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네크로맨서-98화 (98/244)

# 98

35) 대만, 마굴의 문 - 2

포탈에서 엄청난 진동 흘러나왔다. 모든 이들의 시선이 그곳으로 향했다.

‘지금이다.’

천공장군은 몸을 돌렸다. 최후의 수단까지 실패했으니 이제 할 수 있는 건 줄행랑뿐이었다. 네크로맨서가 마물들에게 눈이 팔린 사이에 서둘러 움직였다.

특별한 주술로 보호받고 있으니 마물에게 당할 일은 없었다. 네크로맨서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숨기만 한다면 목숨을 부지할 수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건물을 돌아나가 계단을 내려가기 직전, 웬 스켈레톤 한 마리가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딱딱―

고블린 스켈레톤이었다.

“······응?”

녀석은 순식간에 달려들어 칼을 내질렀다.

푹!

천공장군은 배를 부여잡고 엎어졌다.

“······허, 허억!”

그는 전투 스킬은 물론이거니와 전투 경험조차 거의 없었었다. 지금까지 세뇌 스킬을 이용하여 수많은 부하를 거느리며, 그들의 보호를 받아왔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한 마리 스켈레톤의 공격에도 전혀 대처할 수 없었다.

“그래······ 마음대로 되지 않으면 전부 버리고 도망가는 거, 그게 너희가 책임질 수 있는 수준이지?”

어느새 그의 뒤에 네크로맨서가 서 있었다.

“흐허어······.”

“오래전부터 천사 종족을 섬겨왔다고 하더니, 이게 절대 종족에 의지하는 플레이어들의 수준이라고 봐도 되나?”

성우는 고개를 돌렸다. 어느새 그곳에 한호와 함께 있던 한국 서버의 카메라 오퍼레이터가 다가와 있었다.

그는 카메라를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런 종류의 인간과 이런 종류의 인간을 두는 절대 종족을 어떻게 믿지?”

한국 서버에 전하는 말이었다.

“나는······ 절대로 안 믿어.”

그 말을 끝으로 그림리퍼를 들어 올렸다.

“크, 흐어! 자, 잠깐만!”

성우는 고개를 저었다.

“미안하지만, 네가 벌여 놓은 일을 처리해야 해서 시간이 없어.”

그림리퍼가 낙하했다.

- 천사 진영의 ‘간부 플레이어’를 처단하여 340,000골드를 얻었습니다.

언제나 그렇듯, 네크로맨서에게 맞선 이들의 최후는 허무하기만 했다.

그런데 일반적인 플레이어 살해 보상보다 훨씬 많은 골드가 들어왔다. 이런 식으로 더 큰 보상을 통해서 각 진영이 서로를 공격하게 유도하는 것이었다.

‘목걸이가 보호해준다고 했지?’

성우는 놈의 목덜미에서 쥐 머리뼈 모양의 목걸이 아이템을 빼내었다.

[아이템 정보]

- 이름 : 마굴의 열쇠

- 등급 : 불명

- 분류 : 목걸이

- 효과 : 마나 상승(+100)

- 설명 : 착용 시 ‘마물’의 공격 대상에서 제외됩니다. 단, 주기적으로 마굴에 ‘인신 공양’을 해야지만 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남은 유효 기간 : 13일)

유효 기간을 갱신할 때마다 ‘마굴의 문’ 아이템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게 뭐야?”

천공장군의 직업이 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으나, 단순히 저 레벨 플레이어를 세뇌하는 걸 떠나서, 그들을 마굴에 바쳐왔다는 걸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즉, 악마를 섬기는 사이비 교주 같은 놈이었다.

- 천사 진영에서 당신에 대한 현상금을 상승 조정합니다.

* 천사 진영 현상금 : 75,000,000골드

그리고 놈을 살해함으로써 천사 진영의 분노가 가중된 모양이었다. 하지만 현상금을 올린다고 해서 성우를 막을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절대 종족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가지고 고작 현상금을 올리는 게 전부인가?’

마굴의 문이 더욱 격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성우는 몸을 돌렸다.

“언젠가 절대 종족 자체를 상대할 때가 오겠지.”

시스템은 분명 그런 흥미진진한 상황을 바랄 것이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건 레벨 업이었다.

***

총 25명의 플레이어가 건물 사이를 이동 중이었다. 그들의 머리 위, 도로 표지판이 그들이 가는 곳이 수원 방향임을 가리키고 있었다.

“곧 수원이다. 행궁까지도 얼마 남지 않았다. 10분 휴식 후 계속 움직인다.”

