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네크로맨서-106화 (106/244)

# 106

38) 이무기, 시스템 오류 - 1

- ‘독성 면역’ 버프가 적용 중입니다.

* 해당 효과는 던전 퇴장 시 사라집니다.

- 제3장 : 검은 산의 주인

* 보스 몬스터 ‘1령 이무기’를 처리하라

성우 일행은 독 안개가 넘실거리는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밖에서 볼 때, 거대한 나무 중앙에 솟아났던 돌산, 바로 그곳으로 들어온 모양이었다.

우우웅―

동굴 안쪽에서부터 기분 나쁜 바람이 흘러나오고 있었으며 내벽에는 온갖 상형 문자들이 새겨져 있었다. 어떤 것들은 보랏빛으로 빛났는데, 마치 고대 신전에 들어온 것 같은 기이함이 느껴졌다.

성우는 그 벽화를 유심히 살폈다. 상형 문자가 단순한 장식으로 있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거대한 구덩이 안에 큰 뱀 한 마리가 그려져 있는 그림이 연달아 나올 뿐, 당장은 의미를 알 수 없었다.

“······이거 분위기가 완전, 대놓고 보스 방이네요.”

한호의 목소리 다음으로는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만이 울렸다. 일행은 침묵 속에서 한참을 걸었다.

“······.”

성우는 지수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동굴에 처음 들어왔을 대부터 지금까지 인상을 찌푸린 채 동굴의 안쪽을 노려볼 뿐이었다. 그러더니 마침내 고개를 저었다.

“역시 아무것도 안 느껴져요. 마치······ 무언가 투명한 판으로 가로막아놓은 것 같아요.”

“그렇군요.”

그녀의 감각으로 느낄 수 없는 거라면 정말 아무것도 없던가, 그게 아니라면 인기척을 숨길 수 있는 존재던가······ 아무래도 후자일 가능성이 컸다.

이게 큰 문제인 이유는 지금까지 그런 몬스터를 만난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불길할 수밖에 없었다.

“이 정도 규모의 던전이라면 보스 몬스터의 수준도 남다를 겁니다. 주의할 필요가 있겠어요.”

성우도 주의를 기울였다. 이 던전의 보스 몬스터로 예고된 ‘이무기’라 함은, 용이 되어가는 과정을 겪고 있는 영물이었다.

즉, 지금까지 마주해온 몬스터와는 격이 다른 존재일 것이라는 걸 예상할 수 있었다.

그 불길함은 동굴을 따라 깊숙한 곳으로 들어갈수록 진해져 갔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진득한 무언가가 온몸에 들러붙어 지긋이 짓누르는 것만 같았다.

“으, 뭔가 가면 갈수록 점점 답답해져요. 뜨거운 물 속에 있는 것 같아요.”

“저도요······.”

한호의 표현이 조금 더 적합하게 느껴졌다. 신격에 의한 능력치 하락과 비슷한 것 같았는데, 신격을 지닌 성우보다 한호와 지수가 더 격하게 느끼고 있는 듯했다.

“일단 계속 가자.”

하지만 한가로이 쉴 수는 없었다. 다른 두 진영이 따라오지 못하게 방해를 해두었지만, 언제 따라붙을지 알 수 없었으니 말이다.

일행은 그렇게, 기나긴 통로를 쉬지 않고 걸어, 마침내 드넓은 공동을 마주했다.

궁―

달리 말하면 거대한 어둠 속으로 발을 내디뎠다.

랜턴 몇 개로는 도저히 밝힐 수 없는, 오히려 그 어둠에 잠식당하여 빛이 힘을 잃어버릴 정도로 방대한 공간이 펼쳐졌다.

시야의 언저리까지 이어지는 까마득한 천장과 깎아내리는 절벽은, 마치 거대한 괴물의 아가리처럼, 일행을 통째로 집어삼킬 것만 같았다.

“어, 어······.”

그 광경에 질린 한호의 신음이 나긋하게 메아리쳤다. 일행은 그 자리에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함부로 비집고 들어갈 공간이 아니라는 걸, 본능적으로 깨달은 것이다.

처―억! 척―억!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였다.

그 작은 소리는 이 거대한 공간 속에서 빠져나가지 못한 채, 벽과 천장 이곳저곳에 부딪히고 튕기며, 깨지고 뭉그러지다가, 수백, 수천 가닥으로 흩어지며 기괴한 수준까지 분해되어버렸다.

