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5
34) 열병식의 몰래 온 손님 - 2
성우와 제3 진영에 대한 현상 수배가 ‘월드 퀘스트’ 단위로 격상되었다.
그로 인해 더 많은 이들이 성우를 적대시하게 되겠지만 당장은 크게 달라질 게 없었다. 그저 천천히 미래를 대비하는 게 최선이었다.
“성우 씨, 확인해본 결과 근방 2킬로미터 까지 ‘결계’가 쳐져 있습니다.”
“결계 밖으로 나갔다가 들어오는 게 가능하던가요?”
성우의 물음에 인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게, 저희는 자유롭게 왕복 가능한데, ‘허용된 플레이어’라는 메시지가 뜨는 거로 봐서는 아무래도 외부인은 함부로 출입이 안 될 것 같네요.”
성우는 인호에게 세계수의 스킬 ‘신목의 그늘’의 영향 범위를 확인해달라고 했다.
그리고 인호가 십여 명의 수색대를 동원하여 일대를 정찰한 결과, 결계는 정상적으로 작동 중이었다.
[신목의 그늘]
- 방어막(150,000/150,000)
- 출입 허용 : 226명 (명단 보기)
* 외부인 출입 차단 중
성우도 그에 관한 정보를 확인할 수 있었지만, 더욱 확실하게 점검할 필요가 있었다.
“결계가 있다고 해도 안심해서는 안 됩니다. 결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는 아이템이 존재할 수도 있으니까요.”
“알겠습니다. 철책 타듯 결계 주변을 순찰할 수 있게 감시 임무를 편성해보겠습니다.”
이제 수원의 마을은 단순한 생존자들의 피난처 개념이 아니었다. 세계수가 자라나고 있는 곳이며 더 나아가 제3 진영의 본진으로 발전하게 될 곳이었다.
그렇기에 모든 면에서 신중하게 관리해야만 했다. 외부의 위협에 완벽하게 대응할 수 있게 말이다.
그날 오후, 성우는 경수와 인호 등 마을의 주요 인력을 불러 모았다.
“저는 다시 외부로 나가야 할 것 같습니다. 얼마의 시간이 걸릴지 모르겠지만, 그동안 다시 한번 부탁드리려고 합니다.”
“물론입니다.”
경수와 인호는 마을을 지키는 걸 넘어서 훌륭하게 발전시켜왔다. 충분히 믿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틀 전부터 상황이 달라졌다. 세계수가 탄생하면서 마을의 가치가 확연하게 증대되었을뿐더러, 불특정 다수에게 표적이 된 상태이기도 했다.
“만약에 위험한 상황이 발생하면 커뮤니티로 연락해주세요. 제가 세계수의 스킬을 사용해서 바로 올 수 있습니다.”
다행인 점은 첫 번째 열매를 먹고 세계수와 ‘링크’되면서 ‘귀환’ 스킬을 얻었다는 점이었다. 24시간에 한 번씩 세계수 바로 앞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거 받으시죠.”
성우는 아이템 하나를 내밀었다.
[아이템 정보]
- 이름 : 맹세의 금고
- 등급 : 특수
- 분류 : 금융
- 효과 : ‘계약된 플레이어’가 벌어들이는 골드 중 일부가 자동으로 입금된다.
- 설명 : 금고 위에 손바닥을 얹으면 ‘계약 등록’을 할 수 있다. 금고 소유자는 ‘수금 비율’을 정할 수 있으며, 계약자가 벌어들이는 골드에서 해당 비율만큼 금고로 자동 입금된다.
* 수금 비율 : 10%
* 등록된 계약자 : 226명
* 현재 보유 골드 : 5,155,048
“저번에 전부 계약했던 그 금고군요?”
“맞습니다. 계약 이후, 지금까지 벌어들인 골드의 10퍼센트가 축적되어 있습니다. 마을을 운영 자금으로 사용하시면 됩니다.”
세계수를 노리는 몬스터들을 지속해서 사냥해왔기에 적지 않은 금액에 누적되어 있었다.
