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네크로맨서-53화 (53/244)

# 53

19) 네크로맨서, 1차 각성 - 2 (여기서부터 유료 시작입니다.)

레이드 공략이 시작된 직후, 경수를 비롯한 마을의 사람들은 핸드폰을 쥐고 있었다.

그들이 바라보고 있는 건 레이드 현장을 실시간으로 송출하고 있는 개인 방송이었다. 헬리콥터에 탑재된 카메라가 여의도 전역을 비추고 있었다.

“와, 여의도가 완전히 정글이 됐네요.”

“그러게요. 몇 주 전에 갔었는데······.”

그리고 상공에서 내려다보이는 여의도의 모습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변해 있었다. 거대한 빌딩숲이 하루아침에 녹지대로 변하다니?

하물며 그 늪지대 곳곳에서 움직이고 있는 거대한 파충류, 리자드맨의 모습은 끔찍하기 그지없었다.

카메라는 전투를 준비 중인 동맹군을 비췄고, 이내 레이드가 시작되었다. 여의도 남쪽, 샛강을 건너는 5개의 다리 통해서 공습이 개시된 것이다.

천천히 움직이던 카메라는 ‘여의 2교’를 돌파하는 크루세이더 팀의 모습을 비추며 긴박해지기 시작했다.

습지 곳곳에 숨어 있던 리자드맨들이 바글바글 기어 나오는 장면은 끔찍하기 그지없었지만, 크루세이더 팀은 전혀 굴하지 않고 용맹하게 진격했다.

“근데 왜 저 사람만 보여줘?”

“처음부터 지들만 주인공 해먹을 생각이었네.”

마을 사람들은 화면에 성우 일행이 잡히지 않는 게 불만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마을의 영웅인 성우의 모습을 보고 싶었다.

그리고 그 희망사항은 곧 이루어졌다.

“오! 나온다!”

어디선가 폭발소리가 연달아 울렸고, 카메라 앵글은 본능처럼 동쪽으로 돌아갔다.

비교적 먼 거리인 ‘여의교’를 건너온 성우 일행은 벌써 여의도역 부근까지 당도해 있었다.

쾅! 쾅! 쾅!

엄청난 폭음과 함께 늪지의 가장자리가 뭉텅뭉텅 날아가는 게 화면에 잡혔다. 무성한 갈대밭을 마주한 성우 일행이 시체 폭발을 이용하여, 대자연을 통째로 밀어버리며 나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 맙소사······.

침묵을 지켜오던 카메라 오퍼레이터조차 그 화면 바라보며 나직이 읊조렸다.

몬스터에게 유리한 환경을 통째로 바꿔버리는 폭발이라니? 채팅창에서 온갖 환호가 쏟아져 나오기에 충분했다.

“역시, 성우 씨가 훨씬 빠르네요!”

“우리 아들, 한호 놈은 또 뒤에서 다트 놀이만 해대지?”

“아뇨, 한호 씨도 엄청난데요?”

“어, 그래? 어떤 데?”

“보세요. 한호 씨 주변 보호막이 꺼지질 않아요. 날리는 칼도 족족 다 맞추네요.”

클로즈업 된 화면에는 압도적인 활약을 펼치고 있는 일행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겼다. 그리고 그 뒤에 서서 뭘 해야 될지 모르겠다는 듯, 어벙한 표정을 짓고 있는 명수의 궁수 부대까지 말이다.

하지만 일행의 활약은 오래 비춰지지 않았다. 이내 카메라 뒤에서 무어라 주고받는 말소리가 들리더니, 헬기가 급하게 선회해버린 것이다.

“아, 뭐야! 한참 중요할 때인데!”

하지만 그러한 경수의 불만과 채팅창의 성토는 오래가 지 않았다. 레이드 보스 등장의 강렬한 이펙트와 헬리콥터에 탑승하는 크루세이더 팀의 절도 있는 모습에 온 신경을 빼앗겼으니 말이다.

네크로맨서를 보여 달라고 징징거리기에는 화면 속에서 비춰지는 상황이 너무나 급박하고 중요했다.

두두두두!

