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네크로맨서-45화 (45/244)

# 45

16) 황금 던전과 계약서 – 1

성우가 생각하길, 고블린 때려잡는 데에는 책상만한 게 없었다. 묵직한 책상을 들어 올려 내려칠 때, 두더지 잡기 이상의 손맛이 느껴졌다.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오른이가 일본도를 거둬들였다. 전봇대 아래에 황금 고블린의 시체들이 늘어져 있었다.

‘일반 고블린보단 강하지만, 전혀 어렵지 않은 상대다.’

고블린 십장 정도라고 보면 될까? 뭐가 됐든 이제는 성우의 상대가 아닌 건 확실했다. 그리고 황금 고블린을 사냥해서 얻을 수 있는 건 골드가 아니었다.

- 황금 고블린을 사냥해 1포인트가 축적되었습니다. (누적 : 5)

용도 불명의 ‘포인트’가 들어왔다. 성우가 짐작하길, 아마 이 던전 안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했다. 그리고 이내 안내 메시지가 떠올랐다.

- 던전 클리어 시 누적된 포인트에 따라서 아이템을 선택하실 수 있습니다.

“풍선 터뜨리기 게임 같은 거군.”

한 게임 내에서 기록한 점수에 따라서 상품이 달라지는 방식이었다. 그렇다면 이득을 보는 방법은 간단했다.

“많이 잡을수록 좋겠어.”

끼이이!

곧 반가운 소리가 들려왔다. 골목길의 낡은 녹색 대문을 열고 고블린들이 쏟아져 나왔다.

픽! 픽! 픽! 픽! 픽!

성우는 곧장 리피팅 크로스보우를 난사했다. 골목길이 매우 좁았기에 황금 고블린들은 피할 겨를도 없이 속수무책으로 무너져 내렸다.

끼에에! 끼에!

하지만 건너편의 파란색 대문까지 열리더니 양쪽에서 엄청난 수의 고블린들이 몰려나왔다. 몇 마리는 벽돌담을 기어올라, 골목길을 향해 뛰어내렸다.

이 던전, 물량으로 몰아붙이는 게 테마인 모양이다.

“그런 거라면, 손님 잘못 받았다. 폭발.”

쾅! 쾅! 쾅! 쾅!

금색 파편이 이리저리로 튀어 오르며 대문 밖으로 기어오르던 고블린들의 몸이 통째로 날아가 버렸다. 그리고 양쪽 벽돌담이 우르르 무너지는 건 당연지사였다.

- 황금 고블린을 사냥해 1포인트가 축적되었습니다. (누적 : 32)

- 황금 고블린을 사냥해 1포인트가 축적되었습니다. (누적 : 33)

- 황금 고블린을 사냥해 1포인트가 축적되었습니다. (누적 : 34)

그 잠깐 사이에 34마리를 쓸어버렸다.

끼에에!

하지만 끝이 아니었다. 무너진 담벼락 안쪽, 단독주택의 대문이 열리며 황금색 고블린이 나타났다. 하물며 오래된 방충망을 잡아 뜯고는 마당으로 몸을 내던지기까지 했다.

‘아무래도 집 안이 놈들의 아지트 같은 곳이다.’

어쩌면 무한 리스폰 되고 있는지도 몰랐다.

끼에에! 끼에!

성우는 웨어 베어 스켈레톤을 두 마리를 앞으로 전진시켰다. 그 두 마리만으로도 골목길은 꽉 차버렸다.

그런데 황금 고블린들은 압도적인 덩치의 웨어 베어 스켈레톤을 보고도 겁먹지 않고, 광신도처럼 밀고 들어왔다. 이 녀석들은 현실의 고블린과 뭔가 느낌이 달랐다. 생기가 하나 없는 게, 진짜 게임 속 몬스터 같다고 할까?

퍽! 퍽! 퍽! 콱!

웨어 베어 스켈레톤들은 말 그대로, 황금 고블린을 짓밟아 죽였다. 고블린의 단검이 스켈레톤의 무릎을 강타했지만, 아무런 타격도 없었다.

“안으로 집어 던져.”

