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네크로맨서-90화 (90/244)

# 90

32) 절대 종족, 천사의 석상 - 2

절대 종족의 석상을 부숴버린 일은 생각보다 큰 파장을 일으켰다. 단순한 현상금 부여로 그치는 게 아니라 천사 종족이 척살 명령을 내린 것이다.

[서버 퀘스트]

천사 진영에 의해 서버 전체에 내려진 퀘스트입니다. 당신은 아래 3가지 선택지 중 1가지를 고를 수 있습니다.

1번) 제3 진영 저지 (kor-157 살해)

* 대상자를 상대할 때 천사 진영에게 ‘심판관의 가호’ 버프를 받습니다. 일정 기간 동안 모든 능력치가 대폭 상승합니다. (+5)

* 무소속 플레이어의 경우 천사 진영과 계약 시 ‘계급 점수’에 참작됩니다.

* 가장 큰 공을 세운 자에 한하여 천사 진영의 ‘성물’을 1가지 수여 받을 수 있습니다.

2번) 제3 진영 지지 (kor-157  보호)

* 제3 진영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부여됩니다.

* 절대 종족의 앙심을 사게 됩니다.

3번) 방관

* 해당 사항이 없습니다.

“······선배? 이거 영 좋지 못한대요?”

한호가 불안함을 내비치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영등포는 분명 아군의 영역이었다. 하지만 알게 모르게 기류가 달려져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옥상에 위치한 광복 길드 소속 플레이어들의 눈빛이 은근히 달라진 것이다.

‘나라도 군침이 돌 거다.’

천사 진영에서 내건 현상금이 무려 5000만 골드다. 하물며 모두의 눈앞에 3가지 선택지가 나타났다. 그중에서 한 가지는 반드시 골라야만 한다.

그러나 선택에 따라 제시된 결과가 너무나 극명하게 차이가 났다. 대놓고 네크로맨서를 치기를 종용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성물이 뭐지? 거기다가 모든 능력치가 5나 오른다고? 6~7레벨이 오르는 거랑 마찬가지잖아?”

“천사 진영의 계급 점수? 뭔지 모르겠지만 어마어마하긴 한 것 같은데······.”

하지만 그 누구도 감히 나서지 못했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서 정훈이 걸어 나왔다.

“성우 씨······.”

그의 얼굴에는 의아함과 동시에 분노가 어려 있었다.

“방금 전 행동은 굉장히 용납하기 어렵습니다. 이 천사의 석상은······ 우리가 찾아낸 아이템입니다. 왜 이걸 부순 건지 납득할 수 있게 말씀 해주시죠.”

성우는 고개를 저었다. 설명할 수 있는 게 그다지 없을뿐더러, 한가하게 설명할 타이밍도 아닌 것 같았다.

“느낌일 뿐이라서 아직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가 없군요. 하지만 언젠간 설명할 수 있을 겁니다.”

“저는 성우 씨의 느낌을 믿습니다. 하지만 이건 다릅니다. 이런 식으로 감당할 수 없는 존재를 적으로 돌려버리신다면······ 저는 성우 씨와 함께 갈 수 없습니다.”

“이해합니다.”

정훈을 비난할 상황은 결코 아니었으며 오히려 그가 성우를 비난한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다.

절대 종족에 반한다는 건, 현재로써는 신에게 대항한다는 느낌과 같았다.

하물며 정훈은 성우와 동시에 석상에 손을 올렸을 때 천사 진영과 계약을 맞췄다. 그런 상황에서 천사의 석상을 깨버렸으니 날벼락을 맞은 상황이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성우 씨와 전쟁을 치러야 할 수도 있겠죠.”

그렇기에 이런 반응은 당연한 것이었다.

크루세이더 팀이 천천히 다가왔다. 당장이라도 검을 뽑아들고 크로스보우를 겨눌 것 같았다.

지수 역시 양 발을 조금씩 넓게 벌리며, 칼등 뒤에 손을 얹었다.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하지만 일단은 3번을 선택하겠습니다. 조만간 제 결정은 1번과 2번 중 하나로 바뀔 겁니다. 부디 2번이 될 수 있는 이유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 말에 크루세이더 팀이 뒤로 한 발자국 물러났다. 긴장감이 한 층 옅어졌다.

하지만 분위기는 여전히 차가웠다. 이 자리에서 모든 능력치가 5나 오른 크루세이더 팀과 격돌했으면 어떻게 됐을까? 아무리 성우라도 그건 장담할 수 없었다.

