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네크로맨서-83화 (83/244)

# 83

29) 랭킹 1위 한강석 - 2

랭킹 1위 한강석, 나이는 삼십대 중후반 정도였으며, 건장한 체구에 귀티가 흐르는 남자였다.

‘신격’이라는 효과 때문이지 몰라도, 왠지 모르게 그의 머리 위에 후광이 떠 있는 느낌이었다. 알 수 없는 이질감과 신비함 경외심까지 뒤섞인, 이상한 감상이 들었다.

‘데미 갓이 대체 뭐지?’

직업인 걸까? 아니면 다른 무언가?

정훈은 두 사람을 소개시켜준 뒤 밖으로 나갔다. 강석이 성우와 단 둘이 이야기하고 싶어 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넓은 VIP라운지에는 성우와 강석, 그리고 페어리만이 남았다.

“콜라? 아니면 사이다? 내 집은 아니지만, 지금은 내가 전세 냈으니 내가 대접하지.”

강석이 바의 냉장고를 열었다.

“물이면 됩니다.”

“난 사이다!”

롤 케이크를 우물거리던 페어리가 소리쳤다. 강석은 말없이 물 한 병과 사이다를 꺼내더니, 에스프레스 잔에다가 사이다를 따랐다. 그리고 흔히 커피빨대라고 불리는 십 스틱(Sip stick)을 꽂아서 롤 케이크 옆에 올렸다.

“고마워!”

“조금만 먹어. 저번처럼 과식해서 날지도 못하지 말고.”

“이미 늦었어!”

강석이 성우와 마주 앉았다.

“한국 서버 최고의 스타 네크로맨서······.”

그가 물병을 따 성우에게 내밀었다. 셔츠 소매가 살짝 올라가며 손목의 팔찌가 드러났다.

검은색 금속 재질의 체인에 눈알 모양의 붉은색 보석이 반짝거렸다. 하물며 양손에 총 5개의 반지가 껴져 있었다. 하나 같이 높은 등급의 아이템이 분명했다.

무장을 하지 않고 있는 상태인데도 불구하고 장비 아이템 수준이 상당하는 걸 알 수 있었다.

“바쁜 와중에 이렇게 날 만나줘서 고맙군. 여의도 전투는 특히나 인상 깊게 봤어. 나비도 그 장면을 특히나 좋아해. 아, 나비는 쟤 이름이야.”

“이름 진짜 구려! 아직도 별로야! 근데 여의도는 진짜 대박이었어! 나중에 본 드레이크 태워주면 안 돼?”

성우는 작은 날개를 퍼덕이는 페어리, 나비를 바라보다가 강석에게 물었다.

“저거 아이템입니까?”

“뭐, 뭐? 아, 아이템? 설마 지금 나 말 한 거야?”

강석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맞아. 아이템이야. 다마고찌 같은 거 해봤어? 케이크랑 사이다 주면 행복도가 올라가고 그걸 보면서 뿌듯해하는 용도야. 우울증 예방에는 최고지.”

“야! 아, 아이템이라니! 너까지 그러면 안 되지! 나 없었으면 하루 종일 혼잣말만 해야 될 걸?”

“그러니까 우울증 예방에 좋다고 말했잖아?”

페어리는 그렇게 고래고래 소리치며 티스푼을 붕붕 휘둘렀지만, 그 작은 체구에서 나오는 목소리는 아무런 이목도 끌지 못했다.

“이 땅의 운명을 좌우할 일이 오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성우는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고 강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굉장히 심오한 주제이거늘, 그의 표정은 느긋하기만 했다. 그는 사이다 캔을 집어 들더니 고개를 돌려 나비를 바라보았다.

“그래, 어느 예언석 하나를 얻어서 그걸 보게 됐어. 배드엔딩-15였던 것 같아. 아, 예언석이 뭔지는 알지?”

