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
13) 활주로의 보스 레이드 – 2
경수의 말에 따르면 근처 고블린 부락을 토벌하고 돌아오던 중, 어디선가 세 마리의 웨어 베어가 달려들었다고 한다.
“전부 제 탓입니다. 제가 조금 더 주의를 기울였어야 했는데 옥상에서 뛰어내릴 줄이야······.”
그렇게 토벌대 소속의 5명의 남자가 살해당했다.
“아닙니다. 그 누구였더라도 대응하기 힘들었을 겁니다. 경수 씨는 충분히 잘하셨어요.”
“아······.”
성우는 경수의 어깨를 움켜쥐고 위로했다. 경수는 실제로 제 몫을 다했다.
다른 토벌대원들이 정호가 펼친 안전 구역 안으로 허겁지겁 도망칠 때, 경수는 모든 사람들이 대피할 때까지 입구를 지켰다. 그 순간, 정말 다행이도 성우가 나타났다.
“심지어 마지막 순간에 건물 안으로 들어가려는 놈을 죽이기까지 하셨잖아요.”
하필이면 마지막 한 마리가 부상을 입은 채, 미술관 정문으로 돌진해 들어갔고, 바로 그곳에 경수가 서 있었다.
그런데 그가 내지른 창대가 웨어 베어의 눈을 정확히 파고들어가 뇌를 파괴한 것이다. 운이 좋기도 했지만, 어디까지나 경수의 책임감이 만들어낸 결과라고 볼 수 있었다.
“역시 경수 씨에게 부탁하길 잘했습니다. 저는 날이 밝는 대로 다시 떠날 겁니다. 계속 부탁드리겠습니다.”
성우는 경수에게 힘을 북돋아준 뒤 일어섰다. 그때, 2층 계단에서 강 중사가 내려오고 있었다.
“무슨 일 있었습니까? 자느라고 몰랐네.”
방금 전까지 사람이 죽어나가는 상황이었거늘, 저게 군인이 할 말인가 싶었다.
“습격이 있었습니다.”
“예, 뭐······ 웨어 베어였다고 하던데? 저도 그거 한 마리 잡아봤거든요. 딱, 손을 맞대는데 와, 힘이 무지막지하더라고요. 성우 씨도 잡아보셨나?”
그는 꺼칠한 손을 내밀며 씩 웃었다. 온 몸에서 마초적인 느낌이 풀풀 풍겼다.
“저는 언제든지 만져볼 수 있어서요.”
성우의 등 뒤로 네 마리의 웨어 베어 스켈레톤이 서 있었다. 그리고 그것들은 이내 어디론가 홀연히 사라졌다. 아공간으로 체류시킨 것이다.
“와, 그것도 스킬이군요? 정말 이 세상은 알다가도 모르겠단 말이지? 그래서 저는 단순무식한 걸 선호합니다.”
김 병장에게 듣기로는, 강 중사는 3성짜리 ‘스트라이커’를 뽑았다고 했다. 무기를 사용하는 게 아니라 펀치를 바탕으로 하는 격투기가 그의 전투 방식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 이후 연계 카드로는 뭘 뽑았는지 말해주지 않는다고 한다. 나름 주요 전력에 대한 보안이라나?
그때 1층 홀 한 쪽에 서 있던 김 병장이 이쪽으로 다가왔다.
“강 중사님, 성우 씨가 곧 레이드에 출발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강 중사님도 준비를······.”
“얼씨구? 너 언제부터 이 사람 대변인이 된 거야?”
“······예?”
“작전이 시작되면 내 사수께서 직접 나한테 명령 하달하시겠지 왜 네가 굳이 나서서 전해주려 하냐고. 아무튼, 토벌 작전은 제대로 하고 온 거 맞아?”
“물론입니다.”
하지만 강 중사는 콧방귀를 뀌었다.
“내가 보기엔 아니야. 너 이 새끼 경기도청 작전 때 애들 싹 죽고 나서부터 계속 헛소리 해댔지? 무의미한 죽음이었다고 어쩌고 한 거 내가 모를 줄 알아?”
“아니 그건······.”
“그 이후로 골드 수입도 줄고 좀 뺑이 치는 것 같은데, 너희 중대장은 그냥 넘어갈지 몰라도 난 아니다. 연대장님이 너희 위치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는 거 알지?”
강 중사는 원래 생각이 없는 스타일인가 싶을 정도로 성우를 신경 쓰지 않는 듯, 필터 없이 내뱉었다. 그리고 그 대화 속에서 중요한 정보를 발견했다.