“믿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방금 전에 ‘3번’을 선택하면서 천사 진영으로부터 페널티를 받게 됐습니다. 아무래도 이 이상 도와드리긴 힘들 것 같습니다.”

“저는 수원으로 가겠습니다.”

“그렇게 하시죠.”

현재로써는 갈라질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함께하는 게 껄끄러운 건 당연했으며, 정훈이 눈을 감아준다고 한들, 수많은 플레이어 그룹이 모여 있는 영등포는 결코 안전하지 않았다. 누군가 흑심을 품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수원의 마을은 다를 것이다. 이럴 때를 대비해서 조성해 놓은 피난처였다.

성우 일행은 옥상에서 빠져나와 계단을 빠르게 내려갔다. 일단은 이 근처에서 벗어난 다음에 본 와이번을 소환할 생각이었다.

사방이 뚫려 있는 옥상에서 본 와이번을 소환해 비상할 경우, 예상하지 못한 공격에 당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일행은 그렇게 영등포역 건물 밖으로 빠져나왔다.

“사방에 사람들이 있어요. 시선이 느껴져요.”

지수의 말처럼, 불특정다수의 시선이 느껴졌다. 골목과 창문에서 훔쳐보거나 대로변에서 노골적으로 바라보거나······. 누군가의 시야의 사각에 손을 숨긴 채 꼼지락 거리까지 했다.

“에이 설마 우리를 공격하겠어요? 방금 저 아저씨 활을 든 것 같은데 아, 아니겠지?”

그들 중 대부분은 성우의 도움을 받았으며 그런 성우를 영웅으로 칭송하던 자들이었다. 하지만 엄청난 보상 앞에 혹하는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허튼 생각이라는 걸 잘 알 거야.”

탐욕을 품더라도 욕심을 부릴 순 없었다. 그 먹음직스런 목표물이 그 누구도 아닌 네크로맨서가 아니던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 객기를 부리기라도 한다면 덩달아 흥분하여 날 뛸 가능성이 존재했다. 그렇기에 이곳을 빠르게 벗어나는 게 급선무였다.

“윽!”

그 순간, 성우 가슴 안쪽에서부터 올라오는 뜨거운 열기를 느꼈다.

‘······이건 설마?’

아까 전부터 조금씩 뜨거워지더니 이제는 화끈거릴 정도였다.

“선배, 갑자기 왜 그래요?”

“아무 것도 아니야. 일단 움직여.”

하지만 고작해야 신경에 거슬릴 정도였기에 성우는 눈앞의 상황에 집중했다.

그렇게 두 번째 철책 밖으로 빠져나왔다. 광복 길드의 공식적인 영역 밖으로 나온 것이다.

성우는 직후 본 와이번 한 마리를 소환했다. 그런데 그 순간, 지수가 뒤돌아 철책 너머를 바라보았다.

“로터소리······.”

“네?”

“로터소리가 들리는데 이건 드론이 아니에요. 이건······ 헬리콥터에 시동이 걸렸어요.”

좋지 않은 뜻이 확실했다.

아니나 다를까, 본 와이번을 타고 날아오른 뒤 살펴보니, 영등포역 앞 상가 사이에서 헬리콥터 3대가 떠오르는 게 보였다.

‘재건 동맹······.’

분명 저 방향은 ‘재건 동맹’이라는 조직의 군용 헬리콥터가 자리하고 있던 곳이었다.

이전에 영등포역 복도에서 한 번 부딪친 적이 있었는데, 성우에게 결코 우호적이지 않은 감정을 내비췄었던 게 떠올랐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과감하게 나올 줄이야?

우우웅!

놈들의 헬리콥터는 동체를 앞으로 기울인 채 속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생각 이상으로 빨랐다.

후우우!

더군다나 어디선가 비정상적인 바람이 불어와 본 와이번의 날개를 짓누르기 시작했다. 그러자 비행 속도가 확연하게 느려졌다.

“정령술사가 있군.”

헬리콥터에 탑승해 있는 바람의 정령술사가 바람의 방향을 교모하게 바꾸며 추격해오고 있는 것이었다.

후우우!

그렇기에 따돌리는 건 불가능해보였다. 그리고 애초에 도망칠 생각도 없었다.

범 무서운지 모르고 달려드는 하룻강아지를 방치했다간 몇날며칠 시끄럽게 짖어댈 테니 말이다. 하물며 동네 개들조차 그 객기를 따라 짖을 것이었다.

“한호야, 너는 본 와이번보다 헬리콥터나 텔레포트가 더 좋다고 했지?”

