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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네크로맨서-44화 (44/244)

# 44

15) 역사적인 만남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 2

‘뭔가 다르다.’

정훈은 성우를 처음 보는 순간 느꼈다. 자신의 패시브 스킬인 ‘전쟁 영웅의 아우라’를 보고도 아무런 표정 변화도 없었으니 말이다.

[스킬 정보]

- 이름 : 전쟁 영웅의 아우라

- 등급 : 숙련

- 분류 : 패시브

- 소모 : 없음

‘완전 무장’ 시, 아우라를 몸에 둘러 주변인을 현혹하여 호감과 존경심을 유발합니다. 상대의 레벨이 낮을수록 스킬의 영향력이 커집니다. (적정 대상 : 10레벨 미만)

또한 상대의 심리가 ‘불안 상태’일수록 레벨과 무관하게 스킬의 영향을 받을 수 있습니다.

‘단순히 레벨이 높아서 영향을 안 받는 것도 있지만, 꽤나 신중한 타입이 분명하다.’

성우의 레벨이 10 이상이니 해당 스킬의 영향을 덜 받는 건 확실했다. 하지만 조금의 위축도 없는 걸 보아하니 그는 심리적으로 안정화된 상태였다.

심리적 안정이란 게 언뜻 들어서는 전혀 특별할 것 없이 느껴지지만, 이런 지옥 같은 세상에서, 그것도 헬리콥터를 타고 나타난 자신들을 보며 침착할 수 있는 건 상당한 능력이었다.

‘그 침착함은 자신감에서 나오는 거였어······.’

검은 연기 속에서 나타난 스켈레톤 군단을 바라보며, 정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반드시 우리 길드로 데려 와야 한다.’

그리고 성우는 정훈의 기대에 여실히 보답했다.

덜그럭! 덜그럭!

거대한 크기의 수인 스켈레톤들이 사방으로 흩어지며, 마치 훈련 받은 사냥개처럼, 겁에 질린 사냥감들을 도륙하기 시작했다.

“으아아! 저, 저리 가!”

“시, 시동 걸어! 빨리! 아악!”

크루세이더 팀에 의해 압도당하며 이미 사기가 꺾인 상태였다. 그런데 그 직후, 악마 같은 녀석들이 공격해오기 시작했으니 제대로 맞설 수 있을 리 만무했다.

하물며 상대적으로 정직하게 돌격해오는 크루세이더와 다르게, 수인 스켈레톤들은 변칙적이고 갑작스럽게, 말 그대로 짐승처럼 달려들었다.

촤악! 콰득! 콰득!

여기저기서 발톱에 찢기고 이빨에 잘려나가는 끔찍한 광경이 펼쳐졌다. 선혈이 낭자하고 생살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픽! 픽! 픽! 픽! 픽!

성우는 그 뒤에 서서 리피팅 크로스보우를 난사했다. 정훈이 보여준 대검 크로스보우의 강력한 한 방에 비할 바는 못 됐지만, 압도적인 연사 속도로 일대를 휘저어놓을 수 있었다. 후방 지원으로써는 그야말로 최고였다.

“빠, 빨리 타!”

우웅! 우우웅!

폭주족들은 결국 도주를 택했다. 두 명이 탄 오토바이 한 대가 대로 쪽으로 빠져가기 시작한 것이다. 성우의 크로스보우가 그 꽁무니를 쫒았다.

픽! 픽!

“컥!”

뒤에 탄 남자의 몸이 축 늘어졌다. 하지만 오토바이는 사거리 밖으로 순식간에 멀어졌다. 성우는 크로스보우를 내렸다.

“······폭발.”

쾅!

성우의 한 마디와 함께 오토바이가 통째로 박살나며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뒤에 탄 시체에 시체 폭발을 써버린 것이다.

“사람 시체에 쓰는 건 좀 찝찝했는데······.”

하지만 뭐든 처음이 어려운 법이다.

쾅! 쾅! 쾅!