성우는 이렇게 벌어들이는 골드를 사적인 용도로도 쓸 생각이 있었다. 일종의 보호비 개념으로 말이다. 하지만 당장은 마을에 투자하는 게 옳았다.
“알겠습니다. 당장은 ‘배터리’나 ‘식수 정화기’ 같은 아이템은 충분하니 ‘마법 드론’이 더 나오길 기대해야겠네요.”
돈이 아무리 많다고 한들, 아이템을 구할 방법은 여전히 상점의 랜덤 뽑기 뿐이었다.
“아, 그리고 레벨 업 카드 중 ‘기타 아이템’ 항목에서 공성 병기 같은 무기를 제조할 수 있는 부품이 나오기도 합니다.”
인호의 말에 경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였다.
“맞습니다. 얼마 전에 토벌대장 한 명이 ‘발리스타 설계도’라는 아이템을 뽑았습니다. 제작에 필요한 재료를 구할 수만 있다면 우리도 병기창 같은 걸 운영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레드 오크에게 얻은 ‘발리스타’나 진화 학회에게 얻은 ‘뇌신의 철퇴’는 분명 가공할만한 병기였다. 그런 걸 더 얻을 수만 있다면 엄청난 전력이 될 것이었다.
수십 마리의 본 와이번을 공군으로 칠 수 있다면, 다수의 공성 병기는 포병대로 볼 수 있었다. 앞으로 진영 간 전쟁이 벌어지게 된다면 큰 화력이 될 것이었다.
“좋습니다. 재료를 구하는데 자금을 아끼지 마세요.”
그때, 커뮤니티를 예의주시하던 한호가 벌떡 일어났다.
“선배! 강화도에서 또 연락이 왔어요.”
무연과 혜연을 비롯한 강화도의 플레이어들은 처음부터 성우와 제3 진영에 대한 지지를 표했다.
그들은 애초에 연합 쪽에 소속감을 느끼고 있던 게 아니라, 자신들을 구원한 네크로맨서를 따르고 있었던 것이니 말이다.
“해적 새끼들이 내일 오후 3시에 타이베이 중정기념당? 아무튼, 여기 광장에서 열병식이 시작된다고 해요.”
그렇기에 중국 쪽에서 새로운 소식이 들어올 때마다 영등포에 보고하지 않고 성우에게만 전해주고 있었다.
“중국에서 쫓겨난 수인들이나 대만에서 천대받던 수인들도 대거 참여해서 결속을 다진다네요?”
붉은 혁명군은 중국-2 서버에서 퇴출당한 이후, 찬밥 신세로 전락했었다.
하지만 대만 정복에 성공하고 네크로맨서 사냥을 주창하면서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이미지 회복을 해나갔다. 그리고 그들의 우두머리 ‘천공장군’의 야심은 대만과 한반도에서 그치지 않았다.
‘결국은 중국에 잘 보이려고 하는 거다.’
언젠가 중국 땅으로 되돌아가기 위해서, 중국 플레이어들의 환심을 사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자신들의 세력을 과시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쪽도 수인이랑 사이가 안 좋은 건 똑같나 본데, 이러면 생각보다 규모가 더 커지겠어요? 해적단이랑 대만 쪽 친중세력이랑 수인들까지 모이면?”
분명 거대한 규모의 행사가 될 것처럼 보였다.
“그래? 그런데 우리를 초대 안 했어?”
놈들이 야심 차게 준비한 무대를, 조금 더 화려하게 장식해줄 생각이었다.
***
한편 영등포에도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김포에서 발굴된 새로운 천사의 석상 때문이었다. 그 석상에 접촉하자 새로운 퀘스트가 부여되었다.
[진영 퀘스트]
- 제목 : 수도권 지역 내 ‘악마’ 진영 소탕
- 유형 : 목표 파괴
- 목표 : 북쪽(의정부 지역)의 악마 석상을 파괴하라
- 보상 : 진영 스킬, 계급 점수
가까운 지역에 악마 진영의 세력이 있다. 천사 집행관들은 아군의 안전과 무궁한 발전을 위해서, 걸림돌을 일찌감치 제거하기를 고대하고 있다.
