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1
21) 범계역, 좀비 서바이벌 – 4
“아이들을 지켜!”
민석의 말대로 놈들의 목표에는 스켈레톤 따위는 없었다. 오로지 제 배를 채우기 위한 먹잇감, 생살을 노리고 달려들었다.
그렇기에 거리의 플레이어 혹은 차 안의 노약자들에게 초점이 맞춰졌다.
픽! 픽! 픽! 픽!
성우는 공중을 향해 리피팅 크로스보우를 난사했지만 대부분 허공으로 흩어졌다.
‘빠르다.’
단순히 빠른 게 아니라, 그 움직임 자체가 굉장히 변칙적이었다.
꺼―윽!
앞으로 달려들 것 같더니 옆으로 튕겨져 나가며 바닥을 구르고, 뒤로 펄쩍 벗어나더니, 다시 앞으로 뛰었다. 전혀 종잡을 수 없는 패턴이었다.
“끄아아아!”
성우의 등 뒤, 플레이어의 비명이 공중으로 사라졌다. 그 자리에는 상체가 없는 하반신이 비틀거리며 피를 뿜어대다가 바퀴 아래 쓰러졌다.
대응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나게 빠르다.
텅!
다음 순간, 두 번째 미니버스 위에 구울 한 마리가 착지했다. 놈은 버스의 천장을 향해 왼손을 내리 찍었다.
꽈득! 꽈드득!
그러자 정말 종잇장처럼, 그 원색적인 표현처럼 천장이 뜯겨져 나가는 게 아닌가?
‘막아.’
성우는 즉시 웨어 울프 스켈레톤을 움직였다. 녀석이 점프하여 구울을 덮쳤다. 둘은 그대로 뒤엉키며 버스 뒤로 떨어졌다.
쩍! 쩍! 쩍! 쩍!
- 당신의 권속이 영원한 죽음으로 돌아갑니다.
버스 뒤에서 무슨 일 벌어진 지도 알 수 없었다. 그저, 구울이 웨어 울프의 두개골을 으스러뜨리며 몸을 일으키는 게 보였을 뿐이었다.
꺼―윽!
구울이 괴성을 지르며 성우를 마주봤다. 그 큼직한 눈은 성우의 배를 향해 있었다. 아니, 배속의 무언가를 노리고 있었다.
그런데 다음 순간, 구울의 머리 위에서 마법진이 떨어지더니 놈의 몸뚱이를 바닥으로 내리찍었다.
쿵―
이어서 누군가 달려들어 머리통을 방패로 내리찍었다.
뻑! 뻑!
구울의 한쪽 눈알이 밖으로 튀어나왔다. 민석이었다. 그는 검을 휘둘러 구울의 머리를 잘라 버리고 걷어차 멀리 날려버렸다.
“뒤요!”
성우가 소리치며 리피팅 크로스보우를 난사했다. 민석이 재빨리 방패를 들어올렸다.
콱!
손톱이 방패의 표면을 짓이겼다. 민석은 그 충격을 견뎌냈다. 그리고 엄청난 탄력으로 역습을 시작했다.
“흐―아압!”
그는 방패를 밀어붙이며 구울의 균형을 흔들었고, 오른손의 검을 쑤셔 넣으며 구울의 배를 갈랐다.
‘확실하게 숨통을 끊어야 돼.’
그리고 그 정도로는 구울을 죽일 수 없다는 걸 알기에, 검을 위로 잡아 끌며 내장을 헤집고 심장을 끊어버렸다.
철퍽―
완전히 난도질 된 구울의 육신이 바닥에 엎어졌다. 완벽한 싸움이었다. 하지만 고개를 돌리려던 그는, 화들짝 놀라며 방패를 치켜들었다.
“······뭐, 뭐야! 이 정도까지 했는데?”
자신이 심장을 도려낸 구울이 상처를 회복하며 몸을 일으키고 있었으니 말이다.
“괜찮습니다. 이제 제가 조종합니다.”
