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네크로맨서-48화 (48/244)

# 48

17) 수원역 거미 소굴 – 2

매일 같이 드나들었던 수원역이었다. 통학을 위해서는 이 지하통로를 지나야했으니 말이다.

“우리가 알던 수원역 맞아요?”

그러나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는 현재, 구정물이 고여 있는 지하 동굴에 불과했다. 일행은 불빛을 비추며 어두운 통로 속으로 나아갔다.

“으, 습해.”

배수 시설이 고장 나자 깊은 곳에서부터 물에 차오르고 있었다. 빠른 시일 내에 완전히 침수될 것 같았다.

뚝― 뚝―

어디선가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울렸다. 벽면에는 벌써 이끼무더기가 자라나는 중이었으며, 질긴 거미줄이 길을 막아서기까지 했다. 그럴 때마다 지수가 나서, 발화 환도를 휘둘러 태워버렸다.

그렇게 지하 1층 역사에 도착했을 때였다.

“선배! 저, 저, 저기 좀 보세요.”

한호가 성우의 팔을 잡아끌었다. 그리고는 천장을 향해 불빛을 비췄다.

“······사, 사람!”

한호의 말대로 천장 부근에 사람이 매달려 있었다. 한두 명이 아니었다.

열 명에 가까운 사람이 거미줄에 칭칭 묶인 채 천장에 달라붙어 있었는데, 온갖 날벌레까지 잔뜩 들러붙어서 하나의 반죽덩어리를 형성하고 있었다.

그런데 불빛을 비추자 마치 잠에서 깨는 것처럼, 거미줄 속의 사람들이 움찔거리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으으······.”

살아있다.

“뭐야? 우, 움직이잖아? 좀비인가?”

그중 한 남자가 눈을 떴다.

“······커흐, 사, 살려주······.”

그가 힘겹게 입을 벌려 목소리를 내자, 입 안에서 무언가 기어 나왔다. 그건······ 거미였다.

끼릭― 끼릭―

성우는 그의 목덜미가 비정상적으로 꿈틀거리고 있다는 걸 눈치 챘다. 그 움직임은 가슴을 지나, 배에서부터 올라오고 있었다. 불길한 징조였다.

“커―흐! 커!”

그는 몸을 부르르 떨면서 연신 거미를 토해내기 시작했다. 다음 순간, 그의 복부가 부풀어 오르더니 핏물이 쏟아지며······.

끼릭! 끼릭! 끼릭!

“으아! 저게 뭐야!”

뜯어진 뱃가죽 안에서 수백 마리의 거미가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남자는 눈깔을 뒤집더니 고개를 푹 떨궜다.

일행은 즉시 뒤로 물러섰다. 이내 주변에 매달려 있는 사람들까지 고통에 찬 몸부림을 치기 시작했다. 어떤 결과가 벌어질지는 눈에 뻔했다. 이대로 방치할 수는 없다.

“폭발.”

콰―앙!

성우의 한 마디에 남자의 몸이 통째로 폭발했다. 일순간 일어난 화염이 새끼 거미들을 날려버리고 일대의 거미줄을 몽땅 태워버렸다.

“폭발.”

쾅! 쾅! 쾅!

성우는 숨을 거둔 이들을 차례차례 터뜨렸다. 그러자 그 안에서 움트던 새끼 거미들까지 몽땅 통구이가 되어버렸다.

- 자이언트 거미 알집을 제거하여 1,300골드를 얻었습니다.

- 자이언트 거미 알집을 제거하여 1,300골드를 얻었습니다.

“살아있는 사람 몸에 알을 낳다니 미친······.”

“머리 위까지 신경 쓰면서 갑시다.”

일행은 참혹한 현장을 뒤로하고 더 깊숙한 곳으로 전진했다.

수원역은 백화점 건물과 연결되어 있었고, 일행은 가동이 중지된 에스컬레이터를 걸어 올라갔다.

그리고 3층에 도착했을 무렵,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폭발 소리! 놀랐다! 붐!”

“웨얼? 아래다!”

언뜻 듣기에도 코볼트가 분명했다. 일행은 몸을 숙이고 코볼트 무리가 지근거리까지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놈들의 실루엣이 나타났을 때······.

픽! 픽! 픽! 픽! 픽!

