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네크로맨서-67화 (67/244)

# 67

24) 중국 서버에서 온 해적들 – 1

지휘관 천막 안, 강화도에서 온 ‘그리핀 라이더’ 이혜연은 자신이 목격한 상황을 증언했다.

“약 천 명 정도의 플레이어가 교동도에 살고 있어요.”

강화도의 플레이어들은 강화도와 육로로 연결된 작은 섬 ‘교동도’에 안전 구역을 마련하고 있었다고 했다.

섬이 작은 만큼 섬 안의 모든 몬스터를 토벌한 뒤, 강화도와 이어지는 ‘교동대로’만 봉쇄하면 비교적 쉽게 안전을 확보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들은 영등포의 광복 길드 등, 강대한 내륙 세력을 알고 있었지만 자신들끼리 살아남는 걸 선택했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적이 쳐들어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리고 몇 시간 전에 해적들이 교동도에 상륙했어요. 어선으로만 수십 척이예요.”

중국에서 온 걸로 추정되는 해적들은 ‘교동도 선착장’ 등 3개의 해안에 상륙한 뒤 교동대로를 장악하여 퇴로부터 막았다고 한다.

“우리도 싸울 수 있는 사람이 꽤 많아서 최대한 저항했지만······ 이길 수 없었어요. 결국 제가 탈출해서 이렇게 도움을 요청하려고 온 거예요.”

유일하게 하늘 길을 이용할 수 있는 직업인 ‘그리핀 라이더’ 혜연이 섬을 탈출하여 이곳을 찾아온 것이었다.

“몇 명 정도로 보입니까?”

정훈이 물었다. 혜연은 작은 플라스틱 의자에 앉은 채 다리를 덜덜 떨어댔다. 그녀는 기억을 상기시키려는 듯 인상을 찌푸리더니 입을 열었다.

“······천 정도? 어쩌면 더 많은 것 같았어요. 정박된 어선 안에서도 사람들이 있었으니까요.”

그 말에 여기저기에서 탄식이 쏟아졌다.

“중국은 인구가 많으니까 플레이어 숫자도 우리의 곱절은 될 겁니다. 놈들은 작정하고 우리를 공격하려고 한다면 큰 일 아니겠습니까?”

리더 중 한 사람이 말했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공감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몬스터가 아니라 플레이어를 사냥하는 놈들도 심심찮게 있지 않았습니까? 그 중국 놈들도 그런 놈들이 분명합니다. 우리의 목숨을 골드로 보고 달려들 겁니다.”

“맞습니다. 대응이 필요합니다.”

“옳소.”

그러나 정훈은 테이블을 내려다보며 턱을 만지작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옆 자리의 민흠이 먼저 입을 열었다.

“맞습니다. 하지만 당장은 레드 오크 무리만 상대하는 것도 어려운 상황입니다. 교동도에 상륙한 신원불명의 플레이어들의 목적이 뭔지 확신할 수도 없으니, 함부로 어림잡아 감정을 담는 건 위험합니다. 자, 모두 신중해야 합니다.”

민흠의 신중론에 자칭 ‘권왕’ 구안석이 반론하고 나섰다.

“하지만 놈들이 한강을 타고 올라온다면? 그렇다면 큰 일 아닙니까? 영등포도 바로 털릴 수 있고 완전 뒤통수 맞는 건데, 그땐 어쩌려고요?”

안석이 최대한 점잖은 어조로 말했지만 당장이라도 험한 말을 쏟아낼 것 같은 표정이었다.

그때, 정훈이 고개를 들었다.

“여러분, 당장은 레드 오크에 맞서야 됩니다. 그건 무슨 수를 쓰더라도 피할 수 없죠. 그리고 레드 오크 군단이 김포와 강서구를 장악하고 있는 이상, 그 해적들도 내륙으로 들어올 수 없을 겁니다. 한강을 타고 후방에 침투하는 게 우려되지만, 한강 하류에 병력을 파견해 감시하면 됩니다. 지금은 강화도로 갈 수 없습니다.”

“아······.”

그 말에 혜연이 탄식을 내뱉었다. 도움을 요청하러 왔건만, 이들마저도 도와줄 여력이 없는 것이었다.

“이건 어떻습니까?”

그때 입을 연 건 성우였다. 모든 이의 시선이 성우에게 향했다.

“별동대를 파견해서 놈들을 처리하고 레드 오크의 전방과 후방을 동시에 공략하는 겁니다. 양동 작전이죠.”

그 말에 안석이 인상을 찌푸리며 팔짱을 꼈다.

