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4
30) 평택, 지옥, 악마 – 1
본 와이번의 상반신이 도로 한가운데 처박혔다. 그 위에 타고 있던 일행들은 엄청난 충격에 몸을 가눌 수 없었다.
“윽!”
하지만 회복할 시간은 없었다.
“몰려와요!”
지수가 비틀거리며 뼈 무더기 속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녀는 곧장 ‘진은도’를 빼들며 주변을 경계했다.
컹! 컹!
이내 골목에서 헬 하운드가 쏟아져 나왔다. 붉은 눈동자의 검은 개였다. 입에는 거품 대신 시뻘건 불꽃을 머금고 있었으며 콧구멍에서 검은 연기가 흘러나왔다.
지수는 앞으로 나가며 칼을 휘둘렀다. ‘참격’ 스킬의 검기가 쏘아지며 선두의 헬 하운드를 베었다.
캥!
하지만 그 검기는 헬 하운드의 목덜미에 깊은 상처를 내었을 뿐, 놈은 여전히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
퉁! 퉁! 퉁! 퉁! 퉁!
그때, 그녀의 등 뒤에서 화살이 뿜어져 나와 헬 하운드의 온몸에 마구잡이로 처박혔고, 놈의 몸이 기울어지더니 불타는 가로수에 부딪쳤다.
- ‘헬 하운드’를 사냥하여 10,550골드를 얻었습니다.
성우의 리피팅 크로스보우였다. 비록 새롭게 추가된 ‘발화 화살’ 기능은 통하지 않았지만, 발사 소리부터 달라질 만큼 데미지가 강화된 상태였다. 저런 괴물을 저지하기에도 충분했다.
컹! 컹!
하지만 고작 한 마리를 쓰러뜨렸을 뿐이었다. 뒤이어서 두 놈이 더 달려들었다.
“제가 왼쪽을 맡을게요!”
지수가 한 마리를 맡았다. 그리고 성우의 오른 쪽에 검은 연기가 응집하더니 데스 나이트, 민석이 나타났다. 그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대검을 치켜세웠다.
“이게 무슨······ 항상 긴장하고 있어야겠군요.”
지수는 앞으로 나아가며, 상대적으로 얇은 발목을 향해 검기를 발사했다. 헬 하운드의 앞다리가 절단 되며 몸이 기울어졌다. 그 순간 그녀의 몸이 사라졌다.
푹!
그녀는 헬 하운드의 정면에 나타났다. ‘발걸음 추적’ 스킬이었다. 동시에 놈의 목덜미에 칼날을 박아 넣었다.
“지수 씨는 훨씬 강해졌군요. 저도 분발해야겠습니다!”
민석은 그녀의 모습을 보며 감탄하더니 왼 손을 뻗어서 사슬을 뿜어냈다.
촤르르!
사슬이 헬 하운드의 목을 휘감는 순간, 어깨를 크게 돌리며 잡아 끌었다. 헬 하운드의 몸이 번쩍 치솟더니 민석을 향해 날아왔다.
퍼석!
공중에 뜬 상태로 대검에 목이 날아갔다.
퉁! 퉁! 퉁! 퉁! 퉁!
성우는 그 사이에 뒤쪽에서 달려드는 헬 하운드를 향해 리피팅 크로스보우를 난사했다. 하지만 사방에서 몰려오는 헬 하운드를 모두 상대하는 건 무리였다. 포위망이 빠르게 좁혀졌다.
“빠르게 탈출해야 됩니다. 곧 그 거인이 올 겁니다.”
더 많은 스켈레톤을 소환하지 않은 이유는 그것 때문이었다. 여기서 항전하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불의 거인의 눈에 들어오는 순간, 불타는 콘크리트 더미를 뒤집어쓰고 전멸할 테니 말이다.
‘여기서 각성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해서 그림리퍼를 꺼낼 수는 없었다. 진짜 싸움은 ‘헬 무빙 아머’를 마주했을 때부터 시작된다. 그림리퍼의 사용 가능 시간을 아껴야만 했다.
“왼쪽 골목이 그나마 열렸어요!”
