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3
22) 범계역 지하의 비밀 시설 - 2
성우의 권속 중에서 가장 강력한 존재는 단연 본 드레이크였고 그 다음은 오우거 스켈레톤이었다.
두 녀석은 레이드 보스 몬스터가 기반인 만큼 여타의 스켈레톤과 비교할 수 없는 무력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 압도적인 크기가 제약이었다.
구울과 전투에서 보여준 것처럼, 덩치가 큰 만큼 속도가 느리기에, 작고 재빠른 놈들에게 대응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실내에서는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데스 나이트는 그 무엇보다 특별한 존재다.’
절그럭― 절그럭―
데스 나이트는 인간형의 크기임에도 압도적인 무력을 가진 언데드였다.
온몸에 갑옷을 두르고 거대한 방패를 든 채, 고통조차 모르며 전진하는 기사라니······ 적들에게는 공포 그 자체일 수밖에 없다.
쩌엉!
백색 마법진이 데스 나이트를 향해 날아들었지만, 방패에 부딪쳐 흩어졌다.
“뭐, 뭐야! 주문이 안 먹혀!”
“다시 시전 한다!”
주문이 안 먹힌 게 아니었다. 신성력에 의한 데미지는 분명 들어왔다. 하지만 시너지 효과 덕분에 벽으로 날아가지 않은 것뿐이었다.
촤르르!
데스 나이트의 흑색 사슬이 독사의 대가리처럼 뻗어나갔다. 안경 쓴 여자가 성직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손을 뻗었지만, 성우의 리피팅 크로스보우의 시위가 자신에게 들어 올려지자 어쩔 수 없이 성우를 상대해야만 했다.
픽! 픽! 픽! 픽!
“이이! 방해하지 마!”
그녀는 염력으로 화살을 멈춰 세운 뒤, 데스 나이트를 향해 날려버렸다.
퍽. 퍽. 퍽.
하지만 고작 그런 화살 따위에 데미지를 입을 데스 나이트가 아니었다. 화살은 허망하게 튕겨나갔다.
우득―
데스 나이트는 방금 전에 끌어당긴 성직자의 목을 꺾어버리며 앞으로 성큼 성큼 나아갔다.
- 데스 나이트가 생명력을 착취합니다. (2단계)
- 근처 언데드의 능력치가 상승합니다. (+20%)
- 해당 지역의 ‘성스러운 힘’이 사라집니다.
주문을 컨트롤하던 플레이어들이 사망하자 신성력 기반의 상태이상이 풀렸다.
즉 괴물들을 구속하고 있던 목줄이 끊어진 것이다. 이내 데스 나이트의 등 뒤로 언데드들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겨, 경비대를!”
성국이라고 불린 성직자가 급하게 소리쳤다. 당초 예상과 다르게 자신들만으로는 상대할 수 없는 상대라는 걸 깨닫고는, 방해된다고 물려둔 경비대를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구울들이 엄청난 속도로 몸을 날리더니 천장과 벽을 타고 사방에서 달려들었다.
꽈득!
“으아아아!”
직접 전투 기술이 부족한 성직자들은 구울의 습격을 피해낼 도리가 없었다. 안경 쓴 여자가 급히 왼손을 휘저어 구울을 밀어냈지만, 성직자는 이미 즉사한 상태였다.
“모두 나와! 서둘러!”
뒤늦게 문 안쪽에 대기하고 있던 10명의 경비대가 줄지어 나오기 시작했다. 그들 역시 상당한 레벨의 플레이어로 보였다.
“방패 앞으로!”
“일제히 사격한다!”
그러나 좁은 터널 안에서, 다수의 언데드에게 둘러싸인 상태로는 오래 버틸 수 없었다. 채 문밖으로 빠져나오기도 전에, 선두의 탱커들부터 사냥감으로 전락했다.
구울들이 반구형의 천장을 자유자재로 타고 다니며, 좁은 문에서 달려 나오는 경비대를 습격했다.
꺼―윽! 꺼―윽!
“처, 천장!”
“으아악!”
그들은 구울에게 물린 채 구석으로 끌려갔다. 그리고 잔인하게 해체되기 시작했다.
