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네크로맨서-79화 (79/244)

# 79

28) 강화도, 데스 매치 – 3

몇 분 전.

강화도에 미니 게임 깃발을 꽂은 사내 후에이, 그는 15레벨로 현재 ‘중국-2서버’의 랭킹 22위였으며 중국 최고의 무사라고 불렸다.

“조장······.”

그런 그가 지금 머뭇거리고 있었다.

본영이 습격당하고 있거늘, 수풀에 몸을 숨긴 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자 부하들이 그를 종용하기 시작했다.

“더 늦으면 안 됩니다. 이러다가는······.”

“맞습니다. 저 여자 한 명이 뭐라고 이렇게 시간을 끌 필요가 있겠습니까?”

“다르다.”

그는 인상을 찌푸리며 이질감을 표현했다.

“예?”

“저 여자는 다르다.”

부하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떤 점이 말입니까?”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후에이는 고갯짓으로 깃발 근처에 널브러진 시체를 가리켰다.

“강습 2조의 시체 보이지?”

“그렇습니다.”

12개의 시체와 12개의 도끼, 강습 2조였다.

“······전부 동일한 상흔이다. 같은 무기, 같은 사람이 벌인 짓이라는 거지.”

“설마?”

“저 여자가 혼자서요?”

후에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름 정예부대에 속하는 강습 2조의 12명을 혼자서 학살했다. 저기 겹쳐져 있는 두 놈은 단 칼에 죽었고, 깃발에 가장 근접해 있는 세 놈은 거의 동시에 쓰러졌다. 그 이 뒤로 이리저리 어지럽게 놓여 있는 시체들은······.”

“······도망쳤군요.”

“그래. 겁에 질려서, 허둥대다가, 뒷걸음질치고, 아무것도 못하고 죽은 흔적이다. 심지어 마지막 두 놈은 목 뒤에 상흔이 있군.”

강습 2조는 지공장군의 함대에서 선봉장을 맡는 부대였다. 가장 먼저 상륙해서, 가장 앞서서 돌격하는 역할을 맡는 이들인 만큼 그 누구보다 용맹했다.

그런 그들이 도망치다가 죽었다고?

“말도 안 됩니다. 저, 저렇게 대놓고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계집이 그 정도로 고수라고요?”

후에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히도 저 여자는 아직 우리를 발견하지 못했다. 제 아무리 고수라도 방심은 치명적인 거다. 조심스럽게 접근해서 한 번에 목을 딴다.”

단 한 명의 여자를 죽이기 위해, 최고의 살수들이 움직였다.

***

성우는 중요한 거점, B포인트를 지수에게 맡기고 떠났다.

지수는 B포인트의 깃발을 감시할 수 있는 곳, 커다란 나무 뒤에 기대어 서 있었다.

첫 번째 점령 시도를 저지했지만, 놈들은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었다. 그렇기에 지수는 싸움을 대비하고 있었다. 이곳을 지킬 사람은 오직 단 한 명, 자신 밖에 없었다.

“······.”

그녀는 숲 속에 서서 모든 감각을 열어 둔 채, 주변의 모든 움직임을 감시했다.

그리고 이내 무언가를 잡아냈다.

‘누군가 온다. 움직임을 숨기고 있다.’

분명 일반적인 움직임이 아니었다. 어딘가 가려진 듯 최대한 절제된 발걸음과 숨소리······ 그녀 역시 어렵게 잡아낼 만큼, 누군가 은밀하게 접근하고 있었다.

‘다수다. 여섯? 아니, 여덟 명이다.’

B포인트로 접근하는 이들은 기습과 암살에 특화된 직업군이 분명했다. 서로 비슷한 특성을 지닌 이상, 여덟 명을 한 번에 상대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렇기에 오히려 자신의 위치를 쉽게 노출시키기로 했다. 쉽게 말해, 기만 작전이었다.

스스스―

아니나 다를까, 적들은 위치를 노출하고 있는 지수를 얕본 듯, 다소 성급하게 달려들었다.

가장 먼저 덤벼 든 건 총 3명이었다.

챙! 콱!

지수는 첫 번째 칼날을 쳐냈다. 놈의 칼이 튕겨져 나가며, 지수가 기대고 서 있던 나무를 그었다. 지수는 그 틈에 놈의 목덜미를 노리고 칼을 휘둘렀다.

훙!

놈은 몸을 뒤로 젖히며 칼날을 피해냈다. 그리고는 숲 속으로 몸을 던졌다.

‘빠르다.’

하지만 나머지 두 명은 그러지 못했다.

촤악!

