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2
14) 변해버린 세계의 변해버린 사람들 - 3
성우는 영등포 검사가 올린 게시물을 확인했다.
[38] kor-157님, 공식 만남을 요청합니다.
- 작성 : 영등포 검사 │ 조회 : 397,456
kor-157님, ‘광복(光復)’길드를 대표하여 공식 만남을 요청 드립니다.
광복 길드는 500여 명의 플레이어로 구성된 대한민국 최초이자 최고의 생존자 공동체입니다. 우리는 시스템에 충실하여 위기를 해쳐나가고, 생존자를 구제하며, 끝내 이 게임의 진실을 규명할 것입니다.
kor-157님의 이타적인 활약상을 커뮤니티를 통해서 익히 접했습니다. 그렇기에 결례를 무릅쓰고 이렇게 커뮤니티를 통해서 공식 요청을 드리는 바입니다.
광복 길드는 kor-157님의 길드 합류를 간절히 바라고 있으며, 길드 마스터인 저, 영등포 검사가 직접 찾아뵙고 우리 길드의 비전을 설명 드리고 싶습니다. 부디 만남에 응해주시길 바랍니다.
「댓글 : 92」
댓글은 두 유명인의 만남에 대한 기대에서 시작되어 찬양으로 마무리 되고 있었다. 난세다. 사람들이 영웅을 바라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다른 이유가 있어.”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대체 왜 이렇게 급하게 보자고 하는 걸까? 지역 제한이 풀리자마자 직접 찾아온다고? 그 이유는 어느 정도 명확해보였다.
‘커뮤니티 안에서 나에 대한 언급이 잦아지는 것 때문일 수도 있다.’
지난 두 차례 악행을 저지르는 흡혈귀 무리를 처단했고 그 목격담은 커뮤니티를 통해서 일파만파 퍼지고 있다. 그리고 소문이 으레 그렇듯 한도 끝도 없이 부풀려진다.
“······157을 임시정부 대통령으로!”
“진짜요? 그런 내용까지 있어요?”
“네, 으흐흐! 총리는 영등포 검사가 하라는데요? 선배를 더 고평가 하는 사람도 꽤 있어요. 물론 그 아래 댓글 보면 영등포 신자들이 난리치긴 해요.”
“사람들 참······ 신기하네요.”
한호가 ‘댓글 읽기’ 콘텐츠를 진행 중이었다. 지수도 그 옆에서 신기하다는 반응을 감추지 않았다.
“골드 아까운지도 모르고 찬양할 정도면 이건 진짜 팬심이라니까요? 선배, 막 선물까지 오는 거 아니에요?”
한호의 속 편한 소리는 어디까지나 농담이었지만, 이렇듯 성우의 행적은 지옥 같은 세계 속의 속 시원한 ‘정의구현’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즉, 의도하지 않았지만 성우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는 중이다. 영등포 검사는 이 점을 경계하고 있는 지도 몰랐다.
‘속 편하게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을 때가 아니다.’
하지만 성우는 그런 관심을 경계했다. 유명 인사가 되면 분명 이점이 있다. 사람들의 관심을 받으면 따라오게 되는 호의와 그에 대한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다.
‘정치판이 열릴 수도 있다. 아니 반드시 그렇게 된다.’
이렇게 무너진 세계에서조차 커뮤니티 기능 하나 때문에 여론이 형성되고 있지 않은가? 여론은 반드시 정치와 연결이 된다.
“선배, 근데 답변 안 하세요? 댓글에서 157 빨리 등판하라고 난리인데?”
곤란한 상황이다. 여론이 존재한다는 건, 어느 정도 조작이 가능하다는 소리이기도 했다.
벌써 ‘영등포 신도’라는 멸칭으로 불리는 영등포 검사의 진성 추종자들이 댓글에서 아우성치고 있으니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무시로 일관하는 것도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다 줄 것 같진 않았다.
‘한 번 만나볼 필요성은 있다. 또 어떤 숨겨진 정보를 얻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가령, 군인들을 만났기에 예언석에 접촉할 수 있었고, 미래를 미리 본 뒤 대응할 수 있게 됐다.
