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네크로맨서-56화 (56/244)

# 56

+ ’드레이크 스켈레톤’ 명칭을 ‘본 드레이크(Bone Drake)’로 수정했습니다.

20) 영등포역 테러 – 2

정훈은 여전히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자신이 일궈놓은 한반도 제일의 안전 구역이 죽음의 가스에 뒤덮여 있음에도, 그는 몸을 움직이는 것 자체도 힘들었다.

질 좋은 체력 회복 물약을 마셨지만 빠르게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 걸 보면, 정말로 죽음 직전에 달했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성우는 달랐다.

‘성우 씨는 심지어 죽었다가 되살아났다.’

그리고 그 이후에도 영등포역의 검은 연기 속으로 뛰어 들어갔으며, 얼마 지나지 않아 좀비들이 생존자들을 구출해 나오기 시작했다.

그건 분명, 그 누구도 아닌 정훈과 크루세이더 팀이 했어야 하는 일이었다.

“······나, 나온다! 사람들이 나온다!”

“네크로맨서가 사람들을 구하고 있다! 자, 모두 구출된 사람들을 챙겨!”

사람들은 감격하며 네크로맨서의 이름을 입에 올리고 있었다. 그러나 정훈, 자신은 담요를 뒤집어쓴 채 퀭한 눈을 간신히 뜨고 있을 뿐이었다.

‘내 방식이 틀렸다.’

정훈 자신의 역할이 실패했음을 인정했다.

‘나 혼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서 세력을 키우고 싶었던 게 아니었어. 오히려······ 내가 아니면 아무도 못한다고 생각하고 있던 거야. 오만했다.’

잠시 뒤, 성우가 창문을 깨고 튀어나왔다. 그리고 벽을 부수고 레이드 보스, 오우거까지 튀어나왔다.

“······어?”

그 장면에서는 정훈마저도 주춤주춤 일어서고 말았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본 드레이크’가 나타나 오우거를 단숨에 내다 꽂는 순간, 정훈은 이 사태가 곧 진정될 걸 예감했다.

‘강해져야 한다.’

정훈은 흑색의 낫을 든 네크로맨서를 바라보았다.

‘······저 사람보다 더.’

그는 불어 튼 입술을 깨물었다.

‘다른 사람이 필요 없을 정도로. 크루세이더 팀조차.’

쿠구구―

내던져진 오우거 투사가 1층 외벽을 뚫고 들어가 버렸다. 성우는 모든 스켈레톤을 대기 시켜서 놈의 반격을 기다렸다. 섣불리 따라 들어가는 건 위험했다.

기기긱―

이내 놈의 두꺼운 손이 부서진 외벽을 잡더니, 겉으로 드러난 철골을 우그러뜨리며 구멍 밖으로 기어 나왔다.

쉬익― 쉬익―

언뜻 봐도 온몸이 돌처럼 단단한 거인이 숨을 몰아쉬며 본 드레이크를 노려보았다.

놈은 분노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어떻게 가능한 건진 몰랐지만, 저 놈 역시 난데없이 소환 된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이내 송곳니를 드러내며······.

우어어!

달려들었다.

투사라는 수식어답게 맨손이었는데, 오른 손에 채워진 팔찌에서 전류가 흐르는 게 보였다. 놈은 땅을 박차며 본 드레이크의 머리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퍼―억! 쿵!

하지만 놈은 타이밍 좋게 휘두른 본 드레이크의 꼬리에 맞고 튕겨져 나가, 오른쪽 지하출구의 천장에 내리꽂혔다.

쿠구구!

천장 구조물이 내려앉으며 놈의 몸뚱이가 계단 위에 처박히는 순간, 그 위로 스켈레톤들이 일제히 뛰어 들어가며 창을 내리꽂았다.

푹! 푹!

두 개의 창이 놈의 가슴팍을 꿰뚫었다. 그러나 순간 빛이 번쩍하며 웨어 울프 스켈레톤 세 마리가 산산조각 나며 흩어졌다.

비교적 뒤에 있던 녀석들은 리치의 힘으로 다시 조립되기 시작했지만, 그 공격을 정통으로 맞은 놈은 완전히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소생 불가’ 수준으로 망가진 것이다.