성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배드엔딩이라 함은 이 땅의 최후를 뜻했다. 정훈이 보여주었던 ‘한국 서버 배드엔딩-2’는 여의도에서 자란 세계수가 폭주하여 한반도 전체를 잠식하는 장면이었다.

“웃기게도 어떤 예언석은 예언을 읽는 게, 그 예언의 시작점이기도 하더라고. 나는 그저 그 예언석을 발견했을 뿐인데, 그 예언이 실현되기 시작했지.”

강석이 사이다 캔을 내려놓으며 말을 이어갔다.

“지옥의 문이라는 던전이 열렸어. 적정 레벨 27에 파티 플레이 권장의 난이도였지. 적정 레벨 27? 솔직히 나는 문제없었어. 근데, 파티 플레이가 문제였지.”

이어서 강석은 익숙한 모양의 돌 하나를 꺼내놓았다. ‘예언석’이었다.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이게 빠르겠지?”

성우는 고개를 끄덕이고 예언석을 받아들었다. 역시나 영상이 재생되었다.

- ‘예언석(한국 서버 배드엔딩-15)’에 접촉하셨습니다.

온 세상이 어둠에 잠겼다.

어디선가 으스스한 속삭임이 같은 게 들려왔다. 노인과 여자, 아이의 목소리가 한데 뒤엉켜, 알아 들을 수 없는 울음 소리였다.

“······문이······ 열린다.”

어떤 단어가 귀에 들어오는 순간, 폐허가 된 도시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후우웅―

어딘지는 알 수 없었다. 그 사이에 형태를 알아 볼 수 없는 거대한 사체 한 구가 놓여 있었다. 대형 몬스터로 보였는데, 그 앞으로 누군가 나타났다.

“강석! 저기 봐! 예언석!”

“그래 나도 봤어.”

한강석과 페어리였다. 그들은 몬스터 몸속에서 무언가를 발견했다. 그리고 강석이 손을 뻗어 그 예언석을 집는 순간······.

- ‘지옥의 문(1층)’이 열립니다.

쩡―

예언석이 두 개로 분열 되며, 마치 폭죽처럼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서로 정반대 방향으로 날아갔다.

성우의 시점은 그 파편을 따라갔다. 그것은 한참을 날아 아주 먼 거리에 떨어졌다. 그리고 추락지점, 허공에 균열이 번져나가더니 이내 거대한 포탈이 열렸다.

‘지옥의 문이다.’

멀리 떨어진 두 곳에서 ‘지옥의 문(1층)’이 열린 것이었다. 그곳, 지옥 안에서 무언가 모습을 드러냈다.

절그럭― 절그럭―

엄청난 크기의 불타는 갑옷이었다. 짙은 회색의 판금 위에 온갖 기괴한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쿵― 쿵―

그리고 놈이 발을 내딛을 때마다 발자국 위로 화염 치솟았으며, 몸을 움직일 때마다 주변의 모든 것들이 그을리고 불타올랐다. 그저 존재함만으로도 이 세계를 서서히 죽이고 있는 것이었다.

하물며 그게 끝이 아니었다.

그르르―

마치 시체 속에서 구더기가 들끓듯, 잿더미 속에서 검은 개들이 몸을 털고 일어났다.

그 다음부터는 미래의 장면이 이어졌다. 두 마리의 ‘헬 무빙 아머’가 각기 다른 방향으로 진격하며 땅 위의 모든 걸 불태웠다.

그리고 잿더미 속에서 검은 개들이 깨어났다. 그것들의 숫자는 점점 더 늘어가며 전국 각지로 퍼져나갔다.

서울 전역이 부글부글 끓기 시작했으며 석촌 호수의 물이 완전히 말라버렸다. 수도권을 잡아 먹은 거대한 불길은 태백산맥을 기어올라, 동쪽 해안가까지 잠식했다.

그렇게 한국 서버 전체가 붉게 물들었다. 한반도의 하늘이 검은 연기로 뒤덮였다.

