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네크로맨서-62화 (62/244)

# 62

절그럭― 절그럭―

뼈와 금속 갑옷이 부딪치는 소리가 계단 아래에서부터 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녹색의 안광이 천천히 올라와 지상에 우뚝 섰다.

장신의 해골 기사, 데스 나이트가 등장했다.

그는 어둠 속 거리, 덩그러니 놓인 미니버스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군데군데 뜯겨져 나가고 피로 얼룩져 있었지만, 그 피의 주인들 덕분에 버스에 탄 이들이 무사할 수 있었다.

“······어?”

창문 안, 아내의 품속에 안겨 있는 아이들이 슬며시 고개를 들어올렸다.

“······스켈레톤?”

하지만 아빠를 알아보지 못했다.

꺼―윽! 꺼―윽!

그때, 그들의 사이를 한 마리의 구울이 가로막았다. 놈은 침을 질질 흘리며 버스를 향해 달려들었다. 아이는 화들짝 놀라며 엄마의 품속으로 파고들어갔다.

촤악!

구울의 손가락이 창문에 닿기 직전, 놈의 몸이 절반으로 분리되며, 그 틈으로 데스 나이트의 녹색 안광이 다시금 번뜩였다.

절그럭― 절그럭―

구울들의 시선이 집중됐다. 동류이면서도 남다른 기운을 발산하는 존재가 등장한 것이다. 구울들이 느끼기에 그건, 격이 다른 고결함이자 불쾌함이었다.

꺼―윽! 꺼―윽!

세 마리가 동시에 데스 나이트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는 버스를 등지고 대검을 슬며시 들어올렸다.

촤악!

군더더기 없는 움직임, 가장 먼저 달려든 구울의 머리통이 깔끔하게 잘려나갔다. 그리고 몸을 틀며 손톱을 피해내고 왼손을 뻗어 한 놈의 목덜미를 움켜쥐었다.

꾸득!

엄청난 악력에 두개골이 으스러지며 눈알이 흘러나왔다.

쿵!

놈을 전봇대를 향해 집어던지는 동시에, 반대쪽, 오른 손의 대검을 수직으로 휘둘렀다.

촤악―

칼날이 마지막 놈의 가랑이 사이로 빠져나왔고 철퍽, 하는 소리와 함께 소란은 잠재워졌다. 세 마리가 몇 초 만에 정리되었다.

데스 나이트가 된 민석은 살아 있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힘을 가지게 됐다. 하물며 더 이상 지치지도, 고통을 느끼지도 않는다. 나약한 육신에 묶여 있지 않으니, 군더더기 없던 그의 공격은 보다 과감해졌다.

꺼―윽!

하지만 구울이란 족속은 포기를 몰랐다. 공포라는 걸 느끼지 않으니 말이다. 놈들에게는 데스 나이트라는 건, 그저 식사를 방해하는 성가신 존재일 뿐이었고, 두 마리가 정면으로 달려들었다.

놈들을 향해 민석이 왼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손바닥 위에 검은색 마법진이 떠올랐다.

촤르륵!

마법진에서는 두 줄기의 흑색 사슬이 뻗어 나왔다. 그리고 전방을 향해 뱀처럼 기어가 구울 두 마리의 목덜미와 사지를 칭칭 감았다.

꺼, 꺼―

그리고 그대로 왼손을 잡아당기는 동시에 오른손의 대검을 휘둘렀다.

촤악!

구울 두 마리가 일도양단 됐다.

- ‘구울’을 사냥하여 9,000골드를 얻었습니다.

- 자격 증명까지 남은 시간 : 4,324일

- ‘구울’을 사냥하여 9,000골드를 얻었습니다.

- 자격 증명까지 남은 시간 : 4,304일

성우의 눈앞에는 데스 나이트를 뒤따라 계단을 올라오는 내내 메시지가 떠올랐다. 그는 지상에 서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느새 상황이 정리되어 있었다.

수많은 구울 시체와 그에 버금가는 사람들의 시체, 그리고 시체이지만 살아있는 한 사람이 서 있었다. 성우의 눈에 그의 프로필이 떠올랐다.

[계약자 프로필]

- 이름 : 안민석

- 레벨 : 12

- 직업 : 데스 나이트

- 능력 : 근력(30), 민첩성(20), 체력(30)

- 속성 : 기사, 언데드

[계약자 스킬 정보(요약)]

1) 심연의 사슬 : 죽음의 힘이 담긴 사슬을 소환하여 특정 대상을 속박한다.