‘보스는 보스다 이건가.’

저런 공격이라면 브레스만큼이나 위험했다. 본 드레이크가 브레스를 쓸 수 없는 게 아쉬울 따름이었다.

‘그래도 내가 유리하다.’

쿵! 쿵! 쿵! 쿵!

본 드레이크가 땅을 박차고 달려들었다. 오우거 투사는 바닥을 집고 몸을 일으켰다. 쩍 벌어진 거대한 아가리가 달려들었고, 오우거는 양손으로 드레이크의 목덜미를 움켜쥐어 밀어내었다.

기기기긱!

어느 쪽도 쉽게 무너지지 않는 힘과 힘의 대결이었다. 물론, 둘만 싸우고 있다면 그럴 테지만 본 드레이크의 등 뒤에서 무언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덜그럭! 덜그럭!

오른이와 웨어 울프 스켈레톤 세 마리였다. 녀석들이 본 드레이크의 등 뒤에 일찌감치 매달려 있었던 것이다.

우어?

녀석들은 그대로 드레이크의 머리를 타고 넘어가, 양손을 쓸 수 없는 오우거 투사의 몸뚱이에 창을 꽂아 넣기 시작했다.

푹! 푹! 푹!

심지어 오른이는 놈의 얼굴에 들러붙어 오른쪽 눈알을 향해 칼날을 들어올렸다. 아무리 ‘투사’라고 할지라도 그 살벌한 장면 앞에서는 두 눈 뜨고 버틸 수 없었다.

우어어!

오우거는 기겁하며 머리를 흔들어댔다. 그래도 오른이가 떨어지지 않자, 결국 본 드레이크를 막고 있던 한 손을 떼어 오른이를 잡으려고 했지만, 녀석은 재빠르게 머리를 넘어 등 뒤로 피해버렸다.

그렇게 한 팔이 떨어져나가자, 오우거는 본 드레이크의 밀어 붙이는 힘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

꽈득!

드레이크의 거대한 아가리가 오우거의 방어를 뚫고 들어가, 목덜미를 정확히 물고 늘어졌다.

쿠득! 쿵!

이어서 고개를 꺾으며 바닥으로 찍어 누르자 오우거의 무릎이 서서히 접혀버렸다.

으그그―

바로 그 틈을 노리고 모든 언데드들이 달려 들어갔다. 이어 지는 장면은 끔찍했다.

퍽! 퍽! 푹! 촤악!

하이에나 떼가 쓰러진 물소를 해체하듯 온갖 흉기들을 들어 올려 오우거의 몸을 찍어대기 시작했다.

어거걱······.

팽팽하던 긴장감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피가 사방으로 튀고 살점이 굴러다니는 도살장의 풍경이 펼쳐졌다.

- 레이드 보스 몬스터 ‘오우거 투사’를 사냥하여 705,000골드를 얻었습니다.

확실히 드레이크에 비하면 격이 낮은 몬스터라는 걸 ‘골드’가 증명했다. 드레이크를 잡고 얻은 골드가 115만이 넘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다른 건 몰라도······.

- 레벨 업 하셨습니다. (LV. 16)

‘경험치 하나는 짭짤하게 주는군.’

15레벨이 된 직후 레이드 보스를 두 마리 잡으니 16레벨에 도달했다. 물론 그 과정에 한 번 죽은 걸 생각하면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 레벨 업 카드를 선택하세요.

1) 능력치 (랜덤)

2) 스킬 (랜덤)

3) 아이템 (랜덤)

4) 기타 (랜덤)

5) 죽음의 응답 (확정)

‘스킬이 떴다.’

5번에 확정 스킬이 뜬 건 처음이었다. 이미 가지고 있는 스킬인 ‘죽음의 응답’이었다. 성우는 그 항목을 선택했다.

- 스킬 등급이 향상되었습니다. (기초 → 숙련)

[스킬 정보]

- 이름 : 죽음의 응답

- 등급 : 숙련

- 분류 : 액티브

- 소모 : 마나 100

심연 속, 주인 없는 좀비 15마리를 소환하여 조종합니다. 이 개체는 권속 수에 제한 받지 않으며, 20분 후에 먼지가 되어 사라집니다. (재사용 대기 : 30분)

10마리에서 15마리로, 지속 시간이 10분에서 20분으로 증가했다. 상당한 전력 강화였다. 하지만 레이드 보스를 잡고 난 뒤의 최고의 보상은 따로 있었다.

