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네크로맨서-36화 (36/244)

# 36

12) 뒤늦게 온 군인들 – 2

박 중령은 성우가 나간 뒤에도 줄곧 소파에 앉아 있었다. 자존심을 굽히지 못하고 성질을 냈지만, 중요한 협상이 결렬 되어버리니 막막하기만 했다.

“대대장님, 솔직히 그 녀석 정도의 실력자는 없습니다. 저도 흡혈귀 놈들이랑 싸우는 걸 직접 봤지만······. 상상 이상입니다.”

대위가 질렸다는 듯 말했다. 그는 김 병장과 함께 화성 행궁 근처 건물에 잠입해서 안전 구역에 모여드는 생존자들을 감시하는 임무를 맡았었다.

그렇게 말도 안 되는 장면을 목격하고야 말았다. 수십의 언데드를 부리며, 인간을 초월한 괴물들을 족족 잡아 죽이는 성우의 모습을 말이다.

“강 중사도 안 될 정도인가?”

강진욱 중사, 그는 부대 내에서 최고 수준인 9레벨의 플레이어였다. 지금까지 몬스터 토벌의 선봉에 서며 그 누구보다 대단한 활약을 펼쳐왔다.

“그게 좀 다릅니다. 강 중사는 혼자서 강한 단일 무력이라면, 그 녀석은······ 군대입니다.”

“군대라,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 아닌가? 나는 강 중사를 필두로 한 플레이어 병사들이 힘을 합치면 그깟 해골을 부리는 놈을 이길 수 있을 거라고 보네. 그게 바로 군인의 힘이 아니겠나?”

상관의 단언에도 대위는 고개를 저었다.

“대대장님, 중요한 순간에 목숨을 버릴 수 있는 용기를 가진 병사가 몇 명이나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가령, 폭탄을 가지고 적을 향해 뛰어들 수 있는 병사 말입니다.”

“······응?”

“절묘한 기회를 만들기 위해서 목숨을 내던질 병사, 그 유무는 엄청날 겁니다. 그런 면에서 녀석이 부리는 군대는 차원이 다릅니다. 용기가 아니라, 그냥 두려움 자체가 없습니다. 언제든지 목숨을 내던지고 심지어 다시 되살아납니다. 그런 놈이 서른 마리면······ 저는 감히 대대급 병력보다 강하다고 봅니다.”

박 중령은 총명한 중대장을 언제나 믿어왔다. 옆에서 듣고 있던 김 병장이 덧붙였다.

“대대장님.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제가 그 분한테 정보를 주고 물약을 얻어서 살아왔다고 보고 드렸던 것처럼, 거래에 있어선 확실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걸리는 게 있었다.

“십만 골드라······.”

돈이었다.

“가능한 액수입니다. 부대 근처에 토벌대를 꾸준히 운영하면서 벌어들인 골드를 보고하라고 일러두지 않았습니까? 평균적으로 하루에 약 6만 골드를 얻었습니다.”

말이 쉽지 대대 규모의 토벌대가 이틀 간 벌은 골드, 그걸 한 번에 상납해야 된다는 뜻이었다. 박 중령 역시 골드가 곧 힘이 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중요한 지역을 수복하는 게 우선이다. 그 괴물이 10전투비행단의 활주로를 장악하고 있는 이상 우리는 우물 안에서 벗어날 수 없다.’

사실, 여유를 두고 보스 몬스터를 처리해도 되거늘, 이들이 조급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놈이 하필이면 수원시 세류동에 위치한 ‘제10전투비행단’에 둥지를 틀고 있는 것이었다.

‘연대장님이 직접 플레이어 병사 20명을 보냈지만 10분 만에 전멸했지. 그 이후로 공략을 포기했고······.’

군사 작전에 가장 중요한 건 수송이다. 하지만 지상은 너무 위험하다.

버려진 차들로 막혀 있는 건 물론이거니와, 전투 차량을 동원해서 억지로 돌파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렇게 길을 뚫는 과정에 몬스터의 습격에 무방비로 노출 되는 건 두말할 것도 없었다.