지수가 소리쳤다. 성우가 크로스보우를 난사하며 고개를 끄덕였고, 그녀가 앞장서서 골목으로 들어가며 퇴로를 확보했다. 민석은 뼈 무더기 속에서 한호를 끄집어내 어깨에 들쳐 멨다. 추락의 충격으로 기절한 상태였다.
“자, 갑시다!”
쿠―웅―
이내 오른쪽 건물 너머에서 엄청난 진동이 울리며 일대의 하늘이 주황빛으로 물들었다. 옥상 위로 이글거리는 불길이 보였다.
‘불의 거인’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었다. 놈은 본 와이번을 단숨에 작살낼 정도로 강력한 존재였다.
‘저걸 어떻게 잡아야 될까?’
언젠가 저 놈을 상대해야만 할 테지만, 당장은 안전 곳으로 대피해서 숨을 돌릴 필요가 있었다.
컹! 컹!
일행은 몰려오는 헬 하운드를 견제하며 왼쪽 골목으로 들어가기 시작했고, 성우는 마지막까지 리피팅 크로스보우를 난사하다가 몸을 돌렸다.
쿵―
성우는 따라 붙는 헬 하운드들을 떼어 내기 위해서 ‘트롤 스켈레톤’ 한 마리를 소환하여 골목을 틀어막았다.
본 와이번도 그렇고, 다시 구하기 어려운 재료였지만 과감하게 버릴 줄도 알아야 했다.
“이틈에 빠져나갑시다!”
컹! 컹!
헬 하운드가 좁은 골목으로 몰려 들며 트롤 스켈레톤과 충돌했다. 뼈 갑옷까지 두른 육중한 몸뚱이가 잠시 견디는 듯 싶었지만······.
꽈르르······.
이내 화염에 휩싸이며 뭉그러졌다. 헬 하운드 4마리가 동시에 주둥이를 벌렸고, 거친 화염이 뿜어져 나오며 트롤 스켈레톤을 통째로 녹여 버린 것이다.
“벌써 뚫렸어요!”
헬 하운드의 화력은 생각보다 훨씬 더 강력했다. 성우는 즉시 트롤 스켈레톤 두 마리를 더 소환하여 시간을 끌게 했다.
“대로로 달려!”
일행은 큰 길로 나와 달리기 시작했다.
“멈춰!”
민석이 외쳤다. 정면, 허공에 빨간색 구슬이 하나 떠올라 있었다.
후우우―
그리고 그 물체를 중심으로 어디선가 불똥이 하나 둘 날아들더니, 이내 화염을 실은 바람이 흘러들어와 한 곳으로 응집했다.
그러자 거대한 화염 토네이도가 일어났다.
쿠구― 쿠구구―
불의 거인이 파편화 되어 날아온 것이다.
“음, 우리 이미······ 찍힌 것 같은데?”
민석이 대검을 지켜들고 정면을 막아섰다. 하지만 제 아무리 데스 나이트라고 한들, 저런 거인을 막아낼 수는 없었다.
“싸워야겠군요.”
조금 더 안전을 확보한 뒤, 신중하게 전투를 한다는 계획을 수정해야 될 것 같았다. 여기서 전전긍긍한다면 ‘헬 무빙 아머’를 마주하기도 전에 상황이 끝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어쩔 수 없이 여기에 투자 좀 해야겠어.”
성우는 언데드를 소환했다. 트롤 스켈레톤과 구울들이 나타나 일행의 주변을 에워쌌다.
쿵― 쿵―
제 모습을 되찾은 불의 거인이 대로를 따라 전진해왔다.
치이이―
녀석의 발길이 아스팔트를 태우며 유독가스를 발생시켰다. 그리고 부피가 큰 몸뚱이가 일정한 형체가 없이 일렁거리며 주변의 건물들을 집어 삼키기 시작했다.
“으아아!”
“부, 불이 다!”
그리고 그 안에서 비명이 들렸다.
“저기 안에 사람이 있어요.”
예상하지 못한 장면이었다. 아무래도 추락 전, 하늘에서 봤던 플레이어들인 것 같았다.
건물 안에 숨어 있던 모양이었는데, 성우 일행이 불의 거인을 끌고 오는 바람에 덩달아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저 사람들······ 저 대로면 다 타 죽을 거예요.”
