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8
28) 강화도, 데스 매치 – 2
자헌은 한국 서버를 점령할 자신이 있었다. 자신의 아우인 ‘인공장군’이 당한 건 적들의 전력을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고, 자신은 다르다고 여겼다.
‘정보가 중요하다.’
자헌은 그런 신념으로 한국 서버 플레이어를 납치한 뒤, 온갖 정보를 캐냈다. 그렇게 얻은 정보를 통해 내린 결론은 명확했다.
“이길 수 있다.”
그렇기에 ‘천공장군’에게 자신을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당당하게 출사표를 던진 것이다.
“제 함대만 있으면 충분합니다. 장군께서는 대만을 정리하신 뒤, 천천히 오시면 안전하게 상륙할 수 있는 항구를 확보해두겠습니다.”
그렇게 자신감 넘치게 출전했건만······ 첫 전투에서 망신을 당하고 말았다. 해상에서 폭격을 당해 일방적인 전력 손실을 입은 것이다.
그러나 그 뒤에도 자신감은 꺼지지 않았다. 그에게는 여전히 ‘정보’가 있었다.
한국 서버에서 ‘히든 챕터’가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며, 그 때문에 한국의 플레이어들이 큰 피해를 입었다는 것도 눈치 채고 있었다.
“······장군, 걱정하지 마십시오. 비록 제가 안일하여 기습에 당했지만, 놈들은 우리의 대군에 맞설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렇기에 폭격 직후, 천공장군에게 걸려온 연락 앞에 당당하게 승리를 약속할 수 있었다.
또한 방심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강화도를 고립 시키는 ‘미니 게임’ 전략을 쓴 것 역시, 혹시 모르는 상황을 대비하여 최고의 전장을 선택하고, 최대한의 전력을 투입하기로 결정한 것이었다.
그런데 모든 게 틀렸다.
“······대, 대체 어떻게?”
어디서부터 잘못 된 것이란 말인가?
“분명 이 정도는 아니었다. 거대한 스켈레톤도 세 마리 정도에 불과하다고 했다. 놈들의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이나 사진으로 다 확인 했는데······.”
그들이 얻은 정보는 선유도에서 트롤을 상대하는 시점까지였다. 그 이후에는 네크로맨서의 행적이 커뮤니티 상에 직접적으로 노출된 적이 없었으니, 알아낼 수 있는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짧은 기간 동안 얼마나 달라지겠는가? 유의미한 변화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실제로 마주한 결과······.
“저, 전선이 밀리고 있습니다!”
“으아아아! 사, 살려줘!”
“오른쪽! 오른쪽에서 좀비가 몰려온다!”
상상 이상이었다.
네크로맨서는 폭발적으로 성장해 있었다. 하물며 B포인트와 C포인트를 점령하여 버프를 받은 상태이기에 언데드 한 마리, 한 마리가 엄청나게 강력해진 상태였다.
“말도 안 돼······ 그 짧은 기간 동안 이렇게 강해질 수 있다고? 무슨 수로?”
덜그럭! 덜그럭!
기괴한 모습의 언데드들이 점점 더 가까워졌다. 그중에서 가장 큰 골칫거리는 ‘골렘’이었다.
“저건······ 정령술사 계집이 부리던 것과 비슷한데······.”
절퍽― 절퍽―
골렘은 총 두 마리였다. 크기가 약 10미터에 이르렀는데, 갯벌 흙이 재료로 보이는 물컹한 몸통은 웬만한 물리 공격은 모두 방어해냈다. 제 아무리 강하게 타격하더라도 그 진흙이 움푹 들어갈 뿐이었다.
“마법을 쏴!”
“소, 소용없어! 저건 골렘이라고!”
심지어 골렘이라는 종족 특성 상 마법 데미지를 80% 상쇄시키는 패시브를 가지고 있었다. 느리지만 절대적인 방어력을 가진, 굉장히 성가신 존재였다.
“하, 하늘을 조심해!”
“숙여!”
이어서 본 와이번과 괴조들이 머리 위로 날아들며 시체를 와르르 떨어뜨렸다.
쾅! 쾅! 쾅! 콰―과―과―광!
그리고 거대한 폭발이 일어나며 산의 한쪽 경사면이 통째로 증발했다. 그 폭발에 휩싸인 병력만 수백에 달했다. 하물며 산사태가 일어나며 탱커들을 덮쳤다.
