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네크로맨서-80화 (80/244)

# 80

28) 강화도, 데스 매치 – 4

승기가 넘어왔지만 해적단의 발악은 멈추지 않았다.

“어떻게든 싸워!”

“어차피 도망갈 수 없어!”

미니 게임이 열린 이상 섬 밖으로 도망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그렇기에 우두머리가 제거되었음에도 악착같이 저항하는 것이었다.

성우는 놈들을 마무리하기 위한 작업을 시작했다. A, B, C 3곳을 모두 점령한 뒤, 앞도적인 버프를 바탕으로 쓸어버릴 계획이었다.

- 그림리퍼 유지 시간 (00:14:53)

한편으로는 그림리퍼와 리치의 효과를 유지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속히 처리해야만 했다.

그러나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깃발을 잡는 순간, 행동 불능 상태가 되기 때문에 혼자 점령 하는 게 불가능했다.

그 대안으로 강화도 상공을 날고 있던 혜연을 호출했다.

삐이이!

이내 그리핀 라이더, 혜연이 나타났다. 그리핀은 엄청난 속도로 산자락을 한 바퀴 선회하더니, 마니산 봉우리에 있는 ‘A포인트’에 내려앉았다.

“네크로맨서님! 지금 점령할게요!”

성우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가 깃발을 움켜쥐었다.

- 아군이 점령 중입니다. (100초 남았습니다.)

“노, 놈들이 점령을 시도한다!”

“A포인트까지 빼앗기면 끝장이야!”

해적단이 점령을 저지하기 위해 움직였다. 하지만 성우의 언데드들이 그 앞을 막아섰다. 본 와이번 세 마리가 봉우리에 내려 앉아, 거대한 날개를 펼치고 위협적으로 머리를 치켜세우자, 해적단은 감히 다가올 수조차 없었다.

“제, 젠장!”

“저런 걸 어떻게 돌파해······.”

그리고 B포인트를 점령할 때와 다르게, 100초는 너무나 짧은 시간이었다.

봉우리를 향해 올라가던 해적단들은 깃발 위에 떠오르는 숫자를 바라보며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 아군이 점령 중입니다. (4초 남았습니다.)

“아, 안 돼!”

“넘어갔다!”

“우린 끝이야!”

- 아군이 A포인트를 점령했습니다.

* 버프가 적용됩니다.

- 아군이 모든 포인트를 점령했습니다.

* 추가 버프가 적용됩니다.

[미니 게임 내 버프 목록]

1) 방어력 상승 (+30%)

2) 체력 수치 상승 (+5)

3) 공격력 상승 (+20%)

4) 근력 수치 상승 (+5)

5) 이동 속도 상승 (+20%)

6) 민첩성 수치 상승 (+5)

7) 모든 능력치 추가 상승 (+3)

8) 초당 체력 회복 (+3%)

실로 어마어마한 버프였다. 한 번에 10레벨이 오른 것이나 다름없을 정도였다.

‘미니 게임? 전혀 미니가 아닌데?’

아무리 대륙의 패권을 놓고 경쟁한 그룹이라고 하지만, 쫓겨난 놈들이 대만 땅을 점령할 수 있었다는 게 의문이었는데, 이런 도박수를 두었던 모양이었다.

- 미니 게임이 120분 후 종료됩니다.

이번에는 그 도박수가 실패했다. 그 대가로 120분 동안, 해적단 사냥이 시작될 예정이었다.

그리고 그 모든 장면이, 인질로 잡힌 카메라 오퍼레이터에 의해서 생중계 되고 있는 중이었다.

***

한편, C포인트, 고인돌유적지를 점령하기 위해서 해적단의 별동대가 파견된 상태였다.

그러나 섬의 남단에서 북단까지 이동하는데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되었고, 목적지에 도착하기도 전에 충격적인 소식이 연달아 들어왔다.

“말도 안 돼······.”

“어떻게 이렇게 순식간에 당한 거지?”

2서버 최강의 무사, 후에이의 패배와 지공장군, 자헌의 죽음, 심지어 A포인트가 정복당했다는 소식까지 이어졌다.