지수는 책임을 숨기지 않았다. 그러나 현재로써 그들을 구할 여력은 없었다.
“아빠! 아빠!”
“얘들아 뒤로 물러나!”
건물 안에서 아이들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성우의 눈썹이 꿈틀 거렸다.
지금 이 순간, 어딘가 익숙했다.
불에 타는 건물, 비명 지르는 사람, 그 앞에 서 있는 자신까지······ 본 적 있는 장면이었다.
불길을 앞에 두고 머뭇거리다가 결국 포기했던 순간, 성우의 가족들이 죽던 날의 장면과 비슷했다.
오래된 기억이 스멀스멀 피어나 신경을 자극했다.
그때는 너무나 약했기에, 불길에 뛰어 들어갈 용기가 없었기에 성우 홀로 살아남았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모두 물러서요.”
불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
성우는 로브의 후드를 뒤집어썼다. 그리고 오른 손을 뻗었다. 그곳에서 그림리퍼가 나타났다.
- 사신의 낫 ‘그림리퍼’를 소환합니다.
- 그림리퍼 유지 시간 (00:59:59)
“제 뒤를 막아주세요.”
그의 몸을 녹색 불꽃이 갉아먹기 시작했다. 새하얀 뼈가 드러나며 녹색 안광이 점등했다.
- ‘리치’의 힘을 얻습니다.
* 최대 권속 수가 (+50)만큼 증가합니다.
* 모든 능력치가 (+10)만큼 상승합니다.
* 인근의 파괴된 언데드를 ‘최대 권속 수만큼 무한정’ 부활‧재생시킬 수 있습니다.
“성우 씨, 괜찮겠어요?”
이들이 성우를 믿지 못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눈앞에서 다가오는 저 괴물은 지금까지의 적수와 사뭇 다르다.
무려 27레벨 권장의 몬스터다. 그렇기에 상대하기를 주저하고 도망치지 않았던가?
“한 번 확인해봐야죠.”
지수는 더 이상 물을 틈 없이 후방으로 돌아섰다. 오른쪽의 골목에서 헬 하운드가, 말 그대로 개떼처럼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투―웅! 투―웅!
트롤 스켈레톤들이 거대한 새총을 마구잡이로 발사했다. 주먹만 한 돌멩이가 총알처럼 쏘아져 선두의 헬 하운드를 고꾸라뜨렸다.
그 뒤로 구울들이 달려 들어가 이리저리 뒤엉키며 개싸움을 벌이기 시작했다.
푸화아!
헬 하운드들이 내뱉은 화염은 강력했지만, 이제는 치명적이지 않았다. 숯덩이가 된 구울들의 몸뚱이가 순식간에 회복되더니, 다시 일어나 헬 하운드의 머리를 도려냈다.
“이 정도라면 어느 정도 막을 수 있겠어요.”
‘사자의 권역’ 그림 리퍼의 효과가 지속되는 한, 소모전은 성우의 영역이었다.
쿵― 쿵―
다만, 앞에서 다가오는 저 거인을 처리할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단순한 공세로는 안 된다.’
놈의 몸은 화염으로 이루어져 있으니 평범한 물리 공격은 통하지 않는다. 하물며 그 몸에 닿는 것만으로도 웬만한 대형 스켈레톤은 단숨에 녹여버릴 것이었다.
다만 단 한 곳, 머리 부분에는 어느 정도의 물리적인 형태가 존재했다. 돌로 만들어진 것 같은 두개골이었다.
‘딱 봐도 저길 공략해야 되군.’
모든 게임의 보스에게는 명확한 약점이 존재하는 법이다. 성우는 놈을 향해 걸어갔다.
“맹독 구름.”
그리고 새로 얻은 스킬을 시전했다.
쿠우우―
그러자 성우가 서 있는 곳의 하늘, 다소 낮은 고도에 먹구름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보라색과 녹색이 뒤섞인, 어딘가 꺼림칙한 형태였는데, 미니 게임 직후 얻은 ‘맹독 구름 제조’ 스킬이었다.
