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네크로맨서-100화 (100/244)

# 100

36) 수원, 제3 진영의 서막 - 1

세상이 게임처럼 변했다.

대체 왜?

처음에는 누구나 의문을 품었다. 게임처럼 변하는 게 가능한가? 그리고 누가 이런 짓을 벌이는 거지? 기업의 음모? 아니면 신의 장난? 그것도 아니라면 설마, 꿈?

하지만 이내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게 됐다.

언젠가부터 중요해진 건 누가, 왜 퀘스트를 주는가가 아니었다. 당장 퀘스트를 어떻게 공략해야 할지, 그게 이 세상의 핵심이 되었다.

그렇다. 당장의 생존을 위해서라면 의문을 품을 여유조차 없었다.

그런데 네크로맨서가 말했다.

“······이 현상을 해결하려고 합니다.”

그 대사는 네크로맨서의 압도적인 활약 뒤에 나왔기에 훨씬 더 강렬하게 다가왔다.

마치 부정부패가 만연한 사회 속에서 그 누구도 저항하지 못한 채 눈을 감고 있을 때, 강력한 혁명가가 등장하여 정의를 주장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 파급력은 무시 못 할 수준이었다.

[501] 네크로맨서 지지합니다.

- 작성 : 강북1994 │ 조회 : 11,443

이번에 해적 토벌 방송 재미 삼아서 보고 있다가 깨달은 바가 많습니다. 세상이 왜 이 지경이 됐는지 다시 한번 고민하게 됐네요. 그리고 새삼스레 분노하게 됩니다. 우리가 왜 이런 꼴을 당해야 할까요? 그리고 천사와 악마는 무슨 속셈일까요? 신중하게 생각해봐야겠습니다.

제가 능력이 모자라 제3 진영에 들어가고 싶다고는 감히 말하지 못하지만 네크로맨서 지지합니다. 그리고 제 나름대로 노력해볼 겁니다.

[댓글 : 14]

─ 승철123 : 저도 지지합니다.

─ kor-2222 : 지지합니다.

─ 박 하사 : ㄹㅇ일침 지렸습니다. 따르겠습니다.

─ 55아저씨 : 앞으로 짐승답게 살아남지 않고 인간답게 저항해보렵니다.

─ 구희망 : 제3 진영 들어가고 싶다ㅠㅠ

─ 야스오1 : 흠;

한편 네크로맨서의 방송이 종료된 이후, 서울 북부에서 천사 진영과 악마 진영 간의 전쟁이 재개되었다.

정훈이 이끄는 크루세이더 팀이 직접 나서서 재건 동맹을 밀어내고 ‘청량리 거점’을 확보 등 꽤 중요한 사건도 벌어졌다.

그리고 그들 역시 선전을 위해서 그 장면을 중계했지만······.

[실시간 채팅]

─ 끝까지살아남기 : 역시 크루세이더 팀 대단하긴 한데 이상하게 뭔가 심심하다?

─ 진상JS : ㅇㅇ그거 며칠 전에 대작 보고 나서 평작 볼 때 느낌임

─ 인천살고있음 : 드르렁

─ 영등포 법사 : 수고하셨습니다.

그걸 지켜본 시청자들은 왠지 모르는 허전함을 숨기지 않았으며 채팅창 반응도 미적지근했다.

그 이유야 누구나 알고 있었다. 한국 서버의 플레이어들은 여전히 네크로맨서의 활약에 감화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우리도 지금부터 사냥해야 한다니까요? 네크로맨서님 말씀 못 들었어요? 이대로면 도태 돼요!”

“그래 혜연아, 알았으니까 일단 진정 좀 해라.”

혜연은 네크로맨서의 방송을 본 이후 어린아이처럼 호들갑을 떨어댔다. 무연은 그런 딸을 달랬다.

“아무리 그래도 성급하게 나서면 안 되는 거야. 천천히 신중하게 준비해야 해. 우리를 지키기 위한 일인데 누가 죽거나 다치면 안 되잖아?”

“알겠어요······.”

물론 무연도 강화도의 플레이어들이 강해지길 바랐다. 레벨 업을 하고 아이템을 확보해, 생존 능력을 꾸준히 키워갈 생각이었다.

해적단에게 크게 당한 경험이 있는 만큼, 평생 마음 편히 발 뻗고 지낼 수 없는 운명이었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더 중요한 게 있었지······.’

