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7
17) 수원역 거미 소굴 – 1
웨어 울프는 워낙 튼튼한 종족이기에 화살 몇 방 맞았다고 해서 죽지 않았다.
“크으······.”
푹!
놈은 가슴에 박힌 화살을 뽑아냈다. 털가죽 위로 피가 번져나갔지만, 금방 회복될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포위망을 뚫어낼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사방을 수많은 스켈레톤들 포위하고 있었으니······ 아무리 생각해도 빠져나갈 구멍이 없었다.
“주둥이에는 화살이 안 박힌 것 같은데? 왜 말이 없지?”
“······퀘스트다.”
놈이 곧장 입을 열었다.
“퀘스트?”
“그래. 퀘스트 수인이 되어 이성을 잃었을 때, 우리에게는 퀘스트가 주어진다. 그 내용을 분간할 정신 따위는 없지만 본능적으로 따르게 되지.”
플레이어는 이 게임의 ‘말’이 되어 움직인다. 그리고 퀘스트는 그런 플레이어에게 목적을 강요한다.
그런데 플레이어가 되지 못한 이들, 수인들에게도 비슷한 시스템이 적용되고 있다는 소리였다.
“무슨 내용이지?”
“간단하다. 사람을 잡아먹으면 되지. 총 10명을 말이야.”
명료하고 살벌한 소리였다. 성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이성이 돌아오는군.”
“그렇다.”
수인들이 인간을 발견하면 유독 앞뒤 안 가리고 미친 듯이 달려드는 이유가 있었다. 시스템에 의해서 강요된 본능이, 인간을 잡아먹으라고 채찍질 해대는 것이었다.
“너희 같은 게 더 있나?”
성우의 물음에 놈은 콧바람을 내뿜었다.
“당연히 더 있겠지. 인간인 거의 다 죽었지만 아직도 한심한 플레이어가 널리고 널렸으니 말이다.”
“그 소리가 아니라, 이 지역에 더 있냐고 물은 거다.”
놈은 입을 떼지 못했다. 그건 긍정이나 다름없었다.
“더 있군.”
“······.”
“한 가지만 더 묻지. 상점을 부수고 다니는 거, 너희 짓이냐?”
상점을 파괴하고 다니는 놈들은 하나 같이 메시지를 남겼다. 그리고 그 메시지는 ‘발톱’으로 쓴 것 같다는 게, 일행의 합리적인 의심이었다.
하지만 웨어 울프는 고개를 저었다.
“우리가 아니다.”
“그 말을 어떻게 믿지?”
성우의 그러자 뒤에 서 있던 다른 웨어 울프가 발끈하며 나섰다.
“우리가 진짜 아니야! 다른 놈들이 있어!”
“넌 가만히 있어!”
“아저씨, 하지만!”
“내가 닥치라고 했지!”
아저씨라고 웨어 울프가 뒤늦게 나선 녀석의 어깨를 찍어 눌렀다. 하지만 성우의 눈썹은 이미 치켜 올라간 상태였다. 다른 놈이라?
“······다른 놈들, 그것도 들어봐야겠어.”
아저씨는 어딘가 난감해보였지만 이내 입을 열었다.
“하아······ 우리는 그저 살아남기 위해 산다. 이성을 되찾은 이후에는 웬만해서는 인간을 사냥하지 않아. 하지만 인간에 대한 극단적인 반감을 가진 이들도 있지. 그들이 뭉쳐서 플레이어를 공격하는 거다. 상점을 부수는 게 플레이어를 약화시키는 일일 테고.”
“반 인류 수인 연합이라는 건가?”
아저씨가 고개를 저었다.
“수인만 있는 게 아니야. 정체를 알 수 없는 미친 과학자들도 합세했어. 아니, 애초에 그들이 주축이고 오히려 수인들이 붙은 거다.”
플레이어를 증오하는 수인들과 미친 과학자라? 어딘가 익숙한 구린내가 풍긴다.
‘방문판매상?’
괴상한 아이템을 제조하며 특히나 ‘수인화 앰플’ 등 수인과 관련된 아이템도 여럿 있었다.