그들은 골목 안에 몸을 숨기고 휴식을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사주경계를 하는 인원이 있는 걸 볼 때, 어느 정도 체계화된 집단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팀장, 이번 의뢰만으로 350만 골드를 받았다는 게 진짭니까? 그럼 역대 최고 액수잖아요?”

“의뢰 단가는 나도 잘 몰라. 하지만······ 상대가 상대인 만큼 적지 않은 돈을 받았겠지.”

이들 조직의 이름은 ‘헌터 컴퍼니’로 한국 서버의 커뮤니티를 자주 이용하는 플레이어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집단이었다.

그 이유는 이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홍보 게시물을 올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 내용은 아래와 같았다.

[501] 용병 필요하시면 연락해주세요.

- 작성 : 양 단장 │ 조회 : 1,413

저희는 122명으로 구성된 용병 집단 ‘헌터 컴퍼니’입니다. 무력이 필요한 모든 일을 대신 처리해드립니다. (몬스터 사냥, 던전 토벌, 경호, 전투, 기타 등등)

현 시간 기준으로 조직원 평균 레벨은 10이며, 경우에 따라 평균 레벨 13 이상의 파티를 운용할 수 있습니다. (10인 기준 최대 2팀 운용 가능)

비용은 상담을 통해 결정되며 상황에 따라 사후 추가 비용이 청구될 수도 있습니다. 저희 ‘헌터 컴퍼니’는 철저하게 신뢰를 바탕으로 운영됩니다. 믿고 맡겨주신다면 결코 실망하게 해드리지 않겠습니다.

[댓글 : 1]

멸망한 세상에서 플레이어들이 가장 필요로 하면서도 꺼리는 게 무엇일까? 그건 단연, 목숨을 걸고 싸우는 것이다.

그리고 그게 돈이 될 거라는 걸 깨달은 이들이 바로 ‘헌터 컴퍼니’였다. 이들은 무력을 상품화하여 적지 않은 골드를 벌어들이는 중이었는데, 쉽게 말해, 용병이었다.

한편, 계약 조건에는 성공 시 커뮤니티에 ‘리뷰’를 올려줘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고 자연스레 입소문이 나며, 갈수록 이들을 찾는 연락이 많아졌다.

“350만이라? 그런데 아무리 350만이라도······ 이번 일은 선뜻 자원하기 힘든 일이라는 건 확실하네요. 그 잘난 1군 애들도 몇 명 안 온 걸 보면요?”

분명 엄청난 돈이 걸린 일이었거늘, 이들은 프로답지 않게 긴장이 역력한 표정이었다. 그 이유는 이번 목표물이 달라도 너무 남다른 존재였기 때문이었다.

“······허허, 참나. 하필 의뢰 대상이 네크로맨서라니? 진짜 괜찮을까요? 지금 방송만 봐도 무시무시한데요?”

그의 너스레에 팀장이 인상을 찌푸렸다.

“뭐가 문제지? 우리 정체만 들키지 않으면 돼. 어차피 놈은 24시간 동안 대만에 처박혀 있을 운명이야. 그 사이에 놈의 근거지를 치고 빠진다.”

헌터 컴퍼니의 수뇌부 역시 네크로맨서를 공격한다는 게 미친 짓이라는 걸 모르는 게 아니었지만, 그를 직접 상대하는 일이 아니었기에 승낙했다.

이번 의뢰의 목표물은 네크로맨서 자체가 아니라, 그의 근거지와 주변인들이었으니 말이다.

“뭐······ 하긴, 맞습니다. 그나저나 진화 학회라니? 걔들은 또 정체가 뭐랍니까? 이름만 들어도 정상이 아닌 놈들이라는 게, 막 느낌이 팍 오는데요?”

“이봐, 너 계속 헛소리하는데, 무슨 일이 있더라도 고객 정보 유출은 안 된다. 입 다물고 있어.”

“······아, 예. 당연하죠.”

이들을 고용한 건 다름 아닌 ‘진화 학회’였다. 평택 공습 당시 많은 병력을 잃었기에 직접 나설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최근 들어 명성과 신뢰를 쌓고 있는 ‘헌터 컴퍼니’를 고용하여 네크로맨서의 본진, 수원 마을을 공격하게 한 것이었다.

팀장은 수통을 꺼내 목을 축였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24시간이면 고작해야 이백 명이 사는 건물 하나쯤이야 순식간에 박살 내고 멀리 빠져나갈 수 있다. 의뢰인이 준 정보에 의하면 강력한 결계가 있다고 하지만······.”