현재 상황에서 가장 완벽한 교통은 ‘하늘’이다. 와이번 무리와 마주치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이런 시팔······ 어쩔 수 없지 놈한테 10비행단을 맡기도록 해. 중대장이 알아서 그놈의 일당 챙겨주고!”

일당이라고 표현하기에는 너무 큰 금액이었다. 하지만 그의 자존심 상 그깟 푼돈이라고 여기고 싶었다.

“줘, 줘버리라고······ 대의도 없이 돈에 미친 놈. 언젠가는 배를 갈라서 꺼내오자고.”

박 중령이 이를 박박 갈았다.

***

성우는 자신을 이성민 대위라고 소개한 군인으로부터 10만 골드를 받았다. 이로써 무려 398,880골드라는 거금을 손에 들고 있게 됐다.

“후, 우리 병사들이 가진 골드 싹 수거해서 간신히 10만 골드 맞췄습니다. 빠른 시일 내에 부탁드리겠습니다.”

“어차피 앞으로 5일 간은 지역 락이 걸려 있지 않습니까? 그 안에 처리해드리면 되겠죠?”

첫 번째 메인스트림이 진행되는 7일 간, 화성시와 수원시를 제외한 지역으로 벗어날 수 없다는 조건이 부여되어 있었다. 종료까지 앞으로 5일 남았다.

“공항 정비도 필요할 테고, 혹시나 격납고에 보관 중인 항공기가 몬스터에 의해 파손될 우려도 있으니 더 빨랐으면 좋겠습니다. 조종사는 구출했지만 항공기가 쓸 수 없게 된다면 모든 게 물거품이 됩니다. 그러니까 3일 안에 부탁드립니다.”

“노력해보죠.”

“반드시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토벌이 시작될 때 우리 쪽에서도 몇 명을 파견할 예정입니다. 자, 강 중사님?”

이 대위의 말에 구릿빛 피부의 군인이 다가왔다. 그의 군복에 고공강하훈련 수료를 의미하는 HALO 패치 등, 다양한 패치가 부착되어 있는 걸 보아하니 특수부대에서 근무했던 모양이었다.

“강진욱 중삽니다. 재수 없게도 이 짬에 당신 부사수가 될 모양입니다.”

그는 성우에게 두꺼운 손을 내밀었고 성우는 말없이 맞잡았다. 강 중사는 이마를 한껏 찌푸린 상태였지만, 손아귀에 힘을 주는 유치한 짓은 하지 않았다.

“근데 그쪽 레벨이? 나보다 낮으면 이거, 영 찜찜할 것 같은데요?”

“10입니다.”

성우의 대답에 강 중사는 짐짓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젠장, 어떻게 올렸습니까? 하루 종일 오크 머리만 꺾어도 안 되던데? 꼼수 좀 있으면 알려주시죠.”

이에 대한 성우의 대답은 심플했다.

“오크보다 더 센 걸 잡으면 됩니다.”

“하, 하하······ 그래도 감히 조언 한 마디 올리건대 너무 잘난 척 하면 안 될 겁니다. 활주로에 사는 그 미친 괴물은 경우가 다르니까.”

방금 전, 김 병장이 와서 살짝 언지해주기를, 그들은 제10전투비행단의 활주로를 탈환하기 위해 스무 명 가량의 토벌대를 파견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10분 만에 전멸했고, 유일하게 살아서 탈출한 사람이 바로 이 사람, 강진욱 중사였다.

“조언 감사합니다. 그럼 3일 뒤까지 레벨 좀 올려두시길 바랍니다.”

성우는 더 이상 이 까까머리들과 농담을 주고받고 싶지 않았고, 곧장 등을 돌렸다.

***

흡혈귀들의 먹이가 될 뻔했던 광장의 생존자들은 그 이후, 성우의 주변에 눌러 앉았다. 여기까지는 예상했던 일이었다.

