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네크로맨서-43화 (43/244)

# 43

15) 역사적인 만남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1

영등포 검사, 최정훈······.

‘다르다.’

첫 인상부터 범상치 않은 인간이라는 게 느껴졌다. 그 기운은 큰 풍채와 잘 생긴 얼굴 혹은 온몸을 휘감은 아이템에서 나오는 게 아니었다.

‘무언가 더 있다.’

성우 정훈을 미술관 안으로 인도했다. 마을의 생존자들은 미술관 로비에 모여 있었는데, 커뮤니티의 네임드, 랭킹 2위 ‘영등포 검사’의 등장을 구경하기 위함이었다.

“······와, 잘생겼다.”

“키도 엄청 큰데? 저 갑옷하고 무기는 뭐야?”

물론 정훈의 외양 자체는 커뮤니티의 명성을 인정하고도 남을 정도로 휘황찬란했다.

백색의 풀 플레이트 아머와 엄청난 크기의 대검을 찬 장신의 미남이라니······ 흔히 말하는 백마 탄 왕자의 모습보다 훨씬 강렬했다.

그리고 그 뒤를 따라 들어오는 기사단의 위용까지 더해지자 곳곳에서 감탄이 터져 나오는 건 당연했다.

“저 사람은 진짜 뭔가 달라 보인다.”

“괜히 영웅이 아닌 건가?”

개선 행렬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생존자들은 동경에 차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그런데 성우는 그 광경을 보며 알 수 없는 이질감을 느꼈다.

‘나도 이 남자에게 무언가를 느끼긴 했지만, 생존자들의 반응이 과한 느낌이다.’

비할 바는 안 되지만, 흡혈귀들이 뱀파이어 로드를 바라볼 때의 눈빛과 비슷하다고 할까?

‘뭔가 더 있다고 느낀 게 혹시······ 스킬 같은 건가?’

사람의 감정을 좌우하는 스킬? 충분히 가능하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근거 없는 느낌이자 의심일 뿐, 당장 확인 할 방법은 없었다.

‘내가 너무 민감한 걸 수도 있다.’

성우는 어딘가 찝찝한 감정을 억누르고 정훈을 사업소장실로 안내했다.

“이쪽입니다.”

정훈은 부관들을 복도에 대기시켰다. 그리고 단 둘만이 소장실 안, 소파에 마주 앉게 되었다.

정훈이 먼저 입을 열었다.

“사람들 얼굴이 안정되어 보였습니다. 저런 표정, 이제는 쉽게 볼 수 없거든요.”

그는 역시 여유 넘치는 미소를 지어보였다.

커뮤니티 내에서 유명세를 떨치며, 현재까지 알려진 가장 큰 생존자 그룹을 책임지고 있음에도 거만함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역시 찾아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가요? 영등포는 훨씬 안정되어 있지 않습니까?”

성우가 작은 냉장고에서 음료수 두 캔을 꺼내왔다.

“아, 뭐······ 하하. 감사히 잘 먹겠습니다.”

정훈은 캔을 경쾌하게 땄다. 그리고 한 모금 마신 뒤 다시 성우를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에서 미소가 서서히 사라졌다.

“아시고 계시겠지만, 영등포를 중심으로 서울 지역의 생존자들이 뭉치고 있습니다.”

정확히는 영등포 검사, 최정훈, 이 사람을 중심으로 주변 지역의 생존자 그룹이 합류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성우에게도 길드 합류를 권유했다. 오늘 이곳을 방문한 이유도 표면적으로는 그것 때문이었다.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죽었지만, 생존자들이 한 곳으로 모이니 그 숫자가 결코 적지 않은 상황입니다.”

“몇 명이나 모였습니까?”

“영등포역 인근에만 3만 명이 운집했습니다. 곧 4만 명이 넘을 것 같군요.”

3만 명? 성우는 솔직히 놀랐다. 마을의 생존자가 300명이 조금 안 된다.

“그렇게 많습니까?”

“많습니다. 벅찰 정도로요······.”

정훈이 처음으로 어두운 표정을 내비췄다.

“생존자가 많으면 힘이 되지 않습니까? 그래서 안전 구역을 홍보하고 길드를 선포한 건 줄 알았는데?”

영등포 검사는 커뮤니티에 최초로 글을 올렸으며 이후 안전 구역을 홍보하여 사람들을 끌어 모았었다.