- 안녕하십니까! 저는 크루세이더 팀의 부관 성민흠이라고 합니다. 저희는 작전을 변경해, 곧장 보스 몬스터, 그 놈의 머리 위로 강하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내레이터까지 등장하자 집중력은 더욱 강화되었다.

- 동시다발적인 공습을 감행하여 대다수의 적 병력이 남부로 빠져 있는 상태입니다. 저희는 이러한 절호의 기회를 저버릴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헬리콥터는 아마존처럼 변해버린 여의도 공원을 비췄다. 그리고 마침내 ‘리자드맨 전사장’이 등장했고······.

쾅!

투창에 맞은 헬기가 곤두박질쳤다.

- 으아아! 추, 추락합니다!

심장이 내려앉을 만한 장면이었지만, 정훈의 스킬에 의해 한 사람의 인명피해도 발생하지 않는 기적이 일어났다. 그 장면은 지켜보는 이의 가슴을 뜨거워지게 하기에 충분했다.

“와······ 진짜, 저 사람도 장난 아닌데.”

“저 순간에 한 명도 안 죽네. 솔직히 멋있긴 하다.”

“대박이다.”

채팅창 역시 영등포 검사를 연호하는 내용을 가득했다. 경수와 마을 사람들 역시 저도 모르게 영등포 검사를 응원하게 되었다.

크루세이더 팀은 정글 속에서 대열을 정비하고 몰려오는 적에 맞서고 마침내 보스 몬스터를 마주했다. 그리고······.

“미친!”

“안 돼······.”

그런데 크루세이더 팀은 리자드맨 전사장의 압도적인 힘 앞에서 속절없이 휩쓸려나가기 시작했다.

그런 상황을 구제한 것마저 정훈이었다.

- 투―웅!

그는 황금색 빛줄기로 전사장을 밀어내며 등장하더니, 정면대결에서 밀리기는커녕 대검을 휘두르며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그 장면 하나 하나가 손에 식은땀을 쥐게 만들었다.

- 쩡! 쩡!

“좋아! 밀어 붙여요!”

“어, 어어! 된다! 이기는 거 아니야?”

하지만 그 기대감조차 오래 가지 못했다.

“아······.”

정훈의 몸이 브레스, 거대한 불길 속에 잠식되었다. 다음 순간, 드레이크의 꼬리에 맞고 날아가 그대로 혼절해버린 것이다.

잠시 동안 모두가 침묵했다.

- 끄, 끝났습니다. 레이드는 이렇게 실패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정말······.

하물며 부관인 내레이터조차 절망의 이야기하던 그 순간······.

“성우 씨다! 나왔다!”

“왔다! 왔어! 올 줄 알았어!”

“미친! 저 괴물을 가지고 놀잖아?”

그가 나타났다.

***

“네, 네크로맨서?”

민흠은 흠칫 놀라면서도 저도 모르게 안도했다. 정훈이 지는 순간 모든 게 끝난 줄 알았다. 하지만 잊고 있던 희망이 하나 있었다.

그건, 그토록 견제했던 또 다른 영웅, 랭킹 2위의 네크로맨서였다.

덜그럭! 덜그럭!

그리고 그는 엄청난 기세로 ‘방랑자 드레이크’를 몰아 붙였다. 놈이 정신을 차리고 제대로 반격할 틈조차 내주지 않고, 내리 큼직한 공격을 명중시킨 것이다.

‘어쩌면······.’

민흠은 내심 그렇게 되기를 바랐다. 네크로맨서가 드레이크를 잡고 이 싸움을 끝내서 모두를 살려주길 바랐다.

‘······이긴다. 네크로맨서가.’

그리고 그건 가능해보였다.

크아아아아!

제압당한 드레이크가 포효하며 몸을 뒤흔들었다. 하지만 덩치 큰 수인 스켈레톤들이 뿔과 사지를 휘어잡고 찍어 누르고 있으니, 안간힘을 써도 벗어날 수가 없었다.

놈의 발톱이 바닥을 밀어내며 흙을 사방으로 헤집었다. 그럴 때마다 스켈레톤들의 몸이 들썩거렸지만 끝내 버텨냈다. 힘과 관련된 다양한 시너지 덕분이었다.

쩌적! 쩌적!