‘실시간 위치 파악이라? 군대 역시 어떤 시스템으로 엮여있군. 그래서 초기 이후 탈영이 억제되고 있는 거고?’
그런데 김 병장의 얼굴이 붉어지기 시작했다. 강 중사가 무언가 건드린 모양인지, 더 이상 참지 못하겠다는 표정이었다.
“강 중사님 다른 건 몰라도 뺑이라뇨? 말씀이 많이 지나치십니다. 방금 작전에서도 혀, 형석이가! 형석이가 죽었습니다! 이런 거 아시고 하는 말씀입니까?”
그는 발끈하며 목에 걸린 군번줄 중에서 하나를 끄집어냈다.
“시체도 못 들고 왔습니다! 강 중사님이 뭘 알고······”
그 순간, 강 중사의 왼손이 김 병장의 멱살을 움켜쥐었고, 김 병장이 쥐고 있던 전사자의 군번줄이 끊어지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미쳤냐?”
“윽, 으으!”
“헛소리 하지 말고 졸병답게 골드나 모아와. 그래야 내가 보스 몬스터를 때려눕히지. 어차피 너희는 고블린이나 오크 따위나 잡는 주제에 왜 이렇게 앓는 소리를 해대? 정작 무식한 괴물들은 내가 다 잡아주잖아?”
“아, 앓는 소리라뇨!”
“애들이 죽어나가는 건 네가 무능해서야.”
그때, 누군가 강 중사의 두꺼운 팔뚝을 움켜쥐었다.
“강 중사님, 그럼 김 병장님 통해서가 아니라 제가 직접 말씀드리죠. 빨리 준비 부탁드립니다.”
성우의 말에 강 중사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아, 이거 일단 군기부터 좀 잡아야 되겠는데요? 기강이 좀 흐트러······.”
“시간이 없다고 들었는데, 아닌가보죠?”
강 중사는 결국 움켜쥐었던 멱살을 놓았다. 그 동작 하나하나가 신경질적이었다.
“······그럽시다. 군장 싸는 거야 도가 텄으니 사수께서나 준비 빨리하시죠. 일단 담배 한 대만 핍시다.”
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건물 밖으로 나가버렸고 김 병장은 바닥에 쓰러진 채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멱살을 잡힌 것만으로도 군복의 상의가 너덜너덜해진 상태였다. 그의 주변으로 분대원들이 달려왔다.
“김 병장님 괜찮으십니까?”
“안 다치셨습니까? 저 개새끼가 진짜······.”
다른 건 몰라도 김 병장이 병사들 사이에서는 존중 받는 모양이었다.
“어, 괜찮아. 후, 성우 씨, 제가 또 못 볼 걸 보여드렸군요.”
“아닙니다. 괜찮으십니까?”
“물론입니다. 강 중사가 성우 씨 앞이라고 괜히 센 척한 모양입니다. 원래 경쟁심이 장난이 아닌 인간지라, 성우 씨가 등장한 이후 계속 신경 쓰고 있는 게 느껴졌거든요.”
“그렇군요.”
“재수 없게도 옆에 서 있다가 물렸네요. 저희도 강 중사와 함께 성우 씨를 따라가기로 한 지원 병력이니 준비를 빨리 마치겠습니다.”
김 병장은 옷을 털고 자신의 무기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그의 어깨가 유난히 굽어 있었다.
***
제10전투비행단은 수원시 세류동, 정확히는 세류역 바로 옆에 위치했다.
그리고 그곳에 위치한 한 편의점 앞, 두 대의 군용 트럭이 편의점 입구를 막고 서 있었다. 매장 안에는 군 간부들이 플라스틱 의자를 깔고 앉아 있었다.
“대대장님, 보고 드립니다. 커뮤니티에 올라온 소식입니다. 영등포 검사가 혜화동의 대학생 그룹까지 흡수해서 점점 더 덩치를 불려나가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오늘 아침에 부산에서도 길드 선포가 있었습니다. 어······ 이름이 ‘화랑’이랍니다.”
이 대위의 말에 박 중령이 인상을 찌푸렸다.
“빨갱이들이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드는군. 화랑이라니? 웃기고 자빠졌어 아주. 이따 연대장님 보고 들어가야 되니까 정리해놔.”
“예. 그런데 커뮤니티에는 왜 아직까지도 군 소속이라는 게시물은 없을까요? 명령만 내려주시면 제가 글을 쓸 수도 있습니다.”
박 중령을 고개를 저었다.
“중대장. 그 이유를 잘 생각해보게. 독자적인 전산망이 아니라 정체불명의 통신을 사용하는 걸 꺼리고 있는 거겠지.”