* 전투가 시작되면 천사 진영의 ‘축복’을 받습니다. (방어력 상승 20%)
* 전투가 시작되면 상대 진영에게도 ‘동일한 퀘스트’가 부여됩니다.
* 아군의 석상이 파괴될 시 퀘스트가 실패합니다.
“결국, 전쟁을 하란 거네요. 커맨더, 아무래도 이번 싸움은 피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런데 북쪽의 석상이라면?”
“재건 동맹이 유력합니다.”
“······역시.”
의정부 일대에서 운집한 ‘재건 동맹’은 광복 길드에 비견될 수 있을 만큼 거대한 세력으로, 연합에 가입할 의향을 보이며 영등포에 접근했었다.
하지만 시종일관 훼방을 놓으며 영등포의 전력을 감시하는 듯한 움직임을 보였다. 그렇기에 언젠가 떨쳐낼 생각이었는데······ 어이없게도 현상금을 노리고 네크로맨서에게 덤벼들었다가 전멸당하고 말았다.
“재건 동맹이 악마 진영이라면 우리와 싸우려고 할 가능성이 큽니다.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지만, 그쪽도 전투 가능한 병력이 족히 천 명은 넘습니다.”
재건 동맹 소속 플레이어들이 네크로맨서에게 전멸당한 이후, 그 책임을 광복 길드에게 묻는 듯한 태도를 보였었다.
그렇다는 건 앞으로 협력보다 견제를 선택할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였다. 하물며 놈들이 악마 진영이라면 싸움을 피하기 어려울 가능성이 컸다.
“그렇다면 언제든지 의정부까지 치고 올라갈 준비를 해야 하겠군요.”
상대가 네크로맨서만 아니라면, 그 누구와도 맞붙어 승리할 자신이 있었다. 누가 뭐래도 한국 서버 최고의 세력은 여전히 광복 길드였으니 말이다.
그러나 상황은 생각보다 빠른 박자로, 매우 급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커맨더!”
회의실 문이 벌컥 열리며 크루세이더 대원 한 명이 들어왔다.
“다산 지역 초소가 습격을 당했습니다!”
광복 길드는 몬스터의 동향을 살피기 위해서 수도권 전역에 관측 초소를 두었는데, 그중에서 다산신도시 쪽 초소가 누군가에 의해 공격받았다는 소식이었다.
“인근에서 활동 중이던 감시팀 요원이 목격했는데, 몬스터에 의한 파괴가 아니라 플레이어의 소행이라고 합니다.”
플레이어라니? 누가 감히 광복 길드를 노린단 말인가?
“······설마?”
그리고 그 순간, 한국 서버의 천사 진영과 악마 진영, 양측에 공통된 메시지가 떠올랐다.
[전쟁 퀘스트]
- 제목 : 수도권 쟁탈전(1)
- 주축 : 천사 진영(서울시 영등포구), 악마 진영(의정부시 의정부동)
- 보상 : 공격력·방어력 상승 30% (7일간 지속)
- 조건 : 아래 지역을 점령하시오.
1) 북한산
2) 광운대역
3) 청량리역
* 주축 세력 외에도 절대 진영에 속한 플레이어는 ‘자율적으로 참여’할 수 있습니다.
사실상 싸우라고 몰아가고 있다. 피할 수 없었다.
“······.”
“젠장······.”
악마 쪽 주축이 ‘의정부동’으로 되어 있는 건 석상의 위치를 뜻하는 것이었다. 그렇다는 건 다산 초소 습격이 재건 동맹의 소행이라는 뜻이었다.
“부관님, 지금 즉시 각 그룹의 리더들을 소집하세요. 크루세이더 팀 대기시키고 감시팀들을 해당 지역으로 파견하세요.”
“알겠습니다!”