성우가 잠깐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웨어 울프의 태도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아저씨라고 불린 웨어 울프는 몸에 박힌 화살을 뽑아내더니 어깨를 쭉 펴고 섰다.
“성우 씨, 몇 마리가 더 다가왔어요.”
아무래도 이 수인 집단은 꽤나 체계적인 사냥 방식을 마련해 놓고 있는 모양이었다.
후방, 옥상에 저격수를 배치해놓은 것도 그렇고, 위기에 처하자마자 지원군이 올 정도라면, 인근에 성우가 확인하지 못한 백업이 있던 게 분명했다.
웨어 울프는 긴장한 눈동자였다. 그런데 마치 무언가를 다짐한 것처럼, 손가락을 쥐었다 펴며 성우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눈동자에 살기가 돌아왔다.
“미안하지만 머리 좀 굴렸다. 네가 이 주변을 헤집고 다닌다는 걸, 우리는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언젠가는 충돌하리라고 생각했지.”
“······실수하지 마라. 그게 과연 머리를 잘 굴린 건지 더 생각해보길 추천한다.”
웨어 울프의 입 꼬리가 아래로 휘어졌다. 늑대의 표정 같은 건 잘 모르겠지만, 어딘가 씁쓸함이 느껴졌다.
“곧 너를 처리할 생각이긴 했다. 생각보다 빠르게 칼을 뽑아야 됐을 뿐이야. 대화를 해보고 싶기도 했지만, 우리 꼴이 이런 상태이니 용기가 나지 않더군. 플레이어들이 이런 모습을 좋아해줄리 없으니까. 우리도······ 살아남고 싶거든. 정말로.”
“이해하지만, 그 소원을 들어줄 순 없을 것 같다.”
쉬익! 쉬익!
바람소리, 화살이다.
우드드―
그 순간, 성우 옆, 웨어 울프의 가방에서 뼈 무더기가 솟아올라 합쳐졌다. 뼈 방패였다.
퍽! 퍽!
방패에 화살이 박혔다. 마을이 형성되어 배낭에서 생필품을 비운 이후, 언제든 무기를 제조할 수 있게 뼈를 가득 채워둔 것이었다.
“실수라고 했지. 나를 지켜봤다면서 제대로 보진 못한 모양이야.”
챙! 챙!
지수는 칼을 휘둘러 날아드는 화살을 쳐냈고, 한호는 웨어 베어 스켈레톤의 몸 뒤로 슬라이딩했다.
그리고 성우는 왼 손으로 방패를 들어 올린 채, 오른손의 리피팅 크로스보우를 무자비하게 난사했다.
픽! 픽! 픽! 픽! 픽! 픽!
“윽! 내 뒤로 피해!”
아저씨가 몸을 돌리며 등으로 화살을 막아냈다. 그리고 다른 웨어 울프 두 마리를 자신의 몸 안 쪽으로 끌어안았다. 눈물 겨운 희생의 장면이었지만, 연민의 감정을 느낄 때가 아니었다.
크아아!
사방에서 수인들이 몰려오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놈들이 몰려와요!”
웨어 울프 4마리가 옥상에 뛰어내렸고, 뒤쪽 골목에서 웨어 베어 2마리가 달려들었다. 이어서 처음 보는 수인 3마리가 정면의 담을 넘어 왔다.
찌익! 찌익!
그건 쥐 같은 생김새의 ‘웨어 랫’이었는데, 1미터 70센티미터 정도로 작았다.
“해골을 전부 박살내버려라!”
수인이 무려 12마리다. 엄청난 전력인 건 분명했다. 퀘스트가 부여되는 걸 볼 때, 저들에게도 시너지 효과가 발휘될 가능성이 높았으니 말이다.
덜그럭! 덜그럭!
하지만 이쪽은 경험치나 지휘 체계는 물론이거니와 무장 상태가 차원이 달랐다.
‘투창이다.’
성우는 지금까지 숱한 전투를 치렀다. 대규모 전투는 물론이거니와 압도적인 보스 몬스터를 상대로 유리한 전투 양상을 만들어왔다.
