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0
21) 범계역, 좀비 서바이벌 – 3
좀비가 두려운 이유는 상처를 입을 경우 감염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부상을 신경 쓰지 않으며 적극적인 전투를 펼칠 수 없다.
민석이 말하길, 적지 않은 수의 동료들이 좀비가 되었고 결국 자신의 손으로 죽여야 했다고 했다.
그런 의미에서 스켈레톤은 역시나 유리했다. 감염 따위를 걱정할 필요 없이, 좀비 사이를 마음껏 헤집을 수 있으니 말이다.
덜그럭! 덜그럭!
9마리의 수인 스켈레톤이 일렬로 전진했다. 왼손에는 두꺼운 방패를 들고 오른 손에는 장창을 쥔 채 밀어붙였다. 마치 고대 그리스의 팔랑크스 방진과 같은 모습이었다.
끄에에! 끄에!
좀비들이 물밀 듯 몰려와 방패 벽에 부딪쳤다. 하지만 기골이 장대한 스켈레톤들은 제 자리에 버티고 선 채, 꿈쩍도 하지 않았다.
“밀어 붙여.”
쿵! 쿵! 쿵! 쿵!
성우의 한 마디에 스켈레톤들이 왼 쪽 발을 앞으로 뻗으며 방패를 밀어 쳤다. 그러자 방패에 들려 붙었던 좀비들이 우르르 나가떨어졌다.
끄에에! 끄에!
하지만 넘어진 놈들을 그대로 짓밟으며, 더 많은 좀비들이 밀고 들어왔다. 스켈레톤들은 이번에는 오른손, 장창을 직각으로 찔렀다.
푹! 푹! 푹! 푹!
하얀 뼈 방패 위로 찐득한 피가 튀었고 대리석 바닥 위에 좀비 시체가 하나 둘 쌓기 시작했다.
- 하급 좀비를 사냥하여 300골드를 얻었습니다.
- 하급 좀비를 사냥하여 300골드를 얻었습니다.
머릿수가 더럽게 많을 뿐, 고작 300골드짜리였다.
“후방! 지원 사격 한다!”
민석이 명령했다. 플레이어들이 스켈레톤의 어깨 너머로 화살을 쏘았다. 성우 역시 리프팅 크로스보우를 들어 올려 마치 기관총 소사하듯, 전면을 한바탕 긁어버렸다.
픽! 픽! 픽! 픽! 픽!
머리를 정확하게 맞추지 않는 이상 무력화시킬 수는 없었다. 하지만 좀비를 주춤하게 만드는 것만으로도 스켈레톤의 돌진에 큰 도움이 되었다.
쿵! 쿵! 쿵! 쾅!
종종 <방패 돌격(1단계)>의 ‘넉백(Knock-Back.)’효과가 터졌다. 좀비가 수 미터를 튕겨나가더니 뒤이어 달려오던 좀비까지 와르르 밀어버렸다.
“용맹의 압력!”
또한 민석의 활약 역시 대단했다. 그는 기사 클래스로 보였는데, 그가 스킬을 사용하자 방패 위에 노란색 마법진이 생성 되었다.
쿵―
다음 순간, 정면으로 달려들던 좀비들의 머리 위해 큼직한 마법진이 생성되었다. 그리고 그대로 낙하하며 좀비들을 바닥 위로 내리 찍어버렸다.
끄윽! 끅!
그 한 방으로 즉사시키지는 못했다. 하지만 행동 불능이 될 정도로 강력한 한 방이었다. 민석은 앞으로 나아가며, 검을 휘둘러 놈들의 머리를 능숙하게 도려냈다.
“계속 퍼부어! 밖으로 나가야 된다!”
그렇게 밀고 나가다보니 어느새 출입구에 가까워졌다.
피이이―
그때, 궁수 계열 플레이어가 쏜 푸른 섬광의 마법 화살 한 발이 빗나가며 거리 밖까지 쏘아졌고, 그 빛의 궤적을 따라 주변부가 어렴풋이 드러났다.