“아······.”
자헌의 입이 서서히 벌어졌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쿵! 쿵! 쿵! 쿵!
폭발이 휩쓸고 지나간 뒤, 본 드레이크가 내리막길을 내달리며 막무가내로 밀고 들어왔다.
“저건 대체 뭐지?”
“저 정도 괴물이면 보, 보스 몬스터 급 아니야?”
그리고 그 정도 사이즈의 괴물은 전방의 탱커들이 저지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고, 너무나 쉽게 돌파를 허용하고 말았다.
“젠장! 놈의 다리를 얼려라!”
마법사들은 본 드레이크를 죽이는 게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했다. 최후의 방법으로 다리를 향해 빙결 마법을 난사했다. 그러자 다리 뼈 사이, 관절에 얼음이 돋아나며 본 드레이크의 속도가 느려지기 시작했다.
“됐다!”
그렇게 그 거대한 괴물을 저지하는데 성공한 듯 했다.
“자, 꼬마야 가자!”
하지만 그 순간, 본 드레이크의 등 뒤에서 무언가 뛰어내렸다. 그건 ‘해골 기사’와 ‘고블린 스켈레톤’이었다.
촤악! 촤악!
“뭐야! 윽!”
“컥!”
“태, 탱커들을 불러!”
두 검사가 종횡무진 뛰어다니며, 탱커의 보호에서 벗어나 있는 마법사들을 도륙하기 시작했다.
“마법사들을 지켜라!”
결국 전방에 포진해 있던 탱커들이 급히 후방으로 움직였다. 그 순간, 나무 그림자 속에서 리치가 나타났다. 그리고는 탱커들의 옆구리를 향해 석궁을 난사했다.
픽! 픽! 픽! 픽! 픽!
방패를 내린 채, 무방비 상태로 달려가던 탱커들은 장대비처럼 쏟아지는 화살을 그대로 뒤집어썼다. 제 아무리 체력이 좋다고 한들 견뎌낼 수 없는 화력이었다.
“저 놈이 네크로맨서다! 잡아라!”
“저 새끼만 죽이면 돼!”
그들은 네크로맨서를 발견하자 눈이 뒤집혔다. 놈만 잡으면 된다. 그럼 이 모든 언데드를 상대할 필요 없이, 손 쉽게 이길 수 있는 걸, 그들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네크로맨서의 모습은 그림자 속으로 스며들 듯, 눈앞에서 사라져버리는 게 아닌가?
“뭐야? 안 보여!”
“어? 어디 갔지?”
그리고 다음 순간, 10여 미터 떨어진 그림자 속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탱커들의 등 뒤였다.
“어?”
“어, 언제?”
후―웅!
그가 오른 손을 크게 휘둘렀다. 거대한 낫이 일대를 휩쓸며 광풍이 일어났다.
촤아아아!
동시에 4개의 머리가 하늘로 치솟았다.
이어서 왼손을 들어올렸다. 이번에도 석궁이었다. 방아쇠를 잡아당기며 일대를 한 바탕 긁어대자, 그 뒤에 있던 마법사 대여섯 명이 단숨에 나가떨어졌다.
자헌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핸드 캐논을 장전했다. 지금 상황을 대변하듯, 그의 표정은 험악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하지만 그는 이성을 되찾았다.
“버텨라! 버텨야 된다! 나머지 두 곳을 점령하기 위해 살수들이 움직였다!”
이건 한 번의 전투로 갈릴 싸움이 아니었다. 미니 게임의 규칙 아래에서 A, B, C 모두를 점령할 시, 압도적인 버프를 받을 수 있었다.
‘바로 그곳에서 승부가 갈린다.’
그렇기에 자헌은 낙담하지 않았고, 상황을 냉철하게 분석하려고 노력했다.
“저런 사기적인 스킬에 제한이 없을 리가 없다.”
자헌이 보기에, 네크로맨서의 스킬에는 시간제한이 존재할 것이며, 그렇기에 이렇게 쉴 틈 없이, 거칠게 밀어 붙이고 있는 게 분명했다.
“꾸안! 최대한 충돌을 피하면서 견제하고 전선을 조금씩 후퇴시켜라. 장기전이 되면 우리가 유리하다.”
