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네크로맨서-91화 (91/244)

# 91

33) 수원의 세계수 - 1

영험한 힘을 가진 거대한 나무, 세계수의 씨앗을 어디에 심어야 될까? 한 번 심으면 이동이 쉽지 않은 만큼 신중해야만 했다.

‘이전이었다면 수원 마을 외의 다른 지역도 고려했을 테지만······.’

성우의 목숨 값을 노리는 플레이어들이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모르는 가운데, 멀리 나가는 건 위험했다.

‘지금 상황에서는 마을 근처 말고는 대안이 없다.’

그리고 세계수가 자라날 때까지 보호해야 되는 걸 생각하면 마을과 가까울수록 좋았다. 세계수가 파괴될 경우 재앙을 초래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숨기는 것보다 전력을 다해서 방어하기 좋은 장소가 필요하다.’

그렇기에 마을의 주요 건물인 시립미술관 바로 앞, 화성 행궁 광장에 심기로 결정했다.

성우는 대형 스켈레톤을 이용하여 광장의 한쪽에 ‘화단’을 마련하는 작업을 실시했다.

바닥의 보도블록과 대리석을 긁어내고 바로 옆에 위치한 팔달산에서 흙을 퍼다 날랐다. 세계수가 얼마나 커질지 모르기에 그 뿌리가 뻗어나갈 수 있는 토양을 충분히 마련해야만 했다.

덜그럭! 덜그럭!

언데드는 지치지 않고 일할 수 있었고 마을의 플레이어들까지 가세하자 하루 만에 자그마한 언덕이 만들어질 정도였다.

“광장 안쪽에는 평지를 남겨두세요. 헬리콥터 이착륙장으로 써야 되니까요.”

세계수가 커지면 이 근처에서는 항공기가 이륙할 수 없게 될 지도 몰랐지만, 당장은 헬리콥터나 본 와이번이 날아오를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다.

“나무를 심기 전에 주변 경계를 강화하겠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감시탑을 주변부로 확대하는 작업 중이었거든요.”

경수의 말에 인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였다.

“일대 상가의 안전을 확인하고 옥상에 시설을 설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골목을 틀어막아서 이 근처를 성벽처럼 만드는 건 어떨까 합니다.”

그들의 의견에 성우는 긍정을 표했다.

“좋은 방법인 것 같습니다. 얼마 전에 가져온 공성병기인 ‘뇌신의 철퇴’를 설치할 만한 장소도 물색해주시면 좋겠습니다.”

“2대 중 한 대는 팔달산 정상에 포대를 마련해보는 게 어떨까합니다. 인근 군부대에서 위장막 같은 물건을 견질 수 있을 것 같고요.”

“괜찮은 것 같네요.”

이렇듯 경수와 인호가 책임감을 가지고 필요한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성우가 떠나 있는 사이 이들이 내정을 신경 써주며 새로운 리더 역할을 잘 해내고 있었다.

우우웅!

“대장, 근처에 새로 등장한 몬스터는 없는 것 같아요.”

그리고 태성과 유진 등 폭주족 출신의 아이들이 일대를 수시로 순찰했다.

“뭐, 상가에 숨어 있는 고블린이나 지하에서 기어 나오는 코볼트는 여전히 있는데 이제 다이어 울프는 거의 사라진 것 같고······.”

이외에도 수원역에 있는 상점을 관리하며 여러 아이템을 획득해나갔는데, 중요한 감시 도구인 ‘마법 드론’을 2대, 무전기 아이템을 7대 보유하게 되었다.

그리고 일대 도로에 방치된 차량들을 치우는 등, 도로 정비까지 진행했다.

마지막으로 이런 시설을 운영하기 위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 모든 플레이어들이 ‘맹세의 금고’에 계약하도록 했다.

[아이템 정보]

- 이름 : 맹세의 금고

- 등급 : 특수

- 분류 : 금융

- 효과 : ‘계약된 플레이어’가 벌어들이는 골드 중 일부가 자동으로 입금된다.