“제, 젠장, 그렇게 죽였는데 아직도 바글바글하네.”
거리를 빼곡하게 메운 머리통들이 일순간 드러났다가 다시 어둠 속에 잠겼다. 건물 밖은 발 딛을 틈도 없이 좀비로 빼곡하게 채워진 상태였다.
성우는 창문 밖으로 리피팅 크로스보우를 난사했다. 그 몸체에 손전등을 묶어 두었지만, 시야 확보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다만 눈앞에 메시지가 지침이 되었다.
- 하급 좀비를 사냥하여 300골드를 얻었습니다.
- 하급 좀비를 사냥하여 300골드를 얻었습니다.
- 하급 좀비를 사냥하여 300골드를 얻었습니다.
그건, 적진에 수류탄을 던져 넣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폭발.”
쾅! 쾅! 쾅!
좀비 떼 사이에서 폭발이 일어나며, 그 주변부에 있던 다수의 좀비가 화염에 휩쓸리며 나가떨어졌다. 잘려나간 신체 파편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맙소사. 화력이 다르네······.”
“방금 한 방으로 몇 마리가 죽은 거야?”
플레이어들도 기가 차는 모양이었다.
“밖으로 나갈 겁니다. 대비하세요.”
“언제 말입니까?”
“바로 지금이요.”
덜그럭! 덜그럭!
성우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수인 스켈레톤들이 허리를 굽히며 바닥을 박차고 나갔다. 돌격에 속도가 붙었고 좀비들이 방패에 치이며 사방으로 나동그라졌다.
퍽! 퍽! 퍼―벅!
끄, 끄에······.
하지만 좀비의 숨통을 완전히 끊지 않고 그대로 밀고 지나가는 바람에, 스켈레톤 등 뒤에서 살아 있는 놈들이 몸을 일으켰다.
“어, 어어?”
“빨리 머리통을 쳐!”
플레이어들이 허둥지둥 하는 사이, 수인 스켈레톤들은 창문 밖으로 몸을 내던져 좀비 사이로 파고들어갔다.
녀석들은 방패와 창을 집어 던지고, 발톱을 들어 올려, 좀비 떼와 뒤엉킨 채 난전을 펼치기 시작했다. 전장이 실내에서 실외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촤악! 촤악!
- 주의! 해당 지역이 ‘대강령(大降靈)’이 시작됩니다.
공간이 확보되었으니 압도적인 지원군이 나설 차례였다.
쿵― 쿵―
거리의 좌우에 거대한 백색 물체가 우뚝 솟아났다. 그 형태가 정확히 보이지 않았음에도, 그것들은 얼마 존재하지 않는 빛을 온몸으로 반사하며 유독 도드라져보였다.
“저, 저건······.”
“드, 드레이크다!”
왼쪽에는 ‘본 드레이크’가, 오른쪽에는 ‘오우거 스켈레톤’이 나타난 것이다. 일개 좀비 따위와는 비견될 수 없는, 레이드 보스 몬스터 출신의 언데드였다.
딱딱―
그리고 본 드레이크의 등 뒤에는 오른이를 비롯한 8마리의 스켈레톤들이 매달려 있었다.
쿵― 쿵―
두 거구가 몸을 움직이는 동시에, 8마리의 스켈레톤이 바닥을 향해 뛰어내렸다. 마치 헬기에서 강하하듯, 좀비들의 머리 위를 덮쳤다.
오른이는 단칼에 좀비 두 마리를 베며, 놈들의 다리 아래로 파고들어갔다.
촤악! 촤악!
그리고 녀석이 움직이는 방향에 따라 좀비들이 줄줄이 고꾸라지기 시작했는데, 마치 논을 헤집고 나아가며 벼를 하단부터 베어 넘기는 것 같은 장면이었다.
그러나 그 정도는 약과였다. 드레이크가 스켈레톤들이 없는 방향을 향해 꼬리를 낮게 깔고 휘둘렀다.
