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3
26) 김포국제공항 회전(會戰) - 3
성우의 기습 직후, 동맹군 진영에 대한 오크들의 공세가 확연하게 줄어들었다.
시스템 상, 놈들의 최대 목표는 ‘대규모 흑마법’의 완성인 만큼, 주문을 준비 중인 오크 로드를 지키기 위해서 본능적으로 몸을 돌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안심하기는 아직 일렀다.
“노, 놈들이 돌아갑니다!”
“네크로맨서에게 모든 공격이 집중 됩니다!”
오크 병력이 회군하여 성우를 공격하러 갔다. 성우가 실패하면 동맹군도 실패한다.
“전군! 지금부터 발리스타를 차지한다! 돌격!”
정훈의 명령에 동맹군의 진영이 해체되었다. 그리고 돌아가는 오크들의 뒤를 따라 맹렬하게 추격하기 시작했다.
첫 번째 목표물은 공성병기 ‘발리스타’였다. 도르래로 작동 되는 저 무식한 대형 석궁은 단 한 방만으로도 트롤 스켈레톤을 박살낼 수 있는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 동맹군의 방패 벽을 부수기 위해 전진해온 상태였으니, 동맹군의 지근거리까지 당도해 있었다.
“우아아아!”
“돌격!”
“저 흉물을 빼앗아라!”
플레이어들은 함성을 내지르며, 회군하는 오크들의 등 뒤를 노렸다.
일부 오크가 돌아서서 맞서기도 했지만, 오크 로드가 기습당하며 지휘 체계가 붕괴된 모양인지 우왕좌왕하며 손쉽게 각개격파 당했다.
“죽여! 죽여!”
“더러운 오크 새끼들!”
플레이어들은 오크들의 등에 화살을 쏘아대며 승기가 어느 정도 넘어왔음을 직감했다.
“거의 다 왔다! 발리스타를 장악하라!”
크루세이더 팀을 필두로 한 맹렬한 돌격 끝에 첫 번째 목표물에 다다랐다.
덜그럭! 덜그럭!
사륜 바퀴 위에 얹혀진 4미터짜리 대형 석궁이 자리를 잡고 사격 준비를 끝마친 상태였다. 도르래가 돌아가며 시위를 팽팽하게 잡아당겼다.
투―웅!
크루세이더 팀이 도달하기 직전, 발리스타가 거대한 강철 창을 발사했다.
“젠장! 서둘러!”
직경 2미터짜리의 강철 창이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 트롤 스켈레톤을 가슴을 관통했다. 그 거구가 단숨에 무너져 내렸고 그 사이로 오크들이 뛰어 들어가는 게 보였다.
하지만 그게 마지막 한 발이었다.
촤악! 푹!
크루세이더 팀이 사수들을 처리했으니 말이다.
“한 대 확보 완료!”
“저기 오른쪽에 두 대가 더 있다!”
플레이어들은 바쁘게 움직이며 오크 잔당을 처리하고 발리스타를 확보해나갔다.
오크 몇 마리가 정신을 차리고 발리스타를 되찾기 위해 돌아섰지만, 종전과 같은 압도적인 숫자로 밀어 붙이지 않는 이상 플레이어들의 포지션을 깰 수 없었다.
“어림도 없다!”
“장전해! 우리도 한 방 먹이자!”
플레이어들이 기세등등하게 맞서는 사이, 궁수 플레이어들이 발리스타를 조작하기 시작했다. 금방 조작법을 깨우친 뒤, 달려드는 오크들을 향해 시위를 당겼다.
투―웅!
거대한 철창이 지면과 수평으로 발사됐다.
퍼―버―벅!
그리고 그 단 한 방만으로도 십여 마리의 오크들이 휩쓸려나갈 정도였다.
“대, 대박인데! 계속 쏴!”
“이제 발리스타를 지켜라!”
이대로 가면, 이대로만 가면 기적적인 승리가 가능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변수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발생했다.
“······어? 뭐, 뭐라고? 무슨 말이야 그게!”
민흠이 뒤로 빠지더니 무전기 아이템을 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무슨 일인지 그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커, 커맨더!”
그러더니 황급히 정훈을 찾기 시작했다.
“무슨 일입니까?”