“예! 곧장 전달하겠습니다.”
이내 꾸안이 선글라스를 벗더니, 숨을 크게 들이키며 양손을 입 앞에 모았다. 그리고는 있는 힘껏 함성을 내질렀다.
“적을! 저지하며! 전선을! 조금씩! 뒤로! 당긴다!”
엄청난 육성이 전장을 한 바탕 휩쓸며 지나갔다. 사자후였다. 그러자 곳곳에 포진한 간부들이 꾸안의 목소리를 복창하며,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전달하기 시작했다.
철컥―
자헌은 두 개의 핸드 캐논을 뽑아들었다. 그리고 앞으로 걸어 나가며, 전방의 언데드를 향해 조준했다.
펑! 펑!
이백여 미터 앞, 전진해오던 트롤 스케렐톤 두 마리가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사자의 권역’에 의해 곧장 되살아나야 정상이지만, 어쩐 일인지 부서진 채, 그대로 굳어버렸다.
자헌은 슬며시 미소를 뗬다.
“먹히는군.”
자헌의 ‘빙결 탄환’에 의해서 스켈레톤 파편들이 얼어붙으며 재결합되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건 꽤나 고무적인 장면이었다.
네크로맨스의 언데드 무리가 전선을 밀어 붙이고 있었지만, 놈들의 숫자는 100마리도 안 되어 보였다. 그렇기에 일부를 행동 불능으로 만드는 것만으로도 크나큰 전력 손실을 입힐 수 있다.
즉 부활하지 못하기 결박시켜버리는 게, 죽음이 통하지 않는 네크로맨서의 공략법이 될 수 있었다.
그는 지근거리까지 다가온 골렘을 조준했다.
“눈보라 소사!”
콰―과―과―광!
핸드 캐논이 백색 탄환을 뿜어냈다. ‘눈보라 소사’라는 스킬 이름처럼, 수십 발의 탄환이 쏘아져 나가 골렘을 두들겨댔다.
쩌저저—
그러자 골렘의 몸뚱이가 차갑게 식더니, 이내 딱딱하게 얼어버렸다. 수분이 잔뜩 섞인 갯벌 진흙이었기에 냉각이 훨씬 빨랐다.
그 앞으로 꾸안이 달려가며 선글라스를 벗더니, 우레와 같은 사자후를 내뱉었다. 그러자 골렘의 얼어붙은 몸뚱이가 산산조각 나며 흩어졌다.
“얼려라! 뼈를 얼려서 재조합되지 않게 만들어라!”
여전히 불리했지만, 자헌은 확실한 가능성을 보았다.
‘좋아. 된다. 이렇게 버티면서 살수들이 B와 C를 점령하면 우리가 밀어낼 수 있다.’
3곳을 모두 점령할 시 얻을 수 있는 버프는 그 정도로 막강했다. 그리고 네크로맨서를 이곳에 묶어두는 한, B와 C를 점령하는 건 시간문제나 다름없었다.
“꾸안! 꾸안!”
그는 서둘러 부하를 찾았다.
“예! 장군!”
“뭐하고 있나? 중국 서버에 중국인이 학살당하는 장면을 보여줄 생각인 건가?”
“예?”
꾸안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분명, 여전히 최악의 상황이 펼쳐지고 있었으며, 그걸 지켜보는 12만 명의 시청자들 역시 한탄과 비난의 메시지를 쏟아내는 중이었다.
“아!”
이들의 목적은 전투 승리인 동시에, 그 영광스러운 과정을 중국 서버에 과시하고 홍보하는 것이었다. 이런 장면은 좋지 않았다.
“카메라 돌려! 2번으로! 살수들이 활약하는 장면을 보여준 뒤에 전세가 넘어 왔을 때 다시 가져와! 좋은 장면만 내보내란 말이야!”
“아! 예!”
꾸안은 서둘러 핸드폰을 켰다. 그리고 중계 카메라를 1번에서 2번으로 설정했다.
치지직—
이내 방송 화면이 다른 지역에 위치한 카메라 시점으로 교체되었다.
그러자 채팅창에서 온갖 항의 메시지가 떠오르며 난리가 났다. 방금까지 치열한 전장이 중계되던 화면을 밀어내고, 고요한 숲속 풍경이 펼쳐졌으니 그럴 만도 했다. 순식간에 1만 명의 시청자가 사라졌다.
