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8
21) 범계역, 좀비 서바이벌 – 1
민흠의 SOS요청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 물건을 건드릴 수 있는 건 네크로맨서가 유일했으니 말이다.
방독면을 쓰고 근처로 다가가는 것까지는 가능했다만, 그 물건을 손을 대는 순간, 크루세이더 대원이라고 해도 버티지 못하고 쓰러졌다.
성우가 그 앞에 섰다.
푸쉬이―
언뜻 봤을 때는 초대형 사이즈의 보온병 같았다. 그 물건은 시간이 꽤나 지났음에도 시종일관 검은 연기를 내뿜고 있었다. 심연의 호흡을 담고 있던 가스통과는 격이 다른 물건임에 틀림없었다.
“바로 그겁니다. 괜찮으십니까?”
방독면을 쓴 민흠이 멀찍이 서서 물었다. 성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괜찮다마다. 오히려 기분이 좋은 상태였다.
‘훨씬 진한 심연의 호흡이다.’
성우는 학교 체육관에서 처음 경험했던 그 맛을 느꼈다. 물론 지금은 이미 1차 각성을 한 상태이기에, 그때와 같은 엄청난 능력치 상승은 기대할 수 없었다. 약을 복용할 때 어린아이와 성인의 권장치가 다른 것과 같은 이치였다.
[아이템 정보]
- 이름 : 정제된 심연의 호흡(단지)
- 등급 : 불명
- 분류 : 플레이어 제조
- 효과 : 뚜껑을 열어두면 ‘심연의 호흡’을 방출한다. (34% 남음)
- 설명 : 재수 없는 놈 사물함에 넣고 열어둬. (제작자 기술)
재수 없는 놈도 나름이다. 놈들은 잘못된 사물함 문을 연 것이었다.
‘무한정 사용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꽤나 유용하겠군.’
이전에 얻었던 ‘심연의 농축액’이라는 아이템을 요긴하게 사용했었는데, 다 쓴 게 아쉬웠던 참이었다. 성우는 손을 뻗어 뚜껑을 닫았다.
- ‘심연의 호흡’ 방출이 중단됩니다. (34% 남음)
주변부의 연기가 서서히 사그라졌다.
“성공이군요!”
“이건 제가 가지겠습니다.”
성우가 단지를 들고 다가오자 민흠이 뒤로 물러섰다.
“그러십쇼. 그런 걸 누가 탐내겠습니까? 변태 싸이코나······ 아니, 감사합니다.”
“그나저나 제가 부탁드린 건 확인해주셨습니까?”
성우는 민흠에게 레이드 보스에 관한 내용을 조사해달라고 했었다.
“아, 이 문제 때문에 정신이 없어서요. 처리해주셨으니 곧 확인해보겠습니다.”
성우는 고개를 끄덕이고 역 밖으로 나갔다. 입구 쪽에는 지수와 한호가 서 있었다. 크루세이더 팀이 역 내부 점검에 투입되면서 해방된 모양이었다.
“이제는 막 저희를 두고 다니시네요? 선배가 없으니까 아저씨들이 막 친한 척 하면서 꼬이잖아요. 지수 누님이 얼마나 고생하신 줄 아세요?”
“따라오지 말라 한 적 없어. 근데 따라오려면 해독제를 링거로 꽂고 와야 될 텐데?”
“말이라도 해달라는 거죠. 그러다가 선배가 갑자기 죽으면 우리는 어떡하라고요? 바로 낙동강 오리알 되는 겁니다. 지수 누님도 선배 통구이 됐을 때 얼마나 슬퍼하신지 알아요? 닭똥 같은······.”
그 말에 지수가 한호를 노려봤다. 그녀의 눈에서 살기가 느껴지자 한호의 입이 절로 얼어붙었다.
“······한호 씨, 제발 헛소리 좀 하지 마세요.”
“하하, 제가 좀 입이······. 어, 누님?”
지수가 홱 돌아섰다. 진짜로 짜증난 표정이었다.
“뭐야? 왜 그래?”
“아, 그게······ 근데 이거 말하면 살해당하는 거 아닌가? 방금 너무 살벌했는데.”