일행은 일제히 손전등을 비추며 온갖 무기를 난사했다. 작은 체구의 코볼트에게는 리프팅 크로스보우의 공격마저 치명적이었다.

“크아!”

“컥!”

스켈레톤이 나설 필요도 없이, 7마리의 코볼트의 몸이 우르르 무너졌다.

그런데 놈들이 전부가 아니었다.

“있다! 나쁜 놈!”

“콜 더 거미!”

반대쪽에서도 코볼트의 육성이 들려왔다. 일행은 즉시 에스컬레이터를 빠져나가, 양쪽으로 흩어지며 코볼트를 습격했다.

픽! 픽!

“칵!”

성우는 첫 번째로 마주친 코볼트의 얼굴에 화살 두 방을 박아 넣었다.

왼쪽에서 불꽃이 번쩍거렸는데, 지수가 칼을 휘둘러 코볼트 3마리를 쓸어버리는 장면이었다. 후방에 서 있는 코볼트 2마리가 한호의 단검을 맞고 쓰러졌다.

이어서 오른이가 달려 나가며, 마법을 시전하는 코볼트 마법사의 팔목을 날려버렸다. 거대한 수인 스켈레톤들까지 차례차례 올라오자 코볼트 따위는 적수가 아니었다.

“콜 더 거미!”

“불러라 스파이더!”

코볼트들은 괴상한 구호를 외치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뭐라는 거야!”

그때, 코볼트 한 마리가 벽 쪽으로 달려가더니, 벽을 가득 매운 거미줄을 손으로 마구 헤집어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보라색 거미줄 한 가닥을 끄집어냈다.

“코―올 더 거미―이!”

그 순간, 성우가 놈의 등짝에 화살을 박아 넣었고, 놈의 몸이 풀썩 무너졌지만······ 덩달아 보라색 거미줄을 까지 잡아당겨지고 말았다. 뭘 하려고 한 건진 몰라도 막지 못한 것이다.

부르르······

천장으로 이어진 보라색 거미줄들이 일제히 진동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치 비닐을 구기는 것 같은 마찰음이 사방에서 들려왔다.

“이거, 불길한 징조인데요?”

일행은 천장을 경계하며 한쪽으로 모였다.

부스럭― 부스럭―

그리고 저 멀리, 의류 매장의 천장 쪽에서 무언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곳까지는 불빛이 닿지 않았다. 희미한 잔광 속에서 검은색 일렁거림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콜 더 거미가 뭔데? 아, 씨!”

끼익! 끼익!

그건 엄청난 수의 거미였다. 정확히는 거대한 거미였다. 너비가 1미터는 넘는 흑색 거미들이 천장의 거미줄을 타고 다가오고 있었다.

픽! 픽! 픽! 픽!

성우가 리피팅 크로스보우를 난사했다. 거미 몇 마리가 후드득 떨어졌지만 몰려오는 물량 공세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다가오기 전에 막아야 된다. 저 정도 숫자의 거미에게 머리 위쪽을 내어주면 위험하다.’

그때, 지수가 웨어 베어 스켈레톤의 허벅지를 밟고, 어깨를 짚으며 천장을 향해 손을 뻗었다.

화르르!

그녀의 환도가 천장에 닿자, 천장을 수북하게 매우고 있던 거미줄들이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온갖 이물질들이 엉겨 붙어 있는 거미줄은 꽤나 빠른 속도로 타들어가기 시작했고 다가오던 거미 떼는 난데없는 불꽃에 휘말렸다.

끼익! 끼익!

그 불길은 거미줄을 태운 뒤 허공으로 흩어져 사라졌다. 칼에 의한 화염 데미지가 ‘주변 환경’에 영향을 줄 수 없다는 조건 덕분이었다.

끽! 끽!

다만, 데미지 적용 대상인 자이언트 거미들은 역겨운 괴성을 지르며 바닥으로 떨어지더니, 뒤집어진 채 파르르 떨기 시작했다.

“좋아. 전부 밟아 죽여.”

머리 위에서 덮쳐오는 공격이 아니라면 그다지 위협적이지 않다. 1미터가 넘는 크기라지만, 바닥에 있을 때는 그저 좌우로 넓어질 뿐, 짓밟아 죽이기에 안성맞춤인 사이즈인 건 여전하다.