제 아무리 초인적인 육체를 가진 수인들이라고 할지라도 인간의 감정을 지닌 이상, 기계처럼 움직이는 스켈레톤 병력을 당해낼 수 없다.
우드드드!
스켈레톤들이 둘러 맨 배낭에서 뼈 무더기가 솟아나왔다. 그리고 장창이 형성되었다. 스켈레톤들은 그 창을 집어 들고 달려드는 수인들을 향해 몸을 돌렸다.
쉬익! 쉬익!
그리고 엄청난 힘으로 창대를 집어던졌다. 화살 정도의 상처는 어떻게든 견뎌낼지 몰라도, 괴력으로 집어던지는 투창이라면 달랐다.
푹!
“······컥!”
직선으로 달려들던 웨어 베어의 목덜미에 창에 박혔다. 놈의 몸이 반대쪽으로 기우뚱하더니, 결국 바닥으로 엎어지고 말았다.
푹! 푹! 푹!
다른 수인들도 마찬가지였다. 기습이랍시고 막무가내로 달려들었다가 투창을 맞고 나동그라지고 말았다.
물론 원체 튼튼한 종족이니 즉사는 면했지만, 전투 불능이 될 정도로 치명적인 한 방이었다. 그리고 그 위로 스켈레톤들이 달려들었다.
촤악!
“으아아아!”
사방에서 혈투가 벌어졌다. 하지만 처절한 비명은 모두 수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으어, 어어······.”
그리고 점점 잦아들어 갔다.
“내가 실수라고 했지.”
“······쿨럭!”
성우는 고슴도치가 된 웨어 울프에게 다가갔다. 놈의 목덜미부터 등짝 전체에 화살이 박혀 있었다.
놈이 다른 웨어 울프 두 마리를 보호하겠다고 감싸 안았지만, 장전 없이 연사하는 리피팅 크로스보우를 막아낼 수 없었고, 그 두 마리의 몸에도 화살이 한 가득 박혀있었다.
“실수는······ 카, 카드를 뽑지 않았을 때부터 계속해왔다. 시발. 그게 가장 큰······ 실수였어.”
“나를 원망하지 마.”
“원망 안 해. 억울하긴 하지······. 다 살아남으려고 한 선택인데 난 전부 실패였어. 큭, 행운을 비, 빌지······.”
성우는 주인 잃은 검을 뽑아들었다. 그리고 아직 숨이 붙어 있는 웨어 울프들을 베어 넘겼다.
- 자격 증명까지 남은 시간 : 4,836일
한 마리당 고작 5일이 감소했다. 강력한 몬스터로 쳐주지 않는 모양이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상황은 종료되어 있었다. 사실 처음부터 상대를 잘못 보고 무의미한 저항을 한 셈이었다.
“으, 그래도 뭔가 찝찝하네요. 마지막에 지들끼리 감싸 안아서 보호해주는데, 멈칫 했어요.”
“어차피 다 똑같아. 어제 죽인 폭주족들이라고 가족이 없는 건 아니었을 거야.”
“그렇죠. 뭔가, 죄다 별로네요.”
성우와 한호가 그렇게 주고받고 있을 때, 지수는 여전히 칼을 지켜든 채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성우 씨, 아직 안 끝났어요.”
상대적으로 작은 사이즈의 웨어 울프 한 마리가, 골목 어귀에 서서 멍한 얼굴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놈은 성우와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다음 순간, 골목 안으로 도망쳐버렸다.
“놓치면 귀찮아진다.”
수인 집단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한 마리라도 살려 보냈다가는 어떤 문제가 생길지 모르는 일이었다. 곧 영등포로 가야하는 상황에서 불씨를 남겨 둘 수 없었다.
덜그럭! 덜그럭!
성우 일행이 추격을 시작했다. 놈은 추격을 따돌리려는 건지 골목 사이를 이리저리 오고 가면서 달렸다. 하지만 곧 대로변이 펼쳐졌다.
“선배, 이쪽으로 가면 수원역이에요!”