지금까지는 생활 기반 복구와 중국 서버 감시에 주력해오고 있었다. 그건 네크로맨서와의 약속이기도 했는데, 상당한 인력과 시간을 필요로 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네크로맨서가 해적단을 끝장내버리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이제 때가 오긴 왔다. 우리도 큰일이 생길 때마다 네크로맨서를 찾아야 하는, 그런 약한 집단일 수는 없지. 그 사람 말대로 쓸모가 있어야 해.”

“맞아요. 이미 두 번이나 도움을 받았잖아요. 언젠가는······ 우리가 네크로맨서님께 도움을 줄 수 있어야죠.”

이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제3 진영을 지지하며 네크로맨서의 뜻을 따르고 있었다.

그렇기에 성우가 방송에서 마지막으로 한 말, 자신을 지킬 힘을 키우라는 말의 의미가 그 누구보다 강렬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 언젠가는······.”

이들은 제3 진영의 당당한 한 축이 되어 네크로맨서의 힘이 될 생각이었다.

***

“오, 대박! 대박!”

해적단이라는 멸칭이 퍽 어울리게, 이들의 창고에는 온갖 아이템이 가득했다. 한호는 그 사이에서 녹색 칼날의 단검을 두 자루를 꺼내 들었다.

[아이템 정보]

- 이름 : 유령의 비수

- 등급 : 영웅

- 분류 : 단검

- 효과 : 칼을 휘두를 때, 칼날의 모양을 본뜬 ‘귀신의 칼날’을 발사할 수 있습니다. (재사용 대기 : 10초)

지금까지도 성우가 만들어주는 ‘뼈 단검’ 같은 조잡한 무기로 연명해오던 한호였다. 그런데 그 비루한 과거를 뒤로하고 마침내 득템한 것이다.

“······드, 드디어 나도! 나도! 얻었다!”

그것도 단검 투척에 특화된 아이템을 얻게 됐으니 한호에게는 인생 일대의 운수 좋은 날이었다. 그는 저도 모르게 눈시울을 붉혔다.

“그동안 해온 고생이 막, 막, 스쳐 지나가네. 흑!”

성우 역시 언데드를 대동하여 쓸만한 아이템을 배낭에 챙기고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전부 쓸어가고 싶지만, 애초에 이곳에 있는 아이템 대부분이 대만 플레이어들에게 약탈한 것이었으니, 그들이 생활 기반을 복구할 만큼의 자원은 남겨주는 게 인지상정이었다.

“하지만······ 이건 챙겨야지.”

물론 포기할 수 없는 물건도 있었다.

[아이템 정보]

- 이름 : 맹세의 금고

- 등급 : 특수

- 분류 : 금융

- 효과 : ‘계약된 플레이어’가 벌어들이는 골드 중 일부가 자동으로 입금된다.

- 설명 : 금고 위에 손바닥을 얹으면 ‘계약 등록’을 할 수 있다. 금고 소유자는 ‘수금 비율’을 정할 수 있으며, 계약자가 벌어들이는 골드에서 해당 비율만큼 금고로 자동 입금된다.

* 수금 비율 : 50%

* 등록된 계약자 : 119명

* 현재 보유 골드 : 67,858,248

거의 6천 8백만 골드다. 이번에도 엄청난 유산을 남겨두고 갔다.

“골드가 넘치는군.”

한편 지수는 ‘생존 퀘스트’를 완료하여 얻은 ‘C급 경험치 쿠폰’을 사용할 수 있는 경험치에 도달했다.

마물을 몇 마리 잡지 않았음에도, 엄청난 레벨 차이 때문에 다량의 경험치를 획득한 것이었다. 그녀는 쿠폰을 사용하여 레벨 업을 했다.

그 결과······.

[KOR 서버 랭킹(1페이지)]

1) 한강석 (LV. 22)

2) kor-157 (LV. 22)

3) DOCTOR-000 (LV. 20)

4) 영등포 검사 (LV. 19)

5) kor-339 (LV. 18)

마침내 5위에 진입했다.

그리고 이 사건 역시 제3 진영을 돋보이게 하는 키워드가 되기에 충분했다. 네크로맨서 팀의 2명이 탑5 안에 들어가는 랭커라는 건, 꽤 매력적인 상징으로 여겨질 수 있으니 말이다.

“슬슬 돌아가죠.”

성우의 말에 지수와 한호가 다가왔다.

“준비 끝났어요.”

“저도요! 대박이다! 나도 이제 무기 있다! 으흐흐······ 선배, 이제 뼈 단검 만들어주실 필요가 없답니다!”