처―어―어―우―웅―

결국, 소멸하기 직전에는 인간의 귀로는 어떤 소리인지 도저히 분간해낼 수 없을 정도였다.

이곳은, 소리가 탄생하는 동시에 죽는 곳이었다.

“선배, 저, 저기······.”

“나도 보여.”

그리고 그 어둠 속, 절벽 아래에서부터······.

두 개의 거대한 불빛이 서서히 떠올랐다.

- 보스 몬스터 ‘1령 이무기’가 출현했습니다.

놈의 형체를 제대로 확인하기도 전에, 메시지가 출현을 알려왔다. 일행은 천천히 뒷걸음질 쳤다.

“어, 저게 이무······.”

“쉿.”

압도적으로 큰 크기였다. 머리의 지름만 해도 거의 5미터 정도, 마치 불이 꺼진 터널 안에서 대형 트럭의 전조등이 천천히 다가오는 기분이었다.

그 순간, 놈이 턱을 천천히 벌렸다. 단단한 비늘이 수축, 이완되며 미세한 마찰음을 흘렸다. 성우는 공격을 대비하여 뼈 방패를 생성했다.

그런데······.

“······어서 오라, 이 땅의 주인들이여.”

놈이 입을 벌려서 할 게, 인사일 거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 심지어······.

“말을······ 잘하는군?”

매우 정확한 언어였다. 성우는 저도 모르게 그런 감상을 내놓았다.

“이 깊은 곳까지 들어와서 궁금한 게 고작 그거인가?”

의사소통이 가능할 정도의 몬스터라니? 지금까지는 코볼트처럼 어딘가 나사 빠진 것들이 말도 안 되는 대사를 읊는 수준이었다.

그리고 그건 언어라기보다 그것들의 울부짖음을 해석해 놓은 정도에 그쳤었다.

그런데 이 존재는 확연하게 달랐다. 포악한 짐승처럼 다짜고짜 공격해오지 않았으며 오히려 플레이어와의 이성적인 대화를 추구하려고 하는 듯했다.

“언어가 없다면 세계도 없는 법······. 울부짖기만 하는 것들에게는 나와 밖, 그 두 가지 개념밖에 없지. 하지만 나는 이 세계의 일부로써 완벽하게 자각하고 있다.”

심지어 이런 현학적인 대사까지 읊조렸다.

‘설마 이런 것도 연출인 건가?’

하지만 성우의 말에 따라서 분위기를 조성할 만한 대사를 내뱉는 걸 수도 있었다.

“그래서 너희 셋이 전부인가? 더 많은 인기척을 느꼈는데, 그쪽은 아직도 헤매고 있나 보군.”

“우리와 싸울 건가?”

성우가 물었다. 그 말에 이무기가 머리를 살짝 흔들며 의문을 표현했다.

“애초에 너희가 나를 죽이러 들어온 게 아닌가? 왜 내가 싸움을 건 것처럼 말하지?”

“······.”

맞는 말이기에 반문할 수 없었다.

“말이 없는 걸 보아하니 인정하고 있는 것 같구나. 그렇다면 그 고민이 부족했던 선택에 책임을 져라.”

이무기의 머리가 뒤로 빠지며 어둠 속으로 스며들었다. 아무래도 자연스럽게 전투로 이어질 조짐이 보였다.

‘역시 단순한 컷 신(cut scene) 같은 거였나?’

하지만 더 깊게 생각할 틈이 없었다.

“······놈이 공격해올 겁니다. 대비해요.”

일행은 뼈 방패를 하나씩 쥐고 자세를 낮췄다. 사방이 어둠에 잠식되어 있었기에 어디에서 무엇이 날아올지 몰랐다.

덜그럭! 덜그럭!

성우는 일행 앞에 트롤 스켈레톤 10마리를 소환하여 방패막이로 삼았다.

동공 가운데에 거대한 구덩이가 있었고 그 가장자리로 평탄한 회랑이 에둘러 이어졌기에 몸을 움직여 싸울 수 있는 공간은 충분했다.

“······.”

성우는 숨을 죽이고 공격을 기다렸다. 당장 놈이 어떻게 나올지 모르기에 동태를 살필 필요가 있었다.

- 주의! 해당 지역에 ‘도깨비 불’이 소환됩니다.