그런데 그가 1층에 모습을 드러내기만 하면 곳곳에서 웅성거림과 함께, 온갖 아우성이 터져 나올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오! 성우 씨다!”

“성우 씨 언제나 감사드립니다!”

“제발 우릴 지켜주세요! 제발요!”

그들은 성우에게 붙는 게 답이라는 걸 알아챘는지, 온갖 사정과 아부는 물론이거니와, 조잡한 선물을 보내오기도 했으며, 심지어 어떤 젊은 여자는 자신의 몸을 주겠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이들은 스스로의 생명을 지킬 수 없다는 사실을 절감하고, 안전에 대한 결핍을 느끼고 있는 중이었다.

“선배, 저 많은 사람들을 대체 어떻게 해야 될까요? 답이 안 나오네요.”

군인들이 나타난 이후 관심이 분산되기도 했지만, 생존자들은 여전히 성우를 더욱 의지했다.

‘분명 어딘가 쓸모가 있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저들은 단순한 난민이 아니다. 그리고 구제불능도 아니다.

‘저들 모두, 어떤 방식으로든 이 사태에서 살아남은 플레이어다. 그리고 각자 선택한 직업에 따라 다양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한호의 부모님 역시 전투에는 불필요한 인력이다. 하지만 각자의 스킬을 통해서 그 필요성을 입증했다. 성우는 이 생존자들 역시 비슷한 존재라고 생각했다.

“한호야, 아버지 오시면 저 안쪽 전시관이 안전 구역을 설치할 위치라고 알려드려.”

그렇기에 성우는 폐공장에 머물고 있던 생존자 그룹을 이곳으로 데려올 생각이었고, 이미 몇 시간 전, 경수와 태성이 그 호송 임무를 담당하러 출발한 것이었다.

잠시 뒤, 생존자 그룹과 온갖 물자를 실은 버스가 두 대가 도착했다.

“오, 확실히 여기가 더 넓고 견고하네. 시설도 깨끗하고. 좋아! 한호야, 저 안쪽에 안전 구역 만들면 된다고 했냐?”

시립 미술관은 3천 평에 이를 정도로 꽤나 넓은 편이었기에, 안전 구역을 만든다고 하더라도 극히 일부분만 보호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안전 구역은 말 그대로 대피소 역할만 해주면 그만이었다.

“근데 아빠, 지금 설치하실 필요는 없고요 혹시나 무슨 일이 생길 때, 그 위치에다 안전 구역을 만들 거라는 것만 알고 계시면 됩니다.”

안전 구역은 유지비용이 들어간다. 하지만 몬스터의 위협이 항상 계속 되는 건 아니었고, 이 잘 지어진 콘크리트 벽도 있으니 계속 펼치고 있을 필요는 없었다.

“좋아. 기억해두마.”

한편 성우는 경수를 2층 회의실로 불렀다.

“경수 씨, 위험한 길 운전해 오시느냐고 수고 많으셨습니다. 그런데 경수 씨께 부탁드리고 싶은 일이 하나 더 있습니다.”

“뭐든 말씀만 하십쇼.”

경수는 지수와 한호를 제외하고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이미 몇 차례 생사를 함께 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이 생존자 그룹이 앞으로 살아갈 수 있는 곳으로 만들어주셨으면 합니다. 사람들의 직업을 분류해서 적제 적소에서 움직일 수 있게요.”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습니다. 전투 직업만 있는 게 아니라 생활이나 생산에 특화된 직업도 있으니, 그 사람들을 활용해야겠군요.”

“네. 바로 그 말입니다. 직업과 스킬을 가진 이상 쓸모없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그리고······.”

성우는 검지를 들어 올려 회의실의 벽면에 걸린 ‘수원 문화관광지도’를 가리켰다.

“사람들 중에서 전투에 특화된 직업을 가진, 건강한 사람들을 뽑아서 사냥 팀을 조직하는 겁니다. 그리고 이 근처의 저 레벨 몬스터부터 공략해주세요.”