눈앞이 깜깜해졌다. 그러나 이들도 마찬가지로 섬 밖으로 도망갈 수 없다는 걸 알기에 본래의 임무를 강행하기로 결정했다.

“모두 정신 차려! 우리라도 성공해야 된다! 우리가 포기하면 완전 끝장이야!”

“그래. 적어도 여기에는 네크로맨서나 그 여자 검객 같은, 그런 괴물이 없을 거야! 가자!”

C포인트를 습격하는 별동대의 숫자는 적지 않았다. 무려 160명으로 평균 레벨 역시 9가 넘었다.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정예부대였다.

“시간이 없다!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정면으로 뚫는다!”

14레벨의 별동대장의 지휘에 따라 별동대는 최후의 전투를 다짐했다. 그리고 깃발의 불빛을 따라 유적지 안으로 진입했다.

이내 저 멀리, 깃발 주변에 포진하고 있는 교동도의 플레이어들의 진영이 눈에 들어왔다. 습격을 대비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 숫자가 50명 쯤 되어 보였다.

“생각보다 적다.”

“엄청난 버프를 두른 상태지만 이길 수 있어.”

별동대는 그 앞에 도열했다. 별동대장이 칼을 뽑아들더니 하늘을 향해 번쩍 들어올렸다.

“전투를 준비하라! 정면으로 돌격······.”

그때였다.

스윽!

“서프라이즈!”

별동대장의 등 뒤, 바닥에서 무언가 벌떡 일어났다. 온몸에 풀 조각을 덕지덕지 붙인 채, 양손에 단검을 꼬나 쥔 남자였다.

푹!

“······컥!”

전혀 예상하지 못한 기습이었기에 별동대장은 아무런 대응도 하지 못했다. 날카로운 단검이 그의 뒷목에 박혔다.

“역시 길리 슈트!”

한호였다. 망토에 풀을 붙인 채, 바닥에 납작하게 엎드려 은신하고 있던 것이었다.

“왜 이렇게 늦게 와? 막, 벌레 기어 다니고 답답해서 미치는 줄 알았네!”

그는 그렇게 푸념하며 별동대장의 시체에서 칼을 뽑아들었다. 어느새 그의 몸에 황금색 방어막이 씌어졌다.

- ‘신념의 처단자’ 스킬에 의해 15초간 ‘성스러운 방어막’을 얻습니다. (400/400)

“대, 대장!”

“놈을 죽여!”

“고작 한 놈이다!”

텅! 텅! 텅!

하지만 황금색 보호막이 모든 공격을 막아냈다. 그동안 스킬 레벨이 한 단계 상승하여 ‘방어막 지속 시간’과 ‘방어막 용량’이 꽤나 증가한 상태였다. 해적단의 공격이 매섭게 날아들었지만, 몇 초 정도는 충분히 버텨낼 수 있을 정도였다.

쉬익!

한호가 단검을 내던졌다. 거의 직선으로 날아간 단검은 탱커들의 어깨 너머, 후방에 서 있던 마법사의 목덜미에 명중했다.

- 플레이어를 살해하여 9,000골드를 얻었습니다.

새로운 희생양을 거름 삼아 신념의 보호막이 갱신되었다. 이 스킬의 무서운 점이 바로 이점이었다. 데미지만 충분하다면, 적진 한 가운데에서 무한 방어막이 가능했다.

텅! 텅! 텅!

“바, 방어막이 깨지질 않아!”

“대체 무슨 스킬이야?”

한호는 과감하게 앞으로 나아가며 단검을 집어던졌다.

“누가!”

쉬익!

그리고 그의 단검에는 분노가 어려 있었다.

“컥!”

- 플레이어를 살해하여 8,000골드를 얻었습니다.

“나보고!”

쉬익!

“억!”

- 플레이어를 살해하여 6,000골드를 얻었습니다.

“커뮤니티만 잘한대! 응? 모두들 기억해라! 내가 바로 한국 서버! 네크로맨서의 동료! 성스러운 최강의 도적! 이―한호다!”

의기양양해진 한호는 한 마리 길고양이가 된 것처럼 날카롭게 포효했다.

