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네크로맨서-65화 (65/244)

# 65

23) 한국 서버 히든 챕터 - 2

언데드의 공격을 피해 달아나는 고블린 무리 앞에 이백여 명의 플레이어가 나타났다. 그들은 하나 같이 활과 석궁 등의 원거리 무기를 쥐고 있었다.

“발사!”

그리고 구호에 따라 일제히 사격했다. 퇴로를 완전히 둘러싼 채 퍼붓는 공격에 고블린들은 피할 겨를도 없이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다.

끽! 끽!

“놈들이 벗어나지 못하게 잡아!”

“왼쪽, 왼쪽으로 한 무리가 도망간다!”

- ‘고블린 졸병’을 사냥하여 30골드를 얻었습니다.

- ‘고블린 졸병’을 사냥하여 28골드를 얻었습니다.

- ‘고블린 돌격병’을 사냥하여 54골드를 얻었습니다.

마을의 플레이어들은 눈앞에 장대비 같은 보상 메시지가 떠올랐다.

“뭐야, 사냥이 이렇게 쉬운 거였어?”

“전부 성우 씨가 깔아준 판이지······.”

그나마 레벨이 높은 축에 속하는 경수와 인호도 놀랍기는 마찬가지였다.

같은 플레이어라고 할지라도 동일한 속도로 성장할 수는 없다. 성우처럼 위험한 장소에 뛰어들어 적극적으로 사냥하며, 갈수록 더 강한 몬스터를 찾아다니는 이들은 극소수였으며, 그게 그들이 랭커일 수 있는 이유였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의 평균 레벨은 4에 불과했다. 그리고 다른 생존자 그룹의 사정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레벨 격차는 갈수록 벌어진다.’

어떤 그룹이라도 절대 다수의 약자가 존재한다. 정훈이 말한 것처럼 그건 ‘부양 인구’였고 생존자 집단에게는 엄청난 리스크로 작용했다.

하물며 민석과 같은 대단한 기사가 건물 안에 갇혀 있을 수밖에 없던 이유 역시 노약자들 때문이지 않았던가?

‘약한 사람들을 방치하면 약점이 된다.’

마을이 공격 받을 게 걱정 되어 한호를 보냈던 것처럼, 성우에게 짐이 될 가능성이 충분했다.

‘해결할 수 있다. 선천적으로 약한 사람이나 병이든 사람조차 강해질 수 있다. 그게 시스템이다.’

하지만 고정불변의 약자란 없다. 동일한 기회로 카드를 뽑아 스킬을 가지게 되었고, 레벨 업을 통해서 신체를 강화할 수도 있다.

‘그렇기에 그나마 쉽게 사냥할 수 있는 고블린이 대량으로 나오는 히든 챕터는 다시 오지 않을 기회다.’

성우는 마을 내 모든 플레이어를 이번 사냥에 동원하기로 했고, 어린 아이나 노인 할 거 없이 활과 석궁을 들고 참전했다.

물론 성우가 처음부터 끝까지 만들어준, 이런 특수한 상황이 아니면 역으로 사냥 당했을 테지만······.

“어르신, 걱정하지 말고 침착하게 맞춰보세요. 괴물이 다가오면 우리가 지켜드릴 겁니다.”

“꼬마야, 지금이야 쏴! 잘했어! 너 재능 있는데?”

지금은 모든 게 손 쉬웠다. 내리막길을 내려오는 유약한 괴물들을 향해 원거리 무기를 쏘아대면 그만이었다.

가끔가다가 공격을 뚫고 접근하는 고블린이 있었지만, 전투 경험이 있는 플레이어가 앞으로 나서서 막아주었다.

- 레벨 업 하셨습니다. (LV. 2)

“나, 나도 레벨 업 했다! 드디어!”

“어, 나도! 나도야!”

단 한 번의 작전으로 숱한 부양 인구가 쓸모를 찾기 시작했다. 뭐든지 처음이 어려운 법이라고, 두려움을 이겨내고 성취를 얻은 플레이어들은 보다 적극적으로 사냥에 참여했다.

그리고 잠시 후, 한국 서버의 모든 플레이어의 눈앞에 동일한 메시지가 출력되었다.