한국 서버, 첫 번째 전쟁 이벤트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절대 진영에 속한 이상 전쟁은 의지와 상관없이, 의무적으로 수행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
전쟁이란 무섭고도 흥미로운 일이었다. 모두가 전쟁이 나길 바라지 않지만, 모두가 전쟁에 관심을 가진다.
누가, 왜 싸우는가? 어떻게 싸울 것인가? 얼마나 참혹할 것인가? 어떤 영웅이 탄생할 것인가? 그리고 과연 누가 이길 것인가?
전쟁이란 요소는 인간의 원초적인 감각을 자극하는 온갖 이야기가 담긴, 희로애락의 종합 세트였다.
그렇기에 ‘수도권 쟁탈전’은 네크로맨서의 제3 진영 사태를 제치고, 순식간에 한국 서버 최고의 관심사가 되었다.
“카메라 준비 끝났지? 역사에 남을 장면이니까 내 얼굴 위주로 잘 담아야 해.”
광복 길드 휘하의 화염 계열 마섭사 이강윤은 천사 진영의 선봉장으로서, 제 부하들과 함께 청량리역 근처에 주둔 중이었다.
그는 오래전부터 한국 커뮤니티 내의 ‘캉윤’이라는 닉네임으로 유명했는데, 그 누구보다 많은 게시물을 쓴 거로 알려져 있었다.
“흠, 오늘은 시청자가 몇 명이나 들어오려나? 한 5만 명은 오겠지? 당연히 그래야지.”
쉽게 말해 지독한 ‘관심 종자’다.
“방송 시작 1분 전입니다.”
“오케이! 자자, 갑시다!”
전쟁 상황에서 생방송을 하는 건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아니, 미친 짓이었다. 아군의 위치나 전력 하물며 작전까지 노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양측 진영에서 송출 중인 방송은 각각 십여 개에 달했다. 대부분 다른 지역에서 ‘자율 참여’한 이들이 재미 삼아 하는 것들이었지만, 주축 진영에서 운영 중인 방송도 있었다. 그 이유는 서로의 진영으로의 참전을 호소하기 위함이었다.
“대장, 커맨더께서 천사 진영의 이점을 간접적으로 어필해달라고 주문하셨습니다. 까먹지 마세요!”
“오케이!”
아직 전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지 않았으니, 홍보를 통해서 최대한 많은 병력을 확보할 필요가 있었고, 강윤 역시 그런 임무를 맡고 선봉장으로 차출되었다.
“자, 이 순간만큼은 네크로맨서보다 내가 더 중요한 사람이니까, 여러분도 책임감을 가지고 내 얼굴을 담아야 해. 오케이?”
“오케이!”
“대장은 계속 그렇게 잘생기기만 하세요. 찍는 건 저희가 잘해볼 테니까요.”
네크로맨서의 행보가 아무리 파격적이라고 하지만, 절대 종족 간의 전쟁이 벌어졌다는 사실 만큼 충격적이지는 않았다.
한국 서버 플레이어들의 이목은 순식간에 서울 북부에 집중되는 건 당연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강윤의 방송은 단연 돋보였다.
“방송 시작 오, 사, 삼······.”
몇 시간 전에 악마 진영의 수색팀을 통째로 구워버리는 사진을 커뮤니티에 올리며 이슈 몰이를 해둔 상태였기 때문이다.
더불어서 맛깔나는 도발 멘트로 악마 진영의 신경을 잔뜩 자극해두기까지 했다.
“노이즈 마케팅까지 완벽했지.”
이렇듯 밑밥은 충분히 깔아뒀다. 이제 방송만 켜면 수만 명이 들어올 것이라고, 강윤과 부하들은 예상하는 중이었다.
‘이대로 천사와 악마 싸움 구도가 유지되면 네크로맨서, 그 자식은 소리소문없이 묻힐 거다. 제3 진영? 웃기고 있네. 얼마나 가나 보자.’
강윤은 그렇게 생각하며 인상을 찌푸렸다. 질투심이 담겨 있기도 했지만, 이성적으로 생각해봐도 ‘절대 종족’을 적으로 삼은 채 성공 가도를 달리는 건 불가능했다. 제아무리 네크로맨서라도 말이다.