“아?”
이 대위는 습관적으로 깨달았다는 듯한 감탄사를 냈지만, 그의 눈에는 의이함이 담겨있었다.
“군이나 정부라고 소속을 밝히는 순간, 적들에게 위치가 들통 날 수도 있지 않은가? 정보는 생명이거늘, 누가 만들어낸 건지도 모르는 프로그램을 쓸 수는 없네. 정부와 군은 각자의 위치에서 신중하게 대처하고 있는 걸세.”
이 대위는 씁쓸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이제는 상관의 판단력을 믿는 게 옳은 건지 진지하게 의문이었다. 커뮤니티 시스템이 정체불명이라고 배제하기에는 그 영향력이 너무 컸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가 독자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었다. 상관의 명령에 복종해야만 하는 몸이었으니 말이다.
그때, 박 중령의 시선이 느껴졌고 이 대위는 얼굴에서 불만을 감췄다.
“그리고 병사들에게 확실히 전달했지? 보스를 쓰러뜨리면 다음 표적은 놈이야. 연대장님께서는 비협조적인 무력은 전부 제거하길 바라시네.”
“예. 확실하게 전달했습니다. 강 중사와 함께 두 개 분대가 투입될 예정입니다. 1분대, 3분대, 그러니까 김 병장과 최 상병의 분대인데, 최 상병의 분대는 미리 잠입해서 마지막 순간에 놈을 치기로 했습니다. 저 역시 현장에서 대기하겠습니다.”
“좋아. 웬만하면 바로 죽이지 말고 놈이 받아간 10만 골드, 아니, 더 많은 양을 받아냈으면 하네. 물론 무리하지 말고 가능하다면 말이야.”
“잘 판단해서 처리하겠습니다.”
“그래, 자네는 믿을 수 있지.”
그때, 원형 방패를 둘러맨 병사 한 명이 편의점 문을 열고 들어왔다.
“충성! 대대장님, 도착했습니다.”
성우 일행이 도착한 것이었다.
“이쪽으로 오겠다던가?”
“아닙니다. 바로 비행단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재수 없는 놈.”
중대장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럼, 작전대로 진행하겠습니다.”
“확실하게 끝내게. 언젠간 우리의 대의에 걸림돌이 될 테니 말이야. 연대장님의 판단처럼 미래를 위해서······ 반드시 놈을 처리해야만 해.”
중대장이 경례를 했다. 그의 표정은 오묘했다. 믿을 수 없는 명령이지만, 그대로 수행해야만 하는 자의 얼굴이었다.
“충성. 강 중사가 놈의 머리통을 부술 겁니다.”
***
긴 활주로가 눈앞에 펼쳐졌다.
“어이구? 저래서야 비행기가 뜰 수 있으려나?”
강 중사가 골치 아프게 됐다는 듯 이마를 감싸 쥐었다. 항공기의 이착륙을 위해 언제나 철저하게 관리되어야만 하는 그곳은 이미 엉망진창으로 변해있었다.
두터운 아스팔트 바닥이 쟁기로 긁어내기라도 한 듯, 갈라지고 헤집어져 있는 것이었다.
“보스 놈이 바닥에 낙서 좀 하면서 논 모양입니다. 제가 며칠 전에 잠깐 놀아줬는데, 아주 혈기왕성하더라고요. 개 같은 놈.”
성우의 파트너로 지명된 강 중사이거늘, 정작 보스 몬스터에 대해서 자세히 알려주지 않았다. 성우가 놈을 사냥하길 원하는 게 맞나 싶을 정도로, 의도적으로 정보를 제한하고 있는 것이다.
그건 군 지휘부의 계략까진 아닌 듯 했고, 다분히 강 중사의 시샘과 심술이 첨가되어 있는 듯 했다. 하지만 성우는 김 병장으로부터 충분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보스 몬스터의 이름은 ‘자이언트 트롤’이다.‘
판타지에서 트롤이라는 생명체는 엄청난 회복력을 자랑하는 거인으로 묘사된다.
이곳의 트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자이언트라는 수식어답게 그 신장이 5미터에 이르며, 피부는 철판만큼 단단하다. 그리고 어찌어찌 그 피부를 찢어낸다고 하더라도 순식간에 재생되는 게 가장 큰 골칫거리고 했다.
쿵― 쿵―
정면의 항공기 격납고 안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조금 열려있는 틈으로 두꺼운 팔 하나가 튀어나오더니 격납고의 문을 움켜쥐었다.
드르륵! 텅!
놈은 격납고의 문을 신경질적으로 열어젖히고는 그 육중한 몸뚱이를 드러냈다.
