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5
30) 평택, 지옥, 악마 - 2
‘불의 거인’은 ‘지옥의 문’ 퀘스트의 중간 보스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웬만한 메인 보스 몬스터보다 위협적이었다.
‘잘못 했다간 보스 얼굴도 못 보고 끝날 뻔 했다.’
좋은 작전이 연달아 먹혀 들어가면서 순식간에 사냥하는데 성공했으니 다행이었지, 단순한 무력만으로는 이길 수 없는 상대였다. 역시 권장 레벨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
성우는 손에 쥔 붉은 구슬을 내려다보았다.
[아이템 정보]
- 이름 : 불의 정기
- 등급 : 영웅
- 분류 : 제작 재료
- 설명 : 현실 세계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강력한 불의 힘을 담고 있다. 조건이 부합할 경우, 마나를 통해서 통제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조합 경험 상 괜찮은 재료가 될 것 같았다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치이이―
코어를 움켜쥔 손등에 어떤 문양이 새겨지기 시작했다. 그건 형태를 알 수 없는 기호였다.
- 지옥의 저주에 의해 ‘각인’됩니다. 이 땅의 악마들이 당신을 추격할 것입니다.
* 해당 저주는 보스 몬스터(헬 무빙 아머)를 사냥할 시 해제됩니다.
중간 보스 격인 불의 거인을 처리함으로써 ‘헬 무빙 아머’와의 전면전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어차피 피할 생각 따위는 없었다.’
차라리 잘 된 건지도 몰랐다. 놈이 성우가 있는 곳을 찾아온다면, 어쩌면 꽤나 좋은 상황을 만들 수도 있으니 말이다.
‘내가 유리한 곳에서 싸울 수 있다.’
전장은 매우 중요했다. 다수의 적을 상대할 때 좁은 지역이 유리한 것처럼, 승패를 좌우하는 중요한 요인이었다.
그런 면에서 이런 도심지는 성우에게 불리했다. 복잡하고 불에 탈 게 너무나 많았다.
성우는 일행을 돌아보았다.
“선배, 방금 이 메시지 보셨죠?”
“놈이 이제 우리한테 오는 건가요?”
다른 이들에게도 동일한 상황이 주어졌다. 성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함정을 팝시다.”
지옥에서 온 놈들에게 또 다른 지옥을 마련해줄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건, 랭킹 1위를 앞서 나가기 위한 한 방이 되어줄 것이었다.
***
성우가 선택한 장소는 지역 중학교의 운동장이었다. 불에 탈만한 게 전혀 없었으니 최적의 전장이 될 수 있었다.
그리고 예상하지 못한 조력자가 몇 명 생겼다. 불의 거인을 처리할 때 만났던 플레이어들이었다.
“학교 안에 있는 소화기 싹 다 긁어 왔습니다!”
“차량용도 다 가져왔습니다.”
“투척용 소화기도 11개 구했습니다.”
이들은 평택 지역의 생존자 그룹이었는데, 지옥의 문이 열리면서 북쪽으로 피난을 가던 중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무작정 북쪽으로 올라가면서 헬 하운드의 추격을 따돌리는 것보다, 네크로맨서에게 붙는 게 생존 확률이 높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소화기는 저기 한 쪽에 쌓아 두시면 됩니다.”
성우는 소화기를 최대한 모았다. 상대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주변을 불태우는 놈들이었다. 그런 까다로운 적수를 맞이하기에 앞서, 불을 끌 수 있는 장비를 충분히 마련해둘 필요가 있었다.
“꼼꼼하게 잘 묻었습니다.”
“좋습니다.”
또한 운동장 곳곳을 파서 시체를 묻어 두었다.
‘이걸로 한 방에 보낸다.’
놈들을 화약고 위로 끌어들일 생각이었다.
“선배, 마무리 되었으니 슬슬 건물 안으로······.”
그때였다.
구구궁!
동쪽 하늘에서 파란색 빛이 번쩍거렸다.
“······응? 번개? 방금 번개 아니었어요?”
한호 역시 그 빛줄기를 목격했다. 대낮임에도 불구하고 그 궤적이 선명하게 보일 정도였다. 작업을 하고 있던 모든 이들의 시선이 그곳으로 향했다.
“방금 봤지?”
“이렇게 맑은 날에 번개라고?”
구궁! 구궁!