“이, 일······ 시작합니다.”
강윤은 다시 여유 넘치는 미소를 지었다.
“자, 안녕하십니까! 뭐든지 불태우는 상남자! K! Y! 캉윤입니다!”
그는 자연스러운 몸짓으로 창문을 열어젖혔다. 창문 밖으로 청량리역이 보였다.
“제가 악마의 추종자 놈들에게 진정한 지옥 불을 선사하는 장면은 잘 보셨나요?”
그는 오른손을 들어 올려 작은 불꽃 하나를 피워냈다.
“으흐흐! 놈들은 구울 때 쥐포 냄새가 났습니다. 그럼 지금부터는 청량리에서······.”
그런데 방송을 모니터링 중인 부하들의 표정이 영 좋지 않았다.
“······.”
이상한 낌새를 느낀 강윤이 멘트를 멈추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자 부하 한 명이 강윤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저, 대장?”
“응? 무슨 일이야?”
“······시청자가 19명 밖에 없는데요?”
“뭐?”
말도 안 됐다. 아무리 적어도 19명이라니? 그리고 부하들이 곧 그 원인을 파악했다.
“네, 네크로맨서가 방송을 켰습니다! 시청자가 다 그쪽으로 간 것 같은데요?”
이번에도 그 지겨운 이름이 등장했다. 강윤은 오만상을 찌푸렸다.
“뭐? 아무리 네크로맨서라도 그렇지 지금 같은 시기에, 전쟁 한복판에서 생중계하는 것보다 중요한 게 뭐가 있다고! 말이 돼?”
“그게······.”
부하 한 명이 네크로맨서의 방송에 접속하여 그 내용을 확인했다.
“뭔데? 응? 뭐냐고!”
“······네크로맨서가 쳐, 쳐들어갔습니다.”
부하는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말만 해댔다.
“어, 어딜? 어딜 쳐들어가!”
“잘 모르겠습니다. 여기 우리나라는 아닌 것 같은데? 한자도 보이고······ 어, 설마?”
“중국?”
다시 한번, 모든 이목이 네크로맨서에게 옮겨가 버렸다.
***
오후 3시, 대만 타이베이 중정구 중정기념당
대만의 초대 총통인 장제스를 기리기 위해서 만든 이 장소에서 ‘붉은 혁명군’의 궐기 대회가 진행되고 있었다. 대만의 정신적인 상징물 앞에서 대만 점령을 기념하는 행사를 연 것이었다.
“······우리는 이 재앙 앞에서 하나의 힘으로 의기투합하여, 새로운 천하를 일구겠다는 하나의 신념을 품고······”
사회자가 형식적인 오프닝을 진행하는 가운데, 화려한 단상 위에 붉은 혁명군의 주요 인사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중심에는 ‘천공장군’이 앉아 있었으며, 그 오른쪽으로 붉은 혁명군의 간부들이, 왼쪽으로 대만의 플레이어 중 전향한 이들과 수인들이 서 있었다.
“······이 큰 뜻은 모두, 선지자이자 우리의 왕이신 천공장군님의 통찰력을 통해서 실현되었으며, 천공장군님의 뜻 아래 정신과 육신을 아끼지 않은 두 형제, 지공장군과 인공장군의······”
그리고 그들이 마주 보고 있는 광장에는 엄청난 수의 플레이어들이 운집해 있었다. 해적단, 우호적인 대만 플레이어, 동원된 노약자들, 수인 등이었다.
이 장면은 중국-2서버는 물론이거니와, 중국-1서버와 중국-3서버까지 생중계 중이었다.
붉은 혁명군이 이슈 몰이를 한 이후, 각 서버의 몇몇 세력이 사절단을 보내왔는데, 그들이 자신의 서버에 방송을 내보내고 있는 것이었다.
즉, 중국 전역이 이 장소를 지켜보는 중이었다.