그때, 스켈레톤들이 둘러맨 배낭에서 뼈 무더기가 솟아나왔다. 그것들은 하나의 형태로 합쳐지더니, 날카로운 장창이 형성 되었다.

드레이크의 목덜미를 꿰뚫었던 그 무기였다. 저걸 수차례 박아 넣는다면······ 분명, 제 아무리 드레이크라도 버틸 수 없을 것이었다.

‘설마 저렇게 허무하게 끝난다고?’

그때였다.

“부, 부관님! 샛강 쪽에서 엄청난 수의 리자드맨들이 몰려옵니다!”

크루세이더 대원 한 명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뭐?”

“처리하지 않고 지나쳐온 놈들의 본대입니다!”

보스의 포효를 듣고 남은 리자드맨들이 몰려오기 시작한 것이다. 민흠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지, 지켜라! 모두 움직여!”

“뭘 지킵니까? 아, 커맨더를······.”

“아니! 네크로맨서를 지켜!”

이번 레이드의 보스 공략 조건은 1대1 대결이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그건 플레이어에게 주어진 선택 조건일 뿐이었다. 몬스터들까지 그 약속을 따른다는 법칙은······.

“좆같은 새끼들! 통수잖아 이건! 애초에 퀘스트를 주질 말던가!”

그런 법칙은 어디에도 없었다.

케에! 케에에!

이내 사방의 풀숲에서 리자드맨들이 튀어나왔다. 크루세이더 팀과 동맹군은 무너진 대열을 제대로 정비하지 못한 채 난전에 돌입했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정글 속에서 사방에서 몰려오는 괴물들과 맞서는 일은 미친 짓이었다.

“으아아!”

“젠장! 외, 왼쪽에서 다수가 몰려온다!”

“저쪽에 지원 사격 좀 해줘!”

당초 계획대로 차근차근 공략하며 들어오지 않고 헬기를 이용해 막무가내로 밀고 들어온 선택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아군을 향해 굴러오기 시작한 것이다.

푹! 푹! 푹!

한편, 성우는 드레이크의 온 몸에 장창을 박아 넣었다. 혹시 모를 상황을 위해서 놈의 숨통을 재빨리 끊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스켈레톤들을 이동시켜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리자드맨을 막기 시작했다.

그런데······.

“선배! 뒤에요! 노, 놈이 일어나요!”

크르르······.

드레이크가 다시 움직였다.

“······어떻게?”

놈은 엉성해진 압박을 털고 일어났다. 웨어 베어 두 마리가 놈의 뿔을 붙잡고 끝까지 매달렸지만, 머리를 흔들어 손쉽게 튕겨내 버렸다.

크아아아!

‘분명 숨통을 끊었어.’

성우는 방금 전, 놈의 목덜미에 7개의 창을 꽂았다. 놈의 눈이 뒤집어지며 혀를 내빼는 걸 똑똑히 확인했다.

‘뭔가 달라졌다.’

성우는 뒷걸음질 치며 그림자 속으로 스며들었다.

‘이건 페이즈3다.’

이번 레이드는 ‘페이즈2’가 끝이 아니었다.

크아아아아!

놈이 긴 목을 뻗으며 포효했다. 그러자 호박색 눈동자가 붉은 빛으로 변하며 머리와 목 등줄기를 타고 검은 돌기가 뻗어 나오기 시작했다.

- 히든 레이드 보스 몬스터 ‘씨앗을 삼킨 어린 숙주’가 등장했습니다.

* 집단 퀘스트 ‘영웅과 스타의 공통점은 무엇인가?’를 이미 완료하셨습니다.

* 보스 몬스터 처리 전까지 여의도 출입이 봉쇄됩니다.

역시 그렇다. 레이드 보스를 단독 처치하는 퀘스트는 이미 완료한 상태였다. 그 이후 새로운 무언가가 시작되고 있는 것이었다.

‘역시 언제나 변수와 변칙······ 우리를 가지고 논다.’

이 게임은 언제나 이런 식이었다. 공략 방법이 친절하게 정형화 되어 있지 않다. 고생 끝에 성공을 맞보려는 순간, 매번 또 다른 시련을 내려버린다.

성우는 그런 패턴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림자 속에 숨어서 드레이크의 움직임은 물론이거니와 주변의 동태까지 살폈다.