“오해이십니다. 믿으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그저 더 많은 목숨을 구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정훈의 얼굴에 씁쓸함이 스쳐지나갔다. 정말로 순수한 선의에서 나온 행동이란 말인가?

“그리고 3만 명의 플레이가 힘이 되지는······ 않다고 말씀드립니다. 3만 명, 그중에서 이 세계에 적응한 사람이 얼마나 될 거라고 보십니까?”

성우는 어떤 의미일지 알 것 같았다. 마을에 상주하는 수백 명의 플레이어 중에서 제 역할을 충분히 해내는 사람은 소수다. 많이 쳐줘야 4분의 1 정도가 될까?

나머지 4분의 3은 보조적인 역할을 하거나 사실상······ 부양되고 있는 인구다.

‘3만 명이라면 부양해야 될 인구 규모가 다르다.’

살아남았다고 해서 모두가 적응한 건 아니다. 적응한 한 명이 주변의 여러 명을 구했을 테니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많은 생존자를 구하기 위해, 확실한 엘리트들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성우 씨 같이······ 저는 성우 씨를 오래 전부터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커뮤니티에서 자주 언급 되었으니까요. 하지만, 길드 영입의 최우선 순위는 솔직히 아니었습니다.”

“마음이 바뀐 건 랭킹 때문이겠군요.”

랭킹 공개 직후, 커뮤니티를 통해 연락을 해왔으니 말이다.

“맞습니다. 성우 씨가 운이 좋아서 이슈가 되는 사람은 아니라는 걸, 랭킹이 증명한 셈이죠.”

정훈은 캔을 만지작거리며 고개를 숙였다.

“성우 씨, 제 주변에는 강한 동료는 많습니다. 하지만······ 믿을 수 있는, 그러니까 주도적인 사람이 없습니다. 대부분 저에게 의탁하고자 자기 세력을 이끌고 온 사람들이죠.”

“······.”

“사실 불안합니다. 세상이 이렇게 변한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저를 영웅으로 떠 받드는 사람들······ 그리고 저를 의지하기 위해 몰려온 수많은 사람들······.”

정훈이 고개를 들어 성우를 바라보았다.

“저는 그 정도로 잘난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말이죠. 하하······.”

뭐지? 길드 가입을 권유하러 온 마스터가 자조를 해대다니?

“저한테 이런 말씀을 하시는 이유가 뭘까요? 방금 처음 본 사람한테 하실 말은 아닌 것 같아서 말이죠.”

성우가 은근히 쏘았고, 그가 고개를 들었다.

“맞습니다. 대놓고 말하면, 감정에 호소하고 있는 겁니다.”

“호소요?”

“성우 씨는 제 레벨이나 세력을 보고 길드에 들어올 것 같지 않으니까요. 제가 느낀 성우 씨는······ 어딘가 얽매이는 걸 꺼려하시는 분 같군요. 분명 자기주도적인 분이실 겁니다.”

직설적이다. 어떤 점을 보고 분석한지는 모르겠지만, 성우는 확실히 개인주의적인 면이 강하다. 그에 대해서 성우는 긍정도 부정도하지 않았다.

“성우 씨, 조금만 더 감정에 호소하겠습니다. 저는 며칠 전에 가족을······ 잃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혼자 살아남을 정도의 힘을 가지게 되니, 이 게임에 대한 의문을 넘어 분노가 생기더군요.”

그의 눈매가 한층 날카로워졌다.

“지금 게임 룰에 따르는 말에 불과할지라도 앞으로는 달라지고 싶습니다. 룰을 깨고 싶습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 알아내고, 할 수 있다면 되갚아주고 싶습니다.”

“······.”

“그래서 믿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살기 위해서 더 제 힘에 붙는 사람이 아니라, 저와 대등할 수 있는 그런 힘을 가진 사람, 대척점에 서서 서로의 의견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사람이요.”

성우와 정훈이 눈을 마주쳤다.

“제가 그런 사람이라고 보시는 건지요?”

“사실 성우 씨가 그런 분인지는 아직 모르죠. 제가 알 수 있는 건 레벨뿐이니까요.”

역시 직설적이다.

“그래서 어떤 분인지 보러 온 겁니다.”

그가 성우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성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소파에 기댔다.