퍼―버―벅!
거대한 꼬리에 휩쓸린 좀비들이 마치 불에 구워지는 옥수수 낱알처럼 사방으로 튕겨져 나갔는데, 건너편 건물의 3층 창문까지 날아가 처박힐 정도였다.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리니, 오우거 스켈레톤이 발을 굴러댔다. 좀비를 통째로 찌그러뜨리고 두꺼운 발등으로 걷어 차 날려버렸다.
24시간의 대기시간이 지나지 않아 ‘뇌신의 가호’ 팔찌의 전격 스킬을 사용할 수 없었지만, 그 거대한 몸뚱이를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마치 전차와 같은 힘을 발휘했다.
- 하급 좀비를 사냥하여 300골드를 얻었습니다.
- 하급 좀비를 사냥하여 300골드를 얻었습니다.
- 하급 좀비를 사냥하여 300골드를 얻었습니다.
- 하급 좀비를 사냥하여 300골드를 얻었습니다.
300골드가 셀 수도 없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말도 안 돼.”
“저 많은 걸 정면으로 뚫어버리다니······.”
플레이어들은 어느새, 어둠 속에서 펼쳐지는 언데드들의 광기어린 전투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 옥상의 사람들을 데리고 오세요. 아, 혹시 사람들을 태우고 갈 수 있는 차량이 있습니까?”
“예! 혹시 몰라서 지하주차장에 미니버스 2대를 준비해뒀습니다. 현석아! 종민아! 지하로 가서 차 대기시켜 놔!”
민석은 곧장 돌아서며 탈출을 준비했고 성우는 건물 밖의 상황을 훑어보며 앞으로의 스케렐톤 배치를 가늠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대열을 정비할 만한 공간이 나지 않았기에, 효율적인 전투를 접어 둔 채 난전을 계속할 수밖에 없어보였다.
끄에에! 끄에에!
‘여전히 끝도 없이 몰려온다.’
절반 이상의 좀비를 쓸어버렸지만, 여전히 골목에서 떼거지로 기어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놈들의 복장을 보건데, 대부분 이 세계 사람의 복장이 아니었다. 생존자가 감염 되어 좀비로 변한 수보다, 성우가 좀비를 소환하는 것처럼, 외부 차원에서 온 존재가 훨씬 많은 것이었다.
‘그렇다는 건 한도 끝도 없이 나올 수도 있다는 뜻이다. 최악의 경우 범계역을 점령하기 전까지 이런 싸움이 계속 될 수도 있어.’
좀비들은 그 수가 많이 줄어들었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고 맹목적으로 움직였다.
끄에! 끄에에!
본 드레이크의 몸 위에 벌레처럼 기어 올라가 무의미한 공격을 퍼부어대는 한편, 수인 스켈레톤에게 십여 마리가 떼로 달려들어 무게로 찍어 누르는 등 유효한 데미지를 입히기도 했다.
- 당신의 권속이 영원한 죽음으로 돌아갑니다.
결국 웨어 울프 스켈레톤 한 마리가 부위 별로 잡아 뜯겨져버리며 죽음으로 돌아갔다.
소모전에는 그 누구보다 자신 있는 성우였지만, 이 지역 전체에 부여된 대규모 퀘스트인 만큼 쉽게 감당할 수 없는 숫자가 몰려오는 중이었다.
피해가 한 마리뿐인 게 아니었다. 수인 스켈레톤들의 몸 곳곳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으니 앞으로 더 많은 희생이 발생할 터였다.
‘그래도 죽음의 응답이나 그림리퍼 소환은 아껴야 된다. 오늘 하루가 언제 끝날지 몰라.’
성우는 오늘 밤이 매우 길어질 거라고 예상했다. 이 길로 나아가 범계역 자체를 공략해야 할 테니 말이다.
“지수 씨, 우리도 가죠. 조금이라도 빨리 도로를 장악하고 골목을 틀어막아야 됩니다.”
지수가 트레이닝복의 지퍼를 끝까지 올리고 손목을 돌리며 근육을 풀었다.