그르르······.
- 지역 보스 몬스터 ‘자이언트 트롤’이 출현했습니다.
거인, 달리 표현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미친······.”
갈색 가죽 옷을 입은 암녹색 괴물이 일행을 마주보고 우뚝 서 있었다.
우둘투둘한 돌기가 돋아있는 피부는 한눈에 봐도 질겨 보였고, 두꺼운 목에서는 살점이 들러붙은 해골을 엮어 만든 장신구를 걸고 있었다.
그리고 오른손에는 고목 한 그루를 통째로 깎아 만든 게 아닐까 싶은, 거대한 몽둥이를 쥐고 있었다.
“와, 저, 저런 곳에서는 비행기나 나올 줄 알았지, 두 발 달린 게 나오는 게 퍽 어울릴 줄은······.”
“지금까지 상대했던 것들과는 차원이 다를 것 같네요.”
한호와 지수는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으며 김 병장의 분대 역시 지레 겁을 먹은 게 보였다. 하물며 성우 역시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가장 큰 스켈레톤인 웨어 베어 스켈레톤 보다 두 배는 더 크다. 그리고 보스 몬스터인 걸 감안하면 애초에 비교할 대상이 아니겠지.’
성우는 웨어 베어 스켈레톤을 4마리 얻은 뒤, 힘으로 맞붙어 보겠다는 계획을 세웠었다. 아무래도 빠르게 접어야 될 것 같았다.
쿵― 쿵―
놈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어때요 사수님, 견적 좀 나오십니까? 늦지 않았습니다. 지금이라도 10만 골드 환불하셔도 됩니다.”
강 중사가 낄낄 웃었다. 하지만 성우는 대답 없이 공략을 시작했다.
- 주의! 해당 지역에 ‘죽음의 응답’이 시작됩니다.
가장 먼저, 트롤의 앞에 좀비를 소환했다. 활주로의 아스팔트 노면 위로 질퍽한 진흙이 생성되었고, 그 안에서 좀비들이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우어어―
10마리의 좀비가 자이언트 트롤을 향해 미친 듯이 뛰어갔다. 하지만 5미터에 이르는 거인 앞에 서니 그저 작은 장난감처럼 보일뿐이었다.
트롤은 그것들이 가소로운 지 몽둥이를 휘두르지도 않았고, 벌레 밟아 죽이 듯 발로 짓밟기 시작했다.
쿵! 쿵!
성우는 바로 그 타이밍을 노렸다.
“폭발.”
펑!
트롤의 발아래에서 시체 폭발이 일어났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언제나 엄청난 효과를 보여줬던 시체 폭발조차, 놈을 기우뚱하게 만드는데 그친 것이다.
‘단순히 큰 게 아니다. 방어력이 엄청나다. 더군다나 회복력도 좋으니, 내 저주로 인한 지속적인 데미지도 소용없을 거다.’
성우는 지금까지 운이 좋았다. 슬라임, 흡혈귀, 마법사 등 만나는 적마다 상성에서 앞섰던 것이다. 하지만 언제나 운이 좋을 순 없었다.
‘내 천적이나 다름없군.’
사실 상성이 따로 없을 정도로 강력한 몬스터임에는 분명했지만, 성우의 주요 스킬들이 제 기능을 못해버리는 게 치명적이었다.
“이런, 필살기도 안 먹히시나 본데?”
강 중사는 아예 팔짱을 끼고 지켜보고 있었다. 팝콘만 있었으면 신나게 씹어댈 것 같은 표정이었다.
“강 중사님, 특수부대셨다고 했으니 한 마디 여쭙겠습니다. 저런 거인을 상대할 땐 어떻게 해야 될까요?”
강 중사가 실실거리며 볼을 긁적였다.
“저한테 다 자문을 구하시고 이거야 원, 저 괴물을 마주하니 머리가 하얗게 변하신 모양입니다? 미안하지만 저는 특수전이 적성에 안 맞아서 전출된 입장이라 작전 따위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냥 쏘라는 거 쏘고, 터트리라는 거 터트리고, 패라는 거 패는 사람입니다.”
“음, 이럴 땐 특수부대보다 영화 시나리오 작가가 한 수 위군요.”
“······예?”
“혹시 스타워즈나 13구역이라는 영화 보셨습니까?”
그 말에 강 중사의 얼굴에 황당함이 스쳐지나갔다. 이 상황에 도대체 무슨 말이냐는 표정이었다.
“문득 그런 게 진짜 될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뭐, 해보면 알겠죠.”