“이 모든 서론의 결론은 결국······ 길드에 가입하라는 겁니까?”

“맞습니다. 하지만 겨우 그것뿐이면 이렇게 부랴부랴 오진 않았을 겁니다.”

그는 진지한 얼굴로 밸트의 작은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희미한 광채를 내는 붉은 색 돌이었다. 성우는 그게 뭔지 단번에 알아봤다.

‘예언석이다.’

그는 저도 모르게 눈썹을 찡그렸다.

“이건 예언······ 설마 뭔지 아시는 겁니까?”

정훈은 성우의 사소한 표정까지 캐치하여 물었다. 그의 표정이 순간 차갑게 굳은 것 같았다. 의심의 눈초리다.

성우는 군인들에게서 얻은 ‘예언석(시즌2’)을 가지고 있다. 여기서 그 정보를 공유하는 게 옳을까?

‘굳이 그럴 필요는 없어. 신중해지자.’

성우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처음 봅니다. 범상치 않군요.”

하지만 정훈의 눈을 여전히 날카로웠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이건 제가 조급해지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자, 손을 가져다 대보시죠.”

성우는 천천히 손을 뻗었다.

- ‘예언석(한국 서버 배드엔딩2)’에 접촉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전에 보았던 예언석처럼, 눈앞에 영상이 재생되기 시작했다.

구구구······.

이번엔 여의도다.

여의도의 빌딩 숲 사이에······ 빌딩보다 더 큰, 거대한 나무 한 그루가 솟아올라있다.

거대한 나무의 가지는 구름 속을 헤집을 정도로 높고, 넓게 뻗어 있었다. 그 넓이가 섬 전체를 마치 천장처럼 덮어버릴 정도였다.

‘······설마 세계수?’

나무를 중심으로 주변가의 건물들이 뒤흔들리기 시작했다. 그 진동은 한강을 소용돌이치게 만들고, 한강 이북의 도심지를 무너뜨렸다.

뿌리다. 나무뿌리가 지표면 아래에서 사방으로 뻗어나가며 지상을 뒤흔들어 놓는 것이다.

쿠구구구!

어느새 뿌리가 땅을 헤집고 올라오며, 나무의 주변으로 드넓은 넝쿨 밭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건 마치, 머리카락 무더기 같은 모습이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커, 컥······.”

“으허!”

뿌리에서 뻗어나간 엄청난 수의 줄기들이 사람들을 붙잡아 옭아맸다. 그리고는 온몸의 구멍으로 줄기를 쑤셔 넣어······ 체액을 빨아먹는다.

그 움직임은 여의도로 한정되지 않았다. 나무는 점점 더 커져갔고 뿌리는 한반도 전체를 뒤덮었다.

영상은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 ‘타락자’들을 막지 못할 시 일어나게 될 미래입니다.

* 타락자들은 특정 지역에 ‘세계수’의 씨앗을 심고 인신공양을 통해 세계수의 성질을 변화시킬 것입니다.

‘타락자?’

처음 듣는 단어다.

“다 보셨습니까?”

“······네.”

“성우 씨, 이런 최후를 막기 위해서는 힘을 합쳐야 됩니다. 그게 성우 씨가 어떤 사람인지 파악하기도 전에 감정에 호소하고 손을 내미는 이유입니다.”

정훈의 목소리가 한층 더 단호해졌다.

“세계수가 뿌리를 트는 곳은 여의도입니다. 그리고 하필이면 바로 그곳에 지금 ‘레이드 보스’가 있습니다. 영등포 근처이기에, 챕터2 시작과 동시에 확인할 수 있었죠.”

“그렇다는 건, 저를 비롯해서 그곳을 공략할 팀을 모으시려는 거군요.”

“예. 힘이 필요합니다. 많은 힘이요.”

말 그대로 보스 레이드다. 성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합치긴 해야겠군요.”

인정할 수밖에 없다. ‘시즌2’의 리치를 막는다고 한들, 세계수를 방치했다가는 몰살이다. 이건 누군가에게 의탁한 채 기다릴 수만은 없는 일이다.

“좋습니다. 정말 다행입니다.”

정훈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압도될 수밖에 없는 체구의 사내가 성우를 내려다봤다.

“성우 씨,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정부가 사라진 상황에서 그 누구에게도 이 사태를 책임져야 될 의무는 없습니다. 저도, 성우 씨도, 그 누구나 살아남는 게 최선이죠.”

