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네크로맨서-97화 (97/244)

# 97

35) 대만, 마굴의 문 – 1

한호는 본 와이번의 등 뒤에 탄 채, 수백 미터 상공에서 성우가 벌이고 있는 전투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의 등 뒤로 두 명의 남자가 함께 타고 있었다. 방송을 위해서 데려온 ‘카메라 오퍼레이터’였다.

그리고 그들이 중계 중인 방송은 한국 서버 역대 최다 시청자 수 기록을 경신하고 있었다.

[LIVE] 네크로맨서, 대만 해적 소굴 소탕 방송 (183,224명 시청 중)

“······와우! 미쳤습니다!”

한호는 방송 카메라를 지키기 위해 후방에 남았는데, 어쩌다 보니 해설을 하는 중이었다.

“해적 놈들을 해충 잡듯 쓸어버리고 있는 게 보이시나요?”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장면은 쓸어버린다는 표현이 꽤 적합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 정도로 압도적인 학살극이 벌어지고 있었으니 말이다.

쿠궁―

본 와이번 알파메일이 광장의 한 가운데 내려앉은 뒤, 검은 연기가 퍼져나가며 일대를 집어삼켰다.

“검은 연기는 적들에겐 언제나 좋지 않은 소식이죠!”

한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 안에서 수십 마리의 스켈레톤들이 쏟아져나오며 해적들을 맹렬하게 몰아붙였다.

수백 미터 상공에서 찍는 카메라 앵글에, 여름날 풀 베듯 무너지는 해적단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담겼다.

쾅! 쾅! 쾅!

그리고 놈들 사이에서 터지는 시체 폭발, 머리 위로 쏟아지는 콘크리트 폭격, 코뿔소처럼 치고 들어가는 대형 스켈레톤까지, 네크로맨서가 전장을 지배하고 있다는 걸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쏴아아―

“독이 담긴 빗줄기가 수천 명의 머리 위로 내리고 있습니다! 아, 해적들! 전혀 예상 못 했는지 속수무책으로 다 맞고 있네요! 저러면 오래 못 버티죠!”

마지막 맹독 구름이 형성되어 독극물을 퍼부어대자 해적 진영이 급격하게 시들어가기 시작했다. 광역 저주는 싸울 의지를 완전히 꺾어버리기에 충분했다.

“이 모든 게 단 한 명의 플레이어가 벌이고 있는 일이라는 게 믿기시나요?”

선전 방송은 성공적이었다. 절대 종족 간의 전쟁 이벤트에서 소외되었던 네크로맨서가, 천사와 악마 진영 쪽 방송을 밀어내고 단숨에 모든 시선을 가져오는 데 성공했다.

[실시간 채팅]

─ 탱커 김 대리 : 크! 이게 전쟁이지! 이제 천사랑 악마 진영 싸우는 거 보면 애들 장난처럼 느껴질 것 같은데?

─ 박준우33 : 마! 이게 한국의 힘이다!

─ 안경 전사 : 굿!  짱깨 해적들 다 죽여주세요!

─ kor-11334 : he is Korean he is fucking strong

─ 힐 해주는 누나 : 해적 놈들 꼬시다ㅋㅋㅋㅋ 커뮤니티에서 해적한테 당했다는 사람들 보면서 개빡쳤는데 속 시원하네요 ㄹㅇ

하물며 대만 정복 작전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다른 곳에서도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한호는 고개를 들어 올려 타이베이 도심 곳곳을 바라보았다.

쿵― 쿠궁―

네크로맨서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곳에서도 폭발이 발생하고 연기가 일어났다. 한호는 손가락을 들어 올려, 카메라를 그곳으로 돌리게 했다.

누가 싸우고 있는 건지 확인할 수 없었지만, 그곳에서도 전투가 벌어지는 중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자, 드디어! 해적단에게 지배받고 있던 대만의 플레이어들이 항쟁을 시작했습니다!”

대만 플레이들의 봉기, 이 역시도 준비된 시나리오였다.

“네크로맨서가 놈들의 핵심을 치고 있는 사이에, 대만 플레이어의 게릴라가 움직이고 있는 겁니다!”

[실시간 채팅]

─ 강SS : 역시ㄷㄷ 네크로맨서 팀 큰 그림 무엇? 아무것도 예상 못 하겠네 진심;

─ 박준우33 : 마! 이게 한국의 지능이다!

─ 한국형 잡캐 : 와;; 대만 독립까지 돕고 있던 거였음?