상황이 그렇게 돌아가자 경비대는 문 밖으로 나오는 걸 주저하고 문 안에서 버티는 걸 선택했다. 터널 안은 말 그대로 생지옥이나 다름없었으니 말이다.
“안에서 버틴다! 모두 문을 둘러싸고 들어오는 언데드부터 죽여! 남은 방패 앞으로!”
“마법사들 주문을 미리 준비해둬!”
텅!
그런데 그들 앞으로 날아 들어온 건 언데드가 아니었다.
“응?”
“······어?
그건 동료의 시체였다. 녹색으로 부풀어 오르는······.
콰―앙!
문 안에서 폭발이 함께 기울어진 문짝 안으로 언데드들이 기어들어가기 시작했다.
“으아아!”
“사, 살려줘! 컥!”
성우는 그 혼란 속에서 두 명 남은 성직자들을 노렸다. 그들은 성스러운 빛줄기를 뿜어대며 상극인 언데드를 밀어냈지만, 물리적인 공격을 피할 방법은 딱히 없어보였다.
픽! 픽! 픽! 픽! 픽!
- 플레이어를 살해하여 12,000골드를 얻었습니다.
- 플레이어를 살해하여 10,000골드를 얻었습니다.
따로 떨어져 있는 성직자는 손쉬운 먹잇감일 뿐이었다.
한쪽에서는 염력을 다루는 여자와 데스 나이트의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아니, 그건 추격전이나 다름없었다.
“꺼져! 저리 꺼지라고!”
여자가 고래고래 소리치며 손을 마구잡이로 뻗었다. 그 손짓에 따라 염력이 발동하며 데스나이트를 밀어냈다. 또한 단검 두 자루가 허공에서 날아다니며 데스 나이트의 몸을 이리저리 긁어댔다.
챙! 챙!
하지만 민석은 숙련된 검사였고 그깟 비행 단검쯤이야 가볍게 쳐내버렸다. 튕겨나간 단검이 콘크리트 바닥에 단단히 처박혀서 뽑혀 나오지 못했다.
“저리 가라고! 으아아!”
여자는 데스 나이트를 밀어내려고 발악했지만, 데스 나이트의 육중한 몸은 강풍을 뚫고 나아가듯, 조금씩 가까워져갔다. 어느새 녹색 안광이 여자의 코앞까지 도착했다.
“저리가! 저리가! 이 괴물아! 으아아······. 허억!”
푹!
- 플레이어를 살해하여 12,000골드를 얻었습니다.
여자의 비명이 멎자 터널 안은 잠잠해졌다.
수많은 시신 사이에 포마드 머리의 남자만이 서 있었다. 그는 여전히 담담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멋집니다.”
그리고 왼손을 천천히 들어올렸다. 그러자 그의 시계에서 어떤 입자 같은 게 뿜어져 나오더니, 이내 손바닥 위에 뭉치며 플라스크의 형태가 되었다.
“저는 전투 스킬이 거의 없어서, 싸움의 순간 번번이 애먹었거든요.”
놈은 그 말을 끝으로 성우의 언데드를 향해 플라스크를 집어던졌다. 그러자 폭음과 함께 전류가 터져 나왔다.
쾅! 치지지지!
언데드들이 그물망 같은 전류 휘감기며 순간적으로 전투 불능 상태에 빠졌다. 그 사이, 놈은 뒤로 빠지며 또 다시 손바닥 위에 플라스크를 형성했다. 이번에는 녹색이었다.
펑!
이번에는 지근거리에 터지더니 넝쿨과 줄기가 폭발적으로 자라나기 시작했다. 성우는 놈에게 달려들며 허공에서 나타난 ‘그림리퍼’를 집어 들었다.
- ‘리치’의 힘을 얻습니다.
* 최대 권속 수가 (+50)만큼 증가합니다.
* 모든 능력치가 (+10)만큼 상승합니다.
* 인근의 파괴된 언데드를 ‘최대 권속 수만큼 무한정’ 부활‧재생시킬 수 있습니다.