- 설명 : 금고 위에 손바닥을 얹으면 ‘계약 등록’을 할 수 있다. 금고 소유자는 ‘수금 비율’을 정할 수 있으며, 계약자가 벌어들이는 골드에서 해당 비율만큼 금고로 자동 입금 된다.

* 수금 비율 : 10%

* 등록된 계약자 : 226명

* 현재 보유 골드 : 1,655,048

“갈수록 살기 좋아지는 것 같네요. 우리는 허구한 날에 돌아다녀서 만끽할 수 없지만요.”

한호가 마을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이제는 임시 피난처 수준을 넘어서 작지 않은 규모의 운명 공동체가 조성되어 가고 있었다.

***

성우는 거대한 ‘화단’의 중심에 섰다. 씨앗을 심을 때가 온 것이었다. 그리고 그 주변으로 마을 사람들이 늘어서서 성우를 지켜보고 있었다.

성우는 세계수의 씨앗을 꺼냈다. 그 작은 물체는 무어라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찬란한 빛을 발산했다. 그러자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작은 탄식이 흘러나왔다.

“저게 세계수라고?”

“진짜 느낌부터 다른데?”

성우는 미리 파둔 작은 구멍에 씨앗을 넣고, 조심스럽게 흙을 덮었다. 이내 황금색 빛이 하늘로 치솟기 시작했고, 성우는 천천히 뒷걸음질 쳤다.

- 세계수(신단수)의 씨앗을 심었습니다.

- 영험한 존재가 이 땅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합니다.

[히든 퀘스트]

- 제목 : 영험한 나무를 위하여

- 유형 : 목표 수호

- 목표 : 세계수가 일정 크기가 될 때까지 보호하라

- 보상 : 첫 번째 열매, 영구적인 버프

초월적인 존재인 세계수이지만, 그 새싹은 아직 무력한 상태입니다. 그렇기에 세계수의 존재를 감지한 몬스터들이 그 영험함과 고귀함을 탐하며 몰려올 것입니다.

세계수가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단계에 도달하기 전까지 어떤 수를 쓰더라도 지켜내십시오.

* 세계수는 몬스터를 양분 삼을 수 있습니다. 보다 많은 몬스터를 쓰러뜨릴수록 성장 속도가 상승합니다.

* 목표(세계수)가 파괴될 경우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을 초래합니다.

역시 쉬운 일은 없었다. 양지바른 곳에 심고 물만 준다고 키워낼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 해당 퀘스트가 파티 플레이어들에게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총 226인)

“보호하라고?”

“뭐야, 그럼 지금 뭐가 쳐들어온다는 거야?”

그리고 이 장면을 목격한 모든 이들, 마을의 플레이어들 역시 동일한 퀘스트를 부여 받았다. 그렇다는 건, 그만큼 이 퀘스트의 난이도가 어렵다는 의미였다.

‘방금 전에 뭔가 달라졌다.’

성우는 화단에 선 채 주변을 둘러보았다. 정확히는 알 수 없었지만 일대의 기류가 심상치 않았다.

우우우―

마치 모든 좋지 않은 기운이 이곳으로 몰려오는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건 어느 정도 들어맞았다.

“저쪽이야!”

근처 상가, 옥상의 감시탑에서 경계병들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불길한 징조였다. 그리고 그들 중 한명이 광장을 향해 소리쳤다.

“······3시 방향에서 몬스터들이 몰려옵니다!”

반대쪽 감시탑 역시 어떤 움직임을 포착한 듯 했다.

“도로의 하수구에서 코볼트들이 기어 나온다!”

“한두 마리가 아닙니다!”

예상하지 못한 ‘디펜스 게임’이 시작되었다.

“모두 움직여!”

하지만 마을의 플레이어들 역시 평균레벨 8을 달성한 상태로, 이미 상당수의 전투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더 이상 성우의 등 뒤에만 숨어서 목숨을 부지하는 무능력한 시절은 다 지나갔다.

“사수들은 배정된 감시탑으로 이동하십시오!”