“······.”

“그러니 책임감을 가진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나서야 됩니다. 책임감이란······ 아무도 하려고 하지 않는 것을 하는 일이죠.”

그가 손을 내밀었다.

“이 일, 아무도 하려고 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나 저는 할 겁니다. 성우 씨도 그래주실 수 있습니까?”

성우는 그의 손을 바라보았다. 이 손을 함부로 잡을 순 없었다. 성우는 여지를 두기로 했다.

“그런데 확실히 할 게 하나 있습니다.”

“말씀하시죠.”

정훈이 손을 거두었다.

“저는 길드에 가입하지 않을 겁니다.”

“······.”

성우의 선언에도 그의 표정은 담담했다.

“일시적으로 협력할 수는 있습니다. 레이드, 좋습니다. 같이 싸우죠. 하지만 레이드에서 나온 결과물은 공평하게 분배 되어야 될 겁니다.”

중요한 건 이 지점이다. 공평한 분배.

‘지금까지 정훈은 대의만을 이야기 했지 분배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건 모든 계약에서 가장 중요한 사안이다. 속물적으로 보일지 몰라도, 이 게임의 룰 안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확보해야 되는 것이었다.

“공평하지 않다면 목숨 걸고 싸울 수 없습니다.”

정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다시 소파에 앉았다. 그리고는 천천히 입을 뗐다.

“그럼 이렇게 하죠. 레이드에 참가하는 그룹의 수대로 합리적인 비율로 계산해서 분배하도록 하고, 커뮤니티에 약속하는 글을 올리겠습니다.”

그 말에 성우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커뮤니티? 이건 위험하다.’

커뮤니티는 철저하게 정훈의 영역이었다.

“거기에 덧붙여서, 해당 조건은 모두 광복 길드에서 제안 했다고 써주시죠. 레이드에 참여하는 그룹들이 혹시 모를 비난을 피할 수 있게요.”

커뮤니티가 계약서가 될 수도 있었지만, 반대로 커뮤니티를 활용한 여론전을 차단하기 위함이었다.

“······좋습니다.”

정훈이 손을 내밀었다. 성우가 맞잡았다.

“그럼 앞으로 3일 후······.”

애애애앵!

‘사이렌?’

옥상의 경비병들이 들고 있는 확성기, 즉 습격을 알리는 사이렌이었다.

빠―앙! 빵!

이어서 난데없이, 창밖에서 경적이 울렸다.

“······3일 후에 레이드 작전이 시작될 겁니다. 밖에 무슨 일이라도?”

성우가 창문으로 다가가 블라인드를 올렸다.

우웅! 우우웅! 빠―아―앙!

수십 대의 오토바이들이 미술관 주변을 포위한 채, 바퀴를 굴리고 경적을 울리며 소란을 부리고 있었다.

오산에서 올라온 폭주족, 그 잔당을 놓쳤더니 모든 무리가 한꺼번에 몰려온 것이었다.

“오산에서 아이템 퀵 서비스가 온 것 같습니다. 시킨 적은 없지만요.”

“우리 동맹의 첫 번째 상대가 온 모양이군요.”

덜컥―

“선배! 밖에······.”

“그래. 봤어.”

성우가 문밖으로 나갔다. 그 뒤를 이어 정훈이 나오자 복도에 도열해 있던 기사단들이 몸을 돌렸다.

“크루세이더 팀!”

“예! 언제든 준비 됐습니다.”

그리고 정훈의 뒤를 따라서 나오기 시작했다. 절그럭거리는 소리가 복도를 가득 매웠다.

“성우 씨, 실례가 안 된다면 직업이 네크로맨서가 맞습니까? 언데드를 부린다는 걸 들어서요. 전투 전에 서로의 직업을 파악하는 게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맞습니다.”

“저는 ‘크루세이더 커맨더’라는 직업입니다. 크루세이더를 임명하여 기사단을 조직해서 더 큰 시너지를 받을 수 있습니다.”

언뜻 들어도 별 다섯 개짜리 직업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둘은 연계 카드를 뭘 뽑았는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마지막 카드는 뒤집어 놓겠다는 생각인 걸까?

둘은 나란히 서서 미술관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오토바이 4대가 앞으로 나왔다.

“형님! 바로, 저, 저 새끼입니다!”