칼의 움직임은 보았지만, 칼날에서 발산 되는 검기를 예측하지 못했다. 두 개의 머리가 동시에 잘려나가며, 지수의 발아래 널브러졌다.

직후, 지수는 고개를 돌려서 산 중턱, 나무 사이 어딘가를 바라보았다. 그곳에 누군가 은신 중이었다. 이쪽을 향해 무언가를 겨누고 있었다. 카메라였다.

‘카메라? 방송 중인 건가?’

지수의 얼굴이 ‘중국-2서버’ 전역에 생중계되는 순간이었다. 그녀는 인상을 찌푸리며 다리를 뒤로 뺐다. 그녀를 겨누고 있는 게 카메라만은 아니었다.

적은 총 8명, 그들 중 2명을 죽였다. 나머지는 여전히 지수를 조여오고 있었다. 저 숲속 곳곳에 포진한 채······.

‘화살?’

쉭! 쉬익!

두 발, 정확히 양쪽 눈을 노리고 쏘았다. 하지만 다음 순간, 지수는 그곳에 없었다.

“어, 어느 틈에!”

유일하게 지수의 칼날을 피한 남자, 그의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발자국 추적’ 스킬로 따라잡은 것이다. 남자는 물러서지 않고 달려들었다.

두 칼이 맞붙었다.

챙! 챙! 챙! 챙! 채―앵!

눈 깜짝할 사이에 5합이 이루어졌다. 서로 상처를 내지 못했지만, 남자는 지수의 힘을 견디지 못하고 뒤로 튕겨져 나갔다. 그는 뒷걸음질 치며 숲 속을 벗어나더니, 잔디 공원으로 뛰어 나갔다.

‘······다르다.’

저 남자, 지금까지 칼을 맞대본 상대들과 달랐다. 흔히 말해 ‘고수’가 분명했다. 지수는 손목을 돌리며 근육을 풀었다. 그리고 남자의 뒤를 쫓아 진디 공원으로 나갔다.

“힘이 장사군? 생각보다······ 더 재밌어.”

그가 지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당황과 동시에 어떤 호승심이 느껴졌다. 마치 싸움 자체를 즐기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2차 직업 카드로 ‘바바리안’을 뽑은 나를 튕겨낼 정도라니······ 점령 버프를 빼더라도 근력 수치가 27에서 30정도 되어야 할 텐데? 레벨 업 카드에서 스킬은 거의 안 뽑고 능력치에 투자했다? 완전 괴짜군.”

그는 지수를 분석했다. 그리고 그의 분석은 어느 정도 맞아 떨어졌다. 다시 힘을 겨루어 능력치까지 알아낼 정도라니? 보통내기가 아니었다.

그때였다. 어디선가 움직임이 느껴졌다. 지수와 남자, 둘 다 그 낌새를 느꼈다.

“안 돼!”

남자가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지수는 그의 목소리보다 더 빨리 움직였다. 칼날이 허공을 갈랐고, 그보다 몇 미터 떨어진 공중에서 누군가의 머리가 잘려나갔다.

촤악!

기습이었지만, 그 시체가 지수에게 한참 못 미치는 곳에 떨어졌다. 감히 근처로 다가가지도 못한 것이다.

“멍청한 녀석, 내가 그렇게 가르치지는 않았는데······ 그나저나 당신, 확실히 보통이 아니야. 민첩성 수치는 21정도 되려나?”

“······.”

“이름이 뭐지?”

“······.”

“나는 후에이, 중국 서버에서 왔다. 정확히는 2서버, 대륙 최고의 칼이라고 불리고 있지. 네가 한국 서버의 최강인가?”

지수는 대답할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놈은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과묵하군? 카메라가 이곳을 찍고 있다는 건 눈치 채고 있겠지?”

후에이가 칼날을 들어 올려 카메라 방향을 가리켰다.

“이렇게 만나게 돼서 아쉬울 따름이다. 서둘러 B포인트를 점령을 해야 하기에 오래 놀 수가 없으니······. 하지만 사실, 사람의 숨이 꺼지는 게 그리 오래 걸릴 일도 아니지.”

그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지수에게 칼날을 겨누었다.

“나는 지금까지 대륙의 고수들과 정정당당한 대결을 펼쳐서 이겨왔다. 그래서 내 이름은 대륙의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지. 자, 내 부하들을 물릴 테니, 정정당당하게 싸워보자. 네 시체는 명예롭게 묻어주마.”

카메라는 두 사람을 한 프레임에 담았다. 그 장면을 중계하고 있는 ‘카메라 오퍼레이터’는 당황한 와중에도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여러분 보, 보이십니까! 그 후에이가 전력을 다해서 누군가를 베려고 하고 있습니다. 대륙 최고의 무사! 후에이의 결투가 외딴 곳에서 다시 시작됩니다!”