그리고 이어서 다시 한 번 빛이 터져 나왔다. 하늘에서 지상으로 내리 꽂히는 선명한 빛줄기, 이어서 또 한 번, 곧장 다시 한 번······.
“어어?”
“저게 뭐야?”
구―구―구―구―궁!
이어서 수십 발의 섬광이 동시다발적으로, 마구잡이로 내리 꽂히며 지상을 두들겨댔다.
“마, 맙소사!”
확인하지 않아도 저 지역은 초토화되었을 것이었다.
‘······설마?’
저쪽이면 분명 안성 방향이었다. 또 다른 ‘헬 무빙 아머’가 존재하며, 한강석이 맡기로 한 곳······.
그때였다.
“놈들이 와요!”
옥상에서 지수가 소리쳤다.
아무래도 더 이상은 기이한 번개를 구경하고 있을 틈이 없었다. 학교 펜스 너머로 회색 연기가 밀려오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모두 건물 안으로 들어가요!”
“움직여!”
작업을 마친 플레이어들이 서둘러 건물 안으로 대피하기 시작했다.
“으! 뜨거워!”
사방에서 땅을 두드리는 소리가 울리며 뜨거운 공기가 밀고 들어왔다. 지옥의 열풍이었다.
‘확실히 다르다. 훨씬 뜨겁다.’
불의 거인 역시 일대의 공기를 뜨겁게 달궜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성우는 모든 이들을 학교 안으로 들여보낸 뒤, 자신은 운동장 한 가운데 섰다.
이내 학교 밖, 도로 건너, 건물 너머에서부터 개 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컹! 컹! 컹!
헬 하운드였다. 놈들은 마치 기사단의 돌격처럼, 맹렬한 땅울림과 함께 등장했다. 그리고 3미터 높이의 펜스를 가뿐하게 넘어 운동장으로 달려왔다.
크르르―
성우는 트롤 스켈레톤 10마리를 소환하여 몸 주변을 둘러싸게 했다. 그리고 뼈 갑옷과 뼈 방패로 무장시켰다.
‘충분히 들어올 때까지 버텨야 된다.’
헬 하운드가 차례차례 운동장 안으로 진입했다.
컹! 컹!
놈들은 트롤 스켈레톤 주변을 뱅글뱅글 돌며 당장이라도 화염을 내뿜을 듯, 입 안 가득 불꽃을 머금었다. 아무리 방패와 갑옷으로 무장한 상태라고 할지라도 저 지옥 불을 오래 버틸 수는 없었다.
‘더 들어와라.’
교문을 뜯고 한 무리가 더 들어왔다. 지금까지 14마리, 아직도 충분하지 않았다. 뒤이어 등장한 몇 마리가 철체 펜스를 들이 받아 무너뜨렸다. 이제 19마리, 여전히 한참 못 미쳤다. 저 멀리에서 더 많은 숫자가 몰려오고 있다.
크르르!
물소를 포위한 하이에나처럼, 놈들이 대가리를 기울인 채 서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장 가까이 접근한 놈이 기어코 아가리를 쩍, 벌렸다. 놈의 목구멍에서 불꽃이 일렁거렸다. 성우는 트롤 스켈레톤의 뼈 사이로 리피팅 크로스보우를 내밀었다.
퉁! 퉁! 퉁! 퉁!
놈의 혓바닥과 콧잔등, 왼쪽 눈에 화살이 박혔다. 그걸 신호탄으로, 다음 순간, 대여섯 마리가 동시에 화염을 내뿜었다.
푸화아아!
엄청난 열기가 운동장을 가득매우며 일대의 모든 산소를 태워버리는 듯 했다.
“······윽!”
트롤 스켈레톤의 뼈가 화염에 달궈지며 주황색으로 변해갔고, 성우는 오븐에 구워지는 기분이었다.
‘조금만 더.’
어느새 29마리.
쩌저저―
내구력을 다한 뼈 방패가 갈라지며 가루로 변했다. 34마리, 트롤 스켈레톤의 뼈 사이로 엄청난 열기가 들어왔다. 41마리,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
‘탈출해야 된다.’
그 순간, 성우의 등 뒤에서 검은 날개가 치솟았다. 좀비 괴조였다. 녀석이 성우의 어깨를 발로 움켜쥐고 날개를 펼쳤다. 그리고 수직으로 치솟았다.
“폭발!”
탈출과 동시에 심어둔 폭발물을 점화시켰다.
쾅! 쾅! 쾅! 콰과과과!