덜그럭! 덜그럭!

수인 스켈레톤들이 진격했다. 그리고 불 맛을 보고 정신을 못 차리는 수십 마리의 거미들을 밟아죽이기 시작했다.

철퍽! 철퍽!

- 자이언트 거미를 사냥하여 990골드를 얻었습니다.

- 자이언트 거미를 사냥하여 990골드를 얻었습니다.

철퍽! 철퍽!

끔찍한 소리와 함께, 거미들이 터지며 사방으로 체액을 쏟아냈다.

“욱, 냄새······.”

역겨운 비린내가 실내를 가득 매웠다. 그렇게 거미 떼가 정리되어갈 때, 천장의 거미줄이 다시 한 번 진동하기 시작했다.

구우우!

그런데 방금 전과 뭔가 달랐다. 진폭이 넓은 대신 훨씬 강하게 흔들렸다. 성우나 한호는 그 차이를 느끼지 못했지만, 지수는 무언가를 캐치해냈다.

“이건 한 놈, 훨씬 큰 놈이에요.”

아니나 다를까······.

끄―에에에!

엄청난 괴성이 들려왔다. 백화점 상층부에서 시작된 포효가 일행의 머리 위를 묵직하게 내리 눌렀다. 건물 구석구석까지 공명할 정도였다.

“딱 봐도 보스죠?”

“······제 발로 위치를 알려주는군.”

그 정도 괴성으로는 일행을 멈추게 할 수 없었다. 오히려 공략의 이정표를 제시해준 셈이나 다름없었다.

일행은 던전 공략을 속행했다. 또 다시 에스컬레이터를 걸어 올라가, 괴성이 들린 곳, 여왕의 침실을 향했다.

“여왕! 지킨다!”

“킬 더 사용자!”

그리고 또 다른 코볼트 무리가 일행을 맞이했다. 놈들은 자이언트 거미가 벗은 허물을 머리에 쓰고, 다리 껍질로 신발과 각반을 만들어 거미줄에 눌어붙지 않을 수 있었다.

일부는 일전에 웨어 울프를 마비시킨 걸로 보이는 독니를 쥐고 있었다. 하지만······.

“해라, 기절! ······어, 어째서!”

“먹어라! ······무엇?”

그 독니가 아무리 치명적이라고 한들, 뼈다귀에게 먹힐 리가 없었다.

툭! 툭!

코볼트들은 스켈레톤의 몸에 막대기를 쿡쿡 찔러대면서, 이 거인들이 왜 쓰러지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촤악!

멍청함의 끝은 죽음이었다. 십여 마리의 코볼트가 아무런 데미지도 주지 못하고 도륙 당했다.

“코볼트는 진짜 간사한 게, 매번 강한 몬스터한테 붙어 있네요? 저번에는 나무 정령이더니?”

정황 상 이곳의 코볼트들은 거미 여왕에게 붙어서 살아가고 있는 족속들인 모양이었다.

코볼트에게도 종교가 있다면, 어쩌면 강력한 몬스터를 숭배하고 있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너도 코볼트처럼 영등포 검사한테 가서 붙어.”

“아······ 뒤끝 진짜······.”

일행은 코볼트들을 손 쉽게 처리한 뒤 백화점의 6층에 도달했다.

끼릭! 끼릭!

그러자 어디선가 자이언트 거미가 우르르 몰려나왔는데, 그 대열의 끝에는 영화관이 있었다.

“지수 씨.”

“네.”

이번에도 지수가 천장의 거미줄을 태워버렸기에 자이언트 거미 떼는 바닥을 기어오는 수밖에 없었다.

끼릭! 끼릭! 끼릭!

“아까보다 훠, 훨씬 많은데요?

놈들은 이러 저리 뒤엉킨 채, 범람하는 강물처럼 몰려왔다. 단일 개체는 약할지라도 엄청나게 많은 숫자에 휩쓸려버릴 수도 있었다.

“독니가 있으니까 모두 스켈레톤 뒤로 빠져요.”

일행은 뒤로 후퇴해, 좁은 복도에서 거미 떼를 마주했다. 대체 몇 마리인지 분간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 그저, 검은 뭉텅이들이 파도처럼 물밀 듯 밀려오는 것처럼 느껴졌다.