짹짹― 짹짹―
이질감이 느낄 정도로 분위기가 급반전 되었다. 새소리가 들려오는 가운데, 복면을 쓴 살수들이 수풀 사이로 은밀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여기는 2번 카메라, 현재 B포인트 습격이 진행 중입니다. 이곳은 아주, 아주 조용합니다.”
B포인트의 ‘카메라 오퍼레이터’가 작게 속삭였다. 그는 산의 비탈길에 숨어서 어딘가를 비췄다.
그곳은 파란 깃발이 있는 잔디 광장이었다.
“보이십니까? 저기가 B포인트입니다. 우리 뒤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이곳은 곧 우리가 장악할 예정입니다. 승리를 위한 첫 번째 발자국이죠.”
카메라가 어딘가를 확대했다. 파란 불빛을 쏘아 올리는 깃발 너머, 나무 뒤에 누군가 서 있었다.
빨간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여자였다. 나름 몸을 숨기고 있는 것처럼 보였는데, 이들은 뛰어난 살수인 만큼, 이미 그 위치를 포착하고 있었다.
“B포인트를 지키는 병력이 고작 저 여자 한 명이라면 믿으시겠습니까? 그 한국인들이 다급하게 우리 본진을 공격하기 위해서 뒤는 완전히 비워놨군요?”
그는 킬킬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우리의 작전은 특공대를 이용한 후방 점령인데, 우리가 완전히 허를 찌른 것 같습니다.”
카메라에는 사방을 두리번거리는 여자의 얼굴이 잡혔다. 어딘가 불안해보였다.
“심지어 저 여자는 자신이 완벽하게 숨었다고 착각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정말 안타깝게도 놈들은 미니 게임의 규칙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카메라 오퍼레이터는 또 다시 킬킬거렸다.
그러자 불만을 표출하던 채팅창에서조차 이에 동조하며, 한국인들은 멍청하다는 반응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시청자들 역시, 같은 중국인이 승리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이곳의 상황은 방금 전과는 다르게, 유리하게 흘러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상대의 주력을 밖으로 끌어낸 뒤, 후방의 주요 거점에 침투하는, 매우 전략적으로 보일 법한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으흐흐······ 여러분, 이게 바로 대륙의 힘과 지혜입니다. 우리 붉은 혁명군이 대륙의 이름을 세계에 떨치고 있습니다. 우리를 믿으세요.”
중국 서버의 시청자들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짜릿한 상황 속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이들의 계획대로 ‘붉은 혁명군’을 응원하는 메시지가 하나 둘 씩 올라오기 시작했다. 이게 바로 선전의 효과였다.
“자자, 여러분 잘 보십시오. 이제 누가 나올지 아십니까? 중국 2서버의 최고의 무사, 후에이와 살수들이 은신 상태로 접근 중입니다.”
여기에 유명인의 이름까지 나오자 채팅창이 훨씬 더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후에이’는 중국 서버에서 인기가 많은 유명 인사로, 대륙 최강의 무사로 불렸다. 붉은 혁명군이 욕을 먹더라도 후웨이는 그 명단에서 제외될 정도였다.
“지근거리까지 갔는데, 안 보이시죠? 역시 후웨이! 자 이제······.”
촤악! 촤악!
그가 말을 마무리하기 전, 무슨 일이 벌어졌다. 카메라는 여전히 고정 된 채, 그 곳을 비추고 있었다.
“······어?”
붉은 옷을 입은 여자가 칼을 빼들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 목덜미, 칼날이 피로 붉게 물들어 있었고, 그녀가 기대고 있던 나무에 긴 상흔이 여러 개 그어져 있었다.
“······.”
그리고 그 아래로 토막 난 시신들이 보였다.
“어, 그러니까······.”
붉은 옷을 입은 여자가 카메라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눈동자는 생기와 살기를 넘어서 어딘가 공허했다.
방송을 보고 있던 10만 명의 중국 서버 플레이어가,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조, 좆 됐다.”
자헌이 장담하고, 방송에서 연출 되었던, B와 C를 점령하겠다는 작전이······ 그 모든 장면들이 물거품이 되는 순간이, 생중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