그리고 성우의 명령에 따라, 고블린 사체를 집어서 건물 안으로 던져버렸다.

쨍그랑!

고블린 사체가 창문을 뚫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한 마리만이 아니었다. 한 집 당, 십 여 구의 사체를 내리 집어 던져 골인 시켰다.

건물 안이 고블린의 아지트라고? 그렇다고 해서 굳이 직접 들어가 줄 필요는 없다.

“······폭발.”

쾅! 쾅! 콰―앙! 쿠구구······.

통째로 없어버리면 그만이니 말이다. 건물 안에서 고블린의 비명이 연달아 울렸다.

- 황금 고블린을 사냥해 1포인트가 축적되었습니다. (누적 : 82)

- 황금 고블린을 사냥해 1포인트가 축적되었습니다. (누적 : 83)

성우는 웨어 타이거 스켈레톤의 팔을 들어올려, 하늘에서 떨어지는 파편을 막아냈다.

퍽― 퍼―벅!

- 1단계 클리어에 성공하셨습니다! (랭크 : A+)

- 100포인트가 축적되었습니다. (누적 : 184)

그러자 골목길 바닥에 화살표 아이콘이 떠올랐다. 다음 스테이지로 전진하라는 표시로 보였다. 성우는 그 뜻대로 골목길 안쪽을 향해 나아갔다.

골목길은 점점 넓어지더니 이내 주택과 동네 슈퍼 사이에 공터 하나가 나타났다. 방치된 지 오래된 듯 잡초가 무성했고, 한쪽에는 작은 고추밭이 조성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곳에······.

그으?

웃통을 벗은 황금 오크 수십 마리가 있었다. 놈들은 공터 이곳저곳에 모여서 철봉을 하거나 역기를 들어 올리고 있었고, 일부는 씨름을 하는 중이었다.

또한 공터의 구석에는 용달 트럭 한 대가 화물칸을 열어젖힌 채 테이블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 위에는 버너와 소주병, 음료수 캔 등이 잔뜩 나동그라져 있었다.

심지어 불에 그슬린 개와 고양이 햄스터 따위가 마치 꼬치처럼 쇠창살에 꽂혀 있었다. 목줄이 채워진 걸 보아하니······ 어디서 구한 건지는 안 봐도 뻔했다.

그으! 그으! 그으으······.

체육 활동에 열중 중인 황금 오크들은 땀에 흠뻑 젖은 채 온몸이 번뜩거렸는데, 피부가 황금색인지라 찬란하게 빛이 나서 아름답······.

‘아, 씨 이건 또 무슨 테마야.’

역겨웠다.

그아아!

이내 오크 한 마리가 성우를 발견하여 소리쳤고, 모든 오크들이 운동을 멈추더니 우르르 몰려오기 시작했다. 근육질의 거한들이 단체로 다가오는 모습은 상당히 위협적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거한들이 공터 한 가운데를 비우면서 주변부로 넓게 퍼지는 게 아닌가?

“······응?”

- 황금 오크들이 ‘영광의 결투’를 제안합니다.

1) 결투는 일대일로 진행됩니다.

2) 용병, 권속은 참가할 수 없습니다.

3) 무기는 1종만 사용 가능합니다.

“······갑자기? 난 승낙한 적 없는데?”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닌 모양이었다.

그아아! 그아아아!

오크들은 마치 격투 게임 배경의 군중처럼 어딘가 과하게 흥분하며 인위적인 환호를 해대기 시작했다.

그러자 오크들의 뒤쪽, 거대한 폐타이어 위에 앉아 있던 오크 한 마리가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그르르······

다른 오크보다 덩치가 월등히 큰 놈이었다. 족히 2미터 60센티미터는 될 법 했는데, 등 근육이 엄청나게 발달해서 목이 없어 보일 정도였다.

- 챔피언 ‘빌리 더 골드 핸드’가 출현했습니다.

빌리, 그 놈이 성우를 향해 다가왔다.

“저거랑 싸우라고? 저 새끼 만두 귀잖아······.”

목이 없는데다가 만두 귀라니, 흔히 시비 붙으면 안 된다고 말하는 유형을 두루 갖추고 있는 놈이었다.