성우였다. 그는 어느새 흑색의 거대한 낫 ‘그림리퍼’를 뽑아들고 있었다.
- 사신의 낫 ‘그림리퍼’를 소환합니다.
- 그림리퍼 유지 시간 (00:59:58)
시간을 최대한 아끼려고 했지만, 사태가 심각하다는 걸 깨닫고 1차 각성 시간을 사용한 것이다.
- ‘리치’의 힘을 얻습니다.
* 최대 권속 수가 (+50)만큼 증가합니다.
* 모든 능력치가 (+10)만큼 상승합니다.
* 인근의 파괴된 언데드를 ‘최대 권속 수만큼 무한정’ 부활‧재생시킬 수 있습니다.
“아,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후······.”
민석은 뼈가 드러난 네크로맨서의 모습을 보고도 놀라지 않을 수 있었다. 이미 방송을 통해 그 광경을 본 적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실제로 마주하는 느낌은 사뭇 달랐는데, 그 그로테스크한 위압감에 어깨가 절로 움츠러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한편, 성우는 허공의 메시지를 바라보았다.
- 당신의 권능 아래 망자가 권속(眷屬)됩니다.
* 주인이 있던 언데드 개체입니다. 죽음을 통해 주종의 연이 끊어졌고 당신에게 복속되었습니다.
구울과 같은 언데드 유형의 몬스터 역시 ‘한 번 죽인 뒤’에 권속으로 일으킬 수 있었다. 이 경우는 스켈레톤이 되지 않으며, 구울의 모습이 그대로 유지되었다.
‘어쨌든 전력을 보강할 수 있겠군.’
덜그럭! 덜그럭!
스켈레톤들이 보다 과감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구울들은 잡기 힘들 정도로 재빨랐지만, 놈들의 목표물, 즉 성우가 지켜야 할 대상은 정적이었다.
‘플레이어와 버스를 노리는 놈들을 잡아 죽인다.’
아니나 다를까, 놈들의 수직과 수평을 오가며 미친 듯이 뛰어다니다가도 이내 버스를 향해 달려들었다.
성우의 눈이 그런 놈들을 쫓았다. 그리고 놈들이 버스에 맞붙기 직전, 기다리고 있던 웨어 울프 스켈레톤들이 달려들었다. 구울 한 마리를 스켈레톤 두 마리가 동시에 덮쳤다.
쩍! 쩍!
웨어 울프 스켈레톤 한 마리가 순식간에 나가떨어졌다. 그러나 그 사이에 다른 녀석이 구울의 목덜미를 움켜쥐었다. 또한 박살났던 녀석이 녹색 빛에 휩싸이며 재조립되더니, 어느새 두 녀석이 구울을 찍어 누르기 시작했다.
꺼―윽! 꺼럭······.
- ‘구울’을 사냥하여 9,000골드를 얻었습니다.
이런 광경이 곳곳에서 벌어지기 시작했다.
꽈득!
본 드레이크가 건물 사이를 뛰어다니는 구울을 낚아채 으스러뜨렸고, 성우의 권속이 된 구울이 하나 둘 늘어가며 움직이자 속도전에서도 우위에 서기 시작했다.
- ‘구울’을 사냥하여 9,000골드를 얻었습니다.
- 당신의 권능 아래 망자가 권속(眷屬)됩니다.
성우의 구울들은 무리지어 움직이며 마치 늑대를 쫓는 사냥개처럼, 사방팔방 뛰어다니는 적들을 추격하여 물고 늘어졌다.
- ‘구울’을 사냥하여 9,000골드를 얻었습니다.
- 당신의 권능 아래 망자가 권속(眷屬)됩니다.
싸우면 싸울수록 전력이 강해지는 존재, 그게 바로 네크로맨서였다.
그리고 성우만 활약하고 있는 게 아니었다. 민석의 움직임 또한 예사롭지 않았다. 성우는 전투를 치루는 내내 그를 유심히 살펴봤다.
“용맹의 벽!”
