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
13) 활주로의 보스 레이드 – 3
그래, 강 중사도 이런 장면을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 힘으로는 도저히 이길 수 없는 거대한 적을, 주인공 두 명이 밧줄로 묶은 다음 벽돌로 머리를 내리치는 장면이었던 것 같은데······.
우어어어!
5미터짜리 거인에게 통할 줄이야? 아니다. 오히려 저렇게 무식하게 큰 놈일수록 움직임이 느리기에 저런 방법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우득! 우득!
하지만 놈은 생각 이상으로 너무 강한 듯 했다.
“젠장, 여유 부릴 시간이 없겠다.”
성우도 그 끔찍한 파열음을 들었다. 2톤의 힘을 견딘다는 클라이밍 로프 10가닥이, 조금씩 느슨해져가는 소리였다. 성우의 귀에는 폭탄의 카운트다운으로 들렸다.
촤악! 촤악!
시간이 얼마 없다. 성우의 야수들이 달려들어 손톱과 발톱으로 놈의 피부를 헤집어댔다.
그으! 그아아!
놈이 양 팔을 휘저으며 방어하고 반격했다. 하지만 넘어진 상태에다가, 하체를 움직여 몸을 뒤틀어댈 수도 없었기에 그리고 위협적이지 않았다.
그렇게 펼쳐진 광경은 마치 거대한 초식 동물을 물어뜯는 하이에나 떼 같은 모습이었다.
활주로가 순식간에 피로 뒤덮였다. 하지만 정말 이상하게도, 놈의 상처는 그러는 동안에도 엄청난 속도로 재생되고 있었다.
‘역시 트롤이다. 흡혈귀를 압도하는 초월적인 재생력이라니······.’
우드드―
그리고 놈이 근육을 한껏 부풀리자 밧줄 뭉치가 팽팽해지며 비명을 질러대기 시작했다.
‘시간이 없다.’
이대로라면 결정적인 데미지를 주지 못한 채 놈이 풀려날 테고, 결국 압살당할 것이다.
“우리도 갑시다!”
“예!”
성우는 자이언트 트롤을 향해 달려가며, 웨어 울프 스켈레톤 한 마리를 소환 해제 해버렸다. 녀석의 몸이 앞으로 픽 고꾸라졌다.
‘무기 제조’
이어서 녀석의 몸을 바탕으로 ‘뼈 무기 제조’ 스킬을 발동시켰다. 그러자 온갖 뼈들이 사방으로 분해되더니 5자루의 창이 덩그러니 나타났다.
그리고 스켈레톤들이 그 무기를 집어 들었다.
- 팀플레이로 인해 ‘시너지 효과’가 발동됩니다.
[시너지 목록]
4) 야생 사냥꾼(1단계)
- 구분 : 무기 시너지
- 조건 : 창 5개 이상 장착
- 효과 : 관통력이 증가합니다. (+30%)
어젯밤 모든 무기를 번갈아 가며 착용해서 시너지 효과를 미리 연구해둔 게 빛을 발했다.
그게 아니었다면 지금까지 창에 관한 시너지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으니 ‘관통력’ 같은 게 존재한다는 것도 몰랐을 것이었다.
이에 더불어 웨어 베어 4마리의 <야생의 폭군(1단계)>의 상대 방어력 감소(-10%), 아군 방어력 상승(+10%) 효과 덕분에 자이언트 트롤의 방어력이 크게 감퇴된 상태였다.
푹! 푹! 푹! 푹!
5자루의 창대가 자이언트 트롤의 피부를 송곳처럼 후비고 들어갔다.
그윽! 그윽!
놈의 비명소리가 사뭇 달라졌다. 분노에 찬 괴성이 아니라, 몸 속 깊은 곳에서 울려오는 신음이었다.