“몬스터 공략이라면 이 근처 안전을 확보 하는 건가요?”

경수의 물음에 성우는 고개를 저었다.

“목적은 골드와 병력입니다. 제가 없을 때도 이곳을 지킬 수 있게 일종의 경비대를 조성하는 겁니다. 이 일, 경수 씨에게 맡겨도 되겠죠?”

경수는 눈에 힘을 주고 고개를 끄덕였다.

“예! 부족하지만 신경 써서 해보겠습니다.”

처음에는 셔틀 버스 정류장에 갇힌 채 아무 것도 못하던 경수였지만, 이제는 분명하게 달라져 있었다. 이렇듯 사람은 바뀔 수 있다.

그리고 성우의 이런 계획을 들은 한호가 한 마디 했다.

“아, 게임 내에 마을을 만드는 거네요?”

“마을이라······.”

흔히 말하는 ‘마을’은 게임 안에서 필드를 제외한 안전지대를 이르는 용어였다. 그리고 확실히 그런 곳이 하나쯤 있으면 좋을 것 같았다.

“그런 게 있으면 언젠가 쓸모가 있을 테니까. 자, 우리는 다시 사냥하러 갑시다.”

***

뱀파이어 로드를 잡기 위해서 오른이와 웨어 베어 스켈레톤을 제외한 모든 스켈레톤이 폭사해버렸다.

그렇기에 성우와 일행은 꼬박 하루를 수인 사냥에 투자했고, 총 4마리의 웨어 울프 스켈레톤을 확보하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이 정도라면 지금까지 마주친 필드 몬스터는 웬만해서는 상대할 수 있었다.

그리고 밤이 오자 성우는 한 가지 작업에 몰두했다. 뼈 무기 제조로 만들 수 있는 모든 무기를 만들어본 뒤, 스켈레톤들에게 하나씩 쥐어 주었다. 그리고 그렇게 발동하는 시너지를 모두 기록했다.

‘시너지는 전투에서 가장 중요한 변수다. 상황에 따라서 필요한 시너지를 적용할 수 있도록 정보를 수집해놓아야 된다.’

단검은 치명타 확률을, 둔기는 기절 확률과 중형에 대한 추가 데미지를, 창은 관통력을 증대시켜주는 등 무기마다 전혀 다른 시너지가 부여되었다. 그렇기에 상대에 따라서 무기를 바꿀 여지가 충분했다.

‘앞으로는 무기를 다양하게 활용해 봐야겠군.’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성우 일행은 어느 고등학교의 운동장을 마주보고 있었다.

“흔히 몰이사냥이라고 하죠. 다수의 잡몹을 몰아다가 단숨에 잡아버리는 RPG게임 사냥 방식입니다. 사냥 시간 대비 엄청난 보상을 얻을 수 있을 겁니다.”

“선배, 근데 몰이사냥 이거, 진짜 가능한 거죠?”

“응. 내가 코볼트 던전에서 다 해봤어.”

그곳에서는 오크들의 부락 건설이 한창이었는데, 얼핏 봐도 그 머릿수가 100마리가 넘었다.

“이제 오크가 그리 무섭게 느껴지지도 않네요.”

“전 아직도 지릴 것 같은데······.”

성우는 교문 앞에 있는 오크 시체 네 구에 마나를 주입했다. 그러자 뼈만 분리되어 나오더니, 한호와 지수의 몸에 달라붙기 시작했다.

턱, 턱, 턱, 턱.

새로 얻은 스킬인 ‘뼈 갑옷 제조’였다.

“생각보다 되게 가볍네요.”

“생각보다 단단할 겁니다.”

성우는 이 갑옷의 내구도 테스트를 미리 해봤었다. 웨어 울프 스켈레톤에게 입혀 놓고 칼로 내리쳤는데, 일반적인 뼈보다 훨씬 단단했다.

오크의 도끼 정도야, 정통으로 맞더라도 한 두 방은 견뎌낼 수 있을 것이었다.