“마법 드론 감시팀 쪽에서 보내온 무전입니다! 지, 지금 북쪽에서······.”
크루세이더 팀은 ‘마법 드론 감시팀’이란 걸 운용하고 있었다.
마법사 2명이 인근의 안전 장소에서 감시 작전을 수행하는 것이었는데, 마법 드론으로 일대를 주시하며 전장 흐름과 변수를 전달해주는 등, 전투에 지대한 도움을 주었다.
방금도 무언가를 발견하고 알려온 것이다.
민흠이 입을 열었다.
“······와이번 무리가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답니다.”
“······.”
민흠의 보고에 정훈 역시 당황을 숨기지 못했다.
“와, 와이번이라고요?”
몇 시간 전, 동맹군을 스쳐지나가 북쪽으로 올라갔을 거라고 예상했던 와이번 무리가 다시 나타난 것이다.
그것도 승기가 거의 넘어온 순간에 말이다.
“어, 얼마나 가까이에 있다고 합니까?”
“현재 최대 3킬로미터 근방을 감시중인 상태이니······ 금방입니다. 곧 나타날 겁니다.”
전장의 소음을 듣고 오는 걸까? 와이번들이 이 근처를 우연히 지나가고 있을 거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설마 그렇다고 한들, 이 번잡하고 시끄러운 전장을 못 보고 지나가기라고 기대하는 것도 무리였다.
놈들이 반드시 이곳에 나타난다.
“······.”
정훈은 잠시 눈을 감았다. 이내 눈을 뜨며 전장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소리쳤다.
“전원! 후퇴하라! 당장 건물 안으로 대피하라!”
와이번이 당도한다면 플레이어와 오크 구분할 것 없이 싹 다 잡아먹으려고 할 것이었다.
사실상 전장의 승패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아진다. 목숨을, 미래를 위한 전력을 보존하는 게 옳았다.
“······어? 그게 무슨”
“갑자기 후퇴라니?”
상황을 모르는 플레이어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명령을 전달하기에는······ 와이번들이 너무 빨랐다.
- 필드 보스 ‘와이번 알파메일’이 출현했습니다.
활주로 위로 거대한 그림자들이 줄지어 나타났다. 난데없이 그림자를 뒤집어 쓴 이들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 어어?”
“미친! 와, 와이번이다!”
광풍을 몰고 온 피막의 날개들이, 검은 장막처럼 북쪽 하늘을 가득 매웠다.
후우웅!
한두 마리가 아니었다. 한 순간, 하늘 반쪽이 어둠에 뒤덮일 만큼 엄청난 숫자의 와이번들이 쏟아져 나왔다.
카아악!
긴 목에서 터져 나오는 끔찍한 괴성이 전장 위에 거칠게 내려앉았다. 세로로 길게 찢어진 눈동자에는 원초적인 탐욕만이 가득했다.
두 종족이 운명을 걸고 벌인 치열한 대회전이었지만, 저 괴물들에게는 잘 차려진 식탁에 불과했다.
“아악! 도망가!”
“놈들이 내려온다!”
카아악!
와이번이 날개를 접고 강하했다. 그리고 거대한 발톱을 앞으로 내밀며 전장을 한바탕 스쳐지나갔다. 놈이 다시 홰를 치며 날아올랐을 때, 두 개의 발톱 사이에는 플레이어와 오크가 한 움큼씩 붙잡혀있었다.
“······커어! 사, 살려줘!”
누군가의 비명이 공중으로 치솟았다.
카악! 카악!
사냥에 성공한 와이번이 공중으로 날아올라가던 중, 다른 개체와 부딪치며 사냥감들을 놓쳤다. 세 명의 플레이어가 허공으로 흩뿌려졌다.
“으아아아!”
“아악! 아악!”
그 순간, 와이번들이 개떼처럼 날아들더니, 먹이를 차지하기 위해서 몸싸움을 벌여댔다. 놈들의 입과 입 사이를 오고 가며, 플레이어들의 연약한 육신이 산산 조각났다.
성우 역시 그 장면을 포착했다.
- 군벌 몬스터 ‘오크 로드’를 사냥하여 900,000골드를 얻었습니다.
