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네크로맨서-71화 (71/244)

# 71

26) 김포국제공항 회전(會戰) - 1

“젠장, 하필 이럴 때 저런 게 나타나고 지랄이야······.”

민흠이 욕설을 내뱉었다. 그는 유리창 밖으로 머리를 슬쩍 내밀었다. 크루세이더 팀은 골목 사이를 거의 기어 다니다시피 오고가며 하늘을 감시하고 있었다.

“커맨더, 이제 근처에서 사라진 것 같긴 한데, 안전을 위해서라면 조금 더 대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숫자가 워낙 많으니, 멀리서도 감지하고 다시 돌아올 가능성을 배제하면 안 될 것 같습니다.”

“어쩔 수 없죠. 조금 더 대기합시다.”

공항대로를 통해 김포를 향해 진격하던 동맹군은 발이 묶이고 말았다. 공중에 뜬 채 경보기 역할을 하던 마법 드론 3대가 동시에 박살났는데, 그 원흉은 다름 아닌 와이번 무리였다.

결국 동맹군은 와이번의 눈을 피하기 위해 공항도로를 벗어나, 주변의 건물 안으로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다. 독수리의 울음소리에 굴을 파고 숨는 토끼 꼴이었다.

하물며 와이번은 독수리처럼 먼 거리의 사냥감을 포착할 수 있는 놈들이었다. 당장 머리 위에서 사라졌다고 해서 함부로 움직일 수도 없었다.

성우 일행은 건물 안쪽의 의자에 앉아 있었다.

“와이번 잡는 건 아직 무리겠죠?”

한호가 물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인 것 같아요.”

본인이 직접 대답했다.

성우 일행은 학교에 나온 직후 목격했던 그 생생한 공포를 잊지 못했다.

광풍과 함께 등장해 셔틀버스 한 대를 종잇장처럼 찢어발기고, 그 안의 사람들을 잡아먹던 괴물들을 말이다.

지수도 그때의 기억에 치를 떨었다.

“한두 마리면 모르겠는데 수십 마리가 떼로 몰려다니니 문제네요. 거기에다 하늘에 있으니······ 사실상 상대한 것 자체가 불가능할 거예요.”

필드 보스 ‘와이번 알파메일’과 그 휘하의 와이번들은 한국 서버 하늘의 지배자였다. 현 시점에서 가장 유용한 운송수단인 헬리콥터를 운용할 때도 가장 신경 써야 할 위험 요소로 와이번을 꼽았다.

그런 놈들이 이곳 상공을 스쳐지나간 이상 모든 작전을 올 스톱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하필이면 이럴 때 말이죠.”

오크 로드가 ‘대규모 흑마법’을 시전 중인 상황으로, 카운트다운이 계속되고 있었다. 동맹군은 눈앞에서 차곡차곡 떨어져가는 숫자를 보며 조급해질 수밖에 없었다.

“커맨더, 이제 다시 움직여도 될 것 같습니다. 놈들의 이동 속도를 생각했을 때, 지금쯤 한강 북쪽까지 벗어났을 겁니다.”

“좋습니다. 각 팀에 알리세요.”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모르는 ‘대규모 흑마법’ 완성까지 약 24시간 남은 시점, 동맹군은 이동을 재개했다.

그리고 4대 남은 마법 드론 중 2대를 후방으로 배치했다. 혹시나 와이번 무리가 선회하여 돌아올 때를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이봐, 날갯짓 소리 안 들리지?”

“괜찮을 거야. 드론으로 계속 감시하고 있다고 하잖아.”

“······그래도 쫄린다.”

건물에서 나온 뒤 행군을 이어가는 동맹군들은 시시때때로 고개를 들어 하늘을 확인했다. 머리 위에서 어떤 존재가 덮쳐올지 모른다는 공포감 때문이었다.

하지만 진짜 적은 정면에 있었다.

레드 오크, 놈들은 단순한 포식 관계인 와이번과 달리, 인간이 살아가고 있는 생태 근본을 뒤흔드는 침략자들이었다. 생존을 건 숙명의 대결인 셈이었다.