2) 생명력 착취 : 산 자의 영혼을 흡수하여 자신과 주변의 언데드를 강화한다. (1중첩 당 10% 상승, 최대 5중첩)

민석은 바닥에 떨어진 방패를 집어 들었다. 구울의 손톱에 의해 절반쯤이 우그러져 쓸 수 없는 상태였다. 처음부터 써왔던 방패였다.

그는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고개를 돌려 버스 안을 바라보았다. 어린 아들과 눈이 마주쳤지만······ 차마 입을 열 수 없었다. 뼈 밖에 없는 입을 벌려서 무어라고 말하지 못했다.

“성우 씨, 끝난 것 같아요. 그런데 저건······.”

지수가 성우에게 다가오다가 데스 나이트를 바라보았다.

“나중에 설명해드릴게요.”

성우는 미니버스의 헤드라이트 끝자락, 어렴풋이 보이는 녹색 표지판을 바라보았다. 직진 방향으로 범계역이라고 표시 되어 있었다.

“그럼 이대로 범계역으로 갑시다. 이번엔······ 우리가 습격할 시간입니다.”

쉴 틈이 없었다. 그리고 이제 상황이 바뀌었다.

죽음에게로, 진짜 죽음이 찾아갈 차례였다.

***

일행은 두 개의 백화점 건물이 함께 있는 범계역 입구 앞에 멈춰 섰다.

“확실히 저 검은 연기가 전보다 더 진해졌습니다.”

민석이 뼈만 남은 턱을 움직여 말했다. 그는 범계역을 마주보면서도 가족들이 타 있는 버스를 힐끔힐끔 쳐다봤다.

“가족들에게는 말 안 할 겁니까?”

“아직은······ 자신이 없네요. 그리고 더 급한 일이 있지 않습니까? 그때 가도 늦지 않을 겁니다. 아무리 무서워도 울지 않을 만큼 참을성이 많은 아이들이거든요.”

가족들 앞에 그런 모습으로 서는 게 쉽지 않다는 건 분명했다.

아이들에게는 아버지가 사라진 것도 충격이겠지만, 이런 모습의 아버지를 받아들일 수 있을 지는 또 다른 문제다.

그때, 검은 연기의 가장자리에서 지수가 걸어 나왔다. 그녀는 방독면을 쓴 채 비틀거렸다.

“콜록! 콜록!”

그녀는 방독면을 벗으면서 기침을 토해냈다. 이어서 화단을 짚더니 헛구역질까지 해댔다.

“괜찮아요?”

“아, 방독면이 소용이 없어요······.”

범계역에서 뿜어져 나오는 연기가 짙어졌다. 준비해온 방독면으로도 막아낼 수 없는 수준이었다.

“저거, 완전 흔히 말하는 밸런스 붕괴군요.”

민석이 말에 성우가 고개를 저었다.

“애초에 이 게임에는 밸런스 같은 게 없습니다.”

밸런스 따위가 없으니 붕괴될 것도 없다. 성우 확신했다. 그 붕괴의 주축 중에는 바로 자신도 있었으니 말이다.

“저와 아저씨가 들어갈 테니, 지수 씨는 생존자들을 지켜주세요. 근처 건물, 최대한 안전한 곳에 숨어서요.”

“······.”

지수는 성우를 돕지 못한다는 게 떨떠름하다는 표정이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제 가족을 부탁합니다.”

“아, 네. 그건 걱정 마세요.”

그녀는 이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생존자들을 위해 누군가 남아야 되기도 했으니 말이다.

민석은 범계역으로 진입하기 전, 차마 버스에 다가가지 못하고 멀찍이 서서 가족들을 바라보았다. 어린 아들이 엄마를 보채고 있었다.

“엄마! 엄마! 아빠는? 아빠는 어디 간 거야?”

“엄마! 아빠도 현준이처럼 좀비한테 잡혀 간 거야?”

민석의 아내는 아들의 물음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다만, 먼 거리에 서 있는 데스 나이트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녀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이제 가죠.”

“······예.”

민석이 애써 고개를 돌렸다.

리치와 데스 나이트를 필두로 한 언데드 부대가 검은 연기 속으로 사라졌다.

***

범계역 내부는 생각보다 한적했다. 종종 좀비 몇 마리와 좀비에게 뜯긴 시체들이 보였지만 그뿐이었다.