“뭔데?”
한호는 제 머리를 벅벅 긁더니 입을 열었다.
“아, 선배가 브레스 맞고 죽었을 때요. 그때 지수 누님이 좀 충격이 컸는지 눈물을 글썽거렸거든요. 그거 가지고 몇 번 농담 했는데 좀 과했나 봅니다.”
“지수 씨가?”
성우가 아는 지수는 그런 캐릭터가 아니었다. 시종일관 꿋꿋한 여자가 아니던가.
“네가 운 게 아니고?”
“제가요? 선배 죽었을 때요? 하, 어림도 없죠. 전 오른이 죽었을 때 울었어요. 그러니까 제발 오른이 좀 잘 챙겨줘요. 선배가 가시더라도 유품으로 남겨주시고요.”
성우가 진지하게 생각해보기에, 자신과 오른이가 위험에 처했을 때, 한호라면 오른이를 구하지 않을까 싶었다.
***
정훈은 빈 카페에 홀로 앉아 있었다. 그의 옆 테이블에는 두꺼운 금속 갑옷과 대검에 놓여 있었다. 정말 오랜만에 무장 해제한 것 같았다.
탁. 탁. 탁. 탁.
그는 생각에 잠긴 채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두드려댔다. 그의 머릿속에서 성우의 목소리가 재생 됐다.
“······저를 고용하시는 건 고용하시는 거고, 정훈 씨는 저에게 빚이 있습니다. 100만 골드로 그냥 넘어가려고 하지 마세요. 저는 정훈 씨에게 크게 실망했습니다.”
성우는 그 말을 남기고 일어났다. 앞으로의 관계에 있어서 이점을 차지할 목적으로 정훈에게 큰 압력을 행사한 것이다.
그리고 그건 성공했다. 정훈은 큰 압박을 느끼고 있었다.
‘그 문제를 공론화하고 물고 늘어지면 내 이미지는 급속도로 추락할 거다. 무력에서는 당연하고 이미지에서도 유성우 그 사람을 이길 수 없게 된다.’
한 마디로 정치 싸움에서조차 불리한 상황에 몰렸다. 정훈은 고개를 천천히 들어 올려 허공을 바라보았다.
[전용 퀘스트]
- 제목 : 영웅이여 성전을 준비하라
- 유형 : 육성
- 목표 : 10레벨 이상 ‘크루세이더’ 30명 양성
- 보상 : 1차 각성, 전용 스킬
당신은 이 땅에 도래할 지옥을 그 누구보다 먼저 목격했다. 그 싸움은 그 누구도 아닌, 비범한 힘을 가진 영웅의 것이 되어야 한다.
혼란 속에서 일어난 영웅이여, 우매한 이들을 교화하고 지옥으로 걸어 들어갈 군대를 만들어라!
* 이 땅에 ‘세계수’가 자라나기 전에 완수해야 합니다.
* 당신의 선택이 당신의 ‘운명’에 영향을 미칩니다.
정훈에게도 ‘전용 퀘스트’가 부여되었다. 그리고 이건, 정훈이 조사하기로는 4성 이상의 직업군에게만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즉 전용 퀘스트란, 4성과 5성 카드를 선택한 이들에게만 주어지는 시련이자 특혜다.
‘그렇기에 빠르게 완수해야 된다. 그게 다른 5성과 경쟁해서 앞설 수 있는 방법이다. 하지만 30명······. 이번 레이드 때 6명이 죽어서 14명밖에 남지 않았다. 하물며 10레벨 이상이라니?’
1차 각성이 달린 만큼 너무나 어려운 퀘스트였다. 하지만 이와 비슷한 걸, 성우는 해낸 게 분명했다.
‘어떻게든 해야 된다. 할 수 있다.’
정훈은 결심한 듯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백색의 풀 플레이트 아머를 착용하고 대검을 등에 맸다.
잠시 후, 보고를 위해 민흠이 카페로 올라왔다.
“부관님, 내일부터 다시 사냥에 나설 겁니다. 레이드 작전을 시작하기 전처럼, 레벨 업을 위한 사냥입니다.”
그 말에 민흠을 흠칫 놀랐다.