성우는 놈의 가슴 위로 기어 올라갔다. 그리고 그 거대한 머리통을 마주했다. 놈은 더 이상 머리를 흔들어 피하지도 않고, 눈은 이미 반쯤 뒤집어진 상태였지만, 그 회복력을 볼 때 언제 다시 정신을 차릴지 모르는 일이었다.
‘완전히 무력화 됐다. 한 방이면 된다.’
성우는 용기사의 검 ‘주인 잃은 검’을 양손으로 쥐고, 놈의 턱 아래에 처박았다.
푸욱!
단단한 두개골을 피해 뇌를 찌른 것이다.
“······대부분 머리는 재생 못하더라.”
놈의 눈이 완전히 뒤집어졌다.
- 지역 보스 몬스터 ‘자이언트 트롤’을 사냥하여 220,000골드를 얻었습니다.
- 메인스트림 보스 몬스터를 사냥하여 특별 보상으로 모든 능력치가 증가 합니다. (+2)
- 메인스트림 보스 몬스터를 사냥하여 특별 보상으로 ‘스페셜 아이템 상자’를 얻었습니다.
- 레벨 업 하셨습니다. (LV. 11)
성우는 천천히 칼을 뽑아냈다. 이 지역에서 가장 강한 몬스터였던 만큼, 이렇게 엄청난 보상은 당연했다.
- 자격 증명까지 남은 시간 : 4,851일
이 한 방으로 98일이나 줄었다.
- 레벨 업 카드를 선택하세요.
1) 능력치 (랜덤)
2) 스킬 (랜덤)
3) 아이템 (랜덤)
4) 기타 (랜덤)
5) 스킬 : 뼈 무기 제조 (확정)
‘확정 슬롯에 뼈 무기 제조? 그렇다면 이제 스킬이 업그레이드되는 건가?’
성우는 5번 항목을 선택했다.
“말도 안 돼······ 끝났다고?”
한편 강 중사는 자이언트 트롤 발아래 엉거주춤 서 있었다. 그 역시 전투 준비를 했었는지 양팔에는 붉은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참전하기도 전에 끝나버렸으니, 붉은 기운은 김이 빠지듯 증발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언제나 여유가 넘치던 그의 얼굴은 뻣뻣하게 굳어버렸다.
“이걸로 군과 계약은 끝난 것 같군요. 이 몬스터의 사체는 제가 가지겠습니다. 애초에 처리만 해드린다고 했으니 말이죠.”
권속으로는 일으킬 수 없었지만, 트롤의 피와 가죽은 분명 가치 있는 물건이었다.
강 중사는 아무런 대답도 못하고 성우를 바라보다가, 곁눈질로 성우 뒤쪽 건물을 바라보았다. 그곳에 기습 작전을 수행하기 위한 최 상병의 분대가 주둔 중이었다.
김 병장의 분대도 자신의 뒤로 다가와 있었다. 자신이 움직인다면 2개 분대, 20명가량의 플레이어들이 동시에 성우를 공격할 것이었다.
······하지만, 과연 이길 수 있을까?
‘어떡하지? 기습한다면 가능할 수도 있다. 내가 달려들어 바로 목을 꺾으면 돼.’
트롤의 가슴 위에서 있던 성우가 배 쪽으로 걸어왔다.
“강 중사님?”
“······예.”
“머리가 복잡해보십니다?”
“그렇습니다. 복잡하지요.”
강 준사는 나직이 대답하며 달려들 채비를 마쳤다.
“복잡하면 늦은 겁니다.”
뭐라고? 강 중사는 방금 성우가 한 말이 무슨 의미지인지 고민했다. 뭐가 늦는다는 거지?
턱, 턱, 턱, 턱.
그 순간, 자이언트 트롤의 왼손에서 뼈가 솟아오르더니 성우의 얼굴을 향해 날아갔다. 그리고 목덜미와 머리 전체를 감싸는 투구가 형성되었다. 뼈 갑옷 제조 스킬이었다.
‘늦었다.’