- 당신의 권능 아래 망자가 권속(眷屬)됩니다.

그건 바로, 이 거대한 괴물을 스켈레톤으로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었다.

후우우―

8미터짜리 거인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백색의 두터운 뼈 사이로 바람이 스쳐지나가며 을씨년스러운 소리를 냈다. 또한 거인의 오른팔에 있는 팔찌까지 얻을 수 있었다.

[아이템 정보]

- 이름 : 뇌신의 가호

- 등급 : 영웅

- 분류 : 팔찌

- 효과 : 모든 마나를 소비하여 강력한 ‘전격’을 생성합니다. 공격 후에는 5분 간 마나가 생성되지 않습니다.

* 마나가 없는 대상이 착용할 경우 별다른 소비 없이 1회 사용 후 24시간의 대기 시간을 갖습니다.

앞서 그 화력을 체험해본 만큼, 엄청난 데미지를 가진 스킬을 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지만, 치명적인 약점이 하나 있었다.

바로 마나였다. 무려 모든 마나를 소비한다니?

‘이런 물건이 고작 영웅 등급인 이유가 있군.’

마나는 스켈레톤 운용에 있어서 필수적이었다. 즉 성우에게는 어울리지 않은 아이템인 것이다.

하지만 그 아래 ‘마나가 없는 대상’에 대한 사용 조건이 붙어 있어서 다행이었다.

‘오우거 스켈레톤에게 그대로 착용시키면 되겠어.’

오우거 스켈레톤 역시 ‘마나가 없는 대상’이니 스킬을 쓸 수 있는 스켈레톤이 생긴 것이다.

한편, 스켈레톤으로 일어난 오우거 투사의 모습에, 갈색 코트를 입은 웨어 울프는 긴 주둥이를 쩍 벌린 채 어정쩡하게 서 있었다.

“······마, 말도 안 돼! 대체 무슨 미친 짓을 벌이는 거냐 네크로맨서!”

“친구를 데려왔다며. 왜? 나랑은 친구하면 안 되냐?”

“말장난치지 마라!”

“그래. 이제부터 장난은 없을 거야.”

픽! 픽!

“악!”

성우는 놈의 허벅지를 향해 리프팅 크로스보우를 발사했다. 놈이 비명을 내지르며 나동그라졌고 성우는 놈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자, 이제 통성명 좀 해야 될 것 같은데?”

그런데 놈이 온몸을 부르르 떨어대는 게 아닌가? 발작이었다. 성우가 뒤집어 진 놈의 몸을 발로 밀어 넘겼다.

“······큭! 크르! 컥! 우, 웃기지······마 커! 컥!”

놈은 게거품을 잔뜩 물더니 눈깔을 뒤집었다. 그러다가 온몸을 꼬며 뻣뻣하게 굳어갔다. 독이었다.

“젠장! 심문을 대비해서 수작을 부렸군요.”

민흠은 원통하다는 듯 발을 굴렀다. 생포하여 심문을 해야지만 배후를 알아낼 수 있었을 테니 말이다. 크게 한 방 맞고도 반격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성우에게는 또 다른 방법이 있었다.

- 당신의 권능 아래 망자가 권속(眷屬)됩니다.

갈색 코트의 웨어 울프 스켈레톤이 몸을 일으키며 성우 앞으로 다가왔다. 그러자 익숙한 메시지가 떠올랐다.

- 망자의 ‘기억 파편’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기억을 읽는 건 오랜만이었다. 이게 어떤 구조로 작동하는 지는 알 수 없었으나, 이 게임의 설계자들은 성우에게 파편화된 퍼즐을 의도적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이전에 ‘흡혈귀 지부장’의 기억을 읽었을 때 새로운 퀘스트가 부여되었던 것처럼, 마치 성우를 어떤 방향으로 인도하려는 듯 힌트를 내어준다.

이내, 웨어 울프의 기억이 영상처럼 재생되었다.