운동장 전체가 진동하며, 뒤집어지고, 튀어 올랐다. 거친 모래가 사방으로 튀며 학교 창문들을 깨부쉈다. 붉은 화염이 치솟으며 헬 하운드를 삼켰고, 엄청난 충격이 놈들의 몸통을 박살냈다.
- ‘헬 하운드’를 사냥하여 15,000골드를 얻었습니다.
- ‘헬 하운드’를 사냥하여 15,000골드를 얻었습니다.
- ‘헬 하운드’를 사냥하여 15,000골드를 얻었습니다.
- ‘헬 하운드’를 사냥하여 15,000골드를 얻었습니다.
엄청난 수의 메시지가 눈앞에 떠올랐다. 성우는 그대로 학교 옥상까지 날아가 착륙했다. 운동장은 미사일을 맞은 것처럼 초토화 되었다.
“후, 좋아······.”
한 순간에 50마리에 가까운 숫자를 날려버렸다. 이걸로 위험 요소는 최소화시켰으며 이제 마지막 목표물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때였다.
콰―앙!
폭음과 함께 근처의 상가 하나가 통째로 무너져 내렸다. 그 파편 속, 뿌옇게 일어난 먼지 커튼 뒤로 거대한 그림자가 일렁거렸다.
- 보스 몬스터 ‘헬 무빙 아머’가 출현했습니다.
마침내 놈이 나타났다.
절그럭― 절그럭―
이 세상 물건이 아닌 것 같은 거대한 갑옷과 기형적인 문양들, 그리고 5미터 정도의 ‘미늘창’을 허리 뒤로 빗겨 들고 있었다.
놈은 달궈진 숫돌처럼, 주변의 공기를 일렁이게 만들었다. 육중한 걸음을 움직여 다가올 때마다 일대의 잡초와 가로수에 불이 붙었다. 저 정도라면, 사실상 접근 자체가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좋아. 두 번째 작전 시작하자.”
- ‘골렘(플레시)’를 소환합니다.
- ‘골렘(플레시)’를 소환합니다.
성우는 골렘 소환 스킬을 사용했다. 대상물은 운동장에 널브러진 온갖 시체 조각이었다.
그것들이 마치 자석에 이끌리는 것처럼 저절로 떠오르더니, 거대한 찰흙 인형처럼 마구잡이로 합쳐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10미터 크기의 ‘플레시 골램(Flesh Golem)’이 탄생했다.
철퍽― 철퍽―
시체로 만들어진 그 끔찍한 괴물들이 앞서 나갔고, 그 뒤에서 폭사했던 트롤 스켈레톤들이 재생되었다. 녀석들은 뼈 방패와 뼈로 만들어진 ‘메이스’를 들고는 골렘을 따라 전진했다.
- 팀플레이로 인해 시너지 효과가 부여됩니다.
[시너지 목록]
4) 아머 브레이커(1단계)
- 구분 : 무기 시너지
- 조건 : 둔기 10개 이상 장착
- 효과 : 일정 확률로 기절 상태 부여(6%), 중‧대형 몬스터 대상 추가 데미지(+15%), 판금 갑옷 대상 추가 데미지(+10%)
저런 갑옷 돼지를 위한 맞춤형 시너지까지 준비했다. 판금 갑옷을 깨부수기에 가장 좋은 방법은 역시, 묵직한 물건으로 힘껏 두드리는 것이니 말이다.
“그 다음, 출발.”
이어서 옥상에서 9마리의 괴조가 날아올랐다. 녀석들은 양 발에 무언가를 한 가득 쥐고 있었는데, 헬 무빙 아머를 향해 날아가 쥐고 있던 물건을 일제히 내던졌다.
퍽! 퍽! 퍽! 퍽!
치이이―
그건 투척용 소화기였다. 분말이 사방으로 흩어지며 산소를 차단시켰다. 그것만으로도 주변의 온도가 확연하게 낮아질 것이었다.
소화기 폭격을 성공한 괴조들이 급히 고도를 높였다. 그때, 놈이 왼 손을 들어 올렸다.
투우! 투우! 투우! 투우!
파이어 볼, 아니 그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화염 구체가 손바닥에서부터 뿜어져 나가며, 하늘을 뒤덮었다. 괴조 두 마리가 그 공격을 맞고 추락하고 말았다.
“소화조 출발!”