강 중사가 바닥을 박찼다.
“쳐!”
강 중사는 그렇게 말하며 땅을 박찼다. 그의 양손에서 붉은 기운이 짙어졌다.
9레벨의 스트라이커, 대부분의 레벨 업 카드를 능력치에 투자했기에 근력 수치만 20에 달한다. 최초 능력치에 4배에 이르는 것이다.
하물며 2차 카드 선택 때, 연계 카드로 뽑은 ‘광전사’를 통해서 얻은 스킬 ‘난투’가 있다. 스킬이 지속되는 동안 근력과 체력을 30퍼센트나 강화해준다. 그가 일전에 말한 오크의 목을 꺾어 죽인다는 건 과장이 아니었다.
‘단 한 방, 한 방이면 된다!’
그는 단 한 번의 도약으로 웨어 베어 스켈레톤의 사이를 파고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의 주먹 사정거리 안에 성우가 들어왔다.
그는 성우의 머리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쾅!
그런데 그가 내리친 건 성우의 몸이 아니었다. 성우가 들고 있는 거대한 방패······. 트롤의 팔뚝 뼈로 만들어진 방패였다.
“뭐?”
고대하던 한 방이 수포로 돌아갔다.
뻑!
공격에 실패한 강 중사의 머리를 무언가 강타했다. 그건 웨어 베어 스켈레톤의 육중한 앞발이었고, 그의 몸은 허공으로 붕 떠올라 아스팔트 바닥에 처박혔다.
“방패라? 쓸 만하네.”
성우는 금이 간 뼈 방패를 아래로 내렸다. 방금 전에 ‘뼈 무기 제조’ 스킬을 뽑으며 기존 스킬이 한 단계 강화되었고, 제조 할 수 있는 무기 목록 ‘방패’가 추가되었다.
그리고 강 중사가 달려드는 순간, 트롤의 오른 손에 스킬을 걸어 방패로 만든 것이었다.
“컥, 크으······.”
강 중사는 딱딱한 아스팔트 위에서 몸을 뒤틀었다. 아무리 체력이 강화되었다고 한들, 고통은 몸을 움츠러들게 만든다.
하지만 그는 군인이었다. 그것도 지옥 같은 훈련을 경험한 특수부대 출신이었다. 곧장 바닥을 짚고 일어서 뒤로 구르며 멀찍이 물렀다.
‘아직 모른다. 내가 너무 성급했다. 병사 두 분대와 합을 맞추면······. 근데 최 상병 분대는 왜 움직이지 않는 거지?’
그는 희망을 품으며 고개를 돌렸다. 지근거리에 있는 김 병장의 분대에 명령을 내리기 위함이었다.
“김 병장!”
“······.”
하지만 김 병장을 비롯한 병사들은 전투태세를 갖추지 않은 상태였다. 하물며 싸울 의지조차 없어 보였다.
“김 병장! 대답 안 하나?”
“꼭 대답을 듣고 말을 하셔야 됩니까?”
김 병장이 그렇게 말하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뭐?”
“그냥 말하십쇼. 왜 꼭 제가 대답을 해야지만 우리 대화가 진행이 되는 겁니까?”
강 중사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너 미친 새끼가 지금 뭐 하는······.”
“강 중사님 우리는 모든 걸 떠나서 일단 살아남기로 했습니다. 이렇게 개죽음 당하기는 싫습니다.”
김 병장이 성우를 바라보았다.
“하? 하하하! 살아? 뭘 살아? 너······ 당장 뒈지고 싶어서 환장했구나?”
“뭘 지켜야 되는지도 모른 채 사냥만 다니다가 죽어나는 꼴, 더 이상은 못 봅니다. 우리가 지키는 게 대체 뭡니까? 뭔가 대단한 일을 하고 있다고 느껴지지가 않습니다.”
“맞습니다.”
“더 이상 이렇게 못 버팁니다!”