“나도 놈들을 치는 건 찬성한다만, 지금 장군님이 말씀하신 건, 특공대를 빼서 투입시킬 여유조차 없다는 거 아닌가? 더군다나 거길 들어갈 방법은 헬리콥터뿐인데, 그 작은 섬에 헬리콥터가 뜨면 기습이랄 게······.”

안석은 주장을 펼치다 말고 문득 든 생각에 입을 멈췄다. 그는 놀란 표정으로 성우를 바라보았다.

“······설마?”

“가능하겠습니까?”

이어서 정훈이 물었다. 그는 성우가 뜻한 바를 이해했다. 성우가 말한 별동대는 소수정예가 아니었다. 단 한 사람, 자기 자신을 뜻하는 것이었다.

“어차피 저는 여러분과 같은 전장에서 싸우기 힘듭니다. 제가 쓰는 스킬들이 독이 될 수 있으니까요. 어차피 전장을 분리해야 되기도 하니, 교동도에 가서 일을 본 다음, 후방에서부터 치고 올라오겠습니다.”

성우가 사용하는 전장은 굉장히 거칠어지기 마련이었다. 죽음의 저주나 심연의 숨결을 퍼트리고, 시시때때로 시체 폭발을 일으키니, 다른 플레이어들과 한 팀으로 움직이는 게 쉽지 않았다.

물론 그것 때문에 교동도로 가려는 건 아니었다.

‘중국 플레이어라니······ 갑자기 어떻게 나타난 건진 모르겠지만, 작지 않은 전력일 테고 중요한 정보나 아이템을 얻을 수도 있을 거다.’

지금까지는 다른 서버와 철저하게 분리되어 있었으니 한국 서버 내에서 벌어지는 일만 알 수 있었다.

그렇기에 다른 지역의 플레이어와의 접촉, 심지어 최초의 접촉은 생각지 못한 기회를 가져다줄 여지가 있었다.

‘그렇게 놈들에게서 정보를 얻은 뒤, 후방으로 들어가서 레드 오크의 핵심까지 독식하는 거다.’

또한 후방으로 파고들어가 고블린 로드의 목숨을 노렸던 작전이 유효했던 만큼, 이번에도 비슷한 전략을 써볼 생각이기도 했다. 그러려면 어떻게든 김포보다 더 서쪽으로 갈 필요성이 있었다.

“그리고 헬리콥터를 이용할 필요도 없어요. 저 하나 쯤은 그리핀을 타고 최대한 조용히 침투할 수 있겠죠.”

성우가 혜연을 바라보았다.

“무, 물론입니다!”

그녀가 반색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성우는 정훈에게 고개를 돌렸다. 정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당장은 성우의 작전이 가장 유효해보였다.

“좋습니다.”

성우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럼 제가 대표 자격으로 놈들을 만나고 오죠.”

***

혜연은 비행을 시작하기 전에 그리핀에게 먹이를 챙겨주고 안전 장비를 점검해야 된다고 했다.

그 사이, 성우는 지수와 한호를 찾아가 교동도로 가야 되는 상황을 설명했다.

“와, 또 우리 버리고 가시네?”

“······조심히 다녀오세요.”

이번에는 지수도 데려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리핀에 세 사람이 타는 건 무리였으니 말이다.

“다음에 만날 땐 아마 전장 한복판일 테니까 그때까지 몸조심하세요. 한호 특히 너.”

“제가 왜요?”

“미술관에서 고블린 잡을 때, 아주 춤추면서 신나하던데? 혹시나 괜한 영웅 심리에 오버하다가 다치지 말고.”

“······그, 그런 거 아니거든요? 참나!”

잠시 후, 비행 준비가 완료 됐다는 보고가 왔다.

성우는 리피팅 크로스보우를 제외한 모든 짐을 스켈레톤의 가방에 보관한 뒤, 공허의 안식처로 넣어버렸다. 비행을 앞두고 최대한 무게를 줄인 것이다.

삐익!

도로의 끝자락으로 가니, 그리핀이 비행을 준비 중이었다. 혜연은 그리핀의 등 뒤에 얹힌 온갖 끈을 조이고 있었다.

“아 오셨군요! 이따 여기 뒷자리에 타셔서 하네스(Harnass) 고리를 연결하시면 돼요.”

그녀는 비행을 위한 안전장치를 설명해주었다. 직접 나서준 네크로맨서에 대해서 고마운 기색을 표현했지만, 상당히 조급한 상태로 보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가족과 친척들이 교동도 내 해적들에게 붙잡혀 있는 상태였으니 말이다. 19살인 그녀가 감당하기에는 적지 않은 무게일 것이었다.