끼릭! 끼릭! 끼릭!

“으, 스타쉽 트루퍼스가 생각나는데요?”

“한 방에 갈 겁니다.”

“설마 또 폭발?”

- 주의! 해당 지역에 ‘죽음의 응답’이 시작됩니다.

그런 메시지와 함께 자이언트 거미 떼의 한 가운데가 불룩하게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거미 떼 사이에서 좀비들이 몸을 일으켰다.

으어어! 으어어?

좀비들은 소환과 동시에 거미 떼에 둘러싸인 채 공격을 받았고, 눈 깜짝할 사이에 분해되어 버렸다.

그렇게 절단된 좀비의 사지가 사방으로 흩어져나가기 시작했는데, 성우는 그 파편들이 골고루 퍼져나가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바로 지금이었다.

“······폭발.”

펑! 펑! 펑! 펑!

거미 떼의 중심부에서 연쇄 폭발이 일어났다. 10마리의 좀비 사체가 사방으로 잘게 흩어진 채, 마구잡이로 터져나갔고, 거미들은 화염에 휩싸인 채 괴성을 질러댔다.

끼릭! 끼리리!

- 자이언트 거미를 사냥하여 990골드를 얻었습니다.

- 자이언트 거미를 사냥하여 990골드를 얻었습니다.

- 자이언트 거미를 사냥하여 990골드를 얻었습니다.

- 자이언트 거미를 사냥하여 990골드를 얻었습니다.

- 자이언트 거미를 사냥하여 990골드를 얻었습니다.

엄청난 메시지가 시야 한쪽에 떠올랐다. 거미줄을 태움으로써 난이도를 강제로 하향시키고, 엄청난 수의 거미를 손쉽게 잡음으로써 엄청난 양의 골드와 경험치를 얻었다.

‘이 정도라면 곧 레벨 업 할 수도 있다.’

구구구―

하물며 폭발이 일어난 지점의 바닥에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내 가장자리 일부분이 무너지며 살아남은 거미 떼들을 통째로 집어삼켰다.

구구궁―

- 자이언트 거미를 사냥하여 990골드를 얻었습니다.

- 자이언트 거미를 사냥하여 990골드를 얻었습니다.

- 자이언트 거미를 사냥하여 990골드를 얻었습니다.

“포, 폭발······ 이거 너무 위험한 거 아니에요?”

한호가 이마의 식은땀을 닦아냈다. 잘못 사용했다가는 일행까지 추락했을 수도 있으며, 건물 자체가 무너질 수도 있었다.

“모든 폭탄은 감수하고 쓰는 거야.”

“제발 계산했다고 말해줘요.”

“그럼 그렇다고 치자.”

“······.”

일행은 무너지지 않는 바닥 위를 조심스럽게 지나가 던전의 최종 관문을 향해 나아갔다.

“상영관 쪽이네요?”

독거미 여왕의 침실은 영화관 내에서도 가장 큰 3D 상영관이었다. 일행은 그 앞에서 새로운 메시지를 마주할 수 있었다.

- 주의! 플레이어 124명의 목숨을 앗아간 ‘식인 던전’의 보스 방입니다. 여기에서 공략을 중단하여도 일부 보상이 지급됩니다. 그래도 입장하시겠습니까?

“하필 좁은 상영관 안이라니, 들어가기가 찝찝하긴 하네요.”

“와, 이런 메시지가 나올 정도라면 진짜 어려운 곳이긴 한가 봐요······. 선배? 이번에도 못 먹어도 고입니까?”

이번에는 성우도 성급하게 움직이지 않았다. 이 정도 경고 문구라면 분명 엄청난 놈이라는 뜻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미 선택은 정해져 있었다.

‘앞으로 더 강한 괴물들을 마주해야 된다.’

여기서 포기하고 돌아서면 앞으로 나아갈 길이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더 큰 위험에 맞서야 할 테니 말이다.

“고.”

“······어련하시겠어요.”

성우는 전력을 다하기 위해 잠깐의 정비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모든 스켈레톤을 공허의 안식처로 체류시켰다. ‘대강령’ 스킬을 장전한 것이다.

“이제 들어가죠.”

일행은 단단히 준비한 뒤 상영관 안으로 입장했다.