그는 혈투 끝에 오크 로드의 심장에 칼을 쑤셔 넣는데 성공했지만, 아이템을 확인할 틈조차 없었다.
“······가지가지 하는군.”
이쯤 되면 이 타이밍에 와이번을 보낸 것도 시스템의 조작이 아닐까 의심이 될 정도였다. 성우는 본 드레이크의 몸에 바짝 달라붙어 와이번 무리를 관찰했다.
카악! 카아악!
놈들은 전장의 상공을 까마귀 떼처럼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그러다가 순식간에 낙하하여 거대한 발톱으로 먹잇감을 채갔다.
툭― 툭― 투둑―
그렇게 올라간 직후, 온갖 부위의 살점이 낙하했다. 더불어 놈들이 토해내는 뼛조각들이 비처럼 쏟아지는 터에, 저 위에서 거친 식사가 벌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놈들의 관심은 오로지 먹이에만 향해 있었다.
“아무거나 다 처먹으면 안 된다는 걸 알려줘야겠어.”
가만히 앉아서 먹이가 될 생각은 없었다.
성우는 ‘좀비 괴조’를 소환하여 오크 시체 두 구를 집어들게 한 뒤, 와이번 무리를 향해 날려 보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정훈을 찾았다.
“정훈 씨!”
정훈은 대피를 지휘하던 도중 성우의 목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렸다.
“발리스타! 발리스타를 준비하세요!”
성우는 그렇게 외치며 검지로 하늘을 가리켰다. 정훈은 순간 당황한 듯 했지만, 이내 궁수 계열의 크루세이더 팀을 지휘하여 발리스타를 장전하게 했다.
덜그럭― 끼릭― 끼릭―
세 명의 대원이 달라붙어 방향을 틀고, 도르래를 돌려 장전했다. 언제 먹잇감으로 전락할지 모르는 상황 속에서도 최대한 침착함을 발휘하고 있었다.
성우는 그 사이, 괴조를 컨트롤하여 가장 낮게 날고 있는 와이번의 주둥이로 접근하게 했다.
“물어라, 물어······.”
카악! 꽈득!
놈은 아무 의심도 없이 눈앞에 날아든 먹이 꾸러미를 덥석 물었다. 그게 미끼라는 걸 알 턱이 없었다.
성우가 작게 중얼거렸다.
“폭발.”
펑! 펑! 펑!
놈의 주둥이가 다물어지는 순간, 허공에서 폭발이 일었다. 그 폭음 때문에 와이번 무리의 비행 궤도가 눈에 띄게 높아졌지만, 단 한 마리, 폭탄의 쓴 맛을 본 놈의 고도가 급격하게 낮아지기 시작했다.
칵― 카아아······
놈의 머리가 축 처졌다. 그 충격에 몸을 가누지 못하는 듯 했다. 이내 균형을 잡지 못하고는 오르락내리락 불안한 비행을 펼치더니 천천히 추락하기 시작했다.
그 뜻은, 발리스타의 사정거리에 들어왔다는 소리였다.
“지금이에요! 쏴요!”
투―웅! 투―웅!
성우의 외침에 발리스타 두 대가 강철 창을 쏘았다. 한 발은 놈의 목덜미를 스치고 허공으로 사라졌지만, 한발이 놈의 가슴팍에 명중했다.
퍽!
결코 버틸 수 없는 데미지였다. 놈은 날개를 접고 수직으로 추락했다. 그리고 놈이 땅에 떨어지기 직전, 본 드레이크가 달려들었다.
쿵! 쿵! 쿵!
거대한 주둥이로 놈의 목덜미를 낚아챈 뒤, 머리를 뒤흔들며 단숨에 숨통을 끊었다.
- ‘와이번’을 사냥하여 754,030골드를 얻었습니다.
그 장면을 바라본 이들은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서, 성공이다! 자, 잡았어!”
“네크로맨서가 와이번을 사냥했다!”
절대 잡을 수 없을 것 같았던, 이 지옥 같은 생명체를 사냥하는 순간이었으다.
하물며 단일 개체치고는 엄청난 양의 골드가 들어왔다. 일개 레이드 보스 정도의 양이었다.
그러나 성우가 원하던 건 골드가 아니었다.
- 당신의 권능 아래 망자가 권속(眷屬)됩니다.