성우가 한국 서버 랭킹 3위라고 하지만, 직접 전투에 특화된 직업은 아니었다. 능력치도 낮을뿐더러 대부분의 스킬도 권속을 부리는데 집중되어 있었다.

- 결투에 사용할 무기를 결정해주세요. (15초 남았습니다.)

“무기라······.”

성우가 가진 무기 중 쓸만한 건 두 개다. 용기사의 검인 ‘주인 잃은 검’과 ‘드워프제 리피팅 크로스보우’였다.

성우가 고개를 슬쩍 돌려 빌리, 그 놈이 어떤 무기를 드는지 확인했다. 놈은 아령 거치대에서 도끼 한 자루와 원형 방패를 집어 들었다.

‘하필 방패라니.’

난감하게 됐다. 저러면 리피팅 크로스보우로 벌집을 만들어버리기도 어려웠다.

- 결투에 사용할 무기를 결정해주세요. (8초 남았습니다.)

성우는 하는 수 없이 무기 하나를 결정했다.

- 영광의 결투가 시작됩니다. 한쪽이 죽을 때까지 싸워주세요!

그아아아!

시작과 동시에, 빌리가 엄청난 포효를 하며 달려들었다. 주변을 가득 매운 황금 오크들이 흥분하며 괴성을 내질렀다. 골이 흔들릴 정도였다.

빌리는 미소를 머금고 성우를 향해 직선으로 뛰어 들어왔다. 놈은 외손으로 방패를 치켜들고, 오른손을 머리 위로 번쩍 들어올렸다.

반면 성우는 오른 손아귀에 조그마한 공 같은 걸 하나를 들고 있을 뿐이었다. 다음 순간, 달려드는 빌리의 발 아래로 그 공을 내던졌다.

“이것도 무기지?”

콰―앙!

성우가 선택한 무기는 연대장의 캐비닛에서 얻은 ‘심연의 농축액’이었다. 작은 공 안에서 검은 연기가 터져 나오더니, 순식간에 빌리의 몸뚱이를 집어삼켰다.

그억! 그어어!

직후, 빌리는 검은 연기에서 뛰쳐나오며 비명을 내질렀다. 그는 도끼와 방패를 모두 내던지고 얼굴을 박박 문지르며 헛구역질을 해댔다.

성우는 그런 빌리를 향해 느긋하게 걸어갔다. 그리고 놈이 놓친 원형 방패를 집어 들었다.

“무기 선택이 중요하네.”

성우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바닥에 웅크린 채 부르르 떠는 거구의 머리를 향해, 원형 방패를 내리치기 시작했다.

퍽! 퍽! 퍽! 퍽!

- 당신이 승리했습니다!

빌리의 몸이 축 늘어졌다.

- 챔피언 빌리를 꺾어 50포인트가 축적되었습니다. (누적 : 234)

그―어?

열기기 식기도 전에 경기가 마무리 됐다.

······그어어?

황금 오크들은 공중으로 손을 번쩍 들어 올린 채 입을 쩍 벌리고 멈춰 섰다. 놈들은 전혀 예상 못한, 그리고 이해할 수 없는 광경이었다.

그아아!

이내 무언가 잘못 되었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여기저기서 분노에 찬 괴성이 울리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격투기 경기 이후 세컨드의 코치진이 난입 하듯, 분노한 황금 오크들이 성우를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뭐야, 결국 이럴 거였지?”

덜그럭! 덜그럭!

성우의 세컨드 코치진 역시 움직였다. 그렇게 공터의 경기장에서 패싸움이 시작되었다.

성우는 느긋하게 뒤로 빠져서 리피팅 크로스보우를 들어올려, 맨손의 오크들을 향해 난사했다.

픽! 픽! 픽! 픽!

- 황금 오크를 사냥하여 2포인트가 축적되었습니다. (누적 : 252)

- 황금 오크를 사냥하여 2포인트가 축적되었습니다. (누적 : 254)

잠시 후, 경기장은 고요해졌다.

- 2단계 클리어에 성공하셨습니다! (랭크 : A+)

- 200포인트가 축적되었습니다. (누적 : 488)

또 다시 바닥에 화살표 아이콘이 떠올랐다. 이번에는 조금 더 넓은, 자동차 한 대 정도는 지나갈 수 있을 법한 길이 나타났다.

