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1
28) 강화도, 데스 매치 – 5
해적단의 기함 역할을 하는 컨테이너선은 강화도 연안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미니 게임 때 대부분의 병력이 어선을 통해 상륙했지만, 기함을 지키는 당직병의 숫자도 적지 않아 보였다.
“놈들이 속도를 내기 시작했어요!”
혜연이 소리쳤다. 놈들이 성우의 본 와이번을 발견했는지 속도를 올려 섬의 북쪽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성우의 눈에 띄고 싶지 않았겠지만, 하늘 위로 날아오르면 그 거대한 배가 보이지 않을 리 없었다. 그리고 미니 게임이 끝나기까지 무려 6시간이 남았다.
말 그대로 독 안에 든 쥐다.
성우의 본 와이번들이 지근거리까지 접근하자 곧장 방어막을 전개했다. 넓은 면적의 반구형의 실드가 마치 우산처럼, 컨테이너서 위에 씌어졌다. 저런 형태라면 공중에서는 침투할 수 없다.
푸아아!
하지만 반구형의 방어막 아래에서 치고 들어간다면 말이 달라진다. 물보라가 치솟으며 거대한 바다뱀이 갑판 위로 대가리를 들이밀었다.
“으아아!”
“시 서펜트다!”
몰 길이만 20미터에 달하는 괴물, ‘시 서펜트’였다. 그런데 그 몸뚱이의 형태가 어딘가 이상했다.
단단한 비늘이 몸 전반을 덮고 있었지만, 군데군데 뼈가 드러나 있었다. 결정적으로 거대한 대가리에서 녹색 안광이 피어올랐다.
“어, 언데드?”
주인이 존재하는 괴물이었다.
놈이 배를 기어올라 몸을 뒤흔들어대자, 갑판 위에 선 채, 방어막에 마나를 공급하고 있던 마법사들이 그 몸에 짓눌리고, 휩쓸려 갑판 밖으로 떨어졌다.
“으아아!”
“막아! 괴물을 밀어내!”
그러나 그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성우 역시 저런 괴물을 잡기 위해 적지 않은 노력을 기울여야 했으니 말이다.
‘사냥만 1시간이 걸렸다.’
해상 몬스터를 얻기 위해서 2시간이라는 시간 동안, 강화도 곳곳의 해역을 헤매며 미끼를 뿌렸다.
그 결과 ‘어린 시 서펜트’를 한 마리를 발견할 수 있었는데, 놈을 사냥하기까지 무려 1시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바다 속에서 끄집어내 데미지를 넣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어렵사리 얻은 만큼 그 결과물은 만족스러웠다. 놈의 거대한 몸뚱이가 컨테이너선의 갑판을 완전히 장악했다.
“방어막이 깜빡거려요!”
그리고 ‘대규모 방어막 주문’은 마나 공급을 저지하는 것만으로도 파괴할 수 있었다.
혜연의 말처럼 거대한 크기의 방어막이 깜빡거리기 시작하더니, 이내 형체를 잃어버렸다.
“내려가자!”
성우는 그 틈에 갑판 위에 착륙했다.
사실상 게임 오버였다.
***
컨테이너선의 잔당을 처리한 뒤, 한호와 지수가 합류하여 컨테이너선 내부를 탐색하기 시작했다.
“와······. 선배 이것 보세요.”
이내 한호가 무언가를 가지고 나왔다. 노트북만한 크기의 검은 박스였다.
[아이템 정보]
- 이름 : 충전기(특대)
- 등급 : 희귀
- 분류 : 기타
- 효과 : 전류를 공급하거나 배터리를 충전합니다. (남은 용량 : 69%)
“엔진룸에 붙어 있던 건데, 이 작은 걸로 이 큰 배에 동력을 공급했나 봐요. 이 정도면 에너지 혁명이 아닙니까? 이런 게 몇 개 더 있어요. 얘들 규모가 장난 아닌데?”
한호의 말대로 이 거대한 컨테이너선을 굴릴 정도라면, 정말 엄청난 동력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 그런데 그거 다시 갖다 붙여놔. 배 안에 불이 다 꺼졌잖아.”
“아하? 왜 갑자기 어두워졌나 했네.”
이렇듯, 수천 명이 항해한 만큼, 그에 비례하는 엄청난 양의 생필품을 얻은 것도 큰 수확이었지만 진짜 보물은 따로 있었다.