둘 다 어딘가 뿌듯한 표정이었다.

일행이 한국 서버로 돌아갈 준비를 끝마치자 대만의 플레이어들이 다가와 작별 인사를 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덕분에 자유를 찾았습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그들은 다시 한번 감사를 표했고 마지막으로 첸이 앞으로 나섰다.

“비록 지금은 부족하지만, 조만간 반드시 연락드리겠습니다.”

그가 대만의 플레이어를 대표해 당찬 포부를 내비쳤다.

“······그때는 실망하게 해드리지 않을 거라고 약속드립니다.”

‘자신을 지킬 힘’이라는 조건은 이들에게는 반드시 이루고 싶은 염원이자 도전이었다. 그렇기에 자신들의 결핍을 자극한 제3 진영 쪽에 더 큰 끌림을 느끼고 있었다.

“기다리겠습니다.”

성우는 고개를 끄덕이고 포탈을 열었다.

- 세계수(신단수)로의 ‘귀환 포탈’이 열립니다.

네크로맨서 팀은 순식간에 세계 정서를 바꿔 놓은 뒤, 다시 한국 서버로 돌아갔다.

***

성우는 마을로 복귀한 뒤, 해적단의 창고에서 챙겨온 아이템들을 전부 풀었다. 거의 트럭 한 대는 가득 채울 만한 양이었는데, 하나하나가 꽤 고급 품목이었다.

경수와 인호도 감탄을 금치 못했다.

“와, 이게 뭡니까? 상단 끌고 대륙 무역 갔다가 오신 것 같네요.”

“해적을······ 약탈했군요.”

그 앞에 한호가 뿌듯한 표정으로 나섰다.

“으흐흐! 겨우 그걸로 감탄하시기에는 이릅니다. 자! 이걸 보세요!”

그는 허리춤에서 두 자루의 단검을 꺼냈다. 경수와 인호는 그 녹색 물체를 멀뚱히 바라보았다.

“······네?”

“그건 뭡니까? 면도칼?”

그들의 반응에 한호가 발끈했다.

“뭐, 뭐라고요? 면도칼이라니!”

“그럼 케이크 커터인가? 승리를 자축하려고요?”

“아, 맞네.”

“아니! 진짜!”

한호는 두 자루의 단검을 붕붕 휘두르며 이 아이템의 효과가 얼마나 대단한 건지 일장 연설을 해댔고, 경수와 인호는 한 귀로 들으며 아이템을 품목별로 분류했다.

“이 석궁 좋은데요? 3연발이라니?”

“이 방패도 우리가 사용하는 것보다 등급이 높네요. 탱커 라인 강화할 필요가 있었는데 잘 됐습니다.”

그리고 괜찮은 아이템을 선별하여 마을 경비대에게 지급했다. 이로써 마을의 전투력을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었다.

“우리 경비대 이렇게 계속 강해지면 진짜로 크루세이더 팀보다 세지는 거 아닙니까?”

“제가 분석해볼 때 그거······ 가능입니다.”

인호의 농담에 경수가 맞받아쳤다. 이들은 한차례 승전에 고무되어 있었다.

성우가 없는 사이에 침입자가 있었지만, 경비대가 놈들을 제압한 걸 넘어서 생포하기까지 한 것이었다.

“그런데 쫓아낸 것도 아니고 어떻게 생포한 겁니까?”

격퇴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만, 생포라니? 그건 성우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아, 그게······.”

이에 인호가 침입자 생포 과정을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이전에 성우 씨가 결계만 믿으면 안 된다고 하셔서, 주기적으로 결계 근처를 순찰하고 있었거든요.”

인호는 마을의 경계 작전을 책임지고 있었다. 그는 48명 총 8개의 순찰조를 꾸려서, 4교대로 결계 주변을 감시하는 중이었다. 마치 철책 타듯 말이다.

“······그게 오후 4시 13분쯤이었나? 결계를 뚫고 있는 놈들을 딱 포착한 거죠.”

“거기서 김 조장이 잘 판단했죠.”

경수의 덧붙임에 인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그런데 놈들 아이템 수준을 볼 때, 우리보다 훨씬 강한 놈들이라고 판단한 순찰 조장이 섣불리 교전하지 않고 저에게 보고해온 거죠.”

놈들이 결계를 뚫어낸 직후 전투가 벌어진다면, 어떻게든 막아낼 수 있다고 하더라도 다수의 아군 사상자를 감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하물며 침입자의 정체를 밝혀야 하건만, 치열하게 싸운 뒤에는 생포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었다.