인호의 외침에 원거리 무기를 든 이들이 빠르게 움직였다. 이런 상황에 대비하여 몇 차례 훈련을 했던 건지, 그들은 일사불란하게 흩어지며 건물 옥상으로 올라갔다.

“탱커들 앞으로! 바리케이드를 가져와!”

이어서 광장 뒤편에 주차되어 있던 버스들이 움직였는데, 그 생김새가 특이했다.

한쪽 면은 두꺼운 철판이 용접되어 공격을 방어할 수 있게 개조된 반면, 다른 한쪽 면은 완전히 뻥 뚫려 있었다.

“일명 ‘성벽차’입니다. 하나로 이어지면 넓은 면적을 방어할 수 있죠.”

경수가 설명했다. 버스들이 철판이 달린 면을 적 방향으로 두고 줄지어 서자 하나의 성벽 같은 형태가 되었다.

“창병들과 사수들 탑승!”

그리고 뻥 뚫린 반대쪽 면으로 자유롭게 오고가며 적의 돌격에 대응할 수 있는 구조였다. 또한 사다리를 달아두어 버스의 천장 위에 올라갈 수도 있었다.

이렇듯 방어전을 위해서 다양한 병기까지 제작해놓은 상태였다.

“대박인데요? 누구 아이디어에요?”

한호가 감탄하며 물었다.

“마을에 인재가 많습니다. 영등포 테러 이후에 한 동안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지 않았습니까? 그때 머리 좀 굴린 다음에 조금씩 준비해두고 있었죠.”

이런 만발의 준비 덕분에 몬스터들은 세계수의 새싹에 접근하기는커녕, 플레이어들을 직접 공격할 수조차 없었다.

“고블린 무리가 온다! 광역 마법으로 쓸어버려!”

“1시에 코볼트 등장!”

사실 마을 주변은 깔끔하게 토벌된 상태였다. 기껏해야 고블린이나 코볼트 따위가 음지에 숨어 있는 수준이었으니, 그것들이 잔뜩 몰려온다고 한들 이들의 방어벽이 뚫릴 리가 없었다.

성우 역시 27마리의 언데드를 소환하여 힘을 더했을 뿐, 총력을 기울일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문제는 다른 곳에서 커지고 있었다.

“와, 님들 보이십니까? 네크로맨서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옛날에 영등포 검사랑 처음 만났을 때, 둘이 악수하던 그 사진에 나온 장소입니다.”

3명의 플레이어가 골목에 숨어서 어딘가를 촬영하고 있었다. 앵글이 향한 곳을 향해 수많은 몬스터들이 달려들고 있었다. 물론 수원의 마을이었다.

“갑자기 몬스터들이 막 몰려오더니 한 바탕 싸움이 벌어졌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인 걸까요?”

그들은 ‘네크로맨서 추격 중’이라는 제목의 개인 방송을 진행 중이었다.

“잘 모르겠지만 역시 네크로맨서는 쉬지도 않고 사냥하는 것 같네요. 크! 저러니까 절대 종족한테도 개기고 하는 거죠. 솔직히 멋있는 건 인정?”

“인정합니다. 두 번 인정합니다. 하지만 혹시 몰라서 1번, 네크로맨서 사냥 고른 것도 인정?”

“아, 뭐 그거야 보험으로?”

처음에는 백여 명 정도의 시청자 밖에 없었지만, 이내 네크로맨서의 모습을 포착했다는 소식이 퍼지며 상당수의 시청자가 유입되기 시작했다.

그러자 진행자들이 한껏 흥을 내더니 방송의 톤을 높이기 시작했다.

“어제 네크로맨서에게 진짜 어마어마한 현상금이 걸린 이후로 서버 전체에서 현상금 사냥꾼을 자처하는 이들이 우후죽순 생겼죠?”

“맞습니다. 그분들께 전합니다. 네크로맨서가 바로 여기에 있어요. 와서 한 판 붙어 보시죠?”

그들은 어느 건물의 옥상에 올라가더니 더 자세한 부분까지 화면에 담았다.

“자 저기 보세요! 네크로맨서입니다!”