그리고 한호의 말대로, 골목으로 빠져나가 대로변으로 진입하자 정면으로 수원역 건물이 나타났다.
웨어 울프는 수원역 방향으로 전력질주를 시작했다. 그리고 더 이상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도로를 가로질러, 수원역의 정면을 향해 달려갔다.
“어디까지 가려는 거야!”
놈은 5번 출구 지하 계단으로 내려가려고 하더니 이내 급히 몸을 돌렸다. 그때였다.
“악!”
허연 무언가가 놈의 몸에 엉겨 붙었다. 놈의 다리가 급격하게 느려졌다.
“으으! 으아아!”
결국 바닥에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
“잠깐, 뭔가 있다.”
성우가 걸음을 멈추며 자동차 뒤로 몸을 숨겼다. 일행 역시 사방으로 흩어지며 대로에 버려진 차 뒤로 숨었다.
“살려줘! 으아아!”
웨어 울프는 손으로 다리를 박박 긁어대며 소리를 질렀다. 끈적이는 하얀 물질이 놈의 다리에 엉겨 붙어 있었다.
“크크크! 도그 소시지 먹자! 이따다끼마스!”
“돈 터치! 이건 여왕께 선물!”
5번 출구 계단에서 한 무리의 코볼트들이 나타났다. 그리고 녀석들은 긴 작대기 같은 걸 웨어 울프의 허벅지에 찔렀다.
“악! 으, 으으······.”
그러자 녀석의 몸이 빳빳하게 굳기 시작했다. 죽인 건 아닌 것 같았고, 몸을 마비시키는 독침이 아닐까 했다.
코볼트들은 역시나 말도 안 되는 잡종 언어를 구사하며 웨어 울프를 질질 끌고 사라졌다.
“뭐야, 고작 코볼트였잖아요? 어라, 근데 코볼트 주제에 웨어 울프를 공격해?”
코볼트는 분명 약한 종족이었다. 하지만 온갖 간악한 술수를 동원해서 자신보다 강한 종족을 사냥했다. 이전에 대형마트에서 만난 코볼트들 역시 그러했다.
성우는 고개를 들어 올려 수원역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중심가에 위치한 역이 으레 그렇듯 백화점 건물이 여러 개 연결되어 있는 ‘민자역사’였다.
“어, 저건?”
그런데 건물 상단의 ‘수원역’ 문구 아래에 익숙한 아이콘이 하나 떠 있었다. 녹색의 코인 아이콘, 그건 상점 표시였다.
“상점이네요? 근데 저건······.”
그런데 바로 그 위에 또 다른 아이콘이 떠 있었다. 붉은 색의 동굴 모양 아이콘이었다.
“여기······ 던전이네요. 한 건물에 던전도 같이 있네요.”
수원역 전체가 하나의 던전이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그토록 찾아 헤매던 상점이 있다. 하필이면 말이다.
“가보자.”
일행은 가장 근처에 있는 출입구인 5번 출구 앞에 섰다.
“아······ 이건 좀?”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은 평소와 다르게 느껴졌다. 아무런 실내 등이 켜져 있지 않으니 어둠이 층층이 짙어져갔고, 그 아래, 지하 통로는 한없이 깊게만 느껴졌다. 한호는 소름이 돋았는지 팔을 문질러댔다.
“선배? 언제나 드렸던 충언이지만, 과연 내려가야 될까요? 저는 일단 반대 한 표요.”
성우는 대답 대신 계단 아래로 내려갔다.
“······예예, 역시 그렇죠?”
경험치와 상점이 넝쿨째 굴러 들어왔는데, 발길을 돌릴 이유가 없었다.
- 대규모 던전 ‘독거미 여왕의 침실’에 입장하셨습니다.
* 주의! 플레이어 124명의 목숨을 앗아간 ‘식인 던전’입니다. 클리어 시 주어지는 보상이 증가합니다. (+50%)
“아 씨, 거미? 아니 근데 무슨 수원역 전체가 침실이야? 아니 그럼······ 그 거미는 얼마나 큰 거지?”
한호의 불길한 상상과 함께 일행은 깊고 넓은 던전 안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