그의 몸이 녹색 불꽃에 갉아 먹히며 뼈가 드러나기 시작했고, 그와 동시에 거대한 낫을 수평으로 휘둘렀다.
촤아아!
벽처럼 자라나던 넝쿨 군락이 단 한 방에 잘려나갔다. 사방으로 줄기와 이파리가 우수수 떨어졌다.
그림리퍼의 공격 범위가 넓기도 하고, 리치가 되며 상당한 능력치 상승이 이루어졌기에 이딴 잔재주쯤이야 쉽게 파해할 수 있었다.
“오!”
포마드는 예상하지 못했다는 표정이었지만, 또 다른 플라스크를 준비하고 있었다.
쩌―엉!
빛과 폭음이 터졌다. 섬광탄이었다. 성우의 시야를 차단 한 뒤, 다른 수작을 부릴 생각이었다. 하지만 성우는 아무렇지도 않게 놈을 향해 달려들었다.
“······응?”
마침내 포마드의 표정이 찌푸려졌다. 또 한 번 예상하지 못한 장면이 펼쳐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내 피식 웃고 말았다.
“그렇군요. 한쪽 눈은 실물이 아니라 빛 수용체가 없이도 앞을 볼 수 있군요.”
리치가 된 성우의 왼쪽 눈에는 인간의 안구 따위는 없었으니 섬광탄이 먹힐 리가 없었다.
두 번의 플라스크가 모두 헛수고로 돌아가자, 놈은 순식간에 벽 쪽으로 몰리고 말았다. 그리고 달려드는 성우를 향해 오른 손을 뻗었다. 그의 팔찌가 좌우로 넓게 펴지더니 작은 석궁이 되었다.
피잉!
회심의 화살은 허망하게도 성우의 등 뒤로 사라졌다. 그리고 거대한 낫이 머리를 치켜세웠다.
촤악! 철퍽―
“······큭.”
반달 모양의 핏줄기가 벽에 튀었다. 놈의 오른쪽 어깨가 잘려나갔다.
본인이 말한 것처럼 전투에 특화된 직업이 아니었기에 능력치가 강화된 성우를 막아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말 그대로 최후의 발악인 셈이었다.
“크으······ 정말 좋은 카드를 뽑으셨군요. 제 한 몸 지키려면 그만한 직업도 없겠습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지키시겠습니까?”
“······뭐라고?”
놈의 마지막 말에 민석이 되물었다. 그에게는 민감한 문제였다.
“모르셔서 묻습니까? 아까 나간 좀비와 구울들이 어디로 갔겠습니까? 우리가 연구하고 있던 건 단순히 심연의 에너지뿐만이 아닙니다. 이 시, 시스템의 모든 요소를 무기로 만들 수 있는 방법을 개발하고 있죠.”
“······너 이 자식!”
민석이 놈을 향해 걸어갔다. 놈은 여전히 여유 넘치는 자세로 손가락을 들어올렸다. 그가 가리킨 건 ‘구울 킹’이었다.
성우가 고개를 돌리니, 구울 킹을 구속하고 있던 백색 사슬과 신성 주문이 사라져있었다. 그리고 놈의 상처가 회복 되어가고 있었다.
“누군가를 구하러 가기에는 할 일이 많이 보이시군요? 진짜 힘이라는 건, 당신 한 목숨 부지하는 게 아닙니다. 당신 주변에 모든 게 사라졌을 때, 끝까지 우리와 싸울 수 있는지 한 번 봅시다.”
놈의 발악은 시간을 끌기 위함이었다. 그 잘난 대의가 아니라, 성우와 민석을 엿 먹이기 위해서 말이다.
성우는 등을 돌렸다.
“죽이시죠. 최대한 잔인하게.”
“······알겠습니다.”
포마드 머리는 별다른 저항을 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저 성우를 향해 비릿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또 만나죠.”
푹!
민석의 대검이 그의 가슴팍에 처박힌 뒤 천천히 위로 상승했다. 놈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며 무릎을 꿇었다. 그런데······ 그 육신이 가루가 되어 사라지는 게 아닌가?
“응? 사람이 아니었어?”
- 플레이어의 ‘클론-002’를 파괴하여 13,000골드를 얻었습니다.