성우는 선장실을 찾아갔다.
낡은 철제 책상 위에 회색 금고가 하나가 놓여 있었다. 성우는 맨손으로 금고를 뜯어냈다. 온갖 버프가 중첩되었기에 초인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상태였다.
그리고 그 안에, 자헌의 기억 파편에서 본 아이템이 들어 있었다.
[아이템 정보]
- 이름 : 마굴의 문
- 등급 : 특수
- 분류 : 마법 스크롤
- 효과 : 사용 시 24시간 동안 마굴의 문을 연다.
- 설명 : 마굴과 이어지는 통로를 만듭니다. 마굴 안을 탐험하면 매우 귀한 아이템을 얻을 수도 있겠지만, 섣불리 시도하지 않길 권유합니다. 내가 들어갈 수 있는 문은 누군가 나올 수도 있다는 걸 잊지 마세요. (추천 레벨 35)
자헌의 기억 속, 선글라스의 설명대로였다. 본래 목적은 히든 던전으로 들어갈 수 있는 입장권 같은 용도였다.
하지만 사용 레벨이 너무나 높기에, 출현하는 몬스터가 압도적으로 강했고, 반대로 이용하여 일정 지역을 초토화시키는 전략 병기로 사용할 수도 있는 것이었다.
‘물론 본래 목적으로 이용하는 게 더 큰 이득이겠지.’
이 정도 레벨의 히든 던전이라면 분명 엄청난 보상을 안겨줄 테니 말이다. 다만, 당장 시도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였다.
“이건 뭐지?”
금고 안에는 한 가지 물건이 더 들어 있었다. 각 티슈 크기에 금속 재질로 보이는 아이템이었다.
[아이템 정보]
- 이름 : 맹세의 금고
- 등급 : 특수
- 분류 : 금융
- 효과 : ‘계약된 플레이어’가 벌어들이는 골드 중 일부가 자동으로 입금된다.
- 설명 : 금고 위에 손바닥을 얹으면 ‘계약 등록’을 할 수 있다. 금고 소유자는 ‘수금 비율’을 정할 수 있으며, 계약자가 벌어들이는 골드에서 해당 비율만큼 금고로 자동 입금 된다.
* 수금 비율 : 80%
* 등록된 계약자 : 26명
* 현재 보유 골드 : 13,455,048
“횡재했네.”
해적단이 운영하던 금고인 모양이었는데, 현재 무려 1300만 골드가 들어 있었다.
해적단에서는 이런 아이템을 이용해서 부하들이 벌어들이는 골드를 한데 긁어모았던 모양이었다.
현재 계약자 수가 26명밖에 안 남은 건, 해적단의 생존자 24명이라는 의미였다. 섬 곳곳 숨어 있는 잔당의 숫자까지 알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효율적인 수금이 가능하겠어.’
성우는 몇 개의 집단을 키워가고 있었다. 수원의 마을에 광복 길드를 중심으로 한 수도권 연합, 그리고 이곳 교동도 역시 성우의 세력권이었다.
이들을 후견했던 이유 중 하나는 앞으로 적지 않은 골드가 되어 돌아올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조세 체계에 아주 효율적인 아이템을 얻게 된 것이다.
***
교동도의 플레이어들은 강화도 전역을 수색하여 몇 명 남지 않은 해적 잔당을 박멸하는데 성공했다.
또한 거대한 컨테이너선과 수십 척의 어선을 확보했으며, 중국인 플레이어 ‘샤오쥔’을 구속하여 중국 커뮤니티를 수시로 확인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했다.
“네크로맨서님, 맡겨주신다면 중국 쪽 감시는 저희가 맡아 보겠습니다.”
무연을 비롯한 교동도의 플레이어들이 서해의 감시자 역할을 자처하고 나섰다.
“확보한 선박으로 서해를 수색하고, 중국 쪽 커뮤니티를 모니터링 하면서 중국의 동태를 최대한 살피겠습니다.”
누군가 맡아야 할 일이긴 했다.
“그래주신다면 감사할 따름이죠.”
“아닙니다. 몇 번이나 신세를 졌으니, 저희 목숨 값이라고 생각하고 온 힘을 다하겠습니다.”