사방에서 폭발이 일어났고 오토바이들이 균형을 잃고 쓰러졌다. 스켈레톤들이 양측 도로를 틀어막고 조여 들어갔기에 폭주족들은 도망칠 구석이 없었다.

그렇게, 폭주족 잔당이 거의 정리되었을 때였다.

“움직이지 마!”

어느새 폭주족 5명이 한 무리의 여자들을 인질로 잡고, 그녀들에게 활과 석궁을 겨누고 있었다. 야외에 마련해두었던 육류 해체 작업장의 조리사들이었다.

“어? 엄마!”

한호의 어머니, 은희도 그중에 있었다. 습격 당시 미처 건물 안으로 피하지 못한 채 구석에 숨어 있었는데 결국 들키고 만 모양이었다.

“또 인질극이야?”

성우는 지겹다는 듯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저 그런 악당의 그저 그런 발악······ 지금 상황은 분명 심각한 문제였다. 하필이면 옥상에 위치한 경비대의 시선이 닿지 않는 사각이었다.

하지만 인질 사이에 지수가 있다면 달랐다.

“성우 씨, 제가 인질 중 한 명에게 원거리 방어막을 걸 수 있습니다. 타이밍을 잘 맞춘다면 희생 없이 제압할 수 있을 겁니다.”

정훈은 심각한 표정으로 고심하고 있었다. 하지만 성우는 고개를 저었다.

“우리가 나서는 것보다 안전한 방법이 있습니다.”

“예?”

“잠시만 기다려보죠.”

지수는 이미 타이밍을 살피고 있었다. 그녀의 눈이 바쁘게 돌아갔다. 그리고 무언가 포착한 순간, 그녀가 왼발을 뒤로 빼며 발도했다.

부―웅!

한 남자의 손목이 잘려나갔다. 끝이 아니었다. 순간 푸른 섬광이 번쩍이더니, 직선거리, 3미터 전방에 있는 남자의 목덜미에 실금이 갔다.

“컥!”

이내 상처가 벌어지며 피가 뿜어져 나왔다. 얼마 전에 새롭게 배웠던 스킬 ‘참격(斬擊)’이었다. 마나를 소비해서 검기를 날리는 기술이었다.

지수는 곧장 몸을 틀어 반대쪽으로 칼을 휘둘렀다.

부―웅!

역시나 푸른 섬광이 쏘아졌다. 활 두 자루의 시위가 동시에 끊어지며 화살이 허공을 빙그르 돌았다.

놈들이 당황하여 허리춤의 단검을 빼들려는 찰나, 지수가 좌우로 빠르게 움직이며 칼을 두 번 휘둘렀다.

촤악! 촤악!

그리고 그녀의 칼날은 정확하게, 놈들의 목덜미를 긋고 지나갔다.

“컥, 커!”

마지막 한 놈이 지수를 향해 석궁을 들어올렸다.

“이이! 젠장!”

하지만 다음 순간, 놈은 앞으로 고꾸라지고 말았다. 한호가 놈의 뒤통수에 단검을 꽂아 넣은 것이다.

“······.”

그렇게 폭주족이 정리되었다.

찰칵! 찰칵!

그러자 한 동안 잠잠했던 셔터 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생각보다 훨씬······ 대단합니다.”

정훈은 성우 일행을 바라보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건 진심이었다. 그리고 그의 시선은 빨간 트레이닝복을 입은 여 무사, 지수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특히 저 분, 엄청나게 예리하고 빠르고 정확하군요. 성우 씨 동료 분들도 굉장······.”

하지만 성우는 그의 옆에 없었다.

“성우 씨?”

그는 어느새 폭주족 리더의 시체를 뒤지고 있었다.

“역시나 있군······.”

그리고 그의 안주머니에서 황금색 티켓을 찾았다. 그건 ‘히든 스테이지 입장권’이었다.

놈들은 ‘황금 사슴’을 쫒아서 수원까지 넘어왔다. 물론 목격과 동시에 퀘스트가 발동되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이미 한 장을 확보했기에 더욱 악착 같이 쫓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성우의 합리적인 의심은 적중했다. 리더가 이미 한 장을 보유하고 있는 상태였던 것이다.

