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1
36) 수원, 제3 진영의 서막 - 2
헌터 컴퍼니의 협상가는 성우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럼, 좋은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 주제넘은 부탁이지만······ 포로들의 안전을 부탁드리겠습니다.”
KY가 굽실거리면서 부탁했지만, 성우는 긍정의 대답을 내놓지 않았다.
“착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내 협상 카드는 포로의 목숨이 아니라 너희 조직 전체의 목숨이야.”
“······예,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당장은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지만, 본진으로 돌아가서 어떤 수작을 벌일지 알 수 없었다. 심지어 진화 학회에 도움을 요청하여 힘을 합칠 가능성 배제할 수 없었다.
‘완전히 멍청한 놈들은 아니다.’
하지만 나름의 체계를 마련할 정도로 구색을 갖춘 집단인 만큼, 어디에 붙는 게 더 이로울지 신중하게 결정할 것이었다.
성우는 그 점을 눈여겨봐, 어느 정도의 리스크를 감수하면서까지 협상가를 돌려보냈다. 즉 대어를 낚기 위한 떡밥을 뿌린 것이었다.
다음 날, 성우는 마을 내정에 관심을 쏟았다.
“음······ 대충 봤을 때, 하루에 50센티씩 자라는 것 같습니다.”
경수가 말했다. 성우는 초월적인 힘을 품은 나무, 세계수를 올려다보았다.
대만에 가기 전보다 훨씬 커진 상태였다. 그리고 그 강력한 힘은 일대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중이었다.
“팔달산에서 빛을 내는 풀들이 자라기 시작해서 캐봤는데, 신기하게도 이게 아이템입니다. 약초라네요?”
경수가 작은 상자를 열었다. 그 안에는 약간의 흙더미와 함께 푸른 빛이 도는 풀이 뿌리째 들어 있었다.
[아이템 정보]
- 이름 : 치유의 약초
- 등급 : 희귀
- 분류 : 약초
- 효과 : 섭취 시 상처를 빠르게 회복시키는 효과가 있다. 가공 작업을 통해서 훨씬 우수한 효과를 끌어낼 수 있다. 또한, 주기적으로 섭취할 경우 체력 수치의 상승을 불러올 수 있다.
이런 특수한 약초들이 주변에서 자라나기 시작했다. 이건 분명 세계수의 영향이었다.
한편으로는 세계수가 성우의 영향을 받은 상태이기에, 조금 남다른 것들이 종종 발견되는 중이었다.
[아이템 정보]
- 이름 : 심연의 뿌리
- 등급 : 희귀
- 분류 : 약초
- 효과 : 주의! 어딘가 잘못된 영향을 받은 약초이다. 섭취 시 생명력이 매우 감소한다. 가공을 통하여 훨씬 강력한 효과를 끌어낼 수 있다.
“······아무래도 이건 조심히 다뤄야겠네요.”
“이런 걸 가공할만한 직업이 있습니까?”
성우의 물음에 경수가 턱을 긁적이다가 입을 열었다.
“어, 요리 재료로 사용할 수 있고······ 아 맞다. 조리사 직업을 가진 플레이어 중에서 서브 직업으로 ‘연금술사’를 뽑은 분이 있습니다. 그분이 언제 한 번 물약을 만들기도 했거든요. 맡겨보면 될 것 같습니다.”
예전부터 생산직 플레이어를 따로 분류하여 작업 시설을 마련해주고 생산 활동을 장려했기에 나름의 체계가 마련된 상태였다.
그런 환경에서 레벨 업을 해온 플레이어들은 어느덧 전문가가 되어, 새로운 재료일지라도 곧바로 활용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이참에 물약 제조실을 따로 마련하는 건 어떨까요? 물약 관련해서는 사실상 기초도 안 되어 있거든요. 따로 천천히 실험하면서 제조 방법을 익혀나갈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좋은 생각입니다.”