- 지옥에서 온 ‘헬 무빙 아머’를 막지 못할 시 일어나게 될 미래입니다.

* ‘헬 무빙 아머’는 시간이 지날수록 이 땅의 정기를 흡수하여 더 강한 화염을 방출하게 됩니다.

“다 봤나?”

“······네.”

“내 생각에 이 게임은 어떻게든 이 땅을 멸망시키고 싶어서 안달이 난 것 같아.”

그가 이어서 말하길,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강력한 몬스터가 쏟아져 나왔지만, 자신은 어렵지 않게 사냥할 수 있었다고 했다.

문제는 ‘파티 플레이’를 권장하는 이유였다. 영상 속에서 목격한 것처럼, 두 군데에서 나타난 ‘헬 무빙 아머’를 일정 시간 내에, 동시에 처리하지 않는 이상 끝없이 되살아나는 것이었다.

“그런데 나는 솔로플레이어거든.”

그렇기에 네크로맨서를 찾아왔다. 자신을 제외하고 적정 레벨 27의 난이도를 감당할 수 있는 플레이어는 네크로맨서 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그 두 마리가 꾸준히 북상하고 있어. 그리고 점점 더 강해지고 있지. 몇 주 뒷면 이곳, 영등포까지 당도할 거고 곧 한반도 전체로 펴져나갈 거야.”

생각만으로도 피곤해지는 소식이었다.

“그리고 내가 아니라면, 그놈을 잡을 수 있는 플레이어는 사실상 없다고 보면 돼. 뭐, 그냥 이 땅을 뜰 수도 있겠지만, 그 전에 내가 도와줄 테니······ 놈들이 더 크기 전에 처리하고 보상을 반으로 나누자고.”

그 말에, 성우는 고개를 들어 올려 강석을 마주보았다. 방금 전 말은 다소 황당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도와줘? 자기가 초래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건가?’

단지 예언석을 얻은 것만으로 그런 몬스터가 쏟아져 나왔으니, 분명 잘못을 묻기에는 다소 난해한 감이 있었다. 하지만 죄의식은 느끼지 못할지언정, 선심 쓰듯 도와준다는 표현은 좀 아니지 않은가?

‘이 남자, 애초에 부탁을 하러 나를 찾아 온 게 아니다.’

영등포의 위기를 볼모로 자신의 사냥을 도와줄 병력을 요구하러 온 것이었다. 신사적인 모습 안에 어떤 뻔뻔함이 들어 있었다.

하지만 이 순간, 신경 써야 되는 건 그의 태도 따위가 아니었다.

“······보상이 뭐죠?”

강석이 웃으면서 고개를 앞으로 내밀었다.

“전설 등급.”

무얼 얻을 수 있는가, 그게 중요했다. 전설 등급의 아이템을 확정적으로 얻을 수 있다면 분명 가치가 있었다. 하지만 성우는 갸웃했다.

“하나일 텐데요?”

강석의 미소가 더 짙어졌다.

“맞아. 둘 중에 한 명이 가지게 되겠지. 어쩔 수 없지만, 어때 나랑 한 번 게임 해보는 건?”

그가 손을 내밀었다.

그 순간 성우는 알 수 있었다. 이 남자는 이 지옥 같은 세계를 즐기고 있다는 걸 말이다.

“혹시 자신 없나?”

성우가 손을 맞잡았다.

그렇게 한국 서버 1등과 2등의 대결이 성사되었다.

***

“사실입니다. 광역 감시팀을 급히 파견해서 확인한 결과, 평택 지역과 안성 지역에서 화염을 몰고 다니는 몬스터 집단이 확인 되었습니다.”

민흠이 정훈과 성우에게 보고했다. 성우가 소식을 전한 이후, 4시간 만에 구체적인 사실이 확인이 되었다.