팀장은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그건 ‘진화 학회’라는 의뢰인이 지원해준 아이템이었다.

[아이템 정보]

- 이름 : 마나 역류 장치

- 등급 : 플레이어 제조

- 분류 : 소비

- 효과 : 마나를 역류시켜 주문을 파괴할 수 있다.

- 설명 : 결계 근처에 설치하고 마나를 주입하세요. 약 10분 뒤에 결계에 구멍을 낼 겁니다. 행운을 빕니다. (제작자 기술)

“······자, 이제 다시 움직인다. 네크로맨서의 뿌리를 뜯어버리는 거다. 아무리 놈이라도 기반이 무너지면 회생하기 힘들겠지.”

24시간, 그 시간 내에 네크로맨서가 돌아올 일은 없다고, 그들은 장담하고 있었다.

***

그 시각 대만 타이베이, 중정기념당 앞에 열린 ‘마굴의 문’은 당장이라도 터질 듯 요동치고 있었다.

구궁― 구구구―

지수와 함께 수복 작전을 시작한 대만의 플레이어들이 해적단의 심장부를 타격하면서, 속속히 광장에 도착했다. 그리고 마굴의 문을 둘러싸고 있는 백색의 악마들, 언데드 군단을 목격했다.

“저, 저게 네크로맨서?”

“엄청나다······.”

네크로맨서의 언데드는 총 95마리였다. 녀석들은 하나 같이 ‘뼈 갑옷’을 입고 ‘뼈 방패’를 들고 있는 상태였는데, 그건 보통의 언데드가 아니었다.

온갖 시너지와 버프로 점칠 된······ 그야말로 현존 최강의 군단이었다.

[시너지 목록]

1) 중대 편제(히든)

- 구분 : 인원 시너지

- 조건 : 지휘관(3단계) 속성 + 구성원 90명 이상

- 효과 : 공격력 상승(+7%), 방어력 상승(+7%), 단일 적 합동 공격 시 추가 데미지(+3%)

2) 방패 방진(2단계)

- 구분 : 무기 시너지

- 조건 : 방패 60개 이상 장착

- 효과 : 방패 방어력 상승(+10%), 방패 마법 방어력 상승(+10%), 방패 공격 시 근력 상승(+30%), 방패 공격 시 넉백 확률 증가(+15%), 상태 이상 저항력 상승(+20%)

3) 거인(5단계)

- 구분 : 속성 시너지

- 조건 : ‘거인’ 속성 50마리 이상

- 효과 : 소형 및 중형 상대에게 받는 피해 감소(-40%)

4) 철갑 기사단(7단계)

- 구분 : 방어구 시너지

- 조건 : ‘풀 플레이트 아머’ 70개 이상 장착

- 효과 : 방어구 방어력 상승(+45%), 방어력의 45%에 해당하는 방어막을 형성한다.

성우는 지금까지 경험해본바, 다수의 공격에 맞서는 방어전에 특화된 시너지를 엄선해둔 상태였다.

그런데 이뿐만이 아니었다.

- 착취한 영혼으로 언데드를 강화합니다. (MAX)

1) 공격력 50% 상승 (+5)

2) 방어력 50% 상승 (+5)

3) 마법 면역력 40% 상승 (+4)

4) 이동 속도 40% 상승 (+4)

5) 상태 이상 저항력 20% 상승 (+2)

해적단의 목숨을 거두어 얻은 수백 개의 영혼, 그 대부분을 ‘언데드 강화’에 투자하여 최대치를 달성했다. 그 결과 말도 안 되는 전력 상승을 얻을 수 있었다.

네크로맨서는 전투가 계속될수록 강해진다. 그 가설을 제대로 입증한 게 바로 이 자리에 서 있는 불멸의 군단이었다.

‘포탈 입구는 좁다. 여기를 틀어막고 나오는 대로 처리한다면, 우리가 압도적으로 유리하게 싸울 수 있다.’

대부분의 플레이어는 생존 퀘스트의 경고 메시지를 보고는 먼 곳으로 도망가 몸을 숨길 생각부터 할 것이었다.

하지만 성우의 목표는 달랐다. 성우는 생존이 아니라 사냥을 준비하고 있었기에, 이런 과감한 선택을 할 수 있었다.

- 마굴의 문 ‘1차 웨이브’가 시작됩니다.

드디어 시작되었다.

구구구구!

엄청난 진동과 함께, 포탈의 입구에서 검은 손들이 우후죽순 튀어나왔다.

카악! 카악! 카악!