그곳은 온통 거미줄 천지였다. 끈적끈적한 실타래들이 사방에 늘어져 쉽게 움직일 수 없었다. 지수는 언제든지 칼을 휘둘러 거미줄을 태울 준비를 했다.

“모두 조심해요 벽에 붙으면 안 되겠어요.”

일행은 객석의 가장 높은 곳에 서서 스크린 방향에 빛을 비췄다. 새하얀 거미줄들이 빛을 반사해 번들거렸다.

“······어서 와라! 사용자들이여!”

어디선가 목소리가 울렸다. 그건 스크린 아래의 무대였다. 그곳에 코볼트 한 마리가 서 있었다.

놈은 야구 모자를 뒤집어쓰고 짧은 벨벳 재킷을 마치 코트처럼 걸치고 있었는데, 한 손에 제 키보다 더 큰 지팡이를 쥐고 있었다.

- 보스 몬스터 ‘코볼트 샤먼’이 출현했습니다.

“어? 근데 저 새끼, 말을 또박또박 하잖아요?”

한호가 놀라며 말하자 코볼트 샤먼이 뿌듯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무려 열아홉 개의 인간의 뇌를 먹은 덕분이뤠꿿!”

“······응?”

“너희는 돌아갈 수 엎읋귏꿰? 후회해도 늟잃어끻!”

어떤 매커니즘으로 언어를 학습하는지는 몰라도······ 완벽한 한글 패치는 아직 무리인 모양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 스크린의 위쪽 천장 부근에서 어떤 움직임이 느껴졌다. 성우가 손전등을 서서히 들어 올리니······.

끄르르―

족히 십 미터는 넘을 것 같은 거미가 천장에 웅크린 채, 이쪽을 향해 대가리를 치켜들고 있었다. 여덟 개의 홑눈이 번뜩거렸고 여덟 개의 긴 다리에는 두꺼운 털이 잔득 돋아나 있었다.

그리고 놈의 배 아래에는 새끼 거미들이 한 대 뭉친 채 웅크리고 있었는데, 빛이 닿자 역겨운 소리를 내며 서로 안쪽으로 파고들어가려고 아우성쳤다.

- 보스 몬스터 ‘자이언트 독거미 여왕’이 출현했습니다.

“미친······. 근데 보스가 두 마리?”

“계속 경고해주던 이유가 있었네요.”

독거미 여왕이 긴 다리를 서서히 펼치기 시작했다. 그러자 코볼트 샤먼이 사악하게 웃어재꼈다.

“크하하하! 어떠냐! 지리지않읅꺄!”

대체 어떤 뇌를 먹은 걸까?

“작전대로 가죠.”

“오케이.”

“네.”

일행은 멍하니 있다가 선제공격을 내줄 생각이 없었다. 지수와 한호가 좌우로 뛰어나갔고, 성우는 정면으로 걸어 나갔다.

화르르!

지수는 곧장 벽에 칼을 박아 넣어 거미줄에 불을 붙였다. 이런 좁은 공간에서 화재를 일으키게 되면 일행에게도 피해가 오겠지만, 거미줄을 이용하는 거미에게는 보다 치명적일 것이었다.

일행의 작전은 단기전이었다.

벽을 타고 스멀스멀 기어올라 천장으로 뻗어나가는 불길과 함께······.

- 주의! 해당지역에 ‘대강령(大降靈)’이 시작됩니다!

검은 연기가 상영관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으아아! 이, 이게 뭐웛냐! 비열한 인간!”

코볼트 샤먼이 기겁하며 스크린에 바짝 붙었다. 하지만 그의 머리 위로 무언가 날아들어, 퍽, 하고 터졌다. 그리고 그곳에서 역시 검은 연기가 터져 나왔다.

“크아아!”

그건 ‘심연의 농축액’이었다. 치명적인 독성 물질이 두 마리의 보스 몬스터를 휘감았고, 독거미 여왕의 배 아래에서 새끼들이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끽! 끽! 끽! 찍! 찍!

새끼들은 바닥에 떨어진 채 파르르 떨어대다가 이내 움직임을 멈췄고, 독거미 여왕은 독니를 꿈틀거리며 악에 찬 괴성을 내질렀다.

끄에에! 끄에에에!