양측으로 2층짜리 단독주택들이 늘어서 있었는데, 그 길을 따라가다 보니 화살표가 두 군데로 나뉘어졌다.

오른쪽으로 붉은색 화살표가, 왼쪽으로 파란색 화살표가 나타난 것이다. 말 그대로 갈림길이었다.

“한 군데만 갈 수 있는 건가?”

성우는 고개를 들어 화살표의 끝자락을 바라보았다. 붉은색 화살표는 작은 초등학교로 이어졌고, 파란색 화살표는 폐가로 보이는 건물로 이어졌다.

- R : 매우 어려움

- L : 매우 쉬움

그런데 그 난이도 차이가 너무나 극단적이었다. 성우는 잠깐 고민하다가 오른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난이도는 곧 보상이다.’

히든 스테이지라는 다시없을 수도 있는 기회를 쉽게 보낼 순 없었다.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도전할 가치가 있었다. 하루 빨리 15레벨을 달성해야 되는 건 물론이거니와 이제 곧 보스 레이드를 앞두고 있지 않던가?

당장 몸을 사린다고 해서 살아남을 가능성이 늘어나는 건 아니다. 오히려 앞으로 다가올 죽음을 피하지 못할 가능성만 높아진다.

성우는 매우 어려움의 난이도, 2층짜리 초등학교 건물로 들어섰다.

학교의 연혁이 걸린 작은 로비에는 아이들이 황급하게 대피한 흔적이 역력했다. 곳곳에 슬리퍼와 가방이 널브러져 있었다.

꾸륵― 꾸륵―

그리고 계단 한쪽, 황금 오크의 시체가 눈에 띄었다. 그리고 그 시체 위에······ 익숙한 무언가가 올라타 있었다.

“······슬라임?”

황금색 액체 덩어리, 그건 황금 슬라임이었다. 성우는 저도 모르게 실소를 머금었다.

“이거, 밸런스 잘못 잡으신 것 같은데?”

성우에게는, 아니, 스켈레톤에게는 너무나 손쉬운 사냥감이다. 슬라임의 산성은 뼈를 녹이지 못하니 말이다.

아무래도 성우는, 히든 스테이지에 방문한 최악의 손님으로 기록될 것 같았다.

성우는 히든 스테이지의 끝을 향해 직진했다.

***

한편, 성우가 황금색 포탈 안으로 사라진 뒤, 정훈은 헬기에 걸터앉아 그쪽 방향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난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아직 이야기를 마무리 짓지 못한 상태에서 상대가 사라져버렸으니 말이다. 한편으로는 그 ‘히든 스테이지’라는 장소가 마음에 걸렸다.

‘어떤 곳이지? 엄청난 보상이 따르는 곳인가?’

그 어디에서도, 그 누구에게도 히든 스테이지라는 정보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하물며 커뮤니티 상에도 올라오지 않은 정보였다.

물론 게임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모든 정보가 풀린 건 아니었다.

“커맨더.”

그때, 회색 갑옷을 입은 크루세이더 한 명이 다가왔다. 실테 안경을 쓴 30대 남자였다.

“예, 부관님.”

그는 정훈의 부관이자 크루세이더 팀의 2인자인 성민흠이었다. 초창기부터 정훈과 함께해온 동료였으며, 애널리스트 출신의 명석함을 바탕으로 길드의 중추 역할을 맡아오고 있었다.

“부상당한 대원들은 모두 회복되었습니다. 일반 물약으로는 치료가 안 돼서, 해독제를 사용했습니다.”

“역시 그렇군요. 저주 계열로 보이긴 했습니다. 어떤 아이템으로 보입니까?”

정훈의 물음에 민흠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건 부정의 뜻이었다.

상점에서 얻을 수 있는 모든 아이템을 기록하고 분류해오는 작업을 하고 있던 민흠이었지만, 검은 연기를 내뿜는 그 폭탄은 지금까지 본 적 없는 종류였다.