“네. 준비 됐어요.”
성우와 지수도 그 난전 속에 뛰어들었다. 성우는 왼손으로 리프팅 크로스보우를 난사하며, 오른손으로 주인 잃은 검을 휘둘렀다.
픽! 픽! 픽! 퍼석!
묵직한 대검이지만 근력 수치가 높은 만큼 무리 없이 사용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런 근접전에서만큼은 지수가 성우보다 뛰어났다. 그녀는 환도를 양손으로 움켜쥐고 변칙적인 스텝을 밟으며 칼을 휘둘렀다.
촤악! 촤악!
그녀의 칼날은 매순간 정확한 궤적으로 움직이며 좀비의 머리를 절단했다. 또한 검기가 쏘아져 나가며 후열의 좀비들까지 타격을 입혔다.
온몸에 피가 튀었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더 깊숙한 적진으로 파고들어갔다. 어쩌면, 그 자체를 즐기고 있는 건지도 몰랐다.
“골목! 골목 쪽으로 사격 집중해! 놈들이 거리로 나오지 못하게 막아!”
“오른쪽 호프집 쪽에 몰려 있다! 마법 좀 써봐!”
이에 건물 안 플레이어들의 지원사격까지 더해지자 상가 앞의 거리는 차츰 정리되기 시작했다.
픽! 픽! 픽! 픽!
성우는 골목을 향해 리피팅 크로스보우를 난사하며, 웨어 베어 스켈레톤을 움직였다. 덩치 네 마리가 좀비들이 튀어나오는 골목을 틀어막았다.
그리고 본 드레이크와 오우거 스켈레톤으로 대로의 양쪽을 지키게 했다.
우우웅! 빠앙!
그렇게 어느 정도의 안전이 확보되자 지하주차장의 셔터가 올라가고 미니버스 두 대가 지상으로 올라왔다.
“차량 준비 됐습니다!”
민석이 운전석에서 내리며 외쳤다.
“제가 좀비의 접근을 최대한 막아뒀습니다. 이틈에 빨리 사람들을 태우시죠.”
“예!”
민석이 돌아서며 플레이어들에게 소리쳤다.
“자, 우리는 건물 입구를 지킨다!”
플레이어들이 건물 입구부터 미니버스의 문까지 진을 쳤고, 이내 노인들과 아이들 계단을 내려오기 시작했다.
앞서 나온 젊은 여자 한 명이 아이들을 붙들고 버스 입구를 가리켰다.
“얘들아 잘 봐. 절대 다른 곳 쳐다보지 말고, 바닥도 보지 말고, 앞만 보고 뛰어서 버스 안쪽 끝까지 쭉 들어가는 거다? 알겠지?”
아이들은 코를 훌쩍이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 둘, 셋! 뛰어!”
아이들이 재빨리 달려와 차 안으로 탔다. 겁에 질린 눈은 충혈 되고 퉁퉁 불어 텄지만, 입을 꾹 다물고 어른들의 말을 잘 따랐다.
“잘했어. 안전벨트 메고, 이제 절대 소리 내지 말고 이대로 가는 거다?”
“누, 누나 우리 언제까지 차타고 가야 돼?”
“이제 다 끝났어. 곧 끝날 거야······.”
하지만 좀비 떼의 습격은 지금부터 시작이었다. 이 게임은 언제나 그렇듯 1절만하지 않는다.
- 구울이 생살의 냄새를 맡고 움직입니다.
그 메시지에 사람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허, 구울이!”
구울, 민석이 이전에 한 번 경고한 적 있는 존재였다.
“망할! 곧 구울이 올 겁니다! 그 새끼들은 좀비 따위와는 차원이 다른데, 살아 있는 사람만 집요하게 노립니다.”
민석마저도 공포에 절은 표정이었다.
“성우 씨, 감히 부탁드리는데 구울 그것들이 아이들에게 접근하지 못하게 막아주십쇼. 어찌나 재빠른지······.”