도적과 마법사들로 이루어진 ‘광역 감시팀’ 덕분이었는데, 성우가 정보기관의 필요성을 권유한 이후 급히 창설되어, 수도권은 모든 지역을 관할할 수 있는 조직으로 성장해 나가는 중이었다.

“보스 몬스터로는 ‘헬 무빙 아머’라는 4미터짜리 갑옷 형태의 몬스터입니다. 그리고 그 주변에 수십 마리의 ‘헬 하운드’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또한 지나가는 길을 불태워 잿더미로 만드는 게 특징인데, 아무래도 이게 큰 피해를 줄 것 같습니다.”

민흠의 등 뒤, 스크린에 마법 드론으로 촬영된 화면이 떠올랐다. 경기 남부의 도심으로 보였는데 대화재가 일어난 것처럼 어마어마한 불길이 일대를 뒤덮고 있었다.

정훈은 턱을 감싸 쥔 채 성우를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저게 지금 영등포를 향해 오고 있다는 뜻입니까?”

“영등포라고 특정할 수는 없지만, 북쪽으로 올라오고 있는 이상 충돌을 피할 수는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헬 무빙 아머’가 두 마리가 어떤 패턴으로 움직이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놈들이 진격하며 지상의 모든 걸 태워버린다는 게 문제였다. 영등포뿐만 아니라 수원에 위치한 마을까지 위험했다.

“중국 해적을 막았더니 이번에는 지옥에서 온 갑옷이라······. 성우 씨는 한강석의 제안에 승낙하신 겁니까?”

한강석은 성우에게 게임을 제안했다. 두 마리의 ‘헬 무빙 아머’를 두고, 누가 더 빨리 잡는지 해보자는 것이었다. 그리고 승자가 그 보상을 가지게 된다.

물론 정훈에게는 이런 식으로 설명하지 않았고 단순한 협력이라고 말했다.

“오늘 안에 떠나자고 하더군요. 더 늦으면 안 될 것 같긴 합니다. 그 자의 말 대로면, 시간이 지날수록 놈들의 힘이 강해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영등포에 도착할 때쯤이면 훨씬 강한 존재가 되어 있겠군요.”

“그럴 겁니다. 그러니 그 전에, 최대한 빨리 처리해야죠. 아, 혹시 모르니 수원에 있는 플레이어들을 대피시킬 수 있게 조치 좀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물론입니다. 그런 일은 제가 도와드려야죠.”

사실 정훈은 네크로맨서에게 의지하고 뒷수습만 해야 하는 상황이 답답하기만 했다. 그러나 이 역시도 대의를 위해서 참고 견뎌야하는 과정이라고 여겼다.

‘모든 걸 떠나서 연합 창설이 우선이다. 조직이 마련되면 상황이 바뀔 거다.’

이러한 난국 속, 네크로맨서는 연합의 창설을 위한 방파제나 다름없었다. 그가 없었으면 정훈이 목적을 이루는 시간이 훨씬 지연 됐을 것이었다.

‘그렇기에 지금은 성우 씨를 지원하는 게 정답이다.’

그때, 문이 열리며 크루세이더 대원 한 명이 들어왔다. 광역 감시팀에서 새로운 정보를 전해온 것이었다. 민흠이 그 자료를 확인했다.

“그것들의 이동 경로가 파악 되었습니다. 역시나 플레이어 그룹이 있는 곳을 파괴하며 움직이고 있습니다.”

말 그대로 인간 사냥을 하며 북쪽으로 올라오는 중이었다. 이로써 수원 마을이 위험한 상태라는 건 확실해졌다.

“정훈 씨, 만약을 대비해야 됩니다.”

“실패할 경우 강화도, 강화도로 대피할 계획을 마련하겠습니다.”

성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랭킹 1위와 2위가 실패할 경우, 그 괴물들을 막아낼 방법은 없다고 봐야 했다.

그렇기에 만약을 위해서 대피 계획을 세워야했는데, 바다 건너의 강화도는 좋은 선택으로 보였다. 정훈은 이미 그 부분까지 고민해 놓은 상태였다.