성우는 눈앞의 메시지를 자세히 바라보았다.
‘······클론?’
성우는 커뮤니티를 열어 랭킹을 확인했다.
‘한 자리가 빈다.’
어제까지만 해도 10위권 내에 존재하던 ‘DOCTOR-002’이라는 닉네임이 사라진 상태였다.
······그리고 20위권 내에 ‘DOCTOR’라는 닉네임은 무려 5개였다.
‘이 조직이 클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군.’
그렇다. 그들은 모두 한 놈이었다. 하나의 본체를 둔 수많은 ‘클론’들이 전국 각지에 퍼져서 같은 목표를 추진해나가고 있는 것이었다.
하나이되 조직 전체나 다름없는 존재, 이는 뱀파이어 로드와 비슷하면서도 보다 강력한 구심적으로 작용할 터였다.
“일단 빨리 저 놈부터 없애고 나갑시다.”
성우는 고개를 돌려 구울 킹을 바라보았다. 신성 마법에서 벗어난 뒤, 포마드 머리가 발악하는 동안 어느 정도 신체 재생을 한 상태였다.
꺼―으―으!
민석 역시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가족들에게 달려가고 싶었지만, 구울 킹이 비닐 튜브를 찢고 나오기 시작했으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철퍽― 철퍽―
놈의 잘려나간 사지가 순식간에 자라났다. 그리고 미처 응고되지도 않은 시뻘건 손발을 교차하며, 엄청난 속도로 기어오기 시작했다.
그 목표물은 유일하게 살아 있는 존재, 성우였다.
픽! 픽! 픽! 픽!
성우는 그림리퍼를 소환 해제하고, 뒤로 빠지며 리피팅 크로스보우를 들어 올려 난사했다. 놈의 머리와 목덜미에 수없이 많은 화살이 박혔지만, 5미터 정도 되는 체구를 저지할 수 없었다.
꺼―으으으!
성우는 뒷걸음질 치며, 놈이 플레이어들의 시체로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터널은 좁았고 놈은 필연적으로 시체 위에 올라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약 8구의 시체가 놈의 아래에 깔리는 순간······.
“폭발.”
쾅! 쾅! 쾅! 쾅! 쾅!
엄청난 폭음과 함께 놈의 몸이 순간 펄쩍 들어 올려지며 먼지와 돌가루가 사방으로 흩어졌다.
아직 회복을 마치지 못한 오른 팔이 잘려나갔고 복부가 완전히 걸레짝이 되었다. 그럼에도 놈은 전진하려고 했지만······.
촤르르!
민석의 사슬이 놈의 하나 남은 팔을 휘감았다. 성우는 즉시 웨어 베어 스켈레톤을 움직여, 그 사슬을 함께 잡아당기게 했다.
투두둑―
아직 아물지 않은 팔뚝이 장력을 버티지 못하며 결대로 찢겨지기 시작했다. 근육이 파열되고 인대가 끊겼다. 살갗이 벗겨지며 하얀 뼈가 드러났다.
꺼―으······.
구울 킹은 또 다시 사지를 잃은 채 버둥거렸다. 진화 학회 놈들이 오랫동안 구속하고 있었고, 그러는 동안 사실상 절반 정도는 죽여 놓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무기력한 구울 킹을 향해 데스 나이트가 걸어 나갔다. 성우가 그 장면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생각해보면, 번번이 선물만 주고 가는군.”
놈들이 가져다준 두 번째 레이드 보스 몬스터였다.
***
성우와 민석이 자리를 비운 사이, 구울들이 생존자를 손쉽게 잡아먹을 거라는 놈들의 생각과는 다르게, 성우는 나름 믿는 구석이 있었다.
그건 지수였다. 네크로맨서의 그늘에 가려져 크게 주목 받고 있지는 못했지만 한국 서버 랭킹 8위 ‘kor-339’ 그녀 역시 13레벨의 강자였다.
“하아! 하아!”
범계역 인근의 한 상가, 3층, 프랜차이즈 카페의 한 가운데 지수가 우뚝 서 있었다. 그녀의 주변에는 좀비와 구울의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다.