민석은 순간 울컥하며 말을 끝마치지 못하고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그 개 같은 것들이······ 차 창문을 깨고 제 막내아들을 잡아채 갈 때, 저는 반응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이번에도 그럴까봐 두렵습니다.”
그의 방패가 부르르 떨렸다. 그에게는 구울이란 것이, 그 무엇보다 두렵고 증오하는 존재로 각인 되어 있는 이유가 있었다.
“노력하겠습니다.”
장담은 못했다.
“······감사합니다. 저 역시 노력할 겁니다. 이번에는 꼭 가족들을 지키고 싶습니다.”
이내 두 번째 차량에 노인들까지 탑승을 마쳤다.
성우는 본 드레이크를 앞장세우고, 오우거 스켈레톤으로 맨 후미를 지키는 대열을 만들었다.
그 사이에 미니버스 두 대를 배치한 뒤, 양측으로 수인 스켈레톤들을 쭉 깔아, 버스의 노약자들을 최대한 보호할 수 있게 만든 것이다. 민석과 플레이어들 역시 미니버스 양측에 바짝 붙었다.
“속도는 못 내겠지만 이대로 최대한 안전하게 범계역으로 갈 겁니다. 거기로 가서 제가 원흉을 제거하고 이 퀘스트를 끝내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저희도 짐이 되지 않게 목숨 걸고 싸우겠습니다.”
일행은 그렇게 검은 도심 속으로, 더 깊은 곳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
앞을 막고 있는 차량이 나올 때마다 본 드레이크가 옆으로 밀어 치워버려야 했다. 그렇게, 정말 기어가는 것 같은 행렬이 이어졌다.
일행은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면서도 무기를 쥔 손에 힘을 풀지 못했다. 그들은 사방으로 불빛을 비추며 뜨거운 숨을 천천히 내뱉었다.
“하아······ 갑자기 왜 이리 조용하지?”
“쉿. 재수 없는 소리하지 마. 구울은 원래 내장 씹을 때 말고는 소리 같은 거 안 내니까.”
미니버스와 헤드라이트가 정면의 어둠을 천천히 밀어냈다. 하지만 플레이어들이 들고 있는 손전등 불빛은 너무나 유약해서, 까마득한 어둠 속에서 이리저리 방황할 뿐이었다.
도시는 어두웠고 골목은 깊었다. 손전등 불빛은 그 골목의 어귀밖에 밝히지 못했다. 저 끝자락에 무엇이 존재하고 있을지······ 생존자들은 불필요한 상상에 의존해야만 했다.
“어, 여기는?”
이내 옅은 빛이 켜진 한 상가 건물을 마주하게 됐다. 유아복 매장으로 보이는 건물이었는데, 로비에 켜진 전등이 불안하게 깜빡이고 있었다.
“여기도 당했군······.”
“여기 사람들이랑 어제 점심까지만 해도 마주쳤는데.”
그 입구에는 수십 구의 좀비 시체가 늘어져 있었다. 그 사이에는 플레이어의 시체도 드문드문 보였다. 그리고 그 죽음의 행렬은 건물 깊은 곳까지 끝없이 이어졌다.
“우리도······ 네크로맨서가 없었으면 이렇게 됐겠지.”
“······그나마 다행이야.”
일행은 그 건물을 지나치며 애써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안도하기에는 아직 일렀다. 밤이 끝나려면 아직 멀고도 멀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 밤은 결코 친절하지 않았다.
스스―스스스―
“성우 씨, 무언가 우리 주변에 붙었어요.”
지수가 양측 건물의 옥상을 번갈아 보았다. 그녀의 시력이 어둠을 꿰뚫어볼 정도는 아니었지만, 검은 물감 위에 회색 물감이 번져나가는 것 같은, 그런 이질적인 잔상을 잡아낼 정도는 됐다.
지수의 말에 모든 이들이 고개를 치켜세웠다. 누군가 침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와, 왔다. 그것들이 온 거야······.”