그 결과 성우에게 당장 중요한 건 15레벨을 달성하여 사신의 낫의 위치를 파악하는 것이었다. 새해가 오기 전까지 찾지 못할 경우, 성우는 리치의 종으로 전락하고 만다.
‘새로운 정보도 얻고 레벨을 올리는데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성우는 댓글을 남겼다.
─ kor-157 :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 이하민 :오! 개쿨해;; 닉네임도 안 바꾸는 거 봐;;
˪ 안경전사 : 멋집니다. 응원합니다.
˪ 박준태 기자 : 재앙 속에서 두 영웅이 만나는군요. 예상은 했지만 생각보다 이른 시간이라 놀랐습니다. 역시 범인은 영웅의 판단을 따라갈 수 없는 모양입니다. 부디 인류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회담이 되길 기원합니다.
˪ 야스오1 : ㅋㅋㅋ;;
˪ 영등포 검사 : 감사합니다. 위치는 대략적으로 알고 있으니 금방 찾아뵙겠습니다.
설명한 적도 없는 위치를 알고 있다니? 물론 커뮤니티를 통해서 온갖 정보를 수집했을 테니 짐작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하기는 했다.
하지만 그런 민감한 문제를 에둘러 물어보는 척이라도 하지 않는 다는 건······.
‘대놓고 정보력을 과시한 거야. 자신감 넘치는군.’
저쪽에서는 이 문제를 결코 단순한 비즈니스 관계로 보고 있지 않다.
우우웅!
그때, 밖에서 시끄러운 엔진 소리와 함께 태성의 오토바이가 정문에 멈춰 섰다. 녀석은 몇몇 친구들과 함께 미술관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그 중에서는 흡혈귀가 되었던 여자애, 유진도 있었다. 그녀는 뱀파이어 로드가 죽은 뒤, 서서히 피가 희석되더니 원래 직업인 ‘마법사’로 돌아왔다.
그런데 태성의 표정이 꽤나 다급해보였다.
“습격당했습니다!”
“······습격?”
성우는 인상을 찌푸렸다.
“네! 이상한 놈들이 갑자기 공격해 와서 민준이, 제 친구를 잡아갔어요!”
숨을 고른 태성이 설명하길, 오토바이를 타고 있는 열 명 정도의 괴한이 나타나서 교섭을 시도해왔다고 한다.
“······다가오더니 뜬금없이 황금 사슴? 뭐 그런 걸 봤냐고 해서 모른다고 했더니, 다짜고짜 공격해오는 겁니다.”
태성 일행은 쪽 수에서 밀렸기에 도주를 택했고, 추격해오는 걸 간신히 따돌렸다.
“그런데 그 놈들이 곧 이쪽으로 올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태성의 친구인 민준을 인질로 잡고 있으니 당연히 그럴 것이었다.
“안내 해.”
지역 제한이 풀리자, 다른 지역에서 살아남은 이들이 넘어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성우는 낯선 무리가 마을로 다가오는 걸 원치 않았다.
***
오토바이의 괴한들을 발견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남쪽 대로를 따라서 몇 분 가다보니, 사거리에 멈춰 서 있는 한 무리를 발견했다.
“어, 너 아까 튄 새끼 아니냐?”
“그러게? 뭐야? 형이랑 누나 데리고 온 거야?”
성우는 딱 지수와 한호 그리고 태성만을 데리고 나온 상태였다. 그렇기에 상대가 보기에는 우스워 보일 것이었다.
그들은 가죽재킷에 고글을 쓰고 두건을 두르고 있는 등, 언뜻 보더라도 폭주족 같은 차림새였다. 태성과 같은 십대 폭주족의 상위호환이라고 해야 될까?
“혹시 우리가 찾아갈 걸 알고 마중 나온 건가?”
그중에서 메이스를 들고 있는 남자가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근육질의 40대 남자였는데,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보라색 머리카락이 눈에 띄었다.