그의 외침과 동시에 방패 전체를 노란색 마법진이 덮었다. 적을 찍어 누르던 공격과는 다른 스킬이었다. 그 상태로 구울을 밀어붙이자, 놈의 몸이 마치 기름에 미끄러지는 것처럼 주르륵 밀러나갔다.
푹! 처어―억!
그 상태로 검을 찔러 넣고 단숨에 배를 갈라버렸는데, 마지막 순간마다 정확하게 심장을 파괴했다.
‘군더더기 없이 정확하다.’
상가에 고립된 채 무력하게 갇혀 있던 게, 민석이 스스로가 약해서가 아니라는 걸 증명했다. 그저 주변 사람을 지킬 수 있을 정도로 압도적이지 않았을 뿐이었다.
‘능력치만 뺀다면, 최정훈보다 강할 수도 있다.’
심지어 저 중년 남자가, 랭킹 4위의 영등포 검사보다 강할 수도 있다고 생각될 정도였다.
방금도 방패를 들어 올린 채 구울의 몸 안쪽으로 파고 들더니, 검을 휘둘러 무릎 뒤쪽을 베어냈다. 그러자 구울의 몸이 휘청거렸고, 방패로 밀어 넘어뜨린 뒤 정확히 심장 위로 검을 꽂았다.
“후우······.”
민석은 언뜻 봐도 1~2성 직업을 뽑은 건 아닌 것처럼 보였다. 그는 남다른 감각을 가진 지수만큼은 아니지만, 다른 누구보다 잘 싸우고 있었다. 거칠고 투박하지만, 침착하고 불필요한 동작 없이 움직였다.
“······아빠! 아, 아빠!”
“쉿, 머리 숙이고 조용히 있어!”
그리고 그가 그렇게 온몸을 내던져 거칠게 싸울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이번에는 절대로, 절대로······.’
아직도 생생했다.
지역 퀘스트가 발동된 직후, 그의 가족은 운이 없게도 도로 위에 있었다. 근처에 있던 다른 그룹과 힘을 합치기로 한 뒤, 정해진 피난처로 합류하던 중이었다.
그는 운전대를 잡고 복잡하게 꼬인 도로 사이를 움직였다. 피난처까지 500미터쯤 남았을 때였을까?
쨍그랑!
“아악! 여보!”
“아빠!”
백미러를 보았다. 아니, 그랬으면 안 됐다. 곧장 고개를 돌리고 팔부터 뻗었어야 됐다. 그가 반응하지 못한 그 찰나의 순간, 막내가 창문 밖으로 끄집어내졌다.
핸들을 잡고 있던 손이 잠깐 주저했던 사이, 아들은 구울의 입에 물린 채 골목 끝으로 사라져버렸다.
그 순간, 그 죄악의 순간을 절대로 잊지 못할 것 같았다.
그리고 지금, 그의 발아래에 그 역겨운 구울이 엎어져 있었다.
“으아아! 죽어!”
촤악!
그는 구울과 맞서면서도 눈을 돌려 버스를 확인했다. 혹여나 또 다른 놈이 버스를 노리면, 당장이라도 등 돌려 달려갈 수 있게 말이다.
‘된다. 이대로만 버티면 모두를 지킬 수 있어.’
그는 버스의 뒤쪽을 기어오르는 놈을 포착했다. 즉시 달려가 놈의 다리에 검을 꽂아 넣고 잡아당기어 끌어내렸다.
퍽! 퍽!
방패로 머리를 후려쳤다. 머리를 향해 날아드는 손톱을 피해낸 뒤 검을 휘둘렀다. 그러는 사이에도 그의 시선은 버스에 맺혀 있었다.
아내의 품속에 머리를 묻고 떨고 있는 두 아들······.
촤악!
- 레벨 업 하셨습니다. (LV. 12)
그는 재빠르게 근력에 능력치를 투자했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젠장······.”
하지만 상황이 나아지고 있다는 건 희망에서 비롯된 착각이었던 걸까?
민석, 자신과 더불어 성우와 지수만이 유달리 잘 싸울 뿐이지, 다른 플레이어들은 그야말로 속수무책으로 도륙 당했다.