심지어 내부로 들어오니 연기도 옅어져 천장 부근에만 흐르고 있을 정도였는데, 문제의 심연의 숨결은 역 주변에만 둘러쳐져 있었을 뿐이었다.

‘역시 접근을 막는 용도였어.’

이런 정황을 볼 때, 범계 역 안에 진화 학회의 연구시설이 존재할 가능성이 점점 커져갔다. 플레이어의 접근을 차단하기 위해 심연의 숨결을 방사해둔 것이다.

‘그렇다면 레이드 보스는 어떻게 된 거지?’

신도림역에서 놈들의 기억과 지도를 통해 추측할 수 있었던 건, 이곳에 레이드 보스가 ‘억류’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는 건 진화 학회 놈들은 레이드 보스를 찾아 낸 뒤, 충분히 ‘사냥’할 수 있음에도 굳이 그러지 않았다는 의미다.

‘레이드 보스 몬스터는 확실히 살아있다.’

자정이 지나며 발행된 ‘지역 퀘스트’ 역시 그 레이드 보스에 의한 일종의 서브 미션일 가능성이 높았다.

여기서 의문인 점은, 대체 어떻게 레이드 보스 정도 되는 괴물을 사냥하는 걸 넘어 억류할 수 있단 말인가?

‘끝까지 가보면 알게 되겠지.’

방법은 보스 방을 찾는 것뿐이었다. 성우와 민석은 계단을 내려갔다. 지하에서부터 스멀스멀 올라오는 검은 연기가 방향의 지침이 되었다.

“지하터널 쪽으로 이어지네요.”

민석의 말 대로였다. 천장에 흐르고 있는 연기의 꼬리는 지하철도, 터널 안으로 이어졌다.

성우고 고개를 내밀고 리피팅 크로스보우에 달린 손전등을 비췄다. 하지만 빛줄기는 얼마 들어가지 못했다. 거대한 바다짐승의 목구멍처럼 끝없는 어둠뿐이었다.

“······가죠.”

그들은 철로로 뛰어내려 다시 걸었다.

저벅― 저벅―

그런데 성우는 터널을 걸어 들어갈수록 이 장소에 대한 이질감을 느꼈다. 특별할 게 전혀 없는 텅 빈 공간이었는데, 오히려 그게 더 이상했다.

성우는 그 이질감의 이유를 눈치 챘다. 멸망 이후 관리가 전혀 되지 않았음을 텐데 조금의 물도 고여 있지 않은 상태인 것이었다.

‘수원역은 반쯤 침수되어 있었다.’

이런 지하 시설은 침수에 취약할 수밖에 없으며, 배수 시설과 물을 퍼내는 펌프에 대한 상시 관리가 필요했다. 그런데 이곳은 조금도 젖지 않았다.

‘설마 관리되고 있는 건가?’

물론 성우의 지식이 완벽하지 않기에 예외 상황이 존재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의 의심은 들어맞았다.

“······저건?”

조금씩 여명이 비추는 것 같더니, 정면에서 하얀 불빛이 쏟아졌다. 그리고 새하얀 비닐 장막이 나타났다.

통로 전체를 빈틈없이 매우고 있으며 지퍼로 열고 닫을 수 있는 문이었는데, 일종의 간이 격리 시설인 듯 했다.

“이런 거 딱 좀비 영화에서 보던 건데, 저거 정부 마크 아닙니까?”

민석이 가리킨 곳, 출입문의 좌측에는 국가 기관의 심불인 태극 마크가 붙어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이 시설에 관한 설명이 쓰여 있었다.

- 행정안전부 : 재난대책위원회

- 격리 실험 시설 B-2

- 관계자 외 출입금지

“정부에서 만든 시설이 맞긴 한가봅니다. 이런 형식적인 것까지 붙인 걸 보면?”

민석의 말에 성우는 인상을 찌푸렸다.

“이 안에 있는 사람들이 정부 사람인지가 문제죠.”

성우가 찾아온 건 ‘진화 학회’라는 정신 나간 놈들이다. 그런데 그를 맞이한 건 전혀 예상 못한 정부의 시설물이었다.

오래 전부터 알 수 없는 계획을 꾸미고 있는 정신 나간 과학자들과 게임 시작 시점부터 사라진 정부가 어떤 연관성이 있단 말인가?

‘설마 진화 학회가 정부 사람들이라고?’