그러더니 양손으로 단검을 쥐고 적진을 향해 달려 들어갔다. 그는 탱커들 사이로 대놓고 비집고 들어가며, 어떻게든 칼을 우겨넣어 목덜미와 옆구리를 쑤셔댔다.

푹! 푹!

“으아아!”

“미, 밀어내!”

보호막으로 인해 피해를 받지도 않은 뿐더러, 점령 버프로 인해 능력치가 대폭 강화된 상태였기에, 놀랍게도 그런 막무가내의 공격이 먹혀들었다.

푹! 푹!

“마, 마법을 퍼부어!”

“너무 가까이 와서 아군에게까지 피해가 갑니다!”

“그럼 놈을 떼어내!”

“진드기 같이 안 떨어집니다!”

그렇게 단 한 명의 우왕좌왕하는 사이, 좌우에서 우렁찬 함성이 쏟아져나왔다.

“돌격!”

“쳐라!”

매복하고 있던 교동도의 플레이어들이 공습을 시작한 것이었다.

“모두 쏴라!”

“해적 새끼들을 전부 처 죽여!”

“한 놈도 빠짐없이 죽여라!”

무연의 명령에 따라 수십 발의 화살과 마법이 별동대의 머리 위에 쏟아지기 시작했다.

“으아아! 여, 옆을 방어 해!”

“늦었다!”

한호가 어그로를 끄는 사이, 무방비 상태의 별동대에게 엄청난 공격을 명중시켰다, 놈들은 한 순간에 치명적인 피해를 입었다. 사실상 양쪽 옆구리를 뜯어 먹힌 것과 마찬가지인 상황이었다.

“놈들이 무너진다!”

“싹 쓸어버려!”

교동도의 플레이어들이 마무리를 위한 돌격을 감행했다. 정면과 좌우, 심지어 뒤에서도 나타나 해적단의 숨통을 조여 들어갔다.

그들의 돌격에는 분노가 어려 있었다. 그리고 그 분노를 무기 끝에 실어서, 무자비한 폭력으로 쏟아냈다.

“죽어! 죽어!”

“이 개새끼들아! 감히 여길 또 와?”

“우리가 만만하냐!”

심지어 그들 사이에는 키가 작은 꼬마 아이, 혜연의 친척 동생인 영인도 섞여 있었다.

녀석은 무거운 방패를 내던지고 ‘글라디우스’를 꼬나 쥔 채, 저보다 덩치 큰 해적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리고 고함을 지르며 마구잡이로 휘둘렀다.

“으아! 으아아!”

챙! 챙! 챙!

해적은 꼬마의 공세에 당황하더니, 주춤거리며 물러섰다.

“윽! 무, 무슨! 꼬마 놈이!”

“으아아! 죽어!”

비록 레벨이 3에 불과했지만, 어마어마한 능력치 버프로 결코 꿀리지 않는 괴력을 자아냈다. 해적의 칼이 불안하게 흔들리더니, 결국 커다란 틈을 보이고 말았다.

푹!

영인의 글라디우스가 그 틈을 파고들었다.

“흐, 흐어······.”

해적의 몸이 허물어졌다.

- 플레이어를 살해하여 8,000골드를 얻었습니다.

- 레벨 업 하셨습니다. (LV. 4)

“으아아아! 아빠의 복수다! 복수라고!”

이렇게 레벨 3의 어린 아이가 활약할 만큼, 버프의 위력은 실로 지대했다.

“이겼다!”

“놈들이 도망간다! 놓치지 마!”

별동대는 순식간에 괴멸되었고, 겨우 몇 명만이 포위망을 돌파하여 도주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얼마 도망가지 못했다. 교동도의 플레이어들은 이동속도 버프까지 받은 상태였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전투가 마무리되었다.

“아빠······ 내가 복수했어. 내가······.”

영인은 아빠의 유품, 글라디우스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런 영인에게 누군가 다가왔다.

“야, 너, 어린 녀석이······.”

영인은 화들짝 놀랐다. 남 몰래 싸움에 끼어 든 게 들킨 모양이었다. 어른들은 어린 아이가 이런 끔찍한 현장에 있는 걸 달가워하지 않으니 말이다.