“으아아! 아파! 아악!”
“컥! 커어······.”
한 남자가 팔이 잘려나간 채, 바퀴에 기대어 비명을 질러대고 있었고, 누군가는 이미 숨이 끊어진 상태로 내장을 파 먹히고 있었다.
“꺄아아아!”
여자의 비명이 공중으로 치솟았다. 구울에게 목덜미를 물린 채 옥상너머로 끌려가버린 것이다.
그리고 상황이 이렇게 되자 버스의 수비에 공백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아저씨! 아, 앞쪽 버스요!”
누군가 소리쳤다. 첫 번째 버스의 왼쪽, 구울 한 마리가 달라붙어 노인 한 명을 창문 밖으로 끄집어내는 중이었다.
“흐아아! 흐아!”
등에 손톱이 박힌 채, 그 연약한 몸뚱이가 속절없이 딸려나갔다.
“젠장!”
그렇다. 이들에게는 이 상황 어떻게든 정리할 수 있고 말고가 문제가 아니었다. 친구가, 가족들이 실시간으로 잔인하게 죽어나가고 있었다.
그걸 막고 싶은 거였다.
그림리퍼의 ‘사자의 권역’ 효과 덕분에 부서진 스켈레톤들이 다시 일어섰고, 집단으로 움직이며 구울을 하나 둘 잡아내고는 있었지만, 이 난장판 속에서 희생자가 생기는 걸 막는 건······ 사실상 불가능했다.
“버스 안에 사람들! 당장 고개를 숙이라고 해!”
하지만 그의 몸은 한 개뿐이었다.
까가강!
“아아악! 아빠!”
첫 번째 버스를 향해 달려가던 민석의 발걸음이 멈췄다. 그리고 곧장 돌아섰다.
······구울 두 마리가 그의 가족이 탄 버스를 공격하고 있었다.
“안 돼!”
그가 고함치며 스킬을 사용했다. 방패 위에 노란 문양이 떠올랐고 공중에서 마법진이 낙하하며 구울 한 마리를 찍어 눌렀다. 하지만 여전히 한 마리가 더 붙어 있었다.
손을 뻗었다. 두 번째 스킬이 필요했다.
- 지금은 사용할 수 없습니다. (대기시간 : 00:01:58)
놈은 창문 안으로 긴 팔을 뻗어, 민석의 아들을 향해 비수 같은 손가락을 흔들어대고 있었다.
‘늦는다.’
민석은 막내아들이 사라지던 찰나의 순간을 떠올렸다.
‘또 다시 늦는다.’
조금이라도 늦으면, 돌이킬 수 없다.
텅!
그는 무거운 방패를 내던졌다.
챙!
검까지 내던졌다.
“으아아아!”
그리고 전속력을 달려가 창문에 들러붙어 있는 구울의 몸을 덮쳤다. 놈의 몸이 버스에서 떨어졌다.
민석은 구울과 뒤엉킨 채 바닥을 사정없이 구르더니, 어느 상가의 지하계단으로 굴러 떨어져버렸다.
“여, 여보!”
“아빠! 안 돼! 아빠! 으아앙!”
성우는 아이의 울음소리를 듣고는 고개를 돌렸다. 민석이 사라진 계단 아래에서 몸싸움을 벌이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짙은 어둠 속에 파묻혀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으아앙! 아, 아저씨! 네크로맨서 아저씨! 아빠 좀 살려주세요! 으아아!”
성우는 바닥에 떨어진 방패와 검을 발견했다.
‘맨손이라고?’
성우가 서둘러 계단을 내려갔다. 그는 리피팅 크로스보우에 묶어 놓은 손전등을 들어 올리고 주인 잃은 검을 뽑아들었다.
턱― 턱― 턱―
낡은 계단에 성우의 발소리만이 울렸다. 그리고 조금씩 깊이 내려갈수록 거친 숨소리가 들려왔다.
“헉! 허으······.”
계단 끝에 도착한 성우는 철문 앞에 기댄 채 앉아 있는 민석을 발견했다.