중국 서버의 유명 인사 후에이와 정체불명의 한국의 무사, 둘의 대결이 시작되었다는 소식이 중국 커뮤니티에 퍼져나갔다.

그러자 방송 시청자 수가 폭발적으로 늘기 시작했다. 후에이의 이름값이 그 정도였다.

후에이는 비장한 표정으로 지수를 바라보았다.

‘여기서 저 여자를 베고, 서버 전체에 이슈를 만드는 거다. 그렇다면 우리의 이름도 드높이게 되고, 천공장군님께서도 기뻐하시겠지.’

이들의 목적은 동일했다. ‘붉은 혁명군’의 명성을 회복하는 것, 그를 위해 대만이나 한국 등, 외국 서버를 희생양으로 삼았다.

이 자리에서 중국의 칼이 한국의 칼을 꺾는다면, 긍정적인 홍보 효과를 가져다 줄 것이었다. 이런 연출마저도 선전이었다.

“후우······.”

후에이가 거친 숨을 내뱉으며 칼자루를 굳게 움켜쥐었다. 그러자 그의 몸과 칼날에 어떤 기운이 깃들기 시작했다.

- ‘야만의 분노’가 활성화 됩니다.

* 3회 이상 연속 공격 시 1분 간 근력 수치 상승 (+5)

- ‘광포한 선봉장’이 활성화 됩니다.

* 5분 간 공격 속도 상승 (+25%)

사력을 다할 준비를 끝마쳤다.

“······.”

“······.”

한국과 중국, 두 서버의 무사가 마주보았다. 그의 말처럼, 부하들은 숲 속에 웅크린 채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 후에이의 욕심이기도 하겠지만, 일대일로 꺾어야지만 제대로 된 연출이 가능할 테니 말이다.

탁―

잠깐의 정적 후, 후에이가 먼저 움직였다. 그가 땅을 박찼다. 순식간에 거리가 좁혀졌다. 여자의 머리를 향해 칼을 내리쳤다.

챙!

두 칼날이 맞부딪쳤다. 주변의 공기가 뒤틀렸다. 버프를 둘렀기에, 이번에는 밀리지 않았다. 그는 자신감을 가지고 다시 칼을 휘둘렀다.

챙! 채―앵!

두 합이 지나가는 순간, 지수는 사이드 스텝을 밟았다. 옆으로 돌아나가며, 후에이의 칼날 가동 범위 밖으로 빠져나가려는 움직임이었다.

챙! 채―앵! 카가강!

두 번 부딪친 이후 칼날이 맞붙었다. 금속이 짓이겨지며 불똥이 튀는 순간, 지수가 다시 한 번 움직였다. 역시나 왼쪽으로 사이드 스텝, 후에이의 몸을 기준으로 반원을 그리며 돌아나갔다.

“어디서!”

후에이가 백 스텝을 밟았다. 사각을 내주지 않으려는 움직임이었다. 이 작은 움직임만으로도 충분히 대응할 수 있었다. 분명 그래야만 했다.

슥―

그 순간, 지수의 움직임이 절묘하게 바뀌었다. 자세를 낮추며 반대로 움직였다. 후에이의 눈이 그 움직임을 따라갔다. 하지만 너무나 절묘하고 정확했다.

분명 파악했건만, 마치 흐르는 물을 잡을 수 없는 것처럼, 눈 뜨고 코 베이는 격으로, 지수의 칼날이 후에이의 옆구리를 그어버렸다.

촤악!

“크윽!”

피가 왈칵 쏟아지며 후에이가 비틀거렸다.

“제, 젠장 어떻게······.”

지수가 칼날에 묻은 핏물을 휙휙, 털어내더니, 여전히 담담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더 늦기 전에 부하들도 불러오지?”

그리고 그게 그녀의 첫 마디였다.

또 다시, 방송 사고가 일어났다.

***

“버텨! 버텨라!”

“고, 골렘을 저지해!”

한편 A구역 인근, 해적단 본대와 네크로맨서가 맞붙은 전장은 여전히 거칠게 돌아가고 있었다.

아무리 죽여도 되살아나서 밀고 들어오는 건 물론이거니와, 트롤 스켈레톤들이 날려대는 거대한 새총은 투석기에 비견될 정도였는데, 명중할 경우 탱커들의 방패를 단숨에 으스러뜨렸다.

쾅! 쾅! 콰―앙!