그는 성우에게 잠시 눈길을 주었다가 이내 지수를 위아래 훑기 시작했다. 굉장히 노골적인 시선이었다.
“응? 예쁜 누나? 드라이브라도 할래?”
“······.”
정말, 삼류 폭주족다운 대사가 아닐 수 없었다. 너무 변주가 없어서 듣고 있기 역할 정도였다.
“형님, 이러고 있다가 사슴 도망가겠습니다! 하여튼 여자만 보면 바로 눈 돌아가셔!”
다른 폭주족들의 닦달에 근육질 남자가 제 머리를 톡톡 쳤다.
“어이구, 내가 잠시 딴 생각 좀 했네. 우리 누나랑 형, 혹시 황금 사슴 못 봤나?”
“황금 사슴?”
“그래 말 그대로 황금 사슴이야. 나무꾼처럼 숨겨줄 생각하지 말고, 어느 쪽으로 갔는지 그것만 말해줘.”
“처음 듣는데. 당신들은 어디서 왔지?”
남자가 메이스를 들어 올려 머리를 긁었다.
“······아, 이러면 말이 안 통하는데? 황금 사슴이 아니라면 예쁜 누나한테 데이트 신청이라도 해야겠는데?”
남자는 오른 손을 들어 올리더니 변태같이 꿈틀거렸다. 지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성우 씨, 제가 상대할게요.”
“그러세요.”
지수가 앞으로 나서자 남자가 잇몸을 드러내며 웃었다.
“오, 뭐야? 설마 나한테 관심 있는 거야? 나처럼 덩치 큰 아저씨 좋아해?”
하지만 지수가 칼을 뽑아들자 놈의 이마가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시벌, 그러지 말지? 머리통이 으깨지면 주무르는 맛도 없단 말이야.”
“주무를 손이 먼저 없게 될 걸.”
“······쌍년. 거기 가만히 있어. 퉤!”
남자가 침을 내뱉더니 메이스를 들고 성큼성큼 다가왔다. 지수는 오른손에 쥔 환도를 빙글빙글 돌렸다.
붕!
남자가 먼저 무기를 휘둘렀다. 하지만 지수가 부드러운 움직임으로 피해냈고, 그의 메이스가 옆에 서 있던 트럭 한 대를 강타했다.
쾅! 치지직!
그러자 차체에서 스파크가 튀는 게 아닌가?
‘전기?’
스킬이었다. 스치기만 해도 감전되어 나동그라질 수도 있었다.
“에이, 한 방만 스치면 멀쩡한 상태로 업어가는 건데, 살살 휘두를 때 좀 맞아주라!”
부웅!
놈의 재차 공격, 지수는 뒤로 물러서며 공격을 피해냈고, 직후 앞으로 튕겨져 나갔다. 그리고 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칼을 휘둘렀다.
촤악!
칼날이 마치 놈의 손목을 통과해 지나간 것처럼 보이더니, 그녀의 칼날 궤적을 따라 불꽃이 일렁거렸다. 다음 순간······.
“으아아아!”
비명과 동시에 손목 두 개가 허공에 떠올라 있었다. 놈은 잘려나간 손목을 바라보며 뒷걸음질 치더니 주저앉고 말았다.
지수가 그에게 다가갔다.
“······예쁜 아저씨, 어떡해 이제 드라이브 못 하실 것 같은데? 다른 아저씨 등 뒤에 다소곳하게 타야겠네.”
상황이 그쯤 되자 지켜보고 있던 폭주족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 중 한 명이 긴 지팡이를 꺼내더니 지수를 향해 무언가 발사했다.
푸우우!
그건 원형의 불꽃, 속히 말하는 ‘파이어 볼’이었다.
파앗!
하지만 지수는 칼을 휘둘러 불꽃을 쳐냈고, 불꽃은 구심을 잃더니 허공에서 흩어져버렸다.
“쳐!”
폭주족 두 명의 단검을 뽑아들었다. 그리고 그 뒤로 두 개의 석궁이 지수를 향해 겨누어졌다.