[아이템 정보]

- 이름 : 히든 스테이지 입장권(2/2)

- 등급 : 이벤트

- 분류 : 기타

- 효과 : 2장이 있어야 효과가 나타납니다.

이렇게 두 장을 모두 모았다.

“그건 뭐죠?”

정훈이 다가와 관심을 보였다. 아무리 랭킹 2위에 한국 서버 최초의 길드 설립자지만, 모든 걸 알 수는 없었다.

방금 전에 크루세이더 팀을 몰아붙였던 정체불명의 폭탄이나, 성우가 들고 있는 번쩍거리는 티켓까지······ 새로운 지역에 오니 알 수 없는 것 천지였고, 그건 정훈을 불안하게 만드는 주요 원인이었다.

“저도 이게 뭔지는 아직······.”

- ‘히든 스테이지’가 자동 생성됩니다. 입장을 준비하세요! (소유자 1인 제한)

“······입장?”

예상하지 못한 현상이었다. 성우는 자신의 등 뒤에서 찬란한 빛이 번쩍이는 걸 느꼈다. 다음 순간, 정체불명의 포털이 성우의 몸을 삼켰다.

“어? 성우 씨?”

정훈은 성우가 사라지는 포탈 속으로 손을 뻗었다. 하지만 어떤 힘에 의해 뒤로 밀려나버렸다.

- 포탈 진입 권한이 없습니다.

정훈은 손을 거두며, 성우가 사라진 자리에 멍하니 섰다.

“······.”

정훈은 허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서서히 인상을 찌푸렸다. 그는 원인을 알 수 없는 불쾌함을 느끼고 있었다.

‘······권한? 그가 들고 있던 건 뭐지? 어디로 간 거지? 황금빛 포털이라?’

그게 왜 기분이 나쁜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런데 별안간 싸구려 불빛이 그의 얼굴을 물들였다.

찰칵!

촬영기사였다. 정훈이 촬영기사를 돌아보았다.

“찍지 마세요.”

“······예?”

촬영기사는 처음 보는 정훈의 무표정한 얼굴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찍으라고 할 때만 찍으셔야 됩니다.”

“아, 예!”

“그리고 항상 고생이 많으십니다. 기사님이 찍는 사진들이 무너진 세계의 사람들에게 희망이 될 겁니다. 사진으로 전하는 소식은 글과 또 다르니까요.”

그의 얼굴은 다시금 온화한 미소로 돌아와 있었다.

“예! 사명감을 가지고 찍겠습니다!”

그때, 정훈의 옆으로 지수가 다가왔다. 그녀 역시 성우가 사라진 곳을 바라보는 중이었다. 그녀에게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광경이었으니 말이다.

“저, 혹시 성우 씨가 어디로 간 건지 아십니까?”

정훈이 물었고 그녀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 것 같아요.”

“어디죠?”

그녀는 정훈을 올려다보며 잠시 뜸을 들였다. 이걸 말해줘도 되나 싶은 표정이었다.

“저에게는 말씀해주셔도 괜찮습니다.”

“글쎄, 괜찮은지 모르겠네요. 아직 성우 씨에게 어떤 대화가 오고 갔는지 듣지 못해서요.”

그녀의 태도에서는 성우에 대한 전적인 믿음과 동시에 정훈에 대한 경계심이 느껴졌다.

“아, 저와 성우 씨는 함께하기로 했습니다.”

“······.”

지수는 여전히 경계어린 표정이었다. 정훈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어나갔다.

“그렇기에 지금 상황, 제가 보기에는 무척 당황스럽습니다. 성우 씨 신변에 무슨 일이 생긴 게 아닌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판단할 수 있는 게 없으니까요. 성우 씨가 위기에 처했는지도 모르는 상태인데, 꼭두각시처럼 가만히 기다리기만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

정훈은 진심으로 걱정하듯 말했고, 그의 말을 들은 지수가 얼굴을 붉혔다.