성우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스켈레톤을 소환한 뒤, 녀석들이 매고 있는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기 시작했다.
그건 형형색색의 밧줄 뭉치였다. 정확히는 ‘클라이밍 로프’ 혹은 ‘자일’이라고 불리는 아주 질긴 산악용 로프였다.
“역시 뭐든 챙겨둬야 된다니까. 자전거 용품점 옆에 있는 등산 용품점까지 들리길 잘했지. 한호야, 지수 씨, 좀 도와주세요.”
“아, 네.”
“근데 뭘 하시려고?”
성우는 클라이밍 로프를 웨어 베어 스켈레톤의 등뼈에 묶었다. 그리고 나머지 한쪽 끝을 다른 웨어 베어 스켈레톤의 등뼈에 똑같이 묶었다. 2마리가 로프를 통해 한 쌍으로 연결 된 것이다.
쿵― 쿵―
그 사이에도 트롤은 다가오고 있었다. 놈은 안면에 미소를 띤 채, 아주 느긋한 걸음걸이로 다가왔다.
강 중사는 그 괴물과 알 수 없는 작업을 하고 있는 성우를 번갈아 바라보며, 조금씩 표정이 굳어졌다.
“저기, 저 놈이 이제 슬슬 가까워져 가는데 대체 뭘 하시는 겁니까? 예?”
“설명서에 따르면 이게 ‘인장 강도’가 꽤나 강해서 2톤의 힘을 버틸 수 있다고 합니다. 물론 저 괴물은 그 이상을 힘을 내겠죠. 그러니까 이렇게 여러 개를 겹쳐서······.”
그렇게 2쌍, 총 4마리의 웨어 베어 스켈레톤의 등에 클라이밍 로프가 여러 가닥 묶였다. 대충 보기로는 10가닥도 넘는 양이었다.
“충분할지 모르겠지만, 출발.”
성우의 한 마디에 정체불명의 작전이 시작되었다.
덜그럭! 덜그럭!
등에 로프를 매단 웨어 베어 4마리가 앞으로 돌진했다. 녀석들의 움직임마다 등 뒤의 로프가 파동처럼 찰랑거리며, 바닥에 둥글게 말려 있는 로프 뭉치가 빠르게 짧아지기 시작했다.
우어어어!
자이언트 트롤도 전투가 다가옴을 느끼며 괴성 내질렀다. 역시 거대한 울림통에서 나오는 소리인 만큼, 먼 거리에서도 두개골이 덜덜 떨릴 정도였다.
“으윽! 목소리 한 번 겁나 크네!”
그 순간, 웨어 베어 스켈레톤이 양측으로 나뉘었다. 자이언트 트롤의 목전에 닫기 직전, 두 마리는 왼쪽, 두 마리는 오른쪽으로 달려 나간 것이다.
그어?
자이언트 트롤 역시 기괴한 행위 앞에서 멈춰 섰다. 하지만 놈의 두뇌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덜그럭! 덜그럭!
웨어 베어 스켈레톤들이 자이언트 트롤의 주변을 빙글빙글 맴돌기 시작했다. 한 바퀴, 두 바퀴, 그리고 그에 따라, 클라이밍 로프가 자이언트 트롤의 다리를 서서히 조여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별로 신경 쓰이지 않을 정도였지만, 생각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로프의 길이가 짧아지며, 놈의 다리를 순식간에 휘감았다.
그아아?
압박하는 힘은 생각 외로 무지막지했다. 결국 놈의 발목에서부터 골반까지, 매우 질긴 클라이밍 로프가 완전히 칭칭 휘감겨졌고, 그 상태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한 채, 휘청거리다가······.
쿵!
옆으로 고꾸라지고 말았다.
“가라.”
바로 그 타이밍에 성우의 모든 스켈레톤들이 움직였다. 엄청난 속도로 무방비가 된 거대한 고깃덩어리를 향해 쇄도하는 것이다.
“허, 허허······.”
강 중사는 그 기가 막히는 모습을 바라보며 실실 웃었다. 눈앞에 벌어지는 장면도 기절초풍할 만 했지만, 그의 속내에는 다른 고민이 있었다.
‘이 놈이 보스와 치고받고 싸워서 전력이 약해지면, 바로 그 틈을 노리려고 했는데······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그때, 성우이 손이 그의 등을 떠밀었다.
“자, 가세요. 패라고 할 때 패는 거 잘하신다면서요? 생각보다 훨씬 쉽게 잡을 수 있겠어요.”
강 중사의 머리가 복잡해졌다.
이 인간을 죽일 타이밍을 아무래도, 새로 잡아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