와이번이 긴 목을 일으켜 세우고 축 쳐져 있던 날개를 서서히 펼쳤다. 그리고 뒤집어졌던 눈깔이 원 위치되며 녹색 안광이 점등했다.
‘본 와이번’의 탄생이었다.
성우는 그 뒤에 올라탔다.
“아저씨 타세요!”
“어? 아, 예!”
성우의 부름에 민석까지 올라탔다. 거대한 생명체의 등은 넉넉잡아 일곱 명은 탈 수 있을 만큼 널찍했다.
이어서 성우는 구울 4마리를 소환하여 와이번의 등 뒤에 매달리게 했다. 녀석들은 늑골을 붙잡고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았다.
“날아!”
후웅―
장막의 날개가 활짝 펼쳐졌다. 날개가 한 번 움직이자 공중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후웅― 후웅―
제 자리에서 단 세 번 홰를 쳤음에도 십여 미터 상공까지 치솟았고, 그 이후부터는 기하급수적으로 빠르게 상승하기 시작했다.
후우우―
그리핀과 또 다른 승차감이었다. 그리핀이 날카로운 스포츠카라면 와이번은 오프로드 사륜차 같은 느낌이었다. 거칠면서도 어딘가 안정감 있었다.
“이번에는 와이번 사냥입니까?”
민석이 물었다. 그는 녹색 안광을 번뜩이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저런 끔찍한 괴물들을 향해서 날아가면서도, 이미 죽음을 경험했기 때문인지 일말의 공포심도 없어보였다.
“놈들에게 사냥 당하는 느낌을 전해주죠!”
수직 상승하던 ‘본 와이번’이 왼쪽으로 급선회했다. 그러자 발밑으로 혼자 떨어져 있는 와이번 한 마리가 눈에 들어왔다. 놈은 먹잇감을 향해 하강하고 있었다.
“저 놈이다.”
성우에게는 놈이 바로 사냥감이었다. 그는 본 와이번으로 하여금 놈에게 접근하게 했다. 정확히는 놈의 머리 위, 등을 노릴 수 있는 위치로 움직였다.
카아아!
놈의 지근거리까지 접근하자 옆구리에 매달려 있던 구울들이 몸을 날릴 준비를 마쳤다.
“아저씨! 날개를 잡아요!”
성우의 명령과 동시에 민석이 왼 손을 내밀었다.
촤르륵!
검은 사슬 두 줄기가 뻗어나가 와이번의 왼쪽 날개를 휘감았다.
카악!
순간적으로 한쪽 날개가 묶이자 놈의 몸이 기울어지며 속도가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꺼―윽!
그리고 그 위로 구울들이 몸을 날렸다. 녀석들은 특유의 날렵함으로 수백 미터 상공에서 목표 지점에 정확하게 착지했다.
카악! 카악!
와이번은 난생처음 겪는 상황에 괴성을 지르며 몸을 뒤틀어댔지만, 구울 4마리는 와이번의 가죽에 손톱을 박아 넣고 진드기처럼 버텼다.
그리고 조금씩 기어 올라가 목덜미 등, 급소가 될 수 있는 부위를 공략하기 시작했다.
“제가 마무리하겠습니다!”
민석이 그렇게 소리치며, 몸을 날리는 동시에 왼손의 사슬을 잡아당겼다. 그리고 와이번의 등 뒤에 착지했다.
그는 마치 파도를 타는 것처럼, 한 손으로 줄을 붙잡고 무릎을 구부린 채 균형을 잡았다. 그리고 앞으로 조금씩 나아가며 대검을 뽑아들었다.
그 순간, 성우의 머리맡에 그림자 하나가 드리웠다.
카아악!
“젠장!”
이번에는 역으로 등을 잡힌 것이다. 거대한 발톱이 성우의 머리를 향해 낙하했다. 성우는 본 와이번을 조종해 즉시 왼쪽으로 급선회하게 했다.
후우우!
속도가 감소하며 왼쪽으로 크게 돌아나갔다. 아슬아슬하게 발톱을 피해냈다.
하지만 공중전이 으레 그렇듯 한 번 뒤를 잡히면 벗어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머리 위의 그림자는 집요하게 따라붙었다.