‘꼭두각시······.’

그녀에게는 꼭두각시라는 말이 꽤나 맵게 느껴졌다. 학교에서부터, 생존을 위해서 성우에게 붙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성우의 판단만을 의존하고 있었다. 정훈의 말처럼, 마치 꼭두각시처럼 말이다.

“······좋아요.”

그녀는 고민 끝에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이유에서건 성우가 정훈과 협력하기로 한 건 사실이라고 생각됐다.

군인과 처음 대면했을 때도 일시적인 협력을 했었고, 그 결정은 결국 이익으로 작용했었다. 성우라면, 큰 힘을 가진 이에 대해 무조건적인 배척은 하지 않을 것이다.

“성우 씨가 간 곳이 ‘히든 스테이지’라는 것 외에는 잘 몰라요. 저도 이런 상황은 예상 못했고 그쪽 말대로······ 그저, 언제나 성우 씨를 믿고 있을 뿐이죠.”

“히든 스테이지라? 음, 어떤 곳인지 감이 오지 않네요. 그래도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성우 씨, 분명 믿을만한 분이죠.”

말을 끝마친 지수는 곧장 돌아섰다.

“저기, 이름을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윤지수예요.”

“아까 정말 굉장했습니다. 그 찰나의 순간에 침착하고 정확하게······.”

정훈을 칭찬을 이어가다가 지수의 차가운 표정에 멈칫했다. 그는 헛기침을 하고 다시 말을 이어갔다.

“그러니까, 저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성우 씨가 돌아오기 전에 따로 이야기 좀 나눌 수 있겠습니까? 그게, 저희 길드에 관해서 말씀 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사실상 대놓고 스카우트를 제의한 셈이었다.

“······그건 싫어요.”

그리고 대놓고 까였다.

정훈은 멀어져가는 지수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머쓱하게 볼을 긁적였다.

“여기 사람들은······ 쉽지가 않네. 하하.”

***

포탈에 빨려 들어가는 경험이 처음이 아니었다. 예전에 ‘대형마트 던전’에 들어갔다가, 함정을 밟아서 건물 지하로 소환된 경험이 있었으니 말이다.

이번에도 공중에서부터 떨어졌다. 성우는 바닥에 안정적으로 착지한 뒤 몸을 일으켰다.

- 히든 스테이지 ‘황금 골짜기’에 입장하셨습니다.

[히든 스테이지 안내]

1) 클리어 시 특별한 보상이 주어집니다.

2) 실패 시 원위치로 자동 퇴장됩니다.

3) 사망 시 시체가 원위치로 자동 퇴장됩니다.

- 30분 안에 스테이지 보스를 처치하십시오!

“뭐야, 진짜로 보너스 스테이지 같은 곳인가?”

성우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게······ 무슨 골짜기야.”

골짜기하고는 전혀 매치되지 않는 낡은 골목길이었다. 요즘은 쉽게 볼 수 없는 아주 오래된 느낌이었는데, 왼쪽으로 회색 벽돌담이, 오른쪽으로 빨간 벽돌담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정면으로 전단지가 덕지덕지 전봇대가 서 있었고 그 아래 쓰레기더미가 수북하게 쌓였다.

케케케!

그리고 그 뒤에서 무언가 기어 나왔다.

“······고블린?”

아주 오랜 만에 마주치는 고블린이었다. 그런데 그 색깔이······ 황금색이다?

케케케! 케케!

한 마리가 아니었다. 온몸을 금빛으로 물들인 고블린들이 골목길 어귀에서 하나 둘 씩 기어 나오더니 총 5마리가 되었다.

“오른아.”

딱딱―

“가서 진정한 고―간지가 뭔지 보여줘라. 몸에 금칠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 가죽이 벗겨져도 멋있을 수 있다는 걸 말이야.”

오른이가 앞으로 나갔다.

근데, 몸에 금칠한 고블린을 잡으면 뭘 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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