“······그래서 일부러 끌어들였죠.”

보고를 받은 인호는 함정을 준비했다.

“모든 경비대를 동원해서, 놈들이 구멍을 뚫고 있는 결계 주변의 모든 골목을 ‘전기 펜스’ 아이템으로 틀어 막아버렸죠.”

‘전기 펜스’는 뱀파이어 로드가 대학살을 꾸밀 당시 광장에 사람을 가둘 때 썼던 아이템이었다. 그게 아직 남아 있었다.

그렇게 완전히 봉쇄한 뒤, 놈들이 전부 들어올 때까지 옥상에서 잠복하고 기다렸다고 한다.

“마침내 놈들이 들어오고, 결계가 자동 회복되면서 퇴로가 차단됐습니다. 바로 그때 팔달산에 있는 뇌신의 철퇴가 포구를 틀어서······ 쾅!”

그리고 놈들의 머리 위에 공성 병기를 꽂아버린 것이다. 와이번도 한 방에 죽이는 그 무기를, 놈들이 버텨낼 리가 없었다.

침착하게 함정을 파서 제대로 한 방 먹인 것이었다.

“······그렇게 한 방에 절반이 죽어버리고 옥상에서 저격수랑 마법사가 등장하니까 뭐, 항복 안 할 수가 없던 거죠.”

인호가 어깨를 으쓱했다. 본인이 생각하기에도 뿌듯했다. 훨씬 강한 상대를 단 한 명의 희생자도 없이 제압한 건 실로 대단한 일이었으니 말이다.

“정말 대단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성우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뭐, 경계에 실패한 병사는 용서받을 수 없으니까요.”

“그런데 포로는 어디에 있죠?”

인호가 미술관 건물을 가리켰다.

“아, 당장은 미술관 안에 창고 두 개에 나누어 가둬뒀는데, 이런 일이 자주 벌어진다면 감옥도 따로 만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저녁에 제가 찾아가겠습니다.”

포로 심문보다 먼저 확인해야 할 게 있었다. 그건 ‘진영 퀘스트’의 보상을 확인하는 일이었다.

[스킬 정보]

- 이름 : 제3 진영의 금고 (임시)

- 등급 : 기초

- 분류 : 액티브

- 소모 : 일정량의 골드

- 효과 : 아공간(亞空間)에 아이템을 보관·공유할 수 있는 ‘인벤토리’를 엽니다. 권한이 있다면 언제 어디에서든 사용할 수 있습니다. 1개 보관 시 100,000골드가 소모됩니다. (개수 제한 : 10개)

* 사용 권한 등록자 : 1명

[아이템 정보]

- 이름 : 제3 진영의 깃발(임시)

- 등급 : 특수

- 분류 : 진영 아이템

- 효과 : 깃발을 설치할 시, 일정 구역 내(1km) 제3 진영에 속한 플레이어들에게 버프가 부여됩니다. (모든 능력치 상승 +1) 해당 버프는 ‘진영의 위세’에 따라서 강화·축소됩니다.

아직은 진영 창설이 완료되지 않았으니 두 보상 모두 ‘임시’ 등급으로 부여받은 듯했다.

‘하지만 역시 일반적인 스킬과 다르다.’

대규모 유틸리티와 버프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이처럼 진영에 속해 있으면, 솔로 플레이에서는 얻을 수 없는 특별한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물론 절대 종족에 비하며 미미하겠지.’

천사 진영은 성우를 공격하는 플레이어들에게 모든 능력치를 대폭 상승시키는 버프를 걸어줄 정도였다. 성우의 제3 진영이 그 정도 수준이 되려면 아직 한참 멀었을 것이기에 놈들과 경쟁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렇기에 훨씬 견고한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 진영 버프가 아니라 그 자체만으로 강한 조직······.’

성우에게는 믿는 구석이 하나 있었다. 그는 고개를 돌려서 광장에 자라나고 있는 세계수를 바라보았다.

- 세계수(성장 2단계)가 성장 중입니다. (15%)

앞으로 세계수가 자라나면서 얼마나 큰 혜택을 줄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다른 이들과의 경쟁에서 엄청난 격차가 되어 줄 거라는 건 확실했다.

***

성우는 침입자들의 리더와 마주 앉았다. 그는 자신을 ‘헌터 컴퍼니’라는 조직의 ‘팀장’이라고 소개했다.

“헌터 컴퍼니라?”

“들어본 적 없습니까? 그래도 저희 요즘 꽤 유명한데.”

