 원거리 공격이 죄다 명중하며, 놈의 비늘이 뭉텅뭉텅 떨어져 나갔다.
크아! 크아아!
놈은 끝까지 저항하듯 몸을 비틀고 머리를 휘둘렀지만, 이미 처음부터 자신의 결말을 알고 있는 상태였다.
결국, 놈의 머리 위에 올라탄 민석이, 이마를 향해 대검을 내리꽂았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 보스 몬스터 ‘1령 이무기’를 사냥하여 11,550,000골드를 얻었습니다.
- 자격 증명까지 남은 시간 : 1,030일
- ‘아마추어 용 사냥꾼’ 칭호가 ‘전문 용 사냥꾼’으로 향상(대체)됩니다.
* 체력 수치 상승 (+6)
* 근력 수치 상승 (+3)
* 화염 면역력 상승 (+40%)
* 마법 저항력 상승 (+10%)
놈의 머리통이 성우의 앞으로 천천히 기울어졌다. 강렬하게 타오르던 두 눈의 빛 역시 서서히 약해져 갔다. 놈은 그 눈빛으로, 성우에게 무언가를 당부하는 듯했다.
‘대체 이 게임의 정체가 뭐야······.’
성우는 이무기의 생전 조언대로, 그의 몸에서 거꾸로 난 비늘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목덜미에서 그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성우는 이상행동처럼 보이지 않게, 자연스럽게 그걸 긁어냈다.
[아이템 정보]
- 이름 : null
- 등급 : null
- 분류 : null
- 효과 : null
‘이게 뭐야?’
아무런 정보도 표시되지 않았다. ‘null’이란 아무것도 없음을 의미하는 단어였다.
그런데 그 순간, 메시지 한 줄이 떠올랐다.
- ON AIR (!)
ON AIR, ······방송 중?
이무기의 비늘이 그런 메시지를 출력한 것이다. 그리고 성우는 깨달았다.
이건 이무기가 말한 ‘창조주’라는 존재가 이곳을 보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렇다면 이 메시지는 창조주에게 안 보이는 걸까?’
시스템을 관장하는 존재의 눈을 피할 수 있다는 게 어떻게 가능한 건지 모르겠지만, 분명 그런 은폐 기능이 있을 것이었다.
‘대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거야.’
창조주, 그리고 창조주와 같지만 다른 사상을 지닌 존재······ 그것들의 정체는 무엇인가? 그리고 무슨 이유로 이런 게임을 벌이는 걸까?
아직 알 수 없는 게 너무나 많았다. 다만, 그 존재가 언젠가 성우를 다시 찾아오겠다고 했으니, 그때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 전쟁 퀘스트 <수도권 쟁탈전(2)>에서 ‘제3 진영(임시)’이 승리하였습니다!
* 대표자에게 보상이 지급됩니다. (전설 등급 아이템 상자 5개)
- 우승 진영 상금이 지급됩니다. (제3 진영)
* 총 베팅 금액의 1% : 4,086,570 골드
- 승자 예측 배당금이 지급됩니다.
* 제3 진영 배당금 : 296,954,695 (73.4%)
무려 3억 골드가 한 번에 들어왔다.
이렇게 퀘스트 완료 메시지와 보상 메시지가 출력된 이후, 진동과 함께 하늘에서 빛이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궁―구구구―
“어, 어어? 저기 봐요! 천장이 열려요!”
동굴과 나무로 뒤덮여 있던 북한산이,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으하하! 자, 이제 다른 놈들 낯짝 좀 볼까요? 자,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는데, 아직도 천사랑 악마 고르는 호구가 있으려나?”
역시 큰돈을 딴 한호가 기고만장하게 소리쳤다.
제3 진영이, 모든 이익을 취하고 한국 서버의 최강 집단임을 증명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성우는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궁지에 몰린 놈들이 과연 포기할까?’
전쟁 퀘스트는 종료되었다. 그렇다면 북한산에 지정된 ‘PK 금지 구역’도 해제되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을 거다.’
어쩌면, 다른 진영들은 쉽게 포기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이대로 내버려 두면 제3 진영의 성장세를 억제할 수 없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을 테니 말이다.
놈들은 네크로맨서의 바짓가랑이를 잡아 쥐고, 끝내 목덜미를 물어뜯으려고 할 가능성이 컸다.
‘그렇다면 뿌리를 뽑는다.’
시스템을 전복시키기 위해서는, 어쩌면 시스템이 만든 세계를 통제할 수 있는 수준이 될 필요가 있었다.
‘첫 번째는 한국 서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