“······지금부터 우리의 영원한 구도자이신 천공장군님의 기조연설이 있겠습니다. 큰 박수로 지도자를 맞이하시길 바랍니다.”
그와 동시에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오자 붉은 비단옷을 입은 천공장군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는 근엄하게 걸어가 발언대에 서, 손을 뻗어 마이크를 움직였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 자리에 참석한 모든 인민에게 나, 천공장군이 그대들의 힘이 되어줄 것을 약속하노라.”
이번에도 박수갈채가 터져 나왔다. 천공장군이 손을 들어 올리며 말을 이어나갔다.
“······본인은 이 재앙이 벌어진 날, 혈혈단신으로 일어났다. 그리고 충성스러운 신하들을 하나둘 품었으며, 오늘날, 오래전에 잃어버린 대만의 영토를 수복했다. 그리고 내일은······ 한반도로 나아갈 것을, 이 자리에서 당당하게 선포한다.”
쿵―
그때, 어디선가 굉음이 울렸다. 나지막한 진동이 발아래로 흘러나갔다. 그러나 그걸 감지한 이들은 많지 않았다.
“······본인은 한반도의 악마 네크로맨서를 처단하고 한반도의 생존자들을 기구한 운명에서 구해내······.”
쿠―웅―
재차 진동이었다. 이번에는 조금 더 짙게 깔리며 이 땅 전체를 울렸다.
광장의 뒤쪽이었다. 새들이 날아올랐고, 이번에는 거의 모든 이들이 그 굉음을 들었다.
“······.”
천공장군 역시 연설을 멈추고 눈썹을 꿈틀거렸다. 본능적으로 불길함을 느낀 것이다.
광장에 침묵이 감돌았다.
그러자 광장에 운집한 이들 역시 천공장군의 시선을 따라, 하나둘 고개를 돌리기 시작했다.
후우우―
어디서 불어온 건지 모르는 돌풍이 광장 위를 휩쓸었다. 천공장군의 붉은 비단옷이 거칠게 휘날렸다.
그리고 다음 순간······.
콰―과―광!
광장 너머, 국가도서관 건물의 천장이 무너져내리며, 그곳에서 무언가 치솟았다. 카메라가 움직여 그곳을 찍었다.
“저, 저건?”
거대한 뼈로 이루어진 괴물이 날개를 펼쳤다. 그리고 대만의 하늘로 비상했다.
“······와이번?”
그건 ‘본 와이번 알파메일’이었다. 이어서 그 뒤로, 수십 마리의 본 와이번들이, 마치 박쥐 떼처럼 쏟아져나왔다.
“으아아!”
“저, 저게 대체 뭐야!”
서쪽 하늘에 떠 있던 태양이 장막의 날개에 가로막히며, 광장의 군중을 향해 거대한 그림자가 파도처럼 덮쳐왔다.
그리고 이곳에 있는 모든 이들, 더 나아가 방송을 보고 있는 모든 이들은 목격할 수 있었다.
가장 큰 와이번의 등 뒤, 녹색 불꽃에 휩싸인 존재, 리치를 말이다.
“네, 네크로맨서?”
“맞지? 그 네크로맨서?”
“한국 서버의 그 놈?”
그 유명한 한국 서버의 네크로맨서였다.
그가 이 자리에 나타났다.
“저 놈이 어떻게?”
그는 한 손에 거대한 낫을 들고, 다른 한 손에 흰색의 어떤 돌덩이를 쥐고 있었다. 그런데 그건 다름 아닌······.
천사 석상의 머리통이었다.
으적―
다음 순간, 파편이 되어 흩어졌다.
- 제3의 선택 : 절대 종족의 석상을 파괴 (2/3)
“······네크로맨서!”
그 장면을 바라보던 천공장군이 이를 갈며 소리쳤다. 그는 체면 불고하고 목청껏 악을 써댔다.
“대체 어떻게! 어, 어떻게 온 거냐!”
그리고 이게 바로, 모든 플레이어가 네크로맨서의 방송을 찾을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네크로맨서가 몰고 온 그림자가 낯선 땅을 뒤덮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