“방금 커뮤니티에 올라온 김포 지역 생존자의 증언에 따르면, 레드 오크가 등장한 이후 김포평야가 황무지로 변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동 중, 민흠이 리더들에게 보고했다.

“범람원 지역이라서 비옥하고 풀이 무성했던 지역인데, 하루아침에 황폐해지다니······.”

여의도가 습지로 변했던 것과 같은 현상이었다. 특정 지역에 어떤 몬스터 무리가 등장할 경우, 그 몬스터가 살기 적합한 환경으로 변화한다.

“그리고 놈들의 본대가 김포평야에서 빠져나와 김포국제공항 근처로 밀집하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군요.”

오늘 아침, 동맹군의 위치를 알고 기습을 해왔던 만큼, 동맹군이 김포를 향해 행군하고 있다는 사실 역시 눈치 챘을 것이었다.

그리고 이전의 전투를 통해서 시가지 같은 좁은 지역에서 전투가 불리하다는 걸 깨닫고는, 넓은 곳에서 동맹군을 맞이하려는 것이었다.

“대회전이라면 응수해줘야지요.”

회전(會戰), 두 진영이 정해진 장소에서 총력으로 부딪치는 전투였다. 전투를 즐기는 오크들이 가장 선호하는 싸움이자, 크루세이더 팀이 가장 활약할 수 있는 구도이기도 했다.

“오늘 아침의 기습처럼 놈들이 무슨 속셈이 있을지 모릅니다. 신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상하지 못한 한 방을 얻어맞은 뒤, 민흠은 오크들을 얕보지 않기로 했다.

“맞습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시간 내에 처리하는 게 가장 중요할 겁니다. 단계별로 깨 나가는 것보다 한 번의 싸움으로 결판을 내는 게 더 빠르겠죠.”

어느새 김포국제공항이 가까워졌다. 목동부터 걸어온 공항대로가 끝이 났으며 왼쪽으로 대규모의 실외 주차장이 펼쳐졌다. 그리고 하늘에 떠 있는 마법 드론의 시야 안에 공항의 활주로가 포착됐다.

그곳에 놈들이 모여 있었다.

“젠장 저게 놈들의 본대군요······.”

드론 카메라에 의해 비추어진 풍경은 경악 그 자체였다.

활주로 한쪽이 시뻘겋게 물든 채 꿈틀거리고 있었다. 엄청난 숫자의 레드 오크가 군집해 있는 것이었다. 그들 역시 동맹군의 접근을 눈치 챘는지 북을 두드리고, 함성을 내지르며, 깃발을 흔들었다.

그 사이에는 노예 트롤, 황무지 무소 등을 비롯한 괴물들이 도열해 있었으며 ‘발리스타’ 같은 살벌한 공성병기까지 보였다. 그 숫자를 정확히 헤아릴 수는 없었으나······ 족히 5천 마리는 될 법 했다.

말 그대로 군단이었다.

그에 비해 동맹군의 숫자는 814명에 불과했다. 올림픽대로 전투를 치루고 전초기지를 기습당하면서 적지 않은 플레이어들이 죽거나 다쳤다.

그 공백을 매울 틈도 없이 달려왔기에 동맹군은 전력은 닳을 만큼 닳아 있었다.

“젠장! 커맨더, 적들의 수가 당초 예상보다 훨씬 많습니다.”

동맹군은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적의 전력을 파악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한계가 있었다.

“······.”

“어쩌면 전면전 작전을 수정해야 될 수도 있겠습니다.”

두웅―두웅―두웅―

아직 먼 거리임에도 놈들이 자아내는 굉음이 세상을 가득 매운 것만 같았다.

북소리, 함성, 발 구르는 소리, 활주로로 다가가는 플레이어들은 그 장엄한 협주곡에 짓눌린 채 위축되어 갔다.

육체적인 능력은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상태였지만, 마음은 여전히 나약한 기질을 품고 있었다.

“우, 우리 여기로 오는 게 과연 좋은 선택이었을까?”

“나도 잘 모르겠는데,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

“지금이라도 돌아갈 수 있다면······.”

곳곳에서 회의적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이제는 도망칠 수 없었다.

여기서 물러나면 ‘대규모 흑마법’ 주문이 완성된다. 그렇게 되면 훨씬 강한 적과 맞서 싸워야만 하는 상황이 올 것이었다.