김 병장의 말에 등 뒤의 후임들이 맞장구를 쳤다. 간부들의 대의명분에 희생당해온 전우들이 한 둘이 아니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최 상병도 제가 설득했습니다.”
마침 건물 안에서 최 상병의 분대가 나오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크로스보우로 무장해서 시너지를 받고 있는, 일종의 저격 부대였다.
그리고 그 가운데는 이들의 중대장, 이 대위가 포박된 채 끌려오고 있었다. 이 대위는 김 병장을 보더니 긴 한숨을 내쉬었다.
“김 병장 너, 하아······ 네 심정 나도 이해한다. 하지만 꼭 이렇게까지 했어야 됐냐? 군 기반이 아니라면 우리는 살아남을 수 없어. 이 세상 꼴 좀 봐!”
“······중대장님, 우리는 이미 죽어나가고 있었습니다. 이제 군대놀이는 집어치우고 살아남기 위해서 발악해볼 겁니다.”
“연대장님이 너희를 가만히 둘 것 같아? 그렇다고 군에서 벗어나면 시너지는커녕, 패널티 받는 거 몰라?”
패널티?
“그거, 우리는 항명할 수 없었지만 외부인이라면 풀어줄 수 있을 겁니다.”
“······외부인?”
중대장이 고개를 돌려 성우를 바라보았다.
“좆 까는 소리하고 있네. 너희는 계속 골드나 모아서 나한테 주면 돼. 그러면 내가 알아서 다 해결해 주겠다고! 이 무능한 것들아!”
강 중사는 여전히 싸울 의지를 잃지 않은 듯 했다. 그는 혼자서 무어라고 중얼거리더니 품속에서 작은 케이스 하나를 꺼냈다.
“이건 안 쓰려고 했는데.”
“······그건! 이봐요 강 중사님!”
그 모습에 이 대위가 기겁을 했다. 하지만 강 중사는 케이스에서 정체불명의 주사기를 꺼내들더니, 자신의 팔에 냅다 꽂았다. 주사액이 팔 안으로 흘러들어갔다.
“넌 닥쳐! 주둥이만 털어대는 샌님 새끼야! 으으! 애, 애들 관리나 똑바로 할 것이지······. 으윽!”
대체 주사기에 담긴 게 무엇인지, 강 중사는 고통에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으아아아!”
이어서 팔뚝을 타고 핏줄이 돋아나는 게 보였다. 몸에서 무슨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게 확실했다.
“다, 당장 막아요! 저건 ‘수인화 앰플’입니다! 저게 폭주하면······.”
“으아아! 너! 다, 닥치라고!”
수인화 앰플이라고? 수인은 카드를 고르지 않은 이들이 변하는 모습을 말했다. 그걸 다른 방법으로 강제할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성우가 나서기 전에 강 중사가 먼저 움직였다. 그는 바닥을 박차, 이 대위를 향해 쇄도했다. 그리고 눈 깜짝할 사이에 목덜미를 할퀴어버렸다.
어느새 그의 몸은 새로이 자란 털로 수북해졌고, 길어진 손가락 끝에는 날카로운 발톱이 자라나 있었다.
“컥, 커······.”
그의 목이 베인 걸 넘어서, 한 뭉텅이가 잘려나가 있었다. 피가 폭포처럼 흘렀다.
“으아아!”
“젠장! 물러 서!”
최 상병의 분대는 재빨리 뒤로 물러섰다. 그러나 강 중사의 목표물은 그들이 아니었다.
“너, 이 개새끼! 크아아!”
그는 곧장 돌아서서 김 병장을 향해 달려들었다. 김 병장이 반사적으로 검을 뽑아들었지만 강 중사가 너무나 빨랐다.
그런데 그 순간, 누군가 김 병장의 어깨를 잡아당기며 앞으로 튀어나갔다. 지수였다. 그녀는 환도의 손잡이를 움켜쥐고 강 중사와 정면으로 맞부딪쳤다.