이어서 한호와 플레이어들이 학교 안의 옥내소화전에서 호스를 끌고 나왔다. 25미터짜리 호스를 최대한 뽑아낸 뒤, 끝자락을 움켜쥐고 펜스 너머로 조준했다.
“켜요!”
“물 틀어!”
푸우우!
천 호스가 부풀어 오르며 물대포를 뿜었다. 그 물줄기는 플레시 골렘의 몸뚱이를 충분히 적신 뒤, 헬 무빙 아머를 향해 쏘아졌다.
그러나 그 주변 온도가 얼마나 높은지, 대부분의 물이 땅에 닿기도 전에 증발해버릴 정도였다.
“계속 쏴!”
“온도가 내려갈 거야!”
치이이이!
습식 사우나처럼, 일대가 수증기로 뒤덮였다.
“이제 직접 간다.”
성우가 옥상에서 뛰어내렸다. 그 뒤로 민석과 오른이가 차례차례 착지했다.
“이제 저 깡통 로봇을 깨부수면 되는 겁니까?”
“마음껏 하시면 됩니다.”
“좋습니다. 가자 꼬마야.”
딱딱―
사전 작업은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되었다. 이제 놈과 직접 맞붙을 차례였다.
- 당신의 권능 아래 망자가 권속(眷屬)됩니다.
- 당신의 권능 아래 망자가 권속(眷屬)됩니다.
- 당신의 권능 아래 망자가 권속(眷屬)됩니다.
운동장에 쌓인 시체 무더기 속에서 헬 하운드 3마리가 몸을 일으켰다. 3미터 크기의 괴수가 자세를 낮추며 일행에게 등을 내주었다.
“탑시다.”
일행은 ‘헬 하운드 스켈렐톤’에 올라탔다.
“가자!”
헬 하운드 스켈레톤이 땅을 박찼다. 엄청난 속도였다. 성우는 놈을 향해 달려가며 그림리퍼를 들어올렸다. 그의 좌우로 민석과 오른이가 나란히 섰다.
그리고 펜스를 뛰어 넘는 순간, 일행의 모습이 별안간 나타난 검은 연기 속으로 사라졌다.
- 주의! 해당 지역에 ‘대강령(大降靈)’이 시작됩니다.
- 주의! 해당 지역에 ‘죽음의 응답’이 시작됩니다.
이내 검은 연기 속에서 세 마리의 헬 하운드 스켈레톤이 튀어나오고, 그 뒤로 본 드레이크와 오우거 스켈레톤을 필두로 한 수십 마리의 언데드들이 쏟아져 나왔다. 하물며 하늘을 향해 본 와이번 두 마리가 비상했다.
쿵! 쿵! 쿵! 쿵!
단 한 마리의 적을 향해, 언데드 군단이 정면 돌격을 감행했다.
절그럭― 절그럭―
그리고 그 단 한 마리의 목표물, 헬 무빙 아머가 5미터 크기의 미늘창을 빗겨 든 채, 고고하게 다가왔다.
“소화기 준비!”
한편 오랜 만에 출전한 ‘수인 스켈레톤’들은 하나 같이 소화기를 들고 있었다. 녀석들은 성우의 명령과 동시에 안전핀을 뽑고 노즐을 들어올렸다.
“흩어져!”
놈과 맞붙기 직전, 성우가 소리쳤고, 오른쪽과 왼쪽으로 갈라지며, 놈을 원형으로 둘러싸는 포위망을 구성했다.
놈은 걸음을 멈추더니 주변을 한 차례 둘러보았다. 그리고는 천천히 왼 손을 들어올렸다. 화염 구체 공격이었다.
그 순간, 성우가 소리쳤다.
“분사!”
푸아아아아!
수인 스켈레톤들이 일제히 소화기를 분사했다. 방사 거리가 길지는 않지만, 소화제 분말이 사방으로 퍼지며 두터운 장막을 형성했다. 산소를 차단하여 ‘질식 작용’이 발생하게 만든 것이었다.
투우우우―
아니나 다를까, 장막을 뚫고 날아온 화염 구체는 확연하게 작아진 모습이었다. 지옥의 마법일지라도 자연 법칙을 완전히 무시하지는 못하는 듯 했다.
‘맹독 구름.’
여기에 더불어, 놈의 머리 위에 먹구름이 형성되며 빗방울을 뿌리기 시작했다.
치이! 치이이!
빗방울은 점점 더 거세져갔으며 놈의 주변 온도 역시 상당히 내려간 상태였다.
