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네크로맨서-54화 (54/244)

# 54

19) 네크로맨서, 1차 각성 – 3

어둠 속에서 어렴풋이 보이는 흑색 낫, 그것을 저도 모르게 움켜쥐는 순간······.

“······으으으!”

성우는 온몸의 감각이 되살아나는 걸 느꼈다. 불길에 녹아내린 살점과 눌어붙은 내장까지, 그 모든 고통들이 순식간에 밀고 들어와 중추신경계를 으스러뜨릴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이내 서서히 고통이 멎기 시작했다. 아니, 무감각해졌다고 해야 될 것 같았다.

눈을 떴을 때, 그는 허공에 떠올라 있었다.

- 전용 퀘스트 <죽음의 주인은 누구인가?>를 ‘목표 획득’으로 공략하셨습니다.

* 보상이 주어집니다. (1차 각성, 전용 스킬)

* 당신의 운명이 미세하게 변합니다.

사신의 낫 ‘그림리퍼’가 있는 곳은 정말로 ‘죽음 속’이었다. 숨이 끊어지는 순간, 퀘스트 조건이 만족된 것이다.

- 네크로맨서 직업 특성으로 ‘부활’하셨습니다. (대기시간 31일)

그리고 사신의 낫을 얻음으로써 어떤 경지에 도달했다.

- ‘1차 각성’ 상태에 도달했습니다.

* 마스터피스 ‘그림리퍼’를 소환할 수 있습니다.

* 대형 몬스터를 권속으로 일으킬 수 있습니다.

- 역대 9번째 ‘1차 각성’ 위업 달성으로 ‘비밀 상점 쿠폰’이 지급됩니다. (50인 한정)

[스킬 정보]

- 이름 : 그림리퍼 소환

- 등급 : 1차 각성

- 분류 : 액티브

- 소모 : 0

하루에 단 1시간 동안 사신의 낫 ‘그림리퍼’를 소환할 수 있으며 일시적으로 ‘리치’ 상태가 됩니다.

+ 사자의 권역 : 리치의 힘을 얻는 동안 최대 권속 수가 (+50)만큼 증가하며 모든 능력치가 (+10)만큼 상승합니다.

또한 인근의 파괴된 언데드를 ‘최대 권속 수만큼 무한정’ 부활‧재생시킬 수 있습니다.

“후우······.”

숨을 들이켰다. 공기가 어디로 들어오는지 알 수 없었다. 지금은 확실히 인간의 몸이 아니었다.

얼굴 절반에 뼈가 그대로 드러나 있었고, 어깨를 비롯한 양 팔은 살점이 하나도 없었다. 이렇듯 온몸이 너덜너덜하고 듬성듬성한 언데드, 리치 상태였다.

‘기분이 나쁘지 않군.’

성우는 뻣뻣한 목뼈를 움직여 주변을 둘러보았다. 드레이크가 경계심 가득한 몸짓으로 지근거리에서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놈이 느끼기에도 되살아난 성우가 어딘가 달라진 것이었다.

그리고 여의도 공원 쪽, 동맹군들이 몰려나와 성우를 바라보고 있었다. 걱정 가득한 얼굴의 지수와 한호, 여전히 작동 중인 카메라, 그리고 그들의 뒤로······.

덜그럭! 덜그럭!

기다렸다는 듯, 엄청난 수의 하얀 악마들이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마치 숲이라는 둑이 터져서, 하얀색 뼈다귀를 쏟아내는 것만 같았다.

그건 파괴 되었던 16마리의 수인 스켈레톤과 50마리의 리자드맨 스켈레톤에 10마리의 좀비였다. 그리고 그 무리를 살펴보는 한호의 눈이 커졌다.

“어? 오, 오른아! 너, 사, 살아있었니?”

딱딱―

그리고 그 선두에는 가장 작은 크기의 고블린 스켈레톤 1마리, 오른이가 서 있었다.

산산조각 났던 녀석의 몸뚱이는 흠집 하나 없이 멀끔하게 복원되었으며, 온몸에서 녹색 아우라가 치솟고 있었다.

“······흐, 흐윽! 미, 믿었다고!”

하지만 감동적인 상봉은 없었다. 오른이를 비롯한 77마리의 스켈레톤들은 동맹군을 그대로 지나쳐, 여의대로를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크아아아!