정부의 요인들 역시 카드를 뽑고 플레이어가 되었을 거라고 추정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 역시 퀘스트에 의해 좌우되며 어디선가 살아남기 위해 발악하고 있을 게 분명했다.

기존의 체계와 기반은 모두 잃었을 테지만, 대한민국을 움직이던 집단인 만큼 어디선가 작지 않은 세력을 보존하고 있을 가능성도 충분했다.

‘뭐가 됐든, 더 이상 믿고 따를 조직은 아니다.’

설령 그런 잔존 세력이 남아있다고 한들, 정부라는 지칭은 더 이상 알맞지 않았다.

찌이익―

성우는 지퍼를 열고 원통형의 비닐 통로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10미정도 앞에 또 하나의 문이 나타났다. 마치 저 문 넘어서 끔찍한 바이러스 같은 게 있어서 다중으로 격리시켜 둔 것만 같았다.

덜컹―

그렇게 두 번째 문까지 열고 들어갔다. 그러자 비교적 천장이 높은 시설이 나타났다. 높이 4미터, 직경 8미터 정도의 터널 안에 여러 실험 장비들이 설치되어 있었다.

그리고 정면으로,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다.

“응?”

- 레이드 보스 몬스터 ‘구울 킹’이 출현했습니다.

꺼―으······

정면에 레이드 보스 몬스터가 나타났다. 그런데 그건 완전한 상태가 아니었다.

“저게······.”

“뭐지?”

거대한 비닐 튜브 안, 거대한 보라색 구울 한 마리가 사지가 잘린 채, 백색의 사슬에 묶여 있었다. 그리고 놈의 머리 위에 백색의 마법진이 빙글빙글 돌며 움직임을 제한하고 있었다.

저 무기력한 놈이 바로 레이드 보스 몬스터인 ‘구울 킹’이었다.

- 주의! 해당 지역에 ‘심연의 균열’이 생성 중입니다.

그리고 그런 경고 메시지와 함께 튜브의 뒤편, 반대편 터널을 향해 보라색 포탈이 열리기 시작했다.

끄에! 끄에에!

그리고 그곳으로부터 좀비 십여 마리가 우르르 쏟아져 나오더니 터널 안의 어둠 속으로 미친 듯이 달려 나갔다. 그 뒤를 이어서 구울 세 마리까지 기어 나왔다.

다행히도 포탈과 시설 사이에는 강화 유리로 된 가림막이 있었기에 언데드들이 이쪽으로 다가오지는 않았다.

“좀비들이 무한정 쏟아져 나오는 이유가 있었네요. 마치 알 낳는 암탉 꼴입니다.”

성우가 담담하게 말했고 민석은 이를 갈았다.

“대체 누가 저딴 짓을······.”

끼익―

좌측, 터널 설비 시설의 문이 열렸다. 그리고 누군가 걸어 나왔다.

“역시나 네크로맨서, 당신이었군.”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였다. 장신의 멀끔한 얼굴에 포마드 머리, 그 사람은 성우가 아는 얼굴이었다.

‘벌써 만날 줄이야?’

소장과 백색의 웨어 울프를 신도림의 보낸 장본인이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몇 명의 사람이 줄지어 나왔다. 백색 수단(Cassock)에 어깨 망토를 걸친 남자와 안경을 쓴 여자였다. 여자가 성우를 훑어보더니 비웃음을 날렸다.

“갑자기 퀘스트가 격상 돼서 연기를 더 뿌렸는데, 대체 누가 저걸 뚫고 들어올 수 있나 했더니만, 흐흐. 우리가 수집하고 싶어 하던 실험체가 제 발로 기어들어왔네요.”

여자가 민석을 쳐다보았다.

“어머, 저건 또 뭐야? 뼈 기사? 오호, 섹시하네.”

“······미안하지만 애가 셋······ 셋이었지.”

민석은 당장이라도 달려가 목을 칠 것처럼 대검을 움켜쥐었다. 순간, 이 사태의 원흉이 저 인간들이라는 걸 눈치 챈 것이다.

“자, 서로 노려보는 건 잠시 접어두고 혹시 모르니 제안 하나 하겠습니다.”

포마드가 한 걸음 다가왔다.

“지금까지 좋지 못한 관계가 이어져온 것 같은데, 어쩌면 시작이 조금 틀어졌을 뿐입니다. 대화를 나누어 보면 잘 맞는 구석이 있을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

성우에 대답하지 않았지만 남자는 멋대로 말을 이어갔다.