물약은 전투 중은 물론이거니와 전투 후에도 필수적인 아이템이었다. 그리고 특별한 재료를 이용한다면 강력한 버프를 얻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세계수의 영향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선배! 이것 좀 들어봐요.”
한호가 아버지, 정호를 데리고 와서 무언가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아빠, 그러니까 언젠가부터 안전 구역을 펼칠 때 마나랑 골드가 필요 없어졌다는 말이죠?”
“그렇다니까? 아마 저 나무 심은 뒤부터였을 거다. 갑자기 무슨 시너지 어쩌고 하는 메시지가 보였어.”
정호가 사용할 수 있는 안전 구역인 ‘개척 캠프’ 스킬이 ‘신목의 그늘’의 영향을 받으면서 새로운 능력을 부여받은 것이었다.
“그래서 허공의 눈이라는 보조 스킬을 얻게 됐는데, 이게 가만히 앉아서 눈을 감으면, 그러니까······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결계 근처를 볼 수 있다니까?”
“오! 그럼 완전 CCTV 같은 거 아니에요? 선배, 이거 대박이죠? 그렇죠?”
“아들아, 아직 호들갑 떨지 마라. 그게 끝이 아니니까. 내 근처에 앉아서 같이 눈을 감으면 내 스킬에 연결돼서 같이 볼 수 있단다.”
정호가 기고만장하게 손가락 3개를 펴 보였다.
“최대 3명까지 연결할 수 있다. 어디 한 번 볼텨?”
“오, 대박! 가만히 앉아서 떡 받아먹었네요?”
“······뭐 떡? 네 애비가 앉아서 떡만 처먹는다는 거냐? 이놈은 대체 단어 선택이 왜 이리 아름답지 못해?”
한호가 어깨를 으쓱했다.
“뭐, 그래도 예전처럼 앉아서 화투만 칠 때보다는 좋은 거죠. 그때는 앉아서 집안 기둥 팔아먹었는데 이제는 앉아서 망이라도 볼 수 있으니까?”
“한호 이놈아, 그때 앉아서 화투패 들고 쌓아온 내공이 이제야 터졌다고 생각하진 않느냐?”
아무튼, 그렇지 않아도 촘촘하던 경계에 엄청난 플러스 요인이 추가된 것이었다.
이로써 근방 2킬로미터 주변은 철통 감시할 수 있게 됐다. 물론 정호가 깨어 있을 때만 가능할 테지만 말이다.
세계수의 이로운 영향은 한 가지 더 있었다.
- 일대에 ‘신목의 풍요’가 부여됩니다.
* 아이템 제작 성공률이 상승합니다. (+50%)
* 아이템 제작 시 추가 옵션이 부여될 확률이 상승합니다. (+10%)
* 아이템 제작 비용이 감소합니다. (+10%)
모든 생산 작업에 버프가 걸린 것이었다.
나무 한 그루가 끼치는 영향력은 정말 어마어마했다. 심지어 아직 ‘성장 2단계’라는 낮은 등급에 불과한 걸 생각해볼 때, 성체가 된다면 상상 이상의 버프 효과를 줄 것이었다.
‘이대로면 다른 그룹과 격차를 벌릴 수 있다.’
마을의 인구는 불과 226명에 불과하지만 진정한 소수정예 그룹으로 성장 중이었다. 추후 더 많은 인원을 받아들일 때, 이들이 중심 역할을 하게 될 것이었다.
‘영등포와 갈라선 게 아쉬웠지만, 언젠가는 영등포보다 더 커질 수 있다.’
물론 진영을 창설한 이후에도 새로운 플레이어를 무작정 받아들일 생각은 없었다. 무능력한 다수는 혹이 될 테니 말이다.
규모는 작더라도 질적으로 우수한, 그런 건강한 집단을 꾸릴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 질적 우수함을 위해서는 좋은 아이템을 다량 보유할 필요가 있었는데······.
“대장! 새로운 상점을 찾았어요.”