그 순간, 정면의 허공에서 4개의 파란 불꽃이 피어올랐다. 어둠이 층층이 물러나며 그 뒤에 몸을 숨기고 있던 이무기의 실루엣이 드러났다.

놈은 이곳을 노려보고 있었다.

즉, 노리고 있었다.

“뛰어!”

“으악!”

일행은 즉시 옆으로 몸을 던졌다.

우―웅!

놈의 머리 근처에서 회전하던 푸른 불꽃이 마치 유도탄처럼, 비선형적인 궤적으로 날아들었다. 그리고 방패막이로 세워둔 트롤 스켈레톤을 단숨에 관통했다.

꽝! 꽈르―릉!

10마리의 트롤 스켈레톤이 볼링 핀처럼 넘어지며 불타오르고 우그러졌다.

끝이 아니었다. 4개의 푸른 불꽃은 선회하여 돌아오더니, 무너져내리는 뼈들을 다시 한번 휩쓸고 지나갔다.

“젠장······.”

성우는 몸을 일으키는 즉시 아끼고 있던 ‘그림리퍼’를 소환하며 리치의 힘을 불러일으켰다.

- 사신의 낫 ‘그림리퍼’를 소환합니다.

- 그림리퍼 유지 시간 (00:59:58)

- ‘리치’의 힘을 얻습니다.

* 최대 권속 수가 (+50)만큼 증가합니다.

* 모든 능력치가 (+10)만큼 상승합니다.

* 인근의 파괴된 언데드를 ‘최대 권속 수만큼 무한정’ 부활‧재생시킬 수 있습니다.

“······사악한 힘을 가진 놈이군.”

이무기가 녹색 불에 물들어가는 성우를 노려보며 그렇게 평했다. 성우는 이어서 아누비스의 권능까지 불러냈다.

- 일시적으로 죽음의 신 ‘아누비스’의 힘을 얻습니다.

- 일시적으로 ‘데미 갓’ 상태가 됩니다.

- 모든 능력치가 대폭 상승합니다. (+10)

- <영혼 착취(장인)> 스킬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 <악령 폭격(장인)> 스킬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 <황혼 습격(장인)> 스킬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사악함에 더불어 야만스러움까지 품고 있구나.”

성우는 이제 한 마리의 검은 늑대가 되었다.

- 주의! 해당 지역에 ‘대강령’이 시작됩니다.

- 주의! 해당 지역에 ‘죽응의 응답’이 시작됩니다.

그리고 단숨에 총력을 소환했다. 성우는 검은 연기 속에서 몸을 움직이며 리피팅 크로스보우를 난사했다.

퉁! 퉁! 퉁! 퉁! 퉁!

그리고 그 뒤에서 트롤 스켈레톤들이 몸을 일으키며 새총을 당겼고 수인 스켈레톤들이 투창을 던졌다.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벽을 뚫고 ‘바위 골렘’ 두 마리가 튀어나오더니 거대한 돌덩이를 집어 던지기까지 했다.

그렇게, 수십 개의 발사체가 놈을 향해 쏘아졌다.

웅―

하지만 그 모든 건 허무하게 막히고 말았다.

“······뭐?”

이무기의 이마에서 푸른 문양이 빛을 발하더니, 놈의 대가리를 향해 날아가던 모든 것들이 허공에서 정지하는 게 아닌가?

“할 수 있는 게 이것뿐인가?”

놈이 비웃었고, 다음 순간, 그 모든 것들이 역행하여 날아들었다.

콰―과―과―광

성우는 찰나의 순간, 도깨비불이 만들어낸 그림자를 발견하여, 그 그림자로 순간 이동했다.

하지만 성우의 언데드 부대는 되돌아온 폭풍에 휩쓸리며 산산이 조각났다. 물론 되살아날 수 있었지만, 공격이 먹히지 않는다면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

“큭! 지금!”

그때, 본 와이번 두 마리가 천장에서 내려오며 발톱을 들어 올렸다. 놈이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들이닥쳐 급소를 노리려는 작전이었다.

하지만 그것마저도 소용없었다.

놈의 머리 위에 수십 개의 문양이 피어나더니 고속회전하며 수직으로 상승했다. 그리고 마치 믹서처럼, 두 마리의 본 와이번을 통째로 갈아버리기 시작했다.

가각! 가가가―각!

‘상대가 안 된다.’