“다 되셨으면 후, 이제 가도 될까요?”

“그래.”

혜연이 그리핀의 머리에 손을 얹자, 녀석은 사람이 올라탈 수 있도록 자세를 낮추었다.

성우는 안장을 밟고 올라가 뒷자리에 탔다. 그리고 혜연이 설명해준 대로, 안장에 몸을 묶어 고정했다.

“저, 출발하기 전에 말씀드리는데······ 미리 말씀 못 드려서 죄송해요.”

혜연이 앞자리에 올라타며 말했다.

“놈들은 엄청 큰 크기의 괴물 새를 키워요. 그 새가 공중을 날면서 감시하는데, 놈들이 하늘을 날고 있으면 인근 해안에서 어두워질 때까지 기다려야 돼요.”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중국 해적들 사이에서 날짐승을 기를 수 있는 직업이 있다는 뜻이었다. 성우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가자, 돌풍아!”

삐이이!

그리핀 ‘돌풍’은 포효와 함께 날개를 펼쳤다. 녀석은 도로를 달려 나가며 발을 구르더니, 날개를 퍼덕이며 바닥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이내 두 사람을 태운 육중한 몸이 공중으로 솟아올랐다.

후우웅―

순식간에 고도가 상승했다. 어느새 왕복 8차선의 경인고속도로가 작은 선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저 멀리, 강서구의 도심 속에서 꿈틀거리는 수많은 레드 오크 떼의 움직임이 눈에 들어왔다.

“오크가 어, 엄청 많아요!”

엄청난 대군이 안양천 근처로 모여들고 있었다. 그리핀은 그 군단을 지나쳐, 보다 더 멀리, 서쪽으로 날아갔다.

***

교동도 선착장 근처, 북쪽 해안에 구석에 회색 컨테이너 박스가 한 대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됐다!”

지직―지이잉―

출입문에 달린 랜턴이 깜빡이더니 이내 불이 들어왔고, 주변의 어스름한 어둠을 층층이 밀어내며 옅은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컨테이너 박스 앞, 평상에 앉아 있던 네 사람이 고개를 돌렸다.

“오, 이제야 배터리 설치 끝난 거야? 음침한 주황색 불빛이네? 되게 오래된 랜턴인가보다.”

“그래도 분위기 있는데? 이런 불빛 아래에서는 여자랑 부둥켜안고 있어야 되는데······ 시발, 어떻게 포로들을 건드리지도 못하게 하냐? 대만 쪽 원정대는 아주 극락처럼 즐기고 있다던데?”

“거기는 말단한테도 베풀어줄 만큼 포로가 꽤 많잖아. 저기, 한국 본토 안으로 들어가면 우리한테도 기회가 올 거야. 골드도 왕창 벌고, 한국 여자도 양팔로 끼는 거지. 대만 여자보단 한국 여자가 더 좋을 것 같지 않냐?”

그들은 킬킬 거리며 컵에 술을 따랐는데, 투명한 유리병 안에는 정체불명의 대형 지네가 담겨 있었다.

“크으! 항저우에서 잡은 ‘괴물 지네’ 알로 독주 담근 건 진짜 기발한 아이디어였어. 인정. 죽여준다.”

“그래도 선장이 ‘괴조’를 띄워서 감시할지 모르니까 하늘을 잘 보라고. 걸리면······ 그 술고래한테 나머지 두 병까지 상납해야 될 지도 모르니까.”

“하하하!”

중국에서 온 플레이어들은 선착장을 중심으로 교동도를 완전히 점령한 상태로, 섬 곳곳에 퍼진 채 해안을 감시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이들처럼 농땡이 피우는 무리는 어디에나 있기 마련이었다.

“그나저나 대륙에서 쫓겨난 게 오히려 마음 편한 것 같단 말이야? 그 괴물들을 상대로 세력 싸움하다가 이렇게 변방 오랑캐들이나 가지고 노니까 훨씬 재밌어. 그치?”

“맞아. 골드 수급도 장난 아니고 아마 장군께서도······.”

그때, 변발을 한 남자가 손을 들어올렸다.

“잠깐! 쉿!”

변발의 말에 순간 침묵이 감돌았다. 그는 인상을 찌푸리며 술잔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오른 손을 허리춤의 단검 자루에 얹더니 어딘가를 노려보았다.

“저기, 뭔가 있는 것 같아.”

“······응?”

“뭔 소리야······ 어디에? 안 보이는데?”

다른 이들은 아무 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들은 변발의 감각을 신뢰했다. 그의 직업인 ‘사냥꾼’은 평범한 인간을 상회하는 감각을 가지게 해주었으니 말이다.