드레이크는 그제야 간을 보고 있을만한 상황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놈은 포효하며 버릇처럼 턱을 쩍 벌렸다. 지긋지긋한 브레스였다.

푸―화―아아아!

성우는 공중에 떠오른 채 뒤로 빠지며, 도로에 흩어져 있는 시체에서 뼈들을 끌어 모았다. 버려진 차 사이에서 뼈들이 솟아오르며 성우의 손앞으로 모여들었다.

쩌적! 쩌적!

4개의 사각 방패가 완성되는 동시에 겹겹이 쌓이며, 브레스를 방어했다. 맹렬한 불기둥은 방패 3개를 녹여버린 뒤에 멎었고, 그 사이, 언데드 군단이 도로변에 도착했다.

덜그럭! 덜그럭!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숫자였다. 무려 77마리가 좌우로 넓게 퍼지며 도로 위로 쏟아져 들어갔다. 녀석들은 차량 사이를 쏘아가고, 차 지붕을 타고 오르며, 단 한 마리의 적을 향해 돌진했다.

크르르······

드레이크는 그 기세에 눌린 듯, 뒷걸음질 치면서 다시 한 번 불꽃을 머금었다.

푸―화―아!

하지만 방금 전과는 현저히 약해진 화력이었다. 브레스 역시 체내에서 뿜어내는 것이었기에, 무한정 난사할 수 있는 스킬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쪽은 달랐다.

이쪽은 무한’이라는 개념 안에 포함 되었다.

쿠드드―

브레스에 정통으로 맞아 녹아 문드러졌던 스켈레톤들, 그 녀석들이 다시 몸을 일으키기 시작한 것이다.

“보, 보이십니까? 네크로맨서의 어, 언데드가······ 진짜로 죽지 않습니다!”

카메라 오퍼레이터의 음성에는 공포와 경이가 동시에 어려 있었다.

그림리퍼 소환의 추가 스킬 ‘사자의 권역’ 효과에 의해서 파괴된 언데드가 무한정 부활‧재생되고 있는 것이었다. 신성 데미지가 아니라면 결코 깰 수 없는, 말 그대로 죽음의 굴레였다.

온몸에 불이 들러붙었음에도 다시 일어서서 꿋꿋이 걸어 나가는 그 지독한 모습이 방송에 그대로 담겼다.

콰과과!

드레이크는 두꺼운 꼬리를 휘두르며 주변에 꼬여 든 스켈레톤들을 단숨에 쳐냈다.

하지만 사분오열된 스켈레톤 마저 다시 일어나, 부서진 제 몸을 붙인 뒤, 또 다시 달려들었다.

심지어 어떤 녀석은 부서진 제 팔을 장창으로 변환시키고는, 그걸 쥐고 미친 듯이 뛰어왔다. 그리고 기어코 드레이크 몸에 창을 박아 넣었다.

덜그럭! 덜그럭! 우어어!

밀어내고, 부수고, 녹여버려도 그때뿐이었다.

푸―화―아!

오른쪽을 밀어버리면 왼쪽에서 몰려왔다.

퍽! 뻑! 뻑!

발로 잘근잘근 으깨더라도, 잠깐 사이에 몸을 복구하고 있었다. 드레이크는 온몸을 틀어대며 발광하듯 움직였지만, 몸에 박히는 창대의 수는 점점 늘어갔다.

푹! 푹!

집요한 언데드 떼가 조금씩, 조금씩 거리를 좁히며 조여 들어갔다.

좀비들은 거머리처럼 발목에 들러붙어서 움직임을 방해했다. 드레이크의 움직임이 느려질수록 수인 스켈레톤의 창 공격은 맹렬해졌다.

푹! 푹! 푹!

드레이크의 검은 비늘 위로 시뻘건 핏물이 송진처럼 흘러내렸다.

크르륵······

목과 등, 배와 허리, 다리와 꼬리, 모든 곳에 창대가 처박혔다. 그리고 그쯤 되자, 언데드가 놈의 몸 위에 잔뜩 올라타 있는 상태였다.