- 한국 서버 최초로 ‘군벌 몬스터’ 공략에 성공하였습니다. (최대 기여자 : kor-157)

“어! 우리가 이겼다!”

“나도 이제 싸울 수 있어! 3레벨이라고!”

- 대규모 전투에서 승리하셨습니다. 모든 참가자에게 추가 골드가 지급됩니다. (기여도에 따라 차등 지급)

“와, 2천 골드를 한 번에 준다고?”

“나는 3천 골드가 들어왔어.”

그리고 쓸모 있는 집단을 운영한다는 건, 적지 않은 자본을 가질 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성우보다 약한 정훈이 성우를 고용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그런 집단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영등포에 운집한 수만 명의 생존자들에게 조금씩만 거출해도 100만 골드를 마련할 수 있으니 말이다.

성우는 산등성이에 서서 그 모든 장면을 지켜보았다. 작전은 성공적이었다.

‘이 사람들 역시 중요한 무기가 될 수 있다.’

성우는 지금까지 집단에 맞서 왔다. 흡혈귀, 군대, 진화 학회 등······ 그리고 그에 준하는 집단 하나 쯤 만들어 놓는 것도 보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다음날 아침, 경수가 전투 결과를 보고했다.

“마을 사람들 평균 레벨이 3이였는데 방금 전 전투로 6까지 두 배 가까이 뛰었네요. 골드는 아직 집계가 안 되는데 엄청날 겁니다. 가장 가까운 상점이 수원역에 있다는 게 문제지만······.”

“좋습니다.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 토벌대를 운영 할 겁니다. 더 많은 규모로, 이 일대를 깨끗이 청소한다는 생각으로 말입니다.”

“그 말씀은, 이제 밖으로 나가도 안전하다는 겁니까?”

진화 학회가 걱정 되어 외부 출입을 중단했었다. 성우가 몇 군데의 시설을 파괴하기는 했지만 아직 놈들은 건재하며 보복해올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아니요. 하지만 이번 히든 챕터 때문에 놈들도 정신없을 겁니다. 그리고······ 계속 숨어 있다고 해서 안전해지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성장이 멈추는 결과를 초래하고······ 언젠가 잡아먹히겠죠.”

하물며 안전 구역 안에 숨어 있다고 해서 절대적인 안전을 얻는 건 아니었다. 안전 구역 역시 파괴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이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한 거의 유일무이한 방법은 게임의 룰에 따라 강해지는 것이다.

“경수 씨, 이 일대의 군벌 몬스터를 없앴으니 다른 지역에 비해서 마음 놓고 사냥할 수 있을 겁니다. 제가 돌아오기 전까지 평균 레벨 8이 되도록 최대한 밀어붙여주세요.”

다른 지역의 플레이어들이 몬스터 군단의 공격에 대한 방어에 전념하고 있을 때, 마을의 플레이어들은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사냥이 가능한 상태였다.

“8이라······. 해보겠습니다.”

평균이란 값은 그렇게 만만한 게 아니었다. 모두가 손잡고 8레벨에 도달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극히 일부를 제외한다면 많은 이들이 따라오기 힘들어 할 것이었다.

“저는 나약한 사람들을 책임져줄 의무가 없습니다. 무슨 일이 생긴다고 해서 모든 걸 뒤로하고 달려오지도 않을 거고요. 스스로를 지킬 수 있게 모두가 노력해야 됩니다. 이 점, 사람들에게 상기시켜주시면 좋겠습니다.”

“네. 저도 잊지 않겠습니다.”

성우는 이들의 보호자가 아니다. 오히려 언제든 꼬리를 잘라낼 준비가 되어 있었다.

공생은 상호 협력이 성립되어야만 가능한 일이며, 마을 사람들도 성우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걸 증명해주어야만 했다.

덜컹―

“선배, 헬기가 도착했어요! 막 급하다고 난리치는데요?”

그리고 실력으로 증명하는 게 아니라면 보호해주는 대가를 치루면 된다. 영등포처럼 말이다.

“돈을 받았으니 가야지.”

***

광복 길드의 핵심 전력인 크루세이더 팀은 한강의 양화대로 남단 교차로에 포진하고 있었다. 그들은 버스를 개조한 지휘차량 안에서 선유도 방향을 감시 중이었다.