해적의 습격을 받기 전까지는 보수적이었지만, 이 일을 계기로 수도권 플레이어 연합에 합류하기로 마음먹은 것이었다. 물론 그 이유는 전적으로 성우를 믿기 때문이었다.
- 미니 게임(땅 따먹기)이 ‘아군 승리’로 종료됩니다.
- 보상이 지급됩니다.
마침내 마지막 12시간이 지나고 미니 게임이 종료되었다. 지역 폐쇄가 풀렸으며 막대한 보상이 지급되었다.
- 미니 게임 보상으로 1,500,000골드를 얻었습니다.
- 레벌 업 하셨습니다. (LV. 19)
전쟁을 치루면서 엄청난 수의 플레이어를 잡기도 했다만, 미니 게임의 보상 경험치가 꽤나 짭짤했다.
- 레벨 업 카드를 선택하세요.
1) 능력치 (랜덤)
2) 스킬 (랜덤)
3) 아이템 (랜덤)
4) 기타 (랜덤)
5) 고급 물약 세트 (확정)
성우는 2번, 스킬 항목을 선택했다.
- <맹독 구름 제조(기초)> 스킬을 얻었습니다.
[스킬 정보]
- 이름 : 맹독 구름 제조
- 등급 : 기초
- 분류 : 액티브
- 소모 : 마나 30
맹독을 머금은 구름을 제조하여 10분 동안 일대에 ‘맹독성 비’를 뿌립니다. (재사용 대기시간 1시간)
‘흑마법사 스킬이군.’
새로운 스킬, 그것도 흑마법사 계열의 스킬이었다. 광역으로 독 데미지를 퍼부을 수 있는 매우 강력한 스킬이었는데, 여기에 지속적으로 마나와 체력을 갉아먹는 ‘혼돈의 결정체’ 효과까지 들어가면 대규모 전투에서 어마어마한 힘을 발휘할 것으로 보였다.
시체 폭격과 체력을 갉아먹는 저주 그리고 맹독성 비까지, 네크로맨서의 전장은 점점 더 풍성해져 갔다.
‘괜찮네.’
해적단이 오히려 보물을 안겨주고 간 기분이었다.
***
밤이 왔다.
“어김없이 찾아온, 성스러운 최강 도적의 댓글 읽어주는 시간! 오늘의 간추린 뉴스! 청취하시겠습니까?”
“진행해봐.”
한호의 커뮤니티 분석 및 정리 능력은 날이 갈수록 늘어갔다. 괜히 커뮤니티 애널리스트라고 부르는 게 아니었다.
“첫 번째 간추린 소식입니다. ‘수도권 연합’ 창설이 빠르게 진행 되는 걸로 보입니다. 연합 구성 소식을 들은 수도권 일대의 생존자 연합들이, 연이어 영등포로 모이고 있다고 합니다.”
아직 공식적으로 공표되지는 않았지만, 광복 길드를 중심으로 수도권 연합 결성이 진행 중이라는 소식이 곳곳으로 펴져나가고 있었고, 커뮤니티 내에서도 가장 큰 이슈로 떠오르는 중이었다.
어쩌면 광복 길드 수뇌부에서 의도적으로 소문을 내고 있을 지도 몰랐다. 일종의 ‘바이럴 마케팅’인 셈이었다.
‘지금까지 살아남은 플레이어들은 확실히 제 한 목숨을 챙길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이들이다.’
그렇기에 연합에 합류할 경우 큰 힘이 될 수 있을 것이었고, 광복 길드는 최대한 많은 플레이어들을 끌어 모아 몸집을 불리고 있는 중이었다.
물론, 그 거친 생존자들을 어떻게 통합할 지는 다음 문제였다. 앞으로 확실한 구심점을 제시할 필요가 있었다.
“두 번째 소식입니다. 비밀 댓글로 온 경수 씨의 메시지인데, 수원 마을 사람들의 평균 레벨이 8에 근접했다고 합니다. 대박! 아마 내일이나 모레쯤에 달성할 걸로 내다보고 있습니다. 오······ 열심히 했나보네요? 경수 씨도 오늘 11레벨 됐다고 자랑하네요.”
수원의 경수와 인호 역시 잘해주고 있었다. 성우와 약속했던 것처럼, 평균 레벨을 빠르게 끌어올리는 중이었다.