마치 사마귀를 제압하는 개미 떼처럼, 놈의 저항은 약해지고 움직임도 멎어갔다. 그럼에도 언데드들은 멈추지 않았다. 손톱으로 비늘을 뜯어내고 구멍이 난 부분을 후벼 팠다. 적이 죽을 때까지, 아니, 죽어서도 멈추지 않을 것 같았다.

그리고 마침내 놈의 육중한 몸뚱이가 서서히 기울어지더니······.

쿵―

아스팔트 위로 쓰러졌다. 체력을 다한 것이다.

크르르······

그러자 놈의 몸 위를 바글거리던 언데드들이 물러섰다. 그리고 그 사이로 녹색의 아우라를 품은 리치, 성우가 걸어 들어갔다.

스르릉―

그는 ‘주인 잃은 검’을 뽑아들었다.

딱딱―

그리고 되살아난 첫 번째 스켈레톤, 오른이에게 그 검을 넘겼다. 오른이는 외팔로 대검을 쥔 채, 쓰러진 드레이크의 머리맡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제가 할퀴어 놓은 오른쪽 눈, 붉은색의 눈알 위로 대검을 내리 꽂았다.

푸욱!

바로 그 순간, 이 장소에 있는 모든 이의 눈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 자격 증명까지 남은 시간 : 4,335일

- 여의도 지역 ‘리자드맨의 습지’ 보스 레이드에 성공하여 1,115,556 골드를 얻었습니다.

- 집단 퀘스트 ‘영웅과 스타의 공통점은 무엇인가?’가 종료되었습니다. (승리자 : kor-157)

“끄, 끝났다.”

“······허허”

“미친, 뭘 본 거지?”

지금 이 순간, 채팅창은 글씨를 읽는 게 불가능할 정도로 폭주하고 있었다.

다만, 현장에 있는 동맹군은 감히 환호할 수 없었다. 경쟁 상대였던 네크로맨서였다. 그런 자가 단순히 승리한 걸 넘어서, 대중의 이목을 단번에 사로잡은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허허······ 근데 진짜 대단했다.”

“솔직히 네크로맨서가 압도적이다. 이 정도면 랭킹 3위랑 2위의 격차가······.”

“쉿, 조용히 해. 바로 옆에 크루세이더 팀 있잖아.”

하지만 속으로는 이미 네크로맨서의 활약에 경도되어, 성우를 동경하기 시작한 이들이 다수였다.

그리고 그 압도적인 위용에 더불어, 결정타를 날릴만한 명장면이 펼쳐졌다.

- 당신의 권능 아래 망자가 권속(眷屬)됩니다.

쿠구― 쿵―

한국 서버 최대의 동맹군을 아무 것도 하지 못하게 만들었던 괴수, 드레이크가 서서히 몸을 일으키더니, 또 한 번 우뚝 선 것이다.

“어, 어어!”

“뭐야! 설마 다시 살아난 거야?”

“아니야. 저건······.”

이번에는 달랐다. 드레이크의 흑색 가죽이 마치 허물 벗겨지듯 미끄러져 내리며, 하얀 뼈로 이루어진 한 마리의 스켈레톤이 성우의 등 뒤에 고고하게 자리 잡았다.

본 드레이크(Bone Drake)였다.

마치 뉴욕 자연사박물관의 한 장면처럼, 보는 이들을 절로 고개를 들게 만드는 웅장한 모습이었다.

“저게······ 스켈레톤이라고?”

“미친, 말이 돼? 저걸 조종한다고?”

“저 사람은 얼마나 앞서 나가는 거야?”

모두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채팅창은 당연했고, 동맹군과 크루세이더 팀은 물론이거니와, 랭킹 3위의 정훈마저도 입을 벌린 채 그 장면을 목도했다.

“마, 말도 안 돼······.”

성우는 그 시선을 뒤로하고 허물처럼 벗겨진 드레이크의 가죽부터 챙겼다. 이건 상당한 고급 아이템인지, 권속으로 일으킬 때 저절로 분리된다는 메시지가 떠올랐었다.

‘장비 아이템을 만들 수 있는 재료군.’

[아이템 정보]

- 이름 : 드레이크의 가죽

- 등급 : 영웅

- 분류 : 제작 재료

- 설명 : 어린 블랙 드레이크의 비늘 가죽이다. 아직 성장을 마치지 않은 상태이기에 품질 자체는 아쉽지만, 그럼에도 어디에 견주어도 밀리지 않을 만큼 강력하다.