“······.”

침묵이 흐르는 동안 풀벌레 울음소리만이 울렸다. 변발은 눈썹을 꿈틀거리며 어둠 속 어딘가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이 자리에 있는 네 사람의 눈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젠장!”

붕― 촤악!

바람 소리와 함께 평상 아래로 세 개의 머리통이 떨어졌다. 그리고 방금 전까지 아무 것도 없던 공간, 그림자 속에, 거대한 낫을 든 녹색 악마가 우뚝 서 있었다.

“······어?”

목이 잘려나간 동료들 사이로, 평상의 맨 끄트머리에 앉아 있던 남자만이 목숨을 부지했다.

“어어어!”

그는 화들짝 놀라며 뒤로 물러섰고, 평상 밖으로 굴러 떨어지는 순간, 어디선가 검은색 사슬이 날아와 그의 몸을 휘감았다.

“어, 흑!”

그는 사슬에 딸려가 흙바닥에 처박혔다.

“쉿. 조용히 해. 내 말 알아들을 수 있지?”

고개를 드니 녹색 안광의 해골 기사가 그의 목덜미를 향해 손을 뻗었다.

“······예? 예! 그럼요!”

시스템은 언어를 초월하여 대화할 수 있게 해주었다.

“조용히 따라와. 아니면 네 머리통을 저 술통 안에 담가줄 테니까.”

번역된 음성 안에는 그 살벌한 협박까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는 동료의 시체를 뒤로하고 손과 입이 구속된 채, 어디론가 끌려갔다. 도착한 곳은 화개산 산 속, 어느 낡은 창고 안이었다.

삐익!

그리고 그 안에는 두 녹색 해골과 비견될 정도로 끔찍한 생명체가 있었다.

쉬이이!

독수리 머리에 사자 몸을 한 맹수, 그리핀이었다. 녀석은 남자를 보자 거친 숨소리를 내더니, 부리를 부딪치며 당장이라도 달려들 것 같은 기세를 취했다.

그러자 그 옆에 앉아 있던 어린 여자가 그리핀의 목덜미를 쓰다듬으며 달래기 시작했다.

“괜찮아. 괜찮아. 저건 이따가 줄게.”

“······이, 이따가?”

남자는 창백한 얼굴로 자신을 데려온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암녹색 로브를 뒤집어쓰고 있던, 악마 같은 생김새의 남자는 어느새 평범한 모습이 되어 있었다.

드르륵―

그는 철제 의자를 끌고 와 남자 앞에 앉았다.

“이제부터 내가 뭘 하려고 하는지 알 거야. 괜한 고집 부리지마. 나는 죽은 사람의 기억 일부를 읽는 스킬이 있거든. 살아서 자세히 말하거나, 죽어서 대략적으로 말하거나, 둘 중에 하나 선택해.”

남자는 마른 침을 삼켰다.

“자, 선택했어?”

그러나 남자는 몰랐다.

결말은 똑같다는 걸 말이다.

***

새벽 3시, 교동도 전체가 소란스러워졌다. 순찰대에 의해 다수의 실종자가 발생했다는 사실이 알려진 것이다.

“구십 명이 사라진 게 말이 돼? 포로들 중에서 탈출한 놈이 있는지 확인하고! 당장 배를 풀어서, 외부에서 들어온 배가 있는지 해안가를 샅샅이 뒤져!”

선장은 신경질적으로 명령한 뒤, 선착장 밖으로 나가서 오른 손을 하늘로 뻗었다. 그러자 허공에 새장 모양의 마법진이 떠올랐다.

카악! 카악!

그러자 그 안에서 날개폭이 5미터에 이르는 검은 새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총 10마리였는데, 놈들은 4개의 붉은 눈동자를 번뜩이며 밤하늘로 사라졌다.

“도대체 어떤 놈들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섬 안에서 숨을 곳이 있을 것 같아?”

그는 이를 갈며 중얼거렸다. 작은 섬 안에서 빠져나갈 곳은 없으며, 자신의 능력 아래에서는 오래 숨어있지도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때, 누군가 헐레벌떡 달려왔다.

“서, 선장님! 실종자를 찾았답니다!”

“응? 어디 있어?”

그는 손가락을 들어 올려 선착장에 정박된 어선들을 가리켰다. 수십 척의 어선 위에서 랜턴 불빛이 오고가며 고함치는 소리가 울렸다.

“그게······ 전부 죽은 상태인데, 배 안에 차곡차곡 쌓여 있다고 합니다.”

“배 안에 시체를? 뭐하는 변태 새끼야?”