‘어디지? 몇 번 본 지하철 환승 게이트다.’

어두워서 분간이 어렵지만 익숙한 곳이었다.

‘신도림역.’

성우는 즉시 장소를 캐치해냈다. 신도림역이라 함은 수도권 지하철에 손꼽히는 환승 지옥이었고, 성우 역시 몇 번 오고갔던 곳이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익숙한 얼굴······이라고 해야 되나? 익숙한 황소  한 마리가 보였다. 백화점 안에서 싸운 뒤 이제는 성우의 권속이 된 ‘웨어 불’이었다.

그리고 그 뒤로 백색의 웨어 울프가 나타났다. 새카만 비늘 갑옷을 입고 지팡이를 쥐고 있었는데, 겉치레만 봤을 때도 범상치 않은 느낌이 드는 놈이었다. 그가 시점의 주인, 갈색 코트의 웨어 울프에게 다가왔다.

“핸드폰 꺼라. 곧 놈들의 영역으로 들어간다.”

그의 한 마디에 시점의 주인은 핸드폰을 끄고 주머니에 넣었다. 방송을 끝까지 못 본 안타까운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아, 이제 한참 재밌어지는데······ 크루세이더 팀이 개 털리고 있었단 말입니다. 으흐흐.”

그가 구시렁거리며 뒤를 돌아보니, 등 뒤로 이십여 마리의 수인들이 줄지어 오고 있었다. 그들은 육중한 가스통을 메고 방독면 가방을 착용한 상태였다.

“저, 미남 늑대 형님.”

“그렇게 부르지 마라 했다.”

“아무튼 형님, 제가 듣기로는 영등포를 치는 게, 꼭 플레이어들을 조지기 위해서만은 아니라고 하던데요?”

“······난 모르는 소리다.”

“에이, 형님이 모르실 리가······ 저도 들었는데?”

그 말에 백색의 웨어 울프가 우뚝 멈춰 섰다.

“대장께서 처음부터 말한 대로, 영등포를 날리는 건 언젠가 해야 될 일이었고 지금이 절호의 기회다. 헛소리 말고 입 다물어. 적진이 가깝다.”

“여의도요.”

“······.”

“그 미친 과학자들이 반드시 여의도에 연구소를 지어야겠다고 대장을 몰아붙였다면서요. 거의 협박 식으로.”

성우는 그 대목에 집중했다. 여의도라니? 여의도와 관련된 중요한 정보가 하나 떠올랐다.

바로 ‘한국 서버 배드엔딩-2’였다.

“요즘 부쩍 그 놈들하고 붙어 있더니 헛소리를 주워 들었구나?”

“나는요, 우리 조직의 수장은 대장이 아닌 것 같단 말이죠? 그 미친 과학자들하고 한 솥밥 먹게 된 이후로 웬 파시즘에 빠져가는 것 같다고 할까? 아니면 마치 라스푸틴을 들인 것 같은 기분? 뭐, 꽤 재밌지만요. 그 새끼들이랑 얘기해보면 진짜 웃기거든요.”

“이제 진짜로 입 닫아라. 계속 간다.”

백색의 웨어 울프는 그렇게 말하고는 앞서 나갔다.

“대체 왜 우리끼리만 비밀이지? 걔들은 잘 떠들고 다니던데? 형님, 진짜 재밌는 이야기는 지금 부터인데 여의도에 말이죠······.”

“그만!”

영상은 거기서 끊겼다. 성우는 다시 영등포 역 앞에 서 있었다.

‘정보는 두 개다. 놈들의 기지 중 하나가 신도림에 있다. 그리고 영등포를 친 이유가 여의도를 가지기 위함이다?’

두 번째 정보는 아직은 퍼즐 같았다. 그리고 그 퍼즐을 맞추기 위해서는 신도림으로 가야할 것이었다.

성우는 민흠을 돌아보았다.

“신도림에 뭐가 있죠?”

겨우 한 정거장 차이다. 영등포에서 그 존재를 모르고 있는 것도 이상하다.

“신도림이요? 거기에는 한 10일 전부터 생존자 그룹이 하나 있긴 합니다만, 저희와 접촉을 원하지 않는 자들입니다. 특이 케이스죠.”