훅!
강 중사의 발톱이 지수의 머리로 날아들었다. 하지만 지수는 허리를 숙여 발톱을 피했다. 머리카락 몇 가닥이 발톱에 잘려나갔다. 그뿐이었다. 그녀가 발도 했다.
촤악!
발도와 동시에 강 중사의 옆구리를 베고 지나갔다.
화르르!
“으아아아!”
일격에 엄청난 피가 뿜어져 나왔고 동시에 불꽃이 치솟으며 빵빵하게 부푼 군복을 태우기 시작했다.
강 중사가 놀라며 몸을 뒤틀어대는 사이, 지수가 그의 등 뒤를 돌아가 오른 쪽 사각에서 칼을 휘둘렀다. 이번에는 오른쪽 허벅지였다.
촤악!
강 중사의 몸이 크게 흔들렸다.
퍽!
하지만 발차기를 미처 피하지 못했다. 강 중사의 뒤차기가 지수의 복부에 명중했다. 그녀의 뼈 갑옷이 으스러지며, 몸이 공중에 붕 뜨더니, 트롤의 옆구리까지 날아갔다.
텅!
“헉! 흐아아······ 하아!”
그녀는 배를 움켜쥐고 숨을 몰아쉬었다. 단 한방을 허용했음에도 온몸에서 힘이 쭉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그때, 트롤의 몸 위에서 성우가 뛰어내렸다.
“멋졌습니다. 제가 날로 먹겠군요.”
이어서 웨어 베어 스켈레톤들이 앞으로 나섰다.
“으아아! 으아아악!”
강 중사는 몸에 붙은 불을 끄기 위해서 난리법석을 피웠다. 그러는 동안에도 몸은 점점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주황색 털이 목덜미와 등을 뒤덮어 갔고, 두개골의 모양도 변해갔다. 그리고 이마에 선명한 검은 무늬, 그건······.
“웨어 타이거?”
거대한 호랑이였다.
“좋은 뼈가 하나 늘었군.”
곰 네 마리가 호랑이 사냥을 시작했다.
***
제10전투비행단 정문 앞 편의점, 박 중령이 뜨거운 블랙커피를 홀짝이고 있었다.
“별로군.”
대대장실에 고급 커피 머신을 구비해두고 원두를 내려마시던 그였기에, 이런 인스턴트 맛에는 인상이 절로 찌푸렸다. 첫날에 죽은 부관이 커피를 참 내렸던 것 같았다.
“대대장님, 저기, 병사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오······.”
한 젊은 장교의 말에 몸을 일으켰다. 그의 말처럼 정문에서 한 그룹의 병사들이 나왔다. 그리고 곧장 편의점을 향해 다가왔다.
선두에 선 이는 김 병장이었다. 병사들은 편의점에 멈춰 섰고, 김 병장만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는 경례하지 않았지만, 박 중령은 아랑곳하지 않고 급하게 물었다.
“성공했나?”
“보스를 잡았습니다.”
“좋아, 아주 좋아. 근데······ 강 중사는? 중대장은?”
박 중령은 그제야, 두 간부가 아니라 병사 분대장이 보고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둘 다 죽었습니다.”
“뭐? 그럼······ 그 자식은?”
그 자식, 성우를 지칭하는 말이었다.
짤랑―
차임벨이 울리며 하얀 뼈 갑옷을 입은 남자가 들어왔다.
“앉으시죠.”
드르륵―
그가 의자를 끌고 와 박 중령 앞에 앉았다. 박 중령은 그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천천히 제 자리에 앉았다.
“이번에는 제가 제안을 드릴 겁니다.”
“······.”
“박 중령님 위에 연대장이 있다고 했죠?”
박 중령은 빳빳하게 굳은 얼굴로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집단 퀘스트에 따라서 모든 골드는 그 사람, 연대장한테 지급되는 거고요?”