─ 김김승용 : 이분들 동에 번쩍 서에 번쩍이넼ㅋㅋㅋ

“응? 예! 맞습니다! 우리가 대만의 플레이어들과 미리 접촉해서 항쟁을 돕고 있었거든요! 좀 쩔죠?”

거짓말이었다. 성우 일행은 천사의 석상이 위치한 ‘국가 도서관’의 지하에 도착한 직후, 감옥에 억류되어 있던 대만의 플레이어들과 우연히 마주치게 되었다.

그들은 붉은 혁명군에 저항하는 세력으로, 궐기 대회에 맞춰 게릴라 작전을 준비하다가 적발되었다고 했다.

“우리가 대만 플레이어들을 감옥에서 다 꺼내주고 막 무기도 되찾아주고 또······ 아무튼 그러고 있습니다!”

그렇게 게릴라 작전의 핵심 요인들이 사로잡히며, 작전은 사실상 실패한 상태나 다름없었는데, 눈앞에 한국 서버의 플레이어들이 나타났다.

그들에겐 기적이었다.

성우는 지수를 보내서 대만 플레이어들의 작전을 돕게 했다. 그리고 성공적으로 봉기한 것이었다.

중심부에서는 성우가 심장을 노리고, 외곽에서는 대만의 플레이어들이 숨통을 조여 들어오고 있었다.

“이거 아무래도, 놈들의 잔칫상을 우리가 통째로 엎어버린 것 같은데요? 으흐흐!”

이렇듯 네크로맨서의 등장으로 대만, 중국, 한국, 3국 서버의 운명이 통째로 뒤흔들리기 시작했다.

***

성우는 천공장군과 마주 보고 있었다.

“······.”

당장이라도 달려나가 목을 칠 수도 있었지만, 놈이 아직 꼿꼿하게 서 있는 거로 보아 숨기고 있는 무기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때, 사방에서 함성이 들려왔다.

“어! 지원군인가?”

중국 서버 쪽 카메라 오퍼레이터들이 일말의 희망을 품으며 카메라 앵글을 돌렸다.

하지만 그 함성은 어딘가 달랐다. 네크로맨서가 활약하는 상황 속에서도 한껏 사기가 오른 게, 언뜻 느끼기에도 해적단의 것이 아니었다.

······아니나 다를까, 천공장군의 등 뒤에서 간부 두 명이 헐레벌떡 달려왔다.

“······자, 장군! 대만의 플레이어들까지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당장 이 섬을 떠나야 합니다! 이곳은 저한테 맡기시고 몸을 보존하십시오!”

궐기 대회는 대만 서버에도 생중계되는 중이었다. 대판 플레이어들을 선동할 목적이었다.

하지만 성우가 난입하는 장면이 송출되며 전혀 다른 방향으로 작용했다. 동시다발적인 항쟁의 불씨가 된 것이다.

“아니, 아니다. 저놈만 죽이면 다시 시작할 수 있다.”

하지만 놈은 여전히 포기하지 않았다. 아직 믿는 구석이 남은 것일까?

놈은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그건 성우에게도 익숙한 물건이었다.

“······마굴의 문?”

“알고 있군? 그렇다면 잘난 네 놈도 이 자리에서 끝이라는 걸 눈치챘겠지?”

성우도 한 장 가지고 있는, 권장 레벨 35의 던전 스크롤 ‘마굴의 문’이었다.

그 안에서 등장하는 몬스터가 워낙 강하기에 해적단은 그걸 일종의 전략 병기로 이용한다고 했었다.

놈은 네크로맨서를 이길 수 없다는 걸 깨닫고, 이 지역을 초토화할 생각이었다.

찌이이―

놈은 일말의 고민도 없이 스크롤을 찢었다.

그 순간, 모두의 눈앞에 경고 메시지가 출력되었다.

- 주의! 해당 지역에 <마굴의 문>이 열립니다.

* 해당 지역이 봉쇄됩니다. (타이페이 시)

‘봉쇄? 전략 병기로 쓰는 이유가 있었군.’

마굴의 문이 열림과 동시에 해당 지역에서 탈출할 수 없게 되는 것이었다.

마굴의 문은 스크롤 사용 직후 24시간 동안 유지된다. 그렇다면 그 긴 시간 동안 던전에서 나오는 마물에게 맞서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뜻이었다.

“으흐흐! 전부 끝이다!”