“스켈레톤들이 중심에서 버텨줄 테니까, 우리는 사이드로 빠지는 놈들을 공략하면 됩니다.”

그렇게 세 사람은 오크의 영역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으?

망치질이 한참이던 오크들이 하나 둘 고개를 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간덩이가 부은 인간들을 보고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이내 놈들이 도끼를 들어 올리고 일행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오기 시작했다. 괘씸한 침입자들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겠다는 반응이었다.

그아아아!

붉은 머리의 오크가 괴성을 지르자, 이내 운동장으로부터 엄청난 수의 전사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구구구―

그들의 돌격에 바닥이 살벌하게 뒤흔들렸는데, 멀리서 보면 아프리카 초원을 이동하는 물소 떼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그리고 그에 준하는 모래 먼지가 일어났다.

푸우우!

하지만 그 기세는 검은 연기의 등장과 함께 꺾였다. 일행과 충돌하기 직전, 어디선가 터져 나온 검은 연기가 그들의 시야를 차단한 것이다.

그아아?

오크들은 그 낯선 연기를 들이마시며, 몸이 내부에서부터 조금씩 으스러지는 느낌을 받았다.

두말 할 것도 없이 저주의 영향이었다. 그렇게 집중력이 흐트러지는 순간, 검은 연기 속에서 하얀 팔이 튀어나왔다.

컥! 컥!

날카로운 손톱이 오크의 목덜미를 움켜쥐었다. 그리고 문고리 돌리듯 손목을 비틀어대자, 오크의 두꺼운 목이 꺾이며 몸이 축 늘어졌다.

덜그럭!

이어서, 연기 속에서 웨어 베어 스켈레톤이 튀어 나왔다. 놈은 말 그대로 곰처럼, 오크들의 한 가운데로 비집고 들어가더니 거대한 앞발을 휘둘렀다.

그리그 그 등 뒤에는 오른이가 뼈 사이로 다리를 넣어 매달린 채, 사방으로 칼을 내리쳤다.

녀석들의 움직임 한 번, 한 번마다 오크가 한 마리씩 픽픽 쓰러졌다.

퍽! 퍽! 퍽! 퍽!

오크들이 웨어 베어 스켈레톤을 둘러싸고 도끼질을 해대기 시작했다.

하지만 원체 덩치도 크고 내구력도 좋던 놈이, 온몸에 뼈 갑옷을 덕지덕지 붙이고 있으니, 흡사 장갑을 두른 탱크나 다름없었다.

후드득!

웨어 베어 스켈레톤의 옆구리 쪽 갑주가 내구도가 다했는지 떨어져나갔다. 성우는 그 장면을 포착하고, 다시 한 번 ‘뼈 갑옷 제조’ 스킬을 사용했다.

그러자 바닥에 널브러진 오크 시체에서 뼈들이 솟아오르더니, 웨어 베어 스켈레톤 등으로 부착되기 시작했다.

턱! 턱! 턱!

지금 이 순간, 웨어 베어 스켈레톤은 일당백의 괴물이었다. 그건 과장이 아니었다. 잠깐 사이에 스무 마리가 넘는 오크의 머리통을 작살내버렸으니 말이다.

그아아아!

하지만 여전히 오크의 훨씬 숫자가 많았다. 놈들은 감당할 수 없는 수인 스켈레톤들을 피해서, 좌우로 넓게 퍼지며, 후방의 일행을 향해 달려왔다.

하지만 일행 역시 만만한 상대일 리가 없었다.

픽! 픽! 픽! 픽!

성우는 새로 얻은 아이템 ‘드워프제 리프팅 크로스보우’를 연달아 발사했다.

데미지는 그리 높은 편이 아니었지만, 분당 40발 정도를 발사할 수 있는 속도이기에, 왼쪽에서 달려드는 오크의 선두가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오른 쪽은 한호와 지수가 맡았다.

“먼저 오는 놈은 무조건 미간에 맞춘다!”