“······예? 하지만 커맨더, 역을 복구하는데 꽤나 많은 시간이 걸릴 겁니다. 그 기간 동안 사냥에 나서는 건 좀······.”
“우리가 역을 복구하는 동안에 누군가는 우리를 앞질러 나갑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또 다시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정훈의 랭킹은 한 단계 더 밀려서 4위까지 떨어진 상태였다.
그리고 그보다 지금까지 쌓아온 압도적인 명성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다시 회복해나가기 위해서 가장 시급한 건 랭킹 회복, 즉 레벨 업이었다.
“물론 역을 방치하자는 건 아닙니다. 힘들더라도 동시에 두 가지 모두를 병행해야 됩니다. 저부터 복구와 사냥, 어떤 것도 게을리 하지 않을 겁니다.”
민흠은 정훈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다시 일어서서 뛰어보기로 다짐한 것이다. 그리고 그가 앉아 있는 곳은 그래야만 하는 자리였다.
“우리는 다시는 당하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무시 받지도 않을 겁니다.”
정훈의 눈에 이채가 돌았다.
***
이 순간 가장 바쁜 건 민흠이었다. 크루세이더 팀은 실무자로써 복구를 지휘했으며, 정훈을 보필하는 동시에 성우의 심부름까지 해야 했으니 말이다.
“저, 성우 씨 말씀하신 대로 커뮤니티에서 정보를 찾았습니다. 부천시 소사동과 안양시 범계역 근처에 대한 정보를 찾아봤는데 소사동에······.”
“오우거 투사가 소사동에서 목격 됐다고요?”
성우가 선수 쳐 말하자 민흠이 눈을 껌뻑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메인스트림 챕터2가 시작된 첫 날 목격된 이후부터는 언급이 전혀 없습니다. 아마 놈들이 그 뒤로 무슨 짓을 꾸미고 있나 봅니다. 아, 그리고 범계역은······.”
“검은 연기로 뒤덮였고 좀비로 가득하다고요?”
“예······ 맞습니다. 근데 어떻게 이미 다 아십니까?”
“부관님이 애널리스트 출신이시라기에 정보 찾는 능력이 빠를 줄 알았는데, 제 후배가 조금 더 빠르더라고요.”
성우의 뒤, 핸드폰에 얼굴을 파묻고 있던 한호가 고개를 들었다. 이쪽에는 커뮤니티 중독자가 있었다.
“아······.”
헛수고를 한 민흠은 멍한 표정이 되었다.
“선배, 태성이한테 연락 왔는데, 다행히 마을은 이상 없다고 해요. 그래도 안전 구역 상시 유지하고 밖으로 절대 나오지 말라 당부했어요.”
한호는 그 사이에도 커뮤니티를 통해 수원의 마을과 연락했다. 진화 학회가 그곳을 노릴 수도 있으니 안전 구역을 활성화하고 그 안에만 있으라고 전달했다.
‘그리고 나는 범계역으로 가야 된다.’
커뮤니티 정보를 통해서 ‘오우거 투사’가 부천시 소사동에서 온 것이라는 걸 알게 됐다. 그렇다면 남은 한 곳, 범계역에 마지막 레이드 보스가 존재할 것이었다.
‘범계역 안에 뭔가 있다.’
커뮤니티에서 범계역을 다루는 게시물에 따르면, 범계역 근처는 접근 하지 말라는 당부의 내용이 올라와 있었다. 맹독 가스가 유출되고 있고, 좀비들이 들끓는 곳이라는 게 그 이유였다.
여기서 맹독 가스는 ‘심연의 호흡’이 유력했다. 즉, 범계역에 진화 학회의 또 다른 연구소가 있을 확률이 높았다.
“저기요 부관님, 헬리콥터 좀 빌립시다.”
밤이 오고 있었지만, 성우는 곧장 범계역으로 갈 생각이었다. 빠르게 움직여야지만 신도림 때처럼, 놈들의 허를 찌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
“예? 저만 수원으로 돌아가라고요? 와! 지금 저 쓸모없다는 거죠?”
한호가 서운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 뭐, 그런 건 아니야. 너 커뮤니티 잘 하잖아. 쓸모 있어.”