“······그리고 슬슬 기생충들을 청산할 때도 온 것 같습니다. 연합에 관심 있는 척하면서 피를 빨아 먹고 있는 족속들을 과감하게 끊어야 할 때를 재고 있었는데, 바로 지금인 것 같네요.”

성우가 보기에 ‘재건 동맹’이라는 집단을 의미하는 것처럼 보였다.

외부에서 비롯된 위기는 내부의 혼란을 청산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이 사건이 끝나면 연합이 완성될 겁니다.”

지옥 같은 게임에 대항하는 거대한 조직의 탄생, 머지않았다.

***

성우는 지수와 한호와 께 VIP 라운지로 들어갔다. 강석 역시 떠날 채비를 끝내둔 상태였다.

그는 흑색의 ‘하드 레더 아머(hard leather armour)’를 입고 거대한 목조 지팡이를 들고 있었다. 지팡이의 헤드 부분은 매 모양이었는데, 거대한 부리가 툭 튀어나와 있어서 둔기 역할을 하는 것 같기도 했다.

그는 성우 일행을 보더니 눈썹을 치켜세웠다.

“응? 혼자 가려는 게 아니었나? 진지하게 조언하는데 네 동료들, 죽을 수도 있어.”

그 말에 한호가 당황하며 성우를 바라보았다.

“그, 그 정도예요?”

반면 지수는 당당했다.

“언제나 죽을 가능성이 높았어요. 그때마다 살아남아서 지금 살아남을 수 있는 가능성이 올라간 거예요.”

강석이 피식 웃었다.

“좋아, 그렇다면 지금 당장 텔레포트 마법을 통해서 오산으로 이동할 거야. 나비가 텔레포트 포인트를 지정해뒀거든요. 나비, 인사해.”

“내가 나비야!”

강석의 오른 쪽 어깨에서 파란 머리의 페어리, 나비가 나타났다. 한호와 지수는 신기한 눈치였다. 특히 한호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손을 흔들었다.

“오? 안녕 나비?”

그러나 나비는 쀼루퉁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흥! 꺼져!”

“어? 뭐야? 대체 왜······.”

“구려!”

“대체 뭐, 뭐가!”

뭐가 구린지는 말해주지 않았다.

“자, 바로 이동하자.”

“좋아!”

강석의 말에 나비가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황금색 가루를 사방으로 흩뿌리더니 자그마한 양 손을 머리 위로 뻗었다.

“간다!”

- 지정된 위치로 ‘텔레포트’합니다. (지정 번호 3번)

우우웅―

“어?”

다음 순간, 그들은 오산역 철도 위에 서 있었다. 영등포에서 오산역까지 단숨에 이동한 것이었다.

“우, 우와 대박······.”

한호는 입을 벌린 채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성우 역시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이템이 좋군요.”

“맞아. 밥 먹이면 행복해 하는 거 다음으로 좋아하는 기능이야.”

“뭐! 다 들었어!”

“자자, 아무튼 너희들은 저쪽, 평택 쪽으로 이동해. 내가 안성 쪽을 맡을 테니까. 우리는 조금 더 가까운 거리에 텔레포트 포인트가 하나 더 있어서 거기로 이동할 거야.”

그는 그렇게 말하며 무언가를 내밀었다. 핑크색 꽃잎처럼 보이는 물건이었다.

“이것도 나비의 스킬 중 하나야. 귀 근처에 붙이고 있으면 실시간으로 통신할 수 있어.”

“떼면 안 돼! 떼면 사라져!”

성우는 꽃잎을 받아들었다. 그리고 귀 근처에 가져다대자 자동으로 달라붙었다.

- ‘요정 통신망’에 연결됩니다.

“연결 됐다!”

“그럼, 잘 해보라고.”

그는 그렇게 말하더니, 철도 위에 지팡이를 내리쳤다. 그와 동시에 그의 몸을 밝은 빛이 뒤덮었다.