“성우 씨, 놈들이 한 곳에 모여 있습니다. 시체를 이용한 폭격이 가능할까요?”

정훈이 물었다. 성우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 효과에 대해서는 회의적이었다.

“당연히 시도해봐야겠지만, 저렇게 대놓고 개활지에 있는 게 이상하군요. 아무리 멍청한 몬스터라도 이미 한 번 당해봐서 알 테니까요.”

시가전이 불리하다는 걸 깨닫고 개활지에 모여서 회전을 유도하고 있는 놈들이었다. 폭격의 공포를 잊었을 리 없었다. 분명 다른 술수가 있을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괴조들이 놈들의 머리 위에 시체를 떨구는 순간, 오크 주술사들이 기다렸다는 듯 허공으로 손을 뻗었다.

그들이 쏘아 올린 마법진이 한 군데로 뭉치더니 거대한 돔 형태의 보호막을 형성했다. 연계 주문이었다.

쿵― 쿠궁― 구구구······

폭발의 충격은 보호막 밖에서 허망하게 흩어졌다. 계속해서 퍼부어대면 언젠가 깨질 지도 몰랐지만, 시간에 쫓기는 쪽은 이쪽이었다.

그아아아아!

오크 군단이 보호막 아래에서 환호에 가까운 함성을 내질렀다.

“······.”

반면 동맹군은 사기가 한 풀 꺾일 수밖에 없었다. 가장 주요한 전술이었던 ‘융단 폭격’까지 무용지물이 된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그들은 김포국제공항의 국내선 청사 안에 운집한 채 활주로를 바라보았다.

“저 오크들, 우리가 여기 있다는 걸 알면서도 공격해오지 않고 있습니다. 원하는 전장으로 끌어들이려는 겁니다.”

정훈의 말에 성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오로지 흑마법을 완성하기 위해서 시간을 끌려는 걸 겁니다. 모든 상황이 우리에게 불리하지만 싸움을 미룰 수는 없습니다.”

“······결국 저 안으로 들어가야 되겠군요.”

“그래야겠지요.”

모든 요건이 전면전과 소모전을 강요하고 있다. 정훈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여기서 우리가 승리한다고 하더라도 문제입니다. 우리가 약해지길 기다리는 적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정훈은 당장의 전투는 물론이거니와 앞날까지 고심하고 있었다.

‘진화 학회’라는 정체불명의 집단에게는 이미 한 번 당한 바 있으며, 바다 건너에 중국 세력이 한반도를 노리고 있다는 사실까지 밝혀졌다.

목전에 두고 있는 싸움 역시 버거운 상황이지만, 이 싸움에 모든 걸 쏟아낼 수는 없었다. 그럴 경우 다음 싸움을 대비할 수 없을 테니 말이다.

“다음을 위해서는 힘을 아껴야 될 텐데······ 머리가 복잡하네요.”

정훈은 성우 앞에서 고민을 숨기지 않았다. 그간 한국 서버의 패권을 쥐기 위해서, 네크로맨서를 경쟁자로 두고 견제해 온 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 강력한 존재를 바로 옆에 두고 등한시 할 만큼 질투에 눈이 멀지는 않았다. 가장 중요시 여겨야 하는 건 어디까지나 한국 플레이어들의 안위였으니 말이다.

“중국 세력이 신경 쓰이십니까?”

“아니라면 거짓말이지요.”

중국 서버가 한국 서버보다 훨씬 거대하다는 건 자명한 사실이었다. 그렇기에 더 많고, 더 강력한 플레이어들이 성장해나가고 있을 거란 건 확인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그런데 그때, 성우가 꺼낸 말은 예상 외였다.

“중국 생각은 접어두시고 정훈 씨는 지금처럼 계속 동맹을 유지하고 발전시키는데 힘써 주시죠.”

“······네?”

“확실히 정훈 씨가 추구하던 거대한 집단이 필요할 때가 오고 있습니다.”

정훈이 성우를 쳐다보았다. 거대한 집단, 그건 그 누구보다 정훈이 원하고 있는 일이었다.

성우가 말을 이어갔다.