‘그래서 이번엔 또 뭐지?’

분명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질 터였다.

“놈들은 저지해! 오지 못하게 막으라고!”

“리자드맨들이 뭔가 이상해! 조, 좀비 같아!”

아니나 다를까, 리자드맨의 눈에 광기가 어리기 시작했다. 놈들은 무기를 내던지더니 맨 손으로, 마치 좀비처럼 달려들었다.

크륵! 크륵! 크륵! 크륵!

그 울음소리마저 달라졌다.

동맹군은 그런 놈들을 저지하기 위해 온갖 원거리 무기와 마법을 퍼부어댔지만, 신체 한 부분이 날아가더라도 아랑곳하지 않고 덤벼드는 터에 원하지 않는 육탄전을 벌일 수밖에 없었다.

크륵! 크륵!

놈들은 침을 질질 흘리며 단단한 턱으로 물어뜯기까지 했다.

“으아아! 컥!”

“저, 저리가! 으아악! 내 귀!”

사방에서 리자드맨과 뒤엉킨 채, 진흙탕 싸움이 벌어지는 중이었다.

그건 지수와 한호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성우는 한호의 등 뒤로 재빠르게 접근하는 리자드맨을 발견했다.

“한호야, 옆으로 비켜!”

성우는 그림자 속에서 리피팅 크로스보우의 방아쇠를 당겼다. 그러자 새로운 아이템 ‘그림자 왕의 반지’의 효과로 ‘그림자 분신’이 생성되었다.

성우와 똑같은 형태의 그림자가, 그림자로 만들어진 리피팅 크로스보우를 발사하기 시작했다.

픽! 픽! 픽! 픽! 픽!

놈의 얼굴과 몸통에 수십 발의 화살이 내리 박혔다. 순식간이었다. 사실상 2배가 된 연사 속도는 엄청 났고, 좀비 같이 달려들던 놈이 뒤뚱거리며 물러섰다.

“으아아! 넌 언제 왔어! 저리 가!”

한호가 돌아서며 단검을 집어던졌다.

- ‘광기에 휩싸인 리자드맨’을 사냥하여 4,500골드를 얻었습니다.

성우는 공격을 멈추고 그림자 속으로 몸을 던졌다.

‘진짜 문제는 리자드맨 따위가 아니다.’

어느새 몸을 빳빳하게 새운 방랑자 드레이크, 아니, ‘씨앗을 삼킨 어린 숙주’가 주둥이 한 가득 화염을 머금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푸―화―아아아!

마침내 화염 브레스를 내뿜었다. 이전에 정훈을 몰아붙였던 전사장의 브레스와는 차원이 다른 규모였다. 놈은 긴 화염 줄기를 토해내며 고개를 천천히 꺾었다.

“으아아아!”

“끄아악! 사, 살려······.”

그러자 놈이 머리 근처, 부채꼴 범위에 있던 모든 것들이 한 순간에 숯덩이가 되어 버렸다.

케! 케에!

심지어 그 범주에는 리자드맨까지 포함 되어 있었다. 피아식별 없이 모든 걸 말살해버린 것이다.

‘저걸 어떻게 하지?’

쿵― 쿵―

놈은 자신이 만든 불길 속으로 고고하게 접어들었다. 성우는 놈의 발아래 흩어진 시체들을 포착했다.

“폭발.”

쾅! 쾅! 쾅!

시체 폭발이 일며 놈의 다리를 휘감았다.

크르르―

소용없었다.

오히려 놈이 고개를 돌려 성우를 바라보았다. 성우의 모습은 그림자 속에 숨겨져 있을 테지만, 놈은 붉은 눈깔을 이리저리 굴리며 그림자를 헤집어대는 것 같았다.

그리고······.

쩌억―

주둥이를 쩍 벌리고 불꽃을 머금었다.

“젠장!”

성우는 급히 몸을 날렸다.

푸―화―아아아!

엄청난 열기가 등 뒤를 쫓아왔다. 놈은 고개를 돌리며 달아나는 성우를 향해 불기둥을 움직였다.

콰르르르!