“와! 이제는 칼 잘 던진다고도 안 하네. 커뮤니티? 하, 진짜······. 이거, 이거 제가 오른이가 더 좋다고 했다고 뒤끝 부리는 거죠? 그렇죠? 아니다. 저번에 영등포 검사가 더 잘생겼다고 했을 때부터 쌓여 있던 거다.”
“······.”
“부정도 안 하네요?”
성우는 크루세이더 팀의 헬리콥터를 빌렸는데, 성우와 지수는 예정된 대로 범계역으로, 한호는 그걸 타고 수원까지 가기로 했다.
그런 결정을 한 이유는 ‘안전 구역’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골드가 필요한데, 외부 출입 제한이 길어질 경우 마을에는 그 만한 양의 골드가 부족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토벌대를 운영하여 골드를 수급하는 건 너무 위험한 일이었다. 진화 학회 놈들이 토벌대를 사로잡게 될 경우 무슨 일을 꾸밀지 몰랐으니 말이다.
“지금 같은 위기 상황에는, 마을에도 너처럼 레벨이 높은 플레이어가 한명 쯤 필요해. 가서 아버지께 골드 좀 전해드리고.”
“······됐거든요.”
한호는 단단히 삐진 듯 했지만 성우의 의견을 반대하지는 않았다. 자신의 부모님이 있는 마을을 방치하고 싶지는 않은 것이었다.
두두두두!
곧 헬기에 시동이 걸렸다. 영등포역의 경비대가 상자 몇 개를 기내에 싣고 있었다.
성우는 100만 골드에 플러스알파로 생필품과 식량 등을 요구했는데, 마을의 장기적인 농성에 필요한 물건들이었다.
“준비 완료 됐습니다! 탑승하시죠!”
이내 일행을 태운 헬기가 이륙했고, 정훈이 역 앞에 서서 헬기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고용한 성우가 타 지역으로 가는 걸 반대했지만, 그곳에 진화 학회의 또 다른 연구소가 있을 수도 있다는 말을 듣고는 성우의 행보를 납득했다.
그가 생각하기에도 성우는 방패이기 전에 강력한 창이었으니 말이다.
우우웅!
헬기는 최대한 높은 고도로 올라가 이동했다. 한반도의 상공을 지배하는 와이번 무리를 피하기 위함이었다.
와이번들은 적지 않은 시간을 건물 옥상에 내려앉아 쉰다. 그럴 때는 눈에 잘 띄지 않기에 상당히 위험했다. 그렇기에 최대한 지상에서 멀어지는 것, 그게 와이번의 급습을 피할 수 있는 길이었다.
곧 안양 상공에 도달했다.
“5분 후 도착합니다!”
헬기는 주변의 안전을 꼼꼼하게 확인 한 뒤, 한 빌딩의 옥상 위에 접근했고, 성우와 지수는 공중에서 뛰어내려 착지했다.
“오른이를 잘 부탁해요!”
한호의 목소리와 함께 헬기가 멀어져갔다.
우우웅―
성우는 옥상의 난간을 잡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저쪽이에요. 범계역.”
지수가 먼저 방향을 잡았다. 복잡한 도심 속에서 와본 적도 없다는 범계역의 방향을 순식간에 집어냈다.
“엄청 빨리 찾았네요.”
“아까 공중에서 주변 건물 모양 보고 짚어냈어요.”
같은 하늘에서 내려왔지만 성우는 건물 모양 구분은커녕 방향 분간조차 쉽지 않았다.
이렇듯 그녀의 남다른 감각은 날이 갈수록 극대화 되고 있었다. 그렇기에 같은 걸 보고, 같은 걸 들어도 그 사이에서 핵심을 캐치해낼 수 있다.
한호와 지수, 둘 중에서 그녀를 데려온 건 이런 점을 크게 샀기 때문이었다.
“갑시다.”
성우와 지수는 빌딩의 계단을 내려갔다. 그리고 대로를 가로질러 범계역 근처 상가 단지에 접어들었다.
그때였다.
“성우 씨, 잠깐만요.”
지수가 멈칫했다.