이제 한호의 단검 투척은 기인열전에 가까웠다. 단검이 포물선을 그리며 빙글빙글 돌더니, 수십 미터 떨어진 오크의 이마에 정확히 박혔다.

“거봐, 말했지!”

그러자 한호의 몸 주변으로 옅은 보호막이 생겼다. 프리스트 카드를 뽑으며 탄생한 연계 스킬 ‘신념의 처단자’였다. 상대의 숨통을 끊을 경우 10초간 성스러운 방어막을 얻게 된다.

텅!

“으아, 깜짝이야!”

오크가 던진 도끼가 한호의 몸 근처에서 허무하게 튕겨나갔다.

지수 역시 세 마리의 오크를 동시에 상대했다. 그녀는 과거, 무작정 맞부딪치려다가 힘에 밀렸던 때와 차원이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촤악! 촤악!

그녀는 ‘절묘한 감각’ 스킬에 따라서 오크 사이를 이리저리 헤집고 다녔다.

칼을 휘두를 때마다 오크들의 배가 찢어지고, 힘줄이 끊어지며 무력화 됐다. 그녀가 나아가는 길 뒤로, 덩치 큰 오크들이 하나 둘 쌓여갔다.

우어어!

그게 끝이 아니었다.

오크 무리의 등 뒤에서는 좀비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하물며 그 좀비들조차 뼈 갑옷으로 단단하게 무장한 상태였다.

오크들은 자신들 보다 훨씬 적은 수의 적에게 둘러싸인 채, 속수무책으로 쓰러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새 오크 무리의 발아래 곳곳에, 동족의 시체가 쌓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쾅! 쾅! 쾅! 쾅!

그 시체가 부풀어 오르며 무리 한 가운데에서, 광역 데미지를 넣는 시체 폭발이 시작되었다. 수많은 오크들이 도끼 한 번 휘둘러보지도 못한 채, 폭발에 휘말려 사방으로 튕겨져 나갔다.

- 오크를 사냥하여 160골드를 얻었습니다.

- 오크를 사냥하여 160골드를 얻었습니다.

- 오크를 사냥하여 160골드를 얻었습니다.

폭발이 끝난 이후까지 이런 메시지가 끝도 없이 떠올랐다. 오크 마을 하나를 통째로, 총 112마리를 순식간에 잡아먹는, 그야말로 완벽한 몰이사냥이었다.

“······대박, 이게 진짜 되네?”

“대부분 성우 씨가 잡았지만, 저도 첫 날하고 비교하면 확실히 달라졌다는 게 느껴지네요.”

그렇게 전투를 마친 일행은 숨을 돌리기도 전에 새로운 것을 발견했다.

“선배, 저기 봐요. 학교에 상점이 있나 본데요? 어? 상점이 아닌가?”

한호가 가리킨 곳, 학교 건물 1층에 떠 있는 금색 아이콘 하나가 보였다. 그런데 그건 지금까지 본 적 없는 모양의 아이콘이었다.

“망치 모양이면 대장간인가?”

“일단 가보자.”

일행은 그곳으로 향했다. 학교의 유리문을 열고 들어가, 1층에 위치한 1-3반 교실 문을 열었다.

드르륵―

“저게 뭐지?”

그곳 중앙에 금색 테이블이 하나 놓여 있었다. 금속 재질인데다가 꽤나 투박하면서도 세월이 느껴지는 물건이었는데, 얼핏 봐서는 공방에 있을 법한 작업대였다.

성우가 그 앞으로 다가갔다. 그러자 눈앞에 복잡한 메시지가 떠올랐다.

[아이템 제작/조합]

- 조합할 수 있는 물건이 있습니다.

1) 바다 정령의 눈물(재료) + 악마의 혈석(재료) + 엘더 슬라임의 액체(매개) = ???

* 필요비용 : 100,000 골드

‘전설 등급 아이템끼리 조합이 된다고?’

그럼 대체······ 얼마나 엄청난 게 나온단 말인가?

2