그는 이를 갈며 선착장을 향해 걸어갔다. 경비병을 암살한 뒤에 바다에 버린 것도 아니고 배 안에 쌓아놨다니? 당최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그런데 선착장 근처에 도달한 순간, 그의 눈앞이 주황색 불빛으로 물들었다.

쾅! 쾅! 쾅! 쾅! 콰―광!

그리고 섬이 통째로 뒤집힐 것 같은 폭음과 함께 왼쪽의 어선부터 차례대로 폭발하기 시작했다. 갑판 아래에서부터 울려온 충격이 사방으로 목재 파편을 흩뿌렸다. 이어서 화염이 번져나가며 남은 부분을 갉아먹기 시작했다.

쿠구구구······.

한 대도 빠짐없이, 모든 배가 폭발과 화염에 집어삼켜졌다. 선장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자신이 꿈을 꾸고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뭐, 뭐야!”

“······.”

“야! 내가 방금 물었잖아! 저게 뭐냐고!”

선장이 실핏줄이 곤두선 눈으로 소리쳤다.

“배, 배가 전부 터졌습니다······.”

“그건 나도 알아! 왜 터지는 거냐는 거지!”

“그건······.”

이해할 수 없는 재난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푸쉬이―

“아악! 아아아!”

“켁! 켁!”

“허어어······.”

대합실 건물을 지키고 있던 부하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그들은 무기도 집어던진 채, 기침을 토해내더니 게거품을 물고 쓰러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의 등 뒤, 대합실 창문에서 검은 연기가 뿜어져 나오는 게 보였다.

“선장님! 가스가 퍼지고 있습니다! 이, 이상한 보온병 같은 물건이었는데······.”

“피하셔야 됩니다! 저건 흑마법사들이 쓰는 심연의 숨결입니다! 들이마시면 행동불능에 빠질 겁니다!”

하물며 사방에서 기괴한 울음소리까지 들려왔다.

꺼―윽! 꺼―윽!

“이, 이건 또 무슨 소리야!”

새벽의 외딴 섬 안에서 기괴한 일들이 연달아 벌어지기 시작했다. 침입자 수색을 위해 섬 곳곳에 퍼져있던 부하들의 비명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왔다. 예삿일이 아니었다.

“이런 시발!”

선장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카악! 카악! 카악!

그가 다루는 ‘괴조’들이 사방에서 울부짖고 있었다. 섬을 훑으며 적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있는 것이었는데, 저렇게 일제히 신호를 보낸다는 건······ 적이 섬 전체에 존재하고 있다는 의미였다.

‘대규모 습격이다. 우리를 가두고 전멸시키려고 한다.’

선장은 확신했다.

“······다리! 당장 다리를 확보해!”

배가 사라진 이상 교동대교가 유일한 탈출구였다. 적이 한 둘이 아닌 것으로 보였으며, 가스와 같은 생화학 무기까지 다루는 판에 섬 안에 고립되면 정말로 끝장이었다.

‘이대로라면 대만 원정대에서 원군이 오기 전에 끝날 수도 있다. 일단 더 넓은 곳으로 나가서 본 함대가 상륙할 수 있는 지역을 확보해야 된다.’

선장은 적의 실체도 확인하지 못했지만, 말도 안 되는 일들이 연달아 벌어지자, 지레 최악의 경우부터 떠올렸다.

그리고 헐레벌떡 달려가 미리 준비해둔 트럭에 올라탔다. 그 뒤로 십여 대의 차량들이 줄지어 서 있었는데, 일제히 시동이 걸렸다.

우웅! 우우웅!

그들은 앞뒤 가리지 않고 교동대교를 향해 질주했다. 구불구불한 해안 도로를 따라서 나아가자, 검은 바다 위로 하얀 윤곽이 보였다. 콘크리트 다리였다.

“최대한 밟아! 어떻게든 더 큰 섬으로 빠져나가야 된다!”

평소 통행이 거의 없는 곳이기에, 대교는 버려진 차량 없이 깔끔하게 뚫려 있었다. 이대로라면 순식간에 강화도로 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어?”

예상하지 못한 거대한 존재만 없었더라면 말이다.

“으아아! 저, 저게 뭐야!”

백색의 거대한 괴물, 본 드레이크가 대로의 중간에 우뚝 서 있었다.

그리고 그 괴물의 머리 위에는 녹색 불꽃을 뒤집어 쓴 채, 거대한 낫을 쥐고 있는 악마가 서 있었다.

“대, 대체 이 땅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거야!”

그건, 한국 서버의 진짜 정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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