그 방법은 역시 상점이었다. 그런 면에서 태성은 큰 성과를 내고 있었다.
태성과 친구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일대를 돌면서 새롭게 형성되는 던전, 시설, 오브젝트 등을 확인하고 마을에 알리는 중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좀 뭔가 이상해요. 무슨 등급인지 확인하려고 했는데 접근 불가라고 뜨네요?”
그 말을 들은 성우의 눈빛이 달라졌다.
“······거기가 어디야.”
태성이 이번에는 대어를 물어온 모양이었다.
‘접근 불가한 상점이라면······ 비밀 상점이다.’
성우는 마침 와이번 알파메일을 잡을 때 ‘비밀 상점 쿠폰’을 하나 얻은 상태였다.
‘돈을 쓸 때가 왔다.’
그리고 엄청난 거금을 쥐고 있었다.
***
태성의 안내를 따라서 찾아간 곳은 팔달문 근처의 한 영화관이었다.
멀티플렉스치고는 상당히 낡고 크기도 작은 편이었는데, 한 상영관 입구에 붉은색 물음표 아이콘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역시 비밀 상점이다.’
성우는 상영관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갔다.
“앞에서 기다리고 있어.”
“어, 저는 접근 불가 뜨는데 대장은 들어갈 수 있어요?”
성우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남달라.”
- ‘비밀 상점 쿠폰’을 사용하겠습니까? (Y/N)
‘비밀 상점’은 아무나 입장할 수 없었다. 김포 공항 면세점에서 발견되었을 때도 쿠폰을 가지고 있던 성우만 입장이 가능했다.
그리고 비밀 상점 시스템은 완전 랜덤 시스템이 아니라, 고급 아이템 몇 가지가 제시되며 10초 안에 구매를 결정하는 방식이었다.
[플레이어 프로필]
- 이름 : 유성우
- 레벨 : 22
- 직업 : 네크로맨서, 흑마법사
- 능력 : 근력 (24+13), 민첩성 (19+11) 체력(16+9)
- 보유 골드 : 148,155,405
- 속성 : 혼돈
‘이제는 저번처럼 골드가 부족해서 넘길 필요도 없을 거다.’
흔히 말해서 총알은 충분했다. 무려 1억 4천만 골드를 가지고 있었다.
그동안 모아두었던 골드에 더불어 해적단을 쓸어버리고 마굴의 웨이브를 막으며 막대한 골드를 얻었다. 결정적으로 해적단의 금고를 발견하면서 6천 7백만 골드를 한 번에 얻었던 게 주요했다.
상영관 안으로 들어가자 스크린이 밝아졌다.
- 앉으시오.
성우는 F열의 가운데에 앉았다.
- 총 5가지의 엄선된 아이템이 차례대로 공개됩니다. 구매 의사가 있으면 “구매”라고 말해주세요.
* 의사결정 시간이 10초 주어집니다.
* 한 번 지나간 아이템은 구매하실 수 없습니다.
스크린이 다음 메시지로 넘어갔다.
- 보유한 골드가 많아 아이템 등급이 ‘상향’됩니다.
그럴 만도 했다. 지난번의 10배에 달하는 골드를 가지고 들어왔으니 말이다.
- 첫 번째 아이템이 공개됩니다.
[아이템 정보]
- 이름 : 만병통치약 5개 세트
- 등급 : 특수
- 분류 : 소비
- 효과 : 사용 시 모든 ‘상태 이상’을 해제할 수 있다.
* 가격 : 3,000,000골드
‘저번에는 그냥 넘겼던 아이템이다.’
김포 공항의 비밀 상점에서도 이 아이템이 나왔었다. 당시에는 고민 끝에 더 높은 가격의 아이템을 살 돈을 남겨두기 위해서 그냥 넘겼었다.
- 7초 남았습니다.
“구매.”
이제는 골드가 충분하고도 넘치니 시원하게 구매를 선택할 수 있었다.