저런 거대한 불덩이에게 독 같은 게 먹힐지는 의문이었다. 하지만 독을 싣고 내려오는 게 빗물이라면, 불로 이루어진 놈을 성가시게 할 정도는 되지 않을까?
툭― 툭― 투둑―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성우는 손을 뻗어 구름의 위치를 조정했다.
치이이이!
놈의 머리 위, 빗방울이 조금씩 거세져 갔다. 비록 불을 꺼버릴 정도는 아니었지만, 온도를 낮추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데미지가 들어갔다. 불에게 온도는 심장박동이나 다름없었으니 말이다.
크아아!
놈이 중후한 비명을 지르며 옆에 있는 건물로 손을 뻗었다. 그리고 건물 외벽을 한 움큼 뜯어내더니 성우를 향해 집어던졌다.
‘저건 위험하다.’
그건, 흔히 말하는 ‘메테오’ 같은 장면이었다.
“조심해요!”
성우는 뼈 방패를 제조하며 자세를 낮췄다. 민석은 기절한 한호를 끌어안고 차 뒤로 숨었고, 지수는 모든 감각을 집중하여 피할 준비를 했다.
쾅! 콰과과과!
폭풍이 일대를 휩쓸고 지나갔다. 도로의 차들이 우그러지고 스켈레톤들이 줄줄이 박살났다. 하물며 가로수까지 산산조각 나며 쓰러졌다.
위잉! 위잉!
여기저기에서 자동차 경보음이 울렸고 인도 위의 소화전이 터지며 물줄기가 허공으로 뿜어져 오르는 등, 그야말로 난장판이 펼쳐졌다.
“으으 무슨······.”
차가운 물을 뒤집어 쓴 한호가 정신을 차렸다.
“뭐, 뭐야!”
“정신 차렸으면 칼 좀 던져.”
성우는 너덜너덜해진 뼈 방패를 내던지고 새로운 뼈 방패를 제조한 뒤, 불의 거인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갔다.
쏴아아아―
맹독 구름이 갈수록 강한 빗줄기를 퍼부어대자 놈의 머리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났다. 불길이 훨씬 약해진 게 느껴졌다.
‘머리다. 머리를 노리면 된다.’
그리기 위해서는 고개를 숙이게 만들어야 했다. 성우는 과감하게, 놈에게서부터 10미터 떨어진 곳까지 다가갔다.
쿵― 쿵―
놈이 허리를 굽히며 성우를 향해 손을 뻗었다. 성우는 피하지 않았다. 놈의 손바닥에서 불기둥이 터져 나오며 성우를 내리찍었다.
콰아앙!
“어어? 선배!”
그는 방패를 들어 올렸지만, 엄청난 크기의 불길의 그의 온몸을 통째로 집어삼켰다.
“······크윽!”
리치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고통이 밀려왔다. 바늘이 온몸을 찌르는 것 같은 통증이었다. 엄청난 굉음이 고막을 찢을 것처럼 두드렸다.
쿠구구―
어린 시절, 불이 무서웠다. 그리고 불을 증오했다. 불은 그의 모든 걸 앗아갔다. 그러나 이제는 아니다.
구우우······
성우의 몸을 짓이기던 불길이 가셨다. 그리고 숯덩이가 된 뼈 방패 뒤에서 성우가 꿈틀거렸다. 형체도 알아 볼 수 없게 타버렸어야 정상이었다.
그런데, 성우는 생각보다 멀쩡한 상태였다. 그는 이를 꽉 다문 채 참고 있던 숨을 내뱉었다.
“······나는 불 속에서 안 죽어.”
드레이크를 잡음으로써 ‘아마추어 용 사냥꾼’ 칭호를 획득하여 30%의 화염 면역력을 얻었다. 또한 ‘드레이크의 가죽’과 ‘그림자 왕의 로브’를 조합하여 30%의 화염 면역력을 추가로 얻었다.
현재 총 60%의 화염 면역력을 가지고 있다.
즉, 아무리 강력한 화염이라고 한들, 그에게는 절반의 데미지도 주지 못한다.
크르르?
불의 거인조차 눈앞에서 벌어진 현상에 의문을 품었다.
‘지금이다.’
그리고 성우가 이렇게 시선을 끌고 있는 사이, 불의 거인의 등 뒤로 무언가 접근했다.