“적의 동태는 어떻습니까?”

정훈이 버스에 올랐다. 그의 말에 허공을 바라보고 있던 마법사 한 명이 고개를 돌렸다.

“아, 잠시만 기다려주십쇼. 곧 북쪽 경계면도 살펴보겠습니다.”

마법사는 그렇게 말하며 정면으로 고개를 돌렸다. 지금 그의 눈은 선유도를 굽어보고 있는 중이었다.

마법사 직군은 ‘마법 드론’이라는 고급 아이템과 시야를 공유할 수 있었는데, 선유도 남쪽 상공에 마법 드론을 띄워 놓은 상태였다.

섬의 녹음 속, 몇 개 없는 건물 사이로 덩치 큰 괴물들이 무리지어 움직이고 있었다.

우어어―

그건 트롤이었다. 그 숫자가 약 200여 마리로, 나무 몽둥이나 돌도끼로 무장한 채 다리 쪽으로 집결 중이었다.

“움직임을 봤을 때 곧 나올 것 같습니······ 어?”

텅!

그 순간, 마법 드론이 무언가에 맞고 균형을 잃더니 땅에 처박히고 말았다.

“······새총 같은 무기에 격추 당했습니다.”

그 옆에 있던 민흠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커맨더, 다리를 끊는 것도 고민해봐야겠습니다. 김포에서 수천 마리의 레드 오크 무리까지 밀려오고 있는데, 전선을 나누어 양쪽 전부 상대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다리를 끊고 안양천에서 레드 오크 군단을 맞아야 됩니다.”

김포에서 일어난 ‘레드 오크’ 무리가 강서구를 휩쓸며 내려오고 있었다. 놈들이 안양천을 넘는다면 그 다음은 영등포였다.

이렇게 한 시가 급한 상황이거늘, 선유도에서 나타난 트롤 부대까지 상대해야 되는 건 부담을 넘어서 엄청난 전략적 손실이 아닐 수 없었다.

“동맹군을 모두 집결 시켜서 트롤 부대부터 처리하고 안양천 전선으로 이동하는 건 어떻습니까?”

광복 길드는 크루세이더 팀을 제외하고도 다수의 병력을 운영 중이었다. 300여 명의 영등포 경비대와 여의도 레이드에 참여했던 이강윤, 구안석 등의 동맹군이 그들이었다.

말이 동맹군이지 사실상 광복 길드에 종속되어 정훈의 지휘를 받고 있는 상태로, 현재 안양천 전선에 운집하여 레드 오크와의 결전을 준비 중이었다.

“트롤은 쉽지 않은 상대입니다. 시간에 쫓겨 전면전을 펼친다면 그 피해가 막심할 겁니다. 그 이후에 레드 오크 대군을 맞이한다면······.”

최악의 전투를 맞이하게 될 것이었다. 그야말로 사면초가다.

정훈은 말없이 선유도를 바라보았다. 다리의 끝자락, 거구의 트롤들이 하나 둘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민흠은 답답한 마음에 손가락으로 미간을 누르며 입을 열었다.

“······어, 일단 영등포역 경비대도 최소한의 수비 병력만 남기고 이쪽으로 지원 나오라고 하겠습니다.”

“좋습니다.”

자리를 비웠을 때 테러를 겪은 적이 있는 광복 길드로써, 본진의 경비를 허술하게 한다는 건 꽤나 신경 쓰이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만큼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때, 누군가 버스의 앞문으로 들어왔다.

“부관님! 네크로맨서를 데리러 간 헬리콥터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곧 도착할 예정입니다.”

“······다행입니다. 많이 늦지 않았네요. 네크로맨서가 합류한면 안양천의 동맹군을 회군시키지 않고도 트롤을 막아낼 수 있을 지도 모릅니다.”

작은 희망이 생기는 순간이었다.

“저, 그런데······.”

소식을 전해온 대원은 더 할 말이 남은 모양이었다. 그가 정훈의 눈치를 보며 입을 열었다.

“네크로맨서한테 전선 상황을 브리핑 했는데, 우리 크루세이더 팀은 여기에서 벗어나서 먼저 안양천 전선으로 이동하라고 했답니다.”

민흠이 인상을 찌푸렸다.