[아이템 정보]

- 이름 : 용족의 심장(하급)

- 등급 : 전설

- 분류 : 제작 재료

- 설명 : 용이 품는 심장은 미물들의 것과 사뭇 다르다. 귀하게 다루어져야 할 물건이다.

- ‘아마추어 용 사냥꾼’ 칭호를 획득했습니다.

* 체력 수치 상승 (+2)

* 화염 면역력 상승 (+30%)

여기까지는 드레이크의 몸에서 갈무리할 수 있는 수준의 아이템이었다. 그런데 전혀 예상하지 못한 물건을 하나 손에 넣었다.

‘······이걸 여기서 얻을 수 있다고?’

성우는 제 오른손을 내려다보았다. 손아귀에는 황금색 씨앗이 하나 놓여 있었다.

[아이템 정보]

- 이름 : 세계수(신단수)의 씨앗

- 등급 : 신화

- 분류 : 알 수 없음

- 효과 : 알 수 없음

- 설명 : 왠지 모르는 경이가 느껴진다.

이게 바로 이번 ‘집단 퀘스트’의 보상이었다. 집단 퀘스트에서 승리한 직후, 드레이크의 몸속에서 빠져나와 성우의 손에 들어온 것이다.

‘······세계수의 씨앗이라면 예언석으로 봤던 배드엔딩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

이 작은 씨앗이 여의도에서 시작되어 한반도 전체를 집어 삼키는 최악의 결말, ‘한국서버 배드엔딩-2’ 시작점이나 다름없었다.

즉, ‘타락자’라는 정체불명의 인물들이 이 물건을 노릴 수도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저, 저기 네크로맨서 님!”

그때, 누군가 성우의 뒤로 다가왔다. 성우는 씨앗을 주머니에 넣으며 돌아섰다.

“한 마디만, 한 마디만 해주시죠.”

카메라 오퍼레이터였다. 그는 긴장한 얼굴로 카메라 아이템을 들이밀었다. 성우는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했다.

“지켜주겠다는 집단을 믿지 마세요.”

“······예?”

이 사건이 벌어진 이후, 생존자들을 끌어 모으며 수호자를 표방했던 모든 이들이 무용함을 증명했다.

생존자들을 학살하려고 했던 흡혈귀 무리는 물론이거니와, 실제로 생존자를 규합하여 신체제를 건설하고자 했던 광복 길드도 마찬가지였다.

집단의 힘은 개인에게 이롭지 않았다.

“불 속에 뛰어들 힘이 없다면, 불 속에서 나올 수도 없는 겁니다.”

성우는 그렇게 읊조리고 나서, 이런 말은 왜 했나 싶었다.

“······더 이상 할 말은 없습니다.”

쿵― 쿠구구―

성우의 마지막 한 마디는 별안간 터져 나온 굉음 속에 파묻혔다.

카메라 앵글은 곧장 돌아서서 남쪽 샛강 너머를 비추었다. 정신없이 흔들리는 화면 안에 길게 뻗어 오르는 검은 연기가 담겼다.

“저, 저긴!”

“영등포역 쪽이잖아!”

쿵! 쿵! 쿠―궁! 쿠구구······.

영등포역 방향이었다. 계속 되는 폭발과 함께 더 많은 양의 검은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그와 동시에 크루세이더 팀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그들은 무전기 아이템을 이용해서 누군가와 연락을 주고받더니, 곧장 헬리콥터가 착륙해 있는 방향으로 달려갔다.

“커맨더! 누군가 역을 공격하고 있다고 합니다!”

“······대체 누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테러였다. 광복 길드의 본진, 영등포역이 누군가에게 공격당한 것이었다.

“큭, 부, 부관님······.”

“예! 젠장, 크루세이더 팀! 전원 헬리콥터에 탑승한다!”

성우는 하늘로 뻗어 오르는 연기를 유심히 살폈다. 저 검은 연기, 어딘가 묘하게 익숙했다.

‘그래. 저건 분명 심연의 숨결이다. 설마?’

죽음의 폭탄을 다루는 이들이라?

그런 거라면······.

의심이 가는 집단이 하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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