그것은 8층 건물의 옥상에서 도약하여, 허리를 숙이고 있는 놈의 머리 위로 낙하하더니, 두개골을 움켜쥐고 바닥으로 내리찍었다.
콰―앙!
오우거 스켈레톤이었다. 성우는 그 거구를 건물 옥상에 미리 소환해두었던 것이다. 불의 거인의 크기가 엄청나지만 오우거 스켈레톤도 만만치 않았다.
그렇게 불의 거인의 머리통이 아스팔트 위에 내리꽂혔다. 그러나 엄청난 열기 때문에 오우거 스켈레톤의 몸뚱이가 통째로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지금뿐이다. 시간이 얼마 없다.’
성우는 바닥을 박차고 나가며 허리춤에서 ‘핸드 캐논’을 꺼냈다. 그리고 놈의 이마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쾅!
폭음과 함께 두개골에 균열이 발생했다. 하지만 한 방으로는 그 두꺼운 머리통을 쪼갤 수 없었다.
“오른아!”
딱!
동시에 오른이가 성우의 오른쪽으로 튀어나갔다. 녀석은 칼을 내던지고는 핸드 캐논을 꺼냈다.
치이이!
가까이 다가갈수록 뼈가 부글부글 끓어오르며 녹아내렸지만, 녀석은 끝내 그 화염 안으로 비집고 들어갔다. 그리고 성우가 만들어 놓은 균열 위에 총구를 들이밀고, 그대로 방아쇠를 당겼다.
쾅!
터졌다. 놈의 이마가 도자기처럼 와르르 부서져 내렸다. 동시에 오우거 스켈레톤의 양 팔이 열기를 버티지 못하고 으스러졌다.
구우우―
놈이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그러나 성우가 더 빨랐다.
콰드드득!
그림리퍼의 긴 칼날이 균열 사이에 박혔고, 성우가 힘을 주어 잡아 끌자 두개골이 그대로 이등분 되었다.
크아아아!
놈이 굉음을 지르며 앞으로 고꾸라졌다. 그리고 갈라진 두개골 사이로 무언가 보였다. 그건 붉은색 구슬이었다.
‘저거다.’
놈이 이곳에 등장할 때, 저 구슬이 먼저 날아오고 그걸 중심으로 불길이 뭉쳤던 게 떠올랐다.
“······큭!”
성우는 불길로 뛰어 들어가, 왼손을 뻗었다. 엄청난 열기가 온몸을 짓이겼지만 화염 면역력 덕분에 이겨낼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구슬을 움켜쥐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뽑아버렸다.
푸우우우!
놈의 육중한 몸뚱이가 단숨에 무너지며, 방대한 양의 화염과 열기가 사방으로 흩어졌다.
- ‘불의 거인’을 사냥하여 2,800,000골드를 얻었습니다.
눈앞에 존재하던 거대한 불길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어, 어······ 잡은 거예요? 저 꿈꾸고 있는 거 아니죠?”
한호는 여전히 정신을 못 차린 채 눈을 끔뻑이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반응은 한호뿐만이 아니었다.
지수도 성우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으며, 민석 역시 허탈하게 웃었다. 그리고 불타는 건물 안에서 탈출한 플레이어들 역시, 눈앞에서 벌어진 일이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 아 맞다! 이것도 깜빡했는데!
그때, 요정 통신망을 통해 나비의 음성이 전해졌다.
- 참고로 불의 거인 잡으려면 머리 안의 코어를 파괴해야 돼! 굉장히 까다로워서 강석도 고생하니까 조심해!
“알아.”
- 뭐? 네가 어떻게 알아?
“방금 그 머리를 뜯어봤거든.”
- 뭐? 벌써! 말도 안 돼! 거짓말!
가끔은 네크로맨서의 활약을 믿고 싶어 하지 않는 이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런 장면이 몇 번이고 반복 되면 결국 믿게 된다.
- 가, 강석! 얘들이 우리 보다 빠른 것 같은데?
그러나 아직 불은 꺼지지 않았다. 진짜 보스 몬스터는 따로 있었다.
성우는 그 불길 속으로 들어갈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