즉, 더 이상 접근이 불가능한 수준은 아니었다.
“공격!”
덜그럭! 덜그럭!
방패와 메이스를 든 트롤 스켈레톤들이 선두로 나갔다. 판금 갑옷을 깨부술 수 있는 시너지를 두른 녀석들이었다.
부우―웅!
그러나 사정거리 안으로 들어가기도 전, 놈이 미늘창을 횡으로 휘둘렀다. 그 한 방에 5마리의 트롤 스켈레톤이 블록 장난감처럼 으스러졌다.
엄청난 데미지였다. 그와 동시에 화염이 일어나며 뒤이어 달려오던 구울 무리까지 휩쓸어버렸다.
단 한 번의 공격에 십여 마리가 쓰러졌다.
‘뼈 갑옷에 뼈 방패까지 들었는데 한 방이라고? 위험하다.’
그럼에도 성우는 머뭇거리지 않았고, 오히려 놈이 미늘창을 휘두르는 틈을 노렸다.
쩡!
놈을 스쳐지나가며 오른쪽 어깨를 내리찍었다. 그리고 순식간에 미늘창 사거리 밖으로 빠져나갔다.
그리고 놈이 성우를 돌아보는 순간, 반대쪽에서 민석이 달려 들어가 놈의 등을 후려치고 지나갔다. 이어서 오른이가 옆구리 부근을 스쳐지나가며 핸드 캐논을 명중시켰다.
그으으!
유효타가 연달아 들어가자 그 육중한 몸뚱이가 휘청거렸다.
쩌적― 쩌적―
그리고 그 사이, 반 토막 났던 트롤 스켈레톤들이 완전히 재생 됐다. 제 아무리 데미지가 높다고 한들, 죽지 않으면 그만이었다. 트롤 스켈레톤들이 다시 진격했다.
푸수우―
놈의 투구에서 긴 한숨처럼, 회색 연기가 뿜어져 올랐다. 마치 심기일전하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놈은 미늘창을 고쳐 잡더니 선두로 달려드는 트롤 스켈레톤의 배를 푹 찍어, 그대로 들어올렸다.
콰가가가!
그 순간, 미늘창에서 화염이 소용돌이치더니 트롤 스켈레톤을 통째로 집어삼켰다. 그리고 마치 믹서처럼, 그 굵은 뼈대를 녹이는 동시에 잘게 갈아버렸다. 말 그대로 잿더미가 되어 사라져버린 것이었다.
‘저건 위험하다.’
지금까지 어떤 공격을 받아도 재생되었지만, 먼지가 되어 사라질 정도의 데미지라면 말 그대로 ‘복구 불가’였다.
‘중요한 언데드를 잃지 않게 조심해야 된다.’
성우는 그림자 안에 멈춰 서서 리피팅 크로스보우를 들어올렸다.
퉁! 퉁! 퉁! 퉁! 퉁!
강화된 화살이 놈의 뒤통수를 때려댔고, 놈이 돌아서며 왼 손을 들어올렸다. 6발의 화염 구체가 성우를 향해 쏟아졌다. 하지만 다음 순간, 성우는 그곳에 없었다.
다른 그림자로 옮겨 간 상태였다. 놈이 두리번거리며 성우의 모습을 찾기 시작했다.
쿵! 쿵! 쿵!
바로 그 틈을 노리고 오우거 스켈레톤이 달려들었다. 녀석은 주먹을 내지르며 팔찌의 전격 스킬을 사용했다.
파지지지! 콰―광!
푸른색 번개가 쏘아지며 헬 무빙 아머를 강타했다. 건물을 통째로 날려버릴 정도로 강력한 공격이었거늘, 놈의 무릎을 꿇게 하는 정도에 그쳤다.
그러나 그 정도면 충분했다.
철퍽― 철퍽―
놈의 움직임이 잠시 봉쇄된 사이, 두 마리의 플래시 골렘이 달려들었다. 그리고 그 주변으로 25마리의 좀비가 따라붙었다.
우어어!
“묶어!”
소화전의 물줄기를 통해 충분히 적셔 둔, 덩치 큰 플레시 골렘 두 마리가 그 출렁이는 살덩이로 헬 무빙 아머를 찍어 눌렀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25마리의 좀비들까지 기어 들어가 거머리처럼 들러붙었다.
기기기긱!