영인은 불안한 마음으로 돌아섰다. 그런데 상대의 반응은 예상 외였다.

“깡이 장난 아닌데? 좀 대단했다?”

온몸에 풀이 덕지덕지 붙어 있는 남자, 한호였다.

“아, 최강 도적 형!”

“오? 내 대사 들었나 보네? 그래, 그게 바로 나야.”

한호가 인영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고 지나갔다. 인영이 그런 한호의 등을 향해 소리쳤다.

“저기, 형! 저, 저도!”

“응?”

“형처럼 강해질 수 있을까요?”

“어······ 나, 나처럼? 네크로맨서 말고?”

다소 황당한 말이었다.

한호 자신처럼, 1성짜리 도적처럼 강해진다는 게 과연 좋은 말일까? 오히려 악담이 될 수도 있는 말이었다.

“방금 형처럼 막! 엄청난 적들 앞에서 겁먹지 않고 당당하게 싸울 수 있을까요?”

머뭇거리던 한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 물론이지! 이게 좀 어렵긴 한데, 해보니까 충분히 가능하더라!”

1성 도적과 1성 프리스트를 뽑은, 그 이후에도 구린 아이템만 얻어 온, 운도 지지리도 없었던 한 남자의 가슴이 슬며시 뜨거워졌다.

“혀, 형······ 너무 멋있어요.”

“으하하! 그러냐?”

어찌어찌 살기 위해 싸우다보니 덩달아 영웅이 되어가고 있는 걸까? 한호는 오랜만에 뿌듯함을 느꼈다.

***

참혹한 전장이 카메라에 담겼다.

“끄, 끝나, 났습니다······.”

카메라 오퍼레이터가 벌벌 떨며 중얼거렸다. 마니산은 민둥산이 되어 있었고, 그 위로 해적단의 시체만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도망친 소수를 빼면, 사실상 저, 전멸입니다. 우리가 완패했습니다.”

그는 네크로맨서의 강요로, 지금까지의 모든 상황을 생중계했다. 자헌이 죽고 해적단이 수세에 몰리면서 대부분의 시청자들이 빠져나갔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2만 명이나 남아 있었다.

[실시간 채팅]

─ chi-111004 : 저 한국 장수 1서버 황제랑 비슷하다.

─ Xian5523 : 나도 황제를 떠올렸다. 사진과 소문만 들었지만 실제로 보면 저런 느낌이 아닐까 싶다.

─ 壮烈 : 황제보다는 한 수 아래라고 본다. 난주 전투 때 보면 황제는 200마리가 넘는 권속을 부렸다고 들었다.

─ 李 大阿哥 : 소국이니 황제보다 한 급 아래구나. 오늘 전투만으로는 인정하지 않겠다.

“황···제? 황제가 누구지?”

성우의 물음에 카메라 오퍼레이터가 빌빌 기며 입을 열었다.

“아, 예. 중국은 총 3개 서버로 나뉘어져 있는데, 산시성과 북경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1서버의 패자가 자칭 ‘황제’라고······ 치, 칭하고 있습니다. 예, 그 황제라는 사람이 3서버도 정벌하여 대륙의 최강자로 꼽힙니다.”

“그런데 왜 나랑 비슷하다고 하지?”

“그 화, 황제라는 플레이어도 네크로맨서님처럼 다수의 권속을 부리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5성 직업들은 대부분 집단을 이루는데 특화되어 있었다.

뱀파이어 로드는 플레이어를 감염시켜 추종자를 만들었고, 크루세이더 커맨더는 크루세이더를 양성할 수 있다. 아직 직업 이름을 모르는 일명 ‘천공장군’은 레벨 5미만의 플레이어를 세뇌시킬 수 있는 걸로 보였다.

하지만 성우와는 결이 다른 느낌이었다. 성우는 플레이어가 아니라 몬스터를 다뤘으니 말이다. 그런데 성우와 비슷하다?

“직업이 뭔데?”

“그것까지는······.”