그렇게 말하며 어딘가를 확대했다. 광장의 중앙, 흙산 위에 서 있는 네크로맨서의 모습이 포착된 것이다.

“네? 저요? 채팅창에서 왜 자꾸 저한테 싸우라고 하죠? 저는 네크로맨서 죽이겠다는 말은 안했는데요?”

“맞아요! 우리는 어디로 간 건지 추격한 것뿐입니다. 나머지는 자칭 네크로맨서 슬레이어들이 알아서 하시죠?”

그러나 잠시 후······.

“어어? 저거 뭐야!”

“와, 왔다!”

“자, 잘못했어요. 저희는 그냥······.”

치지지―

네크로맨서 휘하의 구울 3마리가 옥상에 등장했다. 직후, 방송은 종료되었다.

그러나 그 잠깐의 방송으로 인해 네크로맨서의 위치가 밝혀지며 커뮤니티와 개인 방송국이 또 다시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선배, 또 난리에요. 네크로맨서 키워드가 들어간 개인 방송만 5개 열렸는데요?”

네크로맨서를 다져서 젓갈로 담가 버리겠다는 등, 온갖 허세가 담긴 글들이 주를 이루었다.

하지만 일부는 네크로맨서를 치기 위한 파티를 모집하며 실제 공략을 모의하는 것 같은 움직임을 보이기까지 했는데, 그 주축이 ‘재건 동맹’인 걸로 보아 언젠가 실행에 옮길 수도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다만,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관심을 끌고 있는 방송은 안성 지역에서 세력을 가지고 있는 ‘테러 킴’이라는 플레이어의 개인 방송이었다.

- [LIVE] 폭탄 선언한다. 핵폭탄으로 네크로맨서 날려버릴 거다. (23,166명 시청 중)

방송 화면에 우락부락한 남자 한 명이 나타났다. 웃통을 벗은 상태였는데, 상반신을 온갖 문신이 뒤덮고 있었다.

“나는 시흥 지역의 ‘테러 킴’이다! 현재 레벨 16으로 랭킹 10위다.”

그는 그렇게 말하더니 담배를 물었다. 그리고 불을 붙이며 말을 이어갔다.

“네크로맨서, 폭탄 좋아하나? 응? 매번 시체 폭죽 놀이하면서 잘 놀던 것 같던데?”

그는 그렇게 말하며 왼손을 들어올렸다. 그러자 허공에 동그란 물체가 하나 소환되었다. 녹색 액체가 담긴 투명한 공이었다.

그는 그걸 집어 들더니 다짜고짜 등 뒤의 건물을 향해 내던졌다.

쿠―웅! 콰과광!

그러자 폭발이 일며 2층짜리 건물이 통째로 무너져 내렸다. 그는 머리 위로 쏟아지는 먼지 속에서 비릿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런데 폭탄은 내가 원조다. 내 직업은 ‘테러리스트’인데, 방금 전에 사용한 폭탄은 내가 만들 수 있는 것 중에서 가장 약한 스킬이다.”

그는 카메라를 향해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후우······ 근데 무려 시전만 24시간이 걸리는 폭탄이 있단 말이야? 이제부터 그걸 준비해서 수원으로 갈 건데, 너라도 그건 못 버틸 거라고 확신한다.”

이어서 엄지로 제 목덜미를 긋는 시늉을 했다.

“도망가던지 아니면 다 같이 폭탄에 죽던지 결정해라. 그 주변을 통째로 날려버릴 거니까. 현상금은 내 거야.”

그렇게 말하더니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그걸 끝으로 방송이 종료되었다. 어디선가 본 것 같은 테러 예고 비디오 같은 느낌이었다.

“······이거 도전장 같은 거죠? 허세인 것 같긴 한데, 진짜면 어떡해요? 폭탄을 뭐로 막죠?”

성우는 화염에 내성이 있지만 폭발은 또 다른 의미였다. 까딱했다가는 한 번에 죽을 수도 있었다.

그리고 문제는 폭탄이 노리는 게 오로지 성우만이 아닐 거라는 것이었다. 말 그대로 무차별 테러가 되어 마을의 플레이어 전체를 삼킬 수도 있었다.