“하······.”
그녀는 숨을 고르며 손에 묻은 피를 바지에 문질러 닦았다. 그리고 환도를 다시 한 번 움켜쥐었다.
“끄, 끝인가요?”
카페 구석에 생존자들이 모여 있었다. 그나마 전투가 가능한 이들이 노약자들을 둘러싸고 보호하고 있는 중이었다.
“······.”
지수는 말없이 슬며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감각을 개방하여 이 건물에서 울리는 모든 진동을 잡아냈다.
계단 손잡이가 긁히는 날카로운 소리, 텅 빈 배관이 진동하는 소리, 건물 외벽의 페인트가 부스러지는 소리······. 역겨운 숨소리까지.
“아니요. 또 와요.”
챙그랑!
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전방의 창문이 깨지며 보라색 피부의 괴물이 튀어 들어왔다.
꺼―윽!
놈은 천장에 매달린 채 지수의 목덜미를 노리고 달려들었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좌측, 비상구에서 좀비 두 마리가 들어오더니 지수를 향해 돌진했다.
끄에에!
부모들이 아이를 감싸 안았다. 남자 둘이 지수를 돕기 위해 급히 나섰다. 비상구의 좀비라도 상대하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좀비 두 마리의 뒤를 이어 구울 한 마리가 치고 들어왔다.
“어어!”
“구, 구울?”
구울은 무리였다.
지수는 그 사이에도 거침없이 움직였다. 천장의 구울이 달려드는 순간, 몸을 왼쪽으로 틀며 칼을 휘둘렀다. 구울의 머리통이 잘려나가며 바닥에 내리꽂혔고, 생존자들을 향해 미끄러졌다.
그리고 곧장 고개를 돌려, 당황한 채 뒷걸음질 치는 남자 둘을 돌아나갔다. 동시에 칼자루에서 오른 손을 떼고, 왼손으로 휘둘렀다.
촤악!
구울의 오른쪽 팔이 잘리며 옆으로 고꾸라졌고, 그녀는 그대로 직진하며 좀비 두 마리와 맞부딪쳤다.
부웅!
좀비와 약 두 걸음 떨어진 곳, 그녀의 칼이 허공을 그었다. 검기가 쏘아지며 좀비의 두 마리의 머리가 공중으로 떠올랐다. 그녀는 즉시 직각으로 돌아서며 팔을 잘라낸 구울을 돌아봤다.
꺼―윽!
어느새 놈이 바로 뒤까지 접근했다. 놈은 지수의 머리를 향해 왼쪽 손톱을 휘둘렀다.
그녀는 위빙을 하듯 고개를 숙였다. 뒤늦게 따라오는 머리칼이 한 움큼 잘려나갔다.
촤악!
동시에 구울의 왼쪽 손목이 날아갔다. 양손이 모두 사라진 상태, 놈은 최후의 수단으로 머리를 들이밀어, 지수의 목덜미를 향해 턱을 쩍 벌렸다.
푹!
지수는 놈의 가슴팍에 칼을 박아 넣었다. 그리고 온힘을 다해 밀어냈다.
꺼어―
그리고는 다리를 구부린 뒤, 어깨에 힘을 주어 칼날을 수직으로 들어올렸다. 놈의 심장과 머리통을 단칼에 절단해버린 것이다.
철퍽―
- 구울을 사냥하여 9,000골드를 얻었습니다.
“하아, 후······.”
그녀의 왼쪽 얼굴과 목덜미가 피로 흥건했다. 오른쪽 얼굴 역시 닦아낸 피로 얼룩져 있었다.
“······.”
“······아.”
돕기 위해 나섰던 남자 둘은 얼이 빠진 표정으로 지수를 바라보았다.
온몸에 피 칠갑을 한 무표정의 검객, 지금 그녀의 모습은 정말 무시무시해보였다. 그런데 그 순간, 그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챙그랑!
또 다시 공격이었다. 그녀는 칼자루를 움켜쥐고 돌아섰다. 그런데······.
“얘들아! 얘들아!”
검은색 사슬이 창틀에 휘감겨 있었고, 그 사슬을 잡아 끌며 해골의 기사가 나타났다. 민석이었다.