성우는 웨어 베어 스켈레톤 한 마리를 움직여, 자신의 몸을 가로막게 했고, 동시에 녀석의 배낭에서 뼈를 뽑아내 방패를 만들었다. 브레스가 정면으로 달려들었다. 엄청난 열기가 성우의 온몸을 갉아먹기 시작했다.

후두두―

브레스가 멈춘 뒤, 웨어 베어 스켈레톤은 재가 되어 흩어졌다. 다행이 성우의 몸까지 데미지를 주지는 못했다.

“이러면 안 되는데······.”

그의 입에서 오랜만에 약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성우는 즉시 모든 스켈레톤들을 끌어 모았다. 그리고 장창을 만들었다. 어쩔 수 없다. 소모전이다.

덜그럭! 덜그럭!

스켈레톤들과 좀비들이 사방에서 달려들며 드레이크의 몸뚱이에 창을 박아 넣었다.

콰과과!

하지만 놈이 몸뚱이를 크게 돌리며 꼬리를 휘두르자 절반 이상의 스켈레톤이 한 번에 휩쓸려버렸다. 그 뼈 조각들이 사방으로 흩어지며, 마치 산탄총처럼 동맹군을 휩쓸어버렸다.

“으어어!”

“······커, 커어어!”

푹! 푹!

몇 개의 창이 박히긴 했지만 그리 큰 데미지를 주지는 못한 것 같았다.

콰득!

오히려 창을 한 방 박아 넣기 위해서는 수인 스켈레톤 한 마리 이상을 희생시켜야만 했다.

공격에 성공하기도 힘들고, 성공한 직후에도 드레이크의 공격을 피해낼 수가 없었으니 말이다.

‘리자드맨을 일으킬 수 있지만, 상대적으로 느리다.’

리자드맨도 수인과 비견될 정도로 강한 뼈대를 가진 건 확실했다.

하지만 골격 구조 자체가 유연한 움직이나 빠른 이동에 특화되지 않았기에 수인보다 전능 능률이 떨어졌다. 즉, 수인 스켈레톤을 잃을수록 드레이크에게 데미지를 입힐 수 있는 확률이 떨어져가는 것이다.

‘이대로는 방법이 없다. 일단 후퇴다.’

성우는 어쩔 수 없이 스켈레톤들을 뒤로 물렸다.

크아아아!

그렇게 길이 열리자, 놈은 포효와 함께 성우를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쿵! 쿵! 쿵!

포기하기 위해서는 조금 더 일찍 결단을 내렸어야만 했다. 놈은 진작 성우를 목표물로 삼고 있었으니 말이다.

‘너무 빠르다.’

성우는 그림자 속으로 뛰어들었지만 놈의 붉은 눈이 성우의 위치를 정확하게 따라왔다. 놈에게는 ‘감지’스킬 비슷한 게 있는 게 분명했다.

그리고 그 순간, 놈이 입을 쩍 벌렸다. 브레스였다.

푸―화―아아아!

성우는 찰나의 순간 근처의 모든 스켈레톤들을 긁어모아 방어벽을 쌓았다.

콰르르르―

거대한 화염이 겹겹이 쌓인 스켈레톤들을 휩쓸었다. 성우는 방패 뒤로 몸을 웅크려 불길을 견뎌냈다.

‘하지만 이번에도 겨우 막아냈을 뿐이다.’

또한 방금 전 공격을 막아낼 때, 모든 수인 스켈레톤이 잿더미가 되어 버렸다. 핵심 전력이 완전히 사라져버린 것이다.

딱딱―

유일하게 남은 스켈레톤은 오른이였다. 키가 작은 탓에 화마를 피할 수 있었다. 녀석만이 칼을 내빼들고 성우 앞을 지켰다.

쿵― 쿵―

그 앞으로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드레이크가 다가왔다. 놈은 아무런 경계심도 없이, 앞발을 들어올려, 고블린 스켈레톤의 머리를 향해 내리찍었다.

덜그럭!

그 순간, 오른이가 쥐고 있던 칼을 놓으며, 바닥을 박차고 튀어 올라, 한 팔로 드레이크의 앞발을 붙잡았다.

녀석은 수많은 보스의 마나를 흡수하며 격을 상승시켜온 만큼, 작은 체구에 어울리지 않는 탄력으로 드레이크의 몸에 올라타더니, 단숨에 머리의 돌기까지 기어 올라갔다.