“솔직히 모르겠습니다. 심연의 숨결이라? 흑마법사 계열 같은데······ 그런 강력한 저주를 퍼뜨리는 아이템은 A급 상점의 기타 계열에서는 나온 적 없습니다. 그 이상의 상점이거나 다른 루트를 통해서 구할 수 있는 아이템이 아닐까 합니다.”

한강이남 지역에서 출발해, 한국 서버 전체에서 가장 큰 집단이 되었다.

그만큼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었지만, 경기 남부라는 곳은 미지나 다름없었다. 그들은 물리적인 한계로 인해, 방문판매상 같은 이들과 아직 접촉할 수 없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 무시무시한 폭탄이 성우 씨에게는 통하지 않았습니다. 왜일까요?”

정훈은 그 장면이 아직도 잊히지 않았다. 자신의 정예 크루세이더 팀이 순간적으로 무력화된 순간, 성우는 오히려 앞으로 나아갔다.

“통하지 않는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보기에 오히려 버프가 들어갔습니다. 동공이 커지고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머금었죠. 그건 일종의 각성 반응입니다. 그리고 제가 확인한 결과, 능력치 상승까지 있었습니다.”

민흠의 직업은 3성짜리 ‘스카우트(Scout)’였으며 전용 패시브 스킬을 통해서 상대의 레벨과 직업을 알 수 있었다.

또한 마나를 크게 소모해서 상세 능력치까지 볼 수 있었는데, 성우가 검은 연기 속에서 나오는 순간, 그의 능력치가 소폭 상승했던 것이다.

“커맨더, 어째서 그런 놈에게 보스 레이드의 보상을 나누어 주기로 결정하신 겁니까?”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게 아니라면 레이드에 참가하지 않겠다고 주장하는데, 성우 씨를 잃는 건 너무나 큰 손해일 겁니다. 우리 모두가 목격하지 않았습니까?”

민흠은 별안간 몰려오는 피로를 느꼈고, 눈을 비비적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커맨더, 우리의 궁극적인 적은 몬스터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아시지 않습니까? 결국은 사람과 싸우게 될 수도 있다는 걸요.”

정훈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당장은 아닙니다. 당장은 사람이 필요해요. 네크로맨서 같은 사람이요.”

“흠······ 그렇다면 계약과 관련된 내용은 저에게 맡겨주시죠. 계약은 아 다르고 어 달라지는 법입니다. 제가 놈이 한 마디도 못하게, 교묘하게 우리에게 이득이 되는 방향으로 제안해보겠습니다. 레이드 보상을 차지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아시지 않습니까?”

정훈은 고심 끝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세요. 대신, 성우 씨가 우리를 등지게 해서는 안 됩니다.”

“물론입니다. 제 간을 빼 먹히는 것도 모를 겁니다.”

정훈은 고개를 끄덕이며, 성우가 사라진 방향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네크로맨서라······.”

***

그 시각, 성우는 히든 스테이지의 최종 단계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도 갈림길이 나타났다. 2층의 복도, 계단을 올라온 직후 왼쪽과 오른쪽으로 화살표가 갈라져나간 것이다.

‘오른쪽에는 상자가······.’

오른쪽 복도 끝에는 작은 상자가 하나 놓여 있었다.

‘왼쪽에도······ 상자인데.’

그리고 왼쪽 복도 끝에도 상자가 있었다. 차이점이라면 그 상자의 폭이 3미터에 높이가 2미터는 되어 보일 정도로 큼직하다는 것이었다.

이건 아무리 봐도 ‘왼쪽’이 더 위험한 선택인 동시에 더 큰 보상을 줄 것 같았다.

덜그럭― 덜그럭―

성우는 스켈레톤을 앞세워, 자신을 둘러싸게 하고 큼직한 상자를 향해 나아갔다. 판타지에서는 으레, 저런 보물 상자 근처에 함정이 설치되어 있는 법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상자의 지근거리로 다가갈 때까지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불안하다. 이렇게 아무 일도 안 벌어질 리가 없다.’

성우는 상자와 5미터 쯤 떨어진 거리에 멈춰 섰다. 그리고 리피팅 크로스보우를 들어올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상자의 가장자리를 쏘아보았다.