“네? 가, 갑자기 그건 왜요?”

성우의 난데없는 물음에 한호는 불길함을 느꼈다. 그 순간, 본 와이번의 양쪽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더니 이내 조비 괴조 9마리가 소환되었다. 그리고 꼬리 쪽에는 민석과 오른이 나타났다.

“가서 네가 직접 뺏어오는 건 어때?”

“뭐라고요?

“좀비 괴조가 태워줄 거야.”

“······지, 진짜 미쳤어요? 아니! 잘못했어요!”

그 사이, 헬리콥터와의 거리가 좁혀졌다. 조종사의 얼굴이 보일 정도였다. 그리고 선두의 헬리콥터에서 누군가 머리를 내밀었다.

핑!

그 순간, 지수가 성우의 몸 앞으로 튀어나오며 칼을 뽑아들었다. 그리고 발도와 동시에 무언가를 베었다.

푹!

엄청나게 빠른 물체가 절반으로 갈라지며 그 파편이 지수의 왼쪽 쇄골 아래 박혔다. 손가락 한 마디만한 크기의 화살촉이었다.

막아내면서 속도가 줄어들어서 다행이었다. 그게 아니었으면 치명상을 입었을 것이었다.

“조심해요 저격이에요.”

지수는 아무렇지도 않게 자세를 고쳐 잡았다. 그리고 곧장 칼을 좌우로 두 번 휘둘렀다. 이내 두 개의 화살이 허공에서 잘려나갔다.

그건 작은 크기의 화살을 통아에 덧붙여 발사하는 편전(片箭)이었다. 일반 화살보다 훨씬 빠르고 강력한 무기였다. 그리고 그게 끝이 아니었다.

“바람을 실어서 더 빠르게 만드는 것 같아요.”

놈들이 자신 있게 공중 추격을 해온 이유가 있었다. 바람의 정령술사가 2명 이상 있었으니, 공중전의 환경을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었다.

성우가 섣불리 좀비 괴조를 보내지 못하는 이유도 그것 때문이었다. 놈들의 공기의 흐름을 지배하고 있었다.

피―잉!

그리고 이번에도 두 발의 편전이 동시에, 좌우로 쏘아졌다. 지수가 호흡을 멈추며 쳐낼 준비를 했다.

“어? 뭐야 저게!”

그런데 마치 강을 거슬러 오르는 물고기처럼, 상하좌우로 곡선을 그리며 방향을 바꾸는 게 아닌가? 이 역시도 정령술사와의 합작이었다.

움직이는 방향을 예측할 수 없으니 훨씬 쳐내기 어려운 공격이었다. 바람의 정령술사들은 지수가 칼을 휘두르는 순간에 맞춰 바람의 방향을 바꿀 요령이었다.

붕! 촤―작!

하지만 지수는 그보다 한 박자 빠르게 참격(斬擊) 스킬을 사용해 검기를 날렸고, 정령술사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편전을 요격하는데 성공했다.

“후우······.”

수 싸움에서 앞섰다.

직후, 본 와이번이 고도를 급하게 낮추며 아파트 사이로 비행했다. 3대의 헬리콥터 역시 그 뒤를 따라 들어왔다. 마치 도그파이팅을 하던 전투기들이 협곡으로 접어드는 것과 같은 풍경이었다.

두두두두!

그때였다. 아파트 한쪽 면에서 검은 그림자가 빠르게 낙하더니, 맨 후열의 헬리콥터가 무언가와 충돌했다.

쿵! 쿠구구―

헬리콥터는 그 충격에 균형을 잃더니 아파트 외벽을 거칠게 긁으며 곤두박질 쳤다. 뒤에서 폭발음이 울렸다.

꺼으으!

헬리콥터와 충돌한 물체의 정체는 다름 아닌 ‘구울 킹’이었다. 아파트 옥상에서 그 거대한 괴물이 뛰어내리며 헬리콥터의 꼬리를 후려친 것이었다.

“나이스! 좋은 작전이었어요!”

성우가 정면의 아파트 옥상에 구울 킹을 미리 소환한 뒤, 그 아래로 저공비행하여 헬리콥터를 유인한 것이었다.

구울 킹은 아파트 외벽을 거미처럼 기어오르며 나머지 두 대의 헬리콥터의 꽁무니를 노리기 시작했다. 놈들의 시선은 후미를 향할 수밖에 없었다.

“지수 씨! 한호야 지금이야!”

“네? 뭐가······.”