“어디서!”
쉬익! 푹! 푹!
단검이 더 빨랐다. 기회를 노리고 있던 한호가 놈들이 시위를 잴 틈도 없이 두 개의 단검을 날렸고, 놈들의 목덜미에 정확히 꽂혔다.
그리고 그 사이, 지수가 단검의 두 명과 충돌했다. 지수는 한 바퀴 빙그르 회전하며 단 두 번 칼을 휘둘렀다. 다음 순간, 팔 한 쪽과 발목 한쪽이 분리되어 나가떨어졌다.
“으아아!”
“아아아!”
순식간에 4명이 고꾸라지자 폭주족들의 표정에 당황이 어렸다. 그리고 그들은 어쩔 수 없이 전략을 수정했다.
“오, 오지 마! 이, 이 새끼 목 그어버린다?”
“민준아!”
인질로 잡혀 있던 태성의 친구, 민준의 목덜미에 칼을 들이민 것이다. 일행은 그 자리에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이, 미친! 깡패 같은 것들은 어디서 온 거야?”
이 상황에서 도대체 누가 깡패라는지 모르겠지만, 폭주족들은 이미 싸울 의지를 잃은 상태로 보였다. 인질의 목숨으로 협박하는 건, 살아남기 위한 최후의 수일 테니 말이다.
성우는 새로 얻은 아이템 ‘그림자 왕의 로브’를 여미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도로에 멈춰선 채 역광을 받고 있는 화물트럭 한 대가 긴 그림자를 형성하고 있었다.
성우는 그 그림자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어?”
그러자 성우의 모습이 사라졌다.
“······어디로 갔어?”
“뭐, 뭐야! 무슨 수작이야!”
“주변을 살펴!”
폭주족들은 당황하며 사방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어디에서 성우의 위치를 찾을 수 없었다.
픽! 픽! 픽! 픽! 픽!
그 순간, 그림자 속에서 무언가 마구잡이로 날아들었다. 화살이었다. 공격을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폭주족들은 속수무책으로 쓰러졌고, 죽음을 면한 이들은 자세를 낮추며 오토바이 뒤로 몸을 숨겼다.
그리고 인질, 민준을 놓치기까지 했다. 그는 일행 쪽으로 황급히 달려왔다.
“젠장! 놓치면 어떡해!”
“지금 그게 중요해? 사라진 새끼를 찾······ 컥!”
이내 암녹색 로브를 휘날리며, 흑색 칼날은 든 성우가 그림자 속에서 튀어나왔다.
촤악!
- 플레이어를 살해하여 8,000골드를 획득했습니다.
8레벨의 플레이어, 결코 낮지 않은 수준이었지만 그림자 속에서 나타나는 급습에 당해낼 재간은 없었다.
“으아아!”
“일단 도망쳐! 너희! 다시 와서 쓸어주마!”
살아남은 폭주족들이 서둘러 오토바이에 올라탔다. 성우는 검을 아스팔트 위에 꽂고, 끈으로 둘러맨 리피팅 크로스 보우를 들어올렸다.
픽! 픽! 픽!
“컥!”
라이더의 등에 화살이 꽂히자, 막 출발했던 오토바이가 균형을 잃으며 아스팔트 위를 미끄러졌다.
기기기긱! 쾅!
- 플레이어를 살해하여 7,000골드를 얻었습니다.
하지만 나머지 셋은 놓치고 말았다. 그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남쪽을 향해 미친 듯이 질주했다.
“······이러면 선배가 나보다 더 도적 같은데요? 설정 붕괴에요.”
“설정은 네가 프리스트 뽑을 때부터 흔들렸어.”
“아······ 인정.”
인질로 잡혀있던 민준이 들은 바에 따르면, 저 괴한들은 오산시에서 올라온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계속해서 ‘황금 사슴’을 찾아 헤매고 있었다고 한다.
“황금 사슴이 대체 뭐죠?”
“뭔지 몰라도 딱 들어도 귀해 보이지 않나요? 골드 엄청 줄 것 같습니다.”