“그걸 어떻게 안 건지는······ 묻지 않아도 되겠군.”
박 중령은 노기가 가득한 얼굴로 김 병장을 노려봤다. 하지만 김 병장은 꿋꿋하게 그를 마주보았다.
“저를 죽이라는 명령을 내린 건 박 중령님입니까? 아니면 연대장입니까? 똑바로 말씀 안하시면 이 자리에서 바로 죽습니다.”
“······모든 명령은 부대장께서 결정하신다.”
“시너지라는 것도 그 사람한테 부여됐겠군요.”
김 병장이 말하길, 이런 사태가 벌어진 첫 날, 부대는 엄청난 희생일 치루며 영내에 출현한 몬스터들을 몰아냈다고 했다. 하지만 그 이후가 문제였다.
처음에야 모두가 한 마음으로 대응했지만, 상식 밖의 상황 속에서 혈투까지 겪고 나자 부대의 기강과 위계가 유지 되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데 그때, 이상한 시너지가 하나 발휘되었다.
- 집단 혈투에 대한 보상으로 ‘히든 시너지 효과’가 부여됩니다.
[시너지 목록]
1) 우국충정의 가시밭 길(히든)
- 구분 : 특별 시너지
- 조건 : 일정 조건 만족
- 효과 : 당신의 지휘관에게 ‘사령관(Legatus)’ 직업이 부여됩니다. 사령관은 당신에게 어떠한 명령을 내릴 수 있습니다. 불복종할 시 ‘징벌’을 부여받아 모든 능력치가 제한되고 불에 타는 고통을 느끼게 됩니다.
* 매일 오전 6시마다 ‘집단 퀘스트’가 주어집니다. 퀘스트 클리어 시 일정 시간 동안 버프 효과를 얻습니다.
* 명령을 거부하고 지역을 이탈할 시 ‘탈영병’ 직업으로 전환됩니다. 직후 3일 간 ‘패잔병’ 패널티가 부여되어 근처 몬스터의 집요한 추격을 받습니다.
그건 재수 없는 일이었다. 더욱 단단하고 고통스러운 목줄을 차게 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메시지를 무시하고 탈영한 이들도 있었으나, 그리 멀리가지 못한 곳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 온갖 몬스터들의 추격을 받은 게 분명했다.
“······.”
“할 말 더 없으십니까?”
“전부 대의를 위한 일이다.”
성우가 코웃음을 쳤다.
“그래요? 그 대의가 아마 국가 수복이라고 하셨죠? 그럼 국가를 전복시킨 시스템에 맞서기 위해서, 바로 그 시스템을 의지하고 계시는 겁니까?”
모순이다. 성우의 말에 박 중령 스스로도 이유를 알 수 없는 혼란을 느꼈다.
커뮤니티라는 시스템은 믿을 수 없다는 이유로 경멸하면서, 정작 누군가를 구속하기 위해서 시너지라는 시스템을 적극 이용했다.
분명 앞뒤가 다르다. 어쩌면 이건, 이 대위가 죽기 전에 느꼈던 의문과 비슷할 지도 몰랐다. 하지만······ 박 중령은 이내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리고 스스로를 다그쳤다.
‘전부 국가를 위해서 필요한 일이다. 대의를 위해선 희생과 타협이 필요한 법이다. 그렇고말고.’
드르륵―
박 중령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성우가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럼 그 사람한테 안내하시죠. 제가 뭘 하나 제안하고 싶은데······ 제안은 승낙할 수 있는 사람한테 해야 하는 법이니까요.”
그가 편의점 문을 열고 나갔다. 그의 앞으로 백색의 야수들이 도열해 있었다.
그것들 중 유독 눈에 띄는 건, 거대한 송곳니를 가진 3미터 크기의 스켈레톤, 웨어 타이거 스켈레톤이었다.
어느 격변기가 그렇듯, 과거의 무력은 현재의 무력에게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