시종일관 이어지는 시체 폭발로 인한 피해도 만만치 않았으며, 후방으로 침투 한 두 마리의 언데드 검사는 당최 쓰러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다 들었다! 너희들이 어떤 쓰레기 같은 짓을 했는지! 다 죽여주마!”

따―닥!

녹색 안광을 내뿜는 ‘데스 나이트’ 민석과 ‘고블린 스켈레톤’ 오른이였다.

둘은 적진 한 가운데에서 서로의 등 뒤를 지켜주며, 마법사들을 휩쓸고, 탱커들도 손쉽게 고꾸라뜨렸다.

“꼬마야! 너도 꽤 하는구나!”

딱딱!

“귀여운 녀석! 가자!”

민석은 가족을 지키기 위해 싸웠던 시절과 달라져 있었다. 이제는 강박적으로 뒤를 돌아봐야 할 일이 없기에, 그는 방패를 치켜세우고, 적진 깊은 곳을 향해 맹렬하게 돌진했다.

퍼석!

그리고 대검을 상하좌우로 거칠게 휘둘렀다. 그럴 때마다 발아래로 토막 난 시체가 쌓여갔다.

“으아아! 저, 저리가 악마야!”

중국인 마법사가 공포에 질린 채 소리를 질러댔다.

“악마? 그래,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는 악마가 될 수도 있다. 이 쓰레기들아!”

강렬한 신념을 바탕으로 적이라고 규정한 존재를 학살한다. 더 이상 등 뒤를 돌아볼 필요가 없어진 이후, 민석은 그야말로 죽음을 몰고 다니는 존재, ‘데스 나이트’로 거듭나는 중이었다.

촤르르!

민석의 방패에서 검은 사슬이 뻗어나가 적들의 몸을 동여매고 잡아 끌었다. 그렇게 무방비가 된 놈들을 향해, 오른이가 재빠르게 달려 들어가 칼을 휘둘렀다.

촤악!

오른이는 작은 체구에서 나오는 은밀한 기동력을 최대한 활용했다. 복잡한 전장의 누비며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튀어나왔다. 그리고 치명적인 일격을 날렸다.

설사 그 공격을 방어한다고 한들, 무기를 맞부딪치는 순간, 기름을 바른 것처럼 미끄러지며 균형을 잃곤 했다. 그렇기에 오른이의 후속 공격은 백이면 백 명중했다.

푹!

“왼쪽이 무너진다!”

“오른쪽에 시체가 떨어진다! 피해!”

쾅! 쾅! 쿠구구······

그렇게 총원이 3,321명에 달하던 해적단의 숫자는 빠르게 줄어들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탈출할 수 없는 미니 게임 속에서 전멸할 것만 같았다.

“버텨라!”

“조금만 더 버티면 버프가 들어올 거다!”

그럼에도 끝까지 버티고 있는 건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그 후웨이가 점령하러 갔으니 당연히 성공할 거라는 게, 자헌의 장담이자 해적단의 믿음이었다.

“후에이가 승리하면 우리도 승리할 거다!”

“후에이를 믿어!”

후에이가 누구던가? 숱한 고수들을 1대1 대결로 꺾으며 칼잡이 중에서는 최강자로 군림한 존재여다. 중국의 플레이어들이 붉은 혁명군을 싸잡아 욕하더라도 후에이만은 예외로 여길 정도였다.

“곧 B포인트의 버프가 들어올 거야!”

“그때까지 버텨! C포인트도 머지않았어!”

그리고 곧 후에이의 소식이 들려왔다. 그의 모습이 방송으로 생중계 되고 있었으니 실시간으로 알 수 있었다.

“후, 후에이가!”

누군가 목소리를 높였다. 치열한 전투 속에서도 그 음성만은 귀에 정확히 들어왔다.

“······죽었다!”

충격이었다.

불리한 전장의 유일한 버팀목이 쓰러졌다.

“뭐? 대체 누구한테!”

“하, 한국인 여자다! 후에이가 단 10합도 못 견디고 목이 잘렸다!”

“말도 안 돼! 그 후에이가!”

“다른 사람도 아니고 후에이가?”

마지막 희망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말도 안 돼 후에이가 당하다니······.”

그 소식을 접한 자헌 역시 눈앞이 아찔해졌다. 그의 앞으로 꾸안이 다가왔다.

“장군님, 2번 카메라가 당하는 바람에 앵글이 여기로 돌아왔습니다. 이제라도 방송을 조, 종료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계속 이렇게 당하는 모습을······.”

“안 돼! 여기서 끝내면······ 우리뿐만 아니라 우리 조직 전체, 천공장군님까지 끝장이다!”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었다. 마지막 방법은 단 하나, 이 자리에서 네크로맨서를 쓰러뜨리는 것뿐, 그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전장을 돌아보았다.