태성이 순진무구하게 낸 의견이었지만, 성우가 생각하기에도 황금이란 이미지는 분명 돈과 연결되었다.
그리고 그걸 아는 폭주족들이 눈에 불을 켜고 쫓아와 이 지역까지 넘어온 것이 분명했다.
“일단 돌아갑시다.”
일행은 폭주족의 시체와 오토바이에서 쓸 만한 물건을 챙긴 뒤, 마을을 향해 움직였다.
그러던 중, 거짓말처럼 그 ‘황금 사슴’이란 걸 목격했다.
“성우 씨? 저기 골목이요.”
지수가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고, 성우가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곳에 녀석이 있었다. 금빛으로 빛나는 유려한 곡선의 사슴 한 마리······.
[히든 퀘스트]
- 제목 : 행운을 주는 황금 사슴을 잡아라!
- 유형 : 목표 획득
- 목표 : 황금 사슴 사냥
- 보상 : 히든 스테이지 입장권(1/2)
“어?”
“퀘스트?”
황금 사슴을 목격한 일행의 눈앞에 똑같은 메시지가 떠올랐다. 그리고 그 순간, 황금 사슴이 고개를 돌리더니 골목으로 사라져버렸다.
“잡아야겠죠?”
“선배, 이거 안 잡으면 호구인 것 같은데요?”
성우는 즉시 수인 스켈레톤들을 풀었다.
덜그럭! 덜그럭!
스켈레톤들은 사방으로 흩어졌다. 인간이 두 발로 뛰어서 잡을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었다. 기회를 엿보다가 화살로 잡아야 될 테지만, 성우는 조금 달랐다.
웨어 타이거 스켈레톤은 2차원 상의 길을 따라 움직이지 않았다. 녀석은 순식간에 건물의 외벽을 타고 오르더니 옥상 너머로 사라졌다.
“이쪽으로 갔어요!”
일행은 황금 사슴의 꽁무니를 따라 정직한 방향으로 뒤쫓았다. 스켈레톤들이 앞질러 가는 길로 이동했으니, 뒤쪽에서 몰아줄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세 번째 골목을 도는 순간, 드디어 그 금빛 꽁무니를 마주할 수 있었다.
녀석은 골목길 한 복판에 멈춰선 채 정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온몸에서 경계심이 느껴졌는데, 녀석이 바라보고 있는 건······ 성우의 스켈레톤이 아니었다.
“앞에 웨어 울프!”
웨어 울프 한 마리가 자세를 낮춘 채, 이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수도 없이 잡아본 사냥감이지만 결코 방심해선 안 된다. 워낙 기동력이 좋은 놈인지라, 한 순간에 당할 수도 있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저 녀석, 뭘 기다리는 거죠?”
“뭔가 다르군요.”
본디 웨어 울프 같은 수인이라고 한다면, 그 성질 원체 포악해서 앞뒤 안 가리고 달려드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그런데 저 놈은 너무나 신중했다. 자세를 낮추고 귀를 쫑긋거리며 사방을 경계했다. 황금 사슴은 그 가운데에 갇힌 채, 제 자리에서 엉거주춤 맴돌았다.
‘지금’
하지만 성우는 고작 웨어 울프 한 마리 때문에 황금 사슴을 놓칠 생각이 없었다.
콰득!
웨어 타이거 스켈레톤이 옥상에서 떨어지는 동시에 황금 사슴의 목덜미를 물었다. 그 단 한 방에 황금 사슴의 몸이 축 늘어졌다.
- 히든 퀘스트 <행운을 주는 황금 사슴을 잡아라!>를 공략하셨습니다.
* 보상이 주어집니다. (히든 스테이지 입장권 1/2)
그르르······.
하지만 성우의 시선은 정면의 웨어 울프에게 가 있었다. 녀석은 웨어 타이거의 등장에 조금씩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뭐지? 잡아야 되나?’