“놈들이 뒤를 신경 쓰고 있을 때가 헬리콥터를 통째로 뺏을 수 있는 기회야! 조종사 빼고 다 하차시켜!”

“준비 됐어요!”

지수가 어깨를 풀었다.

“뭐, 뭐가 준비 돼요? 다들 미쳤죠?”

그 순간, 괴조가 9마리가 지수와 한호 그리고 민석과 오른이의 어깨를 움켜쥐었다. 그리고 2대의 헬리콥터를 향해 그대로 날아갔다.

“야 이! 미친 새······.”

놈들이 사격의 방향을 서둘러 정면으로 바꾸었지만, 선두로 날아간 5마리의 괴조가 몸으로 막아내고, 뒤이어서 오른과 민석이 헬리콥터 안으로 치고 들어갔다.

물론, 지수와 한호는 가장 안전하게 맨 마지막으로 보냈다. 헬리콥터를 납치하기 위해서는 조종사를 협박할 사람이 필요했을 뿐이니 말이다.

***

수원 화성 광장에 본 와이번 1마리와 헬리콥터 2대가 착륙했다. 그리고 뚱한 표정의 한호가 걸어나왔다.

“선배, 저 진심으로 진지하게 그 서버 퀘스트에서 1번 골랐어요. 솔직히 이건 빼도 박도 못하게 손절 각이에요. 진심입니다.”

“나는 네가 좋아하는 헬리콥터 한 대 마련해주려고 했지.”

“······즐.”

비행을 마친 일행에게 경수와 인호가 다가왔다. 그 뒤로 다수의 마을 주민들이 무장한 채 대기 중이었다.

“어서 오십쇼.”

“당연하지만 1번 선택한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거액의 수배자가 된 성우를 전혀 거리낌 없이 맞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이들은 게임의 초반부터 성우 덕분에 목숨을 부지한 이들이었으며 그 이후에도 성우에게 적잖이 의지해왔으니 말이다.

“무사하실 줄 알았지만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서 경비를 강화해 뒀습니다.”

“고맙습니다. 부탁대로 잘해주셨군요.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경수는 성우가 당부하고 간 평균 8레벨을 달성했다. 하지만 경수와 인호는 그런 성과보다 눈앞에 벌어진 일이 더 신경 쓰이는 듯 보였다.

“그것보다 지금 커뮤니티가 난리입니다. 성우 씨를 죽이겠다는 관심 종자들이 한 둘이 아닙니다.”

“극성인 놈들은 방송까지 켜서 어그로를 끌고 있고요. 한 번에 이렇게 많은 방송이 켜진 건 처음 봅니다. 영웅이라고 칭송할 땐 언제고 이렇게 난리를 부린답니까?”

그들의 푸념처럼 한국 서버의 커뮤니티와 개인 방송은 서버 퀘스트에서 1번, 성우를 살해하기로 선택한 이들로 들끓고 있었다.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성우는 극히 평범한 현상이라고 생각했다. 큰 인기를 구가하던 사람에게 흠집이 나는 순간,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달려들어 억지로 씹어대기 마련이다.

이는 멸망 전의 인터넷 환경에서도 쉽게 목격할 수 있는 현상이었다. 그렇기에 지금의 커뮤니티 분위기만으로 한국 서버가 돌아섰다고 보는 건 옳지 않았다.

“어차피 상황이 바뀌는 순간 다시 조용해질 겁니다.”

그리고 상황은 얼마든지 바꿀 수 있었다.

“윽!”

그때 성우는 다시금 뜨거운 통증을 느꼈다. 안주머니 깊은 곳, 그곳에 숨겨둔 작은 물체가 원인이었다.

“왜 그러십니까?”

성우는 안주머니에서 무언가를 끄집어냈다.

우우우―

작은 물체가 찬란한 빛을 뿜어냈다.

“······오?”

“그건 뭐죠? 씨앗인가?”

“뭔지 몰라도 대단한 물건인 것 같네요.”

세계수의 씨앗이 다시 한 번 빛을 발하고 있었다.

- 특정 조건 달성(제 3의 선택)으로 새로운 진영의 ‘시조(始祖)’가 될 수 있는 자격을 얻었습니다.

* 지금 세계수의 씨앗을 심을 경우 당신의 진영을 축복하는 ‘신목’으로 자랄 것입니다.

* 이를 위해서는 ‘제 3의 선택’ 퀘스트를 완료하여 ‘진영 창설’에 성공해야만 합니다.

“신목?”

가장 안전한 곳으로 돌아왔고

씨앗을 심을 완벽한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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