놈은 무슨 자신감인지 그런 너스레를 떨어댔다. 성우는 잠자코 받아줄 생각은 없었다.

“······그래? 그럼 그게 마지막 전성기가 되겠군.”

살벌한 말이었다. 네크로맨서가 직접 헌터 컴퍼니를 끝내버리겠다는 소리였으니 말이다. 놈의 눈동자가 파르르 흔들렸다.

“여기를 공격한 건 다 비즈니스였습니다. 개인적인 감정은 없고요. 그리고······ 실수였죠. 예. 치명적인 실수요.”

“그래서 용서해달라는 건 아니겠지? 나는 철저하게 개인적인 감정이야. 그리고 실수 따위 안 해.”

“······.”

솔직히 어떤 말로도 합리화할 수 없는 상황이었으며 입을 열면 열수록 구차한 변명일 될 뿐이었다.

“그게······”

팀장은 고개를 떨구었다. 마주 보고 있는 존재와 눈을 마주치는 것조차 두렵다는 걸, 새삼 깨달은 것이다.

“저, 저는 그저 현장 지휘관이기 때문에 이런 복잡한······ 그러니까 함부로 입을 열기가 어렵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실패하고 생포된 걸 안다면 협상가가 올 겁니다. 우리 회사는 그런 체계까지 마련되어 있거든요.”

협상가라니? 그 말에 네크로맨서가 피식 웃었다.

“체계? 나름 직원들을 보호한다는 건가? 구색만 갖춘 무능력자들이군.”

“······.”

그리고 정말로 12시간 뒤, 협상가가 도착했다. 결계 근처에서 기다리고 있는 두 사람을 인호의 순찰조가 포박해 데려온 것이다.

나이가 있는 남녀였는데, 그들은 이 시대에 어울리지 않게 정장을 빼입고 있었다. 파란 넥타이를 맨 남자가 앞으로 나섰다.

“네크로맨서님,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저는 헌터 컴퍼니의 협상 2팀장 KY라고 합니다. 아무래도 저희가 큰 누가 된 것 같군요. 대표로 사과드립니다.”

정말로 자신들이 사업가라고 생각하는 건지, 뻔뻔한 친절을 자아냈다.

“진화 학회인가?”

성우가 다짜고짜 물었다. 성우는 진화 학회의 소행이라는 걸 어느 정도 예상하였고 직설적으로 떠본 것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포커페이스를 유지했다.

“예? 무슨 말씀을? 저희는 헌터 컴퍼니입니다.”

“아니, 너희 고용주 말이야.”

“하하하······. 저 네크로맨서님? 천천히 이야기 나눌 수 있을까요? 드리고 싶은 말씀이 많습니다.”

하지만 성우는 냉정하게 고개를 저었다.

“나는 시간이 없어. 이렇게 시간을 끄는 동안 너희 수뇌부는 머리를 굴리고 있겠지. 아마 도망갈 생각부터 하고 있을 거야. 그렇지?”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더 멍청한 건데? 어떻게 감당하려고?”

KY는 떨떠름한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고 성우는 별안간 검지를 들어 올려 자신의 관자놀이를 툭툭 치기 시작했다.

“하나 알려주자면 나는 너희의 시체에서 기억을 뽑아낼 수 있어. 그래서 너를 죽이고 너희 소굴을 알아내서 찾아갈 거야. 자, 10분 뒤에 시작한다.”

성우의 담담한 목소리에 KY의 표정은 차츰 어두워졌다. 네크로맨서의 장담이 허세가 아니라는 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KY 마른 입술을 열었다.

“······저, 무얼 원하십니까? 저희는 네크로맨서님과 협상하기 위해서 왔습니다. 잘못된 선택에 대한 응당한 대가를 감내할 각오로요.”

성우가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앞서 말했듯, 나는 기억을 뽑을 수 있어. 그래서 입 아프게 떠들지 않는 편이야.”

“······.”

“그러니까 내가 너희를 깡그리 죽이지 않으려면, 너희가 그것보다 가치 있는 일을 해줘야겠지? 네 머릿속에 담긴 것보다 더 가치 있는 일을 말이야.”

더 가치 있는 일이라? KY는 침을 꿀꺽 삼키며 네크로맨서의 입을 바라보았다. 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진화 학회, 그놈들의 본거지를 파악해서 가져와.”

바다 너머의 성가신 것들을 뿌리 뽑았다.

이제 한반도 내의 오래된 문제를 청산할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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