“당신은 죽음과 관련된 직업을 뽑았고, 저는 전혀 다르긴 하지만 죽음을 연구하고 있지요.”

“죽음을 연구한다고?”

포마드가 손을 뻗어 구속 된 상태의 구울 킹을 가리켰다.

“누구보다 잘 아실 테지만, 심연의 에너지입니다. 모든 생명과 상극인 힘이죠.”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결과물들이 바로 심연의 호흡을 다루는 여러 폭탄과 가스 무기였다.

“각설하고, 저와 동료들은 이 사건이 인류의 진화를 위해 주어진 시련, 테스트라고 보고 있습니다. 누가 내린 것이든, 이겨내고 테스트를 통과해야죠. 그리고 그 방법은 기존의 껍데기를 벗어던지고 초월하는 겁니다.”

여의도, 신인류, 초월······ 모두 소장의 기억에서 들었던 내용이었다.

“우리는 그 시작을 죽음에서 벗어나는 것이라 봅니다. 그래서 죽음과 심연에 대해서 연구해왔고 이번 챕터에서 놀랍게, 마치 제대로 된 길을 가고 있다는 것처럼, 이 지역에 딱 ‘구울 킹’이라는 레이드 보스가 나타났습니다. 우리에게는 천금 같은 샘플이 되었죠.”

구울 킹을 가리키고 있던 포마드의 손이 성우를 향했다.

“······그리고 방금, 네크로맨서님까지 오셨네요.”

“꼭 뭔가, 누군가 우릴 돕고 있는 것 같네요.”

안경 쓴 여자가 낄낄 웃었다. 포마드가 이어서 말했다.

“이 게임, 모든 게 우연인 것 같지만 인위적인 시스템으로 조작 되고 있습니다. 당신과 제가 여기서 마주하게 된 것도 퀘스트에 의한 결과입니다. 그리고 그렇다는 건, 정해진 정답이 존재한다는 뜻이죠. 게임의 엔딩이요.”

“······엔딩이라?”

“네. 우리는 그 엔딩 속 주연이 될 생각입니다.”

남자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담담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네크로맨서님, 우리는 특별한 기회를 통해 이 게임의 행복한 끝을 봤습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도달해야 되는 지점을 알고 있죠.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은 엔딩으로 향하는 길의 지대한 분기점입니다. 우리가 합류하여 동료가 되는가, 아니면 돌아서 적이 되는가······.”

성우는 그 대목에서 눈살을 찌푸렸다.

‘행복한 끝? 게임의 엔딩? 설마 진화 학회가 해피엔딩의 예언석을 가지고 있는 건가?’

그때, 포마드 머리가 한 걸음 더 다가왔다.

“자, 우리와 대의를 함께 하시죠. 그게 당신께도 좋을 겁니다.”

포마드 머리는 담담한 표정으로 성우를 쳐다보았다. 부탁이 아니었다. 제의였다. 하지만 성우의 표정은 뻣뻣했다.

“게임 판의 말이 돼서 굴러가는 주제에 무슨 대의야?”

“······.”

“그거 영, 성의 없는 포장처럼 느껴져. 그리고 지 멋대로 대의를 말하는 사람 치고 멀쩡한 놈이 없더라.”

뱀파이어 로드, 영등포 검사에 이어 대의를 말하는 놈들이 하나 더 등장했다. 성우는 그들의 사상 따위에는 조금도 관심 없었다.

모든 걸 다 떠나서, 생존자들에게 독가스를 살포하고 사람을 토막 내 약물로 만드는 놈들과는 타협하고 싶지 않았다.

포마드 머리가 돌아섰다.

“뭐, 좋습니다. 시대가 시대이니 긴 말 않겠습니다. 이성은 잠시 접어둬야 하는 때니까요. 성국 씨.”

그 말에 잠자코 서 있던, 백색 수단을 입은 남자가 앞으로 나섰다. 그는 품에서 작은 완드를 하나 꺼냈다.

“박사 님, 구울 킹의 속박이 잠시 풀릴 겁니다.”

“······감수해야죠.”

협상 결렬, 싸움이었다.

“경비대는 나오지 말고 안쪽에서 기다려. 주문 사용하는데 번잡해지니까.”

완드를 쥔 남자가 문 안쪽 향해 그렇게 말한 뒤, 성우를 노려보았다.

‘성직자 계열이다.’

쉽게 말해, 언데드와는 상극일 수 있는 직업이었다. 구울 킹을 제압하고 있는 마법도 저자의 것일 가능성이 높았다.