말 그대로 움직이지 못하게 몸으로 짓눌러 버린 것이다.
공격은 트롤 스켈레톤의 몫이었다. 놈들은 플레시 골렘의 살 틈 사이로 메이스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쩡! 쩡! 쩡! 쩡!
요란한 소음과 함께 그 거대한 갑옷이 찌그러지기 시작했다.
‘데미지가 충분하지 않다.’
그러나 놈은 좀처럼 쓰러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열기에 견디지 못한 좀비들이 쓰러졌다가 되살아나기를 반복할 뿐이었기에, 금방이라도 압박을 풀고 뛰쳐나올 것만 같았다.
‘압박이 풀려선 안 된다. 싸움이 훨씬 길어지게 될 거야. 지금 승부를 봐야 돼.’
성우는 이 싸움이 경쟁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다.
‘더 빨라야 된다. 전설 등급 아이템이 걸렸다.’
그렇기에 강수를 두기로 했다.
그는 그림리퍼를 소환 해제했다.
으어! 으어어······.
그러자 죽어나가던 좀비들이 더 이상 살아나지 않았다. 하물며 백여 구의 시체로 이루어진 거대한 플레시 골렘까지 쓰러지며 시체무더기로 전락했다. 달리 표현하자면······.
놈의 몸 주변에 시체가 산처럼 쌓였다.
더 나아가, 폭탄이 무더기로 생겼다.
“······폭발.”
콰―아앙!
엄청난 폭발이 단 한 지점에서 치솟았다. 열기가 아니라, 충격이 갑옷을 우그러뜨렸다.
주변 건물의 외벽이 뜯겨져 나가고, 창문이 쏟아져 내렸다. 트롤 스켈레톤이 수 미터를 튕겨져 나갔다.
쿠구구구―
동쪽 하늘에서 요란하게 울리던 번개와 견줄 정도로, 근방의 모든 이에게 보였을 정도로 거대한 폭발이었다.
제 아무리 지옥에서 온 갑옷이라고 할지라도, 그 정도로 한 곳에 집중된 폭발은 견딜 수 없었다.
이번에도 한 방으로 끝이었다.
- 퀘스트 보스 몬스터 ‘헬 무빙 아머-2’를 사냥하여 4,500,000골드를 얻었습니다.
- 권장 레벨 미만으로 공략하여 추가 보상이 주어집니다. (B급 경험치 카드)
- 레벨 업 하셨습니다. (LV. 20)
- 20레벨 달성으로 모든 능력치가 증가합니다. (+2)
- ‘지옥 격퇴자’ 칭호를 획득했습니다.
* 민첩성 수치 상승 (+2)
* 저주‧마법 면역력 상승 (+10%)
엄청난 보상에 이어 칭호까지 얻었다.
‘잠깐만.’
그런데 지금 이 상황, 뭔가 이상했다.
“끝난 겁니까?
민석이 물었다. 그게 문제였다. 이대로 끝나면 안 됐다. 이 퀘스트는 분명 두 곳을 모두 공략해야만 종료된다고 했으니 말이다.
그러니 성우가 헬 무빙 아머를 잡는 순간 끝나면 안 됐다. 그 뜻은······.
- 안녕! 정말 아까웠어! 정확히 118초 차이였어!
안성 쪽의 헬 무빙 아머가 먼저 죽었다는 의미였다. 요정 통신망 너머에서 나비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졌다.’
간발의 차이였지만, 역시 랭킹 1위는 달랐다. 대체 어떤 직업을 가졌으며 어떤 능력을 쓰는 지는 알 수 없었지만 분명한 강자였다.
그때였다.
“······윽, 뭐지?”
성우는 별안간 품속에서 무언가 꿈틀거리는 느낌을 받았고, 그 원인을 찾아서 끄집어냈다.
“······이건?”
드레이크를 잡고 ‘집단 퀘스트’를 완료하며 얻었던 신화 등급의 아이템, ‘세계수의 씨앗’이 청명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리고 놀라운 메시지가 떠올랐다.
- 특정 조건 달성(‘지옥 격퇴자’ 칭호 획득)으로 세계수의 씨앗을 심을 수 있는 조건을 만족했습니다.
* 당신은 ‘수호자’로서 세계수를 키워낼 수 있으며, 세계수는 당신의 영향을 받으며 자라날 것입니다.
‘세계수를 심을 수 있다고?’
비록 졌지만, 어마어마한 기회를 얻는 듯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