- 두 번째 아이템이 공개됩니다.
[아이템 정보]
- 이름 : 아수라의 로브
- 등급 : 전설
- 분류 : 외투
- 효과 : 민첩성 수치 상승(+2), 체력 수치 상승(+3), ‘합장’을 하면 로브에 새겨진 4개의 팔이 발동되며 10분간 지속됩니다. (재사용 대기 : 1시간)
* 가격 : 6,000,000골드
‘첫 번째보다 가격이 2배나 뛰었다.’
성우는 이미 ‘외투’ 분류의 ‘그림자 왕의 로브’ 아이템을 착용 중이었다.
‘아수라의 로브’ 아이템이 더 좋은 능력치를 가지고 있다지만 세트 아이템 효과를 위해서라도 그림자 왕의 로브를 고수할 필요가 있었다.
- 5초 남았습니다.
‘근데 팔이 4개가 더 나온다니? 너무 흉측하잖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런 좋은 포기할 수는 없었다.
“······구매. 뭐, 한호라도 주면 단검을 더 많이 던질 수 있겠지?”
사지 않는 것보다 한호에게 주는 게 더 이로울 것이었으니 말이다.
- 세 번째 아이템이 공개됩니다.
[아이템 정보]
- 이름 : 만능열쇠
- 등급 : 특수
- 분류 : 소비
- 효과 : 잠겨 있는 모든 자물쇠를 열 수 있다. 1회 사용 시 소멸된다.
* 가격 : 9,000,000골드
만능열쇠라? 성우는 지금까지 ‘자물쇠’라는 오브젝트를 본 기억이 없었다. 혹시 보물상자 같은 게 나오는 걸까?
‘혹시 지역 제한도 풀 수 있는 건가?’
생각해보면 비슷한 아이콘으로 일정 지역을 출입을 폐쇄하는 ‘보라색 쇠사슬’이 있긴 있다만, 그것도 해당하는 건지는 알 수 없었다.
“구매.”
하지만 이런 건 언제 쓸 일이 생길지 모르니 사두는 게 좋았다.
- 네 번째 아이템이 공개됩니다.
[아이템 정보]
- 이름 : 귀면갑(鬼面甲)
- 등급 : 전설
- 분류 : 마스크
- 효과 : 착용 시 ‘민첩성 수치’에 비례하여 ‘도(刀)’의 데미지가 상승합니다. 주변의 인기척을 더 선명하게 감지할 수 있습니다. (+20%)
* 가격 : 12,000,000골드
“이건······.”
그 외양은 귀면와(鬼面瓦)의 도깨비 얼굴 중에서 하관만 따로 떼어 놓은 것 같은 안면 갑옷이었다. 성우는 그 아이템의 효과를 유심히 살펴보다가 결론을 내렸다.
“효과가 딱 지수 씨 아이템이네.”
지수가 민첩성 수치가 높기도 하며, 감각에 관한 옵션 역시 그녀가 착용할 때 극대화될 수 있어 보였다.
한호를 위한 아이템을 하나 준비했으니 지수를 위한 선물도 하나 마련한 것이다.
- 7초 남았습니다.
사실 그런 걸 떠나서 지수는 투자할만한 가치가 있는 플레이어였다. 성우를 제외한다면, 압도적이라고 할 만큼 강한 축에 속했으니 말이다.
비록 권속을 부리거나 광역 마법을 펼치면서 다수의 적을 쓸어버릴 수는 없었지만, 개인의 무력만큼은 성우 이상이 분명했다.
“구매.”
지수는 언제나 기대 이상의 몫을 해왔기에, 더 강해지기만 한다면 몇 배의 활약을 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 다섯 번째 아이템이 공개됩니다.
그리고 이제 마지막 아이템이 등장할 차례였다.
“뭐야 이건······.”
성우는 눈앞에 떠오른 글자를 다시 한번 살폈다.
“······신화 등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