하긴, 중국 대륙의 최강자라는 자가 자신에 대한 정보를 쉽게 누출할 리가 없었다.

성우는 방송을 종료하게 한 뒤, 카메라 오퍼레이터를 결박시켰다. 앞으로 중국 서버의 동태를 살피기 위해서 이 남자를 구속하고 있을 생각이었다.

몸은 한국 서버에 있으나 그의 핸드폰은 중국 커뮤니티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이어서 성우는 자헌의 시체 앞에 섰다. 그 주변에 두 개의 핸드 캐논이 떨어져 있었다.

[아이템 정보]

- 이름 : 드워프제 핸드 캐논(3등급)

- 등급 : 영웅

- 분류 : 핸드 캐논

- 효과 : 마나를 주입하여 탄환을 장전할 수 있다. (10마나 소모)

방패로 막아도 뒤로 밀려날 정도로 강력한 데미지를 줄 수 있는 무기였다.

리피팅 크로스보우처럼 난사할 수는 없지만, 치명적인 한 방이 가능했다. 타이밍만 잘 노린다면 꽤나 유용한 무기가 될 것이었다.

성우는 하나는 자신이 챙기고 나머지 하나는 오른이의 허리춤에 매어주었다.

“팔이 하나 밖에 없지만, 잘 사용해봐.”

딱딱.

“외팔의 무사 시너지는 포기할 수는 없으니까. 그런데······.”

성우가 오른이를 훑어보았다.

“다리가 하나 밖에 없으면 무슨 시너지가 나오려나? 갑자기 궁금하네.”

성우가 그렇게 중얼거리며 오른이를 바라자 녀석이 천천히 시선을 피했다.

“하긴, 아무리 그래도 기동력을 포기할 수는 없지.”

딱딱!

성우는 계속해서 자헌의 아이템을 확인했다. 나머지는 자잘한 액세서리뿐이었는데, 기존에 착용하고 있는 물건에 비하면 보잘 것 없었다.

“이런 건 한호나 줘야겠군.”

후배를 챙기는 마음이 지극한 편이었다.

이제 마지막 작업이 남았다.

- 당신의 권능 아래 망자가 권속(眷屬)됩니다.

- 망자의 ‘기억 파편’을 읽을 수 있습니다.

자헌의 기억이 재생되었다.

장소는 배 안이었다. 해적 함대의 기함으로 보이는 컨테이너선 내부로 보였다.

“대만에서 천사 동상이 발견됐다고 하는군.”

자헌이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 앉았다. 긴 녹색 테이블에는 꾸안과 후에이를 비롯한 간부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천사 동상? 1서버에서 악마 동상이 발견 된 이후로 처음이군요?”

“맙소사! 맙소사! 절대 종족에 대한 힌트가 드디어 드러나려고 하나? 동상에 어떤 기능이 있다고 합니까?”

꾸안이 흥분한 듯 물었다.

‘잊고 있었다. 천사와 악마, 분명 앞으로 업데이트 될 예정이라고 했었지.’

성우 역시 주의를 기울였다. ‘절대 종족’에 관해서 아무런 정보가 없는 상태였다.

‘챕터2’가 시작될 때 절대 종족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는 메시지가 있었는데, 지금 언급 되는 ‘천사 동상이 그 흔적 중 하나인 모양이었다.

“오로지 천공장군께서만 동상에 접촉했다. 장군 말씀대로라면, 퀘스트를 줬다고 하는데······ 자세한 내용은 아직 나한테도 말씀해주시지 않았다.”

“아니 다른 사람도 아니고 지공장군께도 말씀 안 해주셨다는 겁니까?”

지공장군, 자헌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장 말씀해주시기는 어려운 일인 것 같더군. 서울을 정복한 이후에 천천히 설명해주시겠다고 했어.”

“무척 궁금하군요.”

“나도 궁금하지만, 우리는 임무에만 집중해야 돼.”

자헌은 그렇게 말하며 무언가를 테이블 위에 올렸다. 갈색 양피지 스크롤이었다.

“자, 본론으로 들어가지. 미니 게임을 통해 강화도를 차지한 직후, 후에이의 조가 서울로 잠입하여 이 스크롤을 사용한다.”