그 사이, 천공장군은 또 다른 아이템을 꺼냈다. 쥐의 머리뼈로 만들어진 목걸이였는데, 파란색으로 일렁이는 걸 보아하니 어떤 주술적인 힘이 담겨 있는 것 같았다.

“자, 이제 오직 나만이 마물의 표적이 되지 않는다. 네크로맨서! 미친 괴물들에게 갈기갈기 찢겨 죽어라!”

성우가 놈에게 다가가려고 했지만, 그 순간 둘 사이에 보라색 포탈이 열렸다.

후우―웅―

포탈은 일대의 공기를 빨아들이며 점점 부풀었다. 바로 앞에 서 있던 성우는 그 바람에 끌려가지 않게 다리를 구부리며 무게 중심을 낮춰야만 했다.

구구구―

포탈 안의 공간이 시계 반대 방향으로 회전하며 이리저리 뒤엉켰다. 그곳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공간감이 무너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검은 손아귀 하나가 불쑥 튀어나왔다.

“저, 저건······.”

“뭔가 불길한데?”

그 장면을 찍고 있는 카메라 오퍼레이터들은 마법사의 보호막 안에 있음에도 불안함을 느꼈다.

- 두 세계의 이질적인 기운이 충돌하고 있습니다.

* 두 세계의 존재는 서로에게 악영향을 미칩니다.

뭔가 기이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어서 긴 팔뚝과 가시가 돋은 어깨가 비집고 나오더니, 눈과 코 없이, 오로지 흉악한 이빨만 돋아난 대가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르르······.

놈이 잇몸을 드러내며 끈적한 침을 늘어뜨렸다.

“다, 다리가 잘 안 움직여!”

대부분 플레이어는 그 존재를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몸이 굳는 걸 느꼈다. 마치 맹수 앞에 선 피포식자처럼, 초저주파 같은 게 몸을 관통하는 것만 같았다.

- ‘외부 차원에서 온 존재’의 위압감에 짓눌립니다.

* 모든 능력치가 하락합니다. (-20%)

낯선 공포가 온몸의 근육을 팽팽하게 잡아당겼다.

저벅― 저벅―

놈의 몸이 포탈 밖으로 완전히 빠져나왔다.

호리호리하고 매끈한 검은색 몸뚱이는 인간의 체형과 비슷했지만, 이목구비가 불분명한 얼굴과 온몸에 돋아난 뿔이 이 세상 존재가 아니라는 걸 증명했다.

놈은 긴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첫 번째 사냥감을 고르는 것만 같았다.

크르?

하지만 놈들의 시선은 단 한 곳에서 멈출 수밖에 없었다. 이 자리에서 그 어떤 것보다 강력한 존재감을 표출하는 자······. 네크로맨서였다.

칵! 칵! 카아!

그러더니 당황한 듯 주춤주춤 물러서는 게 아닌가?

- 당신의 신격이 ‘하급 마물’의 능력치를 대폭 하락시킵니다. (-30%)

“······응?”

외부 차원의 존재가 플레이어들에게 위압감이 되었듯, 반대로 이곳의 강력한 존재가 외부 차원의 존재에게 위압감을 준 것이었다. 그리고 그건 아마도 ‘데미 갓’이라는 속성 덕분이었다.

“이러면 생각보다 좋은 일이 벌어질 것 같은데.”

다음 순간, 성우가 땅을 박찼다. 그리고 순식간에 놈의 앞까지 쇄도하여 턱을 움켜쥔 뒤, 바닥으로 내리꽂았다.

쿵―

그리고 오른발로 놈의 머리통을 밟은 채, 그림리퍼를 휘둘렀다. 넓적한 칼날이 놈의 질긴 피부를 찢고, 뼈를 부쉈다.

촤악!

순식간에 놈의 머리를 절단해버린 것이다.

- ‘외부 차원의 존재(하급 마물)’을 사냥하여 500,000골드를 얻었습니다.

엄청난 등장이 무색하게도 너무나 허무한 퇴장이었다. 그러자 천공장군의 얼굴 위로 숨길 수 없는 당황이 번져나갔다.

“너, 너는 도대체······.”

마굴의 문은 말 그대로 최후의 수단이었다. 밑바닥부터 다시 시작할 걸 감안하고 던진, 일종의 자폭 공격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네크로맨서는······.

그것조차 너무나 간단하게 압도했다.

물론 그 한 마리가 전부가 아니었다만, 전략 병기 수준의 마물을 저렇게 쉽게 잡을 수 있다니?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넌 도대체, 정체가 뭐, 뭐지?”