낯선 행동에 고민하는 사이, 놈이 고개를 홱 돌렸다. 그러더니 옆의 둔덕을 타고 넘어가 모습을 감추었다.
“방금 걔, 좀 이상했죠? 지금까지 겁먹고 도망친 수인이 있었나요? 누가 두들겨 패고 풀어줬나?”
“······.”
확실히 이상했다.
성우는 찝찝함을 뒤로 하고, 황금 사슴을 잡아서 얻은 보상을 확인했다. 그건 카드 크기의 금색 티켓이었다.
[아이템 정보]
- 이름 : 히든 스테이지 입장권(1/2)
- 등급 : 이벤트
- 분류 : 기타
- 효과 : 2장이 있어야 효과가 나타납니다.
아무래도 한 장만으로는 ‘히든 스테이지’라는 곳에 진입할 수 없는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이런 황금 사슴을 한 마리 더 잡아야 된다는 뜻이었다.
우우웅!
그때, 핸드폰이 진동했다. 커뮤니티 댓글 알림이었다. 그리고 그 내용을 확인한 성우는 인상을 찌푸렸다.
“······벌써?”
“왜요? 뭔데요?”
“곧 도착한다네.”
“누가요?”
“올 사람이 누가 있겠어?”
영등포 검사, 그가 5분 뒤에 도착할 예정이라는 댓글을 남겼다.
영등포에서 수원까지, 어떻게 이렇게 빨리 올 수 있단 말인가? 도로는 버려진 차량으로 꽉 막힌 상태일 텐데······.
그 해답은, 마을에 도착한 직후에 알 수 있었다.
두두두두!
두 대의 소방 헬기가 광장 위에 나타난 것이다.
“설마 저게?”
“······화려하게도 등장하시는군.”
엄청난 소음과 함께 로터의 강풍이 일대를 휩쓸어댔다. 선수의 헬기가 정지비행을 시작하더니, 4개의 로프를 바닥으로 내리었다.
그리고 그 로프를 타고, 중장갑을 입은 남자들이 일제히 강하하기 시작했다.
쿵! 쿵! 쿵! 쿵!
저렇게 무거운 갑옷을 입고 뛰어내리다니, 그 장면만으로도 보통내기들이 아니란 걸 알 수 있었다.
그들은 사방으로 흩어지며 거대한 쇠뇌를 꺼내들었다. 헬기의 착륙지점을 확보하는 동시에 주변을 경계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철저한 경호를 받으며, 헬리콥터 한 대가 천천히 내려앉았다.
우우웅―
로터가 느려지고 엔진이 멈췄다. 마지막으로 헬리콥터 주변에 숨겨져 있던 노란색 보호막이 드러나더니,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마법이 분명했다.
드르륵!
이내 두꺼운 문이 열리며, 키가 매우 큰 남자가 내렸다.
‘엄청 크다.’
족히 190센티미터는 될 법 했는데, 흔히 ‘풀 플레이트 아머’라고 부르는 백색의 전신 갑옷을 입은 상태였기에 훨씬 더 거대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비율이 워낙 좋은 탓에 거구라기보다 잘 빠진 모델처럼 보였다.
그의 등 뒤에는 족히 170센티미터는 될 법한 대검이 매달려 있었다. 그런데 가드가 워낙 길어서 마치 십자가를 짊어지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척― 척― 척― 척―
그리고 그의 등 뒤로 스무 명의 길드원이 도열하기 시작했다. 그들 역시 하나 같이 온몸을 감싸는 풀 플레이 아머를 입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들의 행동은 마치 중세 유럽의 기사단 같은 모습이었다.
“반갑습니다. 영등포 검사, 아니, 최정훈입니다.”
“······유성우입니다.”
둘이 손을 맞잡는 순간, 길드원 한 명이 옆으로 빠지더니 목에 걸고 있는 무언가를 들어올렸다.
찰칵!
“······.”
성우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고 영등포 검사, 최정훈은 자연스러운 미소를 뗬다.
“역사적인 순간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살기 위해서 발악하는 사람들 속에서, 미래를 말하는 놈이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