광복 길드는 지근거리에 암 덩어리를 키우고 있었다.

“연기가 다 빠지고 역 안에 진입할 수 있게 되면 지하통로부터 재점검 하세요. 그쪽으로 들어온 것 같으니까.”

“예? 성우 씨는 어디로······.”

흑색 낫과 스켈레톤들이 허공으로 흩어졌다.

“저 짐승들의 꼬리를 밟으러 갑니다.”

***

신도림역은 1호선과 2호선이 교차하는 교통의 중심지였다. 그렇기에 게임이 시작된 이후, 이 장소에는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있었다.

달리 말하면 엄청난 수의 희생자가 있었고, 또 한 번 달리 말하면······.

“영등포 근처라서 돗자리 편 건데, 시체가 많아서 좋단 말이지? 실험 재료로 써도 써도 남아돌아.”

청 테이프로 안경다리를 붙인 남자가 흐뭇한 얼굴로 파란색 물탱크를 바라보았다.

옥상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물탱크였는데, 다른 점이라고 하면 그 표면에 붉은색 기호들이 잔뜩 적혀 있었다. 그리고 웨어 렛 한 마리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알몸의 여자 시체를 그 안에 던져 넣었다.

첨벙― 꾸르르―

“그런데 소장님, 냉동고가 좀 더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말씀만 하시면 제가 구해오겠습니다. 지하 터널에서 시체 썩는 냄새가 슬슬 올라와서 말입니다.”

웨어 렛의 말에 소장이라고 불린 남자가 혀를 쯧, 하고 찼다.

“익숙해져. 익숙해지면 뭐든 견딜 수 있어. 특히 후각은 쉽게 적응한단 말이야.”

“그게 저, 저 같은······ 그러니까 수인이 된 이후로 냄새를 잘 맡게 돼서······.”

소장은 그의 말을 끝까지 듣지도 않고 홱 돌아섰다. 그의 표정에는 환멸이 어려 있었다.

“쯧쯧, 하여간 짐승 새끼들이란? 제 몸에서 냄새 나는 줄은 모른다니까. 근데 너도 다시 인간이 되고 싶지?”

“물론입니다.”

“본사에서 연구 시작했다고 하니까, 너도 언제 한 번 실험 지원해봐.”

“시, 실험 지원이요?”

웨어 렛은 적잖이 당황하며 목덜미를 만지작거렸다. 그의 목에는 철로 만들어진 목줄이 채워져 있었다.

“그래. 원래 쥐새끼한테 먼저 실험해보는 거잖아?”

“······.”

소장은 자신의 농담이 흡족했는지 킬킬 웃으며 책상으로 다가갔다.

그 위에는 평범한 실험실에서도 볼 수 있는 플라스크, 스포이트 등의 물건과, 언뜻 봐도 괴상한 오크 두개골에 담긴 슬라임 액체, 전극이 꽂힌 고블린 머리 등이 놓여 있었다.

그는 녹색 슬라임 액체가 넘실거리는 오크 두개골을 천천히 들어올렸다.

“그냥 농담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잘 생각해봐. 계속 수인으로 살아서 뭐하겠니? 특히 쥐새끼들은 수인 중에서도 천대 받잖아. 그런 약이 개발 되더라도 너한테까지 떨어지는데······ 시간 좀 걸릴 걸? 쥐 수명이 얼마나 되더라?”

“아, 예!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덜컹!

그때, 문이 열리고 회색 투구를 쓴 남자가 들어왔다.

“연구소장님! 바, 밖에······ 밖에!”

“아, 씨! 깜짝이야! 손에 슬라임 쏟을 뻔 했잖아!”

“아, 죄송합니다! 지금 밖에······.”

“뭔데, 지금 18차 실험 시작하려고 하는데 방해를 해? 문 밖에 실험 중이라는 푯말 못 봤어?”

“그게 바, 밖에 말입니다!”

“빨리 말해 이 시발 새끼야! 그 말만 몇 번 째야!”

투구를 쓴 남자는 침을 꿀꺽 삼키고 입을 열었다.

“고, 공룡이 나타났습니다.”