사거리에서 놓쳤던 폭주족 한 명이 성우를 가리켰다. 그러자 무리의 리더로 보이는 선글라스의 남자가 오토바이에서 내렸다.

그는 집게손가락으로 선글라스를 살짝 내리며 성우와 정훈을 번갈아 보았다.

“아, 저기 저 녹색 망토 입은? 옆에 갑옷 말고?”

“예. 망토요 망토.”

성우는 몰라도 풀 플레이트 아머를 입은 정훈은 레벨이 상당해 보일 것이었다. 하지만 리더는 주눅 드는 기색이 없었다. 믿는 구석이 있는 것일까?

“소란 피워서 미안합니다. 근데, 출장 나갔던 제 동생들이 외딴 곳에서 뒈졌다는데 맏형 된 도리로써 찾아오지 않을 수가 없어서요.”

그는 그렇게 말하며 오토바이 뒷좌석에서 사슬에 연결된 철퇴, ‘플레일(Flail)’을 꺼내들었다.

부웅! 붕!

그리고 위협적으로 돌려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가 아끼던 황금 사슴이 집을 나갔는데, 혹시 보셨습니까? 구라치거나 둘러대면 진짜 뒈집니다.”

동시에 마흔 명에 이르는 폭주족들이 사방에서 활과 석궁을 겨누었다. 개중에는 마법사도 있었다.

“성우 씨, 실례를 무릅쓰고 찾아와서 도움을 요청한 점, 정말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로 이 상황 저희가 손 좀 써도 되겠습니까?”

“물론입니다.”

랭킹 2위, 영등포 검사의 크루세이더 팀, 그 전력이 어느 정도일지 궁금하기도 했다.

정훈이 등 뒤의 대검을 꺼내들었다. 그러자 스무 명 가량의 크루세이더 팀이 좌우로 넓게 도열했다. 그 움직임은 위협적이기 그지없었고······.

쉬익! 쉬익! 쉬익!

폭주족들이 다급하게 사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다음 순간, 정훈이 대검을 수직으로 들어 올리자 그와 크루세이더 팀의 몸 주변으로 황금빛 보호막이 생성되었다.

투―투―퉁!

크루세이더 팀은 일제히 앞으로 튀어나가며 날아드는 모든 것을 몸으로 막아냈다. 그들의 발 아래로 화살들이 우수수 떨어졌고, 마법은 공중에서 증발해버렸다.

이어서 정훈이 대검을 앞으로 겨누었다. 그런데 대검의 생김새가 조금 특이했다.

‘크로스보우?’

칼자루는 살짝 휘어져 장총의 손잡이 같은 모양새였고, 넓은 크로스 가드(Cross-Gard)에는 시위가 달려 있었다. 말 그대로 엄청난 크기의 대검인 동시에 크로스보우 역할까지 겸용할 수 있는 무기였다.

정훈은 시위를 재고, 칼날을 정면으로 겨누었다.

투―웅!

시위가 튕겨지자, 칼날의 홈을 타고 빛 한 줄기가 뻗어나갔다. 실물 화살이 아닌 마법 화살이었다. 하지만 그 물리적인 파괴력 엄청났다.

콱! 콱! 쾅! 쾅!

사람 두 명과 오토바이 한 대를 관통한 뒤, 등 뒤의 건물 외벽을 와르르 무너뜨렸다.

“뭐, 뭐야!”

“방금······ 뭐가 지나갔는데?”

폭주족이 당황한 사이, 크루세이더 팀이 수직으로 세웠던 칼날을 내리고 앞으로 달려갔다.

“돌격!”

“모두 썰어버려라!”

육중한 갑옷을 입은 기사들이 일제히 돌격했다. 그들은 몸으로 오토바이를 부딪쳐 날리고, 대검을 종횡무진으로 휘둘렀다.

절그럭! 절그럭!

오산 지역에서는 꽤나 날렸을 폭주족 무리였지만, 대한민국 최초의 길드의 중심축인 ‘크루세이더 팀’의 상대는 되지 못했다.

오토바이가 라이더와 함께 통째로 절삭되고, 이곳저곳에서 잘려나간 사지가 피를 뿜어댔다.

“으아아!”

“젠장! 공격이 안 통해!”