“생각해보면 진짜 빠른 편인데요? 선배 옆에서 구른 제가 이제 14레벨인데.”
한호는 미니 게임을 통해서 무려 2레벨이나 껑충 뛰어 올랐으며, 지수도 16레벨을 달성하며 랭킹 6위에 자리매김했다. 심지어 랭킹 5위 ‘최윤’이 16레벨인 만큼, 사실상 탑5 진입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근데, 네가 구른 적이 있었나?”
“아니, 진짜, 선배 없는 곳에서 저 진짜 활약하거든요? 오늘도 막 풀이랑 나물 뜯어가지고 몸에 바르고······.”
“풀을 왜 뜯어? 최강 도적께서 잡초라도 암살한 거야?”
한호는 억울하고 답답하다는 듯 제 가슴을 두드려댔다.
“아니! 그런 기발한 작전이 있었어요! 제가 커뮤니티만 읽어주는 줄 아세요? 저 나름 아이들의 우상입니다! 예? 아무 것도 모르면서?”
“아, 그래?”
“저 그리고 이번에 레벨 업해서 ‘은신’ 스킬도 배웠어요! 이제 진짜 최강 도적을 향해 가고 있다고요!”
“오, 그래?”
“으, 은신이 얼마나 대단하고 중요한······ 아오! 이어서 세 번째 소식입니다. 위대한 우리 갓! 갓! 갓! 네크로맨서께서 19레벨을 달성하여 랭킹 1위 한강석과 동률을······.”
한호가 문득 말을 멈추더니 성우를 바라보며 피식, 비웃음을 날렸다.
“······이루는 듯 보였지만, 아아! 아쉽게도 1시간 전, 한강석이 20레벨을 달성했습니다. 네크로맨서 조금 더 부지런 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성우의 눈썹이 꿈틀거렸고 한호의 입 꼬리가 씰룩거렸다.
“와 대박! 그는 대체 누구일까요? 커뮤니티 상의 소문에 따르면, 세종 지역을 장악했던 코볼트 군단을 단신으로 휩쓸어버리는 남자가 있었다는데! 혹시 그가 바로 한강석일까요? 정말 궁금합니다!”
말을 마친 한호가 고개를 갸웃했다.
“근데 진짜 궁금하지 않아요? 대체 뭐하는 사람일까요? 선배야, 언데드를 왕창 데리고 다니면서 깡패처럼 다 떼려 부수니까 혼자서 군단을 상대한다고 쳐도······ 이 사람은 대체 뭔데? 그나저나 이게 진짜 여포네.”
성우가 생각하기에도 대체 무슨 직업인지 감이 오지 않았다. 커뮤니티에 나타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으며, 그를 봤다는 내용 역시 전무했다.
“그리고 다른 지역 군벌 몬스터도 거의 정리된 모양인데요? 뭐, 우리보다야 한참 늦었지만, 그래도 다들 어떻게 잘 버텼나 보네요.”
“못 버틴 사람들은 다 죽었겠지.”
군벌 몬스터의 공습은 분명 치명적이었다. 아마도 살아남은 플레이어들 중에서 약한 이들은 전부 걸러져 나갔을 것이었다. 버틴 이들만 살아남아 다음 단계, 더 어려운 난이도로 넘어 간다. 그게 게임이었다.
“······와, 하여튼 인류애가 없어.”
한호가 고개를 돌리며 작게 중얼거렸다.
“하긴 더럽고 냄새나는 뼈다귀나 모으는 인간이 무슨 인류애가 있겠어? 아아, 오른이 제외.”
그러다가 옆 자리에 앉은 해골의 녹색 안광과 마주쳤다.
“······아, 아저씨도 제외?”
데스 나이트 민석이었다. 그는 대검을 끌어안은 채 한호의 핸드폰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학생, 혹시 영등포는 별 일 없답니까?”
“뭐, 안전하죠. 아 맞다. 가족들이 거기 있다고 했죠?”
“맞습니다. 뼈로 변한 건 상관없는데, 핸드폰을 못 쓰는 게 이렇게 불편할 줄은 몰랐네요.”
데스 나이트가 되면서 플레이어 자격을 박탈당했기에 커뮤니티를 이용할 수 없었다.
“무슨 일 있으면 제가 바로 말씀 드릴게요. 걱정 말고 계세요. 제가 이쪽 분야 최고거든요.”