“······쉿.”
이 주변을 맴돌 고 있는 ‘소리 없는 존재’가 무엇일지는 어느 정도 알 수 있었다.
성우는 뼈 방패를 슬며시 들어올렸다.
척―
그때, 무언가 본 드레이크의 등 뒤에 달라붙었다. 본 드레이크가 반응하기도 전, 그것은 다시 한 번 공중으로 튕겨져 올랐다. 성우는 그 움직임을 놓치고 말았다.
촤악!
“······어?”
별안간 가장 앞서 가던 플레이어가 풀썩 쓰러졌다. 머리가 통째로 잘려나간 상태였다.
“미친!”
“······정지!”
행렬 멈췄다. 바닥에 엎어진 플레이어의 시체는 목덜미에 붉은 웅덩이가 고였다. 너무 순식간에 당한 탓인지, 여전히 걷고 있는 것처럼 무릎을 들썩거렸다.
“······.”
덜덜덜―
미니버스의 엔진 소리가 고요함 속에서 불안하게 울려왔다. 사람들은 숨소리조차 내지 못했다.
“왼쪽이요!”
지수가 소리쳤다. 왼쪽 골목, 무언가 펄쩍 뛰어 미니버스를 향해 달려들었다.
“안 돼!”
버스 창문에는 어린 아이의 얼굴이 비췄다. 바로 그곳을 향해, 보라색의 괴물이 달려들었다. 속수무책이었다.
촤악!
아슬아슬한 순간, 구울의 머리가 허공에서 두 바퀴를 내리 회전하더니, 몸통과 분리되며 튕겨졌다.
그 찰나의 순간, 오로지 그녀만이 반응하여 몸을 던진 것이다.
퍽!
하지만 속도가 붙은 채 날아오는 구울의 몸뚱이가 지수를 강타했고, 그녀는 뒤로 날아가 미니버스에 강하게 부딪쳤다
“······허억!”
그녀는 복부에 통증이 있는지 헛구역질을 몇 번 해댔다. 하지만 안정을 취할 틈도 없이 칼을 들어 올리며 사방을 경계했다. 그만큼 위급한 상황이란 걸 감지한 것이다.
그리고······.
꺼―윽! 꺼―윽!
사방에서 기괴한 울음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온다. 몰려온다.”
골목 어귀, 옥상 난간, 도로의 표지판 위, 놈들이 하나 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 숫자가 적지 않았다.
꺼―윽! 꺼―윽!
보라색 피부를 가진 장신의 식인귀, 흰자위 없이 검은 동자만이 공허한 눈이, 오로지 살아 숨 쉬는 사람들을 향했다. 이빨이 하나도 없는 주둥이에서 끈적끈적한 침이 흘러나와 길게 늘어졌다.
놈들이 곧장 달려들지 않았다. 마치 닭장을 살펴보며 잡아먹을 닭을 고르는 것처럼, 번들거리는 검은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러대며 생존자들을 훑었다.
“하아······.”
민석은 가족들이 타고 있는 미니버스 옆에 서 있었다. 그는 방패를 들어 올리다가 성우와 눈이 마주쳤다.
“너무 많습니다.”
좌절이 담겨 있었다. 막내를 잃은 뒤 일종의 트라우마가 작용하고 있는 걸까? 그의 검 끝이 파르르 떨렸다. 그가 이어서 입을 열었다.
“성우 씨, 혹시 그······ 사람이 해골이 되어도 의식이 있습니까?”
“아뇨.”
민석이 칼자루를 굳게 쥐었다.
“성우 씨, 놈들이 움직임이 달라졌어요.”
지수의 말대로 놈들의 무게 중심이 서서히 낮아졌다. 달려들 채비가 분명했다.
“성우 씨,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민석은 굳은 눈으로 유언 같은 부탁을 말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성우는 그에 대해 대답할 수 없었다.
“······오, 온다!”
민석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식인귀들이 버스를 향해, 버스 안의 연한 육질을 향해 달려들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