“이번 전쟁 때문에 보수적이던 생존자 그룹이 제 발로 모여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을 관리해서 하나로 뭉치게 만드는 건 또 다른 문제겠죠.”

“예······ 그것도 어려운 분명 문제입니다. 당장은 원초적인 이유로 뭉쳤지만, 조금만 느슨해진다면 각기 다른 이해관계가 터져 나올 겁니다.”

한 번 무너진 체계가 다시 잡히는 건 어려운 일이다. 특히나 이런 혼란 속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그걸 통제하실 수 있겠습니까?”

그 순간 정훈의 눈에 힘이 들어갔다.

“방해만 없다면······ 언젠가 반드시, 반드시 시도해야 할 일이지요. 그 방해를 막아내는 게 문제지만요.”

성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방해 요소, 중국 쪽은 제가 해결해보겠습니다. 놈들이 어디에 있는지, 어떤 상황인지, 제가 알고 있거든요.”

성우는 선장의 기억을 통해 적들의 정체를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었다.

놈들은 대륙의 패자가 아니었다. 오히려 중심 세력에 의해서 떠밀려온 삼류였으며 대만을 약탈하여 힘을 키운 뒤 한반도를 노릴 계획을 품고 있었다.

‘더 몸집을 불리기 전에 잡아먹는 게 맞다. 전쟁이 아니라 사냥이 될 수 있게.’

성우는 미래의 적들이 목표를 이룰 때까지 가만히 놓아둘 생각이 없었다.

한반도의 진화 학회와 바다 건너의 해적 무리, 두 골칫거리 중에서 먼저 처리할 수 있는 쪽은 소재가 확실한 해적이었다.

‘그리고 그런 거대한 규모의 집단을 장기적으로 상대하기 위해서는 뒤에서 받쳐줄 집단, 즉 적지 않은 자본을 공급해줄 만한 튼튼한 체계가 필요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수원의 마을만으로는 부족해.’

정훈에게 동맹의 결속을 다지기를 권유한 건, 마을의 플레이어들을 육성하려고 했던 이유와 같은 맥락이었다.

‘장기적으로 돈이 된다.’

하지만 정훈은 다른 의미에서 끌리고 있었다.

‘성우 씨가 왜 갑자기 이런 권유를 하는지는 고민해봐야겠지만, 더 큰 공동체, 국가 수준의 공동체를 만들어 나가야 되는 건 사실이다. 다만, 아직 먼 미래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처음부터 그걸 목표로 생존자들을 거두었다. 하지만 감히 꺼낼 수 없었던 말이었다. 국가라 함은 국민을 보호할 능력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 나한테, 자신이 지원을 해줄 테니 해보란 건가? 과감한 걸 넘어서 오만함에 가까운 추진력이다.’

그러나 정훈이 느끼기에도 네크로맨서의 자신감에는 언제나 이유가 존재했다.

그렇기에 주저하지 않고 결단을 내리고 실행한다. 그게 남들보다 빠를 수 있는 이유 중 하나였다.

‘이 남자를 따라 잡기 위해서 필요한 건 단순히 높은 레벨과 강한 아이템이 아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박탈감을 넘어서, 왠지 모르게 흥미진진해지는 기분이었다. 막연하기만 했던 상황 속에서 저 멀리, 어렴풋하게나마 목표점이 생긴 것 같다고 할까?

“알겠습니다. 성우 씨가 그렇게 해주신다면 지금 당장은 조금 더 과감해질 수 있겠군요. 자세한 이야기는 이 전투가 끝난 뒤에 합시다.”

정훈이 고개를 돌려 활주로를 바라보았다. 그가 품은 대의를 위해서는, 당장 눈앞의 산부터 넘어야만 했다.

“그럼······ 저 놈들을 정면으로 뚫어내야겠지요?”

분명 놈들이 저렇게 죽 치고 있는 한, 정면 공격을 통한 전면전 이외에는 가능한 전략이 없어보였다.

“조금 다른 방향이 하나 있죠.”

성우는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들어올렸다.

“놈들은 전장을 2차원적으로 보고 있을 겁니다.”

저 수많은 오크 병력을 일일이 상대하지 않더라도 그 우두머리를 칠 방법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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