천공장군이 넋이 나가 물었지만, 성우의 정신은 다른 곳에 가 있었다.

- 외부 차원의 존재는 권속으로 일으킬 수 없습니다.

‘외부 차원이 대체 뭐야?’

성우는 소용돌이치고 있는 포탈을 바라보았다. 외부 차원이 뭔지 알기 위해서는 그곳으로 직접 들어가는 수밖에 없었다.

포탈은 앞으로 24시간 동안 열려 있다. 그러나 ‘데미 갓’ 상태는 앞으로 39분 뒤에 해제된다. 즉, 성우에게 남은 시간은 39분뿐이었다.

‘들어가는 건 도박이다.’

39분 뒤에 빠져나오지 못한다면, 데미 갓 해제의 엄청난 후유증을 견디며 싸워야 할 수도 있었다.

‘밖에서 버티는 것도 문제다. 24시간 동안 쉬지 않고 쏟아져 나온다면······ 과연 막을 수 있을까?’

그리고 그건 성우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히든 퀘스트]

- 제목 : 마굴의 문 앞에서

- 유형 : 생존

- 목표 : 24시간 동안 생존하라

- 보상 : C급 경험치 카드, 추가 보상 차등 지급

이 땅에 당신이 감당할 수 없는 저주가 도래했다. ‘마굴의 문’이 열린 것이다. 곧 외부 차원의 존재들이 들이닥쳐 이 땅의 모든 것을 짓밟을 것이다.

당신이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다. 그저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살아남아라.

* 마물은 일정 거리 내의 생명체를 감지할 수 있습니다.

* 마물을 사냥할 경우 퀘스트 종료 후 ‘추가 보상’이 지급됩니다.

타이베이 내의 모든 플레이어에게 ‘생존 퀘스트’가 주어졌다. 던전을 공략하라는 퀘스트가 아닌 걸 보면, 시스템이 분석하기에도 플레이어들의 평균 레벨이 ‘마굴의 문’의 적정 레벨에 한참 못 미치는 듯했다.

하지만 오직 성우에게만 다른 퀘스트가 주어졌다.

[전용 퀘스트]

- 제목 : 수호자의 의무

- 유형 : 목표 제거

- 목표 : 보스 몬스터 ‘마굴 수문장’을 제거하라

- 보상 : ‘정규 신격(神格)’, ‘직업 변경권’ 중 택1

외부 차원의 침략이 시작되었다. 당신은 외부 차원의 마수를 격퇴해낸 적 있는 ‘수호자’로서 이 땅을 지켜낼 의무를 지고 있다.

침략 병력의 핵심 개체(보스 몬스터)를 제거한다면, 침략자들에게 강렬한 경고 메시지를 전할 수 있을 것이다.

* 보스 몬스터 ‘마굴 수문장’은 ‘2차 웨이브’가 끝난 뒤 모습을 드러냅니다.

* 24시간 이내에 목표를 처리하지 못할 시 ‘수호자’ 칭호가 박탈될 수도 있습니다.

지옥 격퇴자 칭호와 함께 ‘수호자’의 자격을 획득했었다. 그로 인해 성우에게만 다른 퀘스트가 주어진 것이다.

‘그런데 정규 신격이라니?’

신격이라 함은 ‘데미 갓’ 상태를 뜻하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성우는 ‘리치 변신’과 ‘수인화 앰플’을 통해서 일시적으로나마 ‘아누비스의 힘’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한강석은 데미 갓 상태가 항시 유지되고 있었다. 즉, 그는 정규 신격을 가지고 있는 거다.’

강석이 말하길, 성우의 데미 갓 상태는 일시적이며 온전한 힘을 얻는 방법은 스스로 알아가야 한다고 했다.

‘아무래도 그 기회가 온 것 같군.’

- 수호자의 의무 퀘스트가 진행되는 동안 모든 스킬의 대기 시간이 감소합니다. (-60%)

“그리고······.”

구구구구―

마굴의 문에서 엄청난 진동이 흘러나왔다.

- 마굴의 문에서 ‘1차 침공 웨이브’가 시작됩니다.

“······비싼 놈들을 마음껏 사냥할 수 있겠어.”

왠지 모르게, 성우의 적들은 언제나 양질의 경험치를 제공해주는 것 같았다.

성우는 모든 언데드를 포탈 앞으로 끌어모았다. 침략자들에게 지옥이 무엇인지 보여줄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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