***

성우는 화분 근처에 항시 대기 중이었다.

밤이 되자 간간히 이어지던 몬스터 웨이브가 잠잠해졌다. 어두워지면서 쉬는 시간이 주어진 건 결코 아니었다. 그저 일대의 몬스터가 모두 사라진 것뿐이었다.

그렇다면 더 먼 곳, 더 강력한 몬스터들이 오고 있다는 뜻으로 여겨야 할 수도 있었다.

“지금까지는 위기는 없습니다. 오히려 이런 잡몹을 앉은 자리에서 잡으며 소소한 이득을 챙겼네요.”

경수가 경과를 보고했다.

“그렇지만 경계를 늦추면 안 됩니다. 우리를 노리는 건 이제 몬스터뿐만이 아니니까요.”

“플레이어들이요?”

“커뮤니티나 방송에 올라온 경고가 대부분 허세일 뿐이겠지만······ 누군가는 객기를 부릴 수도 있으니까요.”

그리고 재건 동맹을 실제로 성우를 습격해왔다. 평소라면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지만, 성우를 노릴 경우 ‘심판자의 가호’라는 버프를 얻으며 모든 능력치가 5만큼 올라가니 자신감을 가지게 되는 것이었다.

“미친 짓이죠.”

“우리에게는 귀찮은 일이고요.”

- 세계수의 새싹이 성장 중입니다. (11%)

랜턴을 비추어 살펴보니 어느새 작은 이파리가 하나 피어나 있었다. 고블린과 코볼트를 잡은 것만으로는 큰 폭의 변화는 없어보였다.

“저, 성우 씨? 제 3의 진영을 창설하면 그 다음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성우는 고개를 저었다.

“모릅니다.”

“아······.”

“하지만 더 좋은 결말에 도착할 거라고 생각하고 선택을 하는 수밖에 없죠.”

“더 좋은 결말이요?”

성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게임에는 결말이 존재한다. 천사와 악마가 등장하는 예언석을 본 적은 없지만, 그들이 좋은 결말로 이끌어줄 것 같진 않았다.

“천사와 악마라는 정체불명의 존재를 따르면서 끝을 보는 것보다 우리의 발로 직접 도착하는 게 더 괜찮은 결말이 아니겠습니까?”

천사와 악마는 인간을 파트너로 생각하고 있는 게 아니었다. 현재까지 밝혀진 정보를 볼 때, 그들은 인간들에게 계급을 부여하고 상벌을 내리려고 하고 있다.

비록 예상하지 못한 조건으로 ‘제 3의 선택’을 하게 된 성우이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천사와 악마를 맹신하지는 않았을 것이었다.

“······끝이라. 그 끝에 가면 이 게임을 누가 만든 건지 알 수 있을까요?”

경수가 물었다. 하지만 대화는 거기까지였다.

쾅! 콰―앙!

굉음 때문이었다. 광장의 오른 쪽, 상가 건물에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난 것이다. 어둠 속에서 주황색 불꽃이 시야를 가득 메웠다.

“어? 뭐, 뭐야! 젠장! 당장 드론 띄어!”

경수가 소리치며 흙산을 내려갔다. 성우는 그쪽을 노려보며 리피팅 크로스보우를 들어올렸다.

쿠구구구―

이내 상가 건물의 중앙 부분이 무너져 내렸다. 모래성의 가운데에 손을 집어넣은 것처럼, 아슬아슬한 구멍이 뚫린 것이었다.

그리고 그 사이로 검은 그림자들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으하하하! 으하하!”

거친 웃음소리와 함께 가운데에서 걸어오는 그림자가 양손을 번쩍 벌렸다.

“으하하! 준비 시간이 24시간이라고 해서 24시간 뒤에 올 줄 알았냐? 미리 준비를 다 해뒀지! 도망가기에는 늦었다!”

오전에 경고 방송을 했던 테러리스트 ‘테러 킴’이었다. 그리고 그 옆에 카메라 오퍼레이터가 서 있었다. 놈들은 지금 방송을 켜둔 상태였다.