“······.”

일행은 철도 위에 덩그러니 서서 강석이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았다.

“우, 우와······. 랭킹 1위는 뭐가 달라도 다르네요? 머, 멋있다! 물론, 웬 싸가지 없는 나방 한 마리 빼고!”

한호도 꽤나 뒤끝이 있는 편이었다.

“제가 볼 때, 옆에 데리고 다니는 건 선배가 한 수 위에요. 역시 오른이가 최고라니까?”

성우는 말없이 ‘본 와이번’을 소환했다. 이제는 하늘을 날아 이동해야 될 시간이었다. 그러자 한호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아, 이건 확실히 선배가 한 수 아래······. 벌써 텔레포트가 그립다.”

본 와이번에 올라탄 일행은 곧장 평택 방향으로 날아갔다. 이내 저 멀리, 도심지에 화염이 치솟는 게 보였다.

- 나야, 나비! 잘 들리지?

요정 통신망을 통해서 나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잘 들려.”

- 당연하지! 누구 마법인데!

그렇게 도심지 외곽으로 진입했을 때였다.

“성우 씨! 오른쪽 큰 건물 아래요!”

지수가 소리쳤다. 성우가 내려다보니 5층짜리 건물 근처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보였다.

총 7명이었으며, 그들이 달려가는 길 끝자락에 시동이 걸린 버스가 보였다. 안에는 아이들과 여자들이 타고 있었다. 불길을 피해서 북쪽으로 피난하고 있는 듯 했다.

- 아 맞다! 깜빡하고 말 못한 게 있는데!

“저 사람들, 헬 하운드한테 쫓기고 있어요!”

그리고 플레이어들의 뒤로 3미터 크기의 검은 개들이 달려들고 이었다.

잿더미 속에서 태어나는 지옥의 파수꾼, ‘헬 하운드’였다. 그 괴물은 한 번의 도약만으로도 수 미터를 껑충 날아 거리를 좁혔다. 플레이어들은 이미 지친 상태였고, 곧 따라 잡히고 말 것처럼 보였다.

- 그 갑옷이 ‘불의 거인’을 소환해서 막! 불덩이를 집어던지니까 하늘 날아갈 때 조심하라고!

“어어? 선배! 저기!”

이번에는 한호의 외침이었다. 그리고 그의 검지가 향한 곳, 불타오르는 건물 사이, 불길이 수직으로 치솟았다. 그러더니 소용돌이치며 어떤 형태를 만들어내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후우우―

소용돌이가 가셨다.

“저, 저게 뭐야!”

그 자리에서 검은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며, 거대한 손이 치솟더니 7층 옥상을 짚었다. 그리고 육중한 몸을 일으켰다. 20미터에 이르는 ‘불의 거인’이었다.

크르르―

놈의 불타는 눈동자가, 저공비행을 하고 있던 본 와이번을 향했다. 너무 가까웠다. 성우는 급히 방향을 틀었다.

꽈득!

그 순간, 놈은 건물의 옥상을 잡아 뜯어내더니, 본 와이번을 향해 집어던졌다. 화염에 휩싸인 콘크리트 덩어리가 엄청난 속도로 날아왔다.

피할 수 없었다.

“꽉 잡아!”

퍼―억! 쿠구구!

불덩이가 본 와이번의 배를 강타했다. 본 와이번의 몸에 균열이 생기며 이등분으로 갈라져버렸다. 그 파편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일행은 거대한 뼈에 매달린 채 지상으로 추락했다. 가로수, 건물, 차량 할 것 없이, 사방이 불길에 휩싸인 지옥 같은 풍경 한 가운데였다.

“성우 씨, 아래를 봐요!”

그리고 추락하는 그들을 향해, 수십 마리의 헬 하운드가, 마치 쥐떼처럼, 골목을 따라서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추락한다!”

불지옥 한 가운데 떨어졌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