성우는 여왕을 올려다보았다. 그녀의 머리 근처에 익숙한 생김새의 웨어 울프 한 마리가 걸려 있었다. 체액을 모두 빨아 먹혔는지 미라 같은 꼴이었다.

그리고 그 주변으로 거미 여왕에게 바쳐진 제물들이 줄줄이 걸려 있었다. 엄청난 양의 시체와 뼈였다.

“이 맵······ 좋은데?”

즉, 네크로맨서가 활약하기 최적의 공간이라는 뜻이었다.

“폭발.”

펑! 퍼―엉!

식인 던전이, 이번에는 잘못된 먹이를 삼켰다.

***

크루세이더 팀의 사냥은 언제나 작전대로 흘러갔다. 수색대를 먼저 파견해 사냥감의 위치와 특성, 더 나아가 스킬 패턴까지 파악한 뒤, 본대가 투입되는 것이었다.

“모두 수고했습니다. 이번에도 완벽한 전투였습니다.”

그리고 지금, 한국철도공사 구로차량기지에서 또 한 번의 대규모 작전을 마무리했다. 일대의 생존자들을 공포에 떨게 했던 ‘식인 박쥐’ 사냥에 성공한 것이다.

날개를 펼쳤을 때 크기가 10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녀석이 정훈의 대검에 꽂힌 채, 철도 위에 나동그라져 있었다.

“모두 커맨더가 잘 지휘해주신 덕분입니다.”

“맞습니다. 차고지 양측을 습격하고, 날개의 피막부터 꿰뚫는 작전이 유효했습니다.”

“앞으로도 커맨더의 명령만을 따르겠습니다.”

크루세이더 팀의 충성도는 엄청났고, 그게 바로 정훈의 주력이었다.

‘랭킹 1등은 아니지만 내가 그보다 강할 거다.’

비록 파티 사냥의 특성 상 다수의 크루세이더 팀과 경험치를 나누어 가져야 했지만, 압도적인 전력을 바탕으로 다른 플레이어와는 비교할 수 없는 대규모 사냥을 이어왔다.

하물며 정훈의 직업인 ‘크루세이더 커맨더’만의 주요한 스킬이 하나 있었다.

- 휘하 크루세이더의 경험치 일부를 공납 받습니다.

- 휘하 크루세이더의 경험치 일부를 공납 받습니다.

크루세이더 대원 한 명이 벌어들이는 경험치의 10퍼센트가 정훈에게 들어오는 것이었다.

이렇게, 크루세이더 팀은 함께 성장해나가는 한편, 정훈은 그 누구보다 많은 양의 경험치를 쓸어 담을 수 있었다.

‘그런데 한강석, 넌 도대체 어디에 있는 누구냐.’

신경 쓰이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 서버 커뮤니티에서 독보적인 영웅으로 취급받는 자신이, 랭킹 1등이 아닌 건 이해할 수 없는 일이며, 한편으로는 두려운 일이기도 했다.

‘어떻게 레벨 업이 그렇게 빠를 수가 있지?’

랭킹 1등이 가지는 상징성은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커뮤니티 내에서도 영등포 검사보다 랭킹이 더 높은 정체불명의 존재, 한강석이라는 사람에 대한 기대감 역시 실로 어마어마했으니 말이다.

“커맨더, 10분 정도 뒤에 출발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크루세이더 팀은 사냥감을 기차에 묶어 영등포역까지 운반할 준비를 마친 뒤, 사냥에 동원된 장비를 정리하고 있었다.

“커맨더! 이, 이것 좀 보시죠!”

팀원 한 명이 정훈을 찾았다. 그는 한 손에는 핸드폰을 든 채, 무엇이 그리 심각한지 헐레벌떡 뛰어왔다.

“래, 랭킹이······. 네크로맨서가!”

정훈은 핸드폰을 받아들어 그 내용을 확인했다. 그리고 그의 얼굴이 서서히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어떻게?”

[KOR 서버 랭킹(1페이지)]

1) 한강석 (LV. 16)

2) kor-157 (LV. 14)

3) 영등포 검사 (LV. 13)

4) DOCTOR-000 (LV. 13)

5) 최윤 (LV. 12)

랭킹에 변동이 생겼다.

네크로맨서가 영등포의 영웅을 앞서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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