그 말에 소장은 웨어 렛을 돌아보았다.

“······얘 뭐라니? 야, 너희 종족에 웨어 티라노도 있냐?”

“예? 그런 건 못 들어 봤습니다.”

당최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지만 비상 상황인 건 확실했다. 그리고 소장은 이 시설의 책임자로써 문제를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에이 씨, 안내 해.”

“예!”

소장은 안내를 받아 지상 역사로 향했다. 십여 명의 병력들이 무언가를 경계하며 정신없이 오고가고 있었다.

“아, 그리고 방금 들어온 소식인데, 저, 그, 영등포 작전에 실패했다는 무전이 왔습니다.”

“뭐? 미친! 뭐라고?”

“호, 혹시 그것과 연관이······.”

그때였다.

“오, 온다!”

“으아아! 피해!”

쾅! 콰드득!

천장 부근이 한 뭉텅이 뜯겨져나가며 음침한 실내를 향해 햇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그리고 그 후광을 뒤로하고, 거대한 머리통 하나가 불쑥 들어왔다.

그건, 진짜 공룡이었다.

“······어?”

“아, 시발! 뭐야! 진짜였잖아! 웨, 웨어 티라노?”

소장은 기겁하며 곧바로 돌아서서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진짜였어. 뭐지? 설마 여의도의 드레이크? 괘, 괜히 나왔네······ 야 빨리 막아! 너는 내 짐 좀 싸!”

그런데 웨어 렛은 계단 끄트머리에 선 채,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천장이 뜯겨져 나가며 들어온 햇빛, 그리고 그 빛에 의해 생긴 그림자 라인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정확히는······ 그림자 속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응? 뭐해 이 새끼야!”

소장의 닦달에 웨어 렛은 당황한 듯 눈을 껌뻑였다.

“아, 그게 방금 낯선 냄새가 확 느껴져서······.”

“너 아까부터 냄새 잘 맡는다고 은근히 자랑하는 거냐? 빨리 안 와! 여기 지키는 애들 없어서 뚫리면 못 막아!”

웨어 렛은 어쩔 수 없이 몸을 돌려 계단을 내려갔다. 하지만 어딘가 찝찝한 느낌은 지울 수 없었다.

그들은 다시 실험실로 돌아가 옅은 불빛의 전등을 켜고, 중요한 물건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어두침침한 공간에서 둘의 분주한 소리만 울렸다.

“어?”

그때, 웨어 렛은 또 다시 낯선 기분을 느꼈다. 그는 인상을 찌푸리며 코를 벌렁거렸다.

킁― 킁킁―

그의 코가 멈추고, 그는 허리춤에서 단검을 뽑아들며 입구 쪽 그림자를 겨누었다.

“소장님! 피하십쇼!”

“······뭐?”

웨어 렛이 노려보고 있는 건, 옅은 전등에 의해 드리워진 그림자 속이었다.

그리고 정말로, 그 그림자 속에서 누군가 걸어 나왔다. 암녹색 로브를 뒤집어쓰고, 뼈 갑옷으로 무장한 남자였다. 그는 왼손으로 석궁 하나를 들어올렸다.

“너 뭐야! 어, 언제 들어온 거야! 밖에 관계자 외 출입금지라는 푯말······.”

“잘못 배송된 게 있어서 환불하러 왔다.”

그 말에 소장은 안경을 들어 올리며 남자의 몸을 쓱 훑었다.

“환불? 뭘 환불해?”

“기가 막히는 물건이더군.”

그 순간, 실험실 밖 복도에서 비명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어느새 지하까지 돌파된 것이다.

쿵! 쿵! 쿵!

그리고 엄청난 굉음이 들리며 천장이 부르르 떨렸다. 두 개 밖에 없는 전등이 정신 사납게 껌뻑였다.

다음 순간······.

쿵! 쿠―궁! 후드득!

소장의 등 뒤, 천장이 와르르 무너져 내리며, 거대한 무언가 떨어졌다.

그건, 뼈 밖에 남지 않은 거인, 오우거 스켈레톤이었다.

“저, 저건······.”

“이제야 알겠어? 물건을 잘못된 주소로 보냈다는 걸.”

돌아올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게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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