덜그럭! 덜그럭!

성우는 입구 쪽에 서 있던 스케렐톤과 구울을 움직였다. 그 순간, 정면의 문에서 세 명의 사람이 더 나왔다.

“언데드를 전부 박살내!”

그들 역시 완드를 쥔 성직자였다. 직후, 그들의 완드에서 빛이 번쩍이자 바닥에 백색의 마법진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터널 전체를 덮을 정도로 거대한 크기였다.

“시전 완료!”

“지금 시동해!”

우우웅!

- 성스러운 힘에 의해 당신의 권속들의 능력치가 대폭 하락합니다. (-60%)

언데드들이 재빨리 달려들었지만, 앞서 시전 된 디버프 효과 때문에 움직임이 둔화되고 말았다.

쿵! 쿠―궁! 쿵!

성우를 제외한 모든 언데들이 뒤쪽 벽으로 날아가 부딪쳤다. 언데드 속성 카운트 마법인 듯 했는데, 어찌나 강력한지 터널 외벽에 금이 갈 정도였다.

픽! 픽! 픽! 픽!

성우가 리피팅 크로스보우를 난사했다. 하지만 안경 쓴 여자가 손을 들어 올리자, 화살들이 허공에 멈춰 섰다. 그리고 180도로 회전하더니 성우를 향해 날아들었다.

쩍! 쩍! 쩍!

찰나의 순간, 뼈 갑옷에서 분리 되어 엉성하게 완성 된 뼈 방패가 화살을 막아냈다.

“······갑자기 뭐야.”

민석은 뒤쪽, 설비 시설의 철문에 처박혀 있었다. 고통은 없지만 난데없이 붕 떠올라 날아갔기에 어리둥절했다. 그가 반쯤 접힌 철문을 짚고 일어섰다.

“성국 씨, 조심하세요. 저쪽 벽 안에 실험 수조가 있어요. 깨지면 난리 납니다.”

“아, 예!”

그 말을 들은 민석이 고개를 돌려 문 안쪽을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포마드 머리의 말대로 거대한 수조가 하나 설치되어 있었다.

“······어?”

그리고 그 수조 안을 떠다니는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다시 시전! 놈들을 찍어버린다!”

성국이라는 성직자가 외쳤다. 성우는 피할 수 없는 공격을 기다리며, 대응 방법을 고민했다.

‘터널이 너무 좁아서 대형 스켈레톤을 소환할 수도 없고, 하더라도 무용지물이다.’

기껏해야 4미터 정도의 높이이기에 본 드레이크나 오우거 스켈레톤을 꺼낼 수 없는 상황이었다.

“시전 완료!”

성우가 고민하는 사이에 놈들의 주문이 완성되었다.

“지금 시······.”

촤르르!

하지만 성직자들의 합이 완성되기 전에, 가장 왼쪽에 있던 자의 몸이 공중으로 붕 떠올랐다. 그의 목덜미에 검은색 사슬이 휘감겨져 있었다.

“컥! 커어······.”

- 데스 나이트가 생명력을 착취합니다. (1단계)

- 근처 언데드의 능력치가 상승합니다. (+10%)

다음 순간, 데스 나이트가 그의 목덜미를 움켜쥐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시선은 여전히 뒤쪽, 철문 안의 수조를 바라보았다.

부글부글―

그 안에는 사람들의 머리가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성우 씨, 나 이 사람들······ 절대 용서 못해.”

그건, 구울에게 납치된 생존자들이었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어린 아이의 작은 머리 하나가 천천히 가라앉다가 안쪽으로 사라진 것 같았다.

“적은 어차피 언데드다! 신성 마법으로 찍어 눌러!”

성직자들이 완드를 들어 올리자 데스 나이트를 향해 빛의 화살들이 쏟아졌다. 언데드에게 치명적인 마법이 분명했다.

쩌적― 쩌적―

성우는 급한 대로 뼈 방패를 형성해주었고, 민석이 그걸 집어 들었다.

- 팀플레이로 인해 ‘시너지 효과’가 부여됩니다.

[시너지 목록]

4) 불굴의 기사 (完)

- 구분 : 히든 시너지

- 조건 : 언데드 + 기사 + 방패

- 효과 : 방패로 방어 시 ‘상태이상’에 대한 ‘면역’을 갖습니다.

“······역시 나는 방패가 필요해.”

녹색 안광이 이글이글 끓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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