압도적이었다. 여의도 레이드 당시, 각성 전에 상대했던 드레이크가 떠올랐다.

성우는 그때 좀처럼 좁힐 수 없는 격차를 느꼈고 결국, 브레스에 당하여 비참하게 죽고 말았었다.

‘위험하다. 부활 주문서를 써야 할 수도 있어.’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역시 죽음을 예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보다 더 큰 차이가 느껴지고 있었으니 말이다.

다만, 한 가지 보험을 두고 있었다. 김포국제공항의 비밀 상점에서 얻었던 ‘부활 주문서’였다.

‘하지만 다른 둘은······.’

지수와 한호 역시 날아드는 도깨비불을 피하는데 주력할 뿐, 어찌할 줄 모르고 있었다. 성우가 죽을 경우, 그들은 영영 죽고 말 것이었다.

그렇기에 쉽게 포기할 수 없었다.

쾅! 콰―광!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렇게 압도적인 건 말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다른 누구도 아니고, 지금까지 주어진 모든 퀘스트를 엄청난 격차로 공략해온 성우가 아니던가?

그런데, 필드 보스도 아니고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진 퀘스트 보스가 이렇게 강하다니?

‘설마 다른 공략법이 있는 건가?’

그 순간, 성우의 머릿속에 불현듯 어떤 장면이 스쳐 지나갔다.

‘벽화?’

동굴 초입에 보았단 상형 문자가 떠오른 것이다. 동그라미 안에 그려진 거대한 뱀······ 그건 바로 이 장소였다.

그렇다면 다음 그림은? 그리고 그 안에서 찾을만한 힌트는? 성우는 기억을 쥐어 짜냈다.

‘뱀 뒤에 세모 모양이 표시되어 있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마침내 깨달을 수 있었다.

‘애초에 이무기 자체를 노리면 안 된다. 다른 곳에 답이 있다.’

- ‘영혼의 머금는 자’에 의해 구속 중인 영혼 (80개)

세계수의 새로운 스킬 중 하나인 <영혼의 머금는 자>에 의해, 목숨을 거둔 이의 영혼을 저장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번 던전 공략을 준비하여 일부 영혼을 미리 빼둔 상태였다.

- 당신의 무기에 ‘악령 폭격’이 깃듭니다.

성우는 즉시 5개의 영혼을 소비하여 악령 폭격을 사용했다. 목표물은 이무기가 아니었다. 놈이 가로막고 있는 곳, 그 벽을 노려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 뷁궭$%#@긝!%67#

“이게 뭐야?”

“어?”

“······선배? 이 메시지는?”

갑자기,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메시지가 출력되었다.

- 뀕궭$%%%&@긝!(%67#)

- 쉙뉅벩빍#!!$%$$##%!!&*

- 치명적인 오류로 인하여 클라이언트 서버 연결이 종료됩니다. (ERROR CODE:0014231532)

다소 황당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서, 설마 게임이······ 꺼진 거야? 그런 거야?”

한호의 목소리와 동시에 모든 언데드가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움직여. 움직여라······.’

심지어 성우의 강제 명령조차 먹히지 않았다. 마치 애초에 연결되지 않은 것처럼, 성우는 녀석들을 움직이는 방법을 잊고 말았다.

그리고 그건, 이무기 역시 마찬가지였다.

치지―치지지!

놈은 마치 전기에 감전된 것처럼 몸을 부르르 떨어댔다. 그러더니 머리를 푹 숙이며 더는 움직이지 않는 게 아닌가?

“······.”

일행은 난데없이 벌어진 상황 앞에 멍하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긴장을 풀 수도 없었다. 갑자기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었으니 말이다.

그때였다.

“······누군가 감시하고 있다고 생각해봤나?”

어디선가 목소리가 울렸다. 그건 다름 아닌 이무기였다. 놈이 다시금, 천천히, 머리를 일으켜 세웠다. 두 개의 진한 안광이 성우를 내려다보았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지. 유성우, 나에게 와라.”

“······.”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성우는 잠깐 고민한 끝에 천천히 발을 떼었다. 그리고 앞으로 걸어 나갔다.

“나한테······ 할 말이 있는 모양이군?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바로 지금, 이 모든 것의 원흉인 시스템이······ 허점을 노출했다.

그리고 그 틈 사이로 진실을 마주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이 게임의 정체에 대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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