“아빠 목소리야!”
“아빠? 아빠!”
아이들은 고개를 들었지만 뛰어나가진 못했다. 목소리는 분명 아빠였지만 나타난 건······ 데스 나이트였다.
“······어?”
“아빠, 혹시 변신한 거야?”
6살짜리 둘째가 천진난만하게 물었다. 멈칫하던 민석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응. 네크로맨서 아저씨가 도와줘서 잠깐 스켈레톤으로 변신한 거야.”
“저, 정말?”
그제야 아이들의 얼굴에 경계심이 사라졌다.
“그렇다니까!”
“우와! 멋있어!”
“나도! 나도 할래! 변신!”
계단에서 성우가 올라왔다. 그는 카페에 널브러진 구울과 좀비의 사체를 바라보다가 지수를 마주봤다.
“지수 씨가 있어서 큰 걱정은 안했습니다.”
“일은 잘 끝났나요?”
“네. 그리고 더 복잡해졌죠.”
그들은 대화를 이어갈 수 없었다. 시스템이 또 다시 간섭했기 때문이다.
- 현 시간 부로 메인스트림 ‘CHAPTER 2 : 큰 운명을 맞이할 때’가 긴급 종료되었습니다.
그 메시지를 본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응? 이게 무슨 소리야?”
“긴급 종료?”
“끝났다고? 그럼 또 뭐가 나오는 건데?”
성우와 지수 역시 불길한 낌새를 느꼈다.
“또 뭔가 일어나려고 하네요.”
“그러게요.”
[메인스트림 시작 안내]
- CHAPTER 2-1 : 밸런스 패치가 시급합니다!
한국 서버의 생존자 여러분의 남다른 공략 본능에 찬사를 보내는 바입니다! 여러분은 주어진 시간보다 이른 시간 내에 모든 공략을 마치셨습니다.
* 레이드 보스 몬스터 처리 순위
1) 한강석 : 4마리
2) kor-157 : 3마리
3) 최윤 : 2마리
4) DOTOR-000 : 2마리
5) 장현민 : 2마리
6) 아잘못뽑았다 : 1마리
7) DOTOR-001 : 1마리
(이상 총 15마리)
이는 전체 서버 중 단연 독보적인 성과입니다. 하물며 한국 서버의 평균 레벨이 ‘세계 4위’에 지나지 않는 점을 고려해볼 때, 여러분이 얼마나 대단한 업적을 세운지 가늠이 되지 않을 정도입니다!
그렇기에 남은 기간 동안 ‘히든 챕터’가 진행될 예정입니다. 여러분의 만들어낸 압도적인 성과가 우연에 의한 게 아니라는 걸, 더 큰 싸움에서 증명해주시길 바랍니다!
[주의사항(중요)]
1) 한국 서버 곳곳에 대규모 병력을 이끄는 ‘군벌 몬스터’가 출현합니다. 이들은 무리를 지어 생존자의 안전 구역을 공격해올 것입니다.
2) 해당 이벤트는 ‘군벌 몬스터 공략’전까지 지속됩니다.
“······군벌 몬스터?”
군벌(軍閥)이란 군세로 권력을 잡은 이들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즉 단일 개체가 아니라 엄청난 숫자의 병력을 이끄는 놈들이 출현할 예정이라는 뜻으로, 학교의 ‘오크 추장’이나 여의도의 ‘리자드맨 전사장’ 이상의 대규모 몬스터 그룹이 닥쳐올 것이었다.
“이러면······ 일찍 깬다고 좋은 게 아닌 걸까요?”
“계속 깨다보면 뭐가 나오는지 봐야죠.”
최종 결말인 ‘엔딩’은 분명 존재한다. 그것도 여러 개다.
그리고 엔딩으로 가는 루트 역시 다양하며, 이번 이벤트 역시 끝으로 향하는 길 중 하나일 것이었다.
‘변수는 위험하지만 더 큰 보상을 주는 법이다.’
더 큰 규모의 싸움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런 건 환영이지.’
그리고 네크로맨서는, 대규모의 전장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직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