픽! 픽! 퍽! 퍽!

그 순간, 상자의 뚜껑이 번쩍 열리더니 마치 악어와 같은 흉악한 이빨이 들어났다.

콱! 콱!

보물은 없었다. 그건 상자로 위장해서 사람을 잡아먹는 식인귀, 미믹(Mimic)이었다.

콱! 콱! 콱!

놈은 큼직한 이빨을 연달아 부딪쳐 대며 위협적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다가갈 수가 없다.’

엄청난 아가리 크기에다가 치악력 역시 상당해보였다. 물리면 스켈레톤이고 뭐고 한 방에 으스러질 것 같았다. 하물며 몸 전체가 나무 상자이기에 화살이나 투창도 먹히지 않을 게 분명했다.

“그렇다면······.”

- 해당 지역에 ‘죽음의 응답’이 시작됩니다.

성우는 좀비 10마리를 소환했다. 그리고 미믹을 향해 정면 돌격을 시켰다.

우어어―

물론 유약한 좀비 몇 마리 따위가 미믹을 막아낼 수 있을 리 없었다. 이내 거대한 아가리가 좀비 두 마리를 단숨에 집어 삼켰다.

콱! 콱! 콱!

살벌한 소리와 함께 좀비의 몸뚱이가 산산해 분해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그 모든 건 성우가 의도한 바였다. 성우는 뒤로 한 걸음 물러서며, 웨어 베어 스켈레톤 뒤로 몸을 숨겼다.

“그렇게 아무 거나 먹으면······.”

콰―앙! 쾅! 쾅!

미믹의 몸속에서 폭발이 연달아 일어나며 사방으로 판자 조각이 튀어나갔다. 좀비의 시체를 기반으로 한 시체 폭발 공격이었다.

- 초대형 미믹을 사냥하여 200포인트가 축적되었습니다. (누적 : 1,084)

“······그렇게 된다.”

- 4단계 클리어에 성공하셨습니다! (랭크 : A+)

- 350포인트가 축적되었습니다. (누적 : 1,434)

최종 단계까지 마무리 되었다. 그러자 복도 끝의 교실에 선물 모양의 황금색 아이콘이 떠올랐다. 딱 봐도 지금까지 모은 포인트를 교환할 순간이 온 것이다.

- 보상의 방에 입장하셨습니다.

덜컹― 덜컹― 덜컹―

교실에 들어가자, 맨 뒤의 사물함 6개가 저절로 열렸다. 그리고 그 안에는 각기 다른 아이템이 들어있었다.

하지만 모든 걸 가져갈 수는 없는 모양이었다. 사물함 입구에 보라색 쇠사슬 아이콘이 띄어져 있는 것이었다. 이미 여러번 목격한 바 있는 ‘봉인’ 표시였다.

성우는 사물함으로 다가가서 아이템들을 하나씩 살펴보았다.

- C급 장비 강화의 돌 (200포인트)

- C급 근력 강화 앰플 (400포인트)

- C급 체력 강화 앰플 (400포인트)

- C급 경험치 카드 (300포인트)

- 만병통치약 (500포인트)

- 맹세의 양피지 (500포인트)

대부분의 아이템이 설명 없이도 어떤 기능인지 알 수 있는 것들이었다. 특출하게 보이는 건 딱히 없었다.

‘하지만 일반적인 상점에서 얻을 수 없는 물건이다. 능력치와 경험치를 올려주는 아이템이라니?’

양산형 게임이었다면 캐시로 구매할 수 있는 아이템이엇을 것이다.

‘근데 이건 뭐지?’

다만, 마지막 아이템은 ‘맹세의 양피지’는 이름만으로는 그 용도가 잡히지 않았다. 다행이 가까이 다가서니 그 정보가 떠올랐다.

[아이템 정보]

- 이름 : 맹세의 양피지

- 등급 : 특수

- 분류 : 소비

- 효과 : 당신은 다른 플레이어와 ‘맹약’을 맺을 수 있습니다. 서로 한 가지의 조건을 제시할 수 있으며, 해당 조건을 이행하지 않을 시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이거, 쓸모가 있을 것 같은데.”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