이미 한 마리 잡은 바 있는 ‘하급 마물’들이 마치 알집에서 태어나는 벌레 떼처럼, 역겨운 소리를 지르며 바글바글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 당신의 신격이 ‘하급 마물’의 능력치를 대폭 하락시킵니다. (-30%)

그리고 이건 덤이었다.

“공격!”

놈들이 포탈 밖으로 머리를 들이미는 순간, 입구를 틀어막고 있던 성우의 언데드들이 움직였다.

투―웅! 투―웅!

트롤 스켈레톤들이 새총을 당기고 수인 스켈레톤들이 투창을 던졌다. 표적은 고작해야 3미터 너비의 원형 포탈이었다. 거의 모든 공격이 명중했다.

- ‘외부 차원의 존재(하급 마물)’을 사냥하여 500,000골드를 얻었습니다.

- 영혼을 착취합니다. (14개)

- ‘외부 차원의 존재(하급 마물)’을 사냥하여 500,000골드를 얻었습니다.

- 영혼을 착취합니다. (15개)

- ‘외부 차원의 존재(하급 마물)’을 사냥하여 500,000골드를 얻었습니다.

- 영혼을 착취합니다. (16개)

선두로 튀어나온 마물 대부분은 거센 공격을 버티지 못하고 포탈 안으로 튕겨 들어갔다. 그렇지 않은 놈들은 산산이 조각나며 바닥에 엎어졌다.

놈들이 제대로 된 물량 공세를 보여주기에는 입구가 너무나 좁았고 입구를 지키는 존재들이 너무나 강했다.

“폭발.”

쾅! 쾅! 쾅!

더군다나 좁은 입구에 쌓이는 시체라면······ 감히 이곳을 뚫을 수 있는 존재란 없었다.

마물 두 마리가 포탈에서부터 두어 발자국까지 나오는 데까지 성공했지만, 폭발에 휘말리며 언데드 군단의 앞으로 튕겨 나왔다. 그 즉시 뼈로 만들어진 장창이 날아들며 고슴도치가 되어 버렸다.

- 1차 웨이브 진행도 (13%)

1분이나 지났을까? 벌써 수십 마리의 마물을 도륙했다. 이대로면 10분 내외에 1차 웨이브를 공략할 수 있었다.

‘24시간? 아니, 이 속도면 단 30분이면 충분하다.’

- 그림리퍼 유지 시간(00:26:33)

- 웨어 울프 유지 시간(00:27:01)

사실 그 시간 안에 성공하지 못하면 상황이 역전될 가능성이 컸다. 아누비스 상태가 풀리는 순간, 성우의 전력은 반 토막이 될 테니 말이다.

그렇게 된다면 입구를 지켜내지 못하고 결국 역으로 포위당해서 죽을 수도 있었다.

‘무슨 수를 쓰더라도 바로 이 자리에서 끝내야 한다.’

- 1차 웨이브 진행도 (17%)

성우는 모든 걸 퍼부었다.

- 당신의 무기에 ‘악령 폭격’이 깃듭니다.

시체 폭발에 더불어 악령 폭격까지, 좁은 포탈 위에 모든 화력이 작렬했다.

“모두 네크로맨서를 지원해요!”

하물며 지수가 데려온 대만의 플레이어들까지 동참했다. 그들은 언데드 군단의 뒤에 서서 원거리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이렇게 단 하나의 점에, 가공할만한 데미지가 집중되었다.

그리고 이 모든 장면은 여전히 생중계 중이었다.

“우와! 역시 네크로맨서야!”

“저 사람은 진짜로 절대 지는 법이 없네.”

강화도의 플레이어들은 한자리에 모여서 그를 응원하고 있었다.

“그렇다니까요? 뭘 하든 믿고 붙어야 한다니까요?

혜연은 신이 나 있었다. 제3 진영 논란이 일어나면서 네크로맨서에 대한 의심이 팽배했을 때도, 그녀는 조건 없는 네크로맨서 지지를 주장했다.

그리고 그 결정은 탁월했다.

그들뿐만 아니라, 한국 서버의 플레이어라면 응당 네크로맨서의 활약을 기대하고 있기 마련이었다. 십만여 명의 시청자들이 대만에서 벌어지는 광경을 시청 중이었다.

정훈과 크루세이더 팀 역시 방송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사이에 저렇게까지 강해질 수 있다니······.”

이들은 악마 진영과의 전쟁을 위해서 청량리역에 도착한 상태였다.