“왼쪽 건물 너머로 무언가 다가오고 있어요.”
둘은 곧장 골목 사이로 몸을 숨겼다. 그러자 이내 인기척이 다가왔다.
“빨리! 더 빨리 뛰어!”
“젠장, 이번엔 진짜 큰 일 났어! 이, 이건 못 막아!”
다섯 명의 남자가 골목을 스쳐지나갔다. 그들은 헐레벌떡 달려 나가며 등 뒤를 경계했다. 무언가에 쫓기고 있는 것이었다.
“버, 벌써 왔다!”
그리고 이내, 추격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끄에! 끄에에!
그건 좀비였다. 수십 마리의 좀비가 남자들의 뒤를 미친 듯이 따라붙고 있었다. 남자들은 당장이라도 휩쓸려버릴 것만 같았다.
“쏴! 빨리 쏴! 이 이상 가면 피난처도 위험해!”
화르르!
지팡이를 든 이가 불꽃을 날렸다. 그리고 그 뒤로 활과 석궁이 차례차례 발사되었다.
펑! 픽! 픽!
하지만 고작 두 마리를 쓰러뜨리는데 그쳤다. 이어서 화살을 든 남자가 스킬을 이용해 마법 화살 두 방을 연달아 날렸지만, 한 마리를 더 처리했을 뿐이었다.
압도적인 공세 앞에서 그들의 화력은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그리고 그들의 등 뒤, 치과 간판이 붙어 있는 상가 건물 안도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창문 너머로 사람들이 오고가며 화살을 든 이들이 머리를 내밀었다.
“빠, 빨리 와요!”
상가의 문이 열리고 방패를 든 남자 둘이 더 나왔다. 생존자들의 피난처가 바로 저곳인 모양이었다.
“안 돼! 이건 못 막아!”
“우리가 따돌려야 돼! 너희는 조용히 숨어 있어!”
좀비들은 골목 어귀에서 끝없이 쏟아지고 있었고 그 숫자가 벌써 오십여 마리에 이르렀다. 개중에서는 ‘좀비 개’도 섞여 있었다.
끄에! 끄에에에!
이 숫자가 저렇게 허술한 피난처에 들이닥치면 막아낼 방도가 없는 것이었다.
“좌우로 흩어지자! 놈들을 분산시켜서 피난처 밖으로 빼내야 돼!”
다섯 명의 남자는 결국, 스스로를 희생하기로 마음먹었다. 피난처에 있는 가족들을 생각해서라도, 기꺼이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그렇게 마음먹고 고개를 돌리려는 찰나······.
촤악! 촤악!
좀비 5마리의 머리가 공중으로 튀어 올랐다. 골목에서 빨간 트레이닝복을 입은 여자가 튀어나오더니, 단 두 번 칼을 휘둘렀을 뿐이었다.
그녀는 미친 듯이 달려드는 좀비 떼를 어린애 가지고 놀 듯 피해내며 그 사이를 헤집고 들어갔다. 그리고 칼을 휘두를 때마다 검기가 터져 나오며 서너 마리를 한 번에 쓰러뜨렸다.
이어지는 장면은 훨씬 충격적이었다.
쿵― 쿵―
골목에서, 무려 7미터가 넘는, 뼈로 만든 거인이 걸어 나왔다.
“지수 씨, 옆으로 빠지세요.”
빨간 트레이닝복을 입은 여자가 땅을 박차고 도약하며 오른쪽 골목으로 들어갔다. 그 순간, 뼈로 만든 거인의 팔목이 푸른 섬광으로 번뜩거렸다.
파지지직!
이어서 거인이 주먹을 휘두르자, 그 반경에 있는 좀비들이 통째로 증발해버렸다.
“저, 저거······ 설마?”
“그치? 내가 생각하는 거 맞지?”
희생을 다짐했던 찰나, 믿기지 않은 장면을 목격한 남자들을 입을 쩍 벌린 채 멈춰 섰다.
“맞아. 나도 봤어. 저 사람, 방송에서 봤어.”
마지막으로 암녹색 로브를 입은 남자가 골목에서 나왔다.
“네크로맨서다······.”
한반도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이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