크아아아!

그리고 드레이크의 오른쪽 눈알을 긁어버리는데 성공했다. 드레이크는 괴성을 내지르며 머리를 휘둘러 오른이를 패대기쳤다.

딱―

오른이는 그대로 진창에 처박혔고, 그 위로 거대한 앞발이 무자비하게 낙하했다.

퍽! 뻑!

뼈 갑옷이 으스러지고 갈비뼈가 튕겨져 나갔다. 두개골에 균열이 일어났다.

쩍! 쩍! 쩍!

이내 진흙 탕 위에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뼈 조각만이 남았다.

- 당신의 권속이 영원한 죽음으로 돌아갑니다.

최초의 스켈레톤이 그렇게 사라졌다.

“오, 오른아! 안 돼!”

드레이크의 뒤에서 한호의 절규가 들렸다.

“오른아! 젠장! 선배, 빨리 피해요!”

한호는 그렇게 외치며 드레이크의 등에 단검을 던지기 시작했다. 무의미한 공격이었다.

“너나 피해!”

성우는 드레이크의 바깥쪽으로 돌며 다친 눈을 향해 리피팅 크로스보우를 난사했다. 그 역시 무의미했다. 다음 순간, 성우가 내달리던 방향에서······.

퍽!

꼬리가 날아들었다. 손에 쥐고 있던 방패가 으스러지고 왼쪽 팔이 작살나버렸다.

“······컥!”

그의 몸은 나무를 넘어서 공원 밖으로 튕겨져 나갔다. 이 장소의 모든 이들이 그 모습을 바라보며 경악했다.

“네크로맨서까지!”

“진짜 끝났다······.

그리고 그 모든 장면은 사명감이 투철한 카메라 오퍼레이터에 의해서 생중계되고 있었다. 정훈이 당할 때 이상의 충격이 채팅창에 내려앉았다.

크아아아!

아직 끝난 건 아니었다.

드레이크를 포효를 내지르며 네크로맨서가 날아간 방향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놈은 온몸으로 나무를 부러뜨리고 짓이기며 숲 너머로 사라졌다.

“아, 아직이야. 아직 모, 모르는 거야.”

카메라 오퍼레이터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카메라를 한 손에 든 채, 네크로맨서와 드레이크가 사라진 방향으로 달려갔다.

채팅창은 절망으로 가득 찼다. 희망을 위해서 시작했단 레이드가 처절한 실패로 끝나버릴 상황이었다.

크아아아!

카메라가 다시금 드레이크의 뒷모습을 포착했다. 넓은 도로, 드높은 마천루 아래로 거대한 괴수가 내달리고 있었다. IFC몰 정면의 여의대로였다.

“네크로맨서가 아직 싸우고 있습니다!”

그는 저도 모르게 그 장면을 중계했다. 피투성이가 된 네크로맨서는 도로의 버려진 차 사이로 도망치며 리프팅 크로스보우를 난사하고 있었다.

픽! 픽! 픽! 픽!

하지만 그 공격은 아무런 피해도 입히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쿵! 쿵! 쿵!

드레이크는 앞을 가로막는 차량을 몸으로 밀어버리고 짓밟으면서 네크로맨서를 추격했다. 그리고 그 거리는 점점 더 좁혀지고 있었다.

하물며 네크로맨서의 움직임을 볼 때, 왼쪽 팔과 다리가 불편한 것 같았다. 드레이크의 꼬리에 의해 직격탄을 맞으면서 골절상을 입은 게 분명했다.

“아무래도 안 될 것 같습니다······.”

카메라 오퍼레이터는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누가 봐도 안 되는 싸움이었다.

그리고 정말로, 마지막 순간이 왔다.

드레이크의 입이 붉게 빛나며, 지근거리의 네크로맨서를 향해 화염의 브레스를 내뿜었다. 네크로맨서는 피할 겨를도 없이, 방패 하나를 들어올리며, 그 치명적인 공격을 정통으로 맞이했다.

손에 쥐고 있는 방패가 으스러지고 녹아내렸다. 순식간이었다. 그리고 이내 네크로맨서의 온몸이 불꽃에 집어삼켜졌다. 그 역시 순식간이었다.