“자, 긴말 할 것 없이 바로 클라이맥스다! 모두 네크로맨서의 최후를 봐라!”

놈은 오른손에 무언가를 들어 올렸다.

“이건 무려 아파트도 통째로 날려버릴 수 있는 스킬이다!”

붉은색 액체가 담긴 원통형 물건이었다. 놈의 손에서 희미한 빛이 흘러나와 원통 안으로 흘러들어갔다. 아내 붉은색 액체가 검은색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 주의! 해당 장소에 ‘검붉은 폭풍’이 시동됩니다.

“끝이다!”

놈이 그걸 내던졌다. 정체불명의 물체가 성우를 향해 직선으로 날아들었다. 그리고 그게 뭔지는 이미 예고되었다. 아파트도 통째로 날려버린다는 폭발 스킬이었다.

“전부 죽어라! 엎드려!”

그러나 그 순간, 성우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발아래 준비 해두었던 방패를 들어 올렸다.

원통형 물건이 터지며 검은 액체가 사방으로 분사되었다. 그러나 방패에 닿는 순간 방패에서 방어막이 펼쳐졌다. 그리고······.

촤아아―

검은 액체는 증발하듯 사라져버렸다.

“······어?”

그게 끝이었다. 클라이맥스라고 할 법한 그 어떤 화려한 굉음이나 번쩍임 따위는 없었다.

바닥에 엎드렸던 테러리스트들이 고개를 들었다.

“뭐야!”

성우가 방패를 슬며시 내리며 입을 열었다.

“······이 폭탄이 아이템이 아니라 스킬이라고 했지?”

[아이템 정보]

- 이름 : 산도깨비의 목각 방패

- 등급 : 영웅

- 분류 : 방패

- 효과 : 3번의 마법 공격을 ‘무효화’시키는 방어막이 형성됩니다. (재사용 대기 1시간)

진화 학회의 ‘붉은 기수’에게 노획한 아이템이었다. 성우의 새로운 스킬인 ‘악령 폭격’까지 손쉽게 막아냈었다.

“자, 이제 방송 주제를 바꿔보자.”

“아니! 대, 대체 어떻게! 이익!”

놈이 발악하듯 폭탄을 하나 들어올렸다. 하지만 그 순간, 놈의 팔뚝에 화살 3방이 박혔다.

“아악!”

놈이 엎어졌고 성우가 천천히 다가갔다.

옆에 서 있던 카메라 오퍼레이터는 완전히 얼어붙은 상태였다. 성우는 그 카메라를 잡아서 자신을 똑바로 찍게 만들었다.

“중대 발표 하나 하지.”

이미 그렇지 않아도 많았던 방송의 시청자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내가 지금부터 3가지 약속을 할 거다. 이 약속은 한국 서버의 모든 플레이어에게 해당 된다.”

성우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지금까지 나를 죽이겠다고 살해 예고를 했던 놈들을 차례차례 찾아가서 전부 죽일 거다.”

그 말이 끝나는 동시에 성우가 무언가를 뽑아들었다. 그건 핸드 캐논이었다.

콰―앙!

단 한 번의 굉음과 함께 테러 킴의 머리가 날아갔다. 그 장면이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겼다. 성우는 천천히 핸드 캐논을 장전했다.

“그리고 새로운 조직을 만들어서 천사와 악마 밑에 있는 것들까지 전부 죽일 거다.”

콰―앙!

이번에는 그 옆에 서 있던 부하가 쓰러졌다. 이내 성우의 등 뒤에서 마을의 플레이어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수백 명의 무장한 그룹의 모습이 하나의 앵글 안에 담겼다.

“하지만······ 나와 함께 제3의 진영을 선택한다면 달라질 거다.”

아주 잠시나마 비난의 대상이자 사냥감의 이미지로 전락했던 네크로맨서가 본래의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한국 서버에 전체에 무언가를 각인시켰다.

어쩌면 절대 종족이 반드시 좋은 선택이 아닐 수도 있다는 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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