픽! 픽! 픽! 픽!
리피팅 크로스보우를 뒤로 들어 올려 난사했지만 소용없었다. 거대한 와이번에게는 유의미한 데미지가 들어가지 않았다.
- 와이번을 사냥하여 850,000골드를 얻었습니다.
- 자격 증명까지 남은 시간 : 3,702일
민석이 사냥에 성공한 모양이었다. 성우는 고개를 돌려 추락 중인 와이번 한 마리를 바라보았다.
- 당신의 권능 아래 망자가 권속(眷屬)됩니다.
힘없이 추락하던 녀석이 다시금 날개를 펼쳤다. 새로운 힘과 새로운 주인을 얻은 것이다.
카아악!
하지만 그쪽을 신경 쓸 틈이 없었다. 칼날만한 발톱이 날아들었으니 말이다. 본 와이번이 날개를 접고 급하강했다. 발톱이 본 와이번의 꼬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나와라.”
성우는 거친 바람을 맞으며 본 와이번의 등 뒤에 스켈레톤 한 마리를 소환했다.
딱딱―
오른이는 소환 되자마자 맞이한 거침 바람에 몸을 웅크리며, 날아가지 않게 본 와이번의 뼈를 붙잡았다.
“가라.”
하지만 성우의 한 마디에 뼈를 붙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오른이의 작은 몸뚱이가 바람에 휩쓸려 뒤로 날아갔다. 녀석은 그와 동시에 등 뒤에서 칼을 뽑아들더니, 허공에서 몸을 빙그르 돌렸다.
딱―
그리고 뒤따라오는 와이번과 마주했다. 그 거대한 아가리가 날아들었다. 물리는 순간 가루가 될 것이었다.
딱!
하지만 오른이는 구부렸던 몸을 펼치며, 그 탄력으로 녀석의 이빨을 피해냈다. 이어서 놈의 머리통을 스쳐지나감과 동시에 칼을 휘둘렀다.
촤악!
오른쪽 눈을 정확히 베었다.
카아아아!
그리고 놈의 목에 부딪친 뒤, 등 쪽을 스쳐지나가 칼을 내리꽂았다. 단단한 비늘을 뚫지는 못했지만, 어깨부터 꼬리까지 브레이크처럼 긁어댄 끝에 아슬아슬하게 걸칠 수 있었다.
카아아!
그리고 눈을 베어버린 일격 덕에, 성우의 뒤를 맹렬하게 쫒던 놈이 방향 감각을 잃고 말았다. 꼬리를 물고 늘어지던 끈질긴 추격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 것이다.
놈은 머리를 뒤흔들어대며 몸부림쳤다. 그리고 신경질적인 날갯짓을 해대며 무리 속으로 섞이려고 했다. 그곳이 가장 안전한 곳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잡아.”
하지만 동족과 다른 냄새가 나는 존재가 먼저 접근했다. 녹색 안광의 본 와이번이 양쪽에서 덮쳐온 것이다. 한쪽 눈을 잃은 상태이기에 그 압박을 벗어날 수도 없었다.
- 와이번을 사냥하여 850,000골드를 얻었습니다.
- 당신의 권능 아래 망자가 권속(眷屬)됩니다.
그렇게 총 3마리의 ‘본 와이번’이 날개를 펼쳤다.
그러나 하늘의 지배자는 여전히 와이번이었다. 아니, 와이번 중에서도 ‘와이번 알파메일’이 그 왕좌를 가지고 있었다.
크르르―
놈은 가장 높은 곳에서 날며 하늘과 땅을 모두 감시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이질적인 존재를 느꼈다.
분명 동족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다른 채취를 가진 존재였다. 그리고 그런 존재의 숫자가 하나에서 둘로, 둘에서 셋으로 늘어가고 있었다.
알파메일은 그것들은 위협으로 판단했다. 그리고 제거하기로 했다.
카악! 카아악!
놈은 포효하며 성우를 향해 달려들었고, 그 뒤를 따라 와이번들이 일제히 따라붙기 시작했다.
“이건 좀······ 위험한데요?”
민석의 말에 성우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제 생각도 그래요.”