그는 단검을 쥐고 있었고, 그의 발아래에는 배가 갈라진 구울 시체가 있었다.
“쿨럭!”
하지만 배가 찢겨진 건 민석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다리로 사이로 시뻘건 뭉텅이가 쏟아져 열기를 뿜어댔다.
“물약을 가져다드리죠.”
“커, 그걸로······ 아, 안 된다는 거 아, 아시죠?”
민석의 말이 맞았다. 이미 물약으로 치료 가능한 수준을 넘었다.
“흐, 흐윽! 가족들을 지, 지켜야 되는데······.”
“······.”
그의 눈에서 피눈물이 흘렀다.
“개, 개 같은 구울들······.”
그의 눈동자가 뒤집어질 듯 말 듯 아슬아슬하게 흔들렸다. 하지만 그는 안간힘을 다해 입을 열었다. 할 말이 아직 많이 남은 듯 했다.
“서, 성우 씨, 아까 전 부탁······ 대답을 듣지는 못했지만 꼭 좀, 꼭 제 가족을, 저를 꼭 써서······.”
그 말을 채 끝내지도 못하고, 그의 머리가 풀썩 꺾였다.
“······.”
성우는 고개를 들어 올려 계단 위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문득, 그곳으로 올라갈 자신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대답하지 못했던 민석의 부탁이 떠올랐다.
“제가 죽으면 이 몸뚱이를 써주십쇼.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죽어서라도 가족을 지키고 싶습니다. 부탁합니다.”
민석의 부탁은 만약 자신이 죽게 된다면, 자신을 스켈레톤으로 일으켜서라도 가족을 지키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기사가 마지막으로 남긴 건, 아버지의 한이었다.
그리고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 특별한 조건이 만족되어 ‘전용 퀘스트’가 발동됩니다.
[전용 퀘스트]
- 제목 : 어느 기사의 유언
- 유형 : 망자 ‘구원’ 혹은 ‘방치’
- 목표 : 기사를 ‘스켈레톤’으로 일으켜라
- 보상 : 전용 스킬
짙은 사명을 품은 기사가 있었다. 그는 그 사명을 위해 죽었지만, 한편으로는 그 사명을 완수하지 못했기에 짙은 원한을 품었다. 그리고 죽음의 고삐를 쥔 당신에게 한 가지 유언을 남겼다.
당신은 기사의 유언을 받아 그의 육신을 소유할 수 있는 자격을 얻었다. 다만 그의 유언인 ‘가족의 안전’을 책임져야만 할 것이다. 그 책임을 다할 시, 기사의 육신은 그 무엇보다 강력한 충성으로 보답할 것이다.
물론 기사의 유언을 약자의 평범한 마지막으로 남겨둔 채 떠나갈 수도 있다. 선택은 당신의 몫이다.
* 당신의 선택이 당신의 ‘운명’에 영향을 미칩니다.
“이게······ 퀘스트라고?”
권속을 일으키는 퀘스트라니, 지금까지 본 적 없는 상황이었다. 분명한 건, 민석의 행동이 어떤 조건을 만족시켰다는 것뿐이었다.
어려울 것 없었다.
성우는 중년 기사의 시체를 되살렸다.
우우우―
민석이 몸이 녹색 불꽃에 휩싸였다. 그리고 사지부터 천천히, 뼈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 불길은 민석의 얼굴을 뒤덮었고, 이내 완전히 그의 텅 빈 안와에 녹색 안광이 점등했다.
절그럭―
덩치 큰 기사가 다시 일어섰다.
- ‘데스 나이트’와 계약 관계가 성립합니다.
* 생전의 의식을 유지합니다.
* 조건 만족 시 권속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제 부탁을 들어주셨군요.”
성우가 데스 나이트에게 ‘주인 잃은 검’을 내밀었다. 뼈만 남은 손이 흑색 대검을 움켜쥐었다.
“다시 올라가서 할 일을 다 합시다.”
기사가 계단을 올랐다. 다시 한 번 출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