강화도를 정벌한 이후의 작전이 계획되어 있던 모양이었다. 꾸안이 선글라스를 벗으며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다.

“아니 그, 그건! ‘마굴의 문’ 아닙니까?”

“그래. 이걸 사용한 직후, 마굴의 문이 24시간 동안 개방 되며, 온갖 마물이 튀어나온다. 마물은 24시간 뒤에 사라지지만, 그 사이에 일대를 초토화시키기에는 충분하지. 어쩌면 서울까지 무혈입성이 가능할 지도 몰라.”

꾸안은 감탄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본래 히든 던전을 열어주는 아이템이지만, 난이도가 너무 어려워서 전략 병기로 쓰이는 전설 등급의 스크롤! 미니 게임에 이어서 이것까지 써야 됩니까? 아깝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이정도 투자는 아무 것도 아니야. 한국 서버는 대만 서버보다 훨씬 큰 양분이 되어 줄 거다. 장군께서도 투자를 아끼지 말라 하셨다.”

안타깝게도 그렇게 투자한 사업이 물거품을 돌아갔다.

“지금부터 작전을 시작한다. 후에이, 네 살수들을 데리고 강화도로 출발해라. 가서 깃발을 꽂아라.”

“예!”

영상은 거기서 마무리 되었다.

‘이번 기억의 목적은 뭐지?’

언제나 그렇듯 기억 파편은 성우에게 도움이 되는 부분을 보여준다. 그렇기에 보통은 문제 해결의 핵심이 되는, 정보를 제공해주는 장면들이 주로 나왔다.

‘일단 그 마굴의 문이라는 마법 스크롤을 차지할 필요가 있겠군.’

이미 승리한 상태이니 핵심적인 정보가 나오지 않을 수도 있으며, 그저 좋은 아이템이 있는 위치를 알려준 걸 수도 있었다.

어쨌든, 놈들의 컨테이너선으로 가야만 했다.

마침 그렇지 않아도 잔당 처리를 위해, 혜연에게 해적단의 상륙지 근처, 함대를 살펴보라고 해둔 상태였다.

잠시 후, 남쪽 하늘에서 그리핀이 날아왔다. 그리고 혜연이 급하게 뛰어내리더니 성우에게 달려왔다.

“다 보고 왔어요! 지금 대만 쪽으로 항로를 돌릴 준비를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컨테이너선에는 적지 않은 숫자의 당직병들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아직 미니 게임이 종료되지 않았기에 강화도 연안을 빠져나가지 못했다. 앞으로 9시간 이후에나 탈출할 수 있을 것이었다.

“그런데 갑판 위에 마법사들이 항시 대기하고 있어요. 남은 시간 동안만 배에 탑승하는 걸 막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버티고 있는 것 같아요.”

놈들은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하여 함대를 방어할 수 있는 수단을 마련해 놓았던 모양이었다.

그리고 혜연의 말처럼 갑판에 다수의 마법사들이 대기하고 있다면, 성우의 공격이나 침투가 통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았다.

“배를 함락하는 건 어려울까요?”

“막무가내로 들어가면 그렇겠지.”

놈들이 대규모 보호막을 전개할 경우, 육상 언데드들을 배에 침투시키기 어려울 뿐더러, 시체 폭격도 먹히지 않을 것이었다. 매우 까다로운 상황이다.

누구 마나가 먼저 고갈되는지 힘겨루기를 해볼 수도 있었지만, 그건 너무나 비효율적인 방법이었다.

고민하던 성우는 문득 바다 쪽을 바라보았다.

“혹시 이 주변 해안에도 몬스터가 출몰하나?”

“바다 속에요?”

“그래, 바다에도 몬스터가 들끓는다고 하던데.”

“아, 네. 무시무시한 놈들이 많아요. 피 냄새를 맡으면 몰려오는데, 해적 놈들은 전기 마법으로 쫓아내면서 항해하는 것 같더라고요. 그건 왜요?”

성우가 해안가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럼 느긋하게 낚시 좀 해야겠어.”

이참에 육해공을 모두 섭렵할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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