“예,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한편 지수는 맨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칼 세 자루를 점검하고 있었다.
“어라, 누님? 그건 못 보던 칼인데요?”
지수가 본래 사용하던 두 자루에 처음 보는 한 자루가 추가된 상태였다.
“맞아요. 오늘 새로 얻었어요.”
[아이템 정보]
- 이름 : 진은도
- 등급 : 영웅
- 분류 : 도검
- 효과 : 마법을 붕괴시킬 수 있습니다.
- 설명 : 진귀한 마법 금속인 ‘진은’으로 벼려진 칼이다. 매우 가볍고 단단하다. 또한 마나에 반응하여 특유의 파장을 발생시키는데, 이를 통해 마법을 붕괴시킬 수 있다.
후에이를 베고 얻은 전리품이었다. 청량하게 빛나는 은색 칼날은 언뜻 봐도 고급스럽게 보였다.
“와, 나는 저런 무기 언제 얻지? 아직도 길리 슈트 같은 거 만들어 입는 게 말이 돼?”
새로 얻은 칼을 닦는 지수는 어딘가 뿌듯해보였다.
***
다음 날, 이른 아침부터 하늘이 시끄럽게 뒤흔들렸다.
두두두두―
“······뭐, 뭐야? 헬리콥터?”
한호가 눈을 부비며 일어났다. 성우와 지수는 이미 밖으로 걸어 나가고 있었다.
붉은색 헬기가 고인돌 체육관 광장에 착륙했다. 영등포에서 온 소방 헬기였다. 그곳에서 민흠이 내렸다.
“성우 씨, 해적단 격파하셨다는 소식 들었습니다. 역시 대단하십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아침부터 급하게 찾아오신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요?”
성우의 말에 민흠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상하지 못한 일이 생겼습니다.”
민흠이 한숨을 내쉬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랭킹 1위, 한강석. 그 자가 나타났습니다.”
랭킹 1위가 나타났다니? 지금까지 그 어디에도 흔적을 남기지 않던 자가 아니던가?
“나타났다는 건, 영등포에 왔다는 겁니까?”
“······예.”
민흠의 표정은 떨떠름했다. 그럴 것이, 큰 세력을 일구기 위해서 주변 세력들을 휘어잡아야 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연합의 구심점 역할을 해야 할 광복 길드의 마스터, 정훈 보다 훨씬 강한 자가 나타났다. 그것도 베일에 싸여 모두가 궁금해 하던 자가 나타났으니, 자연스레 이목을 끌 수밖에 없었다.
민흠의 안경을 치켜세우며 말을 이어갔다.
“그 자가······ 네크로맨서를, 성우 씨를 만나고 싶다고 합니다.”
“저를요?”
“그렇습니다. 한반도의 운명을 좌우할 정도로 매우 중요한 사안이라는데······ 젠장, 우리한테는 말해주지 않겠답니다. 네크로맨서가 올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겠다는데 기가 막혀서 원.”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말 그대로 배짱을 부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다른 건 몰라도 한반도에서 가장 큰 세력을 대놓고 소외시킬 정도의 자신감을 가졌다는 뜻이었다.
“그럼, 기다리라고 하십시오.”
“예?”
성우의 대답에 민흠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기다리라고 하라니? 배짱 두둑한 랭킹 1위가 무슨 일을 벌일지 모르는 상황이 아니던가?
“저는 밀린 제작과 강화가 있어서, 대장간 좀 들렀다 가야 돼서요.”
“아, 그런데 저, 그게 성우 씨? 그게 좀 상황이 난감해지지 않을까요?”
민흠의 얼굴에 당황하 불안이 퍼져나갔다.
“부관님, 그런 놈이 배짱부린다고 곧이곧대로 받아주면 연합이라는 이름 아래 뭉치려고 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느끼겠습니까? 연합의 구심점이 되려면 확실한 힘을 보여줘야만 합니다.”
“아, 그런 그렇죠······.”
“그럼 기다리라고 하세요.”
“아······ 네.”
민흠은 너무나도 불안했다. 괜스레 폭풍 전야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하필이면 이런 중요한 상황에 제 정신이 아닌 두 놈이 맞붙을 것만 같았다.
‘이러다가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거 아니야?’
그 두 거물에 비하면, 어쩌면 연합은 새우 무리에 불과할 지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