하지만 두 진영 모두 싸울 생각이 없어 보였다. 눈앞의 사사로운 전투를 떠나서, 미래의 최종 보스가 될지도 모르는 네크로맨서가 자신의 전력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으니, 이 장면을 놓치는 건 미련한 짓이었다.

“커맨더, 이런 말씀 송구스럽습니다만, 역시 성우 씨한테는 맞서면 안 될 것 같습니다.”

“······.”

분명 잘 안다고 생각한 네크로맨서였다. 그의 성장세가 놀라울 정도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언제나 그 이상이었다.

네크로맨서는, 함부로 예측할 수 없는 존재였다.

“아니! 대, 대체 마물이 뭔데? 저렇게 쉽게 잡는 거 보면 뭐, 코볼트 수준으로 약한 거 아니야?”

다만, 네크로맨서 때문에 방송을 망친 강윤은 홀로 구시렁거렸다. 여전히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이었다.

하지만 다음 장면을 보고는 더는 입을 열 수 없었다.

머물 한 마리가 동료의 몸뚱이를 방패 삼아 밀고 나왔다. 그리고 땅을 박차고 언데드의 포위망을 뛰어넘었다. 무려 15미터가 넘는 거리를 단숨에 도약한 것이다.

촤악!

그건 엄청난 재앙을 초래했다. 놈이 스치고 지나가는 순간, 대만 플레이어 4명이 토막 나 바닥 위를 뒹굴었다.

카악! 카악!

놈은 긴 팔을 채찍처럼 휘두르며, 가로막는 모든 걸 조각냈다. 콘크리트 바닥, 대리석 계단, 철제 가로등, 인간의 살점, 가리지 않고 모든 게 분쇄되었다.

양팔에 기계식 절단기를 달아 놓은 게 아닐까 하는, 극단적인 착각이 들 정도였다.

“태, 탱커들 어서 움직여!”

까가강!

“미친! 컥!”

탱커들이 서둘러 몰려오며 방패를 들이밀었지만, 방패째 팔이 절단되는 끔찍한 장면으로 이어질 뿐이었다.

“어? 마, 마물 저거 장난 아닌데요?”

이 장면이 증명하듯, 괜히 적정 레벨 35에 한 마리만 잡아도 50만 골드를 주는 게 아니었다.

그저 성우가 남다른 것뿐이었다. 압도적인 능력치에 더불어 ‘데미 갓’ 상태로, 마물에게 30퍼센트의 능력치 하락을 가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모두 물러서요!”

겁에 질린 탱커들 사이에서 지수가 걸어 나왔다. 네크로맨서를 제외한다면 유일하게 마물에게 맞설 수 있는 플레이어였다.

훙!

지수를 향해 마물이 팔을 휘둘렀다.

쩍! 쩍! 쩍!

지수가 스텝을 밟으며 피해내자 그녀가 서 있던 바닥이 유리처럼 분해되었다. 그런데 놈의 손톱 하나가 그녀의 어깨를 스치고 지나갔다. 머리칼이 한 움큼 잘려나갔다.

‘엄청 빠르다.’

지수마저 당황하며 뒤로 물러섰다. 방심하면 즉사였다. 하지만 정확한 순간에 파고든다면, 지수 역시 놈의 단숨에 숨통을 끊을 수 있었다.

훅!

‘바로 지금!’

놈이 왼손을 뻗는 순간, 참격 스킬로 검기를 날렸다. 목표물은 놈의 반대쪽 팔, 놈이 뻗은 왼손을 칼날로 막아내는 순간, 검기가 놈의 오른쪽 어깨를 그었다.

카아!

놈이 입을 쩍 벌리며 주춤거렸다. 지수는 그 틈에 ‘그림자 추적’ 스킬을 사용해 놈의 목전까지 당도했다.

촤악!

단숨에 목을 잘랐다.

- 레벨 업 하셨습니다. (LV. 17)

지수는 레벨 업 메시지를 무시하고 숨을 고르며 성우 쪽을 바라보았다. 그곳은 어느새 잠잠해진 상태였다.

- 마굴의 문 ‘웨이브 1단계’가 마무리되었습니다. 20초 뒤에 다음 웨이브가 시작됩니다.

첫 번째 전투가 끝이 났다. 그리고 이렇듯, 네크로맨서가 돌파 허용한 건 단 한 마리뿐이었다.

모든 마물들이 입구에서 나오자마자 죽었다.

- 마굴의 문 ‘웨이브 2단계’가 시작됩니다.

그리고 모두의 예측보다 빠르게, 네크로맨서의 두 번째 학살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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