와이번 무리의 틈바구니에 섞여서 따로 떨어진 놈들을 노리며 한 마리, 한 마리 잡아가는 건 가능했다만, 무리 전체와 전면전을 펼치는 건 불가능했다. 언뜻 봐도 서른 마리는 넘어보였으니 말이다.
‘따돌릴 수조차 없다.’
저 많은 숫자의 와이번을 비행만으로 따돌리는 건 불가능했다. 하물며 공황 인근의 건물은 층수 제한이 있어 낮은 편이기에, 빌딩 사이로 도망칠 수도 없었다.
단 한 마리에게 잡히는 순간, 수십 마리에 둘러싸인 채 벗어날 틈도 없이 허공에서 갈기갈기 찢겨질 것이었다. 무슨 수를 절대로, 절대로 놈들에게 잡혀서는 안 됐다.
‘쫓아내야 된다.’
또 다른 방법이 떠올랐다.
성우는 가방에서 아이템 하나를 꺼냈다. 그건 보온병 모양의 ‘심연의 호흡(단지)’였다.
덜컹―
그 뚜껑을 돌리자 검은 연기가 스멀스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생명체라면 절대로 호흡하고 싶지 않은 죽음의 향기였다.
- 심연의 호흡 방출 중 (4% 남음)
‘겨우 4퍼센트 남았다.’
두 차례 사용하며 그 용량이 거의 다 소진된 상태였다.
카아아!
“직선으로!”
수십 마리의 와이번이 성우를 향해 날아들었다. 마치 잘못된 수족관에 빠진 붕어 한 마리를 향해 수십 마리의 피라냐가 달려드는 것과 같은 꼴이었다.
성우는 본 와이번을 조종하여, 고도를 유지한 채 곧장 날아가게 했다. 본 와이번이 앞으로 쏘아져나가자 그 뒤로 검은 연기가 퍼져나갔다.
푸우우―
방역차량처럼, 생물을 죽이는 가스가 점점 더 넓게 번져나갔다. 그리고 성우의 뒤를 쫓던 와이번 무리 역시 그 연기에 파묻혔다. 그리고 그 순간······.
카악! 카악! 카악!
놈들이 반대로 날갯짓을 하며 물러섰다. 단번에 기절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검은 연기에 잠시 닿는 것만으로도 역겨운 모양인지 기겁을 하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후우우―
성우는 최대한 넓은 영역에 연기를 뿌리기 위해 지그재그로 비행을 했다. 그러자 거의 모든 하늘이 연기로 뒤덮였고, 연기를 뚫지 않고 쫓아올 루트 따위는 없었다.
와이번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연기가 없는 곳에서 정지비행을 했다. 닭 쫓던 개가 지붕 쳐다보는 것처럼, 입맛을 쩝쩝 다실뿐이었다.
“······됐다.”
마침내 알파메일이 방향을 틀어 돌아섰고, 놈을 따라 와이번 무리가 물러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끝났다.
“······이제 땅 좀 밟자.”
본 와이번 세 마리가 지상을 향해 천천히 내려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곳에는 네크로맨서의 수집물들이 고고하게 서 있었다.
본 드레이크, 오우거 스켈레톤, 구울 킹, 트롤 스켈레톤 등의 거대한 스켈레톤들이 전장의 한 복판에 우뚝 서 있었다. 그 위로 세 마리의 본 와이번이 겹쳐졌다.
“······저건 대체 무슨 조합이지.”
“지금까지 상대해온 괴물들이 한 자리에 모여 있네.”
동맹군의 플레이어들은 와이번을 피해 국내선 청사 안에 들어온 상태였다. 그들은 건물 밖, 핏빛으로 물든 활주로 위에서 벌어지는 퍼레이드를 바라보며 말을 잇지 못했다.
“······.”
정훈은 청사 밖에 선 채, 모든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생각에 잠겼다.
‘중국을 자신이 처리하겠다는 말은 오만이 아니었다.’
네크로맨서의 자신감에는 이유가 있었다.
‘그렇다면······.’
성우가 권유한 계획을 실행할 수 있었다.
네크로맨서가 작정하고 움직인다면 중국의 방해를 피하는 걸 넘어서, 놈들을 압박할 수 있을 지도 몰랐다.
그의 머릿속에서 중국의 해적 함대를 폭격하는 본 와이번 무리가 그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