“응? 그게 무슨 소리야, 선유도에서 트롤 부대가 나오고 있는데 어딜 가라고? 여기 상황도 브리핑해준 거 맞아?”

“예, 말했다는데······ 자기는 뼈 수집 좀 하고 합류하겠다고······.”

“뭐? 뼈 수집?”

두두두두!

그 순간, 머리 위로 로터의 폭음이 스쳐지나갔다. 강풍이 일며 버스의 창문이 덜덜 떨렸다.

익숙한 소방 헬기 한 대가 저공비행을 하며 양화대교 위를 쏘아져 나갔다. 행선지는 북쪽, 트롤 부대가 밀집해 있는 방향이었다.

“······설마?”

헬리콥터는 선유도 입구 쪽에서 정지비행을 하더니, 잠시 후 남쪽을 향해 급히 선회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잠깐 사이 누군가······ 지상으로 뛰어내렸다.

- 주의! 해당 지역에 ‘대강령(大降靈)’이 시작됩니다.

- 주의! 해당 지역에 ‘죽음의 응답’이 시작됩니다.

트롤 부대의 머리 위에서 검은 연기가 터져나가자 놈들이 우왕좌왕하는 게 보였다.

네크로맨서가 다수의 언데드를 소환할 때 나타나는 이펙트였다. 그리고 그건 단순한 시각적인 효과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 검은 연기를 들이마시면 ‘죽음의 저주’에 걸리며 데미지를 입기에, 트롤들은 고통스러워하며 선유도 안쪽으로 뒷걸음질 칠 수밖에 없었다.

꺼―윽! 꺼―윽!

다음 순간, 검은 연기 속에서 끔찍한 존재들이 튀어나왔다. 본 드레이크, 오우거 스켈레톤, 구울 킹, 세 마리 레이드 보스 몬스터가 선봉에 선 것이다.

“저, 저게 뭐야, 엄청 큰 괴물이 한 마리 더 늘었잖아?”

“분명 트롤도 거인인데······.”

크루세이더 대원들은 감탄을 감추지 못했다. 트롤도 4미터가 넘는 거구의 괴물들이지만, 레이드 보스 몬스터 앞에서는 작게만 느껴졌다.

오우거 스켈레톤이 선두로 튀어나가며 주먹을 연달아 휘둘렀다. ‘투사’라는 수식이 붙었던 만큼 돌파력 하나는 최고였고, 지근거리에 있던 트롤들이 와르르 고꾸라졌다. 그 위로 구울들이 달려들어 목덜미를 물어뜯었다.

쿵― 쿵― 쿵― 쿵―

본 드레이크와 구울 킹은 자세가 흐트러진 트롤들을 향해 거침없이 돌격했다.

본 드레이크의 등 뒤에는 해골 기사가 올라타 있었다. 그는 옆으로 스쳐지나가는 트롤의 목덜미를 향에 대검을 휘두르고, 검은 사슬을 던져 트롤에 목에 감아 질질 끌고 가는 등, 존재만으로도 위협적인 본 드레이크의 돌격을 한 층 더 강력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들이 휩쓸고 지나간 전장에서 새로운 언데드, ‘트롤 스켈레톤’이 몸을 일으켰다.

“······뼈 수집이라고?”

네크로맨서는 본인이 주장한대로 뼈 수집을 하고 있었다. 앞으로 다가올 레드 오크 전쟁을 대비해, 더 강력한 병력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었다.

“안 그래도 강한 놈이었는데······.”

민흠은 그 광경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물 만났군.”

전쟁은 네크로맨서의 무대였다.

민흠은 앞으로 벌어질 광경이 눈앞에 그려지는 듯 했다. 트롤 부대를 잡아먹은 네크로맨서가 안양천 전선에 합류하게 될 때,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거대한 크기의 언데드 수십 마리가 레드 오크 군단을 휩쓸어버릴 거다.’

단순히 수십 마리가 아니었다.

‘지치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 무지막지한 괴물들이 전장을 휩쓸어버린다.’

아무리 생각해도 네크로맨서를 뛰어넘을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리고 전쟁이 끝난 뒤에는 도저히 따라 잡을 수 없는 격차가 벌어질 것이었다.

네크로맨서에게는 죽음이 자산이 되니까.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