“네크로맨서······.”

핸드 캐논을 장전했다.

“네크로맨서! 어디 있느냐!”

쾅! 쾅!

그는 캐논을 난사하며 전장 한 복판으로 걸어 들어갔다.

“네크로맨서!”

그리고 나무 그림자 속에서 놈을 발견했다. 암녹색 로브를 걸친 리치, 한국 서버에서 영웅으로 통하는 존재, 네크로맨서였다.

“이리 와서 덤벼라! 나 붉은 혁명군의 지공장군, 자헌이 상대하겠다!”

“······.”

“네가 오지 않으면 내가 간다!”

쾅! 쾅!

그가 양손의 핸드 캐논을 연달아 발사했다. 네크로맨서가 뼈 방패를 생성해 막아냈지만, 뼈 방패가 산산조각 나며, 그의 몸이 뒤로 튕겨져 나갔다. 핸드 캐논의 위력을 일개 화살 따위와 차원이 달랐다.

철컥!

자헌이 핸드 캐논을 장전하며 용맹하게 나아가자 카메라가 그의 모습을 비추었다.

사실상 지금 이 장면이 마지막 희망이었다. 자헌이 네크로맨서를 한 발 물러나게 만든 것이다.

“한 방 더 먹여주마!”

자헌이 그렇게 외치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그의 몸이 나무 그림자를 밟는 순간······.

네크로맨서의 모습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어?”

그리고 등 뒤에서 살기가 느껴졌다. 바로 그곳에 녹색 안광이 떠올랐다.

성우가 ‘그림자 왕의 팔찌’를 사용하여 그림자에서 그림자로 순간 이동한 것이었다.

“장군!”

옆에 서 있던 꾸안이 먼저 반응했다. 그는 뒤에서 나타난 네크로맨서를 발견하고, 입을 벌리며 사자후를 발사할 준비를 했다. 사자후라면, 제 아무리 네크로맨서라고 한들 튕겨져 나갈 것이었다.

촤악!

하지만 네크로맨서가 더 빨랐다. 그의 거대한 낫이 서너 걸음 떨어진 꾸안을 스치고 지나갔다.

철퍽―

꾸안의 머리가 날아가며 선글라스가 진창에 처박혔다. 이어서 성우의 왼손이 자헌의 목덜미를 움켜쥐었다.

“으윽!”

자헌의 경추가 으스러지는 것 같은 통증을 느꼈다. 성우는 리치 버프, 점령 버프 등에 의해 엄청난 능력치 상승을 받고 있는 중으로, 현재 근력 수치는 무려 45였다.

버텨낼 수 있는 힘이 아니었다. 성우가 자헌의 머리를 흙바닥 위에 내리꽂았다.

퍽―

“억!”

전장의 한 가운데, 자헌은 핸드 캐논을 놓친 채 완전히 제압당했다.

성우의 주변으로 민석과 오른이가 다가와 주변을 경계했다. 그게 아니더라도 섣불리 다가오는 해적은 없었다. 함부로 다가갔다가는 자헌의 목숨이 위험한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자, 장군······.”

“이제 어떻게 하, 하지?”

하물며 카메라 오퍼레이터마저 완전히 굳어버린 채, 여전히 이 장면을 찍고 있었다. 그의 손이 벌벌 떨렸다. 방송을 종료하는 게 옳겠지만, 지금까지 명령만 따라왔기에 스스로 판단하는 게 불가능했다.

“카메라가 찍잖아. 웃어.”

성우가 카메라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의 미소 아래로 무기력하게 찌그러진 자헌의 모습이 보였다.

붉은 피를 뒤집어쓰고 날뛰는 여자 검객에 이어서, 얼굴 절반이 뼈가 드러난 채, 녹색 안광을 번뜩이는 악마의 모습이 중국 서버에 중계되고 있는 것이었다.

“끄으으······.”

성우는 자헌의 목덜미를 발로 누르며, 그림리퍼를 들어올렸다.

그 순간, 자헌이 소리쳤다.

“자, 장군! 천공장군! 부디 하, 한국 땅에 오지 마십시오! 절대로! 절대로!”

그게 자헌의 한국 서버에 대한 감상이었다.

붉은 혁명군의 명성이고 뭐고, 이 땅에 함부로 발을 딛었다가는, 조직 전체가 와해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 값비싼 경험을 담은 처절한 유언이었다.

“아니야. 놀러 와.”

성우가 카메라 오퍼레이터를 바라보았다.

“거기, 이리 와. 아직 방송종료 하지 말고.”

그리고 이 지옥 같은 방송은 계속 될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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