대부분이 원거리 무기로 무장한 상태였던 폭주족은 근접전에서 매우 취약했다. 하물며 크루세이더 팀의 몸 주변의 보호막은 거의 모든 공격을 튕겨냈다.

기고만장 했던 폭주족 무리는 단 몇 십초 만에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마치 물소 떼에 정면 출동한 얼룩말 무리를 보는 것만 같았다.

‘엄청나다. 고급 시너지를 온 몸에 두르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

크루세이더를 임명할 수 있는 크루세이더 커맨더, 팀플레이와 시너지 효과에 최적화된 직업이 분명했다. 성우와는 또 다른 의미로 말이다.

폭주족은 이대로 정리될 것 같았다. 등 뒤에서 연달아 사진기 셔터 소리가 울렸다.

찰칵! 찰칵!

목에 사진기를 맨 길드원이 멀찍이 물러나서 플래쉬를 터트려댔다.

하지만······.

쾅! 쾅!

두 번의 폭발과 함께 검은 액체가 사방으로 튀었다. 이어서 검은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크루세이더 팀 몇 명이 바닥에 쓰러졌다.

“컥! 으으!”

“뭐, 뭐야! 저 연기를 마시면 안 돼!”

정체불명의 연기를 흡입한 크루세이더들이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몸 주변을 감쌌던 보호막이 불안하게 깜빡거렸다.

“커맨더! 처음 보는 마법입니다! 일단 몸을 피하십쇼!”

카메라 셔터 소리가 멈췄다.

“대단한 보호막인 줄 알았더니! 겉만 번지르르한 거였군? 어디 다시 와 봐!”

폭주족 리더가 버려진 트럭 뒤에 몸을 숨긴 채 소리쳤다. 정훈의 크로스보우를 피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놈의 양손에 무언가 쥐어져 있었다.

‘심연의 농축액이다.’

연대장이 쥐고 터뜨린다고 협박했던 바로 그것, 방문판매상이 제조하는 정체불명의 폭탄이다.

성우도 그 위력을 아직 보지 못했었는데, 지금 확인하니 밸런스를 붕괴시킬 정도로 무서운 물건이었다. 크루세이더 팀 정도 되니 버텼지, 다른 플레이어였으면 즉사다.

“저건 대체······.”

크루세이더 팀은 주춤거리며 물러섰고, 정훈의 얼굴에도 당황이 짙게 번져나갔다.

“정훈 씨, 잘 봤습니다. 대단합니다.”

정훈의 등 뒤에 서 있던 성우가 정훈을 지나쳐서 앞으로 나섰다.

“······성우 씨?”

“저도 보여드릴 수 있는 게 있을 것 같아서요.”

그 치명적인 독이, 성우에게만은 달랐다.

“응? 어이? 미쳤어! 이거 못 봤어? 어?”

폭주족 리더는 성우를 향해 고래고래 소리쳤다. 그럼에도 성우의 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리더는 결국 오른 손에 들고 있던 ‘심연의 농축액’을 내던졌다.

콰―앙!

그 무지막지한 물건은 성우의 바로 앞에서 터졌고, 성우의 몸이 검은 연기 속에 삼켜졌다.

“······.”

후우웅―

순간 정적이 흘렀다. 바람 소리만이 도로 위를 스쳐지나갔다. 그러자 조금씩 옅어지는 검은 연기 속에서······.

“맙소사.”

“저걸 맞고?”

성우가 멀쩡하게 걸어 나오기 시작했다. 그는 상처 하나 없이, 오히려 입 꼬리를 올려 웃고 있었다.

“······그래, 바로 이런 느낌이었어. 심연.”

후우웅!

한 바탕 돌풍이 일며 검은 연기가 허공으로 흩어졌다. 그러자 마치 장막이 벗겨져 나가는 것처럼, 성우의 등 뒤로, 언제 나타났는지 모를 새하얀 악마들이 우뚝 서 있었다.

압도적인 크기에 뼈 갑옷을 두른 괴물들, 그것들이 도열한 모습은 크루세이더 팀이 보여주었던 ‘위용’과 비슷하면서도 사뭇 달랐다.

······그래, 이건 ‘위압’에 가까웠다.

크루세이더 팀조차도 그 모습을 바라보며 마른 침을 절로 삼킬 수밖에 없었다.

“저게 바로······.”

소문 속의 괴물 같은 영웅, 네크로맨서가 직접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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