후우우―

“······.”

***

성우는 그렇게 죽었다.

사실, 지금까지 살아 있는 것도 운이 좋았기 때문이다.

‘어이없을 정도로 좋았지.’

고통을 찰나였으며, 주마등은 그것보다 길었다.

‘나도 불에 타 죽을 줄이야.’

불 속에서 비명을 지르던 가족들이 떠올랐다. 어쩌면······ 그때부터 운이 좋았는지 모른다. 성우가 잠깐 나가 있던 사이에 집이 불타올랐다.

그때의 성우는 너무나 약했기에, 불길에 뛰어 들어갈 용기가 없었기에 살아남았다. 그것마저 운이 좋았다. 화를 면하는 것, 그건, 누구나 원하는 일이다.

그런데 가끔 그런 생각을 했다. 그 불길을 앞에 두고 조금만 용기를 내서 달려 들어갔더라면, 혹시 가족을 살릴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 편이 더······ 운이 좋다고 볼 수 있는 게 아닌가?

······운이 좋은 게 아니라 도망치고 나서 합리화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이 게임도 비슷했다. 이번에는 도망치지 않으려고 했고, 결과적으로 조금 더 오래 살아남은 것 같았다.

세상이 흐릿해졌다. 그리고 어두워졌다. 그런데 너무 이상하게도 그 어둠 속에······.

흑색의 낫 한 자루가 보였다.

성우는 저도 모르게 움켜쥐었다.

- 전용 퀘스트 <죽음의 주인은 누구인가?>를 ‘목표 획득’으로 공략하셨습니다.

* 보상이 주어집니다. (1차 각성, 전용 스킬)

* 당신의 운명이 미세하게 변합니다.

***

크아아아아!

드레이크는 네크로맨서를 불태워 죽인 뒤, 대가리를 치켜 들며 포효했다.

카메라 오퍼레이터는 그 장면마저 화면에 담고 있었다. 사실, 그 자리에 굳은 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서, 성우 씨!”

“선배!”

여의도 공원에서 성우의 일행이 뛰어나왔고, 그들은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바라보며 뻣뻣하게 굳고 말았다.

챙그랑―

지수는 환도를 놓친 채, 이글이글 끌어 오르고 있는 성우의 시체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 뒤로 크루세이더 팀을 비롯한 동맹군들이 하나 둘 씩 걸어 나오기 시작했다. 광기의 리자드맨의 습격을 어찌어찌 격퇴하긴 한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거기까지였다.

“아, 결국 네크로맨서까지······.”

“쿨럭! 시, 실패군. 성우 씨······.”

민흠이 정훈을 부축하고 걸어 나왔다. 정훈은 비록 정신을 차리긴 했지만 혼자 서 있기도 힘든 상태였다.

“커맨더, 후퇴해야 됩니다.”

“······그래야겠죠. 미안합니다. 성우 씨.”

그들은 천천히 몸을 돌렸다.

그때였다.

- 주의! 해당 지역에 ‘대강령(大降靈)’이 시작됩니다.

난데없이, 모든 이의 눈앞에 그런 메시지가 출력되었다.

“어?”

“······뭐지?”

“서, 선배!”

성우의 시체가 서서히, 공중으로 떠오르기 시작했으며, 그의 몸 주변으로 검은 안개가 넘실넘실 피어났다.

크르르······.

드레이크마저 경계심 가득한 몸짓으로 주춤주춤 물러서기 시작했다. 그 검은 안개가 IFC몰 근처를 가득 매웠다.

우우웅!

별안간 돌풍이 일며 검은 연기를 밀어냈다. 그러자 그  한 가운데에서부터 정체불명의 녹색 일렁임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누군가 외쳤다.

“······네크로맨서다!”

바로 그곳에, 얼굴 일부에 뼈가 드러나고, 양쪽 팔 역시 뼈가 드러난 성우가, 거대한 흑색 낫을 들고 서 있었다.

“저게 네크로맨서라고? 저건······.”

리치(Lich)였다.

그때, 여의도공원 안쪽, 숲 너머에서 기괴한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덜그럭! 덜그럭! 덜그럭!

전투가 휩쓸고 지나간 전장으로부터 엄청난 수의 무언가가 몰려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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